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미터 산업도로와 재개발을 반대하며
 - 인천 배다리와 금곡동과 송림동을 지키고자


 새벽 다섯 시 반에 일어나 주섬주섬 옷을 챙겨 입고, 가방을 꾸린 뒤 자전거를 탑니다. 때때로 자전거를 놓고 전철을 탑니다. 자전거를 탈 때면 홀가분하게 차가운 새벽 바람을 느끼며 등판을 흥건히 적시는 땀을 느낍니다. 자전거를 놓고 걸어서 전철역까지 갈 때에는 제가 디디는 땅을 한 발자국 두 발자국 느끼며 좀더 더디게 제 둘레 삶터와 사람들을 살피게 됩니다. 전철을 타고 움직이는 동안 책 한 권 펼칩니다. 아직 제가 모르거나 미처 헤아리지 못한 이웃들 이야기와 생각을 책을 읽으며 느낍니다.

 일곱 시에서 일곱 시 반 사이에 인천 동구 금곡동에 자리한 배다리 헌책방거리에 닿습니다. 지난주에 이어 이번주까지 이곳 헌책방거리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앞으로 이곳에 조그마한 자리를 하나 얻어 ‘개인 도서관(중심 주제는 사진책)’을 열 생각이라서, 헌책방거리 일꾼과 함께 책꽂이를 짜고 있습니다. 인천이라는 곳에도 도서관이 제법 여러 곳 있기는 하나, 이곳들은 중고등학교 아이들 입시공부를 하는 틀을 벗어나지 못합니다. 또한 인천에서 살아가는 적잖은 젊은 넋들은 교과서와 참고서와 문제집과 수험서에 매여, 정작 자기를 돌아보고 자신이 걸을 길을 찬찬히 생각하거나 찾아볼 ‘책’ 하나 만나는 즐거움하고 너무 멀리 떨어져 있습니다. 제가 지난 열 몇 해에 걸쳐서 모아 놓은 갖가지 책들이 얼마나 도움이 될는지 모르나, ‘교과서나 참고서가 아닌’ 책 하나를 느긋한 마음으로 살피면서, ‘세상에는 이렇게 많은 책이 있구나’, ‘이렇게 온갖 책들이 많이 있는데 나는 여태껏 무엇을 보아 왔나’ 하고 찬찬히 곱씹을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이곳 헌책방거리에 문을 열 도서관이 얼마나 오래 살림을 이을 수 있을는지는 알 길이 없습니다. 앞으로 세 해쯤은 버티겠지만, 그 뒤는 모르는 일이거든요. 배다리 헌책방거리와 이웃한, 또는 배다리 헌책방거리로 찾아가는 길 가운데 하나인 ‘쇠뿔거리(우각로)’라는 길을 가로지르는 50미터짜리 산업도로가 놓일 판이기 때문입니다.

 인천시와 개발업자는 50미터짜리 산업도로를 놓으려고 1998년부터 차근차근 준비를 했습니다. 길 닦을 자리는 길그림을 보며 ‘곧은 금’을 그었고, 그 곧은 금에 놓인 사람들 집터와 가게터는 ‘한 평에 얼마씩 보상해 주겠다’고 말에 한 집 두 집 쫓겨났습니다. 새길이 닦인다는 말에 마을사람들은 ‘나라에서 하는 일이니 어찌하겠느냐’며 돈 몇 푼 받고 살림을 옮겼습니다. 자기들 삶터에 왜 길이 놓여야 하나 묻지도 못한 채, 아니 처음부터 물어 볼 엄두도 내지 못한 채.

 참말로 왜 새길이 놓여야 하고, 새길은 왜 가난한 사람들 집터나 가게터를 싸그리 밀어내며 뚫려야 할까요. 인천은 서울보다 자동차가 적고 대구나 부산보다도 적지만, 길은 제법 많이 뚫려 있습니다. 지난날 일제강점기에 앞서부터 ‘항구를 억지로 열’면서, 인천을 거쳐서 조선땅 수많은 자원이 배에 실려 일본으로 빼앗겨야 했으며, 일본 문물이 인천을 거쳐서 서울로 들어갔습니다. 그러다 보니 저절로 온갖 길을 놓아야 했고, 이때에도 지붕 낮은 집에 살아가는 가난한 사람들 살림터는 남김없이 밀려나고 무너졌습니다. 이 역사가 2007년이 된 지금까지도 이어지는 셈이랄까요.

 돌이켜보면, 쇠뿔거리(우각로)는 이 나라 얼과 넋이 짓밟히고 무너지면서 이 나라가 일본한테 식민지로 살며 괴롭힘에다가 시달림으로 골머리를 앓게 한 ‘첫 번째 길’입니다. 나라님께서는 이런 슬픈 역사를 간직한 쇠뿔거리는 ‘싹뚝 잘라내어’ 산업도로를 뚫고 나라살림을 북돋워야 인천 살림이 살고 나라한테도 좋다고 생각할는지 모르겠어요. 더욱이, 산업도로를 다 뚫은 뒤에는 길 둘레에 자리잡고 있는 송림동과 금곡동을 세 해 안에 모두 철거하고 ‘문화와 쇼핑과 패션이 넘치는 복합상가와 산업단지’를 유치해서 사람들한테 돈벌이를 시켜 주겠다고 내세웁니다. 그런 뒤, 헌책방거리와 공예거리를 쫓아내어 아파트를 올리고, ‘지붕 낮은 집’들이 너무 초라해 보여서 외국사람들한테 볼꼴사나우니까(인천시는 2014년 아시안게임을 유치하려고 애쓰고 있습니다) ‘보기 좋은 새 시멘트 집’들을 높이높이 올리겠다고 합니다. 이렇게 되면, 송림동과 금곡동에서 살아가며 조용히 살림을 꾸리던 분들이 모인 오래된 저잣거리까지 한꺼번에 자취를 감추겠지요.

