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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몬드 (양장) - 제10회 창비 청소년문학상 수상작
손원평 지음 / 창비 / 2017년 3월
평점 :
절판
누구나 귀 뒤쪽에서 머리로 올라가는 깊숙한 어딘가 머릿속에 크기나 생긴 것이 아몬드 같은 '아미그달라 (편도체)'를 가지고 있다고 한다. 역할은 외부 자극에 따라 공포나 슬픔, 기쁨 등 필요하고 적절한 감정을 느끼게 하는 것이다. 주인공 선윤재는 이 아몬드가 남들보다 작아서 공감 능력이 부족하고 이것을 자기 머릿속도 잘 모를 것 같은 의사들은 '감정 표현 불능증', 그들의 용어로는 '알렉시티미아'라고 한다.
이 책은 공감 능력이 굉장히 부족한 아이의 이야기이다. 그래서 이 아이는 다른 사람들과 '다르다'.
그런데 '공감'이라는 것이 무엇일까?
Empathy is the capacity to understand or feel what another person is experiencing from within their frame of reference, that is, the capacity to place oneself in another's position.
[Wikipedia: Empathy]
타인이 타인 자신의 관점 (frame of reference, perspective, standard, etc)에서 경험하는 (느끼는) 것을 이해하거나 느끼는 능력이라고 위키피디아는 이번에도 실망시키지 않고 알려준다.
Empathy definitions encompass a broad range of phenomena, including caring for other people and having a desire to help them; experiencing emotions that match another person's emotions; discerning what another person is thinking or feeling; and making less distinct the differences between the self and the other.
[Wikipedia: Empathy]
그래서 공감은 타인을 돌봐줄 수 있게 하고, 돕고 싶은 마음이 생기게 한다. 그래서 우리를 사려 깊은 사람으로 만들어준다. 그리고. 그리고 우리를 다른 사람과 "차이 나지 않게 해준다". 나는 마지막 문장에 주목하고 싶다.
"making less distinct the differences between the self and the other"
공감을 통해서 타인과 나의 '차이'가 상쇄되는데, <아몬드>의 윤재처럼 공감능력이 부족하면, 타인과 나의 차이가 더 두드러지게 된다.
다른 사람들이 다 가지고 있는 능력이 결핍된 것만으로도 '다름'이 발생했는데, 그 다름을 상쇄시켜주는 '공감 능력' 자체가 부족하니 우리의 '윤재'는 이중고를 겪고 있는 것이다.
나는 좀 엉뚱하게 생각해보고 싶다. 공감은 역지사지로 타인의 입장이 되어 보는 것이라고 한다. 위키피디아에서도 Place oneself in another's position이라고 했다. 윤재의 엄마는 윤재가 집단생활의 희생양이 되지 않게 '공감 훈련'을 시킨다.
우선, 침묵도 반은 먹고 들어가는 것이니 적절히 침묵하고, 고마워와 미안해를 습관처럼 입에 달고 살라고 했고, 친구가 약속에 늦으면 화도 좀 내줘야 한다고 했다. 누가 초코파이를 먹고 싶으면, 나는 그렇지 않아도 "나도~"라고 말 해야 한다고 했다.
그래서 집단생활에서 산포에 벗어나 '모'가 되어 '정'을 맞지 않도록 해야 한다고 했다. 공감을 담당하는 편도체가 정상이든 작든 너무 크든 모두가 어우러져 아름다운 집단생활을 무탈하게 하기 위해 자연스럽게 또 처절하게 노력하는 모든 이들의 합당한 스트레스 해소 대상이 되지 않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했다.
집단 내의 모든 약자가 더 취약한 약자를 찾았을 때, 그 '다른' 사람이 집단을 형성하고 유지하기 위한 규칙과 규범에 위배됨이 명백할 때, 모든 약자는 더 취약한 자를 정의라도 구현하듯이 '정'으로 쳐낸다. 우리는 그 규칙과 규범을 예절과 매너라고 했던가.
누군가 말했다. 예절과 매너는 '상대방의 행동'을 집단에 적합한 것으로 간주해서 용인해주는 것이고, 다른 말로 하면 묵인해주는 것이라고 말이다.
