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력의 세기 이후 오퍼스 1
한나 아렌트 지음, 김정한 옮김 / 이후 / 199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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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한나 아렌트는 1906년 독일 니더작센 주의 주도인 하노버의 린덴-리머에서 태어났습니다. 아렌트는 유대인의 부모 밑에서 자라났는데, 부친은 그녀가 일곱 살이 되던 해에 사망했고, 모친은 당시 열렬한 사회민주당원이기도 했습니다. 이렇게 정치적으로 진보적인 가정 환경에서 자란 그녀는 베를린에서 중등 교육을 수료한 후, 마르부르크에 소재한 공립 연구 대학인 마르부르크 필립스 대학에서, 지적 및 정신적으로 큰 영향을 받은 철학자 마르틴 하이데거를 만나게 됩니다. 이후 1929년에 마찬가지로 그녀에게 지대한 영향을 끼친, 카를 야스퍼스 지도 하여. 하이델베르크 대학에서 철학 박사 학위를 취득합니다. 같은 해에, 그녀는 철학자이자 언론인이었던 귄터 스턴과 결혼했지만, 1930년대에 나치 독일의 참혹한 반유대주의에 직면하게 됨으로써, 1933년, 게슈타포에 의해 잠시 투옥 되기에 이릅니다. 게슈타포의 조사 이후, 방면된 그녀는 체코슬로바키아와 스위스 등지를 거쳐, 파리에 정착하게 됩니다. 1937년에는 독일 시민권을 박탈당하고, 1940년에는 귄터 스턴과 이혼 후, 시인이자 철학자였던 하인리히 블뤼허와 재혼하게 됩니다. 같은 해에 독일이 프랑스를 침공하자 그녀는 외국인 신분으로 구금되었지만 탈출하여 1941년에 미국으로 이주하게 됩니다. 그녀는 1950년에 정식으로 미국 시민이 되었고, 이듬해인 1951년에 인류에게 있어 거의 기념비적인 논저는 "전체주의의 기원"이 출간됩니다. 이후 미국의 여러 대학을 다니며 학생들을 지도하다, 1975년 갑작스런 심장마비가 찾아와, 이른 나이에 그녀는 세상을 떠나게 됩니다. 이처럼 그녀의 인생 전반이 파란만장한 사건으로 점철되어 있다고 볼 수 있겠는데요. 특히, '정식 서류'가 없는 무국적자로서의 삶을 자신의 철학적 사유와 인생에 대한 깊이 있는 이해로 극복하며, 전체주의를 경험한 인류의 미래를 위해 자신의 학문적 책무를 다한 그녀는, 지금도 전세계 지식인으로부터 존경과 사랑을 받고 있는 인물이기도 합니다. 따라서, 그녀의 이 책은 원제, "On Violence"로 지난 1970년에 출간되었고, 국내에는 1999년 11월 번역 출판되었으나, 현재는 절판된 상황입니다.

아렌트의 이 책은 제가 2000년도가 되던 해에, 광화문에 있는 대형서점에서 구입한 것인데요. 몇년 뒤에, 일독을 하고 최근에 이사를 하면서 책 박스들을 정리하다 오랜만에 발견한 것처럼, 다시 책을 펼치게 되었습니다. 20대 때는 책을 거의 신주단지 모시듯 읽어, 책 상태는 의외로 나쁘지 않았습니다.

한나 아렌트는 개인으로서는 아주 드물게, 유럽에서 유대인의 삶을 무참히 파괴했던 전체주의와 이후, 냉전과 이 시기에 개발된, '대량 살상 무기'가 평범한 사람들의 삶을 몰락 시킬 수 있는 제2의 전쟁 위기를 몇 번이나 경험했던 사람입니다. 이는 2차 대전을 거쳐, 첨예한 냉전 시기까지 정신력이 탁월하지 않은 사람이거나, 혹은 의지가 박약한 사람에게는 아마도 하루조차 견딜 수 없는 시대였으리라 추측해 봅니다. 이는 참혹한 대전에서 수없이 자행된 인종 청소와 그로 인한 인간성 파괴, 또한 부족한 식량 배급에서 겪은 극도의 빈곤 상황 등은 이 사회에서 보다 안락한 생활을 하고 있는 저로서는 쉽게 상상조차 할 수 없는, 과거의 기억이기도 합니다. 그런 그녀가 정상적이지 않은 인간이 갈망하는 권력에 대한 욕망과 더 나아가 강력한 권력의 존재를 갈망하는 소위 이성의 범주 안에서는 쉽게  판단할 수 없는 체제의 격변을 겪은 '살아남은 자'로서, 아마도 제일 먼저 전체주의의 폭력을 규명하고 싶었을 겁니다. 이러한 그녀의 '학문적 사명감'은 참혹한 분절의 시대를 살아간 사람들의 의무인 동시에, 그런 증언과 기록들을 몸과 기억에 새겨 넣은 소수의 사람으로서 무엇보다 인류의 성찰이 스스로 시급하다고 느꼈을 것 같습니다.

그녀의 이 논저는, 기본적으로 1968년 3월의 68 운동 혹은 다른 말로 68 혁명 당시, 유럽에서 강하게 불었던 사회 변혁에 대한 요구와 이를 뒷받침했던 진보에 대해, 학생들과 시민들의 목소리, 그리고 그런 격변의 시기를 거쳐간 사람들의 지향점 등을 살펴보고, 이들의 직접 행동으로 야기 될 수 있는 혁명의 가능성, 그리고 불거질 수 있는 다양한 폭력의 문제, 더 나아가 그런 폭력 담론이 어떻게 인간을 파괴시킬 수 있는지를 상세히 논하고 있습니다. 또 여기에 사회 철학적인 의미로서 폭력을 연구한 파레토, 여기에 더해 조르주 소렐의 논저, '폭력이란 무엇인가'를 고찰하고, 폭력의 역사적 배경과 그 의미들을 섭렵하여, 한나 아렌트 고유의 철학적 답변이 이 책에 고스란히 담겨 있습니다. 물론 여기의 논의되는 배경 지식들과 주장이 꽤나 독특한 측면이 있어서 기존의 생각들과는 상당히 상이한 접근법을 보이고 있기도 합니다. 그래서 귀스타브 르 봉과 같은 전형적인 방식의 논증이 아니라, 인간 사회에서 폭력의 근본적 의미를 모색하고 있었습니다. 특히 논증의 대전제로서, 이 폭력과 권력에 대한 세밀한 정치철학적 비교 분석과 손쉽게 인간을 유혹하는 폭력의 문제가 어떻게 체제와 권력을 구축시키는지에 대해서도 그녀의 고유한 철학적 성찰을 통해, 서서히 밝혀 나가고 있었습니다. 물론 폭력은 사람을 이용하지만 권력은 폭력과 사람 모두를 이용할 수 있다는 것을 우리는 인지해야만 할 것입니다.


1장의 서두에서 그녀는 "역사와 정치에 관하여 사유하는 사람은 누구든 폭력이 인간사에서 수행하는 거대한 역할을 깨닫지 않을 수 없다"고 인정하는데요. 이는 전쟁이 구사하는 본질적인 측면을 포함하여, 체제 갈등과 국가간의 대립에서도 이러한 폭력이 최종적 해결책이 되어왔다고 언급됩니다. 그래서 그녀가 분석하는 역사의 역설이라는 것이, 아마도 "오히려 평화가 다른 수단을 통해 벌이는 전쟁의 연속이라는 측면"의 통찰을 담고 있는 것으르도 읽히는데요. 이는 평화시기의 전쟁 억지라는 담론과 갈등의 시기에서 벌어지는 수많은 폭력의 실상과 그 파급들이 현재에 이르러서는 권력과 다소 혼재되어 우리의 감각을 혼란 시키는 점은 명백하다고 여겨집니다. 바로 그런 연유로 아렌트는 자신이 읽어 나간, 사회 과학과 그것을 수행하는 사회학자들이 이 폭력과 권력을 명확히 구분해 내려는 노력을 하고, 이것을 단순 학문 분야의 개념적 구별이라는 전형적 패러다임에 국한되지 않는, 모두를 위한 의무를 강조합니다. 즉, 어디서든 촉발될 수 있는 대량 살상의 가능성과 이런 혼란스런 시기에서 무엇보다 후세와 다수 시민들을 위해 폭력과 권력이 철저하게 구별되어야만 하는 점은 충분히 일독 내내 이해가 되었습니다. 물론 그녀도 민주주의에서의 '법의 지배' 혹은 헌법의 통치에 대해 수차례 언급하고 있습니다만 이와 구별되는 '폭력을 통한 권력의 추구'는 시민의 경종을 울릴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익히 알고 있다시피, 철학의 주요 주제, 그리고 그것을 탐구하는 사유의 방식과 기본 전제들이 정치철학에도 동일하게 적용된다는 것은 지나치지 않을 겁니다. '인간의 본질'이라는 매우 폭넓은 개념과 마찬가지로, 폭력의 개념과 권력의 이해 역시, 그 궤가 상당히 교차된다고 볼 수 있겠는데요. 반대로 아렌트의 말마따나 권력이, "부를 통해서 측정될 수 없으며, 풍부한 부가 권력을 잠식할 수도 있다"는 오늘날 자본주의적 실상 뿐만 아니라, "많은 돈은 공화국의 권력 및 안전에 특히 해롭다"는 진술이 이러한 논증으로 이해될 수 있겠는데요. 이는 3장 후반부에서 진술되는, "완벽한 관료주의 사회"가 시민의 자유에 해가 될 수 있다는 주장과 맥락상 이어지기도 하는데요. 마치 많은 돈이 사회에 풀리면 그 사회가 풍족할 것이라고 확신하는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많은 사람들의 삶 속의 과정을 더욱 긴밀하게 만들고, 개인의 책임을 일원화된 체계 그 범주 바깥으로 내모는 완벽한 관료주의화 역시, 결국은 부정적으로 파급된 역설로 사회와 체제에 영향을 드러낼 수밖에 없다고 생각합니다. 아렌트의 이러한 논증이 다소 과장이 섞였다고 볼 수 있지만 그녀는 이미 히틀러와 무솔리니를 경험한 인물이기도 합니다. 히틀러의 나치 독일은 순혈 게르만주의와 그것을 강도 높은 체제로 만든 기계처럼 일원화된 사회였기 때문입니다. 국가의 명령에 한결같이 복종하는 시민이라는 굴절된 정치적 관념 말입니다. 

또한, 아렌트는 충동적인 폭력의 파국을 논하는 가운데, 1장을 거쳐, 2장 까지 소위 '참여 민주주의'의 허상에 대해 분석합니다. 이는 의외의 측면에서, 진보주의 운동과 이들과 유사성을 함께하는 '혁명'에 있어, 중요한 정치적 담론이라고 볼 수 있겠는데요. 이는 달리 말하자면 위조되어 덧칠해진 이데올로기의 이분법으로서의 '극좌 운동'이 오히려, 기득권 엘리트 계층이 달가워하지 않는 '참여 민주주의'를 표면적으로는 더욱 원하고 갈망한다는 점에서, 이 역시도 정치적 역설에 포함된다고 볼 수 있습니다. 결국 이러한 도정에서 폭력을 통해, '참여 민주주의'를 달성하겠다는 맹목적인 이상은 이처럼 위험하다고 여겨지는데요. 여기서 약간의 논외이긴 하지만, 한나 아렌트는 만약 간디의 비폭력 저항 운동이 당시 영국의 지배를 받던 인도가 아니라, 독일, 일본의 지배를 받는 인도였다면, 간디는 그날로 참혹한 주검으로 발견되었을 것이라고 단언합니다. 바로 이런 측면에서, '비폭력'의 불안한 미래는 마누엘 카스텔이 탐구했던 것처럼, 공권력과 사회 체제에 대한 '비폭력 운동'이라는 진술이 과연 어떠한 의미를 갖고 있는지에 대한, 한나 아렌트 식의 명백한 개념화라고 생각됩니다.