 한 평에 사백만 원이라던가, 집있는 사람들한테 내어준다는 보상금이. 이 마을 분들 집은 열 평이 채 못 되곤 하니까, 열 평이라 치면 사천만 원. 서른 해, 쉰 해, 일흔 해 동안 허리가 구부정하도록 살아온 이들이 어렵사리 장만하고 알콩달콩 가꾸어 온 살가운 마을살림과 집터 보상금이 사천만 원. 웬만한 대졸 취업자 연봉만큼도 안 되는 돈. 이 돈을 받는 사람들은 어디에서 자기들 살림을 다시 마련할 수 있을까요. 전세집이나마 얻을 수 있을까요. 집을 옮겨야 한다면, 그동안 해 온 일은 어떻게 다시 이을 수 있을까요. 생판 낯선 곳에서 무슨 즐거움을 찾을 수 있을까요.

 손바닥 만한 집에 살며 손바닥 만한 텃밭을 돌보는 재미를 누렸고, 얼마 안 되는 적은 돈이라지만, 그 적은 돈으로도 한삶을 조촐하게 꾸리며 모자랄 것도 넘칠 것도 없는 알맞춤한 삶을 꾸렸습니다. 남한테 해코지할 일도 없으나, 해코지할 까닭 또한 없이 오순도순 낮은 지붕이 다닥다닥 달라붙고 이어붙으며 언제나 웃음꽃과 눈물바람을 함께 나누며 살았습니다. 위에서 내려다보는 분한테는 우리들 삶과 삶터는 ‘문화가 아니’며 ‘한낱 가난뱅이 구질구질’일 뿐이라고 느낄지 모르겠습니다. 돈과 이름과 힘이 있는 분들은 ‘자가용 하나도 몰지 못하는 주제에 얼른 집과 가게 빼고 떠나 주길’ 바라겠지요. 하지만 우리들 집터와 가게터는 ‘인천 개항 역사와 발맞추어 함께 해 온 문화’요, ‘인천 개항 앞서부터 조용하면서 살뜰하게 이어오던 삶’입니다. 우리들 지역문화와 어깨동무 삶은 돈 몇 푼으로 보상받을 수 없지만, 이런 보상을 바라지도 않습니다. 그동안 닦은 반듯하고 널찍한 수많은 길로도 넉넉한 인천이며, 자동차 세상보다는 사람들이 아늑하고 포근하게 살아갈 삶터가 인천이라는 곳을 한결 아름다이 보듬을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돈으로 빚는 문화나 삶터가 아니라, 사람들 따순 마음으로 가꾸는 문화나 삶터를 고이 지키고 즐기며, 앞으로도 웃고 울며 다 함께 살고 싶습니다. (4340.3.22.쇠.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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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람을 바보로 만드는 일이란 자유


 〈파이미디어〉 편집장을 맡고 있는 분한테 편지를 받았습니다. ‘소폭 개편’이라고는 하지만, 쉽게 말하면 ‘미운 놈 잘라내기’일 테지요. 마음에 내키지 않는 사람이 쓰는 글이니, 이런 글을 받아서 〈북데일리〉 기사로 달기 퍽 껄끄러우셨으리라 생각합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저도 제가 쓴 글이 ‘엉뚱한 제목이 달려(우리 말 운동을 하는 사람이 쓴 글답지 않은 잘못되거나 얄궂은 말투가 쓰인 글이름 들)’ 기사가 되고, ‘보기에도 나쁜 편집상태로 실린’ 모습을 보며 마음이 씁쓸하고 답답했습니다. 지금 어느 인터넷매체를 보더라도, 또 어느 인터넷모임이나 블로그 들을 보더라도, 그렇게 고리타분하게 기사 편집을 하는 곳은 없으니까요. 그러나 저는 그동안 이런 문제를 거의 말하지 않고 한 주에 두어 차례씩 글을 보내 왔습니다. 제가 걷는 길, 또 제가 글로 이야기를 나누려고 하는 알맹이, 또 제가 쓴 글로 사람들이 무엇을 느끼며 함께하기를 바라는가 하는 마음은, 〈북데일리〉라는 매체에 실리는 글과 견주면 아주 다릅니다. 아마, 제가 늘 비판해 마지않는 대목을 거의 빠짐없이 〈북데일리〉가 갖추고 있다고 해도 틀리지 않습니다. 그렇지만 그동안 〈북데일리〉라는 매체가 있는 줄 몰랐고, 김민영 님이 저를 취재한 뒤로 이곳에 글을 쓰게 되었습니다. 나중에 책마을 사람들과 만난 자리에 ‘네가 왜 거기에 글을 쓰냐? 네 성격하고 안 맞을 텐데?’ 하고들 말하더군요. 그래서 저는 웃으며 대답했습니다. ‘그러게요. 제가 가는 길하고 아주 다른 곳인데, 왜 글을 쓸까요?’ 하고.

