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골살이 일기 82] 시골에서 무엇을 할까

― 함께 노는 숲집



  하루 내내 일터에 매이는 삶이라면 누구나 무척 고단합니다. 하루 내내 일터에 얽매여야 한다면 아이와 마주할 겨를이 없고, 아이와 어울릴 틈이 없습니다. 하루 내내 일터에 붙들리는 삶이라면 곁님과 이야기를 나누기조차 어려울 테고, 집에서 느긋하게 쉬지도 못합니다.


  우리는 톱니바퀴가 아닙니다. 우리는 사회 구석구석에서 어느 자리를 맡아서 지켜야 하는 부속품이 아닙니다. 우리는 저마다 다른 보금자리를 가꾸면서 저마다 다른 하루를 짓는 살림꾼입니다. 우리는 저마다 다른 마을에서 하루를 일구면서 저마다 다른 아이를 사랑하고 아끼는 어버이입니다.


  시골에서 무엇을 할까요. 시골지기로서 일하고 놀지요. 도시에서 무엇을 할까요. 도시지기로서 일하고 놀아요. 시골에서는 시골을 가꾸고, 도시에서는 도시를 가꿉니다. 마을에서는 마을을 가꾸며, 나라에서는 나라를 가꿉니다. 들에 서면 들지기가 됩니다. 숲에 가면 숲지기가 됩니다. 학교에서는 학교지기입니다. 집에서는 집지기입니다.


  시골에서 할 일이라면 땅을 밟고, 땅을 만지며, 땅을 노래하고, 이 땅에서 자라는 나무와 풀을 아끼는 일이지 싶습니다. 내 보금자리부터 숲이 되도록 가꾸는 일을 시골에서 할 노릇이라고 느낍니다. 예부터 자란 우람한 나무를 앞으로도 잘 자라도록 아끼면서, 내가 오늘 이곳에서 살며 새롭게 사랑할 나무를 심을 노릇이라고 느낍니다.


  바람이 들려주는 노래를 듣다가 내 목소리를 틔워 노래를 부릅니다. 나무가 들려주는 노래를 듣다가 온몸으로 노래를 부릅니다. 햇볕이 따숩게 들려주는 노래를 듣다가 환하게 웃으면서 노래를 부릅니다. 풀벌레와 개구리와 멧새가 이루는 잔치노래를 듣다가 아이들과 어깨동무를 하면서 노래를 부릅니다.


  시골에서는 우리 집부터 푸른 숲집이 되도록 노래를 짓고 웃음을 지으며 이야기를 짓습니다. 시골에서는 우리 보금자리가 일터요 놀이터가 되도록 나무를 심고 흙을 살찌웁니다. 함께 놉니다. 함께 일합니다. 함께 사랑합니다. 4347.12.2.불.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시골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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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호박이랑 고구마랑



  단호박이랑 고구마랑 감자랑 달걀이랑 삶으면, 아이들은 맨 먼저 달걀을 집는다. 다음으로 고구마를 집고, 다음으로 감자를 집으며, 마지막으로 단호박을 집는다. 아이들이 배고프다고 할 적에 단호박만 접시에 달랑 놓으면 처음에는 안 먹을 듯 지나치지만, 배에서 꼬르륵 소리가 나면, 단호박만 놓은 접시를 말끔히 비운다. 그렇다고 아이들한테 단호박만 억지로 먹일 생각은 없다. 여러 가지 맛을 골고루 느끼면서 누릴 수 있기를 빈다. 그래서 여러 가지를 삶으면 단호박부터 접시에 놓는다. 이 다음에 감자를 놓고, 이 다음에 고구마를 놓는다. 배가 부르면 단호박은 건드릴 생각조차 안 하지만, 배가 불러도 고구마는 낼름낼름 다 먹으니까. 4347.11.28.쇠.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아버지 육아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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맛있을 때 안 먹기



  저녁에 닭볶음을 한다. 아이들과 함께 먹을 닭볶음이라 매운 것은 하나도 안 넣는다. 간장으로만 간을 하고, 감자와 고구마와 당근을 큼직하게 썰어서 함께 끓인다. 그래서 ‘묽은닭볶음’을 끓인다. 아이들이 먹기 좋도록 살점을 바른다. 일곱 살 큰아이가 문득 묻는다. “아버지, 아버지는 왜 안 먹어요?” 응? 아버지는 안 먹었나? 그렇구나. 아버지는 너와 동생한테 살점을 발라 주느라 한 입도 안 먹었네. 미처 몰랐다. 그러고 보니, 내가 어릴 적에 우리 어머니는 뭔가 맛있는 밥을 장만하신 뒤 우리한테만 먹이셨다. 나도 어릴 적에 어머니한테 여쭈었다. “어머니, 어머니는 왜 안 드셔요?” 이때에 어머니는 으레 “난 이따 먹어. 그러니 맛있게 먹어.” 어머니가 나중에 드셨을까. 어머니가 나중에 챙겨서 드신 적이 있을까. 두 아이는 닭고기를 맛나게 먹는다. 참으로 잘 먹는다. 그러니 마지막 살점까지 두 아이한테 준다. 이러면서 배고프다고 느끼지 않는다. 참으로 그렇다. 4347.11.27.나무.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아버지 육아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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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물선 2014-11-27 23:48   좋아요 0 | URL
첫줄에선 어머니신줄 알았어요.

