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대한 유산>. 그 유산은 무엇일까. 그 수식어인 '위대한'이 가리키는 것은 무엇일까? 엄청난 재산일까? 매우 가치 있고, 훌륭한 유산 (heritage)일까? 그 유산을 모으는 과정이 숭고했을까? 아니면, 그 유산을 남기려는 사람이 위인에 버금가는 것일까? 나에게 '유산'이라는 것은 동산과 부동산을 포함한 재산이라는 의미가 강해서 대문호 디킨스의 제목에서 무엇을 찾기는 힘들었다.
나에게 해석과 공감에 대한 희망적인 단서를 제공해 준 것은 한글 제목 아래에 있는 원제였다. Geat Expectations. 유산의 원제에 해당하는 것은 재산을 나타내는 inheritance도 아니고 문화 유적 같은 heritage 도 아니었다. Expectation. 기대였다. 물론 고어로 물려받을 재산에 대한 전망 또는 예상의 세 번째 뜻이 있었지만, <위대한 유산>이 19세기 초부터 중기까지의 배경을 가진다고 해도 세 번째는 무리가 있자. 주인공 핍부터 미스 해비셤, 매그위치, 조, 비디, 에스텔러를 비롯한 굴곡진 인생과 강한 개성을 가진 인물들 제대로 그려낼 동력으로는 무리가 있어 보인다는 말이다.
Expection (ref: Google Oxford Dictionary)
1. a strong belief that something will happen or be the case in the future.
2. a belief that someone will or should achieve something.
3. ARCHAIC, one's prospects of inheritance.
<Great Expectations>
원제를 따라가면, <위대한 유산>은 수동적으로 소망하는 희망이나 꿈보다는 능동적으로 준비하고 행동해서 이제 곧 그 결과로 일어날 일에 대한 "기대"의 이야기이다. 하지만, 그 기대는 아름다운 것이 아니다. 누구에게는 허황된 것이었고, 누구에게는 세상에 대한 복수였고, 또 누구에게는 슬픈 바람이었다. 우리 인생의 슬픈 면 쪽에 놓여있는 좀처럼 이루어지기 힘든 기대이다. 이제 이 '기대'를 마주해보자.
<위대한 유산>은 기대를 2차원으로 다룬다. 하나는 주인공 핍의 성장기를 흘러가는 시간이고, 다른 하나는 이 소설에 등장하는 총천연색의 '인물'이다. 두 개의 차원 중 흘러가는 '시간'에 따라 '인물'들의 '기대'는 그 라이프 사이클 (lifecycle)의 각 단계들을 거쳐 자라나고 커지고 변형되고 소멸된다.
핍의 성장기는 크게 세 개의 시기로 나누어진다. 핍이 누나와 매형과 함께 행복했지만, 가난하고 비천하게 살아갈 때와 엄청난 재산을 물려받을 예정으로 젠틀맨 수업을 받는 시기, 그리고 그 엄청난 재산을 물려줄 사람이 전혀 예상하지 못한 인물로 밝혀지며 그 인물로 인해 모든 것이 처음 보다 못한 상태로 전락하는 시기로 나누어진다. 그 시간의 흐름에 따라 각 인물들의 '기대' 속으로 들어가 보자. 우리의 주인공은 마지막으로 다루어보고 말이다.
조 가저리
주인공 핍의 누나의 남편이다. 즉, 매형이다. 조가 핍의 누나에게 구혼할 때, 핍의 누나가 일찍 부모를 잃어 나이 차이가 많이 나는 핍을 '손수' 키우고 있다고 하니, 따뜻하게 핍을 가족으로 맞을 수 있다고 말하며 핍의 누나와 결혼한다. 그는 세상 그 어떤 것보다 부드러운 손을 가졌지만, 금방의 그 누구도 떼려 눕힐 수 있는 강인한 손도 동시에 가졌다. 그의 논리적으로 보이려는 말투를 보면 알 수 있듯이 그는 아주 조금 모자라다. 아들 뻘인 핍을 그런 모자람, 부드러움, 강인함 그리고 사랑으로 친구처럼 대하며 이 세상에 딱 한 쌍인 단짝처럼 핍과 살아가고 있다.
