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루레이] 빌리 엘리어트 - 아웃케이스 없음
스티븐 달드리 감독, 게리 루이스 외 출연 / 블루키노 / 201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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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리 엘리어트
Billy Elliot, 2000


  살아가는 즐거움이 있으면 웃는다. 살아가는 즐거움이 없으면 웃지 못한다. 아이도 어른도 모두 같다. 하루하루 즐거우면 아이들은 맑게 웃는다. 날마다 즐거우면 어른들은 밝게 웃는다. 즐겁지 못하다면 아이들은 얼굴에 웃음이 아닌 그늘이 드리운다. 아이들이 왜 애늙은이처럼 되고 말까? 아이들이 왜 웃으면서 이야기를 안 하는가? 저녁에 잠들고 아침에 일어날 적에 새로운 꿈이 피어나지 않으면, 아이들 얼굴에서 웃음이 사라진다.

  우스꽝스러운 짓을 해야 웃지 않는다. 아니, 오늘날 이 사회는 즐거운 삶이 아닌 터라, 우스꽝스러운 짓을 일부러 벌이면서 억지스레 웃음을 자아내려고 하는 ‘직업인’까지 생겨야 한다. 게다가, 오늘날 이 사회는 즐거운 삶이 아닌 탓에, 함께 어우러져 뛰놀 마당은 모조리 사라진 채, 텔레비전에 코를 박거나 경기장으로 찾아가서 ‘전문 직업 운동선수가 벌이는 쇼’를 구경해야 한다. 스스로 웃을 일이 없는 오늘날 사회이다. 스스로 뛰놀지 못하도록 가로막힌 오늘날 문명이고 정치이고 교육이며 문화이다.

  영화 〈빌리 엘리어트〉에 나오는 탄광 노동자는 어떤 사람들일까. 그야말로 빛을 잃고 꿈을 잃으며 숨결조차 잃은 슬픈 사람들이다. 이들이 할 수 있는 일이란, 아침에 탄광회사 앞에서 목청을 높이면서 싸우다가, 저녁에 술집에 모여 해롱거리는 짓뿐이다. 달리 할 수 있는 일이 없다. 삶이 홀가분하지 못한데다가 즐겁지 않은 터라, 탄광 노동자 어버이는 이녁 아이들한테 꿈이나 사랑을 들려주지 못한다. 탄광 노동자 어버이는 이녁 아이들한테 이야기를 들려주지도 못한다. 함께 밥상맡에 둘러앉아도 달리 들려줄 이야기도, 들을 이야기도 없다. 꿈도 사랑도 없기 때문이다.

  아무것도 없이 새까만 탄광마을인데, 길바닥만 본다면 새까만 무덤 같으나, 고개를 살짝 들어 하늘을 보면, 하늘빛이 파랗다. 고개를 들어 마을 앞으로 펼쳐진 바다를 보면, 바닷빛이 파랗다. 파란하늘과 파란바다가 베푸는 하늘바람과 바닷바람을 마실 수 있다. 다만, 고개를 들어야 하늘과 바다를 품에 안을 수 있다. 영화 〈빌리 엘리어트〉에 나오는 ‘빌리’는 고개를 들었다. 고개를 들어 하늘을 보았고, 바다를 보았다. 아이는 스스로 제 마음속을 읽었으며, 아이는 스스로 제 길을 깨달았다. 그리고, 제 이야기를 이녁 아버지와 형한테 들려준다. 이녁 아버지와 형은 땅바닥만 쳐다보느라 꿈과 사랑을 모두 잃거나 놓쳤는데, 빌리는 꿈도 사랑도 잃거나 놓치고 싶지 않다는 뜻을 또렷하게 밝힌다. 이리하여, 빌리는 이녁 아버지가 처음으로 탄광마을 바깥으로 나가도록 해 준다. 발레학교 면접을 보러 가는 길이었지만. 그리고, 빌리는 이녁 형도 탄광마을 바깥으로 나가서 새로운 바람을 쐬도록 해 준다. 드디어 빌리는 춤꾼(발레)이 되어 스스로 하늘을 날아오르는 꿈을 모두한테 따사롭게 보여준다. 4347.9.13.흙.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영화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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몬스터 주식회사 (1disc) - 아웃케이스 없음 [블루레이] 몬스터 주식회사 6
데이비드 실버맨 외 감독, 빌리 크리스탈 외 목소리 / 월트디즈니 / 201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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몬스터 주식회사