뒤이어 2장에서 아렌트는 "우리는 복종 본능, 복종하고 싶어서 어떤 강자에 의해 지배되기를 바라는 열렬한 욕망이, 적어도 인간 심리학에 있어서는 권력에의 의지만큼이나 현저하고, 동시에 정치적으로는, 아마도 더 관련성이 많다"고 논증 가운데 이를 드러냅니다. 이미 유명한 라 보에시의 '자발적 복종'과 방금 언급한 한나 아렌트의 인간 대부분이 갖는 강한 권력에의 복종 욕망이 어떠한 관련이 있는지는 불확실하지만, 인간의 정치적 본성 가운데, 권력에의 의지 만큼이나 어떤 강한 권력에 복종하여, 자신의 안위를 돌보고 싶은 생물학적 본능과도 관련이 있다고 여겨집니다. 물론 아렌트는 현재의 사회과학이 생물학과 자연과학에 논리적 근거를 찾고 있는 행태를 비판하고 있기도 한데요. 각 학문을 넘나들고, 개념 당 다른 학문에서 그 이유의 단초를 찾는 이런 활동이 무조건 잘못되었다고 볼 수는 없으나, 한나 아렌트는 누구보다 이런 생물학적인 본능이나 자연적인 유래에서 인간 행동과 사회적 행태에 대한 유사성을 찾는 행위 자체를 본질적으로 인간을 제한하고 왜곡하는 데 쓰일 수 있다고 보는 듯 싶었습니다. 즉, ' 인간의 권력에의 복종' 자체를 생물학적인 본성이나 본능으로만 설명하는 것은 이처럼 우리 인간을 왜소한 크기로 한정하는데 이용될 수 있다고 보는 것이 거의 타당하다고 볼 수 있겠는데요. 어쩌면 철학과 생물학, 사회과학과 자연과학은 어느 정도 그 범주의 차이를 인정하고 존중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여겨집니다.

3장에서 보여지는 폭력의 본성은 부분에 따라 섬뜩하게 느껴질 정도입니다. 1960년대 이후, 미국 사회의 두드러진 흑백 갈등도 그렇거지나와 자본주의화가 거의 공장의 자동화 벨트처럼 진행된 서구 사회에서 노동자들에 대한 분노 혹은 혐오는 심각한 수준이었습니다. 양자 전부 사회 통합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을 정도였죠. 이에 아렌트는 자본주의에서 합리적 측면을 뛰어넘는 개인주의화가 그런 이익 추구 담론에서 주요 논점이 되고, 이러한 토대에서 노동자들의 권리 찾기가 사실상 '사익 추구 메커니즘'에 방해가 되었다고 보고 있습니다. 이 뿐만 아니라, 매카시즘의 광풍이 불던 서구 사회의 관용의 몰락은 '드레퓌스 사건'으로 그 기형적 모습을 드러냅니다. 이 책에서 인용된 조르주 소렐 역시, 이 사건이 자신에게 있어서도 충격으로 남게 됩니다. 자신과 생각이 다른 사람들을 색출하겠다는 발상과 그것에 휩쓸린 수많은 대중들, 이러한 진행이 결국 자신에게 해가 될지도 모른다는 가능성 조차 일축한 시민들의 무지는 어쩌면 아무 쓸모도 없는 이데올로기 논쟁을 격하시켰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아렌트는 이러한 변화 속에 사회에서의 노동자들의 위상과 이들을 바라보는 다른 계층의 시선 등을 꽤나 우려섞인 모습으로 그려내고 있었는데요. 노동자 자신들이 조직을 이루어 권리를 위한 최소한의 권력 쟁취를 목표로 하는 (물론 가능하다는 보장도 없이) 정치 행동이 왜 환영을 받지 못했는지 그녀의 이 책을 통해, 한편으론 이해가 되기도 합니다. 그만큼 자본주의적 부르주아 계층과 노동자들의 연합은 그야말로 혁명적인 발상이라고 볼 수 있겠습니다.

끝으로 폭력은 도구적일 수밖에 없고, 권력은 그 목표를 지향한다는 한나 아렌트의 단언은 이 책을 다시금 일독한 지금, 저에게는 적지 않은 것을 떠올리게 만듭니다. 그래서 폭력에 대한 단초를아렌트는 토머스 홉스로부터 시작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또한, 폭력이 개인의 본성을 자극함과 동시에, 본성 자체를 매몰되게 만든다는 점에서 엘리트 지배 계급이 왜 체제의 안정을 추구할 수밖에 없었는지, 정치적 맥락 뿐만 아니라 그 '혁명의 문제'로서도 고려할 수밖에 없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진보의 존재 자체는 그만큼 위험성을 내포하고 있고, 한나 아렌트가 살다간 그 시대의 자화상이 엄청난 대결 구도에 전사회적인 자원을 투입하게 만들었으며, 오직 균질한 사회를 위해 오도된 사상이 있었다는 것도 참으로 불행한 역사의 한 모습이라고 여겨집니다. 다만, 사상과 출판의 자유, 그리고 개인의 자유가 인간이 태초의 조건에서 어떻게 폭력에 손을 내미는 형상으로 여겨질 수 있는지는 몇번이나 곱씹어 읽어봐도 이해가 되지는 않습니다. 시민에게 주어지는 충분한 자유가 폭력이라는 부정의 열매와 가까워지는 길이라고 아렌트는 그렇게 인식했는지는 모르겠지만 권력에 합당한 자격이 없는 자들의 권력 추구와 그런 목적으로 수많은 시민들을 기만하는 극단주의자들의 맨얼굴을 그만큼 그녀 역시도 수없이 목격했으리라 확신합니다. 결국 모든 정치사회적 수단들과 그것을 가능하게 하는 이념과 관념들, 그것이 부분적으로 구축하는 사회의 모습 전반을, 우리는 이를 양가적 측면과 불가능한 예측까지도 떠넘기지 말고 숙고해야된다는 점에서, 인간의 삶은 참으로 어려운 숙명을 안고 있는 것이 아닌가 글말미에 떠올리게 됩니다. 

  





이른바 권력은 부를 통해서 측정될 수 없다는 것, 풍부한 부가 권력을 잠식할 수도 있다는 것, 많은 돈은 공화국의 권력 및 안전에 특히 해롭다는 것과 불길한 유사성을 갖는다.

정치적 암살은 대체로 우파의 특권이었고, 반면에 조직된 무장 봉기는 군대의 전문 영역으로 남아 있었다.

전쟁에 빠져들지 않도록 할 수 있는 일이란 도재체 존재하지 않는다.

흑인 폭력은 사실상 한 세대 이전 미국에서의 노동 폭력에 비유하여 이해될 수 있다.

동서양 반란의 가장 의미있는 공통분모를 구성하는 ‘참여 민주주의‘요구는 혁명 전통의 최상의 산물에서 유래한다.

우리에게 조작에 관한, 또는 오히려, 조작의 한계에 관한 교훈을 가르쳐 주었으며, 이것을 잊지 않는다면 우리의 삶은 차차 나아질 것이다.

진보는, 확실히, 우리 시대의 미신 박람회에 제출된 보다 심각하고 보다 복잡한 품목이다.

사람은 자기자신과 타인을 자신의 의지의 도구로 만들 때 자신이 보다 사람답다고 느낀다.

왜냐하면 강제력은 적법해졌다는 바로 그 사실에 의해서, 강제력이기를 멈추기 때문이다

만일 전통적인 정치 사상 대로, 자신을 해명하지 않아도 되는 정부와 전제 정치를 동일시한다면, 지배자 없는 지배가 분명히 가장 전제적인데, 왜냐하면 행해지고 있는 일에 대하여 도대체 책임을 추궁당할 수 있는 위임 받은 사람이 아무도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우리는 복종 본능, 복종하고 싶어서 어떤 강자에 의해 지배되기를 바라는 열렬한 욕망이, 적어도 인간 심리학에 있어서는 권력에의 의지만큼이나 현저하고, 동시에 정치적으로는, 아마도 더 관련성이 많다는 것을 알아야만 한다.

사실상 권력과 폭력의 가장 명백한 차별성들 중의 하나는 권력이 항상 다수를 필요로 하는 상태에 있는 반면에, 폭력은 도구에 의존하기 때문에 다수가 없어도 어느 정도 처리할 수 있다는 점이다.

우리가 세계 질서를 전복시키고 세계 평화를 파괴하려 한다면, 블가피하게 우리 자신의 정치 제도를 먼저 전복시키고 파괴해야만 한다.

이기주의는 , ‘진정한 이해‘ 다시 말해서 자신의 이해와 구별되는 세계의 이해에 양보하라고 요구받을 때, 언제나, 가까운 것은 내 셔츠지만, 더 가까운 것은 내 피부이다라고 답변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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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도와 사진으로 보는 제2차 세계대전 - 학살과 파괴, 새로운 질서 지도와 사진으로 보는 세계대전 2
A. J. P. 테일러 지음, 유영수 옮김 / 페이퍼로드 / 202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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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J.P. 테일러는 1906년 영국, 당시 랭커셔의 일부였던 사우스포트의 버크데일에서 태어났습니다. 부유한 유산을 물려받은 그의 부모는 좌파 정치적 견해를 갖고 있었으며, 테일러는 양친으로부터 그런 정치적 영향을 받게 됩니다. 그는 어려서 퀘이커 교도였던 할머니의 영향을 받아, 부르주아 문화와 기독교에 극렬하게 저항하게 되는데요. 그는 1924년에 현대사를 공부하기 위해 옥소포드 대학의 오리엘 칼리지에 입학합니다. 1920년대에 그의 모친인 콘스탄스는 영국 코민테른의 일원이었고, 그의 삼촌 중 한 명은 영국 공산당의 창립 멤버였습니다. 특히 모친은 여성 참정권 운동가이자 페미니스트였으며, 자유 연애의 열렬한 옹호자였습니다. 테일러 역시도 1924년부터 1926년까지 영국 공산당의 일원이었으나, 1926년 총파업 당시 당의 비효율적인 입장으로 당에서 이탈하게 됩니다. 그는 공산당을 떠난 뒤, 평생 영국 노동당을 지지했고, 60여년 이상 노동당의 당적을 유지했습니다. 이런 테일러는 특이하게도 1925년과 1934년에는 소련을 방문하기도 했습니다. 이렇게 세계 제2차 대전과 첨예한 냉전을 겪은 그는 당시 유럽에서 손꼽히는 19세기와 20세기의 유럽 외교를 전문으로 연구한 역사학자이기도 했는데요. 이 즈음에 새롭게 탄생된 텔레비전 프로그램에 출연해, 당시 대중들에게 얼굴을 알린 지식인이기도 했습니다. 그는 자신의 정치적 견해를 서슴없이 내비친 인물로도 유명했는데요. 1936년에 영국의 재무장과 관련해 명백히 반대의 입장을 피력했고, 1938년의 '뮌헨 협정'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로 반대의 입장에 서기도 했습니다. 이외에도 평생을 사회주의자로서의 입장을 견지한 그는 "자본주의 체제가 실용적이고 도덕적인 측면에서 오류를 갖고 있다"고 주장하기도 했는데요. 다만, 자본주의가 전쟁과 갈등의 원인이라는 마르크스주의적 관점은 거부하기도 했습니다. 더불어, 1950년에 발발된 한국 전쟁에 대해서도 영국이 이에 참전하는 것을 그는 원천적으로 반대하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그가 평생에 걸쳐 드러낸 독일 혐오증은 유명했는데요. 1944년과 1945년에 걸쳐, 방송과 출판을 통해 보인 독일에 대한 비판은 당시에도 꽤 유명세를 타기도 했습니다. 따라서, 그의 이 책은 원제, "The Second World War : An Illustrated Histoy"로 지난 1975년에 출간되었고 국내 번역본으로 쓰인 판본은 1989년 출판본입니다. 이에 국내 초도 번역은 2020년 10월에 이뤄졌고, 제가 구입한 판본은 8쇄본으로, 2024년 1월, 출간본입니다.

우선 저자인 테일러의 제2차 세계대전과 관련된 유명한 글은, 최근 국내에에 개정판이 출간된 "준비되지 않은 전쟁, 제2차 세계대전의 기원"으로, 무엇보다 이 책은 출간 당시 영국에서 극렬한 논쟁을 불러일으켰고 그런 연유로 국내 출간 시점에서 큰 관심을 받은 논저이기도 합니다. 즉, 제가 일전에 서평을 쓴, "지도와 사진으로 보는 제1차 세계대전"과 마찬가지로 이 책 역시, 상당한 분량으로 쓰였음에도 불구하고, 나치 독일이 주도하는 '추축국' 진영의 외교적이고 군사적인 전쟁 원인에 대해서는 논의되고 있지 않습니다. 그래서 1938년 즈음부터 시작된 유럽의 외교 위기와 히틀러를 통한 독일의 정세 변화에 관해서는 앞선, "준비되지 않은 전쟁, 제2차 세계대전의 기원"을 참고해 보시면 될 것 같습니다.

