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학의 거짓말 두 번째 이야기 인문학을 어떻게 읽을 것인가? 2
박홍규 지음 / 인물과사상사 / 202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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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학 관련 책들이 봇물을 이루는 가운데 이 책은 제목부터 대놓고 인문학의 거짓말이라고 붙여 

상당히 도발적이라 눈길을 끌었다. 이 책에서 저자는 흔히 암흑시대라고 불리는 중세를 다루면서 

서양의 중세와 달리 인도, 이슬람, 중국 등의 비서양의 중세는 개명시대라는 새로운 주장을 내놓는다.

사실 중세라고 얘기할 때 보통 서양만 생각하는 선입견이 있다 보니 비서양의 중세에 대해서는 제대로

생각을 해보지 않았는데 이 책에선 서양보다 비서양에 더 큰 비중을 두어 중세시대가 어떠했는지를

저자 나름의 시각으로 살펴본다.


흔히 서양에서는 서로마제국이 멸망한 476년부터 스페인에서 무어인이 추방된 1492년까지를 중세라고

보는데 이 시기에는 기독교가 모든 것을 지배하다 보니 '암흑'이라는 오명이 붙은 반면, 비서양에서는

동시대에 중동에서는 이슬람 문명이 탄생했고, 중국에서는 수·당·송의 불교문화 등이 다양하게 꽃을

피웠으며, 아메리카와 아프리카에서도 그 못지 않은 찬란한 문명이 개화된 시대여서 그야말로 개방과

관용의 문화였다고 한다. 그러면서 인도부터 시작해 이슬람, 서양, 중국, 한반도의 중세를 차례대로

살펴본다. 서양 중심의 세계사를 배우다 보니 인도, 이슬람 지역의 중세는 그다지 기억에 남아 있지

않은데 인도의 경우 흔히 훈족에 의해 굽타왕조가 붕괴된 550년 이후부터 무굴제국의 등장(1526년)

까지 약 천년을 중세로 보지만 저자는 굽타왕조부터 중세라고 보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 시기의 

인도의 사상, 문학, 예술을 살펴보는데, 한국을 '동방의 등불'이라고 예찬했다며 회자되는 타고르가

인도의 친일파이고, '동방의 등불'이라고 한 것도 타고르가 일본을 방문했을 때 한국을 위한 글을 부탁해

얻은 메모 한 귀퉁이의 글에 불과하다니 이게 사실이라면 상당히 놀라운 일이었다. 최근에 국립중앙

박물관에서 인도의 유물도 관람하긴 했지만 인도 중세의 사상, 문학, 예술은 여전히 낯선 편이어서 

저자가 이 책에서 정리하고 비판한 내용들은 그동안 몰랐던 부분들을 새롭게 알게 되는 기회가 되었다.

이슬람의 중세에 대해서도 그리 자세히 알지는 못했지만 동시대의 서양에 비해 과학이나 문화가 훨씬

발달했다는 사실만은 이미 잘 알고 있었다. 로마제국의 붕괴로 끊어진 그리스 로마의 위대한 유산들이

이슬람을 통해 르네상스 시대에 다시 전승되었다고 알고 있었는데 이슬람의 중세는 지금 우리가 가진

이슬람에 대한 선입견과는 달리 상당히 민주적이고 관용과 포용이 넘치는 시대라 할 수 있었다. 오히려

현재가 근본주의자들이 활개를 치는 등 무지몽매에 빠져 암흑기라는 게 저자의 생각인데 이슬람을

대표하는 문학 작품이라고 알려진 '아라비안나이트'도 아랍적 이야기가 아닌 번안된 이야기로 보는

게 옳다는 생각도 든다고 얘기한다. 중세 이슬람 사회에선 수천 개의 도서관이 세워질 정도로 문화가

발달한 반면 미술이나 음악쪽으로는 독자적인 영역으로 발달하지 않아 상대적으로 미약한 것 같았다.   


서양의 중세와 관련해서도 중세 제국주의라 칭하며 유럽의 민족차별, 인종차별, 식민지주의와 이것을

초래한 정신적 기질과 관습이 중세에 생겨난 것이라고 말한다. 아나키스트이자 무종교인 저자의 

시각에 당연히 서양의 중세가 곱게 보일리가 없는데 모든 종교가 사라지는 세상이 조만간 온다고 

하면서 털의 자유를 허락하라는 등 좀 개인적인 얘기도 늘어놓는다. 중국에서는 서양의 중세에 해당

하는 시기를 3~9세기로 보는 반면 저자는 3세기부터 원왕조까지를 중세라고 본다. 중국의 중세는 

불교와 유교, 도교가 공존하면서 개방적이고 세계적인 문화를 흡수하는 사회였다고 진단한다. 특히

본인과 취향이 통하는 죽립칠현을 높게 평가하는데 흔히 말하는 중국의 4대 기서 중에서도 삼국지나

수호지보다는 서유기와 홍루몽을 좋아했다고 말한다. 중국에 이어 마지막으로 한반도의 중세까지 

다루는데 고려시대를 중세로 보면서 개방성과 다양성의 국가로 평가한다. 그러다가 폐쇄적인 유교

국가인 조선이 되면서 결국 패망에 이르게 되었다고 보면서 리얼리스트이자 아나키스트, 코스모폴리탄

이었던 최치원을 높게 평가한다. 이렇게 저자 자신의 관점이 인간을 구속하는 모든 종교나 사상에 

비판적이다 보니 기존에 일반적으로 인정되는 역사 속 평가들과는 사뭇 다른 견해들이 적지 않았다.

어떻게 보면 너무 자신의 주관에서만 바라보는 게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들 정도였는데 좀 파격적인

부분이 없지 않았지만 무엇보다 서양 중심의 중세가 아닌 비서양의 중세를 바라보면 중세가 마냥 

암흑시대가 아니었음을 확실히 가르쳐주었다. 역시 인문학은 어떤 관점에서 접근하느냐에 따라 완전히

다른 내용이 될 수도 있음을 여실히 보여준 책이었는데 중세에 대해 새로운 관점을 가질 수 있게 해준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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