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딩으로 리드하라 - 세상을 지배하는 0.1퍼센트의 인문고전 독서법
이지성 지음 / 문학동네 / 2010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오래전에 읽은 책이지만 리뷰를 빠뜨렸던 책이라 이제야 쓰게 되었다.

 

 북플이나 오프라인 상에서도 이지성작가를 비판하는 사람들도 많이 보았고, 글도 많이 보았다. 차유람과 결혼한 것까지 비판하는 것은 비판을 위한 비판이라고 밖에 보이지 않는다. 무언가를 비판할 때는 그것에 대해 자세히 알아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침묵해야 한다.

 

 이지성작가를 비판하는 사람은 많다. 그리고 존경하고 좋아하는 팬도 많다. 이 책의 주요 내용은 이렇다. "인문고전독서를 통해서 삶을 미래를 변화시키자." "수많은 위인과 천재들이 인문고전독서를 했다." 그리고 인문고전 독서법을 소개한다.

 

 귀납법으로는 무언가를 증명할 순 없다. 아무리 많이 독서를 통해서 인생을 변화시킨 위인, 천재들을 보여줘도, 명문대학 시카고대학에서 인문고전 독서를 통해 교육을 하고, 미국에서 범죄자들을 인문고전 독서를 통해서 교화시킨다는 것을 보여줘도 인문고전독서가 인생을 변화시킨다는 것을 증명할 수 없다. '그것은 노력하면 성공한다.' 처럼 증명할 수 없는 명제이다. 열심히 인문고전 독서를 했지만 실패하는 사람도 있을 수 있고, 오히려 많은 사람에게 악영향을 끼치는 악인이 탄생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인과관계를 입증할 수는 없을지라도 상관관계를 보여줄 수는 있고, 사실 독서가 사람에게 유익하다는 것을 부정하는 사람이 있을까? 고전은 천재들이 남긴 저서이다. 현재 베스트셀러나 스테디셀러가 있다면, 고전은 몇 백년, 수천년의 시간을 견뎌온 스테디셀러인 것이다. 거기에는 지식보다는 천재들의 사유와 지혜가 담겨있다. 시대와 사상에 대한 고민과 성찰이 담겨 있다.

 

 이지성작가는 자기계발서 작가이며, 독서예찬론자이다. 이지성작가 말고도 김태광, 김병완작가 등 독서자기계발서 작가들이 더러 있다. 나는 김태광, 김병완작가는 좋아하지 않지만, 이지성작가는 존경하고 좋아한다. 그 이유는 이지성작가에게는 진정성이 있기 때문이다.

 

 예전에 차이에듀케이션에서 주최한 독서캠프를 참가한 적이 있는데, 2박 3일 일정의 마지막날 이지성작가님의 강연이 있었다. 3시간이나 운전하고 오셔서 휴식을 취하시느라 강의시간이 조금 늦춰졌다. 굉장히 피곤하셨을텐데도, 열정적으로 강의하셨고, 그리고 무엇보다 놀라운 점은 질의응답시간에 보여준 모습이었다. 솔직히 굉장히 어리석은 질문들이 많았음에도 불구하고(나를 포함해서) 정말로 성심성의껏 최선을 다해서 답변해주셨다. 매우 긴 시간 동안 질문 하나하나에 대해 답변해주셨다. 독서캠프의 가격도 굉장히 저렴했다. 영리를 위한 것이 아님을 알 수 있었다. 오히려 이 돈 내고 이렇게 먹고 자고 해도 되나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2박 3일에 숙식포함 10만원이었다.

 

 이지성작가는 피나는 노력을 거쳐서(14년의 기간) 작가로서 성공했고, 첫 원고료를 받았을 때 그 돈을 모두 기부하셨다고 한다. 500만원 정도였다고 하셨던 것 같은데, 이미 그 당시 집안 사정으로 인한 빚이 1~2억원이었을 때였다. 모두들 미쳤다고 생각했으리라. 지금도 기부와 자선사업에 열중하신다. 동남아시아 여러 국가들에 집이나 학교를 짓거나 우물을 파고, 그리고 우리나라에서도 낙후된 지역의 어린이들을 위해 교육사업에도 열중하고 계신다.

