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증거 범죄 추리의 왕
쯔진천 지음, 최정숙 옮김 / 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 2019년 4월
평점 :
절판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항저우시에선 3년 전부터 대놓고 자신을 잡아달라는 범인이 저지르는 연쇄살인사건이 벌어지지만

별다른 단서를 찾지 못하는 가운데 국숫집 아가씨를 희롱하던 동네 깡패가 칼에 찔려 죽는 사건이

발생한다. 우발적인 살인사건에 갑자기 등장한 남자가 완전범죄를 도와주고 연쇄살인사건을 맡은

자오톄민은 경찰을 그만두고 수학과 교수를 하고 있는 옛 친구 옌량을 찾아가 도움을 청하는데...

 

얼마 전에 중국 3대 추리작가 중 한 명이라는 쯔진천의 '동트기 힘든 긴 밤'을 읽었는데 중국 작가라곤

믿기 힘든 중국 사회의 부정부패를 적나라하게 고발하는 사회파 미스터리를 보여줘서 강렬한 인상을

받았다. 이 작품은 쯔진천의 추리의 왕의 시리즈 첫 번째 작품으로 중국판 '용의자 X의 헌신'이란 평이

있어 과연 어떤 작품인지 궁금했는데 히가시노 게이고의 '용의자 X의 헌신'과 유사한 설정이 있긴 하지만

전체적으로는 다른 내용과 전개를 선보였다. 사실 '동트기 힘든 긴 밤'이 추리의 왕 시리즈의 세 번째

작품이라고 해서 어떤 연결관계가 있나 싶어 확인해보니 형사 쟈오톄민과 형사 출신 수학과 교수

옌량이 콤비가 되어 사건을 해결한다는 공통점이 있었는데 '동트기 힘든 긴 밤'에선 워낙 사건의

당사자들이 강렬한 인상을 남겨 두 인물이 그리 부각되지 않아 기억에 남아있지 않았다. 이 책에선

우발적으로 깡패를 살해한 주후이루와 그녀를 짝사랑하는 궈위를 도와주는 전직 법의관 출신인

뤄원이 활약이 단연 돋보인다. 사실 생면부지인 살인사건의 범인들을 도와 위험을 무릅쓰고 완전

범죄를 만드는 뤄원의 행동이 잘 이해되진 않았지만 전직 최고의 법의학자답게 경찰이 어떻게

나올지를 예상하고 가짜 알리바이를 만들면서 각종 증거를 조작해대니 쟈오테민이 이끄는 수사팀이

애초부터 이들을 용의선상에서 배제할 수밖에 없었다. 물론 수사팀 중 한 명이 주후이루의 반응에

의문을 갖고 의심을 품지만 알리바이와 여러 증거들이 그녀가 범행을 저지를 수 없음을 보여주면서

결국 자신의 생각을 포기하고 마는데, 옌량이 사건에 개입하면서 뤄원이 짜놓은 큰 각본은 여기저기서

무너지기 시작한다. 뤄원이 주후이루와 궈위에게 어떻게 처신할 것인지까지 철저히 교육을 시켜서 

아무런 직접증거가 없는 상태다 보니 끝까지 모르쇠로 일관하면서 잘 버티면 무사히 넘어갈 수도

있을 것 같았지만 이 사건을 다원 5차 이상의 방정식을 푸는 것처럼 대수적으로 풀지 않고 역대입의

방법으로 접근해서 뤄원을 용의자로 직감한 옌량이 설치한 덫에 뤄원은 알면서도 스스로 걸려들고

만다. 뤄원에게 있었던 일과 이를 해결하기 위해 그의 능력을 최대한 발휘해 일으킨 커다란 그림은

결국 진실이 세상에 드러나게 만들지만 그가 지키려고 했던 사람들은 끝내 지킬 수가 없었다. 

이런 사태까지 이르게 된 여러 상황들이 좀 안타까웠지만 아무리 사연과 이유가 있어도 범죄는

범죄일 수밖에 없으니 씁쓸함을 남겨주는 결말이라 할 수 있었다. 이 책을 보면 중국의 수사가 아직

후진적임을 여실히 알 수 있었는데 잠을 안 재우고 계속 수사를 하거나 영장 없이 수사할 수 있는

시간 제한을 피하는 편법을 쓰는 등 중국의 문화가 선진국이 되기엔 멀었음을 잘 알 수 있었다. 

연쇄살인사건에 지문이 분명히 발견되었음에도 범인이 누군지를 모르는 걸 보면 우리처럼 모든

사람이 지문등록을 하는 시스템이 없다는 건데 중국이 인권을 존중해서 그럴리는 없고 너무 인구가

많고 시스템이 후진적이며 산아제한 등으로 출생신고를 하지 않아 국가가 알지 못하는(?) 사람들이

너무 많아서 그런 문제가 발생하는 것 같다. 암튼 이 책은 누가 범인인지가 중요한 게 아니라 범인이

왜, 어떻게 이런 범행을 저질렀는지가 중요한 작품이었는데 '동트기 힘 든 긴 밤'에 이어 쯔진천의

위력을 충분히 확인할 수 있었다. 두 작품밖에 안 읽었지만 쯔진천도 내가 믿고 볼 수 있는 작가

목록에 이름을 올리기 충분했는데 그의 다른 작품들도 조만간 만나볼 수 있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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