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은 어린 짐승들을 기른다 창비시선 129
이영진 지음 / 창비 / 1995년 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노래책시렁 33


《숲은 어린 짐승들을 기른다》

 이영진

 창작과비평사

 1995.1.25.



  이야기가 남습니다. 문득 스친 하루를 글로 적어 놓았더니 아주 조그마한 조각인데, 이 조그마한 조각으로도 애틋하거나 따스하게 돌아볼 이야기가 남습니다. 두고두고 지낸 살림이지만 글로 여미지 않으면서 어느새 잊기도 합니다. 꼭 글로 여미어야 안 잊지는 않아요. 글로 안 여미었어도 입에서 입으로 이야기를 물려주었다면 우리는 오래오래 건사하면서 사랑할 이야기를 가슴에 품습니다. 《숲은 어린 짐승들을 기른다》라는 시집을 읽으며 밑줄을 그을 만한 대목을 좀처럼 못 찾는데, 김남주라는 시인하고 어느 날 스친 하루를 적은 시에서 눈이 멎습니다. 이런 이야기를 적은 시인이 자잘한 글치레를 부리기보다는 이렇게 수수한 하루를 그저 수수하게 적어 놓았으면 참 새로웠을 텐데 싶습니다. 뭔가 대단하다 싶도록 글을 꾸며야 하지 않아요. 부디 이를 잘 헤아리면 좋겠습니다. 이래저래 꾸미기보다는 이 이야기 저 이야기 그대로 결을 살릴 수 있으면 돼요. “어제도 보았고 오늘도 본다”고 하는 옛 시인 김남주 님 낡은 가방을 놓고서, 으레 보고 또 본 그 낡은 가방 이야기를 더 풀어낼 수 있다면, 또는 시인이 손에 쥔 가방이 어떠한가를 더 적을 수 있다면, 신 한 켤레를, 밥그릇을, 설거지 수세미를 시로 쓸 수 있다면. ㅅㄴㄹ



지나갔다. 돌이킬 수 없이 / 창작과비평사 문을 나와 / 합정동 버스정류장 쪽을 향해 / 걷는 김남주의 뒷모습. 싸구려 파카와 어깨에 걸친 / 낡은 가방 하나를 / 나는 어제도 보았고 / 오늘도 본다. / “어이! 남주형 이따 점심시간에 만나.” / “뭐, 그냥 내장탕이나 한그릇 하자구.” (슬픔/46쪽)


(숲노래/최종규)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모르는 척 - 개정판 시작시인선 82
길상호 지음 / 천년의시작 / 2016년 4월
평점 :
품절


노래책시렁 32


《모르는 척》

 길상호

 천년의시작

 2007.1.30.



  하루를 그릴 수 있는 마음이라면, 하루를 즐길 수 있는 몸짓이 되리라 생각합니다. 하루를 사랑할 줄 아는 마음이라면, 하루를 노래하는 걸음걸이가 되리라 생각합니다. 시 한 줄은 어떻게 쓸 적에 즐거울까요? 글멋을 부리거나 글치레를 할 적에 즐거울까요? 오늘 하루를 새롭게 그리려는 마음으로 찬찬히 이야기를 써 내려갈 적에 즐거울까요? 《모르는 척》을 읽습니다. 시 한 줄이 그냥 태어나는 일이란 없고, 시 한 줄을 그냥 쓰지 않으리라 봅니다. 아무렇게나 흐르는 삶이란 없으며, 아무 뜻이 없는 살림이란 없어요. 그렇다면 우리는 오늘 하루를 얼마나 새롭게 마주할까요? 스스로 새롭고자 하는 몸짓으로 살면서 글을 쓸까요? 다른 사람이 받아들여 줄 만큼 살피면서 몸을 꾸미고 옷을 입고 말씨를 가다듬으면서 글을 쓸까요? 새나 풀벌레는 사람 눈치를 보지 않습니다. 구름이나 바람은 사람을 헤아리지 않습니다. 해나 별은 사람 눈치를 안 살핍니다. 아기는 어머니가 졸립다고 하더라도 제 배가 고프면 으앙 울면서 어머니를 부릅니다. 우리가 쓰거나 읽는 시는 얼마나 사랑스러울까요? 어쩌면 사랑스레 내딛을 걸음걸이는 모르는 척하면서 글멋을 키우기만 하는 시만 넘치지 않을까요? ㅅㄴㄹ