Monsters, Inc., 2001



  일곱 살 어린이는 〈몬스터 주식회사〉를 어떻게 볼까? 괴물이 나와서 무섭다고 느낄까? 열일곱 살 푸름이는 〈몬스터 주식회사〉를 어떻게 볼까? 괴물들이 귀엽다고 느낄까? 스물일곱 살과 서른일곱 살쯤 되면 이 영화를 어떻게 볼까? 마흔일곱 살이나 쉰일곱 살, 그리고 예순일곱 살과 일흔일곱 살쯤 되면 이 영화를 어떻게 받아들일까?


  영화에 나오는 ‘몬스터’는 사람과는 다른 곳에서 살며 ‘사람한테서 에너지를 얻는’ 나날을 누린다. 사람 가운데 아이들한테서 에너지를 얻는다. 몬스터는 아이들이 자는 방으로 밤에 몰래 찾아간다. 그러고는 아이들을 놀래킨다. 아이들이 놀랄 적에 나오는 기운을 받아들여 ‘몬스터 나라 에너지’로 삼는다.


  곰곰이 생각에 잠긴다. 마흔 살이 넘은 어른이 보기에 ‘앙증맞으면서 귀여워’ 보이는 괴물들이 아이한테서 ‘놀라며 내뿜는 기운’을 에너지로 삼는 일은 ‘그럴 만하겠다’고 느낀다. 그리고, 이 아이한테서 ‘웃으며 내뿜는 기운’을 에너지로 삼으려 할 적에도 ‘그럴 만하겠다’고 느낀다.


  무슨 소리인가 하면, 오늘날 문명사회는 석유와 석탄과 가스처럼 ‘공해물질 내뿜는 지하자원’을 태워서 에너지로 삼는다. 이런 지하자원 에너지는 머잖아 끝장을 보리라고 다들 안다. 그런데 지하자원 에너지를 써야 다국적기업과 재벌기업뿐 아니라 중앙정부가 잇속을 챙긴다. 사람들이 지하자원 에너지에 길들어 얽매이도록 해야, 자립에너지가 퍼지지 못한다. 몬스터가 아이들을 놀래키면서 빼앗는 기운은 바로 지하자원 에너지라 할 수 있다. 나중에 몬스터가 문득 깨달아 아이들을 웃음바다로 이끌면서 나누어 받는 기운은 자립에너지요, 지구별을 아름답게 보듬을 수 있는 손길이다.


  무엇을 보아야 할까. 무엇을 알아야 할까. 무엇을 해야 할까. 우리는 아이들과 어떤 즐거움을 나눌 때에 활짝 웃을 만할까. 우리는 아이들한테 무엇을 물려주려는 마음을 품을 때에 기쁘게 노래할 만할까.


  돈을 바라는 기업이나 정부라 할 때에도, 지구별에 아름다운 기운이 감돌도록 하면서 즐겁게 돈을 얻을 수 있다. 굳이 사람들을 노예처럼 부려먹어야만 돈을 얻을 수 있지 않다. 서로서로 아끼고 사랑하는 삶을 일구면서 모두 즐겁게 노래하면서 지낼 길이 있다. 생각해 보라. 전쟁무기를 만들어서 평화를 지키자면 돈이 얼마나 많이 드는가? 군대와 경찰이 차고 넘치면 지구별은 얼마나 거칠어지거나 메말라지는가? 군대는 평화를 지키지 않고, 경찰은 안전을 돌보지 않는다. 전쟁무기가 아닌 참다운 평화를 가꾸는 데에, 그러니까 숲을 가꾸고 마을을 가꾸는 데에 돈을 들이고 작은 정부와 작은 지자체로 저마다 즐겁게 자립과 독립을 한다면 바로 평화가 된다. 경찰이 아닌 마을살림 돌보는 두레와 품앗이가 있을 노릇이다. 공무원이나 정치꾼이 아닌 ‘마을사람’과 ‘살림꾼’이 있어야 한다. 즐겁게 웃고 노래하면서 아이들과 어깨동무하는 참다운 어른이 있을 때에 평화와 사랑이 싹튼다. 4347.9.5.흙.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영화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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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량 1~2 세트 - 전2권 - 극장판 무비필름북 극장판 무비필름북 명량
서울문화사 편집부 엮음 / 서울문화사 / 201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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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영화 〈서편제〉와 〈명량〉