 

 인문학에 관한 책을 읽으면 인문학적 소양이 생기기 마련이라고 난 생각한다. 이지성 작가는 인문학적 삶을 몸소 실천하고 계시다. 나또한 책을 읽으면서 깨닫는 점이 참 많고, 어떻게 살 것인가를 많이 고민하게 된다. 책을 읽으면 휴머니즘이 자라나고, 인류애가 생기는 것 같다. 다른 사람들도 나와 똑같이 고통을 싫어하고 행복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 그리고 그들도 누구가를 사랑했으며, 상실도 경험한 사람들이라는 것을 새삼스레 깨닫게 된다.

 

 이 책은 고전을 읽으면 좋다는 것을 이야기한다. 그것이 그렇게 욕먹을 일인지 의심스럽다. 많은 사람들이 이지성작가가 말하는 성공의 의미를 멋대로 해석해서 비판한다. 이지성작가는 세속적 성공을 이야기한 적이 없다. 무언가를 비판할 때는 그것에 대해서 잘 알아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침묵해야 한다. 이 책을 읽기도 전에 성난 원숭이들처럼 비판하지 말기를. 읽을 때도 오독하지 않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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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우개 2017-02-26 01:09   좋아요 1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책이라는 것은 어떠한 주장과 그에 대한 예증으로 이루어 집니다. 때문에 책은 필히 주장에 대한 증명을 해야만 하지요. 칸트의 실천이성비판의 주장은 ‘너의 행동을 보편적 준칙에 맞추어 행동하라‘인데, 이에 대한 증명을 위해서 700페이지짜리 책을 써내려 갑니다. 롤스의 무지의 베일을 증명하기 위해 900페이지에 육박하는 글을 써내려 가고요.
이지성이 욕을 먹는 건 사람들이 그의 주장에 동조하지 않아서가 아닙니다. 그가 인문독설을 하자라는 주장에 대해 아주 허술한 증명을 하기 때문입니다. 그의 논리적 오류는 다음으로 갈음합니다.
https://namu.wiki/w/%EC%9D%B4%EC%A7%80%EC%84%B1

고양이라디오 2017-02-27 08:59   좋아요 0 | URL
좋은 정보 감사합니다. 모든 정보는 비판적으로 받아들이는 것이 필요합니다. 다만 모든 것을 비판적인 눈으로 바라보면 정작 중요한 것은 놓치게 됩니다. 책을 읽는 것은 즐겁고 유익합니다. 이 명제를 증명하기는 지극히 어렵습니다. 모든 사람에게 보편적인 명제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ㅈ득 2017-04-18 01:43   좋아요 1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이지성 작가와 고전읽기를 동일시하고 계시는데, 이지성이 욕을 드시는 이유는 고전의 유익함을 증명함에 모순이 있어서가 아니라, 책의 주제가 분명하지 않고, 책에 과학적으로 증명된 사실이 아닌 세간에 떠도는 낭설들을 사실인 것처럼 속여 독자들을 현혹하고, 자신과 별반 다를게 없는 외국작가들의 책을 비난하며, 자신의 책은 올바른 것처럼 차별화하고, 인문학의 목적을 단순히 천재가 되는 곳에 두고있음에도 불구하고 왜 천재가 되어야하는지 올바른 근거를 제시하지 못하며, 책의 내용을 보면 고전의 내용들을 오용하고 있고, 사람이 실천할 수 없는 히브리어로 성경읽기 한자로 논어 등 읽기 독일어로독일 철학서적 읽기 등을 반드시 해야한다는 듯 주장하면서도 구체적인 실천방향은 제시하지 못하고,
책을 얼마나 읽냐는 물음에는 책을 산 액수로 대답하며 자기과시를 하고 인용문에 대한 주석도 달지 않기 때문입니다

ㅈ득 2017-04-18 01:45   좋아요 1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https://www.google.com/url?sa=t&source=web&rct=j&url=http://kirang.tistory.com/718&ved=0ahUKEwjVprGz9KvTAhUFJJQKHfjhBaAQFggZMAA&usg=AFQjCNGKeupJdJAU3E18o1YaOAr67SR6wg&sig2=xfM15YUPhTIs4eXwkD7b_Q 참고하시면 좋을 듯 합니다.