 사람마다 자기가 좋아하는 책이 있고, 좋아하는 길이 있으며, 좋아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목소리와 얼굴이 다르며, 즐기는 먹을거리와 옷이 다릅니다. 살고 싶은 집이나 나들이하고 싶은 여행지도 다르겠지요. 하지만 어느 한 사람이 다른 한 사람보다 더 낫거나 훌륭할 수 없습니다. 가는 길은 달라도, 저마다 소중한 자기 자신을 찾고 있다면, 또 저마다 자기 나름대로 온힘을 다하고 있다면 모두 아름다운 삶을 가꾸는 셈이라고 느낍니다. 다만, 자기 혼자만 잘났다고 생각하거나 믿으면, 이기주의나 개인주의로 빠집니다.

 우파라고 해서 나쁘고 좌파라고 해서 좋을 수 없습니다. 극좌와 극우가 나쁠 뿐이며, 자기 빛깔을 밝히지 않고 좌와 우 사이에 왔다갔다 눈치를 보는 사람들이 나쁩니다.

 김민영 님이 쓴 글을 보며, 이이는 어떤 책을 즐기나 가만히 살피노라면, 앞서 말씀드린 것처럼 ‘하나같이 최종규라는 사람이 〈함께살기〉 게시판이나 지난날 〈오마이뉴스〉나 요즈음 〈시민의신문〉 들에 쓰레기와 다를 바 없는 책’이라고 비판한 책입니다. 아니, 저는 처세나 경영이나 자기계발을 다룬 책은 ‘책이 아니다’고 생각합니다. 책일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건 장사지요. 처세와 경영을 빌미로 말장난을 하고 지식덩어리만 머리에 쑤셔넣는 일이지요. 우리가 참다이 처세를 하자면, 《논어》를 읽고 《목민심서》를 읽고 《어린이를 지키는 문학》이나 《시와 혁명》 같은 책을 읽어야지 싶습니다. 그렇지만 이것은 제 생각이고, 제가 가는 길입니다. 다른 사람들한테도 제가 걷는 이 길대로 가기를 바라지 않습니다. 그저 제가 가는 길도 있음을 보여줄 뿐입니다.

 어제 《왜 세계의 절반은 굶주리는가?》라는 책을 사서 읽고 있는데, 줄거리는 ‘나쁘지 않지만’, 정작 ‘세계 절반이 굶주리는 기막힌 까닭과 밑바탕’은 다루지 않더군요. 미국이 왜 소말리아에 군대를 보냈고 이라크에 군대를 보냈으며 아프가니스탄에 군대를 보냈을까요? 미국과 쿠바는 왜 이리 사이가 나쁠까요? 왜 이탈리아와 영국은 1960년대까지 소말리아를 식민지로 삼았으며, 유럽 거의 모든 나라들은 아프리카와 아시아와 남미에 그토록 많은 식민지를 꾸렸을까요. 이런 식민지는 왜 아직도 버젓이 남아 있을까요. 아프리카와 중남미 내전은 왜 일어날까요? 이런 속내를 밝히지 않는다면, 적어도 ‘카길’이란 미국계 다국적 재벌이 무슨 꿍꿍이로 무슨 짓을 하고 있는지 알려주지 못한다면, 세계 절반 넘게 굶주리는 까닭을 느낄 수 없습니다. 또한, 정작 본질을 못 느낀 채 이런 책만 읽는다면, 지식만으로 세상을 읽을 뿐, 자기 자신을 올바르거나 깨끗하거나 아름답게 가꿀 수 없다고 느낍니다. 자기 자신을 올바르거나 깨끗하거나 아름답게 가꿀 수 없는 사람이 자기 삶을 즐길 수 있을까요? 자기 삶에서 보람을 찾을 수 있을까요? 돈 많이 벌어서 이웃한테 몇 푼 나누어 주는 일이 봉사나 자선행위일는지요.

 《나무소녀》라는 책이 있습니다. 《빈자의 미학》이라는 책이 있습니다. 《사람이 뭔데》라는 책이 있습니다. 이 책들은 참으로 놀라운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아니, 그다지 놀라울 일이 없을지 모릅니다. ‘우리들이 다 알지만, 실천을 안 할 뿐인 이야기’, ‘우리들이 다 알 만하지만, 굳이 알려고 않는 이야기’, ‘우리들이 어렴풋이 듣기는 했지만, 중요하게 느끼지 않아 스치고 지나갔던 이야기’를 다룬다고 해야 옳습니다.

