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액체 현대
지그문트 바우만 지음, 이일수 옮김 / 필로소픽 / 2022년 4월
평점 :
지그문트 바우만은 1925년, 폴란드 제2공화국의 포즈난에서 유대교를 맹신하지 않는 폴란드 유대인 가정에서 태어났습니다. 1939년에 폴란드가 기습적으로 나치 독일의 공격을 받았을 때, 그의 가족은 동쪽으로 이주를 하게 됩니다. 제2차 세계 대전 중 바우만은 소련이 통제하는 폴란드 제1군에 스스로 입대하여 정치 간부로 일하기도 했는데요. 그와중에 바우만은 콜베르크 전투와 베를린 전투에도 참전하게 됩니다. 이런 군사적 공로로 1945년 5월, 바우만은 용맹십자훈장을 받습니다. 폴란드 국가기록연구소 (IPN)에 따르면, 그는 1945년부터 1953년까지 우크라이나 반군과 폴란드 국토군 잔당을 소탕하기 위해 창설된 군사 정보 부대인 내부 보안대 (KBW)의 정치 장교이기도 했는데요. 이때의 이력은 평생동안 그를 따라다니게 됩니다. 이미 영국 가디언지와의 인터뷰에서 그는 제2차 세계 대전 중과 그 이후에도 자신이 공산주의자였다는 사실을 숨기지 않았다고 밝혔는데요. 이때의 이력은 어느 정도 베일에 가려져 있기도 합니다. 이렇게 그가 내부 보안대에 근무하는 동안 부친이 이스라엘로 이주하기 위해 바르샤바 주재 이스라엘 대사관에 접근한 후, 갑자기 불명예 제대에 이르게 되는데요. 바우만은 부친의 시오니즘적 성향을 공유하지 않았고, 실제로 강한 반시오니스트였기 때문에 갑자기 군에서 쫓겨난 이후, 충격을 받기도 했습니다. 군에서 제대한 이 시기 동안, 그는 석사 학위를 취득했고 1954년에는 바르셔바 대학의 강사가 되어, 1968년까지 대학에 머무르게 됩니다. 언급된 1968년에는 폴란드에서 큰 정치적 위기가 발생하게 되는데요. 결국 같은 해, 3월 바우만은 교수직을 잃게 됩니다. 그런 연유로 1968년에 그는 이스라엘 텔아비브 대학에서 강의하기 위해 조국인 폴란드를 떠나게 됩니다. 2년 뒤인, 1970년에 영국으로 건너가 리즈 대학에서 석좌 교수로 임용되고, 몇 차례의 논문 발표로 인해 영국 학계에서는 큰 명성을 얻게 됩니다. 이런 그의 학문 활동으로 말미암아 1990년대 후반부터 일기 시작한 반세계화 운동과 그의 대안으로써의 정치철학적 요구에 바우만은 큰 영향을 끼치기 시작합니다. 바우만은 평생에 걸쳐, 금융 자본주의에 따른 노동자 계층의 붕괴, 신자유주의에 대한 비판적 분석, 공동체 개념의 공동화, 전반적 사익 추구에 따른 사회의 식민화에 큰 사명을 갖고 연구를 지속해 나갔는데요. 바로 그의 사상적 원류가 된 '액체 근대', 혹은 '유동하는 근대'를 잇게한 이 논저는 원제, "Liquid Modernity"로 지난 2000년에 출간되었고, 국내에도 초도 번역은 같은 해인 2000년에 이뤄졌으나 현재는 절판되었고, 최근인 2022년, 다른 출판사에 의해 개정판이 나오기에 이릅니다. 다만 개정판 역시, 역자는 동일합니다.
