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도살장 (리커버 에디션) 커트 보니것 리커버 컬렉션
커트 보니것 지음, 정영목 옮김 / 문학동네 / 202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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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트 보니것(Kurt Vonnegut 1922~2007)이 1969년 발표한 <제5도살장>은 제2차 세계대전 중 드레스덴 폭격을 소재로 한 미국 포스트모더니즘을 대표하는 작품이라고 한다. 

폭격이 일어나기 전 드레스덴은 '엘베 강의 피렌체'라고 불릴 정도로 아름다운 도시였다. 1945년 2월 13일부터 15일까지 이 아름다운 도시에 연합군은 3,900톤 이상의 폭탄을 투하, 도시를 불바다로 만든다. 이 폭격으로 도시 40㎢가 파괴되었고, 25,000명 가량의 민간인이 죽었다고 한다. (이 소설에는 약 135,000명이 죽었다고 나와 있으나 실제로는 25,000명 정도라고 한다. 나치 선전장관 괴벨스는 사망자 수를 부풀려 민간인 20만명이 사망했다고 속이기도 했다.)

연합군의 무분별한 폭격은 종전 후 도덕성의 문제를 불러 일으키며 많은 논란에 휩싸였다. 


작가 커트 보니것은 미군에 징집되어 2차 세계대전에 참전, 독일군에게 포로로 잡혀 드레스덴 포로 수용소로 끌려오게 되고 바로 이 드레스덴 폭격을 겪게 된다. 폭격으로 모든 것이 녹아내리는 도시 속에서 작가가 어떻게 살 수 있었는지 기적이 아닐 수 없다. 소설 속 말을 빌리자면 '우연이 허락'했기에 살 수 있었을 뿐이다. (포로수용소가 드레스덴 외곽에 있어 폭격 목표지점이 아니었기에 살 수 있었다고 하는데 그래도 기적이 아닐 수 없다)

커트 보니것을 포함 살아남은 포로들은 드레스덴을 수습하는 작업에 참여, 불에 탄 시체를 파내는 일을 했다. 


<제5도살장>의 주인공은 빌리 필그림이다 .그는 전쟁이 일어나자 군종사병으로 2차 세계대전에 참가하게 되고 벌지전투에서 독일 군의 포로가 된다. 그리고 노역에 동원되기 위해 드레스덴으로 끌려 가고, 전쟁 전 고기 저장소로 쓰였던 '제5도살장'에서 시럽 만드는 일을 하게 된다. 

그러다 드레스덴 폭격을 경험하게 되고 극적으로 살아남아 시체를 수습하는 일을 하다 종전과 함께 고국으로 돌아온다. 1945년 빌리는 육군을 명예 제대한 뒤 전쟁 전 다녔던 검안학교에 다시 등록하여 검안사가 되고 부잣집 딸과 결혼도 한다.


근데 이 소설은 매우 특이하다. 이야기는 빌리의 시간과 공간 여행으로 진행된다. 빌리는 과거, 미래를 오가고 '트랄파마도어'라는 행성에 납치되기도 하는 등 이야기가 파편적인 서술로 진행되어 독자를 어리둥절하게 만든다. 

2차 세계대전 전장에서 갑자기 1965년으로 갔다가 1958년, 1961년...다시 전쟁...이런 식으로 종횡무진 시간 여행을 한다. 심지어 자신이 언제 죽을 것인지도 예언하는 등, 시간과 공간을 넘나드는 모든 이야기가 에피소드처럼 나뉘어서 전개된다. 사건과 사건사이의 어떤 인과관계나 설명은 매우 부족하고 그저 각 시간의 에피소드 나열이 이 소설의 대부분을 구성한다.


100대 영미소설에도 속하고 반전소설로도 유명한 이 소설은 작년에 리커버 에디션이 나와 새 책(!)으로 산건데 이번에 읽으면서 기대했던 그런 반전 소설이 아니라 사실 조금 실망했다. 

사실 이 책을 읽기 전 또 하나의 유명한 반전 소설 <캐치-22>를 읽다가 150페이지를 넘기지 못하고 포기해 기분이 찝찝했는데(소설 속에 모든 인물이 다 미쳐 있어서 도저히 진도가 안 나갔다), 대신 기대하고 선택한 이 책에도  전쟁과 비행기 사고로 정신이 이상한 남자가 주인공으로 나와 비상식적인 이야기들을 쏟아내니 '아 큰일났다' 싶었다. 그러나 문장이 어렵지 않고 허무맹랑한 이야기 속에 베어있는 유머와 냉소, 무엇보다 작가가 작정하고 이렇게 쓴 데에는 이유가 있을 것이라는 생각에 끝까지 읽을 수 있었다.


시간과 공간을 자유롭게 왔다갔다하며 수많은 죽음을 목격할 때 마다 빌리는 항상 다음과 같이 말을 한다.


"뭐 그런 거지 (So it goes)"


수천년의 역사 속에서 사람이 서로를 죽이는 일은 늘 있어 왔기 때문에, 그 누구의 죽음도 새로울 것 없다는 이 냉소적인 말은 이 소설에서 106번이 나온다고 한다. 수만 명의 목숨이 불 속에서 타 죽었지만 그 죽음 앞에서 무감각한 인간들을 본 빌리는 이 세상의 모든 죽음을 트랄파마도어 식으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 죽은 사람을 두고 "뭐 그런 거지"라고 말하는 트랄파마도어인들처럼.