 그렇지만, 이런 책들만이 중요한 책이라고 느끼지 않으며, 모든 사람이 이런 책을 다 찾아서 읽어야 한다고도 느끼지 않습니다. 훌륭하다고 손꼽히는 책을 1000권 읽는다고 해서, 그 책을 다 읽은 사람이 훌륭하게 살까요? 한 달에 책 300권을 읽어서 독서왕이 된다 한들, 그 독서왕이 올바르게 세상을 꿰뚫어보는 만큼 실천을 하면서 살까요. 인도사람 아룬다티 로이는, ‘실천할 수 있는 이야기만 글로 쓴다. 그리고 글로 쓴 이야기를 실천한다’고 이야기합니다. 저 또한 제가 몸소 하는 일을 글로 쓰고, 제가 쓴 글을 어김없이 몸으로 옮깁니다. 나무젓가락을 씻어서 말린 뒤 다시 쓰고, 대중교통조차 안 타고 걷거나 자전거를 즐기며, 밥집이나 술집에서 먹고 남은 먹을거리는 어김없이 빈통에 담아서 집으로 가져가서 먹습니다. 옷을 사입는 일이란 없고, 헌옷을 얻어서 입거나, 예전부터 입던 옷을 10년이고 20년이고 손바느질로 깁고 손질해서 꾸준히 입습니다. 옷 한 벌을 10년이나 20년 입자면, 살이 찌면 안 되는데, 대중교통조차 쓰지 않으니 살이 붙을 일이, 비계가 붙을 일이 없겠지요. 그러면 옷 한 벌로 스무 해뿐 아니라 쉰 해도 입습니다. 돌아가신 이오덕 님, 살아 계신 권정생 님은 온삶을 이렇게 살아가셨고, 지금도 꿋꿋하게 사십니다. 당신들한테 옷 한 벌이면 넉넉하다고 말하며, 그 말 그대로 실천하며 살아갑니다. 이분들, 이오덕 님이나 권정생 님은 파벌로 나누자면 우파에 들어가리라 봅니다. 하지만 이분들 사상이나 파벌이 어떠하든 그런 것은 중요하지 않아요. 이분들은 자기 사상은 사상대로 가꾸되, 언제나 올바른 편에 서려고 했고, 한결같이 올바른 생각과 마음가짐으로 자기 삶을 추슬렀습니다. 남들 눈치를 안 보고 곧은소리를 했고, 때때로 타협(죄지은 이 허물도 감싸기)을 하며 살아가셔요. 그래서 이런 분들은 많은 분들이 섬기고 모십니다. 리영희 선생은 좌파 쪽 사람이라 하지만, 우파 사람들도 모시거나 우러릅니다. 리영희 님 당신이 살아가는 모습, 글쓰는 기자로서 보여주는 매무새는 누가 보더라도 훌륭하거든요. 글 한 줄 쓰고자 책 다섯 권만큼 살피고 자료를 찾고 발로 뛰는 이런 매무새는 리영희 당신이 훌륭하거나 뛰어나서가 아니라, ‘글쓰는 사람이라면 마땅히’, ‘기자라면 더더구나’ 지킬 기본이거든요. 적어도 한국기자가 아닌 나라밖 기자들은 이런 매무새가 기본입니다.

 저는 기독교를 끔찍하게 싫어합니다. 불교도 꽤나 싫어합니다. 천주교도 마찬가지입니다. 이슬람교는 본바탕이 비뚤어지게 퍼지기에 안타깝게 여깁니다. 부두교는 종교 바탕이 좋은 데에 자리하고 있기에 받아들일 만하다고 생각하지만, 이 또한 ‘종교’가 되며 비틀어지는 대목이 많습니다. 그 어떤 믿음이든 ‘종교’가 되면 돈벌이로 탈바꿈하더군요. 그러나 저는 종교를 간직하는 사람들을 싫어할 마음이 없고, 딱히 거스르지 않습니다. 다만 한 가지, 자기가 좋아하는 종교라면 자기 혼자 좋아하기를 바랄 뿐입니다. 종교를 빌미 삼아 세금 돌려먹으며 우람한 집짓기에만 골똘하지 않기를 바랄 뿐입니다. 종교 없이 착하게 살아가는 사람들한테 자꾸 종교를 억지로 간직하라고 붙잡지 않기를 바랄 뿐입니다(제 마지막 글로 등록이 되었을 텐데, 제가 소개한 《성모의 곡예사》라는 만화책에서는 ‘캉탈베르’란 이름은 하나도 안 중요합니다. 정작 중요한 것은 우리가 ‘하느님을 어떻게 생각하고, 하느님을 모시려고 하는 일이란 무엇인가?’를 돌아보는 대목입니다. 그런데 이 글에 붙인 이름을 엉뚱하게 바꾸는 바람에, 글 줄거리가 잘못 다가가게 되었습니다).

 저는 〈북데일리〉라는 인터넷매체가 ‘최초의 책 이야기 전문 신문’이라는 구호를 내걸지 않기를 바라며 글을 썼습니다. ‘맨 처음’ 했다는 게 뭐가 그리 중요한가요. 두 번째는 중요도가 떨어지나요? 세 번째면 어떻고 꼴찌면 어떨까요. ‘맨 처음’으로 치자면, 저는 대한민국에서 맨 처음으로 “헌책방 모임”을 만들었고 “헌책방 이야기책”을 펴냈으며 “헌책방 전문 사진”을 맨 처음으로 찍었습니다. “헌책방 사진 전시회”도 맨 처음으로 했고, “우리 말 운동가” 명함도 가장 어린 나이에 올리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이런 ‘맨 처음’이 뭐가 중요할까요. 일찍 했든 늦게 했든, 얼마나 올바르고 알뜰하고 재미나고 보람차고 신나고 조촐하게 자기 길을 걸어가느냐가 중요하지 않을는지요.