2012년에 나온 개정판 서문이 실려 있는 이 논저는, 오늘날 세계 각국에서 벌어지고 있는 여러 문제들에 대한 본질적 고찰을 담고 있습니다. 특히, 계몽주의적 함의가 포함되었던 예전의 '단단한 근대' 혹은 '고체 근대'가 상실한 사회적 기반 등을 설명한, '액체 근대'라는 설명은 당시 어느 사회학자들조차 개념화하지 못한 이론이기도 한데요. 예전의 근대가 어느 정도 인간 해방의 목적성을 자의반 타의반 갖고 있었다면 보다 추상적이고 복잡해진 인간 해방의 담론과 더불어, 자본주의가 우리 일상으로 녹아들면서, 스스로 노예가 되는 삶에 대한 바우만의 비판적 접근은 충분히 우리 시민들에게 깨달음을 전해준다고 볼 수 있습니다. 먼저 이 점은 앞선 자본주의적 이행 내지는 신자유주의적 담론의 구축이 도출한 "모든 책임은 개인의 문제다"라는 전지구적 엘리트들과 신자유주의자들이 원했던 사회 체제적 이행에 이익으로 작용했다는 점에서, 이러한 전반적 인식은 그 자체로 불행하다고 볼 수 있겠는데요. 저는 총체적인 사익화 과정과 그에 따른 개인주의와 개인화가 뉴딜 이후의 복지 국가를 철회하면서 더 많은 자본의 이익을 거두기 위해, 국가에 로비를 한 자본가의 책임인지 아니면 자유주의가 보수주의와 결탁해, '자신의 삶을 통제하는 것은 오로지 스스로의 몫'이라는 변형된 자유주의의 맥락 때문인지는 단언을 내릴 수는 없는데요. 다만, 오늘날의 이 첨예한 경제적 불평등이라는 사회적 모순과 이것의 대안이 원천적으로 '개인'이라는 이데올로기에 막혀 있다는 점에서, 여기서 말하는 바우만의 집중적이고 누군가 보기에 따라 편집증적으로 느껴지는 대다수의 진술들이 얼마나 설득력을 갖고 있는지 누구나 인식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엘빈 토플러의 축약된 주장처럼, 이런 거대한 흐름은 우리의 삶을 완전히 뒤바꿔 놓았다고 볼 수 있겠습니다.
우리가 이미 과거의 유산을 간접적으로 체험하고 인식했던 것처럼 근래의 '액체 근대'는 가벼움과 불확실성을 내포하고 있다고 여겨집니다. 이는 뉴딜 시대의 자본가와 노동자의 결합을 유기적으로 더 강화한 큰 정부의 존재도 그렇거니와, 기존의 체제가 차츰 후퇴하게 됨으로써, (경제적 요소를 포함한) 사회적 우위가 어디에 위치해 있는지 명확해 졌다고 봐야 합니다. 즉, 바우만의 분석대로라면 부와 권력을 가진, 소위 상위 계층 혹은 지배 계급은 여전히 자신들의 자원을 바탕으로 '딱딱하고 균질한, 거의 흔들리지 않는 근대'를 몸소 체험할 수 있으나 그렇지 않은 다른 계급과 일반 시민들은 과거 근대가 약속했던 사회적 이행과 그에 따른 공동체적 이익, 그리고 삶의 온존이 전반적으로 철회된 느낌을 받을 것입니다. 앞선 엘리트들의 면모는 2장의 '개인성'에서, "자원을 갖춘, 선택의 기술에서는 가히 장인이라 할 엘리트들의 사는 방식"으로 묘사되기도 합니다. 선택의 자유에 대한 확신을 갖고 있었던 밀턴 프리드먼이 보기에도 저런 모습은 가히 전형적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여기에 더해 바우만은 1장에서, "개인이 지배하는 세상에서는, 당신이 인생을 살고 일을 수행할 때 따를 만한 범례를 다른 개인들에게서 가져올 수 있을 뿐이며, 다른 예들이 아닌 바로 그 예를 신뢰하여 선택함으로써 얻은 결과에 대해서는 자신이 온전하게 책임을 떠맡아야 한다."고 에둘러 증언하고 있는데요. 바로 이 지점에는 1장에서 주요한 관점으로 논증되어, "오늘날의 현대는 해방 작업을 중간 계층과 밑바닥 계층에게 넘겨주는 의무 말고는, 그 어떤 '해방' 의무도 짊어지지 않은, 일종의 머리가 가벼워진 근대이다."라고 설명하는 이유를 드러내고 있습니다. 즉, 오늘날 사회적 지배 계급은 인간 해방에 대해 별반 관심이 없으며, 오로지 철저하게 자신들의 자원을 유지하고 사용하여, 자본주의가 원치 않게 초래할 수 있는 불확실성과 유동성을 방지하는 데 온힘을 기울이고 있다는 점을 반증하는 것으로 이해할 수도 있습니다.
