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권력은 간신을 원한다 - 한명회부터 이완용까지 그들이 허락된 이유
이성주 지음 / 추수밭(청림출판) / 201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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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신이라고 하면 자신의 사리사욕을 위해 임금에게 아첨하고 나라와 백성을 도탄에 빠지게 만든 신하를

말하는데 역사상 여러 인물들이 떠오르지만 이 책에선 조선시대 간신이라 할 만한 9명을 선정해서

과연 간신이란 인물들이 그들만의 잘못으로 이런 오명을 쓰게 된 것인지에 대한 의문을 제기한다.

간신이 사라지지 않은 이유는 권력이 그들을 원했기 때문이라고 말하는데, 리더에게는 간신과 같은

내부의 적이 필요하고, 절대권력은 절대로 부패하며, 조직은 간신이라는 희생양을 필요로 한다는

저자의 분석은 나름 일리가 있었다. 한 마디로 간신은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지는 것이라는

얘기인데 조선시대 9명의 간신을 통해 이를 차근차근 설명한다.

 

첫 번째 주자로 등장한 인물은 홍국영이었다. 정조의 오른팔로 정조 즉위의 일등 공신 중 한 명인

그가 간신으로 평가받는 건 좀 의외라 할 수 있었다. 물론 정조 즉위 이후 자신에게 집중된 권력을

남용하다가 결국 쫓겨나게 되었지만 정조가 그에게 너무 힘을 실어준 탓도 없지 않았다. 다음 타자는

간신으로 명성이 높은 김자점이어서 충분히 수긍할 만했지만 그가 시대의 간신이 된 배경에는 그 당시

임금인 인조가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인조에게 무조건적인 충성을 했고 권력 기반이 약했던 인조는

그를 이용해 정권을 유지했으니 간신은 혼군과 떼려야 뗄 수 없는 존재라 할 수 있었다. 김자점 못지

않은 간신인 윤원형도 문정왕후라는 든든한 뒷배가 있었는데 그가 역사에 남을 간신이 된 것도

문정왕후가 자신의 아들 명종을 임금에 올리기 위해 인종을 핍박해 죽음으로 몰고 수렴청정을 했던

비정상적 체제에 기인한 결과라고 말한다. 한명회도 수양대군이 계유정난을 일으켜 비정상적인

집권을 하면서 혁명동지들에게 의지한 결과 권력의 중심에서 자신의 욕망을 충분히 충족시킬 수

있었는데 세조가 죽은 후에도 자신의 사위인 성종을 왕위에 올리면서 한 시대를 풍미할 수 있었다.

간신이라기보단 사육신들의 배신자로 명성(?)이 높은 김질은 그 날의 선택으로 역사에 길이 이름을

남겼지만 사실 사육신들과 같은 선택을 할 수 있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고 대다수의 사람들은

자신의 안위를 선택하기에 그렇게 비난만 할 건 아니라고 얘기한다. 친일파의 대명사인 이완용이

독립협회의 회장을 지내고 독립문 현판까지 썼다는 충격적인 사실을 이 책에서 처음 알게 되었는데

이완용의 행보는 전형적인 기회주의자의 모습으로 당시 상황에선 그렇게 처신하는 사람들이 흔했고

이완용이 아니었어도 또 다른 기회주의자가 똑같은 행동을 했을 거라는 게 저자의 생각이다.

김자점과 더불어 조선시대 3대 간신이라는 임사홍과 유자광도 연산군의 부역자로 간신의 반열에

올랐지만 연산군이라는 시대의 군주와 나름의 사정이 있었다. 그리고 이순신 장군과 대비되는

원균도 정통성이 빈약한 무능한 군주 선조가 있었기에 간신이 될 수 있었다. 이 책을 읽다 보면

이 책에 나오는 9명의 간신이 모두 군주들과 시대의 산물이며 나름의 변명거리가 있음을 잘 알게

되었는데, '건강한 권력에서는 충신이, 병든 권력에서는 간신이 태어난다'는 말이 딱 맞았다.

부패한 권력에서 간신이 나온다는 사실을 새삼 깨닫게 되었는데 간신들에게 너무 면죄부를 준 게

아닌가 싶기도 했지만 간신의 탄생이 단순히 개인적 일탈이 아닌 구조적인 문제를 잘 지적한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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