  아이들과 오늘 저녁에 영화 하나 볼까 하고 생각하면서 〈서편제〉를 먼저 혼자서 주루룩 보는데, 이 영화가 처음 극장에 걸리던 때하고는 아주 다른 느낌을 받는다. 그리고, 〈서편제〉가 극장에 걸렸을 때에 들던 궁금함이 하나 있었는데, 그 궁금함을 오늘 그대로 느꼈다. 무엇인가 하면, 영화 〈서편제〉가 열 해나 스무 해쯤 지난 뒤에 다시 보면 어떻겠는가 하고 생각했다. 그동안 한국영화가 ‘판소리’와 같은 우리 겨레 문화를 안 다루었으니 이 영화가 애틋하다고 느꼈을 뿐, 영화 얼거리나 짜임새로 볼 때에는 참으로 모자라다고 느꼈다. 1993년에서 스물한 해가 지난 2014년에 다시 보니 〈서편제〉는 너무 어수선하며 어설픈데다가 어지럽다. 돌로 쌓은 울타리가 있는 길을 걷는 대목은 그림이 더없이 예쁘지만, 군데군데 ‘예쁜 시골마을’과 ‘풀로 지붕을 얹은 집’이 나올 뿐, 딱히 영화답게 누릴 만한 이야기가 없네 하고 새롭게 느꼈다.


  요즈음에 어느덧 극장 관객 1600만이 넘었다고 하는 영화 〈명량〉이 있다. 이 영화를 어디에서 찍었는지 모르겠는데, 우리 식구가 지내는 전남 고흥 구암리 바닷가에서 ‘이순신 나오는 무슨 영화’를 찍는다는 소리를 이태쯤 앞서인가 지난해인가 들은 적 있다. 고흥이라는 깨끗한 시골마을과 바닷가에서 영화를 찍는다니, 깨끗한 마을과 숲과 바다가 온통 쓰레기밭이 되겠구나 하고 생각하고는 그 마을 언저리에는 한동안 기웃거리지 않았다.


  영화 〈명량〉은 무엇을 말하거나 보여주려는 영화일까? 글쎄, 시골에는 극장이 없으니 이 영화를 볼 수 없다. 그리고, 이 영화를 보러 도시로 나들이를 갈 마음은 없다. 나중에 디브이디가 나오든 영화파일을 누군가 우리한테 선물을 하든 딱히 볼 마음마저 없다. 왜냐하면, 영화가 너무 뻔하기 때문이다. 조선 수군이 일본놈을 신나게 때려죽이는 모습을 찍으면서 ‘짜릿한 나라사랑(애국! 충성! 일본놈 엿먹어!)’을 외칠 테니까, 뭐 하러 이 영화를 보겠는가. 일본 제국주의 바보들이 미국 진주함에 폭탄을 퍼부으면서 싱글싱글 웃는 모습하고 무엇이 다를까. 미국 다국적기업 머저리들이 핵폭탄을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떨어뜨려 엄청나게 많은 사람들을 죽이면서 낄낄거린 짓하고 무엇이 다를까.


  저녁이 늦어 영화는 안 보기로 한다. 이튿날 저녁에 〈나니아 연대기〉를 보기로 한다. 문학으로도 영화로도 〈나니아 연대기〉에는 ‘이야기’가 있다고 느낀다. 이야기가 없는 영화를 왜 보겠는가. 생각해 볼 노릇이다. 열 해나 스무 해 지난 뒤에, 영화 〈명량〉을 몇 사람이나 볼까? 제발 영화를 ‘관객 숫자 장난’이 아닌 ‘삶을 밝히는 아름다운 이야기’로 빚어내는 영화감독이 한국에서도 나오기를 빌어 마지 않는다. 4347.8.24.해.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영화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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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성인 지구 정복
존 카펜터 감독, 로디 파이퍼 외 출연 / 클레버컴퍼니 / 201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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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성인 지구 정복