"좌빵우물". 내가 왼쪽에 있는 빵을 먹으면 묵인되는 것이지만, 오른쪽에 있는 빵을 먹으면 제지를 당한다. 내 오른편 사람의 빵이니깐.
그런데, 왼손잡이는 이 좌빵우물이 항상 불안할 것 같다. 그 물이 특히 유리컵에 있으면 익숙하지 않은 왼손은 불안할 것이다.
이쯤 되면 공감은 위키피디아에서 말하는 타인을 돌보고 돕고자 하는 마음을 포함한다는 정의를 한 참 벗어나 버린 것 같다.
encompass a broad range of phenomena, including caring for other people and having a desire to help them
공감은 그 고귀한 정의 뒤에 '집단 유지를 위한 획일화'를 내포하고 있는 것 같다.
그래서인지 나는 공감과 항상 비교되면서 천덕꾸러기 취급을 받기도 하는 동정에 더 마음이 간다. 동정이 훨씬 더 솔직하고 이롭다고 생각한다.
The Difference Between Empathy and Sympathy를 봐도, 동정은 지양의 대상이다. 이 글에서, 동정 (Sympathy)는 항상 판단이 필요하고 공감 (Empathy)는 무조건적으로 좋고 찬양의 대상이다. 동정은 나의 관점에서 상대를 이해하는 것이고 공감은 타인의 처지에 자신을 이입해서 제대로 이해하는 것이니, 동정은 표면적인 것만 바라보고, 공감이 근본적인 원인을 인지해서 상대를 제대로 이해하는 것이라고 한다. 동정은 이래서 항상 억울하다.
Sympathy often involves a lot of judgement. Empathy has none. Sympathy involves understanding from your own perspective. Empathy involves putting yourself in the other person’s shoes and understanding WHY they may have these particular feelings. In becoming aware of the root cause of why a person feels the way they do, we can better understand and provide healthier options.
Sympathy’s favorite expression is “poor you”. It creates a sense of pity over the plight of the person. Empathy’s favorite expression is “I can understand how it feels. It must be really hard”. This helps a person to feel heard, understood and validated. Sympathy focuses on the surface meaning of statements, while empathy is sensitive to non-verbal cues. Having an awareness of people’s true meanings is helpful is maintaining that connection.
( Ref: The Difference Between Empathy and Sympathy 의 일부)
우리는 안다. 타인을 완벽하게 이해할 수 없음을. 우리가 타인을 이해하는 출발점이자 종착점은 겨우 우리로부터임을 솔직히 안다. 내가 그의 인생을 완벽하게 똑같이 살아보지 않았기 때문에, 내가 그의 상황에 그 대신이 온전히 처하지 않았기 때문에, 우리는 결코 '공감'할 수 없다. 그래서 나는 집단을 위한 고귀한 공감보다는 솔직하게 나의 입장에서 '동정'하는 것이 더 정직하고 올바르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 타인이 집단의 산포에 드는 보통 사람이 아닐 경우, 공감은 고지식하다. 즉, 공감의 모든 아름다운 정의와 행동지침은 그 타인이 모두가 속한 '집단'에 알맞은 사람일 경우에 해당한다. 그래서 그 집단에 걸맞지 않은 이에 대해서도 동일한 가치관을 가지는지 나는 의문한다.
부모는 자식에게 많은 걸 바란단다. 그러다 안 되면 평범함을 바라지. .. 평범하다는 건 사실 가장 이루기 어려운 가치란다. p80
나는 "특별함"이 "평범함"으로 수렴되는 것을 자주 보았다. 자식에게, 신규 입사자에게, 새로운 팀원에게. 그 수렴의 과정이 '자만'에서 '겸손'으로의 이행도 있었지만, "다름"이 "획일화"로 전락하거나, "부족함"이 "미달"로 고통받는 것도 많았다.
공감에 대한 이야기 <아몬드>를 읽고, 조금은 불편한 이야기를 했다. 우리가 당연히 올바른 것이라고 여기는 것들에 대해 조금 다른 관점에서 본 이야기를 했다. 우리가 올바르다고 생각하는 가치관을 모두가 잘 알고 지키고 따르려고 하는데, 많은 사람이 행복하지 않은 것 같아서 이야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