다시금 여기서 강조할 만한 것은 개인화는 하나의 정해진 운명이지 선택이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이것은 마치 자본주의가 만든 일종의 신념과도 같은 부분입니다. (물론 이 진술은 어느 정도 디스토피아적 결말을 담고 있습니다) 또한 이는 "법률상으로 개인이 된다는 것은 그 개인의 비극에 책임을 질 다른 사람이란 없고, 개인의 실패는 오직 그 자신의 방만함과 태만에 원인이 있으며, 죽어라 노력하는 수밖에 다른 도리가 없다는 뼈저린 깨달음"으로 귀결되기도 하는데요. 이러한 개인성과 개인화를 뒷받침하는 것이 바로 우리에게 익숙한 합리주의이며, 근본적으로 강고했던 이런 메커니즘은 지금도 역시, 흔들림이 없는 형태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저에게는 뒤이어 나오는 '사익에 의한 공익의 식민지화'라는 표현이 실질적으로 크게 와닿게 되었습니다. 마찬가지로 2장에서 보여지는 액체 현대의 진면목이자 큰 본질인, '마거릿 대처의 저 악명 높은 구호'도 빼놓을 수가 없을 텐데요. 그녀의 '사회 같은 것은 없다'는 말은 바우만의 분석대로, 변화하는 자본주의 속성에 대한 기민한 통찰인 동시에 의도성이 있는 선언이자 자기 실현적 예언이라는 목적에 비로소 이어지게 됩니다. 우스개 소리로 과거 마거릿 대처가 얼마나 루퍼트 머독의 영향력 하에 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앞선 논리들을 그저 정치적 풍문으로만 치부될 수는 없을 겁니다. 신자유주의에 대한 신념이 대처와 레이건에게 얼마나 가능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이것은 바우만의 통찰대로, 이전에 볼 수 없었던 '새로운 결탁'임은 거의 분명해 보이니까요.
이미 슬라보예 지젝도 예견했던 바대로 우리가 지나온 이 시대는 과거나 지금이나 여전히 강력한 자본주의적 소비 사회에 포획되어 있습니다. 바우만의 유작으로 여겨지는 '레트로토피아'에서도 그랬고, '소비하는 삶'을 비평한 다른 논저에서도 그렇듯, 이미 시민으로서의 삶과 소비를 하는 개인으로서의 소비 중심주의의 양 경계가 무너졌고 오로지 자본주의가 요구하는 가치 실현과 소비적 덕목에만 집중하는 오늘날 개인들의 모습을 서술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다른 한편으로 앞서, 침중한 의미의 "공익이 사익의 식민지화'에 이르렀다는 것을 빗대어 말하는 것으로도 여겨지는데요. 이를 다른 시선에서 봤을 때, 콜린 크라우치가 경고했던대로 우리의 민주주의가 신자유주의의 시녀가 되었다는 점은 명백하고, 이렇게 도출되는 결론도 앞선 진술과 거의 일맥상통합니다. 이런 소비적 시대의 메타포이기도 한, "소비적 세상에서는 인간에게 가능성이 무한히 열려 있고, 매물로 나와 있는 매력적 목표들이 끝없이 이어진다"는 메시아적 일례들과 연결된 이 다음의 논증들은 우리가 얼마나 일방적이고 무비판적인 시대에 몸을 담고 있는지 여실히 깨닫게 해주는데요. 우리가 겪는 삶의 경주에서 소비가 주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이것을 바탕으로 자본주의가 더 강한 권력을 유지한다는 점, 그리고 그와 동시에 자본이 이익을 산출하고 있다는 부분은 앞으로 미래의 수십 세대가 여전히 맞이할 세계로도 읽힙니다. 일전에도 바우만 소비와 개인의 자아 실현이 자본주의 하에서 어떻게 맞물려 있는지 논증한 바가 있었는데요. 이처럼 사적인 영역에서의 자아 성취가 삶의 주요 목표가 되었으며, 이러한 맥락의 발전 과정은 시대를 넘어 더욱 강화되어 왔다고 생각합니다. 단순한 소비 그 이상으로 말이죠.
