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흑뢰성
요네자와 호노부 지음, 김선영 옮김 / 리드비 / 2022년 9월
평점 :
요네자와 호노부의 신작인 이 책은 미스터리 관련한 각종 상을 휩쓴 것은 물론 제166회 나오키상까지
수상해 무려 9관상을 수상한 작품이라 도대체 어떤 작품이기에 이런 성과를 거둔 것인지 궁금했다.
이전 작품들인 '인사이트밀', '부러진 용골', '왕과 서커스', '야경'까지 내가 읽은 작품들 모두 상당한
분량임에도 흡입력 있는 내용들을 선보였는데, 특히 네팔 왕가 총기사건을 소재로 한 '왕과 서커스'와
중세를 배경으로 했던 '부러진 용골'은 과연 일본 작가의 작품이 맞나 싶을 정도로 시공을 넘나드는
필력을 보여주었다. 이번 작품은 일본 전국시대를 배경으로 하는 작품인데 마지막에 참고 문헌을 보니
실존 인물들을 등장시킨 역사소설이라 할 수 있었다.
일본 전국시대는 오닌의 난으로 시작해 오다 노부나가, 도요토미 히데요시를 거쳐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통일로 막을 내린다. 이 책에선 오다 노부나가가 전국을 통일해나가던 시점으로 오다의 휘하에 있던
셋쓰노카미 무라시게가 오다를 배반하고 모리측에 붙으면서 아리오카성을 중심으로 오다의 공격에
맞서 싸우는 약 1년간의 얘기를 다루고 있다. 오다측의 고데라 간베에가 무라시게를 찾아와 설득하지만
실패하고 죽여달라는 간베에의 말을 거부한 채 무라시게는 그를 지하 감옥에 가두면서 인과관계가
작동하기 시작한다. 이후 오다 군대가 아리오카성을 포위한 상태에서 모리측 지원군이 오기만을 마냥
기다라는 약 1년 동안 총 네 장에 걸쳐 계절별로 미스터리한 사건들이 벌어진다. 먼저 무라시게를 배반한
아베의 아들 지넨의 기이한 죽음으로 인질이던 지넨을 죽이지 않고 따로 가둬둔 밀실 비슷한 상태에서
지넨이 죽자 무라시게는 현자라 할 수 있는 간베에를 찾아가 도움을 청한다. 간베에의 조언으로 사건을
해결한 무라시게는 철벽이라 여겨지는 아리오카성을 굳게 지키지만 기다리는 지원군은 오지 않고
오다의 포위로 꼼짝달싹 못하는 상황이 지속되자 점점 분위기가 묘해진다. 그 와중에 적을 기습해
적장의 목을 베어오지만 누구의 목이 적장의 목인지를 가지고 서로 공을 다투는 난처한 상황이 발생하고
오다측에 항복을 교섭시키기 위해 사자로 보내려던 승려가 살해당하는 사건이 일어나는 등 무라시게는
점점 궁지에 몰리게 된다. 일련의 사건의 원인과 앞으로의 해결책을 간베에에게 물어보는 과정에서
간베에의 기발한 계책을 제안받지만 무라시게는 거기서 몰랐던 진실을 깨닫게 되는데...
어떻게 보면 일본 역사소설이라 할 수 있어 미야베 미유키의 시대물과도 비슷한 느낌이 들면서도 사뭇
다른 느낌도 없지 않았다. 무엇보다 가상의 얘기가 아닌 실존 인물들이 등장해서 훨씬 사실감을 높인
부분이 아닌가 싶은데 일본 역사를 잘 알지는 못하지만 격동의 시기의 한 장면을 잘 그려낸 것 같다.
미스터리로서의 재미도 놓치지 않았는데 모들 걸 다 꿰뚫어 보는 탐정 역할을 간베에가 하고 간베에의
힌트를 바탕으로 무라시게가 사건을 해결하는 구조라 할 수 있었다. 배신이 난무하는 피 비린내 나는
시절에 무사로서의 명예도 생각해야 했던 사람들의 얘기가 흥미진진하게 펼쳐졌는데 잔인한 오다
노부나가와는 반대로 행동함으로써 자신의 존재감을 부각시키려 했지만 뜻하지 않게 원한을 사게 된
무라시게의 고군분투와 지하감옥에 갇혀서도 모든 걸 내다보던 간베에의 놀라운 지혜, 그리고 나름의
가치를 지키기 위해 노력했던 사람들의 얘기가 잘 버무려진 작품이었다. 마지막의 반전까지 살벌한
시대에도 무엇보다 소중한 가치가 있음을 미스터리 역사소설 형식으로 잘 승화시킨 작품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