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에 와서 차리는 밥



  이틀에 걸쳐 바깥마실을 하면서 바깥일을 했습니다. 오늘 고흥으로 돌아와서 대문을 열고 집에 들어온 뒤, 쌀부터 씻어서 몇 분 동안 불렸고, 곧바로 밥을 짓습니다. 국을 끓인다거나 다른 것을 차릴 겨를을 내기는 쉽지 않아서 불판을 달구어 냉동식품을 살살 익혔지요. 이렇게 해 놓고 짐을 풀었고, 몸을 씻은 뒤에, 접시에 김치를 옮기며 밥상을 차렸어요. 서울을 떠난 시외버스가 고흥읍에 닿을 즈음 읍내에서 튀김닭이라든지 뭔가를 사서 들어갈까 하다가 이런 생각을 접었어요. 그냥 집에서 밥을 짓자고 생각했어요. 몸이 힘들다거나 버스에서 고달팠다는 생각을 한다면 그냥 아무것도 못하겠구나 싶어서 새롭게 기운을 내려고 했어요. 이러면서 한 가지를 더 생각했어요. ‘밖에서 뭔가를 사면 돈이 많이 드니까 집에서 밥을 하자는 생각이니?’ 또는 ‘어머니가 힘들어서 밥을 못 차렸을 텐데, 아이들이 집밥을 맛볼 수 있도록 할 때에 훨씬 즐겁다고 생각하니?’ 며칠 만에 손수 차려서 먹는 집밥이 참 맛있네, 내 손으로 담근 김치를 내 손으로 지은 밥이랑 먹으니 몸이 반기네, 하고 느끼는 저녁입니다. 2016.6.11.흙.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아버지 육아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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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아버지 뚝딱뚝딱 우리책 4
강경수 글.그림 / 그림책공작소 / 201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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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함께 즐기는 그림책 662



아버지가 나한테 했듯이 사랑스런 몸짓으로

― 나의 아버지

 강경수 글·그림

 그림책공작소 펴냄, 2016.5.8. 12000원



  안 된다고 생각하니 으레 안 되기 마련이고, 어렵다고 여기니 자꾸 어렵기만 하는구나 하고 느낍니다. 다만, 처음부터 참말로 이와 같은지를 알지는 않았습니다. 어릴 적에는 으레 푸념을 했고, 자꾸 한숨을 쉬었어요. 왜 안 되는가를 스스로 생각하지 못했고, 왜 안 되는가를 찬찬히 짚어 준 어른이 내 곁에 없었다고 느껴요.


  이제 나는 어버이와 아버지라는 자리에서 아이들을 마주합니다. 아이들은 내가 어릴 적에 으레 하거나 자꾸 했듯이 ‘안 되잖아!’라든지 ‘어려워!’ 같은 말을 곧잘 터뜨립니다. 그러면 참으로 안 되거나 그야말로 어려울까요? 아직 해 보지 않았으니 안 되거나 어렵다고 여길 만하고, 손이나 몸에 익지 않으니 어렵다고 여길 만할 뿐이로구나 하고 느껴요.


  아이들이 안 된다고 푸념을 하면 가만히 지켜보다가 “아니야. 얼마든지 할 수 있어. 어떻게 해야 할 수 있는가만 생각해 봐.” 하고 이야기합니다. ‘안 된다’고 하는 대목만 생각하기 때문에 참말로 안 되기 일쑤이거든요. 종이접기를 하든, 흙을 모아서 두꺼비집을 빚든, 그냥 해 보면 되고 자꾸 하다 보면 어느새 할 수 있어요. 마늘 까기라든지 양파 벗기기도 ‘어려워!’라든지 ‘안 되네!’ 하고 여기만 그만 못하고 말아요. “천천히 하렴. 많이 까거나 벗겨야 하지 않아. 딱 한 톨만 까거나 벗겨도 되니까, 그저 천천히, 네가 해 볼 수 있는 데까지 해 보렴.” 하고 이야기합니다. 아침저녁으로 밥을 차리면서 아이들더러 ‘마늘 까기’를 거들어 달라고 말하는데, 처음에는 어렵거나 못하겠다고 하던 아이들이 어느새 야무진 손놀림으로 거듭나서 씩씩하고 알뜰하게 심부름을 해 줍니다.



이제부터 나는 아빠한테서 많은 걸 배우게 될 거야. (6쪽)



  강경수 님이 빚은 그림책 《나의 아버지》(그림책공작소,2016)를 읽으면서 내 모습을 물끄러미 되새깁니다. 나를 낳은 아버지 모습도 고요히 되돌아봅니다. 오늘 나는 어떤 아버지로 아이들 앞에 서거나 곁에 있는가 하고 생각해 봅니다. 우리 아버지는 어떤 모습이나 숨결로 내 앞에 서거나 곁에 있으셨는가 하고 헤아려 봅니다.