저자인 A.J.P. 테일러는 전쟁의 주된 요인이었던 독일의 국가사회주의화의 원인이 베르사유 조약인가 아니면 대공황의 여파로 발생된 것이냐를 놓고, 둘 다 그 원인이 될 수 있다고 짧게 언급하고 있습니다. 이미 존 메이너드 케인스가 자신의 저명한 논저를 통해, 베르사유 조약의 패전국 독일을 배제한 강압적 측면이 이후, 독일인들의 배타적 민족주의 감정을 팽배하게 만든 원인이라고 평가하기도 했는데요. 특히, 이 글에선 1차 대전 이후, 베르사유 조약에 따라 알자스 로렌 지역을 독일이 상실한 것은 독일인들에게 "엄청난 민족적 모욕"이 되었다고 언급됩니다. 이는 마찬가지로 조약에 따른 후처리로 인해 동프로이센의 회항이 폴란드 영토로 가로 막힌 점도 한몫을 했는데요. 일전에 2차 대전사를 집필한 벤저민 카터 헷은 당시 독일 정치인 가운데 한 사람인 쿠르트 슈마허가 "나치의 선동은 인간 내면의 저열한 부분에 끊임없이 호소한다"는 평가에 당시 바이마르 공화국이 어떻게 정치적으로 몰락하게 되었는지 그 맥락을 엿볼 수 있었습니다. 결국 나치 독일이 역사의 전면에 등장했고 히틀러가 폭력적으로 선도한 순혈 게르만주의와 그 대척점의 유대인을 유럽의 암세포로 적시하고, 무고한 이들을 절멸시킨 소위, '전체주의의 대두'는 우리가 왜 제2차 세계대전을 교훈으로 삼아야 하는지에 대한 명백한 이유라고 생각합니다. 또한, 불행하게도 포드와 같은 미국의 기업인들이 소비에트 혁명으로 인해 대두하고 있던 공산주의 혁명에 대해 크나큰 우려와 반감을 표시하고, 이것의 전면적 해결책이 히틀러의 파시즘이 될 수 있다고 확신한 그 오싹한 결론에서도 역사의 비정함을 엿볼 수 있는데요. 그 와중에 히틀러가 이 혁명이 '유대인의 음모'라고 확신했던 부분 역시, 개인적으로는 반유대주의의 역사와 더불어, 불행한 인간사의 한 단면이라고 생각합니다. 

아돌프 히틀러가 독일의 주도권을 잡은 이후, 1938년의 서유럽의 두 강대국과 맺은 뮌헨 협정 이후, 당시 혼란한 유럽 정세속에서 뒤이어 폴란드가 히틀러의 시야에 잡히자, 영국이 프랑스와 마찬가지로 폴란드에 대해 보장을 약속한 것은, 오히려 히틀러의 흥분을 불러일으켰다는 저자의 표현에 꽤 흥미로운 감상이 들었습니다. 민감한 국제적 정세에서 히틀러가 흥분을 했다는 의미의 맥락이 꽤나 소름끼치는 부분이었는데요. 히틀러가 1938년 9월 1일에, 휘하에 있던 독일 장성들에게 폴란드에 대한 군사 행동을 할 수 있게 준비하라는 지시가, 저자의 표현대로, 혹여 서유럽에 대한 '공갈협박이'었을지라도 당시 프랑스 정치권이 동맹 관계였던 폴란드의 몰락을 어느 정도 예견했다는 점은 정설로 믿어지고 있습니다. 이는 냉엄한 국제 정치의 측면에서, 약소국의 운명이 얼마나 하잘 것 없는지 우리는 여실히 깨닫게 되는데요. 이 부분과 관련해, 저는 일전에 다른 서평에서 로만 폴란스키의 2002년작 영화 '피아니스트'의 한 장면을 자주 인용하기도 했습니다. 극 중 바르샤바에 있던 슈필만의 가족이 독일군의 폴란드 진공 즈음에, 프랑스와 영국이 폴란드를 보장할 것이라는 라디오 방송에 결국 피난을 떠나지 않고 이를 기념해, 저녁에 소소한 파티를 하는 장면이 마치 '국제 외교의 냉엄한 역설'을 여실히 드러내는 컷으로 각인되어 있는데요. 저자인 테일러 역시, 독일의 침략 야욕에 놓인 폴란드에 대해, 실효적인 보장이 전혀 없었던 '외교적 수사'에 대해 마찬가지로 당시 영국 정부를 비판하고 있었습니다. 스스로 뼛속 깊은 영국인임에도 말이죠. 여기에 "영국과 프랑스가 1918년의 기세등등한 전승국이 아니라는 사실"은 어떻게 보면, 헛된 평화에 대한 현실의 반증이라고 볼 수 있겠는데요. 이처럼 아픈 가시처럼 박혀있는 테일러의 정치적 수사들은 이곳에서 거의 가감 없는 표현으로 장식되어 있었습니다.

앞서 히틀러의 야욕을 언급하기도 했습니다만, 이 대전을 수행한 처칠, 루스벨트, 스탈린 그리고 히틀러는 이들 자신이 정치적으로 선출된 행태가 어떻든 간에, 이들 모두 엄청난 재량권과 실효적인 권력을 휘두를 수 있었던 주요 행위자들이었습니다. 히틀러는 말할 것도 없고 처칠 역시도 의회의 눈치를 얼마간 보기는 했으나 중요한 의사 결정은 주변의 조언들만 참고하고 자신이 직접 결정을 내렸습니다. 루스벨트 역시 자신의 고립된 집무실에서 국가의 중대한 결정을 몸소 진행하기도 했는데요. 특히 스탈린의 소련은 이 대전에서 2천만 명의 희생자를 감수했는데, 이 점은 국가 지도자가 주도한 총동원령의 체제가 얼마나 큰 힘을 갖고 있는지 보여주는 일면이기도 했습니다. 국가 총동원령 자체는 그만큼 국력을 심대하게 소모 시키는 과정이기도 했는데요. 물론 히틀러의 그 광오한 '바르바로사 작전'으로 말미암아, 수많은 독일 병사들을 갈아 넣은, 레닌그라드 포위전과 이후 스탈린그라드 (현 볼고그라드) 전역에서, 엄청난 인명 피해를 감수합니다. 거의 국가가 주도하는 만연된 '인명 경시 풍조'라고 느껴질 정도로 말입니다. 더군다나 이 인명 경시는 특히 소련군의 한 장성의 말로 대변되기도 하는데요. "지뢰를 탐지하기 위해 그저 병사들을 그 지대로 진군시키면 된다"는 정말로 참혹한 언급이었습니다. 이는 그 시대의 비참한 자화상이라고 볼 수 있을 텐데요. 그럼에도 군사 작전과 관련된 일사분란하지 않은 작전 수행과 그 과정에서 보인 장성들의 심각한 패착은 2차 대전에서도 여실히 여러 장면에서 증명되고 있었는데요. 특히, 프랑스 진공을 위해 저지대 국가로의 우회로로 진격한 아주 '비상한 사태'에서 수 틀리면 발을 빼려고 했던 영국 군과 역시나 지휘 체계가 뒤죽박죽이었던 프랑스는 치욕적인 뒹케르크에서의 탈출을 눈뜨고 지켜볼 수밖에 없었습니다. 벨기에를 비롯한, 저지대 국가들의 안위가 전통적으로 영국의 안보와 밀접한 관계가 있었다는 점을 고려해 본다면, 우회하는 구데리안의 독일 기갑군을 제때에 격퇴하지 못한 점은 연합국에서 프랑스를 이탈시키고 다음 전황에서 영국이 스스로 고립되는 상황을 자초한 것이기도 했습니다.

1941년 이후, 프랑스의 이탈과 더불어, 고착화된 전황을 타개하고자 영국이 주도하여, 독일내 산업 시설에 대한 폭격을 입안하고 이를 실제로 실현하지만 독일이 입은 피해는 미미했던 것으로 이 책에서 분석됩니다. 테일러는 이 '공중 폭격'이라는 아이디어가 실제로는 독일보다 영국에 더 부담이 되었던 것은 사실이며, 영국인들은 이러한 폭격이 충분히 강력하다면 결정적일 수 있다고 그 생각을 멈추지 않았다고 강조합니다. 아이러니하게도 이런 폭격의 결과물보다, 오히려 독일의 해역을 봉쇄한 실질적 행동이 적대국에게 실효적이었으며, 이를 타개하기 위해 당시, 독일의 해군 장령인 레더가 히틀러에게 보다 많은 유보트 생산을 건의했지만, 히틀러는 이를 탐탁치 않게 생각했다고 이 비상시기의 결정을 마찬가지로 언급합니다. 이러한 영국의 효과적 해안 봉쇄에도 불구하고 영국 해군이 주도하는 노르웨이에 대한 수복 작전이 지리멸렬하게 실패하자, 독일과 영국의 해전은 대전 내내 서로 미미한 대응만을 고수하게 되는데요. 테일러는 이에 대해 더 이상 일절 언급을 하고 있지는 않았지만, 당시 영국이 굴욕적인 뒹케르크 탈출의 굴욕을 다소나마 지울 수 있는 '나치에게 넘어간 노르웨이 수복 작전'이 연합군의 신뢰를 위해, 필요했지만 충분한 해군력에도 불구하고 영국인들은 그저 소극적 대응으로 일관해, 스칸디나비아의 철광석이 독일의 수중 아래 놓이게 되는 결과를 사실상 묵인하였습니다.

뒤이어, 지중해 제해권과 관련한 몰타와 크레타 섬, 그리고 그리스 문제에 봉착한 영국 정부는 당시 군사적으로 준동하고 있던 이탈리아의 무솔리니를 제어할 필요성에서 뿐만 아니라, 전통적으로 자신들의 영향권이자 '사활적 국가 이익 지점'인 이집트와 수에즈 운하를 방비하기 위해서라도 대대적인 해군의 전력 증파가 필요했습니다. 몇 번이나 강조해도 말입니다. 그러나 여기에는 약간의 의도치 않은 바이기도 했던 히틀러가 대전 중 '지중해 사태'에 대해 경시하기도 했고, 이는 어느 정도 전쟁의 작은 전환점이 되기도 했는데요. 이는 테일러의 언급대로 히틀러는 중동의 석유 획득보다는 코카서스 지대의 원유를 노린 것으로 후에 드러나기도 했습니다. 이런 대전제 하에, 히틀러는 자신의 의도대로 소련의 서부 지대를 점령하여 빠르게 모스크바를 굴복시키고, 다음 영국을 정리하기로 계획된 것으로 추측되기도 하는데요. 저자인 테일러의 분석대로라면, 1938년 이후로 히틀러는 영국에 대한 의구심을 갖고 있었던 것으로 읽힙니다. 이는 어떻게 보면 나치 독일이 러시아를 재빠르게 정리해 이후 영국과의 전쟁에 모든 전력을 쏟아 넣겠다는 말로도 이해해 보볼 수 있습니다. 따라서 히틀러는 참모부의 의견을 사실상 묵살하며, 3개의 대규모 기갑 집단군을 소련 원정에 동원하게 됩니다. 결론적으로 대략 1세기 반 전의 나폴레옹의 전철을 고스란히 이행한 히틀러는 자신과 독일을 패망의 길로 이끌게 되었습니다. 자신이 그 누구보다 과신하는 스스로의 군사적 식견에도 불구하고 말입니다. 다시 돌아와, 이 '민주주의 국가'로서의 그리스 보존은 영국의 사활적 이익임은 물론, 아드리아해를 통한 이탈리아 군의 진출 저지도 사실상 포함하고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이는 원칙적으로는 독일과 극심한 소모전을 벌이고 있던 소련의 부담을 덜어내려는, 그동안 실패했던 제 2전선의 구축 시도임과 동시에, 후에 마이클 돕스에 의해 진술되는 바와 같이, 그리스가 서방의 영향에 있는 것이, 지중해 제해권을 가진, 영국에게는 몰타의 안위와도 직결되어 있었습니다. 이런 모든 것들을 당시 스탈린이 고려했는지는 다소 불확실해 보이지만, 소련의 그리스에 대한 개입 시도가 처칠에게 거부 당하고 나서, (교환의 성격은 아니겠지만) 루마니아, 헝가리, 그리고 발칸반도가 사실상 소련의 지배가 용인된 것으로 이해되기도 합니다. 물론 이 부분에 대한 언급 역시, 기존 마이클 돕스의 진술과 마찬가지로 테일러 역시, 처칠이 스탈린에게 건넨 그 '쪽지'를 통해, 진실이 교차되고 있었습니다.