그의 기대는 무엇일까? 이 소설에서 가장 순수하고 순결하고 아름답다. '사랑하는 핍 내 친구야'라고 말하는 대상인 '핍'과 언제나처럼 행복하게 사는 것이 조의 기대이다. 자신을 업신여기고 폭주기관차처럼 화내기 일쑤인 아내와 오두막 같은 그 작은 집에서 대장장이로 그리고 핍은 자신의 도제로 그냥 사는 것이다. 어쩌면, '평범하게 사는 것'이 디킨스의 불우했던 자신의 어린 시절부터 담은 그의 자전적 소설의 주제가 아닐까라고 생각한다.
사실, 등장인물 모두가 '평범하게 사는 것'으로 수렴해간다. 즉, 소설 속의 인물이 될 만큼 굴곡지고, 아픔과 분노가 있는 삶에서, '평범한 삶'으로 수렴하면서 이제는 더 이상 소설 속에 등장할 필요가 없는 인물로 귀화한다. 그런데 이 평범은 '보통이면 돼'라는 말처럼, 참 어려운 것 같다.
조 가저리의 기대를 제일 먼저 이야기한 것은 '주제'를 두괄식으로 나타내려고 한 것은 아니다.
핍이 조와 비디를 영원히 남겨두고 엄청난 재산을 상속받을 예정으로 젠틀맨 수업을 받기 위해 런던으로 떠나며 자신의 가난, 자신의 여인, 자신의 신분을 위해 앞을 보고 나아갈 때, 조는 마치 우리의 부모님처럼 아무런 바람 없이 그 자리에 그대로 핍에 대한 사랑과 우정의 변함없이 서 있었다. 그리고 핍이 나락으로 떨어졌을 때, 묵묵히 나타나 변함없이 그를 간호하고 위로하며 조에게는 평생 모은 것 같은 돈을 모두 털어 핍의 빚까지 말없이 갚았다. 조건 없는 사랑을 보며 부모님을 생각했고, 이제는 내가 그들처럼 그 역할들을 해나가야 하고 해나가려고 노력하고 있지만, 아직은 나에게는 이른 시간이라고 생각하니, 그리고 나와 같이 나의 부모님도 그렇게 때 이른 '해야 함'에 속상한 궁핍을 느꼈을 것을 생각하니 뜨거운 눈물이 솟았다.
미스 해비셤과 에스텔러
그녀는 그녀의 피앙세가 나타나진 않은 9시 20분으로 모든 것을 박제한 채, 양녀 에스텔라를 이 세상 누구보다도 아름답게 키워 '남자'들에게 복수하려는 일념으로만 살아간다. 기괴하고 괴팍한 이 미스 할머니는 차가운 불꽃같은 복수로 인생을 살아간다. 인생을 단 하나의 그릇된 목표로 살아가며 늙어버린 미스 해비셤을 보며, 그녀가 따스해지기를 간절히 바랐다. 아무것도 모른 채 입양되어 재산 상속의 암투 속에 살아간 에스텔러도 차가움만이 가득했다. 결국, 둘은 따스함을 되찾지만, 모든 것이 다 지나가버린 후였다. 그들은 자신들의 모습을 보는데 아주 많은 인생의 시간이 걸렸다.
매그위치
그는 평생 감옥을 들락거렸다. 그 누구도 그에게 따스하게 손을 내밀어 준 사람은 없다. 손을 내민 자는 콤피슨으로 미스 해비셤의 시계를 멈추게 한 사기꾼이었다. 매그위치도 콤피슨 때문에 감옥선에 가게 되었고, 탈옥 중 만난 아이가 핍이다. 인생에서 그에게 음식과 어려움을 극복할 도움 (쇠고랑을 자를 줄칼을 핍이 주었다)을 준 사람은 핍 뿐이었다. 그래서 그의 기대는 핍을 세상 최고의 젠틀맨으로 만드는 것이었다. 매그위치 또한 미스 해비셤처럼 단 하나의 목표로 인생을 살았다. 추방령을 어기고 영국으로 돌아와 자기 인생 목표의 화신인 핍과 함께한 시간을 보니, 그가 무척 애처로웠다. 핍은 자신이 받게 될 엄청난 재산과 그 재산으로 올라가게 될 지위가 모두 매그위치로부터 기인한 것임을 알고, 절망에 빠진다. 한 사람은 자기 꿈의 화신을 봐서 행복하고 한 사람은 자기가 곧 이루게 될 인생의 꿈이 그 바닥부터 잘 못 쌓아 올린 것을 알고 절망한다. 마치 아버지와 아들이 화해하듯이 둘은 화해하고 서로를 위하지만, 그 또한 남겨진 시간이 너무 없었다. 매그위치를 국외로 보내려다 실패하고 그는 사형이 결정되었으며, 도주 중 체포 과정에서 큰 부상을 입은 매그위치는 병원에서 죽고 만 것이다. "얘야, 핍" 이라는 그의 다정한 말이 '다정하지만, 너무 늦어버린' 목소리들을 생각하게 했다.
