붉은 백합의 도시, 피렌체 여행자를 위한 인문학
김상근 지음, 하인후 옮김, 김도근 사진 / 시공사 / 202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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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렌체 하면 늘 르네상스를 대표하는 도시로 메디치 가문의 얘기 등이 언급되곤 한다. 이 책도 당연히

르네상스 시대의 화려하게 꽃 핀 예술과 문화를 다루지 않을까 싶었는데 예상 외로 피렌체의 역사에만

집중해 소개하고 있다. 피렌체 역사라고 하면 메디치 가문이 지배하던 르네상스 시대밖에 떠오르지

않는데 이 책에선 피렌체의 주요 명소들을 돌아보면서 마키아벨리의 '피렌체사'의 내용을 중심으로

피렌체의 파란만장한 역사를 알려준다. 


마키아벨리는 '군주론'으로 유명한데 '피렌체사'는 마키아벨리의 생애 마지막 역작이라고 한다. 피렌체

에서 쫓겨났다가 8년 만에 돌아온 마키아벨리는 메디치가의 줄리오 추기경으로부터 피렌체의 역사와

연대기를 집필하는 공식 역사관으로 임명받고 '피렌체사'를 쓰게 되었는데 메디치가의 비위를 거슬리지

않으면서도 공정하게 역사를 써야 했던 마키아벨리의 고뇌가 녹아 있는 책이라고 한다. 이 책에선

크게 평민의 시대(1216~1434년)를 다룬 1부와 메디치 가문의 시대(1434~1525년)를 다룬 2부로 나눠져

있는데 베키오 다리부터 루체라이 정원까지 피렌체 역사의 주요 현장이 된 12곳을 선정해 차례대로

돌아다니면서 피렌체의 역사를 들려준다. 피렌체를 여행하는 기분이 들게 가이드가 등장하는데 바로

'피렌체사'를 쓴 마키아벨리였다. 단테가 '신곡'에서 베르길리우스를 소환해 저승 여행을 다닌 것처럼

피렌체에 대해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마키아벨리가 등장하니 최고의 가이드라 할 수 있었다.


피렌체의 유명 관광지인 베키오 다리에서 여정이 시작되는데 당시 피렌체도 교황파와 황제파의 대립

속에 황제파의 대표 부온델몬테가 베키오 다리에서 암살당하면서 피렌체의 피의 역사가 시작된다. 

세계사적 맥락에서 피렌체는 흔히 아는 '르네상스의 도시'나 '천재들의 도시'가 아닌 자유와 평등을

지향한 인류 최초의 도시로 평가된다. 평민들이 지배 세력이 되는 건 최근이라 할 수 있는데(그것도

형식적인 의미이지만), 피렌체는 일찍부터 평민들이 귀족들을 몰아내고 오직 평민들에 의한 정치가

이뤄진다. 교황파니 황제파니 하면서 귀족들 사이의 다툼에서 시작된 피의 역사는 귀족과 평민, 평민과

평민, 평민과 하층민, 하층민과 하층민 사이의 혈투를 거쳐서야 우리가 잘 아는 메디치 가문의 소위

참주정이 이뤄지지만 메디치 가문의 시대도 백 년이 채 되지 못했다. 로마와 달리 피렌체는 항상 분열의

도시였는데 이는 현재의 대한민국의 모습과 유사하다. 갈등으로 점철된 피렌체의 역사를 통해 지배

하려는 자는 위엄을 지켜야 하고, 지배를 받지 않으려는 자는 만족하는 배워야 한다는 교훈을 전하는데

대립과 갈등이 극에 달하고 있는 우리도 이 책에서 보여준 피렌체의 역사를 통해 뭔가 배울 수 있으면

좋겠지만 쉽지는 않을 것 같다. 피렌체가 단순히 르네상스를 대표하는 도시로만 알고 있었는데 이 책을

통해 피렌체의 파란만장한 역사를 풍부한 자료와 흥미로운 얘기들로 잘 정리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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