수에즈 운하를 둘러싼 그 주변의 북아프리카 전역 역시, 독일 기갑군의 불세출의 명장이라는 롬멜이라는 이름으로 시작됩니다. 리비아가 같은 추축국인 이탈리아의 지배하에 놓여 있던 것을 감안해 본다면, 서쪽 인근 알렉산드리아와 카이로의 운명은 쉽게 판단할 수 없는 지경이기도 했습니다. 이에 롬멜은 자신의 기갑 전력을 아끼면서, 영국의 노회한 장성들을 패퇴시킵니다. 더욱이 본국인 독일에서의 군수 지원을 기대할 수 없었던 롬멜로서는 그가 영국군을 상대로 거둔 승리는 꽤나 귀중한 것이기도 했습니다. 중간에 건강상으로 귀국길에 오른 롬멜의 부재를 깨달은 처칠이 몽고메리에게 진군을 재촉하기도 했습니다만 여전히 영국군의 진군은 더뎠습니다. 특히 제2차 엘 알라메인 전투와 그해, 11월 2일 북아프리카에서 영국이 200대의 전차를 잃은 것은 치명적이기도 했는데요. 그럼에도 본국에서 증파되는 병력으로 인해, 그런 영국군의 실패가 다소 가려지는 측면도 있기는 했습니다. 다만, 11월 4일 이후 영국군이 종단 돌파에 성공해, 이미 빠져나간 롬멜을 뒤로하고 독일군 만명과 무능한 이탈리아 군 2만명을 포로로 사로잡은 것은 그 와중의 전과이기도 했습니다. 결국 극심한 소모전을 초래하면서, 그럼에도 영국은 자신들의 중요한 자산인 수에즈 운하를 독일군으로부터 지켜내기에 이릅니다.    

영화 '라이언 일병 구하기'와 2차 대전과 관련된, 거의 독보적인 시리즈였던 드라마, '밴드 오브 브라더스'의 배경인 노르망디 상륙 작전, 즉 '오버로드 작전' 이후, 그 치열했던 프랑스 서부 해안의 전투, 그외에 다소 지지 부진하게 흘러갔던 로리랑 점령, 반대로 인정할 수 없는 소모전을 연합군에게 강요했던, 소위 아르덴 전역은 앞선 드라마 밴드 오브 브라더스의 주요 무대였습니다. 특히 바스토뉴에 고립된 미국 101 공수 사단이 맞이하게 될, 거의 쥐어 짠 전력의 나치 재공세에서 이들이 겨우 버텨내,1944년 12월 말, 패튼의 대규모 공세가 이어진 그 시점에서 프랑스 북부와 저지대 지역의 온전한 해방의 첫걸음이 시작됩니다. 바로 이 지점에서 테일러는 연합군의 총 군령권이 아이젠하워와 몽고메리, 양자간의 공유된 지침이었다면 이제는 아이젠하워가 온전히 군을 통솔하게 됨으로써, 영국은 (미국의) 속국 지위로 떨어졌다는 '다른 역사의 전환점'으로 지목합니다. 이미 영국의 내수 경제와 군수품 조달이 한계에 이르렀고 이대로 가다간 전쟁이고 뭐고 간에, 영국이라는 국가의 존립 자체가 아예 흔들릴 지경이기도 했는데요. 마침 이를 구원해 준 것이, 루스벨트였고 만약 그의 결단이 없었다면 이 대전의 양상과 결과는 아주 판이하게 달랐을지도 모릅니다. 이후, 영국과 미국이 주축이 된 서부 전선에서의 동진, 그리고 참혹한 스탈린그라드 전투를 수습하고 우크라이나와 크림 반도 등을 수복하며 서진한 소련군이 베를린을 향해서 진군하게 되는데요. 몽고메리는 하루라도 빨리 베를린을 향해 나아가고 싶었지만 아이젠하워는 이를 묵살합니다. 물론 보급과 각 사단의 연계가 필요했고, 독일 내부의 진공은 때에 따라 정치적인 고려가 필요할 때도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렇지만 전황에 도움이 되지 않는 민간인을 향한 대규모 항공 폭격, 드레스덴과 함부르크, 프랑크푸르트, 베를린으로 이어지는 대규모의 민간인 학살은 분명 역사의 오점으로 남았다고 볼 수 있겠습니다.

일본에 대한 두 기의 원자 폭탄 투하, 그리고 1945년 8월 8일, 소련의 대일본 참전과 함께 유럽과 태평양에서의 전쟁은 막을 내립니다. 저자인 테일러는 히틀러의 만용과 영토에 대한 야욕으로 시작된 1938년부터, 추축국들이 최대한의 성세를 자랑했던 1942년 이후, 진정한 세계 대전의 서막은 저자의 분석대로라면 1942년 12월 이후가 연합국과 추축국의 운명을 바꿔 놓았다고 판단됩니다. 일본은 원할한 내수 자원과 군수 물품 생산을 위해, 지속적인 원료 공급이 가능한 동남아 지역이 필요했고 그런 의미에서 대동아 공영권이 발동되기도 했습니다. 또한, 일본인들에 의해 불세출의 영웅으로 취급받는 해군 장령, 야마모토가 어쩔 수 없이 진주만을 타격했지만 그곳의 막대한 유류 저장고를 없애지 않고 철수해, 진주만 공습은 일본 제국주의에게 절반의 성공으로 그치고 맙니다. 결국 최종적으로 독일과 일본은 미국의 막대한 생산력을 경시했고 그것을 통한 대전의 전개가 어떠한 영향을 미치게 될지 근본적으로 분석하지 못한 원인이 주요 패착이 되기도 했습니다. 베를린과 도쿄에서의 항복과 그로 인한 대전의 종전에 대해, 저자인 테일러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 2차 세계 대전은 좋은 전쟁이었다고 단언하는데요. 자본주의를 기반으로 한 민주주의 세력이 도덕적으로도 부합되지 않고 오히려 인명을 경시하고 배타적 인종주의에 매몰된 망령된 제국주의 세력을 세계 지도에서 제거한 것이 그는 옳은 결정이었다고 보았습니다. 물론 오늘 국제 체제의 발단이 이 2차 대전이었던 것만큼, 만약 이 대전이 없었다면 우리에게 민주주의는 아마도 종말을 고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특히 한반도의 운명은 더욱 알 수 없었겠죠. 여기서 좀 더 첨언하자면, 테일러는 일본의 당시 행태를 너무나 인명을 경시한 제국 정도로 스치듯 가볍게 보고 있지만 일본 제국주의자들이 과거 네덜란드인들과 영국인들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이 지역에 일본인들의 패악과 착취가 도를 넘어섰다는 분석 또한, 우리가 귀담아 들을 필요가 있다고 여겨집니다. 그런 의미에서 히틀러와 히로히토, 그리고 초전에 지리멸렬한 무솔리니의 이 참혹한 대전에 대해, 명실상부한 숙고와 성찰이 없다면 지금 준동하고 있는 여러 극단주의 세력의 패악을 다시금 경험하게 될 역사의 반복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테일러는 바로 이 지점에서 이 책을 통해, 우리의 경종을 울리고 있었습니다.              






훗날 사람들은 히틀러와 그가 이끌었던 국가사회주의 운동이 베르사유 조약으로 인해 탄생한 것인지 아니면 대공황으로 탄생한 것인지에 대해 논쟁을 벌였다. 답은 두 가지 모두다.

자본주의 세계는 소련을 승인하지 않고 배척함으로써 보복했고 간섭 전쟁에서 군사적으로 소련을 몰락시키려 했다.

독일의 승리로 독일인들이 가장 우월한 종족이고 다른 모든 민족들은 그 밑의 지위에 있으며 몇몇 종족을 물리적으로 말살해야 한다는 국가사회주의 원칙과 실행에 대한 주장이 뒤따랐다.

루스벨트는 가장 알 수 없는 사람이었다. 그에게는 편법과 고결한 원칙, 상황에 따른 득실 계산과 원대한 목표가 하나하나 헤쳐 낼 수 없을 정도로 뒤엉켜 있었다.

여름이 다 가도록 체임벌린과 그의 동료들은 체코슬로바키아 정부가 히틀러의 요구를 받아들이도록 하고 프랑스인들이 체코슬로바키아와 맺은 동맹을 포기하도록 하기 위해 애쓰고 있었다.

체코인들과 프랑스인들은 오로지 전쟁이 두려워서 양보했고, 체임벌린은 영국 대중에게 자신 역시 전쟁이 두려워서 합의하는 것은 아니라고 납득시키는 데 어려움을 겪었다.

뒹케르크 철수는 영국에서 놀라운 성과로, 거의 승리로 환영 받았다. 프랑스에서는 그 일이 원한 어린 감정을 불러왔다. 패배를 앞두고 철수하는 일은 언제나 영국인들의 방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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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스테르담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224
이언 매큐언 지음, 박경희 옮김 / 문학동네 / 202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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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큐언은 1948년, 영국 햄프셔 주 올더숏에서 태어났습니다. 그의 부친은 스코틀랜드 출신의 노동 계급으로 군에 입대해, 소령에 오른 입지전적인 인물이었습니다. 매큐언은 아버지의 주둔지를 따라, 영국 밖에서 생활하다, 12세가 되던 해에 영국으로 돌아올 수가 있었는데요. 그는 서퍽의 런던 소년들을 위한 중등 문법학교인 울프스톤 홀 스쿨에서 교육을 받게 되고, 1970년에 이스트 서식스 주 팔머에 위치한 공립 연구 대학인, 서식스 대학에서 영문학 학위를 취득합니다. 이후 이스트 앵글리아 대학에서 문학 석사 학위를 받았습니다. 그는 지금까지 소설가로서는 매우 드물게 6번이난 부커상 후보에 오릅니다. 1998년에 바로 암스테르담으로 부커상을 수상하기도 했는데요. 또한 2011년에는 "사회에서 개인의 자유에 대한 작품"을 쓴 작가에게 수여하는 예루살렘 상을 수상했으며, 2012년에는 서식스 대학이 문학에 기여한 공로를 인정해, 매큐언에게 50주년 기념 메달을 수여하기도 했습니다. 뒤이어 2020년에는 독일 문화원이 "독일어와 국제 문화 관계에 뛰어난 공헌을 한 비독일인에게 수여"하는, '괴테상'을 수상합니다. 이 뿐만 아니라, 1917년에 영연방 왕국 훈장인 '명예 동료 훈장'과 예술과 과학에 기여한 영국의 기사 훈장인 '대영 제국 최고 훈장'을 받기도 했습니다. 따라서, 그의 이 책은 원제, "Amsterdam"으로, 지난 1998년에 출간되었고, 다만 이번 판의 번역에 쓰인 것은 2016년의 출간본입니다. 국내 초도 번역은 1999년 7월에 있었고, 제가 구입한 판본은 2023년 5월의 개정판 2쇄 본입니다.

이 작품은 '몰리 레인'이라는 여성의 갑작스런 장례식과 함께 본격적인 서사가 진행됩니다. 영국 내각의 고위 관료이자, 외무부 장관인 '줄리언 가버니', 시사지인 저지의 편집국장인 버넌 핼리데이와 영국을 넘어 유럽에서 명성을 얻고 있는 심포지엄 작곡가인 '클라이브 린리', 그리고 앞선 몰리의 법적 남편이라고 볼 수 있는 조지 레인' 등 이들은 극을 진행하는 데 있어, 주요 인물이기도 합니다. 앞선 몰리라는 여성은 앞에서 열거한 인물들과 한때 연인 관계였거나 혹은 부적절한 관계를 맺은 인물이기도 한데요. 그녀의 인간적인 매력이 어떠했는지는 앞선 이들의 대화나 회상을 통해 잘 드러나고 있었습니다. 다만 앞에서 열거된 두 사람은 명백히 아내가 있었기에 이는 달리 말하자면 외도라는 측면에서, 부도덕한 불륜 관계라고도 말할 수 있겠습니다.


