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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수의 시대 ㅣ 윌북 클래식 첫사랑 컬렉션
이디스 워튼 지음, 김율희 옮김 / 윌북 / 2022년 7월
평점 :
이 작품은 오래 전에 마틴 스콜세지 감독의 동명 영화로 본 적이 있다. 다니엘 데이 루이스(아처 역),
위노나 라이더(메이 역), 미셸 파이퍼(엘렌 역) 등 당대의 인기 배우들이 출연한 시대극이었는데 마틴
스콜세지 감독의 다른 영화, 특히 '좋은 친구들'처럼 제목 자체가 반어법을 쓴 느낌을 확실히 주었다.
대략의 줄거리와 인상만 남아 있는 상태여서 원작은 어떤 느낌일까 싶었는데 이디스 워튼의 작품이었다.
이디스 워튼의 작품은 예전에 '여름'을 읽어본 적이 있는데 이 책으로 1921년 여성 최초로 퓰리처상을
받았다고 하니 이 작품이 그녀의 대표작이라 할 수 있다.
내용은 1870년대 뉴욕 상류층을 배경으로 결혼을 앞둔 두 명문가의 남녀와 그들 사이에 나타난 한 여자의
사랑과 결혼, 갈등 등을 다루고 있다. 약혼한 상태인 뉴랜드 아처와 메이 웰랜드 사이에 메이의 사촌인
엘런 올렌스카가 등장하면서 사건은 시작된다. 유럽의 백작에게 시집갔던 엘런은 구제불능의 남편에게서
달아나 뉴욕으로 왔는데 이혼하진 않은 상태의 미모의 여자이다 보니 많은 사람들의 시선을 받게 되고
구설수에도 오르게 된다. 그럼에도 엘런은 남들의 시선에는 별로 신경 쓰지 않고 이혼을 하려 하고
그런 엘런을 아처가 여러 모로 도와주고 신경 쓰게 되면서 두 사람 사이에 묘한 분위기가 싹튼다. 결국
약혼녀 메이를 버리고 엘렌을 선택할 것인지 기로에 서게 된 우유부단한 아처와 그런 아처의 마음을
아는 듯한 메이의 묘한 태도, 역시 용기를 내지 못하는 엘런은 예정된 결말을 향해 치닫는다.
요즘에야 이혼도 쉽고 애인 갈아타는 게 흔한 세상이지만 이 책의 배경인 1870년대 뉴욕 상류층에선
오직 사랑만을 선택한다는 건 다른 걸 모두 포기하는 일일 수도 있었다. 그렇다 보니 아처도 자신에게
주어진 운명(?)에 순응하게 되지만 다시 나타난 엘런에게 흔들리며 또다시 위기의 순간이 찾아온다.
세 사람 사이의 눈치작전과 밀당이 이어지는데 지금의 관점으로 보면 좀 답답한 측면이 없지 않았다.
'순수'의 시대가 아닌 '위선'의 시대라 그런지 진심을 제대로 표현하지 않고 늘 속마음을 숨기다 보니
무늬만 부부라거나 하는 관계가 흔했던 시대였던 것 같다. 결국 오랜 세월이 지나 메이가 세상을 떠나고
아처는 엘렌을 재회할 기회가 찾아오지만 여전히 예전의 버릇을 고치지 못한다. 어떻게 보면 속 터지는
내용의 이상한(?) 로맨스물이라 할 수도 있는데 그 시대 그 지역 상류층 사회에선 그런 분위기였음을
여실히 보여준 작품이었다. 여러 가지 제약이 많았던 시대의 이루어질 수 없었던 사랑을 섬세하게 잘
그려낸 이디스 워튼의 능수능란한 필력이 돋보인 작품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