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실 대출의 책임을 전부 떠안은 한자와의 통쾌한 복수극

한자와 나오키 1 - 당한 만큼 갚아준다 ㅣ 한자와 나오키
이케이도 준 지음, 이선희 옮김 / 인플루엔셜(주) / 2019년 6월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거품경제가 절정에 달하던 1988년에 취업전선에 뛰어들었던 한자와는 산업중앙은행에 합격한 후

세월이 흘러 은행 간 합병으로 탄생한 도쿄중앙은행 오사카 서부 지점의 융자과장으로 근무하던 중

지점장인 아사노가 무리하게 서부오사카철강에 5억 엔을 대출해주라고 했다가 부도가 나고 아사노가

모든 책임을 자신에게 떠넘기려 들자 한자와는 강력하게 반발하는데...  

'은행원 니시키 씨의 행방'과 '하늘을 나는 타이어'로 강렬한 인상을 남겼던 이케이도 준의 작품이라

정말 기대가 되었는데 이번에도 은행에서 벌어지는 부조리한 현실을 적나라하게 고발하며 부제처럼 '당한 만큼 갚아주는' 통쾌한 얘기를 들려준다. 직장생활을 하다 보면 온갖 인간군상들과 만나게 된다.

특히 어떤 상사를 만나느냐에 따라 직장생활의 명암이 달라질 수 있는데 이 책에 등장하는 아사노는

무늬만 엘리트 은행원이지 하는 짓은 완전 양아치라 최악의 상사라 할 수 있었다. 보통 공은 자기 몫이고

잘못은 부하 직원에게 떠넘기는 상사가 적지 않은데 자기가 5억 엔이나 되는 거액의 대출을 아무런

담보도 없이 해주면서 융자과장인 한자와가 제대로 심사할 시간도 주지 않았다가 사고가 터지자 모든

게 융자과장인 한자와의 잘못이라면서 떠벌리고 다니는 모습을 보면 내가 당하는 게 아닌데도 마치

한자와의 입장인 것처럼 치가 떨렸다. 보통은 정말 억울하지만 아사노가 인사권자여서 대놓고 잘잘못을

따지지는 못할 것 같은데 그냥 당하고 사는 성격이 아닌 한자와는 아사노에 맞서 자신이 모든

책임을 질 수는 없다고 버틴다. 게다가 대출받을 때부터 고자세로 일관하던 서부오사카철강의

사장은 배째라는 식으로 종적을 감추고 분식회계까지 하면서 대출을 받고 일부러 도산을 한 정황이

발견되어 한자와는 더욱 곤란에 상황에 처하게 되는데... 

이 책을 보면 정말 세상에는 나쁜 짓을 하고도 뻔뻔한 인간들이 참 많고 이런 인간들에게 억울한

피해를 당하는 사람도 참 많구나 싶은 생각이 든다. 자기 잘못을 부하 직원에게 전부 전가하는 악질

상사나 은행 돈을 빌려 계획 도산을 하고 빌린 돈을 빼돌려 흥청망청 쓰고 다니는 인간말종들에

맞서 진실을 밝히고 대출을 회수하려고 안간힘을 쓰는 한자와에게 저절로 감정이입이 되었는데

조금씩 증거를 모으고 악질들의 약점을 잡아 혼내는 상황에서 통쾌함을 느끼는 건 나만이 아닐

것 같았다. 법적인 단죄를 내리기보단 자신이 당한 대로 갚아주며 완전한 반전을 이뤄내는 한자와의

모습은 사실 현실에선 거의 불가능에 가깝지 않을까 싶었지만 그래도 답답한 현실과 막힌 속을

후련하게 해주는 사이다의 맛을 제대로 보여주었다. 처음 이 책의 제목을 봤을 때는 한자와가 

성인지는 모르고 한자라는 사람과 나오키라는 두 사람이 주인공인 줄 착각했는데 이케이도 준의 

필력을 다시 한 번 확인시켜준 작품이었다. 시리즈라 후속편들도 있는 것 같은데 다음 작품에선

한자와가 어떤 통쾌한 얘기를 들려줄지 벌써부터 기대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