"내가 트랄파마도어에서 배운 가장 중요한 것은 사람이 죽는다 해도 죽은 것처럼 보일 뿐이라는 점이다. 여전히 과거에 잘 살아 있으므로 장례식에서 우는 것은 아주 어리석은 짓이다."(p.43)


전쟁을 다룬 수많은 소설과 영화는 전쟁의 참혹함을 보여주면서 반전의식을 심어주지만 <제5도살장>은 일반 소설처럼 전쟁의 비극을 사실적으로 그리지 않는다. 

이 소설에는 극적인 사건도 대단한 영웅도 등장하지 않는다. 삶에 무기력한 정신이 온전치 않은 주인공이 시간과 공간을 누비며 왔다갔다 할 뿐이다. 

이 소설의 절정은  드레스덴의 폭격이 아니라 다른 곳에 있다. 그리고 그 또한 짧게 스치듯 언급하고 지나갈 뿐이다. 그러나 우리 삶의 아이러니를 그 어떤 작품보다 강렬하게 보여준다. 작가는 인간의 상식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비극적인 사건을 자신만의 방식으로 보여주고, 바로 이런 점에서 많은 독자들이 보니것에게 열광하는 것이지 않나 싶다. 


작가 보니것은 한 인터뷰에서 드레스덴 폭격은 단 한 사람을 제외하고는 그 누구에게도 이익을 가져다 주지 않은 사건이었다고 말했다. 그리고 그 한 사람이 누구냐는 질문에 "바로 접니다. 이 책을 써서 큰 돈을 벌었으니까요."라고 대답했다고 한다.

이 책은 이런 커트 보니것의 블랙 유머로 가득 차 있다. 물론 그 뒷맛은 씁쓸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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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감 2021-12-02 13:48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아아 구매전에 제 리뷰를 읽으셨다면... 그래도 별4개나 주셨네요ㅎㅎ

coolcat329 2021-12-02 14:07   좋아요 3 | URL
물감님 리뷰 당연히 읽었죠! 근데 이 책 작년에 산거에요.
저도 재미면에선 별3개인데요, 하도 독특해서 4개로 했습니다.

물감 2021-12-02 14:10   좋아요 3 | URL
앗 그럼 할말이 없습니다... 쭈글...ㅎㅎ

Falstaff 2021-12-02 14:25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오, 매력적인 작품입니다. 작품의 해석이나 느낌 같은 건 방죽에 핀 무수한 꽃처럼 만발할 문제작입니다. 당연히 개인적인 호오 역시 극과 극으로 갈릴 것이고요.
전 별 다섯!
아주 아주 아주 작은 소망이 하나 있다면, 다른 이도 이 작품의 번역을 한 번 시도해봤으면.... 하는 겁니다.

coolcat329 2021-12-02 14:12   좋아요 4 | URL
폴스타프님 저는 이런 소설 처음 읽어봅니다. 처음에 앗! 큰일났다 싶을 정도였습니다. ㅎ
근데 두 번째 다시 보니 정말 ‘방죽에 핀 무수한 꽃‘이라는 표현이 딱입니다.
네 다른 번역 나와도 좋겠어요~

coolcat329 2021-12-02 14:15   좋아요 4 | URL
개인적 질문드려요.
제가 캐치-22를 한 150페이지 읽다 포기했는데 이 책 번역이 괜찮으셨나요? 미친 사람들이라 감안을 해도 도통 이해가 안가서요.
근데 모두들 극찬을 하고 제가 반전소설에 욕심이 나서 꼭 읽고 싶은데...읽으면서 진도가 안 나가 괴롭습니다.ㅠ

Falstaff 2021-12-02 14:25   좋아요 4 | URL
옹? 분명히 독후감 올려 놨는데 없어졌네요. 이것도 재작년 폭탄 사건 때문에 그런지 모르겠습니다.

<캐치 22> 번역한 안정효가 글 하나는 재미나게 쓰는 소설가잖아요. 글 가운데서도 전쟁 소설이 이 양반 주특깁니다. 근데 영어를 정확한 우리말로 바꾼 것인지는 모르겠습니다. 하여튼 자신이 얼렁뚱땅, 어쩌면 원서보다 더 재미난 우리말로 옮겨놨을 수 있습니다.
그건 믿으셔도 좋은데 문제가 어쩌면 조지프 헬러, 작가 본인일 지도 모릅니다. 이 책, 틀림없는 반전 소설이고요, 어떻게 해서든지 전쟁 안 하고 집에 가려 일부러 미친 짓을 하는 골통 인간들의 집합인데, 저 지휘관 새끼들은 장병들이 죽거나 말거나, 심지어 대량으로 몰살을 당해도 자기만 한 계급 올라가면 만사 땡인 잡놈들입니다. 완전히 수컷들의 세상입니다. 그래서 여성 독자들이 읽기에 매우 불편할 수 있습니다.
거기다가 안정효가 특기를 발휘해 설레발을 더 쳐버렸으니 재미나게 읽는 분들은 요절복통을 할 것이고, 맞지 않는 분들은 체하기도 하겠지요.
에고. 거 참 유감이네요.
근데, 확실한 죽음이 눈 앞에 있는 전쟁터에서 못할 일이 없는 건 맞는 모양입니다.

coolcat329 2021-12-02 14:29   좋아요 3 | URL
네 다 정상이 아니더라구요.ㅠ
여자로서 불편함은 감수할 마음이 있는데 참 대화가 이해가 안가니 답답해서 제가 속풀이 겸 폴스타프님께 하소연을 했습니다.🥲
답변 감사드리고요~~
다음에 다시 한 번 도전을 해보겠습니다. 😊