숲노래 2014-11-28 00:58   좋아요 0 | URL
아이를 기르는 어버이는 모두 어머니요 아버지와 같다고 느껴요 ^^
 

[시골살이 일기 81] 아끼는 마음

― 풀내음 맡는 이곳에서



  톱질을 하는 어버이 곁에 서는 아이들은 톱질을 물끄러미 바라봅니다. 톱은 아직 저희가 손에 댈 수 없는 줄 알아차리면서 바라봅니다. 그러나 톱을 만지고 싶고, 저희도 톱으로 무엇인가 켜고 싶습니다.


  망치질을 하는 어버이 옆에 서는 아이들은 망치질을 가만히 쳐다봅니다. 망치는 아직 저희한테 무거워 망치질을 시늉조차 하기 어렵습니다. 그러나 망치를 쥐고 싶으며, 저희도 망치고 무엇인가 박고 싶습니다.


  아이들은 저희 몸에 맞는 것을 차근차근 찾아서 즐깁니다. 단추꿰기를 익히고, 옷입기를 익힙니다. 손발씻기를 익히고, 설거지를 익힙니다. 작은 심부름을 해내고, 제법 무거운 짐을 함께 나릅니다.


  아이들은 작은 손과 몸으로 작은 일을 거듭니다. 아이한테 커다란 일을 맡기거나 짐을 지우는 어른은 없습니다. 아이는 조그마한 일을 살짝 거들 뿐이지만, 어른은 아이가 보여주는 사랑스러운 손길을 느끼면서 새롭게 힘을 얻습니다.


  큰아이는 작은아이를 돌보고 아낍니다. 어버이는 아이들을 모두 돌보면서 아낍니다. 투박하고 커다란 손으로 아이들을 어루만집니다. 큰아이는 작은아이보다 살짝 큰 손으로 동생을 포근히 어루만집니다.


  서로 아끼는 마음입니다. 서로 아끼는 마음을 키우는 삶입니다. 서로 아끼는 마음으로 하루하루 새롭게 누리는 삶입니다. 풀내음을 맡고 나뭇가지를 쓰다듬는 까닭도, 내가 나를 아낄 뿐 아니라 한식구와 이웃과 동무를 모두 아끼려는 마음으로 노래를 부르고 싶기 때문입니다. 내 땅을 내가 가꾸면서 두 발로 씩씩하게 설 때에 마음속에서 새로운 씨앗이 움트는 기운을 느낍니다. 4347.11.26.물.ㅎㄲㅅㄱ


(최종규 .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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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몸에서 뿌드득



  저녁 일곱 시 반에 아이들과 잠자리에 든다. 저녁 다섯 시가 넘을 무렵이면 아이들 얼굴과 눈망울에서 졸음이 가득한 빛을 읽을 수 있다. 이 아이들이 낮잠을 잤다면 여덟 시에도 제법 눈망울이 똘망똘망하지만, 낮잠을 건너뛰었으면 다섯 시 부터 잠들기까지 아주 졸린 눈치이다. 그리고, 나도 졸리면서 고단하다. 여섯 시 반 즈음부터 아이들한테 노래를 한다. 얘들아 우리 자자, 얘들아 너희 자야지.


  아이들을 재우려고 함께 자리에 누우면 등허리와 팔다리가 얼마나 결리는지, 온몸에서 뿌드득 소리가 난다. 오늘 하루는 어떻게 살았나 하고 되새기면서 노래를 몇 가락 부르다가 스르르 힘이 풀리면서 먼저 곯아떨어지는 날이 있고, 두 아이가 곯아떨어진 소리를 듣고 조용히 자리에서 일어나 부엌일을 마저 하는 날이 있다.


  엊저녁에 아이들을 재우며 몇 시쯤 되었나 헤아리니 일곱 시 반인데, 문득 예전 일이 떠올랐다. 아이들이 우리한테 오지 않던 날이 떠오르고, 곁님과 둘이 보낸 첫 해가 떠오르며, 혼자 살던 지난날이 떠오른다. 그무렵 ‘저녁 일곱 시 반’은 바지런히 움직이는 때였다. 한창 움직이면서 일하는 때라고 할까. 혼자 살던 때에는 책방마실을 다니든 책을 읽든 하던 때요, 둘이 같이 살던 때에도 아직 잠들려면 한참 먼 때이다.


  일곱 시 반에 불을 다 끄고 잠자리에 들며 가만히 생각해 본다. 시골마을에서 저녁 일곱 시만 넘어도 거의 모든 집이 불을 다 끄고 조용한데, 도시에서 저녁 일곱 시는 사람들이 어마어마하게 움직이면서 시끌벅적하다. 도시사람은 생각할 수나 있을까? 시골에 이웃이나 동무가 있다면, 시골에는 저녁 일곱 시나 여덟 시에도 ‘전화를 하면 안 되는’ 줄 생각이나 할 수 있을까? 나는 저녁 일고여덟 시에 오는 전화나 쪽글(손전화 쪽글)은 안 받기 일쑤이다. 피식 웃음이 난다. 그저 삶이 재미있어서, 아이들과 노니는 삶을 돌아보며 웃는다. 4347.11.26.물.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아버지 육아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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