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금만 더.” 후지시로가 등 뒤로 다가가며 하루에게 말했다. 봄 잔디 같은 냄새가 났다. 머리칼 냄새일까 목덜미 향기일까. 화들짝 놀라며 한 걸음 물러섰다. 열기가 가셨다. 현상액 속의 붉은 소나기구름에 음영이 드리워지기 시작했다. “이제 조금만 더.” 후지시로가 되풀이했다. 그런데 하루가 갑자기 집게로 인화지를 끄집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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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 잔디 같은 냄새까진 괜찮은데 그 다음은 좀…ㅋㅋㅋ

"조금만 더." 후지시로가 등 뒤로 다가가며 하루에게 말했다. 봄 잔디 같은 냄새가 났다. 머리칼 냄새일까 목덜미 향기일까. 화들짝 놀라며 한 걸음 물러섰다. 열기가 가셨다. 현상액 속의 붉은 소나기구름에 음영이 드리워지기 시작했다. "이제 조금만 더." 후지시로가 되풀이했다. 그런데 하루가 갑자기 집게로 인화지를 끄집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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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지시로는 여전히 아세트산 냄새가 남아 있는 하루의 사진들을 들척였다. 사각형 빌딩에 잘려나간 하늘 사진이 이어지다가 뜬금없이 남자 얼굴이 나타났다. 포커스가 안 맞는 옆얼굴. 은색 빛이 쏟아져 들어오는 전철 안에서 문 옆에 선 채 온 얼굴을 구기며 웃고 있었다. 아이가 노래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어느 틈에 찍혔을까. 마음이 술렁이고, 심장 고동소리가 귓전에 울렸다. 그것은 한 번도 본 적 없는 자신의 웃는 얼굴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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