바람이 나를 노래하네 / 속을 다 비우고서도 / 땅에 발 대고 있던 날들 / 얻을 수 없던 / 그 소리, / 난간에 목을 매고서야 / 내 몸에서 울리네 (風磬소리/27쪽)


(숲노래/최종규)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오늘 읽기 2018.10.29.


《보리 국어사전》

 윤구병 감수·토박이 사전 편찬실 엮음, 보리, 2008.5.10.



《보리 국어사전》이라고 하는 어린이 사전을 마주하기까지 열 해쯤 걸린 듯싶다. 이제 나는 이 어린이 사전 첫 편집장·자료조사부장 노릇을 했다는 말까지는 하지만, 아직 이 어린이 사전 알맹이가 얼마나 허술한가까지는 딱히 밝히지 않는다. 허술한 대목이 대단히 많기 때문이기도 하고, 허술한 대목을 짚는 데에 힘을 쓰기보다는 새로운 사전을 내 손으로 즐겁게 짓는 일을 하고 싶기 때문이기도 하다. 생각해 보라. 엉성하거나 허술한 사전이나 책을 따지는 데에 아무리 애쓴들 사람들이 얼마나 알아보랴? 그런 대목을 짚거나 알려준다고 해서 엉성하거나 허술한 사전이나 책을 사람들이 안 사거나 안 읽거나 밀쳐내거나 도리질을 할까? 그런 대목을 짚거나 알려주면, 제대로 빚거나 짓는 사전을 기꺼이 사서 읽거나 즐거이 배우는가? 잘 모르겠다. 다만 몇 가지만 옮겨 보겠다. 《보리 국어사전》을 보면 일러두기에서 몇 낱말을 적어 놓는데(첫판하고 고침판이 좀 다르긴 하지만), 일러두기에 나온 낱말 가운데 몇 가지 뜻풀이가 어떻게 엉성한지부터 옮긴다.


가지런하다 : 여럿이 늘어선 꼴이 한결같이 고르고 나란하다

고르다 1 : 서로 차이가 없이 한결같거나 가지런하다

고르다 2 : 울퉁불퉁하거나 들쭉날쭉한 것을 가지런히 하다

나란하다 : 줄지어 늘어선 모양이 가지런하다

차갑다 : 1. 살갗에 닿는 느낌이 차다

차다 : 1. 몸에 닿은 물건이나 공기 온도가 낮다


이런 뜻풀이로는 낱말을 알 수 없다. 다음은 몸글에서 몇 군데 살핀 엉성하거나 허술한 뜻풀이인데, 사전은 이쁘장한 그림을 잔뜩 집어넣으면서 눈가림을 할 수 없다. 사전이 사전인 까닭은 바로 ‘뜻풀이’이다. 뜻풀이를 해야 사전이다. 사전이 그림책은 아니지 않은가? 사전이 도감은 아니지 않은가? 이런 엉성하고 허술한 뜻풀이만 짚어내는 데에도 ‘사전 한 권 부피’가 될 만하다. 다시 말해서 사전 뜻풀이가 통째로 엉성하고 허술하다. 《보리 국어사전》을 사서 읽으실 분이라면, 제발 미리 뜻풀이를 곰곰이 따지거나 살피고서 ‘살는지 말는지’를 생각하시기를 빈다. 아니, 다른 사전도 똑같다. 사전을 사기 앞서 제발 뜻풀이가 제대로 달렸는지 살펴야 한다. 책꽂이 구석에 모셔 놓으려고 목돈을 쓰고 싶은 분이라면 뜻풀이를 안 살피고 어떤 사전이든 그냥 사셔도 무어라 하지 않겠다.