미미 2021-12-02 14:30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저도 별5개 주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블랙유머가 최고였죠. 저는 촌철살인에 약합니다ㅎㅎ

coolcat329 2021-12-02 14:37   좋아요 4 | URL
네 미미님 별👋 기억합니다. 제가 편안함과 익숙함에 안주하려는 기질이 강해서 그런지 이렇게 기발하고 독특한 발상 앞에서 당황, 주저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비상식적 이야기가 짧고 촌철살인! 이라 읽을 수 있었어요.
장황한 두 권 짜리 였다면 포기했을 거에요. ㅎ

새파랑 2021-12-02 15:11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리커버판이네요~! 저는 이책 사놓고 아직 못읽었어요 ㅜㅜ 특이하다고 해서 읽어보고 싶었는데 ㅋ

coolcat329 2021-12-02 16:57   좋아요 2 | URL
새파랑님은 왠지 좋아하실거 같아요~

잠자냥 2021-12-02 15:27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전 최근에 읽은 책에서 커트 보니것이 드레스덴 폭격이 있던 이 시기에 가족에게 보낸 편지와 그의 손 글씨를 봤는데 울컥하더라고요; 그의 손글씨를 보니 제가 상상한 그의 이미지와 비슷해서 좀 더 정감이 가기도 했고 뭐 그랬어요... 그의 손글씨 편지는 조만간 페이퍼에서 공개하겠습니다. ㅎㅎㅎ (제가 요즘 바빠서 슬프답니다....흐흐흑)

coolcat329 2021-12-02 17:02   좋아요 2 | URL
아~~보니것 에세이를 읽으셨나요? 에세이도 참 괜찮다고 하더라구요...
드레스덴 미군 포로 중 7명만 살아남았고 그 중 한 명이 보니것이니 참 어땠을지...미치지 않은게 오히려 신기합니다.
그 상황에서 쓴 편지니...ㅠㅠ

연말이라 바쁘시군요. 페이퍼 기대할게요. 손편지 보고 싶네요.

레삭매냐 2021-12-05 11:2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도 <제5도살장>으로 아마
커트 보네거트 샘을 처음 알
게 된 것 같습니다.

그리고는 그만의 블랙 유머
에 흠뻑 빠져서 마구 읽던
기억이 나네요.

예전에 나왔다가 절판된
책들도 소개되었으면 하는
바램입니다.
 
지루한 이야기 창비세계문학 53
안톤 파블로비치 체호프 지음, 석영중 옮김 / 창비 / 201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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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읽은 윌리엄 트레버의 단편이 너무 좋았었기에, 트레버가 영향을 받았다는 체호프(1860~1904)의 단편도 읽고 싶어졌다. 

<<지루한 이야기>>는 체호프의 중단편선으로 중편 <지루한 이야기>,<검은 옷의 수도사>와 단편 <개를 데리고 다니는 부인> 총 3편의 작품이 실려 있다. 


<지루한 이야기>는 부제가 '어느 노인의 수기'로 죽음을 앞둔 한 저명한 교수의 삶과 그 의미를 다룬 작품이다. 주인공 니꼴라이는 러시아는 물론 해외에서도 유명한 학자이자 의과대학 교수이다. 그러나 현재 62세인 그는 병에 걸려 누가 봐도 '저 양반 곧 죽겠구나' 생각이 들 정도로 쇠약해진 상태로 살 날이 6개월도 남지 않았다. 육체적인 고통 외에도 경제적 어려움으로 가족과의 관계도 소원한 상태이며 아내와 딸은 그의 고통에 무심하다. 

한때 찬란한 명성을 누리던 그가 죽음을 목전에 두고 느끼는 외로움, 허무함은 그의 고통을 더욱 무겁게 짓누른다.

이런 상황에서 그가 마음을 나눌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은 고인이 된 동료 의사의 딸인 까쨔이다. 까쨔는 그에게 금전적인 도움을 줄 테니 치료를 받으라고 하지만 그는 거절한다.

그는 '아름다운 예술품'과 같던 자신의 삶을 '용감하고 평화로운 영혼'의 상태에서 맞이하고 싶지만 지금 자신의 모습은 물에 빠져 허우적거리고 있는 꼴이다. 그가 평생 믿었던 과학에 대한 믿음마저도 사라진 상태이다. 


"과학에 대한 나의 애착, 더 살고 싶다는 나의 소망, 낯선 침대에 앉아 스스로를 알려고 하는 시도, 이 모든 생각과 감정, 그리고 내가 삼라만상과 관련하여 정립하는 개념들에는 모든 것을 하나의 전체로 엮어주는 공통적인 무언가가 빠져 있다. (...) 만일 그것이 없다면 아무것도 없는 것이다. " (p.102,103)


그는 자신의 삶에 중요한 뭔가가 결여되어 있음을 깨달으나 그것이 무엇인지 끝내 찾지 못한다. 마지막 자신을 찾아와 "저는 더이상 이렇게 살 수 없어요! 제발, 지금 당장 말씀해주세요. 어떻게 해야 하지요?"(p.105) 라고 간절히 묻는 까쨔의 물음에 그는 "나도 모른다" 라는 말밖에 할 수가 없다. 


그는 자신의 앞에서 우는 까쨔를 보며 생각한다.


