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해를 피하기 위해 당신에게 말해 두고 싶습니다. 만약 당신이 나와 내 어머니를 그런 사람으로 본다면 큰 실수를 하는 거라고 말입니다. 우리는 매우 가난합니다. 하지만 나 자신을 위해서라도 이렇게 말하겠습니다. 당신 아버지가 부자라는 바로 그 이유 때문에 난 나 자신을 그분의 친척으로 생각하지 않는다고요. 나도 어머니도 그분에게 결코 아무것도 구걸하지 않고 아무것도 받지 않을 겁니다." -p139
풋풋한 젊은 시절에, 특히 고독한 처지에 있을 때 흔히 그러듯이 피에르는 그 청년에게 원인 모를 다정함을 느끼며 그와 꼭 친해져야겠다고 다짐했다. -p141
멋있었다. 이런 말을 하는 사람을 좋아하지 않을 수 있을까?
안나 미하일로브나는 이미 그녀를 끌어안고 울고 있었다. 백작 부인도 울었다. 자신들이 친구 사이라는 것, 자신들이 선한 인간이라는 것, 어린 시절부터 친구인 자신들이 돈처럼 비천한 물건 때문에 염려하고 있다는 것, 자신들의 젊음이 지나가 버렸다는 것, 그 때문에 그들은 울었다. 하지만 두 사람의 눈물은 기쁨의 눈물이었다. -p146
'자신들의 젊음이 지나가 버렸다는 것', 감탄했습니다. 멋진 문장입니다.
'산 자와 죽은 자의 경계를 떠올리게 하는 이 선을 한 발짝 넘어서면 미지와 고통과 죽음이 있다. 그런데 저편에는 무엇이 있을까? 저편에는 누가 있을까? 이 들판과 나무와 햇살에 반짝이는 지붕 너머 저편에는? 아무도 모른다. 알고 싶다. 이 선을 넘는 것이 두렵지만 넘어 보고 싶다. 너는 안다. 죽음 저편에 무엇이 있는지 필연적으로 깨닫게 되듯 네가 조만간 저 선을 넘어야 하고 저 선 너머 그곳에 무엇이 있는지 알아야 한다는 것을. 하지만 너 자신은 강인하고 건강하고 쾌활하고 흥분해 있으며, 똑같이 흥분과 생기에 넘치는 건강한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있다.' 적군의 시야에 놓인 사람은 누구나 딱히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해도 그런 느낌을 받는다. 그리고 그 느낌은 그 순간 일어나는 모든 것에 독특한 광채와 유쾌하고 강렬한 인상을 더한다. -p343
전쟁을 겪어본 적도 전쟁터에 나가본 적도 없어서 이런 느낌을 전혀 모르겠습니다. 책에 이런 묘사들이 자주 나옵니다. '유쾌하다.', '쾌활하다.', '생기 넘친다.', 톨스토이는 전쟁에 참전한 경험이 있습니다. 본인이 실제로 이런 느낌을 받았던 걸까요?
"사소합니다!" 연대장이 굵은 저음으로 말했다. "켱키병 두 명이 부상당했고, 한 명이 즉사했습니다." 그는 행복한 미소를 억누르지 못하고, 즉사라는 아름다운 단어를 낭랑하게 거침없이 내뱉으며 기쁜 듯이 말했다. -p356
공작도 혐오감을 품었지만 그것은 경멸감에 묻혀 버렸다. -p512
재밌는 표현입니다. 덕분에 혐오감과 경멸감의 차이에 대해 찾아봤습니다. 혐오감이 싫은 감정이라면 경멸감은 거기에 깔보는 것까지 추가한 감정입니다.