‘맨 처음’이 문제가 아니라 ‘어떤 책 이야기를 어떻게 누구와 함께 언제 어디에서’ 하는가가 중요하다고 느낍니다. 책이란 ‘다양성’입니다. 다 다른 사람들이 다 다른 곳에서 다 다른 눈길로 바라보며 생각한 이야기를 다 다르게 담아서 다 다른 자리에서 사고팔기에 다 다른 때에 다 다른 까닭으로 만나서 다 다르게 받아들이며 읽고 다 다른 자기 삶에 받아들이거나 곰삭이도록 이끌어 주는 매체라고 느낍니다. 그리하여, 저는 이 ‘다 다름’ 가운데 한 가지 목소리를 내고자 했습니다. 예전부터도 그랬고 지금도 그러하며 앞으로도 이렇게 제 목소리를 내며 살 생각입니다. 그러면 지금 〈북데일리〉가 보여주는 목소리는 어떠한가요. 얼마나 ‘다 다른 사람’ 이야기를 ‘다 다른 삶’을 ‘다 다른 책’을 보여주고 있는가요.

 책 한 권을 살 때 교보문고나 영풍문고에만 가야 할까요. 동네책방에 가면 안 될까요. 헌책방에 가면 안 될까요. 또한, 우리 나라에서는 빛 한 번 못 보고 사라지는 책이 너무 많아서, 도서관에 없는 책이 숱합니다. 이런 책들은 마지막으로 헌책방에 남아서, ‘헌책방을 기꺼이 찾아오는 책 좋아하는 이들’을 기다립니다. 그래서, 참말로 책을 좋아하는 분이라면 헌책방을 가기 마련입니다. 대한민국 사회에서는 헌책방을 안 가면 ‘잊혀지거나 사라지는 책’이 있는지 없는지조차 모르기 일쑤니까요. 출판사마저 문닫고 사라지면, 이곳에서 펴낸 책을 어디서 찾을까요? 도서관에서? 도서관이 책을 제대로 사들여서 갖추던 곳이던가요, 이 나라 대한민국에서?

 틀림없이 〈북데일리〉는 이런 대목을 못 짚습니다. 어쩌면 안 짚는지 모릅니다. 독서광들 ‘장서 숫자’를 이야기하고, 한 달에 몇 권, 한 해에 몇 권 읽었다 하는 이야기, 무슨 책이 몇 만 권 팔렸다 하는 이야기는 쉽게 찾아볼 수 있지만, ‘이 책 하나가 내 삶을 어떻게 흔들었다’ 하는 이야기는 없습니다. 사랑을 이야기하는 책 이야기는 있지만, ‘사랑 이야기’라는 것도 너무 좁은 테두리에 갇혀 있을 뿐 아니라, 자연과 겨레와 나라와 인류와 숱한 목숨붙이와 문화 들을 사랑하는 이야기는 없습니다. 잘 팔릴 만한 대중 인문서 이야기는 있어도, 속깊고 알뜰하나 기자들하고 가깝지 않아서 언론소개 한 번 못 받고 사라지는 인문한 책들 이야기는 찾아볼 수 없습니다. 이런 책들은 ‘누가 찾아서 읽어’ 주고, ‘누가 이런 책 소개를 써’ 주며, ‘누가 이런 책들을 동네책방이나 헌책방에 마지막으로 꽂혀 있을’ 때 알아보도록 해 주면 좋을까요.

 사람은 사람입니다. 사람은 기계가 아닙니다. 그래서 누구나 글을 쓸 때 글자수를 똑같이 할 수 없습니다. 글자수 똑같이 해서 글을 쓰면 ‘글 뽑는 기계’이지 ‘글을 쓰는 사람’이 아닙니다. 인터넷은, 우리들이 기계가 아닌 사람으로, 자기 생각과 뜻을 홀가분하고 스스럼없이 펼칠 수 있도록 좋은 자리를 마련해 주었습니다. 그런데 이런 인터넷을 한낱 ‘길이만 놓고 따진다’면, 그 어찌 자유롭고 싱싱한 숨결이 살아숨쉬는 풋풋한 글이 샘솟을 수 있을까요.

 사람은 사람입니다. 사람이 만드는 책은 사람들 삶이 담깁니다. 그래서 모든 책은 쪽수가 다르고 두께가 다르고 짜임새가 다릅니다. 50쪽짜리 책이 있고 300쪽짜리 책이 있으며 1000쪽짜리 책이 있습니다. 300쪽짜리 낱권이 10권이 모이는 장편소설이 있고, 250쪽짜리 낱권 50권이 모이는 장편만화가 있습니다. 자, 50권짜리 장편만화를 소개하는 글을 쓸 때 어떻게 쓰면 좋을까요? 50권을 하나씩 따로따로 소개하는 글을 50차례에 걸쳐서 쓸 수 있지 않을까요? 장편만화 50권이라면 적어도 15∼20년이란 세월을 쏟아부어야 가까스로 이룹니다. 이런 큰 작품을 몇 줄로 간추릴 수도 있지만, 있는 그대로 감동을 쏟아내어 조금 길다고 느낄 만하게 쓸 수도 있겠지요. 왜 인터넷기사는 전문평론으로, 논문에 버금가는 글로 쓸 수 없을까요? 한편, 50쪽짜리 책을 읽고도 50쪽에 이르는 느낌글을 쓸 수 있습니다.