'그녀를 바라보는 동안 내가 그녀보다 행복하다는 사실 때문에 부끄러워진다. 동료 철학자들이 공통이념이라 부르는 것이 내 안에 없다는 걸 나는 인생의 황혼에, 죽음을 목전에 둔 최근에 와서야 알아차렸다. 그런데 이 가엾은 녀석의 영혼은 이제까지도 안식이란 걸 몰랐지만 앞으로도 평생, 한평생 모를 것이다!' (p.106)


이 소설은 아무런 극적인 반전없이 이대로 끝난다. 체호프는 인생이란 무엇이며 그 의미는 어디에 있는지 답을 주지 않는다. 역자의 설명대로 '29세의 의사이자 작가인 체호프는 삶과 죽음에 관해, 인생의 의미에 관해, 허무에 관해, 그리고 무엇보다도 나이 먹는다는 것에 관해 자기 식으로 의학적으로 문제를 제기'(p.225 작품해설)할 뿐이다. 


체호프가 34세에 발표한<검은 옷의 수도사>는 성공한 박사, 꼬브린이 심각한 신경쇠약에 걸려 망상 속에서 검은 옷을 입은 수도사를 만나면서 육체적, 정신적으로 파멸해가는 이야기이다. 

환상과 현실의 경계가 모호한 이 이야기는 기존의 체호프의 소설과는 다르게 기괴하면서도 신비스러운 분위기를 풍긴다.

꼬브린은 어린 시절 부모를 여의고 원예가 뻬소쯔끼의 후견하에서 그 누구보다 열심히 노력하여 학자로서 성공한다. 그러나 어느 날부터인가 검은 옷의 수도사를 보기 시작하고 그로부터 다음과 같은 말을 듣게 된다. 


"자네는 인류를 수천년 빨리 영원한 진리의 왕국으로 인도할 걸세. 바로 여기에 자네의 소명이 있는 거지" (p.138)


꼬브린은 자신이 신에게 선택받은 사람이라는 수도사의 말에 희열을 느끼며, 행복에 겨워 뻬소쯔끼의 딸 따냐와 결혼까지 한다. 그러나 결혼 후에도 그의 망상은 더 심해지고 아내는 그런 꼬브린에게 치료를 권유, 꼬브린은 아내의 말대로 치료를 받지만 그는 더 이상 행복하지 않다. 과대망상증이 있었을 때는 행복했지만 지금은 그저 보통 사람이 되었다며 아내를 원망하고 증오한다. 

체호프는 이 소설에서 환각에 사로잡혀 그 안에서만 행복을 느끼는 정신이상자의 모습을 매우 사실적으로 보여준다. 그리고 마지막 장면은 우리에게 또 하나의 삶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 


1899년 발표한 <개를 데리고 다니는 부인>은 체호프의 대표작으로 당시 그가 머물었던 얄따를 배경으로 한다. 워낙에 유명한 작품으로 예전에 몇 번 읽었지만, 오랜만에 읽으니 처음 읽는 것처럼 새로웠고 내가 생각했던 체호프 스타일의 작품이라 앞의 두 작품에 비해 편한 마음으로 읽었다. 

이 작품은 한 마디로 여행지에 만난 유부남, 유뷰녀의 사랑 이야기이다. 은행원 구로프는 여자들을 "열등한 족속!"이라고 무시하지만, '그 열등한 족속이 없으면 단 이틀도 살 수 없'는 남자이다.

이런 그가 휴양차 머물고 있는 얄타에서 '개를 데리고 다니는 부인'인 안나를 보게 되고, 역시나 바람둥이답게 의도적으로 접근, 둘은 사랑을 나누게 된다. 안나는 남편의 편지로 예정보다 빨리 집으로 돌아가게 되고 두 사람은 그렇게 헤어지지만, 어찌된 일인지 구로프는 몇 달이 지나도 그녀를 잊을 수가 없다.


나는 이 소설을 읽으며 트레버의 <그 시절의 연인들>을 떠올렸는데, 이 소설도 불륜의 사랑을 소재로 하고 있으며 두 남녀의 설정도 비슷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트레버는 그 아슬아슬한 사랑이 어떻게 진행되고 어떻게 끝나는지 보여준 반면, 체호프는 그들의 불륜이 본격적으로 시작되는 시점에서 그 어떤 결말도 보여주지 않고, '가장 어렵고 복잡한 일은 이제 방금 막 시작되었을 뿐이라는' 모호한 말로 이야기를 끝낸다.


역자 석영중 교수는 작품해설에서 체호프는 '삶을 객관적이고 냉정한 의사의 눈으로 바라보았고 강인한 의지와 열정으로 삶을 살았으며 작가의 언어로 그것을 풀어놓았다'(p.246)고 말한다.

체호프의 소설은 그야말로 있는 그대로의 삶의 모습이며, 그 모습은 나에게 하나의 질문으로 다가온다. "당신은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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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파랑 2021-11-27 20:31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지루한 이야기>는 정말 지루하지 않은 이야기인것 같아요~! 이 책에 실린 단편 세편 모두 완전 좋다는~! 이 책 읽고 제가 창비세계문학시리즈를 검색하기 시작했습니다 ^^

coolcat329 2021-12-02 14:43   좋아요 2 | URL
창비세계문학 저도 참 좋더라구요. 예전 그 빈티지한 표지가요. 어떤 분은 걸레같다 하셨던가...ㅠ 그래서 지금의 매끈한 표지로 바꿨나도 싶구요

페크pek0501 2021-12-02 14:40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지루한 이야기, 를 빼고 두 편은 읽었어요.
체호프는 제가 좋아하는 작가죠. ^^

coolcat329 2021-12-02 14:45   좋아요 2 | URL
아 그러셨군요. 체호프 희곡도 읽어보고 싶어요~
 
나이트
엘리 위젤 지음, 김하락 옮김 / 예담 / 200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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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삶이 일곱 겹으로 봉해진 하나의 긴 밤으로 되어버린 그날 밤,

수용소에서 맞은 첫날밤을 결코 잊지 않으리라.

