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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한 예술가는 무엇을 훔쳤을까
데브라 N. 맨커프 지음, 정상희 옮김 / 서교책방 / 2026년 10월
평점 :
네이버 책과 콩나무 카페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주관적인 리뷰입니다.
흔히 '좋은 예술가들은 모방하고 위대한 예술가들은 훔친다'는 말을 피카소가 했다고 알려져 있는데
'법정에 선 예술가들'이란 책에선 스티브 잡스가 한 다큐멘터리에서 피카소가 한 말이라고 소개해서
유명해졌다고 한다. 원래는 T. S. 엘리엇의 평론 속 구절에서 유래한 것으로 추정하는데 이 책은 딱 그 말에서 영감을 얻어 129점의 명작을 추적해 창작의 비밀을 탐구한다.
'영감의 기원', '배움의 여정', '아이디어의 순환', '영향의 흔적', '연결의 순간', '변형의 기술'이란
6개의 장을 통해 예술가들이 명작을 탄생시킨 비결을 보여준다. 먼저 '영감의 기원'에선 예술가들이
기존의 전통에서 영감을 얻음을 여실히 보여준다. 첫 번째로 등장하는 작품은 예상 외로 '춤의 왕인
시바'로 여러 개의 팔을 가진 시바의 도상은 시바를 상징하는 특징이라 할 수 있었다. 성모자 도상도
기독교 예술의 대표적인 전통이라 할 수 있었고, 자화상의 전통은 렘브란트에서 출발해 쿠르베 등이
이를 참조했다. 일본 에도시대의 우키요에는 서양의 여러 화가들에게 큰 영향을 미쳤다. 유명 화가들
에게도 자신에게 영향을 준 화가들이 있었는데 터너에게 영향을 받은 모네, 밀레에게 영향을 받은
고흐는 물론 양부이자 시아버지인 모네에게 영향을 받은 블랑슈의 존재를 이번에 처음 알게 되었다.
라파엘로의 걸작 '아테네 학당'에선 주로 등장하는 고대 철학자나 과학자들에게만 관심이 있었는데
그림 속 건축물이 브라만테의 설계에서 영향을 받았음을 알게 되었다. 카라바조가 남긴 빛의 기법은
그가 직접 제자를 두지 않았음에도 후대의 많은 화가들이 영향을 받아 어떻게 보면 바로크 시대
이후의 화가들은 사실상 카라바조의 제자라 해도 지나친 과장은 아닐 것 같다.
미켈란젤로는 고대의 조각들에 영감을 받고 모방을 했지만 육체의 아름다움과 신성함을 조화시킨
수준으로 격상시켰고, 전통적인 회화 규칙을 파괴시켜 파문을 일으킨 마네의 '풀밭 위의 점심 식사'도
사실 티치아노의 '전원 음악회'를 새롭게 재해석한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사진 기술을 회화에 적용한
드가나 이 책의 발단이 된(?) 피카소의 '아비뇽의 여인들'도 세잔에게 큰 영향을 받았다. 이렇게
후배 작가들의 위대한 작품들을 잘 살펴보면 선배들의 작품이나 기존의 전통이 담겨 있음을 잘 보여
주었는데 단순히 모방에 그쳤다면 좋은 예술가에 불과했겠지만 아예 훔쳐서 자신의 것으로 소화내
새롭게 재탄생시켰기 때문에 '위대한' 예술가가 될 수 있었지 않나 싶다. 앞서 언급한 '법정에 선
예술가들'이 많은 작가와 작품들의 흥미로운 법정 공방을 다뤘지만 도판이 전혀 없어 좀 답답했는데
이 책은 영향을 준 작품과 영향을 받은 작품을 바로 확인할 수 있어서 특히 좋았던 것 같다. 과거의
전통에 영향을 받았지만 그것을 뛰어넘은 위대한 예술가들의 흥미로운 얘기와 그 비결을 잘 보여준
책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