익히다 : 1. 모르는 것을 배우다

나쁘다 : 1. 상태가 좋지 않다

기쁘다 : 기분이 좋고 즐겁다

즐겁다 : 마음이 흐뭇하고 기분이 좋다. 또는 어떤 일이 기쁘고 재미있다

신나다 : 재미있고 즐거운 기분이 들다

재미있다 : 즐거운 기분이 들다

거듭 : 같은 일을 되풀이하여

되풀이 : 같은 말이나 행동을 자꾸 거듭해서 하는 것

반복 : 같은 일을 거듭해서 하는 것

지저분하다 : 1. 때나 먼지가 묻어 더럽다

반드시 : 틀림없이 꼭

꼭 : 어떤 일이 있어도 반드시

틀림없다 : 조금도 어긋나지 않고 꼭 그렇다

세밀하다 : 자세하고 꼼꼼하다

자세하다 : 작은 데까지 분명하고 꼼꼼하다

뚜렷하다 : 1. 모습이나 소리가 흐릿하지 않고 분명하다

분명하다 : 1. 모습, 소리 들이 흐릿하지 않다

밝다 : 1. 어둡지 않고 환하다

환하다 : 1. 장소, 빛, 색깔 들이 아주 또렷하고 밝다

맑다 : 1. 물이 깨끗하다 2. 공기가 탁하지 않아서 숨쉬기에 상쾌하다

깨끗하다 : 1. 때나 먼지 들이 없어 더럽지 않고 말끔하다 2. 물이나 공기에 잡것이 섞이지 않아 맑다

데 : 1. 곳이나 장소를 뜻하는 말

곳 : 사물이 있는 자리. 또는 어떤 일이 일어나는 자리

자리 : 1. 사람, 무건이 있거나 있을 만한 공간

공간 : 1. 아무것도 없이 비어 있는 곳 2. 정해진 테두리가 없이 모든 방향으로 뻗어 있는 곳 3. 어떤 일을 하거나 어떤 일이 벌어지는 곳

장소 : 어떤 일이 일어나는 곳

불쌍하다 : 형편이 딱하다. 또는 남의 형편이 딱해서 가슴이 아프다

딱하다 : 1. 처지나 형편이 불쌍하다 2. 일을 어떻게 하기 어렵다

가엾다 : 딱하고 불쌍하다

안쓰럽다 : 어렵고 힘든 처지에 있는 사람이 가엾고 딱하다

아깝다 : 1. 소중한 것을 놓치거나 잃어서 섭섭하고 아쉽다 2. 어떤 것이 소중하고 귀해서 쓰거나 버리기 싫다 3. 사람이나 물건이 가치에 걸맞게 쓰이지 못해 안타깝다

안타깝다 : 마음대로 되지 않거나 보기에 딱하여 속이 타고 갑갑하다

휘다 : 곧은 것이 힘을 받아 구부러지다

구부러지다 : 한쪽으로 굽거나 휘어지다

굽다 : 1. 한쪽으로 휘거나 꺾이다 2. 한쪽으로 휘어 있거나 꺾여 있다


(숲노래/최종규)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오늘 읽기 2018.10.28.


《해피니스 1》

 오시미 슈조 글·그림/최윤정 옮김, 학산문화사, 2017.3.25.



