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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순한 그림, 단순한 사람 장욱진
정영목 지음 / 소요서가 / 2023년 11월
평점 :
[정영목, 『단순한 그림, 단순한 사람, 장욱진』]
0. 본 책은 소요서가 서평단의 일환으로서 작성하였음을 미리 밝힌다.
나는 근대미술사를 꽤나 좋아하는 편이다. 왜냐하면 당연히 현대를 살아가는 사람으로서 그 기반을 확인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면서도 특히 아시아 근대미술사에 대해서 관심이 깊은데, 아시아 속 근대사가 그러했듯이 서구의 예술사조들이 제3세계 내 새로운 환경 속에서 어떻게 정착하면서, 서양미술사에서는 잘 확인되지 않는 지점들을 내포하고 있기 때문이다. 더욱이 아시아 내에서의 근대미술사는 서양미술사 책에서 보이는 인상주의-상징주의-신/후기인상주의-야수파-입체파-초현실주의/다다와 같이 간명하게 정리된 흐름을 동시적으로 흡수하는 경우가 많아서, 사조들이 뒤죽박죽이 된 상태 속에서 아시아 근대미술만의 새로운 자장을 형성해갔다는 점에서 더더욱 흥미롭다. 그리고 그 중에서 한국은 이른바 ‘극동’에 있었던 까닭에 다른 아시아 국가와 달리 서구로부터 직접적으로 근대미술을 수용하기보다는 일본이라는 서구 이외의 유일한 (그리고 어설픈) 근대화 국가를 통해서 서구 미술을 수용하였기 때문에 더더욱 번잡한 모습을 보이는 듯하다.
그 중에서 장욱진(張旭鎭, 1918년~1990년)의 존재는 한국근대미술사 혹은 한국 20세기 미술사 내에서 굉장히 독특한 지점을 갖는다. 그는 분명히 20세기 서구근대미술의 그림자 속에 자리잡고 있었다. 그러면서도 동시에 추상적 경향에만 골몰하는 것이 아닌 김환기, 이중섭과 함께 신사실파라는 구상 미술과의 접촉을 통해서 신사실파의 일원이었다는 점에서 한국미술의 자장 속에도 속하는 바였다. 그러면서도 동시에 김환기가 추상표현주의적 경향의 영향으로 커다란 화면 속에서 자신만의 방향성을 추구하였다면, 장욱진은 김환기와 달리 굉장히 협소한 화면으로 소구해가면서 한편으로는 30년대 이후의 향토색의 지평을 해방 이후에까지 이어나가는 듯한 인상을 준다. (물론 이는 어디까지나 나의 인상비평에 의거한 해석이니 너무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으셨으면 좋겠다. 사실 장욱진에 대한 책은 이 『단순한 그림, 단순한 사람, 장욱진』 한권만 읽어본 상황이다)
그리고 정영목은 『단순한 그림, 단순한 사람, 장욱진』을 통해서 장욱진의 그림들을 아주 잘 분석해나갔다. 우선 정영목은 장욱진의 삶을 초기의 자전적 향토세계로 설정하는 것을 시작으로 6.25 전후로 진행된 일련의 순수추상에 대한 적극적인 시도를 검토하였고 이후 70년대에 이르러서는 순수추상에서 벗어나 구상의 이미지를 다시금 소환하여 수묵유화(??)로의 전환을 보여준다고 언급하는 것에서 책을 시작하였다.
이렇게 장욱진의 삶을 우선적으로 살핀 뒤, 2장에서는 장욱진의 그림이 가지는 성격들을 검토하였고, 이후 3장에서는 장욱진의 그림들을 살피며 장욱진 그림이 가지는 구도와 배치에 대해서 언급한 뒤 이후 4장에서는 여인, 아이, 가족, 나무(나아가 7장에서 불교)와 같이 장욱진이 자주 차용한 도상들에 대해서 살핀 뒤에 6장에서는 장욱진의 그림 속에서 나타나는 동양과 서양 간의 이분법의 해체, 완성-미완성 간의 이분법적 구도의 해체를 지적하며 장욱진 그림이 가지는 의의를 톺아보았다. (이외의 장들도 있지만, 개인적으로 가장 핵심이라고 생각되는 부분이라 위의 챕터들만 소개하였다).
이렇게 책은 전반적으로 간략하지만 꽤나 장욱진의 삶과 그림에 대해서 밀도 있게 서술하였다. 지적하였다. 전반적으로 짧지만 글을 읽다보면 꽤나 깊은 이야기들을 상당히 다양한 도판을 바탕으로 훑어나가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이 짧은 단편만 보아도 충분히 장욱진의 회화세계 전반에 대해서 충분히 살필 수 있을 듯하다. 그리고 꽤 그림에 집중하였기 때문에 미술관 가서도 이야기할 거리도 많을 게다.
한편 그래도 서평이니 아쉬운 점을 굳이 꼽자면, 분량상 어쩔 수 없었겠지만 내용 하나하나가 지나치게 간명하다는 점을 들 수 있다. 그러니까 내용 자체는 깊이가 있는데, 분량이 200페이지 내외에다가 그림이 90점이 넘게 실리다보니 실질적인 내용은 100페이지 안팎으로 다뤄지지 않을 수 없었다. 이에 장욱진 그림 속 주요 포인트는 모두 훑고 넘어가지만, 대체로 해설에 가까운 글이다보니 신선한 해석을 요구하는 독자들에게는 조금 아쉬울 수도 있겠다. 거기다가 글 자체에서도 한국 교양대중들에게는 별로 알려져있지 않은 앵포르멜이나 뒤비페와 같은 아르브뤼의 Jean Dubuffet(1901~1985)와 같은 작가들을 별다른 설명없이 언급한다는 점에서도 나름 난이도가 있는 글임에는 틀림이 없다. 물론 필자는 전후 유럽 내 추상미술에 대해서 관심이 있다보니 그럭저럭 읽어나갈 수 있었지만, 이에 대한 공부가 없으면 조금 난해하게 받아들일 수 있을 듯하다. (물론 본책은 기존의 미술사 책들 중에서는 아주 아주 쉬운 축에 속한다)
다만 그래도 필자가 아는 한 가장 간명한 한국 근현대 작가에 대한 책이었다. 충분히 소장가치가 있는 책이니, 한번 읽어보셔도 좋을 듯싶다. 서평단 일환으로 읽은 책이었지만, 아주 좋은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