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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아이 귀후비기



  얼마 앞서까지 거의 못 느끼다가, 오늘 새삼스레 징허게 느낀다. 두 아이 귀를 후비는데 등허리가 몹시 결린다. 큰아이 귀를 두 쪽 모두 후비고 나서 작은아이를 무릎에 누여 귀를 후비는데 등허리가 자꾸 찌릿찌릿한다. 작은아이는 간지럽다면서 자꾸 웃고 몸을 흔든다.


  내가 몇 살 때였을까. 아마 일곱 살이나 여덟 살 때였을까. 아직 혼자서 귀를 후비지 못하던 퍽 어릴 적인데, 어머니가 내 귀를 후비시면서 “아이고, 허리야!” 하고 짧게 읊던 말이 내 마음에 오랫동안 울렸다. 그무렵 나는 어머니가 왜 허리가 아프다고 하는지 몰랐다. 오늘 우리 작은아이가 하듯이 간지럽다고 클클거릴 뿐이었다. 다만, 어머니가 짧게 읊은 한 마디가 내 마음에 남아서 두고두고 울렸다.


  오늘 비로소 우리 어머니가 내 귀를 후비다가 짧게 읊은 말마디를 몸으로 느낀다. 나도 그만 우리 어머니처럼 “아이고, 허리야!” 하고 똑같이 읊는다. 작은아이 귀를 다 후비고 무릎에서 일으킨 뒤 등허리를 톡톡 털고 일어서는데, 그야말로 등허리가 찡찡 결린다. 새벽부터 밤까지 일을 쉬지 못하고 움직이던 어머니가 아이들 귀를 후빈다면서 가만히 꼼짝 않고 앉아서 온마음을 모아야 하는 일은 등허리를 힘들게 하는구나. 4347.11.3.달.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아버지 육아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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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애(厚愛) 2014-11-03 14:11   좋아요 0 | URL
전 어릴적에 할머니가 귀 후벼 주셨어요~^^
가족모두 아프지 마시고 항상 건강하시길 간절히 바랍니다.^^

숲노래 2014-11-03 14:29   좋아요 0 | URL
오, 할머니가 손녀를 귀여워 하시면서
알뜰히 후벼 주셨겠지요?

저는 할머니나 할아버지 손길은
거의 받은 적이 없어서... @.@

좀 누웠더니 등허리가 한결 나았습니다~ ^^ 고맙습니다~~
 

밥먹기



  밥먹기는 영양소 먹기가 아니다. 이를 안다고 말하려면 이를 제대로 몸으로 옮겨야 맞다. 머리로만 생각해서 밥을 차리면, 나도 똑같이 ‘영양소 먹이기’가 될밖에 없다. 밥먹기가 어떤 삶인가 제대로 느끼고 알 때에 아이들과 즐겁게 한 끼를 누린다. 우리 몸이 되는 밥을 먹고, 우리가 하고 싶은 일이나 놀이를 신나게 할 수 있는 기운을 얻으려고 밥을 먹는다.


  밥 한 그릇에 온 사랑을 담자. 밥 한 그릇에 온 마음을 싣자. 밥 한 그릇에 온 노래를 담자. 밥 한 그릇에 온 웃음을 싣자. 날마다 새롭게 생각한다. 밥을 짓다가 문득문득 고개를 들어 부엌에 붙인 그림을 바라본다. 어떤 마음이 되고 어떤 사랑이 되어 이 밥을 짓는지 되새긴다. 찬찬히 수저질을 하면서 밥그릇을 비우는 아이들을 바라본다. 이 밥이 우리한테 무엇인지 제대로 보고 느끼자. 4347.11.3.달.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아버지 육아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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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 사이에서 아버지는 춥다



  큰이불 두 채를 자는방에 둔다. 그런데 두 아이들이 끝에 누워서 자다가 이불을 돌돌 만다. 이불을 걷어차기도 하지만 돌돌 말기도 하면서, 두 아이 사이에서 자는 아버지는 춥다. 얘들아, 이제 겨울인데 이불을 걷어차지도 말고, 너희만 돌돌 말아서 가져가지 말자. 이 이불로 우리는 셋이 함께 덮을 수도 있는데 어째 너희 사이에서 아버지는 하나도 못 덮는구나. 4347.11.1.흙.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아버지 육아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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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지순이와 함께 살면서



  일곱 살 편지순이가 큼지막한 그림종이에 편지를 석석 잘 쓰고 그리는 모습을 물끄러미 지켜본다. 참으로 야무지다. 이 야무진 빛과 숨결은 어디에서 태어났고, 앞으로 어떻게 자라면서 아름다운 이야기를 즐겁게 이을 수 있을까 하고 헤아린다.