이미 고인이 된 몰리는 사망 당시 46세로, 어쩌면 그녀는 당연히 건강을 기대할 수 있는 상황이기도 했습니다. 물론 작가인 매큐언은 현 남편인 조지 레인에 의한 독살이나 사고사를 대놓고 말하고 있지는 않지만, 이 부분은 작가가 한발 물러서 독자들의 상상에 맡기고 있는 것으로 여겨집니다. 몰리의 생전 마지막 상대가 외무장관 줄리언 가버니라는 점은 극에서 상당히 중요한 설정으로 자리하고 있었는데요. 그는 일종의 인종주의자이자 정치적으로는 보수주의자로 극의 배경인 1996년 이후의 영국 사회에서 대두된 한 쪽의 정치 세력을 대변하는 인물이기도 합니다. 가버니는 소위 입지전적인 인물로, 아내인 로즈와 함께 가정을 일구었고 의사인 아내의 경력에도 조언과 도움을 아끼지 않은 외조도 드러나고 있는데요. 그가 법대를 졸업해 변호사가 되었고 이후 정치 경력을 통해 내각의 장관이 된 이력은 전문직과 고위 정치인이라는 자신만의 성공한 성을 쌓았으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인이 된 몰리와 부적절한 관계를 유지했습니다. 심지어 극 중반에 그의 아내를 통해 알게 된 사실은 몰리가 가버니는 물론 아내와도 직접적인 교류를 했다는 부분이었습니다.

슈베르트를 경멸하면서도 상대적으로 베토벤을 향한 애정과 그런 악곡의 창작에 대한 예술을 천직으로 삼고 있던 클라이브 린리는 극 초반에는 상당히 합리적이면서 이성적으로 그려지는 측면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런 그의 내면은 다소 나약하고 어느 정도 충동적인 일면을 갖고 있는 인물이기도 합니다. 어쩌면 예술가들에게 이런 충동적인 측면은 당연한 부분일 수도 있겠는데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술가로서 특유의 인간적인 매력도 함께 갖고 있습니다. 그가 읊조리는 예술과 삶에 대한 관계와 이것들을 통한 자신의 지향, 여기에 고통스런 노력을 통해 탄생되는 작품에 대해 스스로가 갖는 자부심 등은 예술가들이 흔히 갖는 인간적인 면모를 떠올리게 합니다. 이렇게 분주한 생활을 영위하는 와중에도 그는 오랜 친우인 버너를 향한 배려와 도의는 꽤나 놀라운 부분이기도 했는데요. 더불어 그 역시도 지난날 몰리와 뜨거운 사랑을 했고, 다른 사람들과는 다르게 연인으로서, 그녀에게 청혼을 고민했던 사람이기도 했습니다.

영국의 중견 시사지인 '저지'의 편집국장인 버넌 핼리데이는 직장 내에서 쉽게 적이나 친구를 만들지 않는 그만의 처세술로 사내 요직인 국장의 자리에 오른 인물입니다. 물론 그럼에도 친구인 클라이브에 대해선 자신을 통제하지 못하는 듯, 치기 어린 모습도 보이고 극이 진행되는 동안 이 두 사람의 어느 정도 불협화음이 잡히기도 있지만 그럼에도 이들이 진정으로 우정을 나눈 사이라는 점을 느낄 수 있는데요. 다만, 앞선 클라이브가 한동안 일이 없던 버넌에게 보인 우정 이상의 호의는 꽤나 특별한 부분이었습니다. 이것은 약간의 논외지만, 우리가 쉽게 현실에서 볼 수 있는 소위 친분이나 우정관계라는 것이 어느 한쪽의 일방적인 희생과 배려, 그리고 호의만이 있다면 그 관계는 실로 건전하지 않을 수 있겠는데요. 물론 매큐언의 이 작품은 많은 상징과 사회적 관습, 통찰을 담고 있지만 무엇보다 클라이브와 버넌, 이 두 사람의 지난날 함께한 막역하고도 서로 간의 밀접한 기억들은 이런 관계의 불균형이 지속된 상황에서 서로가 순간 분을 못 참고 벌인 충동적인 행동이 극의 충격적인 마무리를 장식한 것은 어떻게 보면 혀를 내두를 정도였습니다. 이는 마치 영화감독 쿠엔틴 타란티노 식의 의도된 희극과 유사하게 읽히기도 했습니다.

극의 주요 변곡점이었던, 버넌이 왜 줄리언 가버니를 쓰러트리려고 했는지는 어느 정도 추측해 볼 수 있습니다. 갑작스레 세상을 떠난, 그런 몰리를 향한 연민과 동시에 줄리언을 향한 사적인 질투가 이 사건의 주요 원인이 되었을 것 같은데요. 이러한 부분을 자신의 이익과 절묘하게 결부시킨 조지 레인이 그 시점을 이용했는지는 모르겠지만, 누구의 말대로 버넌은 '치솟는 감정의 노예'가 되었던 것은 분명해 보입니다. 특히 누구보다 스스로 노력해, 치열한 그 자리에 올랐다고 믿는 자부심과 국장이라는 지위에 올라서도 신중한 처세를 추구했지만, 경쟁지와 비교해서 실적이 하락하고 있는 현실과 그런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앞선 조지 레인의 의견을 수락한 것은 그의 경력과 삶을 배경으로 했을 때는 큰 패착이 되고 말았습니다. 이 과정에 조지 레인의 야료가 있었던 것은 분명해 보이기도 하는데요. 또한 신자유주의 하에 있던 소위 경쟁적 기업이라는 맥락에서, 다른 사람의 몰락을 이용하여 자신의 영달을 추구하는 등의 합리주의로 포장된 이기주의를 이 부분에서 여실히 엿볼 수 있었습니다. 어찌됐든 이런 서사는 개인의 추락을 떠나 상당히 비극적인 모습이기도 했습니다.   

작가인 매큐언은 일종의 치정극을 기반으로, 당시 영국 사회가 안고 있던 문제들을 다루고 있습니다. 기후 변화에 따른 사회적 합의가 부족한 상황에서 벌어지는 자본주의자들과 환경주의자들의 갈등, 지금에서야 성정체성과 관련된 LBGT 문제가 전사회의 이슈가 되기도 했지만, 여기서 그려지는 당시 영국 사회의 성담론과 성소수자들에 대한 관념은 여전히 고심해 볼만한 부분이 있었습니다. 즉, 줄리언에 대한 버넌이 주도한 위기 혹은 그 음모가 성소수자 코스프레로 순간을 모면하긴 하지만 이것은 결국 그의 정치적 경력을 끝장나게 만드는데요. 매큐언은 이 장면을 유독 콕 집어 세르반테스 식의 우스꽝스러운 연출로 비꼬면서, 가히 한편의 코미디 극으로 만들고 있었는데요. 이는 우선적으로 우리 세태에 대한 극명한 비판에서 뿐만 아니라, 그런 이슈가 어떻게 한 치의 고려도 없이, 어느 정도 사회가 경직적인 태도를 보일 수밖에 없는 성담론에 무조건적으로 투항하는 모습을 매큐언은 우리 사회를 빗대어 말하고 있는 것으로 여겨졌습니다. 이는 어떻게 보면 정치적 올바름에 대한 비판적 회고라고도 볼 수 있겠습니다. 

제가 읽은 매큐언의 이 작품은 제가 읽은 어떤 장편들보다 극의 짜임새와 사건의 진행이 군더더기 없이 깔끔한 모습이었습니다. 특히, 클라이브가 버넌과 다툰 뒤, 충동적으로 감행한 산행에서 맞닥뜨리게 된 그 사건은 어떻게 보면 전형적이면서도 다른 한편으론 독창적인 전개라고 볼 수 있었는데요. 더욱이 클라이브가 버넌에게 본심을 드러내어, 마치 데이비드 흄이 애덤 스미스와 맺었던 우정의 한 진면목처럼 부탁하는 그 장면이, 나중에 그렇게 비극적으로 이용될 줄은 저 역시도 미처 예상하지 못한 부분이었습니다. 결국 이것은 매큐언의 영리한 글쓰기의 한 장면이라고 볼 수 있겠는데요. 뒤이어 조지 레인이 이 두 사람의 몰락을 지켜보며, 마치 아내의 부적절한 정부들을 세상에서 지워버리는 것처럼 구는 행동 역시, 냉혹한 기시감과 더불어 생각할 거리들을 안겨주기도 했습니다.

누구의 도움도 받지 않고 스스로 노력해, 사회에서 한 축을 맡게 된 놀라울 만한 의지와 능력을 소유한 사람들이 돈이나 권력보다 가장 먼저 갖춰야 할 점은 자신에 대한 냉정한 평가임은 아마도 누구나 쉽게 부정할 수 없을 겁니다. 사회적인 승리에 도취되어, 자신의 삶을 객관적으로 바라보지 못하거나 심지어 그런 승리감에 부적절한 행동을 일삼는 것은 아마도 개인적 나약함과는 그저 거리가 멀다고 볼 수 있겠는데요. 매큐언은 바로 자신의 이 작품에서 마치 커다란 복지와 사회적 지원의 수혜를 받으며 성장한 68세대가 결국 뒤이어 등장한 마거릿 대처에 적절히 대항하지 않고, 점차 기득권에 안착했으며 그런 과정에서 스스로 도덕적 기준과 보편성을 상실하게 되었다는 점을 증언하고 있었습니다. 이는 그저 전문직이라는 이유와 고위 직업군의 종사자라는 자격만으로 본성이 범한 과오가 면책될 수 없다는 점을 이 작품은 복합적으로 이를 드러내고 있기까지 했는데요. 이는 1980년대의 미국 드라마가 아주 대놓고 성공한 경력을 보유한 중산층들의 외도와 불륜을 극의 소재로 삼은 부분과 어느 정도 일맥상통한다고 볼 수 있겠습니다. 그럼에도 이 작품은 대미를 포함한 후반부의 전개 과정이 단순히 남녀 간의 치정이 얽힌 복수극을 다룬 심리 드라마가 아니라는 것인데요. 여기에 작가 본인도 후반부의 서사를 통해, 인간이 불가해한 존재라고 인정했지만 인간이 스스로를 몰락에 이르게 하는 길은 자신에 대한 과신과 주변을 제대로 살펴보지 않는 안일함 일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치정극이라는 허울을 쓴 이 주요 인물들의 몰락 과정에서도 여실히 자신의 이익을 얻는 자들이 있다는 냉혹한 현실과 이를 기민하게 해석할 수 있는 유럽 합리주의의 위태로운 양면적 속성은 우리가 주목할 필요가 있어 보입니다. 


-극의 대미 즈음에 매큐언은 그 비극적 사건을 두고 "이것이 그들 운명의 희극적 성격이었다."고 짧게 언급하고 있었습니다.  









그런 에너지, 그런 행운, 전후의 사회복지국가에서 태어나 나라가 주는 젖과 꿀을 먹고 자라고, 부모들이 이룬 소박한 부에 얹혀살다가 곧장 완전 고용의 시대에 돌입한 세대.

그는 외국인 혐오와 과도한 형벌이라는 뻔한 노선을 앞세우며 정치판에서 이력을 다져왔다.

"옳은 지적입니다. 하지만 린리 씨. 이 세상에 오류가 없는 사법체계란 없습니다."

쉽게 기억할 수 있고, 유행을 초월하며, 저물어가는 한 세기와 그 시기의 무분별한 잔혹성을 애도하는 한편 눈부신 창조의 업적을 기리며 폐부를 찌르는 아름다운 멜로디. 먼 훗날 천 연주의 흥분이 충분히 가라앉고 불꽃놀이와 평가분석, 간추린 역사 서술과 더불어 새천년을 기리는 행사들이 끝난 후, 이 거부할 수 없는 멜로디는 사라져간 세기의 엘레지로 남으리라.

유럽에서 음악은 줄곧 인간 본성이 불가해하다는 사실을 인정해온 인본적 전통 위에 구축되었기 때문이다.

서른 살 때나 지금이나 몸은 결국 별 차이가 없었고, 그를 지탱해주는 것은 체력이 아니라 정신력이었다.

이름을 기억하는 버릇은 노회한 정치가의 처세술이라는 사실을 그녀도 잘 알고 있었지만, 그럼에도 그의 마음씀씀이가 고마웠다.

그렇다 빛을, 자신에게 주어진 권한과 공공의 선이 하나되어 타오르는 불꽃을 느끼고 있었다. 그의 단호한 손길로 국가라는 기관에서 종양을 잘라낼 순간이 임박한 것이다.

그러나 그런 의견에 고맙게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저널리즘이란 어느 면에서 자연과학과 비슷하기 때문입니다. 최고의 기사는 적수인 반대의견들을 물리치고 살아남는 기사이며, 그 과정을 통해 더욱 강해집니다.