 책을 엮은 우리들 사람이며, 책을 읽는 우리들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다 다른 사람이기에 다 다르게 펴내고 다 다르게 읽어냅니다. 이 다 다름을 느끼지 못한다면, 우리 사는 세상은 얼마나 팍팍할까요.

 자전거를 탈 때, 모든 이가 평속 35km로 달려야 할까요. 어떤 이는 대단히 잘 달리지만 일부러 5km로 달릴 수 있어요. 어떤 이는 그럭저럭 15km를 지킬 수 있어요. 어떤 이는 달리는 틈틈이 쉴 수 있어요. 우리가 쓰는 글도 자전거 타기와 마찬가지가 아닐는지요. 우리 사는 세상도 자전거 타기와 마찬가지가 아닐는지요. 우리가 하는 일, 우리가 만나는 사람, 우리가 바라보는 세상, 우리가 부대끼는 모든 것은 자전거 타기와 마찬가지가 아닐까요.

 처음으로 돌아갑니다. 사람을 바보로 만드는 일은 자유입니다. 언제나 손쉽게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참 궁금합니다. 한 사람을 바보로 만들어서 어디에 쓰나요. 한 사람을 바보로 만드니 즐거우신지요. 한 사람을 바보로 만든 김민영 님께서는 자신이 바보 아닌 사람이라고 느끼시는지요.

 〈북데일리〉에 첫 글을 보내고 나서, 이곳에 실린 글을 죽 살피며 ‘아차, 내가 잘못했구나’ 하고 생각했지만, 저는 저와 다르게 살아가는 사람들 삶도 하늘처럼 섬겨야 하며, 내가 모르거나 못 느끼는 대목도 짚기 때문에, 고개숙여 배워야 한다고 느끼며, 그 뒤로도 꾸준하게 글을 보내기로 마음을 고쳐먹었습니다. 그렇게 고쳐먹은 마지막 보람이 이렇게 되는군요. 생각해 보면, 첫 글을 보내고 나서 ‘쓰지 말아야지’ 하고 생각했기 때문에, 이런 갑작스런 통보를 받으며 한편으로는 고마웠습니다. 하지만, 이런 갑작스런 통보는 사람한테 하는 예의가 아닙니다. 한 하늘 아래에서 살아가는 사람한테, 이런 짓을 하면 안 되지요. 벌을 받습니다. 그렇지만, 사람이면 누구나 잘못을 저지를 수 있는 법이니, 앞으로 다른 분들한테는 이런 잘못을 저지르지 말기 바랍니다.

 제가 몇 차례에 보낸 건의(또는 비판이든)에 아무런 대꾸가 없다고, 얼마 앞서 보낸 글은 아예 기사로 싣지도 않고, 이렇게 ‘강제추방’을 한 것은 뚜렷한 명예훼손이며 인격모독이고 계약위반입니다. 대한민국 책마을은 워낙 뒤떨어지고 형편없는 일이 자주 일어나니, 뭐 이런 일이 있더라도 ‘언론사 편집부 책상에서 힘을 쥔 이’ 앞에서 ‘글 쓰는 사람’은 깨갱일 수밖에 없습니다. 칼을 쥔 분이 칼을 휘둘렀으니, 칼자루조차 없는 사람은 그 칼에 맞아야지 어쩌겠습니까. 김민영 님도 글을 쓰는 사람인데, ‘글 쓰는 사람’ 처지를 거의 헤아리지 않는 이런 모습은, 저으기 안타깝고 슬프기까지 합니다. 하지만 현실이니까요. 이 현실을 거스를 생각은 없습니다. 그저, ‘제가 아무리 힘없는 사람이라고 해도, 할 말은 해야 하’며, 이런 말할 권리조차 없거나 가로막힌다면, 도무지 한국땅에서 글쟁이들은 어떻게 제 목소리를 다 다른 느낌과 마음과 뜻으로 펼치면서 다 다른 삶을 글이나 책으로 펼쳐낼 수 있을까요.

 저는 제 글이 〈북데일리〉에 갑작스레 못 실리는 일이 안타깝지 않습니다. ‘최종규이든 다른 사람’이든, ‘다 다른 생각과 목소리로 살아가는 사람’ 이야기가, 칼을 쥔 사람 힘 앞에 난데없이 목아지가 달아날 수 있다는 이런 어마어마한 폭력이 눈 하나 깜짝 하지 않는 가운데 일어나는 일이 놀라울 뿐입니다. 총자루나 칼자루보다 붓자루가 무섭습니다. 붓자루가 사람 마음을 더 난도질합니다. 붓자루가 사람을 더 크게 아프게 하며 더 괴롭게 죽입니다.

