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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체와 함께 산책을 - 세상의 속도에 휩쓸리지 않고 나를 여행하는 법
시라토리 하루히코 지음, 김윤경 옮김 / 다산초당(다산북스) / 2021년 9월
평점 :
관조와 명상을 통해 깨달음을 얻는다고 한다. 그리고 관조와 명상과 깨달음은 구분된다기보다는 연결되거나 하나라고 한다.
개를 쓰다듬거나 항상 마주하는 문을 열고 나오는 것 같은 습관적인 행동을 할 때처럼, 자신을 인지 못 하는 상태를 무아 또는 무심이라고 하고 그 순간 깨달음은 찰나와 같이 찾아온다고 한다. 대상에 대해 아무 생각도 하지 않고 바라보는 관조에서 명상을 하고 깨닫는다는 것과 맥락을 같이 한다.
7명의 철학자와 사상가의 명상에 대해 다루기는 하지만, 그들을 살펴보는 데 많은 페이지가 할애 되지는 않았다. 특별히 철학을 다루지도 않고 사상을 논하지 않고 그저 7명의 명상을 시작으로 저자의 명상과 깨달음에 대한 에세이에 가까운 <니체와 함께 산책을>에서 깨달음은 세상과 나의 경계가 없어지면서 "세상과 내가 하나 되는 것"이라고 정의한다.
그것은 동서고금의 깨달은 자들이 공통으로 느끼는 것이라고 한다. 중세 독일의 사상가 마이스터 에크하르트와 철학자이자 렌즈 가공으로 생계를 꾸렸던 스피노자가 렌즈를 연마하는 일에 몰두하던 중에 깊은 명상 상태로 들어간 것을 예로 든다. 또한 모네의 '수련'이나 '루앙 대성당'을 보면 깨달음을 얻었을 때 시야에 들어오는 세계가 빛나는 모습과 아주 똑같다며 모네도 그 깨달은 자의 예로 든다.
Monet: Water Lilies and Reflection
Rouen Cathedral (Monet series)
"세상과 내가 하나 되는 것"이라는 것은 어떤 것일까?
세상은 나이고 내가 세상이라는 이 말을 음미해보고 싶다.
먼저, 세상에 있는 존재들 간의 경계가 허물어진다. 경계가 없다는 말이다. 그 말은 존재 간의 연결성을 말할 수도 있지만, 그것보다는 존재가 개별적이고 독립적으로 구분되지 않는다는 말이다.
'그것' 그리고 '너'와 구분되는 '나'는 개별적이고 주체적인 하나의 객체가 아니고 '세상을 구성하는 한 부분이라는 것이다.
독립된 객체가 부분으로 전락하는 것으로 볼 수도 있지만, '나'가 곧 세상으로 동치 된다.
맥북을 타이핑하는 내 손가락들이 각기 개별적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고 '나'인 것처럼 말이다.
나도 세상을 구성하는 부분이고 너도 그 부분이며 그것도 그 부분이고 우리 모두가 세상을 구성하는 부분이며 동시에 모두 같은 한 존재라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모두 연결되어있고, 우리 간의 편견과 선입견은 애초에 성립될 수 없다.
이것은 공간의 차원 (dimension)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시간의 차원도 같다. 현대의 이론 물리학에서는 '시간'의 상대성을 넘어 시간은 복잡도 (엔트로피)가 증가하는 상태의 변화로 간주하고 있지 않은가. '나'를 포함한 '우리'의 상태가 변화할 뿐, 우리는 우리의 세상에 그대로 존재한다. '질량 보존의 법칙'이라고 하지 않던가. 지구를 벗어나도 우주로 스펙트럼을 넓히면 모든 것은 어떤 형태가 되었던 그대로 존재한다.
시간이 유별나게 존재한다기보다는 '시간'이라는 척도로 복잡도가 증가하면서 세상을 구성하는 각 부분들의 상태가 바뀌며 서로 물질을 교환할 뿐이다. 생명이 태어나고 자라서 죽어 다시 무 (정확히는 원자 상태로 흩어질 것이다)로 돌아가는 것은 '나'가 죽었을 때 영원히 이별하는 것이 아니고 '나'는 여전히 세상에 영원히 존재하는 것이다.
이 깨달음을 얻었을 때, 세상 만물이 나와 연결되고 - 어차피 나와 세상 만물은 세상이다 - 모든 것이 영원하다는 것을 알게 되니 온 세상이 '광명'의 빛으로 보일 것이다.
그래서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는 <명상록>에서 죽음을 두려워할 필요가 없고 그 죽음은 원자로 환원될 뿐이라고 이야기했나보다. 그는 잔을 들었다. 여기에 옛 영웅의 원자가 있을 수 있다 하지 않았던가.
'대립'을 통해서
안타깝지만, 나는 이 깨달음을 지금 머리로만 아주 조금 이해했다. 나에게도 세상이 온통 빛으로 가득하게 보일 날이 올까?
아직 온통 빛으로 가득한 세상은 마주하지 못했지만, 지금도 세상은 무척 아름답다.
얼마 전 한강에서 라이딩하면서 찍은 사진으로 그 아름다움을 담아 본다.
- 덧붙임 -
자전거를 타면서 관조하기는 힘든 것 같다.
기본적으로 페달링을 할 때 업스트로크 - 페달이 올라오는 발도 동일하게 힘을 주는 것 - 가 잘되기는 한지 끊임없이 신경을 쓴다.
맞은 편에 옷과 헬멧을 멋지게 맞춰 입고 좋은 자전거 (트렉이나 메리다, 자이언트, BMC, 스페셜라이즈) 를 타고 오는 라이더를 보면, 자전거의 상표를 빠르게 확인 후에 잠시 부러워하고 오로지 페달링하는 발의 구름 횟수만 보고 나도 동조하듯이 맞추기 바쁘다. 물론 당근으로 산 10년 된 내 자전거가 좋다고 나와 자전거가 하나 되어 - 이것이 깨달음인가 - 말한다.
자전거를 탈 때 나는 정면을 보는 일은 없다.
왼쪽으로 5도 돌렸을 때는 맞은 편에 오는 라이더와 자전거 그리고 구름 횟수를 스캔해야 하고, 오른쪽으로 5도에서 10도 돌렸을 때는 첨부한 것과 같은 경치에 완전 매료되어있다. 전방주시가 잘 안된다.
<니체와 함께 산책을> 표지에 자전거를 타는 사진이 있어서 덧붙여 봤다. - 변명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