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책하는 사람에게 - 안태운 시집 문학과지성 시인선 550
안태운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2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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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노래꽃 / 문학비평 . 시읽기 2024.5.31.

노래책시렁 426


《산책하는 사람에게》

 안태운

 문학과지성사

 2020.11.9.



  언제나 “책을 사읽”습니다. 그러나 모든 책을 사읽을 수 없는 가난한 주머니입니다. 여덟 살부터 열세 살 사이에는 어머니가 하루에 120원씩 길삯(왕복 버스비)을 주셨는데, 어린이뿐 아니라 어른한테도 제법 먼 길을 즐겁게 걸어다니면서, 이 푼돈을 모아서 만화책이나 우표를 샀고, 통장에 30원이나 50원이나 120원씩 하루나 이틀마다 가서 돈을 맡기곤 했습니다. 배움수렁(입시지옥)에 갇힌 열네 살부터 열아홉 살 사이에도 책집마실을 틈틈이 했습니다. 자율학습·보충수업을 이레마다 이틀씩 빼먹고 달아나면서 책집에서 늦도록 죽치고서 책을 읽었습니다. 인천을 떠나 서울에서 딸배(신문배달부)로 일하던 무렵에는 짐자전거로 서울 곳곳 헌책집을 찾아다니면서 ‘서서읽기’를 했습니다. 《산책하는 사람에게》를 읽으면서 “늘 걷는 나”를 새삼스레 돌아봅니다. 저는 걷거나 두바퀴(자전거)를 달립니다. ‘산책’도 ‘산보’도 안 합니다. 저는 이 나라에서 태어나서 살아가니까 그냥 우리말을 쓸 뿐입니다. 멋부리는 일본스럽거나 중국스런 한자말은 안 나빠요. 그저 겉멋일 뿐입니다. 배운 티를 팍팍 내는 영어는 안 나빠요. 그저 배운 먹물을 티내는 말씨일 뿐입니다. 여덟 살부터 익힌 ‘서서읽기’는 쉰 살에 다다르는 2024년에도 고스란히 합니다. 모든 책을 다 살 수 없거든요. 부디 ‘사서읽기’를 할 만한 노래를 써 주시기를 바랍니다.


ㅅㄴㄹ


너는 찾고 있다. 무엇이 너의 기억이 될 수 있다. 너는 어떤 것에 마모되는가. 너는 어떤 것에 잦아드는가. (그것을 필요로 하지 않는 움직임/15쪽)


호수에서 눈이 녹고 있었다. 그는 아무 말 없이 그렇게 했다. 호수 속으로 눈이 녹아 떠내려간다면, 녹은 눈 속으로 호수가 떠내려간다면, (호수 눈/50쪽)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립니다.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우리말꽃》,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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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작하는 사전
문학3 엮음 / 창비 / 202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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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칠읽기 . 숲노래 책읽기 / 인문책시렁 2024.5.31.

까칠읽기 10


《시작하는 사전》

 문학3 엮음

 창비

 2020.12.4.



  《시작詩作하는 사전》을 여민 뜻은 훌륭하다고 느끼지만, 알맹이는 뜻밖에 너무 허술해서 놀랐다. 모든 사람은 다 다르기 때문에, 모든 사람이 저마다 글을 쓰면 다 다르게 이야기를 담아내야 맞는데, 이 책에 실린 글은 마치 ‘한 사람’이 쓴 듯싶더라.


  모든 사람은 다 다르기에, 모든 사람은 다 다르게 말해야 맞다. 그래서 예전에는 고장마다 사투리가 달랐고, 고을마다 또 사투리가 달랐고, 마을마다 다시 사투리가 달랐으며, 집집마다 사투리가 달랐는데, 한집에서 엄마아빠랑 아이들 사투리가 새삼스레 달랐다.


  전라북도 사람과 전라남도 사람이 같은 사투리를 쓰겠는가? 터무니없다. 대구사람과 부산사람이 같은 사투리를 쓸까? 말도 안 된다. 인천 남구와 중구와 동구와 북구와 서구 사람이 같은 인천말을 쓸까? 아니다. 인천 남구 숭의동과 용현동과 주안동과 도화동도 인천말이 다른데, 도화1동과 도화2동과 도화3동도 말씨가 다르다.


  왜 사투리는 이렇게 다를까? 왜냐하면, 모든 사람이 다를 뿐 아니라, 모든 마을이 다르고, 모든 골목이 다르며, 모든 들숲바다가 다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시작詩作하는 사전》은 왜 ‘여러 사람’이 아닌 ‘한 사람’이 쓴 글 같을까?


  요사이는 ‘글바치(문인·작가)’가 거의 서울에 몰려서 산다. 그리고 웬만한 글바치는 ‘잿집(아파트)’에 산다. 서울 아닌 곳에 살아도 ‘서울바라기’를 하고, ‘서울로(in Seoul)’를 꿈꾼다. 이러다 보니, 오늘날에는 서울글바치도 부산글바치도 글이 비슷하거나 같다. 오늘날에는 광주글바치도 대전글바치도 글이 닮거나 같다.


