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찍기
― 누구나 즐겁게 찍는 사진
즐겁게 찍기에 사진이 됩니다. 즐겁게 찍지 않으면 사진이 못 됩니다. 즐겁게 찍지 않는 사람은 작품이나 문화나 예술을 빚는다고 할는지 모르나, 작품이나 문화나 예술이 되도록 할 생각일 때에도 즐겁게 찍어야 비로소 작품이든 문화이든 예술이든 될 수 있다고 느낍니다.
어느 사진은 작품이고 어느 사진은 작품이 아닐 수 없습니다. 스스로 작품이라고 여기면 스스로 찍은 사진은 모두 작품입니다. 스스로 작품이라고 여기지 않으면 스스로 찍은 어떤 사진이든 작품이 되지 못합니다.
안 흔들리거나 황금분할을 이루거나 빛이 곱거나 틀이 반듯하대서 잘 찍은 사진이라 하지 않습니다. 기계 다루는 솜씨가 뛰어나기에 좋은 사진이라 하지 않습니다. 잘 찍은 사진이란, 잘 쓴 글처럼 ‘즐겁게 누리며 찍는 사진’을 가리킵니다. 좋은 사진이란, 좋은 글처럼 ‘즐겁게 누리며 살아가는 이야기가 깃든 사진’을 가리켜요.
누구나 즐겁게 찍는 사진입니다. 대학교 사진학과를 나와야 찍을 수 있는 사진이 아닙니다. 누구나 즐겁게 읽는 사진입니다. 비평가나 평론가쯤 되어야 읽을 수 있는 사진이 아닙니다. 누구나 즐겁게 나누는 사진입니다. 여럿이 나들이를 다녀온 다음 사진관에 필름을 맡겨서 찾든, 인터넷으로 파일을 보내 사진을 받든, 누구나 즐겁게 나눌 만한 사진입니다. 이야기를 즐기는 사진이기에, 흔들리건 안 흔들리건 대수롭지 않습니다. 어둡건 밝건 그리 대단하지 않습니다. 까르르 웃음을 짓고, 서글피 눈물을 흘릴 만한 이야기가 감돌 때에 비로소 사진이라는 이름이 어울립니다. 어떤 공모전에서 상을 탄다거나, 어떤 이름난 이한테서 이래저래 이론을 배워야 사진을 찍지 않아요. 스스로 마음이 가는 대로 찍을 때에 사진이에요. 스스로 삶이 즐겁다고 느끼면서 사진기 단추를 누를 때에 사진입니다.
사진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내가 살아가는 여기에 사진이 있어요. 내가 숨을 쉬고 사랑을 나누며 꿈을 꾸는 바로 여기에 사진이 싱그럽게 있어요. 누군가는 먼먼 나라까지 나들이를 다니며 사진을 찍겠지요. 누군가는 작은 보금자리에서 작은 아이들 돌보면서 사진을 찍겠지요. 한국에서 아주 먼 어느 두멧자락이나 시골마을을 찾아가서 찍어야 놀라운 사진이 되지 않아요. 스스로 가슴속에서 ‘놀랍게 여기는 눈길’이 있어야 놀랍게 여기는 사진을 찍어요. 느끼는 가슴이 있어야 하고, 바라보는 눈썰미가 있어야 하며, 사랑하는 넋이 있어야 해요.
연필이 글을 쓰지 않듯, 사진기가 사진을 찍지 않아요. 붓이 그림을 그리지 않듯 메모리카드나 필름이 사진을 찍지 않아요. 내 손길이 타면서 사진이 태어나요. 내 마음에 따라 움직이는 손길로 사진을 빚어요. 새해(2013년)에 여섯 살이 될 우리 집 큰아이는 돌이 되기 앞서부터 아버지 사진기를 만져 버릇했고, 아버지한테 수없이 사진을 찍혔으며, 아버지가 일 때문에 사진을 흔히 찍다 보니, 곁에서 이래저래 보고 배운 나머지, 아이 인형을 책에 앉혀서 사진 한 장 찍으며 놉니다. 처음에는 아버지 사진기로 찍더니, 아버지가 동생을 가만히 재우고 옆방으로 건너오니, 아버지한테 아버지 사진기를 건네주고, 아이는 아이 사진기로 다시 사진을 찍습니다. (4345.11.16.쇠.ㅎㄲㅅㄱ)
(최종규 . 2012 - 사진책 읽는 즐거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