고양이라디오 2017-08-18 00:55   좋아요 0 | URL
이제서야 보네요.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글쎄요 2017-08-17 23:04   좋아요 2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글쎄요. 고양이 님의 말에 따르면, 모든 정보를 비판적으로 바라보면 정작 중요한 것을 놓치지 않을 것 같은데요. 사기꾼들이 자주 하는 말이 모든 걸 부정적으로 비판적으로만 받아들여서 그런 거야! 하지 않던가요.
˝비판적으로 바라보면 ‘어떻게‘ 중요한 것을 놓치는 지요? ˝ 제가 볼땐 비판적으로 보지 않음으로써 놓치는 게 더 많을 것 같은데요. 이지성이 복음도 아닌데 거의 이해하기 위해 믿어야 하는 태도나 다름이 없어 보입니다.

그럼 위의 댓글도 비판적으로 받아들이지 않아야 하는 것 아닌가요. 세상에 비판적으로 받아들이는 것이라는 말을 들어봤어도 비판적으로 받아들이지 않아야 중요한 것을 획득할 수 있다는 순진한 말은 처음 듣네요. 작성자 본인조차 ‘비판적으로 받아 들이면 선뜻 받아들이기 힘든 주장임‘을 인정하면서 말이죠. 묻고 싶네요.

˝ 왜 인문학 정신을 강조하는 ‘이지성‘의 주장만큼은 비판적으로 받아들이는 것을 배제해야 하는 지요.˝
˝ 심지어 저렇게 많은 오류가 산재함에도 불구하고 말이죠.˝
˝ 이지성 책 내에도 책을 보면서 ‘사유하라‘(는 이지성 본인조차 못하는 행위를 강요하는 것 같지만) 말이 나오는데, 그 사유에선 이지성 책은 제외되는 건가요? 이건 인문정신인지요.˝

상당히 공격적으로 물었지만, 용서하십시오. 궁금합니다.

고양이라디오 2017-08-17 23:32   좋아요 0 | URL
항상 의사소통에는 오해가 따라붙기 마련인거 같습니다.

저는 비판적인 눈으로‘만‘ 바라보면 중요한 것은 놓치게 된다 라는 말을 하고 싶었습니다. ‘만‘ 이라는 글자가 빠져서 오해가 생기게 된 거 같습니다. 질문 감사합니다.

정확히 이름을 댈 수는 없지만 수많은 철학자들이 비판적으로‘만‘ 바라보는 것을 경계했습니다. 비판적이면서도 수용적인 자세를 취하라고 말했습니다. 저는 비판적으로‘만‘ 바라보다가 정작 저자가 말하고자 하는 바나 유용한 점, 장점 등을 놓치게 되는 것을 우려해서 한 이야기였습니다. 이지성 작가가 진리도 아니고 그가 말하는 점에 대해서 저도 이해가 안되고 수용할 수 없는 점도 많고 오류가 있다는 점도 인정합니다.

다만 저는 그가 이야기하는 독서나, 고전의 중요성 혹은 노력이나 의지의 중요성에 대해서는 받아들여야 하지 않나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수많은 오류 속에서도 이 부분은 중요한 점이 아닌가 싶습니다.

저는 이지성의 손가락이 아닌 그가 가리키는 달을 보는 편이 낫지 않나 싶어 한 이야기지만 세세한 부분에 대해 문제 삼는 것은 타당하다 생각하며 동의합니다.

답변이 잘 되었나 궁금합니다. 부족한 부분있으면 질문주시기 바랍니다.

