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뢰 이동 - 관계·제도·플랫폼을 넘어, 누구를 믿을 것인가
레이첼 보츠먼 지음, 문희경 옮김 / 흐름출판 / 201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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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과학기술의 발달로 사람들 사이를 연결해주는 수단은 엄청나지만 정작 사람들 사이의 신뢰는

그리 높지 않은 것 같다. 오히려 정부를 비롯해 각종 공공기관들의 신뢰도는 갈수록 하락해 거의 바닥을

치는 수준이라 신뢰라는 말을 꺼내는 것조차 민망할 지경인데 이 책에선 신뢰가 어떻게 진화해왔으며

앞으로의 신뢰는 어떻게 형성될 것인지에 대해 상당히 진지한 고찰을 하고 있다.

 

먼저 신뢰의 측면에서 인간의 역사를 크게 지역적 신뢰의 시대, 제도적 신뢰의 시대, 분산적 신뢰의

시대로 나누고 있다. 지역적 신뢰의 시대는 모두가 서로를 아는 소규모 지역 공동체에 살던 시대이고,

제도적 신뢰의 시대는 신뢰가 계약과 법정과 상표 형태로 작동해서 지역 공동체 안의 교환을 벗어나 조직화된 산업사회로 발전하기 위한 토대가 구축된 일종의 중개인 신뢰의 시대를 말하며, 마지막으로

분산적 신뢰의 시대는 우리가 막 그 초기 단계를 살고 있는 현재인데 공유경제의 폭발적인 성장이 바로

분산적 신뢰가 작동하는 대표적인 예다. 이렇게 분산적 신뢰에 대한 본격적인 논의에 앞서 신뢰의

중요성을 여러 사례를 통해 얘기하는데, 중국을 대표하는 인터넷 기업 알리바바가 중국의 오래된 문화인

'관시'를 깨뜨렸다는 놀라운 얘기를 들려준다. 조정래 작가의 '정글만리'에서 중국의 적나라한 '꽌시'

문화를 알게 되었는데 그런 '관시'도 시스템에 대한 신뢰를 구축함으로써 뛰어넘을 수 있었다는

사실이 놀라울 따름이었다. 하지만 신뢰는 쌓기는 어려운데 무너지는 건 한 순간이다. 2008년

세계적인 금융위기를 비롯해 다양한 엘리트 집단에 대한 신뢰의 추락은 제도적 신뢰가 추락한

반증이라 할 수 있는데 그 공통된 원인으로 책임의 불평등, 격리된 반향실, 엘리트와 권위자의

쇠퇴기를 들고 있다. 일부 엘리트 집단이 독점하던 신뢰가 분산된 분산적 신뢰의 시대가 가능한

세 가지 조건으로는 새로운 개념에 대한 신뢰, 플랫폼에 대한 신뢰, 타인이나 봇에 대한 신뢰를

제시하면서 각각에 대해 에어비앤비나 우버 등 구체적인 사례를 통해 설명을 한다. 이 책을 읽는

내내 감탄했던 부분은 막연하게만 생각되는 신뢰라는 개념을 이렇게 논리와 체계를 갖춰 풍부한

사례들을 곁들여 설명해내는 저자의 탁월한 능력이었는데 특히 충격적인 내용은 중국의 시민점수에

관한 내용이었다. 국가 차원에서 모든 사람들의 신용점수를 매기겠다는 놀라운 발상은 중국이라는

나라에서나 가능한 일이라 할 수 있었는데 현재는 사람들이 자율적으로 참여하는 단계지만 2020년

까지 의무화된다고 하니 그야말로 조지 오웰의 '1984'에 나오는 빅 브라더의 등장이라 할 수 있었다.

웃기는 사실은 정상적인 자유민주주의국가에서라면 국가의 통제와 감시로 난리가 났을 일임에도

중국인들은 시민점수에 따른 혜택에 눈이 멀어 오히려 이런 제도에 적극 참여하고 자신의 점수를

높이기 위해 혈안이라는 점이다. 인터넷 등에서 빅데이터를 이용해 맞춤형 서비스를 제공하는 걸

보면서 참 편리해졌다는 생각이 들면서도 내 개인 정보가 일거수일투족 제공되고 노출된다는

불안감도 없지 않은데 은행 등 금융기관에서나 하는 신용평가를 정부에서 금융은 물론 모든 언행을

평가해 점수를 매긴다니 섬뜩하기 짝이 없었다. 중국에서나 일어날 수 있는 일이라고 치부하기엔

여러 개인 정보 수집에 대해 안이하게 생각하고 있는 게 아닌가 싶은 생각도 들었는데 2020년 이후

중국에서 어떤 일들이 일어나는지 주목해봐야 할 것 같다. 분산적 신뢰의 시대에는 인공지능이나

블록체인 기술 등 우리가 신뢰해야 할 대상 자체가 급격한 변화를 맞게 된다. 비트코인 광풍이

지나가면서 암호화폐에 대한 신뢰 자체가 많이 떨어지긴 했지만 블록체인 기술이 대세가 되는 것을

거스를 수는 없을 것으로 보여 과연 분산적 신뢰의 시대에 신뢰가 어떤 모습으로 작용할지 귀추가

주목된다. 이 책을 읽다 보니 막연하게만 생각되던 신뢰가 상당히 구체적인 형태를 지닌 것처럼

느껴질 정도였는데 신뢰를 얻는 방법에 대한 자기계발서만 생각하다가 신뢰라는 추상적인 개념에

대해 흥미로운 사례들을 바탕으로 진지한 고찰을 통해 일목요연하게 잘 정리해낸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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