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와 살면서



  아이와 살면서 생각합니다. 아이는 언제나 우리한테 아름다운 웃음과 노래를 늘 선물하지 싶어요. 그래서 나는 아이한테 다시금 웃음과 노래를 선물합니다. 그러면 아이는 또 나한테 웃음과 노래를 선물하고, 이제 나는 거듭 아이한테 웃음과 노래를 선물합니다. 서로서로 선물을 나누고, 서로서로 웃음과 노래를 새로 짓습니다. 그래, 이런 기쁨을 누리려고 아이를 낳아 돌보면서 삶을 짓는구나 하고 새삼스레 생각합니다. 4347.11.10.달.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아버지 육아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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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 그림놀이] 보금자리 2 (2014.10.31.)



  우리 보금자리를 헤아리는 그림을 마무리짓는다. 별비와 사랑비와 꽃비가 내리는 사이사이 별과 사랑과 꽃을 하나하나 그린다. 온누리에 별과 사랑과 꽃이 쏟아져서 흐드러지기를 바란다. 우리 보금자리에도, 이웃 보금자리에도, 골고루 아름다운 이야기가 넘칠 수 있기를 빈다. 다 같이 웃고 노래할 수 있는 삶이 되기를 꿈꾼다. ㅎㄲㅅㄱ


(최종규 .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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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썰기



  파를 썰 때면 으레 어릴 적이 떠오른다. 어머니가 나한테 처음 부엌칼을 쥐도록 하던 일은 무엇일까 하고 곰곰이 헤아리는데, 거의 안 떠오르지만, 아마 파썰기가 아니었을까. 처음 파를 썰던 때에는 큰파는 그야말로 크구나 하고 여겼다. 어쩌면 이렇게 파는 클까 하고 생각했다. 아이 몸에서 자라 어른 몸이 된 오늘날, 나는 두 아이를 먹여살리는 밥을 짓는다. 어른 몸으로 큰파를 썰 때면, 큰파라 하지만 그리 크지도 않다고 느낀다. 그러나, 큰파를 어른 입에 맞게 굵게 썰면, 아이들이 먹기에 퍽 나쁘다. 큰파를 아이들이 먹도록 하자면, 가로로도 썰고 세로로도 썰면서 조그마한 크기로 만들어야 한다. 작으면서 고운 빛이 어우러지도록 썰면, 두 아이가 아버지 곁에 서서 물끄러미 쳐다보며 묻는다. “뭐 썰어?” “파.” “파?” “응.” “아, 우리 집 마당에도 심은 그 커다란 파?” “응.”


  파를 잘게 썰면서 파한테 말을 건다. 얘야, 우리 집 아이들한테 곱게 스며들어 주렴. 우리 집 아이들한테 맛난 밥이 되어 주렴. 우리 집 아이들한테 푸른 숨결이 되어 주렴. 4347.11.7.쇠.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아버지 육아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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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 그림놀이] 사름벼리 웃네 (2014.9.2.)



  그림순이가 그림종이를 조그맣게 오려서 쪽그림을 그리는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본다. 한참 바라보다가 그림종이 하나를 살며시 든다. 그림순이가 알아챈다. ‘응?’ 하면서 고개를 들다가 빈 종이를 든 줄 깨닫고는 다시 그림놀이에 빠져든다. 나는 그림순이 곁에서 ‘그림어버이’가 되자고 생각하면서, 그림순이 모습을 가만히 떠올리면서 작게 그림 하나를 그린다. 내가 아이를 바라볼 적에 가장 기쁘다고 느끼는 모습을 그린다. 단출하게 석석 그린다. 그림순이가 아주 좋아하는 빛깔로 그린다. 그림을 마친 뒤 “사름벼리 웃네” 여섯 글자를 넣는다. 웃는 아이 가슴에 별과 사랑을 하나씩 붙인다. ㅎㄲㅅㄱ


(최종규 .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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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이틀 만에 읍내마실



  곁님이 열이틀 만에 읍내마실을 함께한다. 셋째 아이가 두 달 동안 곁님 몸에서 살다가 떠난 지 열이틀이 흘렀다. 이제 조금 걸어서 다닐 만하다 싶어 읍내에 살짝 다녀온다. 지난 열이틀 동안 눈코 뜰 사이 없이 몹시 바지런히 움직여야 했다. 아니, 바삐 이것저것 해야 한다는 생각에 차분하게 생각을 다스릴 겨를을 내지 못했다. 마침 읍내마실을 하던 날이 장날이라, 군내버스를 타고 돌아오는 길에는 곁님과 두 아이는 자리에 앉고 나는 가방과 짐을 지키면서 선다. 모처럼 아이들이 내 곁에 없으니 홀가분한 몸이 되고, 홀가분한 몸을 오랜만에 느끼면서 셋째 아이가 스치고 지나간 나날을 되새긴다.


  셋째는 어떤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어서 우리한테 찾아왔을까. 셋째는 어떤 노래를 들려주고 싶어서, 또 어떤 노래를 듣고 싶어서 우리한테 찾아왔을까.


  첫째 아이와 둘째 아이는 우리 집에서 어떤 자리에 있는지 더듬는다. 두 아이는 모두 사랑이고 기쁨이다. 사랑과 기쁨이 어우러져 언제나 웃음이고 노래이다. 셋째 아이도 틀림없이 사랑이고 기쁨일 테지. 사랑과 기쁨이 어우러져 웃음이요 노래일 테지.


  셋째 아이를 뒤꼍 무화과나무 둘레에 묻고 난 뒤, 어쩐지 자꾸 그쪽에 발걸음을 한다. 무화과나무 둘레에서 돋는 가을풀을 날마다 뜯는다. 셋째 아이를 묻은 자리 옆에 탱자씨를 심기도 했는데, 이 아이가 탱자나무에 숨결을 담아서 피어날 수 있을까 하고 생각해 본다. 우리 집 뒤꼍 울타리를 따라 무화과나무와 탱자나무가 무럭무럭 자라서 덮으면 얼마나 이쁠까 하고 헤아려 본다.


  아침 낮 저녁으로 뒤꼍에 올라 이웃걷기를 한다. 찬찬히 뒤꼍을 거닐면서 마음을 가다듬는다. 셋째를 묻고 첫째랑 둘째랑 곁님이랑 지내는 이 보금자리를 푸르게 가꾸는 길을 생각한다. 한 해가 저무는 십일월에 내 삶을 새로운 생각으로 짓는다. 4347.11.6.나무.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아버지 육아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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