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물 밖 여고생
슬구 글.사진 / 푸른향기 / 201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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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삶으로 삭힌 사진책 112



‘평범한 여고생’은 “우물밖 여고생”이 되려 한다

― 우물밖 여고생

 슬구 사진·글

 푸른향기 펴냄, 2016.5.12. 14000원



  교실에 앉은 학생은 모두 비슷하거나 똑같아 보입니다. 줄을 맞춰서 앉고 똑같은 옷차림에 엇비슷한 머리 모습인 아이들은 ‘아이’가 아닌 ‘학생’이라는 이름이 붙으면서 ‘이름’이 아닌 ‘숫자’로 불리기 마련입니다. 더군다나 학생으로서 학교에 가서 교실에 들어서면 모두 똑같은 교과서를 펼치지요. 다 다른 숨결로 태어나서 다 다른 생각으로 살아온 아이들이지만 ‘학생이 할 일은 시험공부’라는 틀로 나아갈 수밖에 없구나 싶습니다.


  열일곱 살이나 열여덟 살에 ‘학생’이라는 틀을 벗어날 수 있을까요? 학생이 아닌 ‘내 이름’으로 불릴 수 있을까요? 스무 살 나이가 될 무렵에는 똑같이 짜맞춘 틀에서 벗어날 틈이 생길까요? ‘평범한 학생’이라는 이름을 내려놓고서 ‘나다운 숨결’이나 ‘나답게 새로운 꿈’으로 나아가는 길은 어디에 있을까요?



(학교에서) 인정결석 처리를 해 줄 수가 없다고 단호히 말했다. 그 말은 꼼짝없이 무단결석 처리를 받는다는 거였다. 결석 자체가 생활기록부에 주는 영향이 무척 크다는 걸 나도 잘 알고 있기 때문에 과연 그걸 감내하면서까지 일본을 가야 할까 하고 며칠을 고민했다. (18쪽)


첫 여행을 무사히 마치고 돌아오는 인천 행 비행기 안에서 든 생각은 하나였다. “난 우물 안 개구리였구나.” (42쪽)



  1998년 5월에 경기도 시흥에서 태어나 줄곧 이 고장에서 살았다고 하는 슬구(신슬기) 님은 2016년에 고등학교 3학년이라고 합니다. ‘평범한 학생’ 테두리에서 보자면 ‘입시생’이나 ‘고3 수험생’이라 할 테지만, 슬구 님은 두 가지 이름에다가 다른 이름을 스스로 지어서 붙입니다. 바로 “우물밖 여고생”입니다.


  “우물밖 여고생”은 그동안 우물에 스스로 갇혀서 지낸 줄 알아차린 여고생입니다. 그동안 우물에 스스로 얽매인 채 지낸 줄 몰랐으나, 이제는 우물밖이라고 하는 너른 삶터가 있는 줄 알아낸 여고생입니다. 우물에 머무는 삶이 아니라, 새로운 우물을 찾아나서는 삶이라든지 우물이 아닌 냇물이나 골짝물이나 샘물이나 바닷물을 찾아나서면서 꿈을 키우려는 여고생입니다.



이번만큼은 내 감정에 충실한 여행을 해 보는 거야. 살면서 맘만 먹으면 올 수 있는 게 제주 아니겠어? 일생에 한 번뿐인 여행도 아니니 너무 조급해 하지 말자. (64쪽)


끝내 별똥별은 보지 못했지만 괜찮다. 그보다 더 멋진 별과 달을 만났고, 그날의 바람과 공기를 느꼈고, 묘한 밤의 냄새를 맡을 수 있었으니까. 이거면 됐다. (71쪽)



  “우물밖 여고생”은 열일곱 살에 처음으로 알바를 했다고 합니다. 다른 사람이 시키는 일을 고스란히 하면서 일삯을 받는 일이 얼마나 ‘안 만만한가’를 이때에 처음으로 온몸으로 느꼈다고 해요. 만 원도 천 원도 아닌, 이른바 백 원이나 십 원조차 거저로 나한테 오지 않는 줄 뼛속 깊이 느꼈다고 합니다.