글쎄요 2017-08-18 00: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아뇨.... 전혀 되지 않았습니다.
1. 철학자들 중에서 누가 그랬는지 알지 못하겠네요. .. 제가 철학과 출신인데... 어떤 철학자도 그런 주장을 한적 없다고 ‘확실히‘ 말할 수 있습니다. 일단, 철학자들은 철저히 논증이 기반합니다. 최근의 포스트구조주의 및 프랑크푸르트의 논증의 밀도가 이전의 관념철학보다 훨씬 떨어지는 감이 있고, 칸트 이전의 철학의 논증이 칸트 이후의 철학보다 논증의 밀도가 약간 떨어지긴 합니다. 하지만, 이 모든 철학자들은 조금이라도 빈약해보이는 논증을 단 한번도 ‘수용‘한 적이 없습니다. 대단히 단단해 보이는 ‘칸트‘철학도 ‘맑스‘ 철학도 미친듯이 까이는 판국에... 비판적이면서 수용적이어야 한다는 주장은 누가 한 것인지 몰라도 철학에 있을 수 없는 태도입니다. 정말 그 말을 ‘철학자‘가 말한 것인지 의문이네요.(자기계발서 속 철학자를 인용한 것 아닌지요.) 철학에서 무조건적인 수용은 수학 공부하면서 수식없는 수학을 하라는 것과 같은데요. 철학은 비판이 핵심이자 오메가입니다.
예를 들면, 데카르트의 인식론은 ‘2+3=5‘도 의심하라! 하였고, 칸트는 자신의 인식론을 분석하면서 형이상학 전체를 비판합니다. 하이데거나 후설은 말할 필요도 없고요. 모두들 오직 ‘비판‘ 뿐이었습니다.
있다고 해도 아우구스티누스 정도가 있겠는데요(믿어야 이해한다)... 아우구스티누스야 당시 그리스도철학에 기반한 신학에 가까운 공부를 하느라 그런 것이라 치더라도, 이후 스콜라철학자들이 아우구스티누스를 미친듯이 비판하였습니다. 그러면서 이해해야 믿는다는 명제를 주창하였고요(이 부분은 제가 중세철학 전공은 아니라서 더 이야기를 않겠습니다)
2. 비판적이지 않은 태도로도 볼 수 있는(비판이라는 걸 부정적 태도로 한정해야 할 듯합니다. 비판없이 유용한 점 혹은 장점을 파악하는 건 불가하니까요. 일단 논의의 단어를 통일할 필요가 있다고 봅니다.) 유용한 점 혹은 장점 등을 놓치게 된다는 건 이해 할 수가 없네요. 상당히 순진한 생각인 듯 합니다.
책이라는 건 의지나 중요성 그리고 독서를 강조하는 것에만 그치면 안됩니다. 그러니까 책은 논증의 도구입니다. 어떤 책이든 주장과 이유 그리고 근거로 바탕으로 하기에 주장만 있는 책은 위에서 언급하듯 수십백페이지를 쓰입니다. 그건 장식이 아닙니다. 책이란 혹은 텍스트란 바로 그런 것이기 때문입니다.
더욱이 이지성은 위에서 언급하듯이 ˝이지성 작가와 고전읽기를 동일시하고 계시는데, 이지성이 욕을 드시는 이유는 고전의 유익함을 증명함에 모순이 있어서가 아니라, 책의 주제가 분명하지 않고, 책에 과학적으로 증명된 사실이 아닌 세간에 떠도는 낭설들을 사실인 것처럼 속여 독자들을 현혹하고, 자신과 별반 다를게 없는 외국작가들의 책을 비난하며, 자신의 책은 올바른 것처럼 차별화하고, 인문학의 목적을 단순히 천재가 되는 곳에 두고있음에도 불구하고 왜 천재가 되어야하는지 올바른 근거를 제시하지 못하며, 책의 내용을 보면 고전의 내용들을 오용하고 있고, 사람이 실천할 수 없는 히브리어로 성경읽기 한자로 논어 등 읽기 독일어로독일 철학서적 읽기 등을 반드시 해야한다는 듯 주장하면서도 구체적인 실천방향은 제시하지 못하고,