  모처럼 뜻깊에 “노래를 짓는 꾸러미”를 엮기로 했다면 ‘한 사람’ 같은 글이 아니라, ‘다 다른 목소리와 숨결과 살림과 사랑’을 담아내야 어울릴 텐데, 엮은이도 글쓴이도 이 대목을 놓치거나 볼 마음이 없거나 대수롭잖게 넘겼다고 느낀다. 안타깝고 안쓰럽고 아프다.


ㅅㄴㄹ


나뭇가지 : 하늘에 피어난 산호珊瑚. (37쪽)


노래 : 잊지 않을 거라는 거짓말. (45쪽)


아침 : 믿기지 않는 일이 벌어진다. 공간을 후비고 다니는 사람이 된다. (129쪽)


예배禮拜 : 눈을 뜨면 사라지는 믿음. (139쪽)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립니다.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우리말꽃》,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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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삶읽기 / 숲노래 마음노래

하루꽃 . 돌보지 않는 2024.5.19.해.



사람이 “숲을 돌본다”고 할 적에는 ‘손보다·손대다’가 아니야. ‘돌아보다’가 ‘돌보다’야. 어른이나 어버이가 “아이를 돌본다”고 할 적에도 같아. 아이한테 손을 대거나 손을 잡아끌 적에는 ‘아이돌봄’일 수 없어. 아이를 “돌아보는 눈빛을 밝히”기에 ‘돌봄(돌아봄)’이라 할 테지. 동무처럼 보고, 도우면서 보고, 동글동글 보고, 도란도란 얘기하며 보고, 두루 헤아리는 마음으로 볼 때라야 ‘돌봄(돌아봄)’이란다. 이끌 적에는 ‘이끌다’이지. 잡아끄니까 ‘잡아끌다’이고, 가르치니까 ‘가르치다’이고, 길들이니까 ‘길들이다’이고, 들볶거나 다그치거나 억누르거나 때리니까 ‘들볶다’에 ‘다그치다’에 ‘억누르다’에 ‘때리다’란다. ‘돌보’지 않으면서 ‘돌봄(육아)’이라는 이름을 허울처럼 붙이는 사람이 아직 많구나. 네가 어릴 적에 네 둘레에서 너를 돌보지 않은 탓에, 너는 네가 어른이나 어버이로 선 오늘 그만 ‘돌봄길’을 모르니? 누가 너를 돌보지 않았으면 넌 이미 죽었어. ‘어른인 사람’만 널 돌보지 않아. 해가 돌본단다. 별이 돌보고, 바람이 돌보고, 비가 돌보고, 땅이 돌보고, 바다가 돌봐. 풀꽃이 돌보고, 나무가 돌보고, 새가 돌보지. 파리모기도 널 돌보고, 개구리와 풀벌레도 돌봐. 쌀과 밀과 달걀도 널 돌봐. 네가 먹을 수 있는 밥이 널 돌보고, 네가 못 먹는 밥도 널 돌봐. 너는 온누리 하늘빛이 돌보는 숨결을 늘 받아들이기에 몸을 이루고 마음을 편단다. 그러니 스스로 생각해 보렴. 넌 이미 ‘돌봄길’이 무엇인지 여태 끝없이 배웠단다. 이제 제대로 눈을 뜨고서 둘레를 다 돌아보렴.


ㅅㄴㄹ


※ 글쓴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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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삶읽기 / 숲노래 마음노래

하루꽃 . 살림하는 2024.5.18.흙.



살리니까 살고, 죽이니까 죽어. 펑펑 쏘고 꽝꽝 터뜨리고 팍팍 밟으니 죽겠지. 살살 북돋우고 슬슬 돌보고 가만히 기다리면 살아나. 사람도 뭇목숨도 ‘목’으로 ‘숨’을 이어. 다만 ‘목’이라는 모습은 모두 다르지. ‘목’이란 안과 밖을 잇는 길이야. 바깥것이 안쪽으로 들어올 적마다 거치고, 안엣것이 바깥쪽으로 나갈 적마다 거쳐. 안쪽으로 들어올 적에는 속에서 품고 살아날 만하게 숨을 담아. 바깥쪽으로 내놓을 적에는 밖에서 받아들여 풀어낼 만하게 숨을 실어. 사람과 풀꽃나무는 들숨과 날숨이 서로 다르기에 어울려. 사람과 뭇목숨도 ‘암수’가 서로 다르기에 어울려서 한집을 이루지. ‘목숨(생명)’을 이루려면, 바람하고 물을 섞어. 바람하고 물을 어떻게 맞추느냐에 따라서 ‘몸’이 달라. ‘몸’을 이루려고 ‘바람 + 물’이라는 길을 여는 ‘넋’인데, ‘빛’을 빛씨가 빛알로 탄단다. ‘씨’나 ‘알’로 고루 섞거나 타거나 심으니, 바람과 물이 살랑살랑 춤을 추면서 ‘꼴’을 갖추지. ‘꼴’은 곧 어느 ‘모습’으로 드러나고, 바야흐로 ‘몸’을 입는데, 이동안 섞거나 타거나 심는 빛(빛씨·빛알)에 맞추어 ‘마음’이 생긴단다. 아직 엄마몸에서 자라거나 ‘알’에서 클 적에는 “몸으로 입어서 마주할 삶”을 어떻게 마음에 담으려는지 생각하지. ‘생각’을 하도록 네 ‘넋’은 늘 새로 ‘빛’을 보탠단다. 그러니까 “몸 = 빛 + (바람 + 물)”이라 할 테고, 이 몸은 무엇이든 해보면서 무엇이든 ‘마음’에 담아서 ‘말’을 빚어. 아주 마땅히 모든 목숨은 몸·마음·빛이 다르니 말이 다르지만, 넋이 하나이기에 서로 마음이 만나는 말을 나눌 수 있어. “살림하는 길”이란, 네가 몸·마음을 제대로 보면서, 넋으로 빛(생각)을 지어서 늘 심고서 가꾸는 하루란다.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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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립니다.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우리말꽃》,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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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책빛 / 숲노래 책읽기