  “열일곱 우물안 여고생”은 학교를 다니면서 꾸준히 알바를 했고, 차츰 일삯이 모여서 제법 목돈이 되었다고 해요. 처음에는 가벼운 마음으로 알바를 했달 수 있는데, 시나브로 한 가지 생각이 꿈처럼 떠올랐다고 해요. 첫 생각은 “내 사진기 장만하기”였고, 이 다음으로 떠오른 생각은 “여행 나서기”였다고 합니다.


  사진기를 장만해서 여행에 나서려는 생각은 ‘어머니하고 일본 여행’이었다는데, 어머니는 갑자기 함께 갈 수 없는 일이 생겼다고 털어놓았답니다. 이때에 슬구 님은 ‘스스로’ 생각하지요. 비행기표나 숙소 예매를 모두 취소하느냐, 아니면 혼자서 씩씩하게 떠나느냐. 이 갈림길에서 혼자 여행길에 나서기로 했고, 첫 걸음마처럼 첫 ‘나 홀로 여행’을 마치면서 “우물밖 여고생”으로 거듭나는 길에 섰다고 합니다.


  《우물밖 여고생》(푸른향기,2016)이라고 하는 사진수필책은 이렇게 태어납니다. 천천히 껍질을 깨듯이 찬찬히 우물밖 너른 터를 돌아보려고 하는 작은 눈길이 꿈길로 거듭나는 사이에 태어납니다.



하루에 몇 대 없는 버스를 놓쳐 두 시간을 길거리에서 보내야 하더라도 네가 화를 내지 않았으면 좋겠어. (82쪽)


왜 하필 지금 여행을 하냐고 물으면, 너는 왜 지금 여행을 하지 않느냐고 되묻고 싶다. (120쪽)



  사회에서는 흔히 말하기를 ‘학생은 공부만 하면 된다’고 합니다. 다만, 사회에서 흔히 말하는 ‘공부하는 학생’이라는 대목에서는 ‘어떤 공부’를 하면 되는가까지 건드리지는 않아요. 학교에 가서 교실에 들어가야만 ‘공부’라고 여기곤 하지만, 공부는 학교에서만 할 수 있지 않습니다.


  《우물밖 여고생》을 쓴 슬구 님은 알바를 하는 동안 ‘알바를 하는 곳’에서 사회와 경제와 노동을 배웠습니다(공부했습니다). 알바를 해서 얻은 돈을 푼푼이 모아서 사진기를 장만하는 동안 기쁨이나 보람이나 즐거움이나 선물이 무엇인가를 배웠어요. 어머니하고 일본 여행을 다녀오려는 꿈은 스러졌지만, 나 홀로 여행을 다녀오면서 ‘곁에 다른 사람이 없어’도 혼자서 하나부터 열까지 척척 살펴서 갈무리하는 살림을 배웠어요.


  여행길에서 새로운 이웃하고 동무를 배웁니다. 나고 자란 곳에서만 바라보던 삶터가 아닌, 드넓은 새로운 삶터를 배웁니다. ‘시흥에서 보는 하늘’을 넘어서 ‘제주에서 보는 하늘’이나 ‘경주에서 보는 하늘’이나 ‘일본에서 보는 하늘’을 새삼스레 배워요.


  하나씩 새롭게 배우는 동안 하나씩 새롭게 사진으로 빚습니다. 천천히 새롭게 마주하는 삶과 사람과 사랑을 천천히 새롭게 사진으로 옮깁니다. 누구한테서 배운 사진이 아니라, 스스로 새롭게 배우면서 찍는 사진입니다. 누구한테서 배운 글이 아니라, 스스로 새롭게 배우면서 쓰는 글입니다.


  남한테 예쁘게 보여주려고 하는 사진이나 글이 아닌, 스스로 새롭게 배우는 기쁨과 보람과 즐거움과 땀방울을 담는 사진이나 글입니다. 멋스럽게 선보이려고 하는 사진이나 글이 아닌, 스스로 즐겁게 맞이하는 하루를 그저 즐거운 마음이 되어 엮는 사진이나 글입니다.



추운 날씨 탓에 나뭇잎들이 얼어서 걸을 때마다 바스락 소리가 났다. 그 소리가 좋았다. 나뭇가지가 부서지는 소리는 특히 더. 그래서 나는 풀숲만 찾아 걸었다. (152쪽)



  《우물밖 여고생》은 우물밖으로 내디딘 첫걸음을 보여줍니다. 이 나라 ‘평범한 학생’이 서로 엇비슷하거나 똑같지 않다는 목소리를, 마음속에서 흐르는 목소리를, 교과서나 책에 나오지 않는 목소리를, 스스로 온누리를 차근차근 디디고 밟고 서면서 느끼는 목소리를 들려줍니다.