책을 얼마나 읽냐는 물음에는 책을 산 액수로 대답하며 자기과시를 하고 인용문에 대한 주석도 달지 않기 때문입니다˝ 때문에 비판받습니다.
이런 걸 모두 무시하고 ‘비판적으로만 보면 놓치는 게 많다.‘는 논리로 접근할 수 있는지요.
3. 심지어 이지성의 독서 고전의 중요성 그리고 노력이나 의지의 중요성이 과연 옳은 방향이냐. 그렇지도 않습니다. 위에서 나무위키라는 곳에 잘 쓰여져 있지만, 독서의 중요성만 강조하면서 말도 안되는 해결방안을 내놓습니다. 라틴어로 읽으라느니.. 헬라스어로 읽느냐느니... 한국에 고전라틴어와 고전 헬라스어 할 줄 아는 사람이 열손가락에 꼽음에도 이런 독서 방식을 권합니다.
또 고전의 중요성이라고요? 순수이성비판을 바로 고전으로 읽는다고 칩시다. 이지성은 이를 고삼에게 권하는 데, 장담컨대 이지성 자식에게도 이런 독서 못권합니다. 그건 고삼의 능력이 부족해서입니다. 순수이성비판은 일반적인 대중을 읽으라고 제시한 게 아닙니다. 당대 지식인층들을 겨냥한 논문입니다. 그래서 서술 방식도 논문에 가깝고요. 최근에 제가 읽고 있는 미셸푸코의 감시와 처벌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감시와 처벌은 박사학위 논문입니다. 그걸 고등학생들에게 마구 권하면, 고등학생 그 책 읽고 다시는 책 안읽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노력이나 의지의 중요성이라고요? 노력이나 의지의 중요성의 문제가 아닙니다. 그냥 능력이 없어서 못읽는 겁니다. 고전은... 저도 못읽는게 많습니다. 왜? 읽을 능력이 있으려면, 그 사람의 배경부터 그사람에게 영향을 끼친 책들 등을 조금 알아야 무슨 말인지 이해가 갈까 말까 하는데 그걸 일반인들에게 읽으면, 그냥 글자만 읽는 것 밖에 안됩니다.
예를 들어 얼마전에 최진기 강사가 ‘나는 생각한다. 그러므로 존재한다.˝는 말을 할 때 이를 존재에 대한 언명이라고 했습니다. 이런 식으로 해석하면 안됩니다. 데카르트는 그 말을 존재가 아닌 인식론으로서 시작했으며 이는 근대 인식론의 시발점으로 여겨집니다. 위 내용을 그냥 존재가 등장함으로 존재론(후설 가서야 나오는 존재론)이야, 하면 이후 나오는 라이프니츠 흄 칸트 헤겔 모두 이해를 못하게 됩니다. 이럼에도 무작정 고전의 독서에 뛰어들고 읽다가 실패하면 그건 너의 노력의 부족이야. 라고 언명하는 것을 비판 없이 수용하는 것도 필요하다고 생각하시는지요. 심지어 이지성은 이걸로 돈을 벌기까지 하는데요.
책은 철저히 내용을 습득하기 위함이고 이해하기 위함입니다. 그냥 그애의 주장이 좋아. 왜? 그냥 좋으니까 식의 태도는 지양해야 하며 그런 식의 태도는 어떠한 발전도 없음을 확신합니다. 손가락이 아닌 그가 가리키는 달을 보라는 데 그 달이 정말 달이라면 또 모르겠는 데 그 달이 인공위성에 불과한 것으로 보이네요.

