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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가문의 비극 ㅣ 일본 추리소설 시리즈 5
고사카이 후보쿠 외 지음, 엄인경 옮김 / 이상미디어 / 2019년 6월
평점 :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일본 고전 미스터리 작가라고 하면 흔히 에도가와 란포를 시작으로 요코미조 세이시, 마츠모토 세이초가
떠오르는데 이 책에선 일본 추리소설의 대부로 일컬어지는 에도가와 란포의 스승 고사카이 후보쿠와
에도가와 란포와 더불어 당시 탐정문단의 3대 거성으로 일컬어진 고가 사부로, 오시타 우다루, 그리고
이 책의 제목으로 쓰인 '어느 가문의 비극'의 작가 쓰노다 기쿠오의 작품까지 총 6편을 소개하고 있다.
먼저 고사카이 후보쿠의 두 작품 '연애 곡선'과 '투쟁'이 등장하는데, 작가가 생리학자이자 법의학자인
점을 십분 발휘하여 의학적인 내용이 상당히 가미된 작품을 선보인다. '연애 곡선'은 왠지 에드거 앨런
포의 작품과 유사한 분위기를 풍기면서 좀 엽기적인 느낌도 들었다면 '투쟁'은 정신의학계의 쌍벽을
이루는 뇌질학파를 대표하는 모리 선생과 체액학파를 대표하는 가리오 박사의 기발한(?) 투쟁이
흥미롭게 펼쳐졌다. 아무래도 의학자 출신 작가이다 보니 자신의 전공을 잘 살린 작품들을 내놓은 것
같았는데 두 작품 다 편지 형식인 점도 이채로웠다. 다음 타자로 고가 사부로의 '호박 나이프'와
'꾀꼬리의 탄식'이 소개되는데, 좀 더 당시 일본 시대상을 반영하며 일본 고전 추리소설로서의 면모를
갖춘 듯 했다. 특히 동시대 작가인 요코미조 세이시의 작품들의 느낌도 났는데, 관동 대지진을 배경으로
한 '호박 나이프'는 뤼팽을 연상시키는 등장인물이 활약하여 복잡한 사건을 해결하면서 마지막에
자신의 실속을 차리는 모습을 보여줬다. '꾀꼬리의 탄식'은 이 책의 제목에 딱 어울리는 어느 가문의
비극 속에 숨겨진 가족 간의 악의와 복수가 씁쓸하게 그려졌다. 오시타 우다루의 '연'도 가족 간에
숨겨진 비밀이 결국 고름이 곪아 터지 듯 벌어지는 얘기를 다루고 있는데 부모와의 갈등이 어떻게
자식을 망가뜨리는지와 아무리 오해와 갈등이 있어도 용서와 화해를 할 수 있는 게 부모와 자식의
관계임을 잘 보여주었다. 마지막으로 이 책의 제목으로 쓰인 쓰노다 기쿠오의 '어느 가문의 비극'은
요코미조 세이시의 '혼진 살인사건'과 비슷한 느낌이 들었는데, 탐정역의 가가미 게이스케 과장이
교묘한 알리바이 트릭 등으로 무장하여 완전범죄를 꿈꾼 범인의 정체를 밝혀내는 과정이 본격
추리소설의 선구자다운 모습을 보여줬다. 이 책이 고려대 일본추리소설연구회에서 펴낸 일본
추리소설 시리즈의 다섯 번째 책이라고 하는데 일본 추리소설사에서 상당한 의미가 있는 고전들을
소개하는 시리즈라 충분히 찾아 읽어볼 가치가 있지 않을까 싶다. 상대적으로 척박한 우리의
추리문학계의 사정을 생각하면 좀 아쉬운 부분도 있는데 현재 풍성한 일본 추리소설들의 뿌리를
확인해보는 의미 있는 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