그 목소리의 설득력은 그녀가 속한 계급이나 장관의 아내라는 위치보다는 전문직 종사자의 긍지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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셰리
시도니 가브리엘 콜레트 지음, 장소미 옮김 / 녹색광선 / 202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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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도니-가브리엘 콜레트는 1873년 프랑스 부르고뉴 지역인 욘의 생-소베르-앙-퓌세에서 태어났습니다. 그녀의 아버지는 쥘-조셉 콜레트로 전쟁 영웅으로, 제2차 이탈리아 독립 전쟁에서 부상을 당해 다리를 절단했습니다. 이후 그는 자녀들이 태어난 생-소베르-앙-위세에서 세무 징수원의 직책을 맡게 됩니다. 콜레트는 어려서 공립학교에서 수학하고, 1893년에 '윌리'라는 필명을 사용한 작가인 헨리 고티에-빌라르와 결혼하게 됩니다. 이때 그녀의 첫 네 편의 소설은 그의 이름으로 출간됩니다. 그러다 이 콜레트와 윌리 부부는 1906년에 부부 관계를 청산했지만 그들의 이혼은 1910년까지 확정되지 않습니다. 1912년에 콜레트는 르 마탱의 편집자 헨리 드 주브넬과 재혼을 하게 됩니다. 콜레트와 주브넬의 결혼 생활 역시, 1924년 이혼으로 종지부를 찍게 되는데요. 이때의 이혼 책임은 부분적으로 콜레트에게 있었는데요. 당시 그녀는 의붓 아들과 부적절한 관계를 맺고 있었습니다. 뒤이어 1925년에는 유대인이었던 모리스 구드케와 재혼하고 그는 그녀의 마지막 남편이 되었습니다. 제2차 대전 당시 독일군이 파리를 점령하자, 파리의 팔레 루아얄에 살고 있는 그녀의 남편이 유대인이라는 이유로 게슈타포에 체포되기에 이릅니다. 다행이게도 독일 대사의 프랑스인 아내가 중간에서 관여해, 콜레트의 남편인 구드케는 바로 석방되지만, 독일군 점령 내내 이 부부는 다시 체포될지 모른다는 불안감을 안고, 전쟁 기간을 살게 됩니다. 1944년에는 콜레트에게 큰 명성을 안겨다 준 작품인 지지 Giji가 줄판되었고, 1948년에는 노벨 문학상 후보에도 지명되었습니다. 따라서 그녀의 열 한번째 장편소설인 셰리는 원제,"Cheri"로 지난 1920년에 초도 출간되었고, 국내에는 2024년 12월에 번역되었고, 제가 구입한 판본은 2쇄본으로 2025년 1월 판본입니다.

일부 해외 서평 블로거들에게 있어 이 작품의 주인공인 누누(레아 드 롱발 부인)가 '사교계 고급 창녀'로 이해되고 있지만 당시 프랑스 사회가 당시 귀족 계급의 마지막 잔재를 고려해 봤을 때, 창녀라는 표현은 조금 많이 나간 해석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 연유로 이 작품에서 상당히 흥미로운 수식어로 등장하는 '적대적 여자들끼리의 우정'이라는 표현은 샤를로트 플루 부인과 레아의 관계 를 언급하는 것 뿐만 아니라, ('가벼운 여자들의 적대적 친교'도 비슷한 맥락일 겁니다) 두 사람을 둘러싼 사교계의 미망인들과 과부들의 서로를 향한 형식적인 모습은 꽤나 사실적으로 느껴졌습니다. 앞선 샤를로트 플루 부인의 아들인 '프레드 플루 주니어'가 바로 레아가 그를 향한 지칭이자, 이 작품의 제목이기도 한, "셰리"인데요, 이는 사교계 여성이 그 시대의 젊은 남자 애인을 에둘러 말하는 표현들 중 하나입니다.

레아는 극중의 시점에서 49세의 미망인 혹은 이혼녀로 보이는 여성으로 그 또래의 여성들과는 비교할 수 없는 아름다운 외모와 젊음을 유지하고 있는데, 그녀 자신이 속한 사교계에선 특별히 가십거리의 주인공이기도 합니다. 작가인 콜레트는 자신의 이 작품에서, 무엇보다 '늙은 여자'라는 세간의 단어와 그 의미를 빗대어 서술하는 문장들을 여럿 볼 수 있었는데요. 흔히 영화나 소설에서 보면 20대 가량의 젊은 여자들이 간혹 30대나 40대 여성에게 '늙은 여자'라는 표현을 쓰기도 합니다. 이는 기본적인 의미를 넘어 여자들 세계에선 상당히 모욕적이고 심지어 멸칭으로 받아들이는 경우도 있습니다. 이 때문에 이 소리를 들은 여자들이 작게는 말다툼이나 크게는 몸이 엉켜 큰싸움으로까지 벌어지는 장면을 숱하게 볼 수 있었습니다. 이처럼 콜레트가 논하는 '늙은 여자'에 대한 의미는 어떻게 보면 본래적이면서도 여주인공 레아를 향한 좀 더 변형된 의미로도 읽힙니다. 육체적 젊음이 시들어 자신이 더이상 남성들에게 매력이 되지 못한다는 얼마간의 서사와, 그것에 대한 예민한 태도를 보이는 레아의 모습은, 어느 사회나 이 '늙은 여자'에 대한 투영된 모습을 엿볼 수가 있었는데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극중 레아에게는 그런 '유지되는 젊음'외에도 그녀 스스로 적지않은 부를 소유하고 있어, 그 시대에서도 상당히 보기 드문 배경의 여성임은 분명해 보였습니다.

이제 갓 20대를 바라보는 셰리는 어머니의 지나친 양육으로 인해, 혹은 자라면서 아버지의 감화와 영향을 받지 못한 것인지, 상당히 제멋대로 또한 마음 내키는대로 행동하는 인물입니다. 이렇게 그에게는 우연히 6년 전에 인연을 맺은, 누누라는 이름과 그 기대가 딱 들어맞는 여주인공인 레아가 곁에 있습니다. 물론 모두에게는 쉬쉬하며 만나고는 있지만 어찌된 영문인지 이 둘을 둘러싼 사교계의 인사들은 거의 알고 있는 눈치이기도 했습니다. 저는 이 두 사람이 함께 있는 장면과 이들이 서로 나누는 어색하면서도 때론 친밀한 감정적 분위기 속에, 남자로서 가장 놀라웠던 부분은 셰리가 특히, 레아의 품안에서 가장 편안히 잠을 잔다는 사실이었습니다. 이것은 20대 남자의 때도 없이 불타오르는 정욕에서 세간의 편견처럼, '다루기 쉬운 늙은 여자'를 손쉽게 손에 넣은 것이 아니라, 오히려 레아가 그에게 제공하는 편안함, 사려 깊은 태도, 신중한 언행과 같은, 자신의 모친과는 비교할 수 없는 완벽히 다른 유형의 여성이었기에, 작품 대미에서도 "내가 아는 레아는 그럴 수 없다"는 표현으로 독자들의 예견을 반박하기도 했습니다. 이는 유독 자신만의 레아라는 의미이기도 했습니다.

극중에 '젊은 부부의 사랑, 젊은 아이들'이라는 표현으로 외형적으로 보이는 자신과 셰리의 관계는 어찌됐든 정리되어야만 했다고 믿은 레아는 결혼 전에 자신에게 부득불 찾아 온 셰리를 단호한 거절과 함께 신부에게 보냅니다. 그럼에도 셰리에게는 자신의 아내인 에드메가 주는 '젊음의 육체'는 더이상 의미를 가질 수 없었고, 사랑하지 않는 아내에 대한 남편의 냉정함이 은연 중 드러납니다. 에드메에 대한 자신의 감정, 그리고 결혼 생활이 녹록치 않을 것이라는 느낌과 이러한 불편한 분위기에 셰리는 겉으로 어쩔줄을 몰라하는데요. 바로 그것의 배경에는 '돌이켜보니 자신이 레아를 상실했다'는 자기 혐오와 연민이 뒤섞이는 본질적인 감정에 있었습니다. 그래서 무모한 인생을 보내고 있는 식객이자 '가까이 두지 않았던' 지인인 데스몬드와 호텔을 전전하며, 자신의 섣부른 방황을 합리화 하기도 하는데요. 결국 이렇게 극이 진행되는 지점에서, 콜레트는 어쩌면 독자들이 몹시 기대하는 이 둘의 '재회'를 자신만의 서사로 준비하게 됩니다,

단순히 사랑이 없는 결혼이라는 표면적인 의미에서 보다는, 이미 깊은 사랑을 경험한 사람에게 다른 사람이 눈에 들어오기란 아마도 어려운 법일 겁니다. 그렇지만 복선과 여러 감정선을 통해, 셰리에게 자신의 아내인 에드메를 어느 정도 받아들이게 됩니다. 물론 그것은 사랑이란 감정은 분명 아니었습니다. 그 현실적 처지와 인정을 받지 못하는 사람의 애달픔을 스스로 깨닫게 된 것이죠. 간혹 다른 문학 작품을 보면, 결혼을 앞둔 여자가 오래 교제한 전 애인을 자발적으로 찾아가는 장면이 나오기도 하는데요. 아마 현실에서도 그런 이야기들이 제법 있을 겁니다. 너무나 내밀한 내용이어서 쉽게 입밖으로 나오지 않는 것 뿐이겠죠. 작가인 콜레트가 이 두 사람의 재회를 저런식으로 준비한 것은 아니겠지만 '레아'가 6개월 간의 여행에서 돌아왔고 스스로 홀가분하다고 여기는 그녀에게 돌아온 것은 역시나 의도가 짙은 만남이었습니다. 이는 레아와 셰리에게 각자의 다른 의도와 희망으로 연결된 재회였기 때문입니다. 레어가 과거에 경험했던 '성숙한 남자'의 이야기들을 문득 잊은 것처럼, 셰리 역시 그 순간은 결혼한 남자가 아니었습니다. 이렇게 지난 날 끊임없이 함께한 시간이 존재함에도 불구하고, 6개월 간의 멀어짐은 두 사람을 그만큼 엇갈린 길로 내몰았습니다. 그럼에도 저는 레아의 마음도 이해할 수 있고, 작가가 레아의 눈을 통해 본 셰리의 모습도 충분히 공감이 되었습니다. 특히, 작가는 셰리라는 인물 조성에 여느 다른 소설의 등장 인물들보다 특별한 개성을 만든 것은 여러모로 놀라운 점이었습니다. 이처럼 이 두 사람의 사랑은 다른 식으로 증명될 수밖에 없을 것으로 예상이 되었는데요. 작가가 마련한 대미가 그 끝이 아니라면, 두 사람은 또 그렇게 다른 재회가 예비되리라 생각됩니다.     



-그동안 과거의 다른 관계에서 너무나 많이 쓸데 없는 돈을 소비해서 후회된다는 레아는 막상 셰리에게는 자신이 해준 것이 없음을 알고 몹시 놀라는데요. 극에 등장하는 애첩이라는 단어보다는 레아는 셰리에게 정부가 맞을 겁니다. 이 서사에서 정부(또는 애첩)는 자신이 준 것보다 더 많은 것을 받으려고 한다고 했는데 이런 것이 애초에 배제된 관계라면 그것은 아마도 사랑에 가까울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녀는 집사의 자제하는 시선 속에서 ‘사모님은 정말 아름다워‘를 읽어낼 여유를 가졌고 그것이 불쾌하지 않았다.

서로를 침묵 속에 내버려두는 그 오랜 습관이 세리에게는 무기력을 레아에게는 평화를 가져다주었다.

"그러니까 뭘? 혹시 내가 네 입술을 좋아한다고 생각해? 딱한 놈, 난 너보다 더 고약한 놈들과도 키스해 봤어. 그게 뭐? 내가 네 발밑에 엎어져서 날 가져!라고 외치기라도 할 것 같아? 기껏해야 젊은 여자들밖에 모르는 놈이. 내가 겨우 키스 하나로 정신줄을 놓은 것 같냐고!"

그녀는 그 속에서 자신의 이름과 "자기야..."와 "이리 와..."와 "당신을 절대 안 떠나..."를 식별해 냈다.

얼마나 많은 순간에 그녀는 정복당했고, 그때마다 정복욕과 고백하고 싶은 쾌락에 휩싸여 그의 이마를 자신의 이마로 누르며 속삭였던가.

그는 아내에 대한 자신의 권위를 과시하고, 필요하면 짧은 명령으로 자신의 망설임을 위장했다.

‘애첩‘이란 대체로 자신이 준 것보다 더 많은 걸 받기 위해 술수를 쓰는 여인을 일컫죠, 알아들어요?