2024.5.30. 새로 배운다



틈틈이 《유리가면》을 되읽는다. 《유리가면》뿐 아니라 숱한 책을 되읽고 거듭읽고 새로읽는다. 낱말책에는 ‘되읽다’ 하나는 올림말로 있으나, ‘거듭읽다·다시읽다·새로읽다·새겨읽다’ 같은 낱말은 올림말로 없다. 나는 낱말책에 아직 없는 이런 여러 낱말을 일부러 쓴다. 참말로 ‘거듭읽기’를 하고 ‘다시읽기’를 하며 ‘새로읽기’를 하니까. 그러고 보면, 이 삶을 고스란히 말씨로 옮긴다. 말씨 하나는 풀씨처럼 매우 작은데, 작은 말씨요 풀씨이기 때문에 마음도 들숲도 푸르게 가꾸는 밑바탕이다. 왜 자꾸 되읽고 거듭읽고 새로읽는가? 되읽으면서 새로 배우기에 자꾸자꾸 읽고 또 읽는구나 싶다. 거듭읽으며 새삼스레 배운다. 새로읽으며 사랑을 배운다. 줄거리 때문에 책을 읽는 일이란 아예 없다. 허울뿐인 자랑책(베스트셀러)을 읽든, 비록 제대로 읽히지 못한 채 사라진 아름책을 읽든, 늘 한 가지 마음이다. 이리하여, 생각에 잠긴다. 사람들은 왜 허울스러운 자랑책을 더 많이 읽는지 곱씹는다. 사람들은 왜 아름책은 눈여겨보지 않는지 되새긴다. 사람들은 왜 ‘천만 관객 영화’처럼 ‘백만 부 베스트셀러’에 오히려 쏠리는지 돌아본다. 사람들은 왜 ‘초판 300부 절판’이 되고 만 아름책에는 도리어 손도 눈도 마음도 기울이지 않는지 헤아려 본다. 그런데 책이 아닌 어린이로 마주하면 “아하, 그렇구나.” 하고 확 와닿는다. 어린이도 어른도 겉모습으로 따지거나 잴 수 없다. 모든 다 다른 사람이 아름답게 사랑이다. 모든 책도 몇 자락이 팔렸거나 읽혔는지 대수롭지 않다. 아직 알아보는 사람이 적은 책이더라도, 신문방송과 비평가 추천으로 날개돋히는 책이더라도, 속빛은 늘 그대로 흐른다. 겉으로 드러나는 허울에 깃든 마음을 읽어 본다. 속에서 감도는 사랑을 짚어 본다. 나는 어떻게 하루를 살아가겠는가? 누가 알아보아 주기를 바라는 하루인가, 아니면 스스로 살림을 짓는 푸른숲을 담은 손길로 차근차근 펴는 사랑인가? 겨울은 고요히 잠들어 꿈을 그리는 철이고, 봄은 천천히 깨어나서 꿈씨앗에 싹을 틔우고 뿌리를 내리고 줄기를 올리고 잎을 틔워서 마침내 꽃을 피우려는 철이다. 겨울이 있어야 봄이 있다. 봄이 있기에 겨울이 오면서 쉰다. 물결은 오르고 내리기에 언제나 맑다. 사람도 책도 살림도, 숲도 하늘도 바다도, ‘흐르다 = 오르내리다 = 움직이다’요, 좋음도 나쁨도 따로 없이, 오직 이 삶이라는 물결을 스스럼없이 받아들이는 사이에 문득 사랑을 깨달아서 가만히 봄햇살과 겨울햇볕으로 풀어내는 길이다. 이쯤 생각에 잠기다가 머리로 번쩍 하고 벼락이 친다. 우리 집에서 열일곱 살을 맞이한 큰아이는 《유리가면》에 나오는 두 사람을 놓고서 함께 이야기할 나이에 이르렀구나. 곁에 작은아이도 앉혀서 왜 이 책에 나오는 두 사람을 이야기해 보는지 귀기울여 보라 하면서, 작은아이 생각을 펼쳐 보라고 물어볼 수 있겠네.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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