그 연기를 결코 잊지 않으리라.

몸뚱이가 고요한 하늘 아래 연기로 화해버린 어린이들의 얼굴을 결코 잊지 않으리라.

내 믿음을 영원히 불살라버린 그 불꽃을 결코 잊지 않으리라.

살고자 하는 마음을 영원히 앗아간 밤의 침묵을 결코 잊지 않으리라.

하나님과 나의 영혼을 살해하고 내 꿈을 잿더미로 만들어버린 그때,

그 순간들을 나는 결코 잊지 않으리라.

하나님만큼 오래 산다 하더라도 이것들을 결코 잊지 않으리라.

결코 잊지 않으리라.

<나이트>는 1986년 노벨평화상을 수상한 루마니아 태생의 유대계 미국 작가 엘리 위젤(1928~2016)의 자전 소설이다. 위젤은 홀로코스트 생존자로 15세 때 가족과 함께 나치 수용소로 끌려가 아우슈비츠, 부나 모노비츠 , 부헨발트 수용소를 전전하며 겪은 참상을 이 작품에서 사실적으로 그리고 있다.


그는 수용소에 맞이한 첫날 밤 '살고자 하는 마음을 영원히 앗아간 밤의 침묵'(p.77) 에 절망하고, 수용자들에게 공포심을 심어주기 위해 13살 어린 소년을 교수대에 매다는 장면을 보면서, '하나님은 어디에 있는가?' 물으며 신의 침묵에 분노한다. 


아우슈비츠에 도착하자마자 어머니와 여동생은 바로 가스실로 끌려갔고, 위젤은 아버지와 함께 아우슈비츠 제3수용소인 부나 수용소로 이송된다. 

1945년 1월 27일 아우슈비츠 수용소가 해방되기 이전 위젤은 '죽음의 행군'을 하여 부헨발트 수용소로 이송되는데 이곳에서 아버지마저 잃게 된다. 


종전 후, 혼자 살아남은 위젤은 프랑스 고아원으로 보내진 뒤 소르본 대학에서 공부, 1958년 증언 문학인 <나이트>를 출간한다. 그 후 미국으로 이주, 시민권을 취득한 후 보스턴 대학에서 교수로 재직하면서 세계 인권 증진을 위해 활발한 활동을 전개해 나갔고 이런 모든 공로로 1986년 노벨 평화상을 수상한다. 위젤은 노벨상 수락 연설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중립은 가해자만 도울 뿐 희생자에게는 아무런 도움도 되지 않습니다. 침묵은 결국 괴롭히는 사람 편에 서는 것입니다. 인간의 목숨이, 인간의 존엄성이 위협받을 때는 소극적인 태도를 버려야 합니다." 


엘리 위젤은 이 책을 통해 나치의 잔혹한 만행과 수용소의 참상을 고발하는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침묵하는 것도 범죄임을, 더 나은 세상을 위해 증언하는 용기를 가져야 함을 말한다. 


대표적인 홀로코스트 문학인 <나이트>, 스콧님의 추천으로 읽은 책인데, 다른 홀로코스트 문학에 비해 쉽게 읽혀 청소년들에게 특히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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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cott 2021-11-26 15:53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이 책은 제가 중딩 시절때 크리스마스 선물로 부모님에게 받은 책 중 한권으로
이런 저런 명작 동화 영어 세트 완독 기념으로 부모님이 이 책을 원서로 헤세의 싯다르타(외삼촌이 사줌) 원서 이렇게 받아서 위젤의 나이트만 완독한 뿌듯했던 추억이 담긴 책입니다 ㅎㅎ
영문 문장도 명료해서 당시 감동적으로 읽었던 기억이 ,,,


홀로코스트 문학 중에 임레 케르테스의 <운명 >사알짝 추천 합니다 ^ㅎ^

coolcat329 2021-11-26 16:50   좋아요 5 | URL
네 이 책은 증언문학 입문용으로 청소년이 읽으면 좋을 책이란 생각이 들어요.

<운명>은 읽었습니다~!
그러고보니 임레 케르테스와 위젤 두 분다 15살에 아우슈비츠로 끌려갔네요.ㅠ
두 분이 돌아가신 해도 2016년으로 같고 태어난 해도 1년 차로 비슷한 점이 있네요.

새파랑 2021-11-26 17:22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아우슈비츠 관련된 책들은 다 슬픈거 같아요 ㅜㅜ 맞습니다. 침묵하는것도 범죄같아요. 저도 그런면에서 좀 찔리긴 하는데 한번 반성해 봐야 겠습니다~!!

역시 스콧님의 추천작~!!

coolcat329 2021-11-26 17:54   좋아요 3 | URL
네 저도 반성합니다~😅
 
윌리엄 트레버 - 그 시절의 연인들 외 22편 현대문학 세계문학 단편선 15
윌리엄 트레버 지음, 이선혜 옮김 / 현대문학 / 201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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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으로 정이 가는 현대문학 단편선 시리즈. 