심지어‘ 논증‘은 단순히 손가락에 비유될 정도로 지엽적이지도 세세하지도 아님함에도 말이죠. 초등학교 도덕이면, 이해 안가면 외워 식의 말이 가능하겠지만, 그건 초등학교 때나 있는 이야기고. 소위 사유하라는 말의 이지성의 언명은 자기 자신에게서만 왜 배제되는지 전 이해가 가질 않네요. 이거야 말로 ‘이지성이 주장한 주입식 교육‘ 아니던가요.

너무 공격적으로 말하게 된 것 정말로 죄송하게 생각합니다. 불편하시더라도 답변 부탁드립니다. (거의 초안 상태로 퇴고도 없이 서술한 건지라 조금 두서가 없습니다. 용서바랍니다...)사실 위의 논평도 비판하고 싶었지만... 그건 하지 않겠습니다. 저같은 철학도들에게 이지성은 거의 패스트푸드에 가깝습니다. 혹자는 관심을 끌지 않냐라는 말을 하는데 그 따위 관심은 오히려 독입니다. 마치 예수의 정신을 전파하겠다며 신천지나 여호와의 증인을 끌어들이는 거나 다름이 없습니다.

아마 위이 ㅈ득님의 답변을 하지 않은 이유 역시 세세하다고 보아서인데... 철학에 관심있어하시는 작성자님께서 (아마 그렇게 사료됩니다. 소피의 세계 마르크스가 처음인데요 등의 책이 게시된 걸 보면...)가장 버려야 하는 태도인 듯 합니다. 철학은 논증입니다. 루트비히 비트겐슈타인은 (비록 초기 철학에서만 해당하는 말이긴 하지만) 철학은 오로지 논증하는데에만 뒷받침하는 것이다라고 할 정도입니다. 논증을 세세한 것 혹은 그저 손가락으로 보시면 철학은 끝입니다. (굉장히 꼰대 같은 소리해서 죄송합니다;;;)

고양이라디오 2017-08-18 01:11   좋아요 0 | URL
ㅈ득님의 답변을 하지 않은 이유는 첫째로 답변을 못 보았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날짜를 보시면 2월에 댓글을 주고 받고 갑자기 4월로 건너 띄었습니다. 두번째로 댓글을 봤을 수도 있지만 댓글을 달아도 상대방이 확인할지 알 수 없어서 그냥 지나쳤던 거 같습니다.

1번의 내용은 저도 정확히 기억이 나지 않기 때문에 보류하겠습니다. 하지만 여러 사람들의 글에서 일단 독서를 할 때 비판적 태도와 함께 관용적(수용적 태도에서 관용적으로 변경하겠습니다)태도를 가지라는 글들을 많이 봤던 기억이 있습니다. 빈약해보이는 논증을 수용하라는 뜻이 아니라 저자의 의견을 처음부터 너무 방어적이고 부정적으로만 받아들이지 말라는 태도로 이해했습니다. 일단은 마음을 열고 귀담아 듣고 이해하면서 동시에 비판적으로 접근해야 한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3번에 노력이나 의지의 중요성은 고전 읽기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라 저는 자신의 꿈을 실현하기 위해 꾸준히 노력하는 모습을 이야기 한 것이었습니다.

죄송합니다. 시간이 늦어서 답변을 소홀히 한 점 사과드립니다. 좋은 댓글 달아주셔서 감사합니다. 글쎄요님의 의견에 대부분 동의합니다.

다만 제가 이야기하고 싶은 점은 세세한 부분에 대해서 옳고 그름을 따지는 것도 중요하지만 (사실 그게 그다지 중요하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만...) 저는 이지성 작가가 말하고자 하는 독서의 중요성과 꿈꾸고 노력하는 모습을 옹호하고자 한 것입니다.

이지성작가도 분명 불완전한 인간이고 부족한 점도 많습니다. 하지만 아마 그는 저와 글쎄요님 보다 꿈을 위해 더 치혈하게 더 많이 노력했습니다. 그리고 아마 성공한 후에 저와 글쎄요님 보다 도 많이 남들을 도왔을 것입니다. 저는 그 부분에 대해서 옹호하려고 했던 것입니다. 철학에서 논증은 중요합니다. 하지만 논증으로만 한 사람의 글과 말을 평가하기에는 그 사람이 어떤 삶을 살았고 살고 있나를 보는 것도 중요하다고 생각해서 옹호글을 썼던 것입니다.


글쎄요 2017-08-18 00:35   좋아요 1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혹시 위의 평석에 대한 비판도 허락하신다면 얼마든지 비판할 수 있습니다. 허락해주실지는 모르겠습니다만...

