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금만 더.” 후지시로가 등 뒤로 다가가며 하루에게 말했다. 봄 잔디 같은 냄새가 났다. 머리칼 냄새일까 목덜미 향기일까. 화들짝 놀라며 한 걸음 물러섰다. 열기가 가셨다. 현상액 속의 붉은 소나기구름에 음영이 드리워지기 시작했다. “이제 조금만 더.” 후지시로가 되풀이했다. 그런데 하루가 갑자기 집게로 인화지를 끄집어냈다.

15/175

봄 잔디 같은 냄새까진 괜찮은데 그 다음은 좀…ㅋㅋㅋ


"조금만 더." 후지시로가 등 뒤로 다가가며 하루에게 말했다. 봄 잔디 같은 냄새가 났다. 머리칼 냄새일까 목덜미 향기일까. 화들짝 놀라며 한 걸음 물러섰다. 열기가 가셨다. 현상액 속의 붉은 소나기구름에 음영이 드리워지기 시작했다. "이제 조금만 더." 후지시로가 되풀이했다. 그런데 하루가 갑자기 집게로 인화지를 끄집어냈다.

15/175

후지시로는 여전히 아세트산 냄새가 남아 있는 하루의 사진들을 들척였다. 사각형 빌딩에 잘려나간 하늘 사진이 이어지다가 뜬금없이 남자 얼굴이 나타났다.
포커스가 안 맞는 옆얼굴. 은색 빛이 쏟아져 들어오는 전철 안에서 문 옆에 선 채 온 얼굴을 구기며 웃고 있었다. 아이가 노래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어느 틈에 찍혔을까. 마음이 술렁이고, 심장 고동소리가 귓전에 울렸다. 그것은 한 번도 본 적 없는 자신의 웃는 얼굴이었다.

17/175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아 일본은 그런가보다 하고 있긴 함.









"매뉴얼 일안리플렉스네.

9/175

동아리 분위기는 느긋해서 사진에 스토익한 회원은 적다는 얘기 등

11/175

"암실이 있으면 기쁘죠. 고향 집에는 있는데, 도쿄에 오면 어쩌나 고민하던 중이었거든요."
"고향은 어디지?"
"아오모리요. 혼슈 북쪽 끝자락에 자리 잡은 고장."
하루가 집게손가락을 세우고 위를 가리켰다. 하얗고 가는 손가락이 공중을 나는 잠자리 같았다.
"뭔가 멋진데. 북쪽 끝자락이라."
"완전 시골이에요. 그래서 집도 넓이 하나는 넉넉해요. 그렇다 보니 안 쓰는 방을 암실로 만들었어요."
"이제 사진부에서 필름카메라를 쓰는 사람은 나랑 누시 선배뿐인데……."

10/175

눈 속에 파묻힌 도로표지판, 메마른 논들 가운데 서 있는 편의점, 비에 젖은 목조건물 초등학교, 쓸쓸한 역 앞에 있는 낡고 허름한 빵집. 하나같이 색이 옅은 풍경이었다.

12/175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이곳은 벽도 소금, 복도도 소금, 소파와 침대, 테이블과 의자, 꽃병까지도 소금이에요. 이틀만 있으면, 누구나 장아찌 같은 기분이 들 테죠. 소금투성이인 이 호텔에서 나는 그를 만났습니다.

그는 옅은 갈색 주근깨가 두드러져 보이는 하얀 피부와 호박색 눈동자를 가진 아르헨티나 사람입니다. 소금호텔에 체류한 지 어느덧 반년. 줄곧 수채화를 그리고 있다고 했습니다.
그의 그림은 하나같이 옅은 색을 써서 덧없어 보였어요. 젖빛 필터가 덮인 것 같은 아름다운 그림이었습니다. 나는 그에게 그 그림들이 좋다고 말했고, 그림을 보여준 보답으로 내가 찍은 사진을 보여줬어요. 당신도 알고 있듯이, 내 사진도 어딘지 모르게 연하고 담백한 세상을 담아낸 것이죠. 그는 그 사진들을 매우 마음에 들어 했어요. 자기가 바라보는 경치와 비슷하다고.

6/175

한쪽 구석에 고요히 가라앉듯이 사진부 방이 있었다. 의학부 3학년생이 된 후지시로는 일찍부터 수업을 따라가지 못해서 동아리 방으로 도망쳤다.

8/175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