  《나의 아버지》에서 넌지시 들려주는 이야기처럼, 우리는 저마다 “아버지한테서 이것저것 많이 배웁”니다. 어머니한테서도, 할머니 할아버지한테서도, 이웃이나 동무한테서도 이것저것 많이 배워요. 그리고 바람이나 햇볕한테서도 배워요. 풀벌레나 들꽃한테서도 배워요. 나를 둘러싼 모든 것은 언제나 나를 고즈넉하게 지켜보면서 ‘내가 무엇이든 스스로 해 보기’를 바라고 기다려요. 나를 둘러싼 모든 것은 늘 나를 물끄러미 지켜보면서 ‘내가 무엇이든 처음으로 해 보기’를 바라고 기다려요.



“아빠, 계속 있는 거지?” “걱정 마. 아빠는 어디에도 안 갈게.” (18쪽)



  때로는 처음부터 잘 될 수 있어요. 때로는 오랫동안 안 될 수 있어요. 때로는 몇 번 해 보니 잘 될 수 있고, 때로는 수없이 해 보아도 도무지 안 될 수 있어요.


  잘 되든 안 되든 크게 대수롭지 않습니다. 아니, 잘 되거나 안 되거나 그리 대수롭게 여길 만하지 않다고 느껴요. 우리는 어떤 일이든 ‘해 보자’는 마음으로 마주하면서 차근차근 자라는구나 하고 느낍니다. 잘 안 되더라도 내가 스스로 해 보니까 한 가지를 배워요.


  이를테면, 처음부터 농사를 잘 짓는 사람이 있을까요? 처음부터 어버이 구실을 슬기롭게 하는 사람이 있을까요? 처음부터 김치찌개를 잘 끓이는 사람이 있을까요? 처음부터 깍두기를 잘 담그는 사람이 있을까요? 처음부터 자전거를 잘 타는 사람이 있을까요? 처음부터 글을 잘 쓰는 사람이 있을까요? 처음부터 톱질이나 설거지를 알뜰히 하는 사람이 있을까요?



그제야 난 이게 어찌 된 일인지 알았어. 그리고 내 아버지가 나에게 그랬듯이 말해 주었지. (38쪽)



  먼먼 옛날에 어버이 한 사람이 이녁 어버이한테서 배운 ‘슬기로운 삶·살림·사랑’을 이녁 아이한테 물려주고 가르칩니다. 이 아이는 어느새 자라서 새로운 어버이가 되고, 새롭게 아이를 낳아요. 새롭게 어버이가 되면서 새롭게 태어난 아이한테 이녁 어버이한테서 배운 ‘슬기로운 삶·살림·사랑’을 새롭게 물려주고 가르칩니다.


  우리 어버이가 했듯이 똑같은 것을 되풀이하는 몸짓이 아닙니다. 우리 어버이가 했듯이 오롯이 슬기로운 삶이나 살림이나 사랑이 되어 새롭게 물려주고 가르치는 기쁨과 웃음과 노래가 되지 싶어요.


  즐겁게 한 걸음을 떼어요. 아기가 아장걸음을 지나서 까르르 깔깔 웃으면서 씩씩하게 달리듯이, 어른들도 저마다 아버지나 어머니 자리로 거듭나면서 새롭게 한 걸음을 옮겨요.


  아이도 배우고 어버이도 배워요. 아이도 한 걸음씩 걷고 어버이도 한 걸음씩 걸어요. 처음부터 ‘아버지로 태어나’지는 않아요. 오늘부터 새롭게 ‘아버지가 되어 배우는’ 길을 걸어요. 아이한테 가르치면서 어른(어버이)도 함께 배우고, 아이가 배우는 동안 어른(어버이)도 새로운 기쁨을 나란히 배워요. 2016.6.11.흙.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시골 아버지 그림책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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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스로 생각하는 힘