이처럼 정복자의 시선으로 바라보는 근대, 그것이 주가 된 근대의 유동성은 그저 외연을 가진 허울 좋은 실체로만 작용되는 것이 아닙니다. 다수의 개인들에게는 역설적이게도 쫓고 쫓기는 게임이 되는 것은 분명 예정된 일이고, 2장과 3장에 걸쳐, 증명되는 가운데, 소비와 소비주의가 이끄는 일종의 '게임의 룰'이 인간의 정체성에 혼란을 가하는 것을 넘어, 어느새 우리도 모르게 매달리게 된다는 점은 꽤나 두려운 모습입니다. 원칙적으로 이렇게 점철되어 왔던 체제의 확고한 이행은 아마도 정치가 제자리를 지키고 제 역할을 해내었다면 크게 달라졌을 수도 있었습니다. 이를테면 공익에 대한 도덕적 측면을 강조하여 인간이 그저 소비 만능주의에 빠지지 않을 수 있도록 재교육에 나서는 등의 여러가지 대안을 토론할 수는 여지는 충분했는데요. 그렇지만 지그문트 바우만의 회의적 시선처럼, 심지어 "우리 주변에는 이미 자신의 지갑 사정에 따라 투표를 했던 많은 사람들"이 존재합니다. 이는 자본주의 하에 놓여진 민주 정치가 어떤 지경에 이르렀는지 보여주는 지표이자, 액체 근대가 왜 현실 정치를 붕괴시켰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인데요. 뒤이어 나오는 공동체와 민족주의에 대한 진술에서조차 오늘날 힘을 얻고 있는 '극단주의 정치', 그 예의 단면을 살펴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보다 오늘날 정치가 예전만큼 실효를 거두지 못하고 있는 점도 우리는 주목해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바우만의 말대로 개인과 개인주의에 대한 사실상의 교조주의화와 이것을 아우르는 사익 추구와 함께 맞물린 소비주의 전반의 결합이 자본주의의 필연적 요소로 몰고 가는 것은 많은 시민들 사이에서 거스를 수 없는 대세로 여겨지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우리는 어떤 사회적 이행이든 간에 비판을 막을 것은 없고, 또한 마땅한 비판이 있어야만 기본적 사회라든지 혹은 공동체에 대한 인식, 더 나아가 공익에 대한 관념이 제자리를 찾는데 기여할 수 있을 겁니다. 저는 이 지점에서 우리가 두 다리를 딛고 서 있는 사회 전반에는 무엇보다 '비판의 성역'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강조하고 싶습니다.
다시금 불행한 모멘텀이긴 하지만, 우리가 동굴 안의 원시인처럼, 스스로 자기 혐오에 빠져 이러한 액체 근대가 초래한 실상에 눈을 감게 된 것은 하나의 비극이라고 볼 수 있겠습니다. 대처가 이러한 사회적 현실에 몸을 담고 있는 시민들을 보고 무덤에서 크게 웃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근대가 추구했던 건전한 공동체주의가 근본적으로 내파되었다는 진술에 동의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지금의 엘리트들이 오로지 자신만 잘살면 된다는 이데올로기를 확신하며, 그러지 못한 대부분의 사람들을 비웃을 수 있는 것은 그 자체로 공동체 관념이 무너졌기 때문일겁니다. 과거 데일 카네기의 언급대로 돈을 가진 부유층들이 도덕의 문제에서 자유로워진다면 그 자신에게는 불행한 일이 될 수도 있다는 생각에 공감합니다. 사회의 구조적인 모순과 이것이 드러나는 일상을 원천적으로 거리를 두고 있는 일부 계층들의 태도는 순진할 정도로 위험한 모습이기도 합니다. 모르겠습니다 그저 자신이 살고 있는 소수의 지역에 거대한 장벽과 무장한 경비를 세워, 또 다른 사회를 만드려는 계획들이 얼마나 자신들의 안위에 도움이 될지는 거의 자명하다고 여겨지기 때문입니다. 다만 이러한 행동들이 이미 선진국의 여러 사회에서 벌어지고 있고 이렇듯 바우만의 경고대로, 빈민층을 과거 게토로 몰아내는 식의 파시즘이 사회 곳곳에서 대두할 가능성도 그만큼 배제할 수 없을 겁니다. 이는 액체 근대가 드러내는 가장 파멸적인 측면의 모순이 아닐까 생각해 보게 됩니다.
