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대
모리미 토미히코 지음, 권영주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21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열대'라는 수수께끼의 책이 있다. 이 책을 읽어 본 사람들이 있지만 아무도 끝까지 읽은 사람은 없는는 

책. 소설가인 모리민은 학창 시절 반 정도 읽다가 잃어버렸던 '열대'의 기억을 간직한 채 수수께끼 

독서 모임인 침묵 독서회에 참가하게 된다. 여기서 '열대'의 정체에 대한 얘기가 오가고 이 책의 정체를 

파헤치기 위한 학파까지 조직되어 활동하고 있음을 알게 되는데 과연 '열대'에 숨겨진 비밀은 무엇일까?


수수께끼의 책에 관한 얘기는 오래 전에 읽었던 온다 리쿠의 '삼월은 붉은 구렁을'이 떠오르게 했다.

익명의 작가가 사본 20부를 제작해 배포했으나 곧바로 절반 가량 회수했다는 신비의 책인 '삼월은

붉은 구렁을'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이야기가 꼬리에 꼬리를 물고 화수분처럼 계속 생겨나서 독립적인

작품으로도 만들어지는 놀라운 경험을 했었는데 이 책도 그에 못지 않았다. '열대'란 작품도 일부분만

읽은 사람들만 있고 전체 내용을 다 아는 사람이 없다 보니 이를 연구하는 '학파'가 결성될 지경이었는데

여기에 모이는 사람들은 각자 자기가 '열대'의 실체를 밝혀내겠다는 욕망을 품고 독자행보에 나선다.

'열대'를 쓴 작가 사야마 쇼이치와 알고 지내다가 갑자기 그가 사라진 후 오랜 세월이 지났음에도 여전히

그의 행방을 궁금해하던 지요 씨가 가장 많은 단서를 가지고 있는 가운데 사야마 쇼이치처럼 늘 노트를

가지고 다니면서 '열대'을 연구하던 이케우치 씨는 지요 씨의 초청을 받고 사건의 무대라 할 수 있는

교토로 갔다가 행방이 묘연해지고 그런 이케우치 씨를 찾으러 시라이시 씨도 교토로 향하는데...


'열대'는 '천일야화'와 비교되면서 얘기가 진행되는 중간중간에 끊임없이 '천일야화'를 소환한다. 전에

'천일야화'를 읽었지만 여성혐오에 빠진 샤흐리야르 왕에게 셰예라자드가 들려주는 천일동안의 재밌는

얘기는 무고한 여자들의 죽음도 막고 여성혐오라는 끔찍한 병도 치유시키는데 아마도 이야기의 힘을

가장 강렬하게 보여주는 사례가 아닌가 싶다. 이 책도 액자소설식 구성으로 '열대'라는 책의 정체를

찾으려는 사람들이 결국 '열대'라는 책 속의 세계로 빠져들게 된다. '밤은 짧아 걸어 아가씨야'와 '펭귄

하이웨이' 등으로 판타지가 가미된 작품들에 능수능란한 모리미 도미히코는 이 책에서도 '열대'라는

책의 안과 밖을 넘나들면서 환상적인 얘기를 들려준다. 소설이라는 게 누구에게나 각자만의 얘기로

재구성될 수 있지만 이 책에선 각자 인생이라는 자기만의 소설을 써 내려가는 그런 재미를 가르쳐주는

느낌이 들었다. 이야기의 늪에 빠져 허우적거리다가 간신히 빠져나온 듯한 기분으로 마지막 책장을

덮었는데, 정말 '열대'같은 푹푹 찌는 날씨 속에 미스터리한 책 '열대'를 찾아 환상의 섬으로 떠나는  

꿈같은 여행이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