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자가와 초승달, 천년의 공존 - 그리스도교와 이슬람의 극적인 초기 교류사
리처드 플레처 지음, 박흥식 외 옮김 / 21세기북스 / 202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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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교와 이슬람교는 그 영향력에 있어선 세계 양대 종교라 할 수 있지만 인류 역사에서 끊임없이 

갈등과 반목을 일으켜 수많은 사람들을 죽음에 이르게 만든 종교들이기도 하다. 같은 뿌리라 할 수 

있는 그리스도교와 이슬람교가 이런 관계가 된 까닭을 추적해가는 이 책은 두 종교가 초창기에는 나름의

공존도 하였음을 자세히 보여준다.


둘 다 유일신교이지만(동일한 대상을 서로 다르게 부르지만) 그리스도교가 여러 경전을 가져 경전 해석을 가지고 여러 종파로 나뉘는 반면 이슬람교는 오직 꾸란만을 유일한 경전으로 삼고 있다. 그리고

그리스도교의 삼위일체와 성육신 교리를 이슬람교에선 이해할 수 없을 뿐 아니라 불쾌해한다고 하는데

이렇게 서로를 이해하지 못하고 편견을 가지고 있다 보니 이슬람 세력이 본격적인 세력 확장에 나서면서

갈등이 시작된다. 그래도 그리스도교인들 지역을 정복한 이슬람의 정복자들은 그들의 개종을 강요하진

않았다. 무함마드에 의해 이슬람교가 등장한 이후 왕성한 정복활동을 하면서 이슬람 세력이 그리스도교

세력보다 더 강했던 시절에는 이슬람 세계가 문화적으로도 우위에 있다 보니 고대 그리스 등의 서양

문명의 유산을 오히려 이슬람 세력이 흡수하여 화려하게 부활시킨다. 이게 결국 르네상스 시대의 

서양 문명이 재도약하는 계기가 되었으니 이슬람문화권이 나름의 역할을 한 건 분명한 것 같다.

주로 이슬람 세력이 그리스도교 지역을 공격하던 일변도에서 벗어나기 시작하는 건 전열을 정비한

그리스도교 세력이 십자군 원정에 나서기 시작하면서이다. 그럴 듯한 명분을 내세우며 시작된 십자군

원정이 그리스도교 세력에겐 엄청난 일이었지만 이슬람 세력에겐 잠시 왔다 가는 성가신 소규모 

접전에 지나지 않았다니(심지어 남겨진 사료조차 없다고 한다) 이들 사이의 인식의 차이가 얼마나 

큰지 새삼 알 수 있었다. 여러 분아에 걸쳐 양 세력간의 교류가 있었지만 종교적 차원에서는 전혀 

거리가 좁혀지지 않았다. 이슬람에선 무함마드에게 주어진 계시가 이전의 모세나 예수가 받은 계시를

뛰어넘기 때문에 그리스도교에 관심을 가질 아무런 이유가 없었다고 생각해서 시종일관 무관심했고,

그리스도교에선 초창기에 정복자였던 이슬람 세력에 호의적일 수 없어 무함마드와 이슬람을 이단과

폭력의 이미지로 각인시키다 보니 이들 사이의 거리는 쉽게 좁혀지지 않았다. 이슬람의 발전된 문명을

배우는 입장이던 그리스도교 세력이 르네상스 시대 이후 더 우월한 문명을 가지게 되면서 무게중심이

한쪽으로 쏠리게 되었고 이제는 회복하기 쉽지 않은 상태가 되고 말았다. 이 책을 통해 두 종교 세력

사이에 그동안 역사적으로 어떤 일이 있었는지를 초기의 역사를 중심으로 자세히 살펴볼 수 있었던 

것 같은데 두 종교 사이에 존중과 화해가 이루어지기는 결코 쉽지 않겠지만 그 원인을 제대로 알려준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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