They Live, 1988



  영화 〈화성인 지구 정복(They Live)〉을 보면서 문득 한 가지 영화가 떠오른다. 바로 〈록키 호러 픽쳐 쇼(Rocky Horror Picture Show)〉이다. 〈록키 호러 픽쳐 쇼〉는 1975년에 나왔고, 〈화성인 지구 정복〉은 1988년에 나온다. 〈록키 호러 픽쳐 쇼〉는 이 지구별에서 정치와 경제와 문화와 산업과 스포츠와 영화와 방송과 신문과 출판 따위를 모두 거느리면서 주무르는 ‘록펠러·JP모건’ 속내를 곳곳에 짙게 깔면서 넌지시 보여준다. 여느 사람들이 으레 아는 대로 흘러가는 사회나 역사가 아니라, 누군가 억지로 꾸미거나 만드는 틀대로 사람들이 바보스레 휩쓸리거나 따라가는 모습을 보여준다. 다만 이를 알아보자면 그만큼 공부를 해야 알아본다. 공부를 하지 않고 영화만 본다면, 이 영화가 무엇을 말하려 하는지 하나도 모르는 채 ‘컬트’라느니 ‘뮤지컬’이라느니 하는 엉뚱한 소리만 늘어놓는다.


  영화 〈화성인 지구 정복〉에서는 이러한 이야기를 ‘화성인’을 빗대어 말한다. 그러나, 지구별을 뒤에 숨어서 움직이는 이들이 ‘화성인’인지 ‘외계인’인지 영화에서 제대로 다루지는 않는다. 무엇보다 ‘어느 별 사람’이 지구사람을 뒤에서 노예로 부리는지는 그리 대수롭지 않다. 영화에 붙인 이름처럼 “그들은 살고(깬 사람 They Live)”이고, “우리는 잠들었다(We Sleep)”는 이야기를 밝힌다. “They Live We Sleep”이라는 이야기는 아주 살짝 담벼락에 적은 글을 비추면서 지나가는데, 살짝 스치듯이 지나가는 모습처럼, 우리는 우리 참모습이 무엇인가를 제대로 바라보지 못하고 느끼지 못한다. 제대로 바라보려 하지 않고, 참답게 느끼려 하지 않는다. 우리 삶을 얼마든지 바꿀 수 있으니 바꾸려 하지 않는다. 돈을 더 벌려 하고, 자리를 더 지키려 한다. 왜 그럴까? 왜 바꾸지 못할까? 우리는 노예로 아주 기나긴 나날을 살아오면서 ‘스스로 노예인 줄 모르는’ 채 길들었기 때문이다. 노예인 줄 모르는 채 길든 탓에, 노예에서 풀려나더라도 무엇을 스스로 새로 빚을 줄 모른다. 스스로 무엇을 좋아해야 하는지 모른다. 스스로 무엇을 해야 하는지 모른다.


  영화 〈화성인 지구 정복〉에 나오는 검은이 ‘프랭크’는 하얀이 ‘나다’한테 너 스스로 좋아하는 일을 하라고 넌지시 한 마디를 하고 아주 빠르게 다음 대목으로 지나간다. 참말 이 대목처럼 우리는 제 길을 찾으려고 애쓰기는 하지만, 아주 살짝 생각하다가 그만둔다. 제 길을 찾기보다는 쳇바퀴를 도는 노예 부속품으로 지내는 데에 익숙하다. 회사원이 되는 데에 익숙하고, 학생이 되는 데에 익숙하다. 나이를 먹으면 웃사람이 되어 지시와 명령을 내리는 데에 익숙하고, 교사가 되어 가르치는 데에 익숙하다. 다만, 이것과 저것을 하지만, ‘삶을 스스로 새로 짓지’는 못한다.