<대프니 듀 모리에>,<플래너리 오코너>,<그레이엄 그린>에 이어 네 번째로 읽은 책은 <윌리엄 트레버>이다. 

2년 전 구입한 책으로 반 정도 읽다가 내려놓은 책을 이번에 마음 먹고 하루에 한 편씩 읽었다. 총 23편을 담고 있는데, 어쩌면 하나같이 다 그렇게 쓸쓸하고 애잔한지, 마음에 와닿지 않은 작품이 단 하나도 없었다. 23개의 이야기 속에 나오는 모든 인물들이 다 손에 잡힐 듯 느껴지고, 그들이 느끼는 외로움, 후회, 욕망, 두려움, 슬픔 등이 나에게도 전달되어 그 아픈 마음들을 어루만져 주고 싶었다.


윌리엄 트레버(William Trevor 1928~2016)는 아일랜드에서 태어나 20대 중반까지 살다가 재직 중이던 학교가 파산하자 1954년 영국으로 이민을 간다. 카톨릭교도가 90%나 되는 아일랜드에서 개신교도로, 영국에서는 아일랜드인으로 살면서 늘 차별받는 이방인으로 살아야 한 그이기에 그의 작품에는 한결같이 소외당하고 외로운 인물들이 나온다.  


첫 이야기 <욜의 추억>에서는 부모의 사고로 불운한 어린 시절의 상처를 지닌 남자가, <탁자>에서는 돈과 일에 매여 살며 자신이 지어낸 이야기 속에서 자위하며 공허한 삶을 사는 가구 중개인이, <펜트하우스>에서는 지나친 양심과 교양에 사로잡혀 고스란히 덤터기를 쓰는 한 순진한 노처녀가, <탄생을 지켜보다>에서는 우연히 어떤 부부를 만나면서 새로운 삶을 살게 된 노부인이,  <호텔 게으른 달>에서는 하이에나 같은 젊은 부부에게 속수무책으로 당하는 노부부와 늙은 하인이, <학교에서의 즐거운 하루>에서는 부모의 무관심과 짓궂은 학교 친구들 사이에서 그 어디에도 자신의 고민을 털어놓은 데가 없는 외로운 사춘기 소녀가, <마흔 일곱 번째 토요일>에서는 50대 능구렁이 같은 남자의 거짓 사랑에 속아 젊음을 허비하고 있는 한 20대 여인이, <로맨스 무도장>에서는 자신이 처한 현실에서 도저히 벗어날 길이 없는 안타까운 여인이, <오, 뽀얀 뚱보 여인이여>에서는 자기기만에 빠져 수동적 삶을 살다 주변인들로부터 무시당하는 여인이, <이스파한에서>에는 낯선 여행지에서 만난 외로운 두 남녀가, <페기 미한의 죽음>에서는 어린 시절에 겪은 어떤 사건으로 인해 평생을 죄책감을 갖고 독신으로 사는 남자가, <복잡한 성격>에서는 자신을 누군가가 이해해주길 바라는 인간미가 없다는 컴플렉스를 가진 남자가, <오후의 무도>에서는 오랜 친구의 죽음으로 혼자 남아 공허함 속에서 누군가에게 필요한 존재가 되고 싶은 한 중년 여인이, <또 한 번의 크리스마스>에서는 국가간의 분쟁으로 수십년간 이어져온 집주인과의 우정에 금이 간 부부가, <결손 가정>에서는 늙어서 남들에게 피해주고 싶지 않아 할 말도 제대로 못하고 피해를 입는 가엾은 노인이, <토리지>에서는 통쾌한 복수극을 보여주지만 여전히 외로워 보이는 토리지가, <예루살렘의 죽음>에서는 평생 어머니의 그늘에서 벗어나지 못해 외롭게 살아가는 남자가, <그 시절의 연인들>에서는 냉혹한 현실과 로맨틱한 사랑 사이에서 결국 각자의 길을 가게 된 쓸쓸한 두 연인이, <멀비힐의 기념물>에서는 존재감 없는 한 남자가 남긴 어떤 물건으로 인해 와르르 망신살 뻗치는 돈 많고 잘난척 하는 인간들이, <육체적 비밀>에서는 서로의 필요에 의해 의기투합하여 결혼한 외로운 중년 남녀가, <또 다른 두 건달>에서는 자신의 도덕적 나태함을 후회하는 한 청년이, <산피에트로의 안개나무>에서는 사람이 계속 살아갈 수 있도록 의미를 주는 사람들과 장소를 추억하며 그 소중함을 깨닫는 남자가, <삼인조>에서는 돈 때문에 모욕과 경멸을 참고 살아야만 했던 젊은 부부가 나온다.


이렇게 23편의 이야기를 다 나열한 이유는 정말 모든 작품이 다 나나 내 주변 사람들, 아니면 어딘가 반드시 있을 사람들의 이야기를 섬세하게 담고 있기 때문이다. 하루키의 말대로 '칼같이 예리하지만 동시에 불가사의한 부드러움을 지닌 소설적 시선'을 모든 소설에서 느낄 수 있다. 

어디서나 볼 수 있는 보통 사람들의 이야기는 대체로 암울하고 슬픔을 동반하지만 트레버는 거리를 두고 묘사할 뿐 감상적으로 다루지 않는다. 그러나 사람들을 향한 그의 눈빛엔 그 어떤 냉소도 조롱도 없다. 무심한듯 하면서도 따뜻한 시선이 그의 사진 속 모습처럼 소설 속에서도 느껴진다.