레아는 성숙한 남자는 이별을 하면 했지 명명백백히 자신을 육체적으로 평가하며 다른 남자, 미지의 남자, 보이지 않는 남자와 비교하는 눈길을 허용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간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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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에겐 논쟁이 필요하다 - 우리를 분열시키는 이슈에 대해 말하는 법
아리안 샤비시 지음, 이세진 옮김 / 교양인 / 202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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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리안 샤비시는 쿠르드계 영국인으로, 케임브리지에서 자연 과학을 전공했습니다. 또한 천체 물리학으로 동대학에서 석사 학위를 취득하는데요. 이후 그녀는 옥스포드 대학으로 옮겨, 물리학의 철학으로 두번째 석사 학위를 마치고, 케임브리지로 돌아와 제러미 버터필드와 휴 프라이스의 지도하에 철학 박사 학위를 취득합니다. 그녀는 2013년부터 2015년까지, 레바논 베이루트에 소재한 아메리칸 대학에서 철학 조교수로 일했고, 2015년부터 2019년까지는 잉글랜드 브라이튼에 소재한 공립 연구 대학인 서식스 의과 대학의 윤리학 강사를 거쳐, 이후 수석 강사에 이릅니다. 샤비시는 기본 윤리와 페미니스트 철학, 과학 철학, 사회적 인식론 등에 큰 관심을 갖고 있는데요. 특히, 샤비시는 도덕 철학과 페미니즘이 접목된 생명 윤리, 의료 윤리 및 이와 관련된 대학원생 지도 과정을 수행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그녀의 이 책은 원제, "Arguing For A Better World"로 지난 2023년에 출간되었고, 국내에는 2024년 5월 번역 출판되었습니다.

저자의 이 책은 워키즘, 즉 '깨어있는 시민'이라는 정치적 의식과 관련된 사회 운동과 정치적 올바름에 대한 사회철학적인 분석과 오늘날 많은 사회에서 벌어지고 있는 소위 '구조적 불의'에 대해, 철학자로서의 비판적 의견까지 담고 있습니다. 사실 우리에게 철학은 어떤 현상이나 사건을 본질적으로 탐구하는 학문이기도 한데요. 여기에 현재 정치적인 영역에서 극단주의 우파들이 '표현의 자유'라는 타협할 수 없는 가치(여전히 헌법적 규정에서)를 앞에 내세워, 심각한 경제적 불평등 상황에 더욱 확산된 인종주의와 그런 맥락으로 점층되어 나타난 불의에 마찬가지로 철학자로서의 고민이 이 책에 고스란히 담겨 있습니다. 저는 저자가 말하는 사회 구조적 문제와 그런 양상, 그리고 그 속에서 나날이 고통 받고 있는 소수자들에 대한 연민과 얼토당토 없이 소수자들이 너무나 많은 권리를 사회에서 누리고 있다는 식으로 오도하는 그런 허위에 대한 문제들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럼에도 사회 구성원으로서의 개인이 스스로의 이성으로 사회가 내포하고 있는 심각한 편견과 인종주의, 그리고 전통적 가부장제에 근거한 남녀 갈등 문제를 명확히 판단할 수 있다는 가능성은 아마도 부정할 수 없을 겁니다. 하지만 인간이 스스로 조장한 잘못된 사회적 관습을 그저 오래된 전통과 그것을 개선하는데 있어, 만연한 대립이 우려스럽다는 식으로 자신들의 이익과 권리를 다수에 기대어, 획책하는 극단주의자들의 모습은 저자가 말하는 '구조적 불의'라는 문구가 무엇을 말하는 건지 여실히 깨달을 수 있었습니다.


앞선 내용이 순차적으로 논의되는 글의 2장에서, "차별과 배제를 선동하는 은밀한 말"이라는 주제 의식은 근래 어느 지식인이나 학자가 쉽게 다루지 못한 주제이기도 합니다. 최근에 읽었던 수전 니먼의 글도 정치적인 측면에서 엿볼 수 있는 당면한 현실과 다소 한발 물러서 있는 듯 보이는 분석으로, 요즘 학계의 성향이 아닌가 싶기도 했습니다. 특히 2장에서 인용된, "넌 날 알잖아. 난 인종차별 하는 사람은 아니지만 중국인들은 도무지 믿을 수가 없어"와 같은 소위 저자가 규정하는 무화과잎은 "마치 나는 평범하고 정상적인 사람이야. 그렇지만 내가 보는 다른 인종은 의구심이 들어"와 같은 아주 교묘하면서 지독한 인식이라고 느껴졌는데요. 찰스 다윈 이후로 규명된 인종에 대한 분류의 역사가 백인을 그 기준점으로 놓고, 흑인과 유색 인종으로 규정한 학문적 매개와 같은 사회적 관습이 여전히 많은 사람들에게 지배적인 인식이 되어 왔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을 겁니다. 과거의 계몽주의자들이 불의인 것을 인지하고 있음에도 노예 제도 존치를 위해, 인간이라면 마땅히 존중 받아야 될 인간의 존엄성을 서아프리카에서 끌려온 흑인들에게 만큼은 인정하지 않은 것은 매우 유명한 일례이기도 한데요. 일전에 우연히 어떤 유튜브 방송에서 접한, 이 찰스 다윈의 이야기들이 많은 사람들의 머릿속에 '과학적 학문'의 한 맥락으로 명시된 것은 시간상 거의 백년이나 흐른 시점이었다는 분석은 그만큼 '정당하지 못한 사회적 관습'의 깊은 뿌리를 가히 짐작하게 합니다.

마찬가지로 이 장에서. 2017년의 영국의 한 조사는 응답자의 74퍼센트가 자신이 다른 인종에 대해 '아무런 편견도 없다'고 답한 결과를 전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많은 영국 시민들 다수는 자신이 인종에 대한 편견이 없다는 것을 거의 자부하고 있다고 볼 수 있겠는데요. 이것은 한편으로, 뒤이어 논증되는 정치적 도그휘슬 dog whistle과 관련이 있습니다. 예전에 양치기가 개들을 불러들이기 위해 사용했다는 이 도그휘슬은, 현재에 이르러서는 어떤 정치적 인식에서, 특정 계층의 주의를 불러일으키는 교묘한 장치로 활용되고 있습니다. 예를 들면, "열심히 일하는 가정 hardworking families"과 같이 이는 보수 유권자의 마음을 얻고 싶어하는 보수 정치인이 이런 표현을 자주 써먹는다고 분석됩니다. (저자는 이 부분과 관련하여, 세간의 터무니 없는 편견처럼 평범한 백인 가정이 대체로 열심히 일하는 반면, 흑인 가정은 전혀 그렇지 않다는 식의 이야기는 하고 있지는 않습니다.) 특히 지난 시절 로널드 레이건의 심각한 날조이기도 했던, '복지의 여왕'이 미국 내의 인종차별적인 편견 때문에 이 복지 여왕의 인종이 으레 흑인일 것이라고 추정하는 사람들, 심지어 이것을 확신하는 지식인들과 정치평론가들이 이를 더욱 조장해 왔습니다. 저 개인적으로는 저자인 아리안 샤비시가 비판적으로 인식한 도그휘슬과 관련해, 누구보다 레오 스트라우스가 떠오르기도 했습니다. 소위 네오콘의 대부로 인식되었던 그의 독창적인 학문적 결과물들이, 앞선 신보수주의자들이 조직적으로 의도했든 그렇지 않든 간에 교묘하게 차용되었던 것처럼 말입니다.

지난날 미국에선 오바마 대통령이 최초의 흑인 연방 대통령으로 당선된 이후, 미국 사회 일각에서 흑인에 대한 인종 차별은 더 이상 없다고 주장했던 '백인 남성들'이 있었습니다. 흑인 대통령의 당선이라는 상징적 사건을 통해, 미국엔 인종 차별이 종식되었다는 식의 안일한 논리를 로빈 디앤젤로 역시, 자신의 논저를 통해 비판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미국의 백인 주류 사회가 흑인에 대한 인종 문제를 어떤 식으로 이해하고 있는지는 최근에 발생한 조지 플로이드의 사망 사건으로 극명하게 드러나기도 했는데요. "왜 흑인의 목숨만 중요하냐?"식의 논리가 BLM Black Lives Matter 운동을 본 일부 백인들에 의해 주장 되기에 이릅니다. 즉, 이는 권력 바깥에 놓여 있는 소수 흑인들에 대한 백인 인종주의자들과 극단주의자들의 터무니 없는 인식으로 사회를 사실상 분열로 내몰고 있는 상황이기도 합니다. 이에 저자는 4장에서, '흑인의 생명도 소중하다'와 같은 도덕적 진술은 '이것이 유일하게 중요한 문제다'라고 말하는 것이 아니라 '이 문제는, 특히 이러한 맥락에서 도덕적으로 문제가 된다'는 식으로 정리되고 있었습니다. 이렇게 개념적으로 충분한 저자의 해석은 논증에서 설득력을 얻을 수 있었는데요. 물론 사회에 여러 목소리가 필요한 것은 사실이나 왜곡된 현실 조건과 여기에 주요 기반에 되는 인종 문제에 대한 사실적 근거 없이, 그저 흑인들이 문제라는 편견과 더 나아가 오히려 백인들이 더 차별을 받고 있다는 식의 과장된 논리는 다수의 공감을 얻기 어려운 점은 명백해 보이는데요. 더욱이 4장의 논증 가운데서, "정치인들은 종종 노동자 계급의 열악함을 빈곤보다는 백인성 whiteness이나 남성성과 연관 시키려는 의도에서 '백인 노동자 계급 사람들' 혹은 '백인 노동자 계급 남성들'을 들먹인다고 저자는 비판하고 있었는데요. 신자유주의 시대의 삶의 불안정성은 백인 노동자들이나 흑인 노동자들에게 마찬가지로 심각한 문제임에도 전자의 백인들에게 '백인성과 같은 인종적 동질성'만 부여하는 같은 엘리트들의 의도는 어처구니가 없는 부분이기도 합니다. 마치, "너희는 다른 유색인종과는 명확히 구별되는 우리와 같은 백인들이다."와 같은 발언들 말입니다. 이렇게 백인은 남들보다 좋은 것을 누릴 자격이 있다는 생각과 같은 노동자 계급이라도 백인 노동자 계급은 그 백인성이 우월하다는 식의 인식은 극단주의 정치의 득세와 맞물려, 사회를 분열로 이끌고 있기도 합니다. 이것은 최신의 정치적 트렌드라고 볼 수 있겠는데요. 우리는 도널드 트럼프의 등장과 최근 트럼프 행정부 2기의 시작, 분명한 여성 차별적 인식과 인종주의적 시각, 그리고 백인이 아닌 다른 인종에 대한 분명한 혐오 의식을 대놓고 표출한 이런 극단적 포퓰리스트가 미국 정치의 아이콘이 된 것은 그저 계급과 정당 정치의 별다른 양태만은 아닐 겁니다. 

7장에서 소개된 바와 같이, 트럼프는 정치적 올바름에 대해 아주 직접적인 거부감을 보인 인물입니다. 그는 "이 나라의 커다란 문제가 정치적 올바름이라 생각합니다"라고 밝히기까지 했습니다. 이미 정치적 올바름에 대한 소신 발언을 하고 있는 지식인들은 물론, 최근에 일반인들까지 그것의 오용과 경직성을 비판하고 있습니다. 이에 샤비시는 그간 정치적 올바름에 대한 부정적 여파를 재생산하는 보수 우파의 목소리와 많은 담론에서, 우리는 표현의 자유와 비방 slur을 구분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합니다. '정치적으로 올바른 언어'는 뒤에서 보는 바와 같이, 은연중에 사회적 화자에게 차별과 배제를 조장하는 언어의 매커니즘 자체를 자제시키는 기능도 갖고 있습니다. 저는 이번 장의 논증 가운데서, 가장 공감했던 점은 인종 차별을 포함하는 이런 비방 표현들의 위력이 충분히 모욕적이기 때문에 이것이 더 이상 환기되지 않도록 대비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중요한 분석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녀는 후반부에 정치적 올바름이 단순한 미덕 과시 virtue signaling가 아니라, 표현의 자유라는 미명하에, 온-오프라인에서 발생되는 '무차별적인 모욕 표현'을 정치적 올바름이 도덕적으로 제어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엿보고 있었습니다. 이는 혐오 금지법이 아니라, 혐오 표현 자체를 무시와 비꼬기와 같은 표현의 자유로 제어하자는 네이딘 스트로슨의 제안과는 사뭇 다른 대안이기도 했는데요. 제 개인적인 의견 역시, 정치적 올바름에 대한 무조건적인 적대와 왜곡에 대해서는 반대하는 입장을 갖고 있습니다. 이에 좀 더 첨언하자면, 정치적 올바름에 대한 7장의 논증 가운데, 특정 인종에 대한 혐오와 멸시, 아직도 팽배한 여성에 대한 도구적 시각 등은 뿌리 깊은 고정관념이라는 측면에서 단순한 언어 활동 이상의 왜곡된 이미지를 재생산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여기에 논의된 많은 보수주의자들이 "표면적으로 정치가 자유와 개성에 뿌리를 두고 있다고 항변"하지만 이런 이상을 겉으로 내세우며 차별과 억압을 강조하는 행태는 그리 장려 될 만한 일은 아닌 것은 분명합니다. 이렇게 혐오에 가까운 인종 차별적 의식, 여성을 사실상 도구로 생각하는 인식, 요즘 자주 회자되고 있는 성소수자에 대한 증오가 우리 정치의 건전성이라는 요구에 얼마나 기여하고 있는지는 거의 명백하다고 볼 수 있겠는데요. 더욱이 민주주의 국가의 모범이라고 볼 수 있는 미국에서 이를 떠받치는 시민 계층의 심각한 분열과 건전한 토론의 파행으로 이어지는 이런 근본적 문제들에 있어, 여전히 실효적 대안이 시민 사회에 제시되지 않는다면 이 상황은 그저 '정치의 붕괴' 정도로 끝나지는 않을 겁니다.