'나의 소명은 다른 거야.' 마리야 공작 영애는 마음속으로 생각했다. '나의 소명은 다른 행복, 즉 사랑과 자기희생의 행복으로 행복해지는 거야. 이 일이 내게 어떤 희생을 요구하든 난 가엾은 아멜리에를 행복하게 해 주겠어. 그녀는 그를 열렬히 사랑해. 그녀는 몹시 후회하고 있어. 난 그녀와 그의 결혼을 추진하기 위해 모든 것을 할 거야. 그가 부유하지 않다면 내가 그녀에게 재산을 주겠어. 아버지에게 부탁하고 안드레이에게도 부탁해 봐야지. 그녀가 그의 아내가 된다면 난 너무 행복할 거야. 그녀는 몹시 불행해. 타국에 있어서 고독하고 도움을 얻을 곳도 없어! 하느님, 그처럼 자신을 잊을 수 있다면 그녀는 그를 정말 뜨겁게 사랑하는 거겠죠. 어쩌면 나도 똑같이 행동했을지 몰라......' 마리야 공작 영애는 생각했다. -p546
정말 선한 마음씨입니다. 저는 소설 속에서 이런 마음씨를 가진 사람을 보면 사랑을 느낍니다.
안나 미하일로브나의 얼굴에는 힘든 절단 수술을 끝낸 후 자신의 솜씨를 평가하도록 관중을 불러들이는 외과 의사의 자랑스러워하는 표정이 어려있었다. -p554
정말 톨스토이는 비유의 달인입니다.
하지만 하느님, 제가 영광과 사람들의 사랑 외에 아무것도 사랑하지 않는다면 전 도대체 어떻게 해야 합니까? 죽음, 부상, 가족의 상실 그 무엇도 저는 두렵지 않습니다. 많은 사람들, 아버지와 누이와 아내 - 나에게 가장 소중한 사람들 - 그 사람들이 저에게 아무리 소중하고 좋다 해도, 반면 이것이 아무리 무시무시하고 부자연스럽게 보일지라도 영광의 순간을 위해, 사람들에 대한 승리의 순간을 위해, 제가 알지 못하고 앞으로도 알지 못할 사람들로부터의 사랑을 위해, 바로 그런 사람들로부터의 사랑을 위해 당장이라도 그들 모두를 넘겨 드릴 수 있습니다.' -p622~623
간혹 영웅적인 사람들은 보면 주위사람들보다 인류애, 명예, 권력 등을 더 추구하는 경우가 많은 거 같습니다.
아래는 1권에서 가장 중요한 장면 문장이 아닌가 싶습니다.
'어떻게 된 거지? 내가 쓰러지는 건가! 다리가 말을 듣지 않아.' 그는 이런 생각을 하며 뒤로 쓰러졌다. 그는 프랑스인들과 포병들의 싸움이 어떻게 끝나는지 보고 싶어서, 붉은 머리 포병이 죽었는지 어떤지, 대포를 뺏겼는지 지켰는지 알고 싶어서 눈을 떴다. 그러나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머리 위에는 하늘 외에 아무것도 없었다. 높은 하늘, 맑지는 않지만 헤아릴 수 없이 높은 하늘, 조용히 떠다니는 회색 구름. '정말 고요하고 평온하고 장엄하군! 내가 달릴 때와 전혀 달라.' 안드레이 공작은 생각했다. '우리가 달리고 소리치고 서로 싸울 때와 달라. 프랑스인과 포병이 적의와 두려움에 찬 얼굴로 서로 꽂을대를 잡아당기던 때와도 전혀 다르군. 구름은 저 높고 무한한 하늘에서 전혀 다른 방식으로 흐르는구나. 어째서 예전에는 저 높은 하늘을 보지 못했을까? 마침내 저 하늘을 알게 되었으니 나는 얼마나 행복한가! 그렇군! 모든 것이 공허해. 이 무한한 하늘 외에는 모든 게 다 허위야. 저 하늘 외에는 아무것도,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아. 하지만 심지어 그마저도 없군. 정적과 평온 외에 아무것도 없어. 아, 하느님, 감사합니다!' -p658~659
나폴레옹의 눈을 쳐다보면서 안드레이 공작은 위대함의 노잘것없음에 대해, 아무도 그 의미를 이해할 수 없었던 생의 보잘것없음에 대해, 산 사람들 가운데 어느 누구도 그 의미를 이해할 수 없고 설명할 수 없었던 죽음의 한층 더 보잘것없음에 대해 생각했다. -p686
안드레이 공작은 전쟁의 공허함을 깨닫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