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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어왕 ㅣ 한국외국어대학교출판부 지식출판원(HUINE) 셰익스피어 전집 9
윌리엄 셰익스피어 지음, 고현동 옮김 / 한국외국어대학교출판부 지식출판원(HUINE) / 2018년 11월
평점 :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셰익스피어의 4대 비극 중 하나인 이 책은 어릴 때 아동용으로 봤던 기억이 어렴풋하게 남아있지만
'햄릿' 등 다른 작품에 비해 상대적으로 매력이 떨어지는 면이 없지 않아서 성인이 되어서 다시 읽을
기회가 쉽게 오지 않았는데 최근 연이어 셰익스피어의 작품들을 만날 기회가 생기면서 이 책과도 만나게
되었다.
얘기는 리어왕이 세 명의 딸들에게 왕국을 셋으로 나눠 물려주기로 하면서 세 딸들에게 자신을 얼마나
사랑하는지를 말해보라고 하는 걸로 시작한다. 큰 딸 고너릴과 둘째 딸 리건은 온갖 미사여구를 동원해
아버지를 사랑하는 것처럼 달콤한 말을 늘어놓아 리어왕에게 합격점을 받지만 막내 딸 코딜리어는
자식된 도리로 아버지를 사랑하는 것 외엔 더 할 말이 없다고 리어왕의 분노를 사고 만다. 결국 리어왕은
아첨을 한 두 딸에게 나라를 나눠주고 아첨을 하지 않은 코딜리어는 쫓아내다시피 그나마 코딜리어의
진면목을 알아본 프랑스 왕이 데려가게 한다. 보통 부모가 재산이나 권력이 있어야 그나마 자식들이
상속받기 위해서 효도하는 척이라도 하는데 리어왕은 어리석게도 자신의 모든 권력과 재산을 겨우
얼마나 사랑하는지 말로 표현하는 걸로 판단해 진짜 자신을 사랑하고 아끼는 막내 딸 코딜리어의 맘은
전혀 알아보지도 못하고 간사한 말로 환심을 산 고너릴과 리건에게 모든 걸 물려주고 만다. 이후의
얘기는 어떻게 보면 너무 진부하다 할 수 있을 정도로 더 이상 아무것도 줄 게 없는 리어왕은 두 딸에게
찬밥 신세가 되고 배신감에 충격을 받은 리어왕은 결국 광야를 헤매면서 미치광이가 되고 만다.
여기에 마치 쌍둥이처럼 똑같은 일이 글로스터 백작의 집안에서도 일어나 서자인 에드먼드의 농단에
속아넘어간 글로스터 백작은 큰 아들 에드가를 오해해 그가 목숨을 건지기 위해 도망가게 만들고
에드먼드가 그의 후계자 자리를 차지하게 된다. 상황이 이 지경에 이르자 프랑스 왕비가 된
코딜리어는 남편과 함께 아버지를 배신한 두 언니를 응징하러 전쟁을 일으키지만 에드먼드의 활약으로
패배를 당하고 오히려 포로 신세가 되고 만다. 그 전에 리어왕과 코딜리어가 눈물의 재회를 하지만
후회해도 이미 너무 늦고 말았다. 결국에는 악인들이 모두 죽음으로 대가를 치르긴 하지만 에드가
외엔 선한 사람들도 죽음을 피하지 못해 그야말로 비극이라 할 수 있던 작품이었다. 작품해설을 보면
당시 제임스 1세가 스코틀랜드와 잉글랜드의 왕위를 모두 승계하면서 두 나라가 하나로 합쳐지는
상황에 대한 우려와 긴장감을 담아냈다고 하는데 그것보단 인간이 진실하지 못한 말에 현혹되어
얼마나 어리석은 판단과 결정을 할 수 있는지를 잘 보여준 작품이라 할 수 있었다. 가족 내에서
벌어지는 암투와 갈등은 요즘 막장 드라마에서 즐겨 사용하는 소재들이라 어쩌면 이 작품이 우리
막장 드라마의 원조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듯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