  그나저나, 한국에서는 왜 영화이름을 ‘화성인 지구 정복’으로 붙였을까? 왜 이런 뚱딴지 같은 이름을 붙였는가? “그들은 살아서 우리를 다스린다”는 이야기를 알지 못하도록 왜 이런 이름을 붙였는지 아리송하지만, 한국 사회는 아직 어둡고 갑갑하니까, 이런 이름을 붙일밖에 없구나 싶기도 하다. 그러니, 이 영화를 ‘비급 판타지나 에스에프 영화’로 갈래를 넣을 테지. 차라리 “록키 호러 픽쳐 쇼”처럼 영어 이름을 그대로 쓸 노릇이다. 1975년에 나온 영화가 이름에서 알려주듯, 우리는 ‘픽쳐 쇼’에 휘둘리는 바보 노예 부속품으로 살면서도 이를 하나도 안 깨닫는다. 4347.8.23.흙.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영화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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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기 코끼리 란디와 별이 된 소년
사카모토 사유리 지음, 정유선 옮김 / 페이지 / 200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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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이 된 소년

星になった少年, Shining Boy And Little Randy, 2005



  코끼리가 어떤 마음인지 듣거나 읽을 수 있는가. 나비가 어떤 마음인지 보거나 들을 수 있는가. 제비가 어떤 마음인지 읽거나 볼 수 있는가. 그러면, 내 이웃과 동무로 지내는 사람이 어떤 마음인지 헤아릴 수 있는가.


  지구별에서 모든 아이들은 가슴속에 파란 별을 안고 태어난다. 이 파란 별을 곱게 건사하면서 제 길을 환하게 밝히는 아이들이 있으나, 이 파란 별을 깨우지 못한 채 안타까이 쳇바퀴를 돌다가 그만 죽고 마는 아이들이 있다. 오늘날 흐름을 보면, 거의 모든 아이들이 가슴속에 있는 파란 별을 느끼지도 보지도 헤아리지도 알지도 못하는 채 입시지옥에서 허덕인다. 무엇이 대수로운 일이 될까? 이튿날 치를 시험에서 높은 성적을 받아야 하는 일이 대수로운가? 내가 가꾸고 싶은 꿈으로 나아가는 일이 대수로운가? 어쨌든 초·중·고등학교 졸업장만큼은 가져야 하는가? 적어도 대학교 졸업장쯤은 거머쥐어야 하는가? 초등학교 졸업장을 안 가지면 사람답게 못 사는가? 대학교 졸업장을 못 가지면 사랑다운 사랑을 나누지 못하는가?


  누구나 처음부터 별이었기에, 스스로 어떤 숨결인지 느낄 수 있다면, 언제 어디에서라도 늘 빛난다. 누구나 처음부터 별이었지만, 스스로 어떤 숨결인지 느끼지 않는다면, 언제까지나 남이 시키는 대로 굴레에 갇혀 쳇바퀴질을 할밖에 없다.


  쳇바퀴질로는 빛나지 않는다. 쳇바퀴질은 스스로 되풀이하면서 갇히는 굴레이자 수렁이다.


  파란 별을 가슴속에서 깨우지 않으면 웃음도 노래도 없다. 파란 별을 가슴속에서 불러내지 않으면 이야기도 사랑도 없다. 우리 삶이 따분하다면 스스로 가슴속을 읽지 않기 때문이다. 우리 삶이 쓸쓸하다면 이웃과 동무 가슴속에 무엇이 있는지 들여다보려 하지 않기 때문이다.


  씨앗이 싹틀 수 있기를 빈다. 씨앗이 싹을 틔워 자랄 수 있기를 빈다. 씨앗이 싹을 틔워 자라서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은 뒤 새로운 씨앗을 맺을 수 있기를 빈다. 저마다 별인 아이들이 그예 환하면서 눈부신 별로 온누리를 비출 수 있기를 빈다. 다 다른 별이 함께 어우러지면서 너른 미리내를 이루고 깊은 숨소리가 될 수 있기를 빈다. 코끼리가 들려주는 목소리를 들은 아이는 코끼리와 함께 스스로 별이 된다. 영화 〈별이 된 소년〉에 나오는 아이는 중학교를 그만두고 태국으로 가서 ‘코끼리 조련사’가 되었다는데, 이 아이는 ‘조련사’가 되지 않았다. 코끼리하고 ‘동무’가 되고 ‘이웃’이 되었고, 코끼리와 함께 스스로 ‘별’이 되었다. 4347.8.17.해.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영화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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