  나는 이 아이 편지에서 맞춤법이나 띄어쓰기를 바로잡아 주지 않는다. 왜냐하면, 머잖아 곧 스스로 알아차릴 수 있기 때문이다. 하나씩 짚으며 알려줄 수도 있으나, 아이는 스스로 다 알아차리기 마련이다. 나중에 다른 자리에서 다른 글놀이를 함께 하면서 찬찬히 알려줄 수도 있다.


  편지쓰기에서 가장 깊이 살필 대목은 언제나 ‘마음’이다. 마음을 쓰는가 안 쓰는가를 살핀다. 마음을 쓸 때에 비로소 편지가 빛난다. 마음을 안 쓸 때에 편지는 안 빛난다. 밥 한 그릇에도 마음을 담을 적과 안 담을 적이 사뭇 다르다. 반찬 가짓수가 스무 가지가 되더라도 마음이 하나도 안 담겼다면 맛도 없지만 속이 더부룩하다. 반찬은 한두 가지라 하더라도 마음을 살뜰히 담았으면 맛도 있고 즐겁다.


  나는 편지순이를 먹이고 입히고 재운다. 편지순이는 어버이를 일깨우고 가르치고 따사로이 이끈다. 4347.11.1.흙.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아버지 육아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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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골살이 일기 78] 유자 바구니
― 우리 집 살림살이는 나무


  곁님 어머니가 김치를 보내 주었습니다. 커다란 상자 가득 담긴 김치를 보고는 도무지 그냥 지나칠 수 없어, 우리 집 뒤꼍으로 갑니다. 우리 집 유자나무 한 그루를 가만히 올려다봅니다. 나무가 아직 그리 안 크고 가지도 많이 안 뻗습니다. 그렇지만 열매가 제법 달립니다. 잘 썰어서 차로 담기에 얼마 안 되는구나 싶지만, 두 집으로 나누어서 선물로 보내자고 생각합니다. 두 아이를 불러 함께 유자를 딴 뒤, 작은 종이상자에 담아서 우체국으로 들고 가서 부칩니다.

  유자알만 넣으니 선물상자가 살짝 허전해서 굵은 모과알을 둘씩 보탭니다. 굵은 모과알을 둘씩 더하니 선물상자가 제법 도톰합니다.

  덜 여문 유자는 따지 않습니다. 제대로 여물 때까지 여러 날 기다리기로 합니다. 유자나무에 남은 열매를 마저 따면 이 열매를 우리가 건사해서 쓸 수 있을 테지만, 남은 열매도 사랑스러운 이웃한테 보낼 수 있습니다. 우리 집 뒤꼍에 지난해에 심은 복숭아나무 한 그루는 올해에 꽤 잘 자랐어요. 이듬해에는 복숭아알을 맛볼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아직 많이 서툴고 잘 모르며 제대로 보듬지 못했지만, 앞으로 하나씩 다스리고 건사하면서 우리 집 살림살이인 나무를 살뜰히 사랑하자고 생각합니다.

  살림살이란 무엇일까 하고 돌아보면, 무엇보다 첫째로 ‘나무’이지 싶습니다. 마당에서 우람하게 자라는 후박나무도 우리 집 대단한 살림입니다. 후박나무 곁에 있는 초피나무와 동백나무도 우리 집 대단한 살림입니다. 가녀린 장미나무도 우리 집 살림이요, 매화나무와 감나무와 무화과나무와 뽕나무와 모과나무도 우리 집 살림입니다.

  열매를 주기에 살림이지는 않습니다. 언제나 푸른 바람을 베풀고, 늘 푸른 그늘을 베풀며, 늘 푸른 노래를 베푸는 한집 숨결이기에 살림입니다. 우리 집 아이들하고 우리 집 나무 곁에 서서 굵직한 나뭇줄기와 가느다란 나뭇가지를 살살 쓰다듬거나 껴안을 적에 무척 즐겁습니다. 4347.10.31.쇠.ㅎㄲㅅㄱ

(최종규 .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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