  앞으로는 너른 바닷물 같은 목소리가 되고 싶은 꿈을 보여주고, 쉬잖고 솟는 샘물 같은 목소리로 살려고 하는 몸짓을 보여줍니다. 들을 적시는 냇물 같은 목소리로 자라는 숨결을 보여주고, 구수하게 끓는 밥물 같은 기운을 보여줍니다.



삶에 여유가 있기 때문에 여행하는 것이 아니라 여행하기 때문에 삶이 여유로운 것이다. (159쪽)



  우물밖으로 첫걸음을 내디딘 슬구 님은 이제 ‘생활기록부 성적이나 숫자’에서 조금은 홀가분할까요? 생활기록부에 ‘무단결석’이라는 글씨가 찍히더라도 이러한 굴레에 얽매이지 않을 수 있을까요? 또는 우리 사회나 학교에서 ‘나 홀로 드넓은 온누리를 배우려는 여행’을 하겠다는 ‘평범한 학생’한테 ‘삶 공부(체험학습)’를 하는구나 하고 받아들이도록 제도나 규칙이 바뀔 수 있을까요?


  사진기·세발이·연필·책을 벗으로 삼아서 나서는 고즈넉한 마실길은 슬구 님이 《우물밖 여고생》에서 밝히듯이 스스로 넉넉해지려고(여유로워지려고) 나서는 새로운 길입니다. 돈이 넉넉해서 나서는 여행이 아닌, 마음을 넉넉하게 가꾸려는 꿈을 사랑스레 품기 때문에 나설 수 있는 새로운 길이지 싶습니다. 이리하여 《우물밖 여고생》에 깃든 사진이나 글은 풋풋하면서 차분한 그림이 됩니다. 이제 막 너른 터를 맛본 풋풋함이요, 이 너른 터에 흐르는 바람을 듬뿍 마시는 차분함입니다.


  기쁜 열여덟을 기쁜 몸짓으로 맞이하면서 적바림한 사진과 글이, 기쁜 열아홉에도, 기쁜 스물다섯에도, 기쁜 서른 마흔 쉰에도, 오월바람 같은 따사로운 이야기꽃으로 늘 새롭게 깨어날 수 있기를 빕니다. 2016.5.26.나무.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사진책 읽는 즐거움)


* 이 글에 붙인 사진은 슬구 님(http://blog.naver.com/ssol_0520)한테서 고맙게 받아서 붙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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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콤한 들딸기 더 맛나게 먹는 법?

[시골노래] 바다를 노래한 시골돌이



며칠 앞서 큰아이만 데리고 바다로 자전거마실을 다녀왔어요. 그날 작은아이는 몹시 서운해 했습니다. 그래서 다시 바다로 자전거마실을 갈 적에는 두 아이 모두 가기로 했습니다. 며칠 앞서 큰아이만 데리고 자전거마실을 간 까닭은, 집에서 바다까지 제법 먼 길을 아버지가 자전거로 잘 이끌 만큼 다리힘이 될는지 잘 몰랐기 때문이에요.


서운해 하는 작은아이를 바라보다가 생각했어요. 어버이로서 더 기운을 내면 제법 먼 길이어도 얼마든지 씩씩하게 자전거를 굴릴 수 있으리라고.


힘차게 발판을 구르고, 즐겁게 달렸어요. 그리고 이번에는 지난번하고 다른 길로 바닷가를 한 바퀴 돌면서 새로운 들딸기밭을 찾았어요. 이곳에서 두 아이는 배가 볼록 나올 만큼 실컷 들딸기를 훑었지요.


국수꽃(국수나무 꽃)이 떨어져서 바닥을 곱게 꾸민 숲길을 걷습니다. 하얀 찔레꽃 냄새를 온몸으로 마십니다. 들딸기가 가득한 풀숲으로 들어가서 가시를 아랑곳하지 않으면서 빨간 알을 훑습니다. 바다가 보이는 내리막길을 마음껏 달립니다.


그리고 달콤한 들딸기를 더 맛나게 먹겠다면서 작은아이는 혀를 날름 내밉니다. 굵은 들딸기 한 알을 혀에 얹었으니 말은 못하고, “에엥?” 하는 소리로 나를 부르더니, 내가 작은아이를 쳐다보니 “에헤헤!” 하고 웃습니다.