이어지는 5장의 도입부이기도 한, "결국 민족국가의 성공은 자기 주장을 하는 여러 공동체들을 억압한 덕택이다"는 문장은 액체 근대에서 도드라진 민족주의의 어긋난 면을 드러내는데요. 이에 바우만이 사회학적으로 분석하는 "역사의 뒤안길에 놓인 공동체주의는 현대 삶의 가속화되는 '액화'에 대한 지극히 예상 가능한 반응, 개인의 자유와 안정 사이의 깊어만 가는 부조화에 대한 반응"으로 사실상 귀결되었습니다. 그동안 액체 근대화의 상황에서 인간 사이의 유대는 가혹하리 만큼 유리되어 왔는데요. 단순히 같은 이웃인 시민에 대한 책임의 부재를 언급하려는 것은 아니지만 이런 개인화된 신자유주의 시대에 다시금 공동체주의가 주목 받고 있는 현실 자체는 아이러니하다고 볼 수 있겠습니다. 이를 캘리니코스식으로 풀어보면, 예를 들어 인종과 종교와 같은 교집합으로 구성된 공동체, 그리고 이를 기조로 확산된 민족주의가 유럽에 이민자들이 증가하면서부터, 심각한 변화를 맞게 되었습니다. 물론 과거 세계 2차 대전 중에 보였던 참혹한 전체주의적 망령은 아니라 하더라도 지금 지속적으로 보여지는 저들의 모습은 우려할 만하다고 여겨집니다. 기존 사회에 이민으로 촉발된 이질적인 공동체의 등장과 더이상 공화주의적인 공동체 담론으로 섞이지 못하는 한 국가 내의 성질이 다른 여러 개별 공동체의 등장은 캘리니코스의 말마따나, 자본주의의 모순이자 심각한 문제였던 경제적 불평등의 분노를 다른 집단에게 돌리게 되는 폭력이 되었는데요. 만약 우리에게 몇 세대에 걸쳐 이식된 근대성이 유동하는 그것이 아니라, 사유하고 행동하는 삶이 기반이 된 고체의 근대성이었다면 어느 정도 조정과 분별이 가능했을 겁니다. 저는 개인주의와 그런 개인화로 촉발된 사회 체제의 변혁이 마치 사익에 의한 공익의 식민지화를 맞은 것처럼, 공동체주의 자체가 철지난 이상주의로 취급되었다고 생각합니다. 흔히 신자유주의자들이 읊듯, 타인을 위한 공동체나 그런 인식 전반이 더 이상 필요하지 않는 것을 넘어, 자유 시장에 해가 되지 않는 자본의 유연성을 위한 '사회 대개조'에 전자가 확연히 방해가 되었다고 추측할 수 있습니다.
끝으로 일전에 읽은 한스베르너 진의 '카지노 자본주의'의 비평대로 바우만 역시, 소위 우리 사회를 관통하고 있는 '카지노 문화'에 대해 언급하고 있었습니다. 아주 가볍게 말한다면 인생을 한방의 잭팟에 맡기는 것은 그만큼 위험하다고 볼 수 있겠는데요. 이 세계가 더 이상 지속 가능하지 않다고 쉽게 판단할 수는 없지만 자본주의가 인간을 그저 소비의 주체로 몰아간다면 흥청망청 살아가며 이상을 잃은 삶의 자체는 누구에게는 천국이고, 다른 누구에게는 지옥과 다름 없을 겁니다. 그래서 바우만은 1장 말미에서, "진보주의자를 비롯 많은 사람들이 잃어버린 그 진정한 해방에 '공적 영역'과 '공적 권력'이 더욱 요청된다고"고 강조했는데요. 이제는 사적 영역 만큼이나 공적 영역을 되살리는 일에 시민들이 노력을 기울이는 것이 요청되고 이를 지원하는 것이 정치의 새로운 사명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동안 지리멸렬했던 진보주의를 여기서 새삼 꺼내고 싶지는 않지만, 과거로부터 이어진 진보주의 운동 자체가 공적인 영역의 책임을 잃어버린 점이 진보가 사회의 지지를 받지 못하게 된 연유일 겁니다. 이와는 별개로 바우만은 우리에게 한 가지 경고를 하고 있었는데요. 전세계의 경계를 넘나들며 활약하고 있는 전지구적 엘리트들이 국가의 경계나 사회의 다양성을 아랑곳하지 않고 자신들이 소유한 돈과 권력의 힘으로 세계를 좌지우지 하고 있다는 5장 이후의 현실적 논증들은 중대한 정치적 의미로 여겨집니다. 자유 진영의 필연적인 세계화 운동은 바로 이러한 이면을 애초에 내포하고 있던 게 아닌가 생각해 보게 되는데요. 이처럼 바우만의 핵심 사상이 잘 담겨 있는 이 논저는 문제의 원인을 근본적으로 파헤치는 동시에, 우리에게 진지한 각성을 요구하고, 이후 정치가 붕괴되어 발생하는 배타적 민족주의 다음의 세계에 대해서도 생각할 거리들을 남겨주고 있습니다. 전체적으로 그가 바라보는 현실 인식은 대체로 암울한 측면이 있지만 그만큼 더 많은 시민의 각성과 권력과 시스템의 대안이 필요하다는 후반부의 요지는 충분히 설득력을 답보하고 있었습니다. 바로 이 액체 근대는 지그문트 바우만이 스스로 현실을 숙고하는 수단이 되었다는 점은 부정할 수 없을 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앞서 설명한, 자본주의적 대안 찾기에 바우만이 지대한 영향을 끼친 근본 이유라고 볼 수 있겠습니다.