<축복받은 집>으로 퓰리처상을 수상한 줌파 라히리는 "윌리엄 트레버 단편집은 내 인생을 바꾸어 놓았다. 나는 이 책에 실린 작품에 견줄 만한 이야기를 단 한 편이라도 쓸 수 있다면 행복하게 죽겠노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 생각에는 지금도 변함이 없다."라고 말했다. 


노벨 문학상만 빼고 수많은 상을 받은 아일랜드 작가 윌리엄 트레버, 이 가을에 정말 잘 어울리는 훌륭한 단편집이다.


이 소설에서 베스트 5를 뽑아본다. (정말 어려운 선택...)


1.로맨스 무도장 

2.결손 가정

3.산피에트로의 안개나무

4.그 시절의 연인들

5.이스파한에서

(보너스 재미보장 2편 - 토리지, 멀비힐의 기념물)


<그 시절의 연인들>에서 노먼과 마리가 사랑에 빠졌던 1960년대, 영국의 술집에서 들리던 비틀즈의 'Eleanor Rigby'...가사가 트레버의 소설집과 어쩌면 이렇게 잘 어울릴 수 있을까...


Ah, look at the all the lonely people

아, 저 외로운 사람들을 보세요


All the lonely people, where do they all come from?

저 외로운 사람들은 다 어디서 왔을까요?


All the lonely people, where do they all belong?

저 외로운 사람들은 모두 어디에 속해 있는 걸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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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ni74 2021-11-18 17:32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앗 저도 이 단편집 넘 재미있게 읽었어요 *^^* 전 로맨스무도장이 참 좋았어요. 쿨캣님 리뷰 읽으니 다시 감동이 ㅎㅎ 넘 좋습니다 *^^*👍

coolcat329 2021-11-18 17:30   좋아요 3 | URL
앗! 미니님도 로맨스 무도장이시군요! 저는 2년만에 다시 읽어도 역시 이 작품이 계속 마음에서 떠나질 않더라구요.

새파랑 2021-11-18 18:33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저도 이 책 읽고 싶어요~!! 장바구니에 담아놨는데 아직 못샀는데 쿨캣님 리뷰 보니 필수각이네요 ^^ 노벨상 빼고 다 받은 작가네요~!

coolcat329 2021-11-18 21:47   좋아요 3 | URL
네~단편소설의 정석같아요~새파랑님 감상평도 기대하겠습니다🙂

잠자냥 2021-11-18 22:09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역시 가을에 읽어서 더 좋은 윌리엄 트레버! ㅎㅎ

coolcat329 2021-11-18 22:20   좋아요 2 | URL
🍂 네~100프로 공감합니다~

페넬로페 2021-11-18 23:29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현대 문학 단편집은 표지도 넘 마음에 들어요. 그런 이유로 읽지도 않고 책만 사놓고 있어요. 윌리엄 트레버의 단편집도 좋다고 했는데 다시 찜합니다^^
근데 내년 가을에 읽어야하나요?
잠자냥님 권유로 올 가을엔 소세키를 읽었거든요^^

coolcat329 2021-11-19 09:38   좋아요 2 | URL
네~표지도 참 구매욕을 자극합니다😍
제 생각엔 겨울에 읽어도 좋을거 같습니다.☺
저야말로 소세키를 내년 가을에 읽어볼까싶습니다.

페크pek0501 2021-11-25 15:10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이 단편집을 장바구니에 담겠습니다. 올해 마지막 구매에 고려해 보려고요. ^^

coolcat329 2021-11-29 07:45   좋아요 1 | URL
네~^^ 단편의 정석으로 추천합니다😉
 
슬픈 카페의 노래 열림원 세계문학 2
카슨 매컬러스 지음, 장영희 옮김 / 열림원 / 2014년 3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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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픈 카페의 노래>는 윌리엄 포크너와 함께 20세기 미국 남부를 대표하는 작가, 카슨 맥컬러스(Carson McCullers 1917~1967)가 1951년 발표한 책이다. 그녀는 1940년 첫 장편 <마음은 외로운 사냥꾼>을 발표하여, '미국 문단의 기적'이라는 찬사를 받으며 혜성처럼 등장, 그 후 많은 사랑을 받으며 1967년 뇌출혈로 죽을 때까지 작품활동을 멈추지 않았다. 


카슨 맥컬러스는 평생을 병과 싸우며 글을 썼다. 15살 때 류머티즘 열을 앓는 것을 시작으로 30세에 두 차례의 심각한 뇌졸중을 겪은 후 왼쪽이 완전히 마비되어 휠체어 생활을 해야했고, 45세에는 유방암 수술까지 보통 사람으로서는 상상하기 힘든 고통에 시달렸다. 설상가상으로 결혼 생활도 평탄하지 못해 사랑도 그녀에게 고통을 안겨주었음을 유추할 수 있고, 그런 의미에서 외로운 사람들의 엇갈린 사랑을 다룬 이 소설은 독자에게 더욱 강렬하게 다가온다.


'마을은 황량하기 짝이 없다'라는 문장으로 시작하는 이 소설의 배경은 남부 조지아 주의 어느 작은 마을이다. 