나라면 그때에 어떻게 하겠다 하고 때때로 생각하기도 하지만, 이보다는 나로서는 오늘 이곳에서 어떻게 살아야 될까 하고 생각한다. 그런 일이 나한테도 찾아든다면 어떻게 하면 좋으려나 하고 생각할 수 있을 테지만, 이보다는 내가 걸어가는 길에서 오늘 마주하는 삶을 제대로 들여다보면서 움직일 노릇이라고 느낀다. 누가 나더러 “즐거우세요?”나 “기쁘세요?” 하고 물으면, 즐거운지 기쁜지 생각하기보다는 “가장 낫다고 느끼는 일을 생각해서 할 뿐입니다.” 하고 대꾸한다. 이렇게 해야 즐겁고 저렇게 해야 안 즐겁지는 않기 때문이다. 《해피니스》 첫걸음을 보면서 생각에 잠긴다. 어릴 적에 마을 깡패한테 두들겨맞을 때라든지, 나한테 힘이 없어 그저 얻어맞기만 해야 할 적에 ‘살고 싶다’처럼 생각하지 않았다. ‘나는 틀림없이 살아남는다’처럼 생각하지도 않았다. 아예 딴 나라에 있다고, 몸은 여기에 있으나 마음은 여기 있지 않다고 여겼다. 넋을 몸에서 빼내어 스스로 나무토막이 되었다고 여겼다. 어쩌면 그때에 ‘아프다’고도 ‘앙갚음을 하겠다’고도 ‘잊겠다’고도 ‘잊지 않겠다’고도 생각하지 않고, 생각을 그냥 지우려 했기에 살아남거나 오늘 이곳에서 살아갈 수 있는지 모른다. ㅅㄴㄹ


(숲노래/최종규)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이 세상의 한구석에 - 중
코노 후미요 지음 / 미우(대원씨아이) / 2017년 10월
평점 :
품절


만화책시렁 125


《이 세상의 한구석에 中》

 코노 후미요

 강동욱 옮김

 미우

 2017.10.31.



  우리는 서로 곁에 있습니다. 손을 뻗으면 닿을 만큼 가까운 곁에 있기도 하고, 마음으로 언제 어디에서라도 만날 만큼 곁에 있기도 합니다. 곁에 있는데 곁을 못 볼 수 있고, 몸이 곁에 없어도 마음이 곁에 있는 줄 느낄 수 있습니다. 어느 길이든 혼자 가지 않고, 어느 자리이든 외롭게 머물지 않아요. 우리가 혼자이거나 외롭다고 여긴다면 곁에 누가 어떻게 있는가를 알아채지 못하거나 느끼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이 세상의 한구석에》 두걸음을 읽으면 스즈라는 아가씨가 어떻게 동무를 사귀고 제 보금자리를 가꾸는가를 찬찬히 엿볼 수 있습니다. 솜씨가 있거나 뛰어난 스즈는 아니지만, 스스로 해야겠다고 마음을 먹은 일에는 제 나름대로 온힘을 기울여서 끝까지 붙잡습니다. 몸으로도 가까이 있기를 바라지만, 몸으로 가까이 있더라도 마음이 없다면 곁에 없는 줄 깨닫지요. 몸이 멀리 있더라도, 마음으로 함께 있을 적에 곁에서 즐거운 하루가 되는 줄 알아요. 그래서 이런 스즈는 여러 사람하고 상냥하게 동무가 되고, 외로운 아이를 달랠 줄 알며, 스스로 새롭게 기운을 낼 수 있습니다. 다만 아직 눈을 뜨지 못한 곳이 있어요. 맡은 일을 씩씩하게 해내려는 마음은 있되, 본 대로 그려내는 눈썰미는 있되, 이 너머까지는 멀었어요. ㅅㄴㄹ



“아이라도, 팔려가도 그 나름대로 살아갈 수 있어. 누구든지 뭔가 부족한 점이 있다는 이유 때문에 이 세상에서 살아갈 터전이 없어지는 건 아냐, 스즈.” (43쪽)


“친구도 걱정 마. 나도 여기 처음 왔을 때는 외톨이였지만 금방 모두와 친해졌잖아.” (127쪽)


(숲노래/최종규)




댓글(0) 먼댓글(0) 좋아요(6)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