하하! 그래, 그렇게 먹으면 더 맛나지? 들딸기돌이, 시골돌이, 놀이돌이, 장난돌이, 꽃돌이 …… 온갖 이름이 있는 작은아이는 혀에 얹었다가 몇 번이나 바닥에 떨어뜨리지만, 이내 주워서 혀에 얹으면서 놉니다.


재밌지? 배부르지? 맛나지? 즐겁지? 소쿠리 가득 훑어서 들딸기를 먹은 기운으로 며칠 뒤에 또 들딸기를 훑으러 자전거마실을 하자꾸나. 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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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로 읽는 책 315] 많이



  많이 읽었으니 또 많이 읽네

  자주 해 봤으니 자꾸 더 해

  그러면 언제쯤 새길을 갈까



  잘 하는 일이 있기에 언제나 이 잘 하는 일을 하기도 합니다. 잘 하는 일을 하다 보면 잘 하지 못하는 일은 아예 안 한다거나 생각을 못하기도 해요. 이를테면, “나는 밥을 못해”라든지 “나는 집안일을 할 줄 몰라”라고 하면서 밥짓기나 집안일에는 등을 돌려 버릴 수 있어요. 이와 달리 “여태 잘 하지 못했지만 이제부터 새로 해 볼 생각이야” 같은 마음이 되어 처음으로 한 발짝을 내디딜 수 있어요. 익숙한 대로 똑같은 일만 하는 길을 걸을 수 있고, 낯설지만 새로운 일을 하는 길을 걸을 수 있습니다. 2016.5.25.물.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삶넋/삶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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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까지꽃

 


한겨울 추위가 누그러지며

동백꽃이 필 무렵


마당 한쪽이랑 밭자락에

꼬물꼬물 자그맣게

푸른 떡잎 내밀며

처음 깨어나더니


겨울 저물고 햇볕 고운

봄날에 봄바람 먹고

흐드러지는

보랏빛 작은 아이

봄까지꽃.


봄이 저물고

땡볕으로 바뀔 무렵

감쪽같이 사라지는

너는


그야말로 봄까지만

나랑 동무하며 노는구나.



2015.12.25.쇠.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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굵은 감꽃, 작은 감꽃



  찔레꽃내를 맡으려고 찔레나무 곁에 서는데, 찔레꽃내하고 다른 달콤한 냄새가 퍼져서 뭔가 하고 땅바닥을 내려다보니 작은 감꽃이 구른다. 작은 감꽃마다 개미가 바글거린다. 이제 고개를 들어 올려다보니 감나무에 감꽃이 조롱조롱 맺혔다. 뒤꼍 한쪽에는 굵은 감꽃이 맺는 감나무가 있다. 세 그루에는 굵은 감꽃이 맺고, 한 그루에는 작은 감꽃이 맺는다. 그런데 말이지, 어쩌면, 작은 감꽃이 맺는 이 나무는 ‘고욤나무’일는지 모른다. 이제껏 감나무로만 알았으나 막상 고욤나무였을 수 있다. 조롱조롱 무더기로 매달린 노란 꽃송이를 제대로 모르는 채, 더욱이 우리 집 뒤꼍에서 자라는 나무마저 제대로 마주하지 못한 채 살았다고 할 수 있다. 지난 여섯 해 동안 이 고흥집에서 두 나무를 늘 마주하고 바라보기는 했으나 제대로 차근차근 살피지 않았다고 할 만하다. 그러고 보니, 해마다 감꽃을 보는 동안 한쪽 꽃은 크기가 작네 하고 여기기만 했을 뿐, 서로 다르게 생긴 꽃인 줄 생각하지 않았다고 깨닫는다. 2016.5.25.물.ㅅㄴㄹ


(숲노래 - 꽃과 책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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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minee 2016-05-26 21:08   좋아요 0 | URL
벌써 감꽃 피는 계절이네요.
저도 작년에 감꽃사진 제법 찍었는데요.... 그런 일이 엊그제 같은데 말입니다.

숲노래 2016-05-26 21:44   좋아요 0 | URL
이 감꽃도 곧 저물려고 해요.
슬슬 감알이 조그맣게 맺히겠지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