 마지막으로 부탁드리겠습니다. 앞으로는 붓자루로 한 사람을 바보로 만들거나 죽이는 일을 저지르지 않으시길 바랍니다. 어쩌다가 잘못해서 또다시 한 사람을 바보로 만들거나 죽이더라도 부디 그 다음에는 잘못이 없어지기를 바랍니다.

 세상사람이 60억이면, 60억 가지 책이 있고 60억 가지 이야기가 있으며 60억 가지 느낌글이 있습니다. 김민영 님이나 최종규란 사람이나 그 60억 가지 가운데 하나일 뿐입니다. 꿋꿋하게 자기 글을 쓰려고 애쓰는 김민영 님임을 느꼈기 때문에, ‘제 기나긴 시간’을 일부러 들여서 ‘이처럼 긴 글’을 써서 보냅니다. 부디, 복 많이 받으소서. (4340.3.20.불.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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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ope@hani.co.kr 한겨레 박주희 기자 앞으로


 폭력을 아무렇지도 않게 저지른 당신한테


 ㄱ: 헌책방이 얼마나 만만하면 막말을 할까
 ㄴ: 〈한겨레〉 박주희 기자가 쓴 헌책방 기사를 읽고
 ㄷ: 다시는 이런 폭력이 일어나지 않기를 애타게 빌며
 


 - 0 -

 헌책방이란 참 만만한 곳입니다. 만만하기 때문에 헌책 값을 터무니없이 에누리하려는 사람이 많습니다. 헌책 값어치는 하찮은 고물 따위로 여기곤 합니다. 더구나 헌책방에서 일하는 일꾼을 ‘사람’으로 여기지도 않아요. “세상사람은 누구나 평등하다”는 말은 그저 성경이나 불경에 나오는 말일 뿐, 헌책방 임자를 보면서 이런 글귀를 가슴에 새기며 고개숙여 헌책방 일꾼 앞에 서려는 분들을 만나보기 어렵습니다.

 아마, 전여옥이나 이명박 이야기를 기사로 쓴다고 할 때, 제대로 조사도 해 보지 않고 글을 쓰는 기자는 없을 거예요. 제대로 조사를 안 하고 쓴다면, 곧바로 명예훼손이나 유언비어다 허위날조 기사다 하는 쓴소리가 줄줄이 들어오거나 법정 소송까지 이루어질 테니까요. 하지만 헌책방을 말하는 기사들은 하나같이 ‘참이 아닌 거짓을, 그것도 나쁜뜻 가득한 편견과 선입관과 고정관념으로 비틀고 있’는데, 이런 막말이 끊이지 않습니다. 헌책방 임자들이 이런 엉터리 기사를 보고도 ‘이건 명예훼손이다!’ 하면서 시비를 걸거나 법정소송을 하지 않기 때문일까요? 명예훼손 소송을 거는 사람 앞에서는 그지없이 움츠러들고, 명예훼손이니 뭐니 하는 말이 없이 조용히 있는 헌책방 일꾼 앞에서는 더없이 날고 기며 막나가도 되는지 궁금할 따름입니다.


 - 1 -

 기자윤리나 기자의식 이야기는 하고 싶지 않습니다. 이런 윤리나 의식이 있었다면, 당신이 쓴 기사를 읽으며 즐거움과 기쁨을 듬뿍 느꼈을 테니까요. 당신이 쓴 글 하나로 헌책방이 얼마나 비틀려 보이게 되었는지, 또 헌책방 일꾼이 얼마나 바보처럼 여기지게 되었는지, 또 헌책방을 즐기는 사람들을 멍청한 사람이 되도록 했는지 모릅니다. 그러나, 당신 같은 사람이 쓰는 글 때문에 허물어질 헌책방 문화가 아니며, 당신 같은 사람이 쏟아내는 글로 더럽혀질 헌책방 일꾼이 아니며, 당신 같은 사람이 찾아가지 않아도 헌책방 즐김이는 언제나 자기 마음을 살찌우는 좋은 책을 만나고 있습니다.

 어설픈 눈길이나 겉핥기 생각보다는, 차라리 아무런 눈길이나 생각을 안 건네는 편이 낫다고 느낍니다. 세상 어느 공부가 하루아침에 이루어질 수 있으며, 세상 어느 글이 하루아침에 나올 수 있을까요. 한 사람을 안다는 일이, 한 문화를 안다는 일이, 한 역사를 안다는 일이 얼핏 한 번 스쳐 지나가는 눈길로 얼마나 마음 깊이 다가설 수 있을까요.

 당신께서는 취재거리로 헌책방을 슬쩍 한 번 다녀간 뒤, 이런 느낌으로 기사를 쓰겠지요. 그래서 어느 헌책방 한 곳이 마흔 해 동안 살림을 꾸려 왔다면, 그동안 이곳 일꾼이 만진 책이 몇 권이며, 이이가 만져서 빛을 본 책이 몇 권이며, 이이 손을 거쳐 책즐김이 마음을 살찌운 크기가 얼마나 되며, 이이 손길 하나로 우리네 삶이 얼마나 한쪽 구석에서 빛이 나고 있었는지에는 처음부터 눈길을 안 두었겠지요. 당신한테는 취재거리 하나이지만, 마흔 해 동안, 또는 스무 해 동안, 또는 서너 해 동안 헌책방 살림을 꾸려 온 이한테는 ‘모든 것을 바친 삶’입니다. 다른 사람이 모든 것을 바쳐 꾸려 온 삶을 한낱 ‘고정관념-편견-선입관’으로 물들여도 좋을까요. 그렇다면, 저도 이렇게 하겠습니다. “기자라면 으레 이렇다. 취재를 나가지 않고 책상 앞에서 인터넷 살피고 전화 몇 통 건 뒤 스윽 글을 뽑아내는 기계다. 이런 이들한테 마음을 울리는 이야기가 샘솟아 나리라 믿으면 바보다.” 하고 생각하며 기자 한 사람을 만나겠습니다.