핍
핍은 이 책의 주인공이다. 한 번도 인생을 살아본 적이 없는 사람의 이야기이다. 앞으로의 인생에 대해 말해줄 사람이 없었다. 핍은 어려서 부모님이 돌아가셨고, 괴팍한 누나에게 '손수' 길러졌고, 친구는 조뿐이었고, 제대로 된 선생님이라고는 또래의 비디뿐이다. 누구에게 인생에 대해 안내받기 전에 무작정 그의 인생에서 소설 같은 일들이 일어난 것이다.
가난과 비천한 신분을 벗어나가고 싶었고, 아름다운 에스텔러와 이어지고 싶었고, 젠틀맨이 되고 싶었고, 친구 허버트가 혼자 설 수 있기를 바랐고, 자신에게 주어질 막대한 재산을 빨리 받고 싶었다. 엄청난 재산을 줄 사람이 자신이 도와준 탈옥수 매그위치라는 것을 그가 찾아온 날 알게 되었을 때, 모든 것이 무너지는 절망감을 느꼈지만, 이제 그의 기대는 그 매그위치를 안전하게 영국 이외의 나라로 탈주시키는 것이었다. 그리고 부상당한 매그위치가 회복되기를 바랐다. 마지막엔 비디와 결혼을 꿈꾸지만, 그것도 너무 늦었다.
이 이야기의 끝은 고요한 '일상'으로 귀화하는 것이다. 허버트와 함께 회사를 키워나가며 가끔 조와 비디 부부에게 놀러 가는 아무런 소설의 소재도 찾을 수 없는 말 그대로의 일상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위대한 유산> 속 많은 인물들은 의도하고 또 그것을 성취하기 위해 지독하게 준비하고 인내한다. 그런 인물들과 비교했을 때, 핍은 모든 것들이 행운이라는 가면을 쓰고 우연히 찾아왔다. 무덤 근처 어린 시절의 집과 그 집의 조와 누나 그리고 비디를 제외하고 말이다. 원래부터 속하고 가지고 있던 것들을 제외하고, 행운처럼 찾아온 것들은 모두 깊은 상처를 내고 사라져 버린다. 자기에게 걸맞지 않은 것은 결국 재앙이 된다는 이야기일까? 그렇지 않다. 디킨스가 전하고 싶은 것은 행운처럼 찾아온 것들에 눈이 멀어 지금 내게 - 내가 비록 인지하지 못하더라도 - 소중한 것들을 뒤로한 채 그 행운을 쫓는 나방이 되지 말라는 것 같다.
우리는 지금도 어떤 의도된 것들을 위해 살아가고 있다. 그리고 불현듯 찾아오는 인생의 변곡점에서 선택의 기로에 놓이고, 그 기로에서 어제까지의 나를 먼 과거의 지층으로 묻고 새로운 현재를 과거로 만들어가며 다가올 미래를 기대한다. 이것은 성장하고 발전하는 것과는 다른 맥락이다. 어떻게 구별할까? 핍처럼, 그 이전의 과거에 나를 둘러싼 것들에 미안함과 안타까움 그리고 돌이킬 수 없음을 느낀다면, 그렇다면 우리는 핍처럼 그 바닥부터 잘 못 쌓인 위대한 유산을 기대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또 돌아보게 된다.
References
Wikipedia - Great Expectations
https://en.wikipedia.org/wiki/Great_Expectations
Wikipedia - David Copperfield
https://en.wikipedia.org/wiki/David_Copperfield
알라딘 - 데이비드 코퍼필드
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8801063
Significance of the Title of Charles Dickens's “Great Expectations”
http://www.literary-articles.com/2010/02/significance-of-title-great.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