오늘날 점점 더 공급이 부족해지는 것은 우리가 순응하고 안정적 지향점으로 선택할 수 있는, 그리하여 우리 자신을 인도해줄 수 있는 행동 유형들, 규약들, 규칙들이다.
우리는 영토권과 정착의 원리에 가해지는 유목주의의 복수를 목격하고 있다. 유동적 근대 단계에서는 다수의 정착한 사람들이 유목적이고 탈영토적인 엘리트들에 의해 지배받고 있다.
그러나 지식인들을 근심케 하는 더욱 암울한 예감은, 자유를 실행하는 데 야기될 법한 여러 곤경을 놓고 볼 때, 사람들이 자유로움 자체를 싫어하고 해방의 전망에 오히려 분노할 수도 있다는 점이다.
에밀 뒤르켐은 그러한 홉스주의적 관점을 하나의 포괄적 사회철학으로 발전시켰는데, 그 철학에 따르면 가장 평범한 보통 사람들이 만든, 가혹한 형벌체제가 뒷받침하는 ‘규범‘이, 가장 끔찍한 두려움과 대상이었던 노예 제도로부터 인간을 진정으로 해방시켰다는 것이다.
‘사적인 것들‘을 식민지화하여 ‘공적인 것‘이 시작된다는 말은 이제 옳지 않다. 오히려 그 반대이다. 사적인 것들이야말로, 사적 관심과 사적 걱정, 사적 추구의 언어로 온전히 표현될 수 없는 모든 것들을 내몰아버리면서 공적 공간을 식민화하고 있다.
오늘날 진정한 해방에는 ‘공적 영역‘과 ‘공적 권력‘의 필요성이 줄어드는 것이 아니라 더욱 요청된다. 사적인 것들이 침해하지 못하도록 보호가 절실해진 쪽은 이제 공적 영역이 되었다.
우리는 인간의 합리적 능력이라는 것이 감정적 영향들과 또 그만큼 비합리적인 성향 때문에 끊임없이 침식당한다는 것을 알고 있기에, 목적에 대한 이의 제기도 완전히 사라지지는 않을 것 같다는 의혹을 던질 수도 있겠다.
정체성의 헐겁고 ‘연합적‘인 위상, ‘쇼핑하고 다닐‘ 기회, 우리의 ‘진정한 자아‘를 고르고 나눌 수 있는 기회, ‘계속 나아갈 수 있는‘ 기회가 오늘날 소비자 사회에서는 자유를 의미하게 되었다.
타인의 악의적 의도와 사악한 음모를 탓하며 자신들의 불행과 수치스러운 패배, 삶의 좌절을 설명하는데 열심인 사람들은 언제나 어디서나 늘 넘치도록 많았다.
동질성에 대한 지향이, 차이를 척결하려는 노력이 효과적일수록, 이방인들에 대할 때 편안함을 느끼기 어렵게 되고 차이는 더욱더 위협적이 되며 이것이 낳는 불안은 더욱 깊어지고 강렬해진다.
사회 분화가 시작된 이래 오늘날 영구적이고 파괴할 수 없게 된 사회 분화의 핵심적 토대는 즉시성에 접근하는 데서의 차별성이다.
계몽주의 유산을 자유주의적으로 해석하는 것은 사태를 잘못 파악한 것이거나 오도하는 것이라고 비난하는 이들은 언제나 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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