끝으로 그동안 신자유주의가 유인한 세계는 무엇보다 세계의 최빈층에게 극심한 피해를 끼쳤고, 이러한 자본주의적 논리가 사회의 주류가 됨으로써, 누구나 사회 밑바닥으로 떨어질 수 있게 만들었습니다. 이런 불평등 구조와 이것을 떠받치는 구조적 불의의 사례는 전세계에 차고 넘친다고 볼 수 있겠는데요. 앞서 언급했던 바와 같이, 하류 계층에 속한 백인 노동자 계층이 그저 자신이 백인이라는 인종적 정체성을 제외한다면, 현실에서 삶의 온존은 백인이라는 이유 만으로 누구나 성취할 수 없는 사활적 문제가 되었습니다. 바로 이런 측면에서 실효성에 기반한 민주주의와 좀 더 환경을 개선 시킬 수 있는 정치가 필요하지만 아리안 샤비시의 논증대로 극단적 정치인의 손짓으로 말미암아 우리들은 '시민'이 아니라 흡사 춤추는 인형으로 전락하고 말았습니다. 미국 사회가 대를 이어온 인종주의와 여전히 조장된 남녀 문제, 특히 백인 남성에 대한 우월적인 권리와 같은 사회적 차별이 과연 무엇을 가리고 있는지는 명확하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동안 공화당 정치인들이 여성의 낙태 권리를 무산시키는 과정에서 획득한 쏠쏠한 정치적 이익과 같이, 우리가 알고 있는 미국의 보수 정치는 신자유주의의 냉혹한 방향성과 함께 하나가 되었습니다. 그런 이해에서 저자가 글의 대미에 인용한 테오도어 W. 아도르노의 "잘못된 삶을 올바르게 살 수 없다"는 공언은 지금을 살고 있는 우리에게 분명한 교훈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결국 표현의 자유라는 명목하에 인종주의와 타인에 대한 비방을 서슴치 않고 이런 맥락의 주장들이 옹호받는 사회 자체는 은연중에 사회적 억압이 조장되는 모습으로 비화될 수 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저자의 언급처럼, 이 정치적으로 올바른 언어가 대다수 평범한 사람들의 보편적 도덕적 기준의 한 요소로 발휘뒬 수 있다는 가능성을 다시 한번 고심해 보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수많은 극단주의자들이 이 정치적 올바름을 무차별적으로 공격하는 그 이면의 본질을 시민들이 탐구할 필요가 있다고 여겨지는데요. 인간은 본디 자신에게 주어졌다고 믿는 (불확실해 보이기도 한) 알량한 이익에 흔들리기 마련이고, 이러한 매커니즘을 아주 본능적으로 조장하는 정치인들이 존재한다는 것도 현실에선 분명히 가능한 일입니다.    

- 8장의 '캔슬 컬처'와 관련된 논증에서 저자는 이 캔슬 컬처가 표현의 자유를 위협하는 좌파 권위주의의 한 형태로 제시된다고 평가하고 있었는데요. 이것은 단순한 거부감의 표현 정도가 아니라 사회가 얼마나 극단주의적 양상으로 흘러가고 있는지 이를 명백히 드러내는 사례라고 생각됩니다.                

             






인종차별과 성차별은 동성애 혐오, 트랜스젠더 혐오, 장애인 차별, 계급주의 등과 마찬가지로 억압 oppression의 한 형태다.

따라서 억압은 그것에 영향받는 사람들이 대체로 피할 수 없다는 뚜렷한 특징이 있다.

원할한 노동 공급을 위해서는 눈에 보이는 노동력을 충전해주는 그림자 노동이 필요하다.

균형만 잘 맞는다면, 손바닥만 한 권력과 자유라도 조금 더 누리는 사람들이 자기가 당하는 착취를 더 잘 감내하고 그만큼이라도 조금 더 누리게 해주는 체제를 옹호한다.

여성들이 거리에서 성적 괴롭힘을 당하지 않으려고 일부러 길을 돌아가는 것이 당연시되는 것만 봐도 구조적 억압의 영향은 명백하다.

사회적 정체성들이 상호작용하여 억압과 특권의 혼합물을 생산하는 방식을 지칭하는 용어가 바로 ‘교차성‘이다.

현재 미국과 영국에는 인종 간 평등은 이미 이루어졌고 대부분의 사람이 인종차별적 믿음을 버린 지 오래라는 생각이 팽배해 있다.

도널드 트럼프는 "많은 이가 말하고 있듯이......","모두가 그 얘기를 하고 있습니다.","내가 듣기로는......","사람들이 나에게 말해줬는데......" 같은 표현을 써서 자신의 인종차별을 불특정 다수에게 전가하는 경향이 있다.

일례로 남성의 성폭력이 그토록 쉽게 일어나는 이유는 대부분의 사회가 여성을 애초에 신뢰하지 않고 남성은 이의 제기나 책임 추궁을 좀체 당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흑인의 생명도 소중하다‘는 발언을 들은 사람은 다음과 같은 질문을 생각해봐야 한다. ‘나는 이 사회를 살아가는 흑인에 대해서, 흑인의 생명이 소중하게 여겨지는 정도에 대해서 무엇을 아는가?‘ ‘왜 하필이면 흑인의 생명을 콕 집어 말하는가?‘ 나아가‘내가 지금 모든 생명을 소중히 생각한다고 피력한다면 어떻게 여겨질까?‘

보수주의자들이 자기네가 알던 세상의 아주 작은 변화에도 흥분하고 발작하는 사례들을 보건대, 사회 정의를 지향하는 젊은이들이 지나치게 예민하다는 주장은 어불성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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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2025-01-24 06: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논쟁’이란 ‘말다툼’이기에, “말로 싸워야 한다”란, 으레 “저쪽이 하는 말은 싸워서 물리치고 없애야 한다”로 기울고 맙니다. ‘민주’는 ‘대화 + 타협’이라지만, 막상 ‘논쟁’은 ‘대화’도 ‘타협’도 아닌 ‘승리·박멸’로 기웁니다. 그래서 ‘정치적 올바름’은 “이 목소리만 올바르니까, 넌 아뭇소리도 내지 마”처럼 오히려 억누르는 담벼락으로 치닫게 마련입니다. ‘민주·대화·타협’은 이쪽이 이기거나 저쪽이 지는 틀이 아닌, 이쪽과 저쪽을 ‘잇는(소통)’ 길을 나타내려는 뜻일 테지요. 이쪽과 저쪽이 말다툼(논쟁)으로 서로 으르렁대면서 옳거니 그르거니 싸우기만 한다면, 모든 사람은 불타다가 잿더미로 죽고 맙니다. 우리는 “논쟁이 필요한 세상”이 아닌, “이야기로 마음을 주고받는 부드러운 길”로 거듭나야 비로소 사람다우리라 느낍니다. “이때에는 꼭 이렇게 해야 맞아!” 하는 ‘정치적 올바름’은 오히려 ‘올가미·올무’처럼 차갑게 가두는 목치기(단두대)처럼 사람을 죽일 수 있다고 느낍니다.

‘다양성’이란 ‘다름’을 나타내는데, 다른 줄 받아들이는 길이란, “나랑 목소리가 달라도 받아들이면서, 싸움질이 아닌 이야기로 마음을 나누는 길”이어야 하지 않을까요? ‘참다름(참답게 다름·정치적 올바름)’으로 가려면, 왼쪽은 오른쪽과 이야기하며 받아들이고, 오른쪽은 왼쪽과 이야기하며 받아들이는, 그러니까 ‘받아들임(타협)’을 이루려고 ‘이야기(대화)’를 하되, 이야기를 하는 동안 쌈박질(전쟁·증오·혐오)을 모두 멈추고서 사이좋게(민주) 어깨동무(평등·평화)로 모이고 만나서 끝없이 어울려야 이룰 수 있다고 느낍니다.

그리고, 모둠 주먹(폭력)은 싸움(전쟁·군대)에서 비롯합니다. 가정폭력과 학교폭력뿐 아니라 성폭력도 바로 ‘싸움·전쟁·군대’에서 처음 생겼습니다. “남자 성폭력”이 아닌 “전쟁·군대 성폭력”입니다. 싸움(전쟁·군대)에 물들지 않은 사람은 암수(성별) 가운데 수컷이어도 주먹을 안 휘두릅니다. 모든 바보주먹은 언제나 싸움이 불씨입니다. 그래서 아무리 바보주먹꾼인 사내를 가르치고 타이르고 나무라더라도 싸움(전쟁·군대)부터 도려내지 않고 뽑아내지 않고 없애지 않는다면, 다 부질없게 마련입니다. 그런데 ‘논쟁·토론’은 모두 ‘박멸·섬멸·승리로 가려는 말싸움’인 바탕인 터라, 논쟁을 하려고 하면 할수록, 오히려 바보주먹을 부추기고 만다고 느낍니다.

이제는 모두 걷어내고서 ‘마음을 담은 말’을 주고받는 자리인 ‘이야기’로 거듭나면서, 왼오른이 어깨동무를 하고, 왼오른발로 나란히 걷고, 왼오른날개로 함께 하늘로 날아오르면서 웃고 노래하는 길을 생각해서 열 때이지 싶습니다.

베터라이프 2025-01-24 10:05   좋아요 0 | URL
남겨주신 댓글은 좀 더 숙고하며 읽었습니다. 트럼프의 등장과 함께 완전 다른 양상으로 치달은 미국 정치와 그런 변형된 극단주의 정치가 사회를 분열로 내몰고 있다는 진단과 그런 생각에 저 역시 동의하는데요.

저는 미국 정치에 좌파 혹은 진보 정치가 존재하느냐에 대해선 회의적이며, 그저 인종적 이익과 자본주의가 왜곡한 차별에 따른 계급주의적 논리에 적극적으로 응답하는 자들과 반대의 소위 리버럴 간에 정치적 대립만 있다고 생각하는데요. 이런 대치 상황에서 우리가 알고 있는 정치적 올바름에 대한 극단주의자들의 대응이 어떤 식으로 표현의 자유와 맞물려 있는지 이를 먼저 고찰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샤비시의 이 논저도 바로 이러한 측면의 논증을 제공하고 있었습니다.

현시점에서 사회적 암과 같은 증오의 정치는 어떻게 보면 나날이 제어하기 힘들 정도로 악화되고 있다고 봐도 과장이 아니라고 생각하는데요. 이를 불식시키기 위해 많은 학자들과 지식인들이 건전한 공론장에 대한 함의를 지속해서 강조하고 있지만 선동 정치가 이미 정치를 좌우하기 시작했습니다. 이는 누군가의 무슨 설레발 같은 진단 정도가 아니라는 것이죠.

저 역시 누구나 마음을 열고 개방적인 시선으로 서로를 이해하고 사랑을 외쳤으면 좋겠지만 그런 이상이 현실을 개선시킬 수 있을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자유의 정치라든지, 자유주의적 관용에 대한 그간의 이해가 이처럼 아무 쓸모가 없는 시대가 된 것은 저 뿐만 아니라 모두의 마음을 불행하게 만든다고 생각합니다. 정치적인 측면에서 사람이 사람을 이용하고 있다는 경고는 바로 이러한 본질을 드러낸다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