고양이라디오 2017-08-18 00:49   좋아요 0 | URL
평석에 대한 비판은 뭐를 말씀하시는 건가요?

글쎄요 2017-08-18 01:06   좋아요 1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위의 리딩으로 리드하라 옹호글을 말하는 겁니다... 비판을 원하시지 않으시다면(제가 비판할 능력이 있는 것도 아닙니다만....) 하지 않겠습니다. 개인적으로 철학은 요즘 워낙 사짜가 많습니다. 강신주 등등...(강신주 라캉해석과 알튀세르 해석은 거의 사기에 가깝습니다...) 채사장이라는 분은 완전히 오독한 경우가 많더군요. 예전에 지나가던 걸로 읽었는데 굉장히 오류가 많아서 놀랐던 적이 있습니다. 그외에도 철학으로 장난치는 분들이 엄청 많습니다. 주의하시기 바랍니다.

개인적인 조언이라면, 슈퇴리히 세계철학사나 힐쉬베르거 서양철학사 혹은 코플스턴 철학사 책들과 동녁에서 나온 현대철학의 광장, 현대유럽철학의 흐름 혹은 현대철학의 흐름으로 시작하시는 걸 추천합니다... 이런 책 한 권 한권이 고전으로 가는 지름길이라고 확신합니다... (최근 철학 교양서랍시고 나온 것이 그냥 맥락없이 발췌해서 도덕적 교훈만 남기고 끝나는 경우가 많은데 그런 책은 거의 백프로 사깁니다. 철학책은 도덕교과서가 아니기 때문에 인생의 교훈을 남기지 않지요. 헤겔 절대정신이 무슨 도덕적 결과를 낳겠습니까)[특히 현대철학의 광장의 푸코부분은 서술이 잘 되어 있어서 그것만 읽고 성의 역사나 감시와 처벌로 들어가도 무방할 정도입니다. ]

예전에 이지성이랑 짝을 이루면서 다니는 강건 목사의 인문학 강의에서의 스피노자 강의는 정말 가관입니다.. 이지성은 이걸로 거의 200만부를 팔아 치웠으니 그만큼의 합당한 책임이 있어야 하는 데 전혀 그런 책임을 지지 않나 봅니다.

고양이라디오 2017-08-18 01:15   좋아요 0 | URL
윗 글에 대한 비판도 환영합니다. 그리고 좋은 책들을 소개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아직 저도 미천한 수준의 독자인지라 아는 게 없어서 비판할 능력도 없습니다. 하지만 강신주씨는 저도 비판하는 사람 중에 한 명입니다.

글쎄요님 혹시 알라딘이 아니더라도 다른 블로그를 하고 계시거나 하시면 주소 알려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친구맺고 싶습니다^^

글쎄요 2017-08-18 01:20   좋아요 1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네 알겠습니다. 이런 늦은 밤까지 대화할 수 있어서 감사했습니다. 무슨 뜻인지 알겠습니다. (다만, 그 철학자 이름이 생각나시면, 언제든지 올려 주십시오. 그런 사람이 있으면 그사람은 그야말로 철학계 전반을 뒤집어 엎은 사람이니 말입니다.ㅎㅎ)
너무 민폐를 끼친 것 같습니다. 삭제를 원하신다면 언제든지 삭제할 터이니 얼마든지 해주십시요. 저처럼 책을 좋아하는 사람이시니 자주 들르고 배우겠습니다. 일단 저는 서재가 제대로 구비가 되지 않았으니 구비된 이후 알려 드리겠습니다.
너무 폐를 끼쳐 죄송합니다. 번거로울실텐데 굉장히 친절하시는 군요. 그 친절 제가 한수 배워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LaNuitBlanche 2019-05-19 22: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진지하게 요즘 이지성이 유튜브에 올린 영상 보시고 글 쓰십시오. 완전 극우 유튜버가 되었네요. 참나... 그게 이지성 밑바닥이고 끝인 겁니다.

LaNuitBlanche 2019-05-19 22: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제 책으로 돈이 안되니까. 유튜브로 돈 버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