  스스로 생각하기에 스스로 무엇을 할 적에 즐겁거나 보람차거나 재미난 줄 알 수 있습니다. 스스로 생각하기에 스스로 무엇을 배우면서 삶을 노래할 만한가를 알 수 있습니다. 스스로 생각하기에 어떤 밥을 어떻게 지어서 먹을 때에 맛나면서 기쁜가를 알 수 있고, 땅을 어떻게 가꾸어 먹을거리를 얻을 때에 아름다운가를 알 수 있어요. 스스로 생각하기에 사랑스러운 짝님을 만날 수 있고, 스스로 생각하기에 아이들한테 상냥한 웃음을 지을 수 있습니다. 스스로 생각하기에 내 손에 ‘좋은 책·고운 책·밝은 책·고요한 책’을 가만히 쥐면서 스스로 알뜰살뜰 읽을 수 있어요. 그러니까 스스로 생각하지 않으면 스스로 할 일을 스스로 찾지 못합니다. 스스로 생각하지 않으면 삶길도 살림길도 사랑길도 깨닫지 못합니다. 스스로 생각하지 않으면 스스로 찾아서 읽을 책을 스스로 알아보지 못하고 말아, 남들이 추켜세우거나 많이 읽는 책만 똑같이 따라서 받아들이기만 합니다. 내 생각이 있을 적에 내 삶이 있어서 내 책을 찾고, 내 생각이 없을 적에 내 삶이 없어서 내 책을 찾지 못합니다. 2016.6.11.흙.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책 언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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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세먼지



  고흥집에 살면서 미세먼지가 무엇인가를 느끼지 않으면서 삽니다. 시골이라서 미세먼지가 없지는 않을 테지만, 풀하고 나무하고 흙이 있으면서 햇볕하고 바람이 흐르니 다른 것을 헤아리지 않습니다. 먼지라고 한다면 아이들이 마당하고 뒤꼍에서 흙놀이를 하면서 묻혀 들어오는 흙먼지가 있어요. 아이들이 신나게 뛰놀며 옷이며 몸이며 잔뜩 묻히는 흙먼지가 아닌 ‘잔먼지(미세먼지)’가 걱정거리가 된다는 오늘날인데, 그럴 수밖에 없다고 느낍니다. 왜냐하면 자동차가 구르면서 바퀴가 닳아서 잔먼지가 날리지요. 도시에서는 끝없이 재개발·재건축을 하느라 잔먼지가 날려요. 엄청나게 솟은 아파트마다 시멘트 가루가 햇볕에 바래거나 바스라지면서 잔먼지가 날려요. 발전소에서 기름이나 석탄을 때느라, 공장에서 물건을 끝없이 찍느라, 여기에 사람들이 공산품을 끝없이 쓰느라, 게다가 어디에서나 비닐쓰레기가 끝없이 날리느라, 이 모두가 잔먼지로 바뀝니다. 우리 살림살이가 오늘날 이 모습 그대로만 가면 앞으로 잔먼지는 훨씬 더 늘어나리라 느껴요. 우리 스스로 새로운 살림살이로 거듭나려는 몸짓을 보여주지 않으면 잔먼지는 언제까지나 걱정거리가 되리라 느껴요. 시골에서도 밭뙈기마다 비닐을 씌우는 관행농법을 그치지 않으면, 비닐과 농약을 담은 비닐자루 쓰기를 줄이거나 멈추지 않으면, 모판이나 모종판 비닐쓰레기를 어떻게 해야 하는가를 헤아리지 않으면, 시골에서도 잔먼지는 앞으로 끊이지 않을 테지요. 2016.6.11.흙.ㅅㄴㄹ


(숲노래/최종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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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책방에 있는 책



  헌책방에 있는 책하고 새책방에 있는 책은 다릅니다. 두 곳은 다른 책터이니 저마다 다른 책이 있기 마련입니다. 헌책방에는 헌책이 있고, 새책방에는 새책이 있어요. 헌책은 말 그대로 헌책이고, 새책은 말 그대로 새책입니다. 그러나 두 가지 다른 책은 언제나 같은 책이곤 합니다. 헌책은 헌책 값으로 사고파는 물건이요 새책은 새책 값으로 사고파는 물건인데, 두 가지 물건은 물건이라는 대목을 넘어서 모두 똑같은 이야기를 담은 꾸러미예요. 또한 헌책이든 새책이든 우리가 두 손에 쥐어 펼치면, 이 책에서 흐르는 이야기는 언제나 똑같이 우리 마음을 건드립니다. 오래된 책이기에 마음을 덜 움직이지 않습니다. 새로운 책이기에 마음을 더 움직이지 않습니다. 1950년에 찍은 책이기에 더 애틋하지 않습니다. 2015년에 찍은 책이기에 더 빳빳하지 않습니다. 무엇보다도 언제 어떻게 찍은 책이라 하건, 모든 책에는 사람이 삶을 사랑하면서 살림을 가꾼 손길이 깃든 슬기가 흐릅니다. 헌책방에 갔으면 헌책을 샀고 새책방에 가면 새책을 샀을 텐데, 어떤 책이건 늘 책이요 이야기이며 슬기라는 대목을 돌아봅니다. 앞으로 얼마나 기나긴 해가 흐르더라도 한결같이 흐를 꿈과 사랑이 어우러진 노래를 바람처럼 불러 봅니다. 2016.6.10.쇠.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헌책방 언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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