사팔뜨기, 190센티 장신의 미스 어밀리어. 웬만한 남자보다 힘이 세고 돈 되는 일이라면 무엇이든 만들어 팔며 벽돌로 옥외 변소 하나쯤은 거뜬히 짓는 그녀지만 사랑과는 거리가 멀어 보인다. 어느 날 어밀리어 앞에 나타난 꼽추 라이먼. 그 역시 사랑하기는 쉽지 않다. 어밀리어의 전남편 마빈 메이시. 180센티의 훤칠한 키에 잘생겼지만 사랑을 하기엔 성정이 사악한 남자이다. 

근데 이 세 인물이 사랑을 하게 된다. 어밀리아는 꼽추 라이먼을 라이먼은 메이시를 메이시는 어밀리어를 사랑하는 기이한 삼각관계. 이들이 보여주는 일방적이면서도 엇갈린 사랑의 모습은 굉장히 파격적이고 이해하기가 힘들지만 사랑의 본질에 대해 생각해보게 한다. 


사랑이란 두 사람의 공동 경험이다. 그러나 여기서 공동 경험이라 함은 두 사람이 같은 경험을 한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사랑을 주는 사람과 사랑을 받는 사람이 있지만, 두 사람은 완전히 별개의 세계에 속한다. 사랑을 받는 사람은 사랑을 주는 사람의 마음속에 오랜 시간에 걸쳐 조용히 쌓여온 사랑을 일깨우는 역할을 하는 것에 불과한 경우가 많다. 사랑을 주는 사람들은 모두 본능적으로 이 사실을 알고 있다. 그는 자신의 사랑이 고독한 것임을 영혼 깊숙이 느낀다. 이 새롭고 이상한 외로움을 알게 된 그는 그래서 괴로워한다. (p.50,51)


사랑은 각기 다른 세계에 존재하는 두 사람 사이에서 일어나는 일이다. 따라서 두 사람 사이에 거리감이 존재할 수밖에 없고 그 거리는 쉽게 좁혀지지 않기에, 사랑은 기본적으로 고통과 외로움이 수반됨을 내포하고 있다. 

왜 어밀리어가 라이먼을 사랑하는지, 왜 메이시가 어밀리어를 사랑하고, 왜 라이먼은 메이시를 사랑하는지 소설에서는 그 이유를 알려주지 않는다. 왜냐하면 사랑에는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목사가 타락한 여자를 사랑할 수 있고, 사랑받는 사람이 배신자일 수도 있으며, 머리에 기름이 잔뜩 낀 사람도 사랑할 수 있는 것이다. '그래서 어떤 사랑이든지 그 가치나 질은 오로지 사랑하는 사람 자신만이 결정할 수 있'(p.52)고 '신 외에는 그 누구도 이 같은 사랑, 아니, 다른 그 어떤 사랑에 대해서도 최종적인 판결을 내릴 수는 없다'(p.65)고 말한다. 


사랑은 둘이 되고 싶어 시작하지만 결국 남는건 나 혼자임을 깨닫는 외로운 행위일까?

결국 사랑을 하려면 외롭고 고통받을 각오를 해야하는 걸까?


쓸쓸한 가을에 읽기 좋은 책이지만 사알못인 나는 참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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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미 2021-11-17 19:09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아니 이런 삼각관계는 또 처음입니다. 너무 궁금하네요!!
앙드레지드가 극찬했다는 대목도 솔깃해요. 사알못ㅋㅋㅋ

coolcat329 2021-11-18 07:12   좋아요 2 | URL
앗! 앙드레 지드가 극찬한건 몰랐는데 표지에 쓰여있네요 미미님 덕분에 알았네요.ㅋ ㅋ

mini74 2021-11-17 19:14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독특한 인물들의 외로운 사랑이야기인가요. 쓸쓸한 가을에 사알못인 쿨캣님이 읽은 책이라니 저도 막 궁금해집니다 *^^*

coolcat329 2021-11-18 07:09   좋아요 2 | URL
가을에 잘 어울리는 책이에요. 얇아서 카페 테라스 같은 곳에서 읽어도 좋구요~

새파랑 2021-11-17 19:26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라이먼이 메이시를 사랑한다는 내용을 보고 응? 이랬습니다. 남자가 남자를 좋아하는 거군요 😅 제가 성인지감수성이 좀 떨어지나 봐요 ㅋ 역시 사랑은 어려운거 같아요 ^^

coolcat329 2021-11-18 07:07   좋아요 3 | URL
아무리 사랑이 당사자들만 아는 거라해도 이들의 사랑은 참 쇼킹합니다.ㅎ

잠자냥 2021-11-17 21:28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와 이거 읽으셨군요! 제가 정말 좋아하는 작품입니다. 이 가을에 어울리는 쓸쓸하고 황량한 사랑 이야기. <마음은 외로운 사냥꾼>도 추천드립니다~

coolcat329 2021-11-18 07:04   좋아요 3 | URL
잠자냥님 글 읽은 기억나네요~가을에 어울리는 책이죠~^^ 사냥꾼도 읽어보겠습니다 ~^^

얄라알라북사랑 2021-11-17 23:31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어제 [원수들, 사랑 이야기] 리뷰 읽었는데 하루 사이 또 새로운 소설. 쿨캣님 매일매일 이렇게 한 권씩 리뷰 올리신다는 건, 매일 매일 책을 놓지 않고 사신다는 말씀!

coolcat329 2021-11-18 07:03   좋아요 3 | URL
이 책은 130쪽 조금 넘는 얇은 책이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