 정치꾼을 만나더라도 고정관념-선입관-편견을 걷어내야 합니다. 한나라당 정치꾼이든 민주노동당 정치꾼이든 열린우리당 정치꾼이든, 우리는 ‘한 사람’을 만나려고 할 뿐입니다. 그이가 어느 곳에 몸을 담았다고 해도 그이는 ‘고유한 사람 하나’입니다. 〈한겨레〉에서 일하는 기자가 모두 똑같은 기자입니까. 모두 똑같은 생각으로 똑같이 움직이는 기자입니까. 한나라당 정치꾼이라고 해서 모두 똑같은 생각으로 똑같은 말을 쏟아내는 정치꾼입니까. 군인이라고 해서 모두 똑같은 군인입니까. 피우진 대령을 강제전역시킨 사람과, 피우진 대령이 똑같은 군인입니까.

 당신은 기사이름부터 헌책방을 깎아내립니다. 


― 연봉 1억 잘나가는 직장 때려치고 헌책방 차린 김종건씨


 그렇군요. “헌책방은 잘나가는 직장이 아니”군요. 헌책방을 하는 사람은 이 사회에서 쓰레기겠네요. 요새 유행하는 코메디언 최국 씨 말마따나 “헌책방은 모두 쓰레기”겠네요. 아무 재주 없고 배운 것도 없고 꾀죄죄한 사람들이나 하는 일이 헌책방 꾸리기겠네요.

 이 말에 이어 ‘기자’인 당신은 남김없는 편견으로 우리 마음을 송곳으로 부지런히 들쑤십니다. 당신은 이렇게 말하더군요. “서너평 남짓한 가게 입구에는 과월호 잡지들이 쌓여 있다. 문 앞에서부터 빽빽히 들어찬 책들로 가게 안은 발 디딜 틈이 없다. 책꽂이에 꽂혀 있으면 그나마 다행이고, 사람 키높이 만큼 쌓아올린 책더미는 허리를 숙여서, 책을 한 권씩 살펴봐야 한다. 30분이고, 1시간이고 책방 안을 서성거려도 주인은 말 한마디 걸어오는 법이 없다. 머리가 히끗히끗한 주인은 물어보지 않아도 헌책방만 20년 혹은 30년을 해왔을 것으로 짐작된다. ‘헌책방’하면 떠오르는 풍경이다.” 하고요.

 묻고 싶습니다. 헌책방에 가 보셨습니까? 헌책방에 가서 책을 구경해 보셨습니까? 헌책방에 가서 책을 사거나 팔아 보셨습니까? 언제 가 보셨지요? 무슨 책을 구경하고 무슨 책을 사거나 파셨지요? 어느 곳에 있는 헌책방에 가 보셨지요? 지금 우리 나라에 헌책방이 몇 곳이 있는지 아시나요?

 이 다음에 당신은 참으로 놀라운 이야기를 적으셨습니다. “그나마 이런 헌책방들도 서울 청계천 주변에 몇 군데 명맥을 잇고 있을 뿐이다.” 하고 덧붙이더군요. 그래요. 청계천 둘레에 헌책방이 몇 군데 있던가요? 숫자를 헤아려 보셨나요. ‘몇 군데’라는 말은 숫자가 10이 안 될 때, 으레 4∼6이 될 때, 또는 2∼3일 때 쓰는 말입니다. 청계천에는 헌책방이 몇 가부터 몇 가까지 걸쳐서 있는 줄 아시는지요?

 리영희 선생 말을 빌고 싶지 않습니다만, 한 마디 적겠습니다. 리영희 선생은 글 한 줄을 쓸 때 책 다섯 권을 읽었다고 했습니다. 자기가 적는 글 한 줄이 얼마나 빈틈없이 제대로 되어 있는가를 살피려고 그만큼 발로 뛰었고, 그만큼 공부했고, 그만큼 사람들과 만나 알아보았다는 소리입니다. 당신께서는 ‘청계천 헌책방거리’를 말할 때에는 몸소 이곳에 찾아가서 몇 군데 헌책방이나 있는지 알아보아야 했습니다. 아니면 인터넷 찾아보기라도 해서 숫자를 세어야 했습니다. 아니면 통계청에라도 전화해 봐야지요(하지만 통계청에는 헌책방 통계가 없습니다).

 부산에는 가 보셨는지요? 인천이나 대구는, 대전이나 청주는 가 보셨는지요? 진주나 광주는, 수원이나 마산은 가 보셨습니까? 이런 곳에 헌책방이 몇 군데 있는지 아시는지요? 지난해까지 부산 보수동 헌책방거리에는 모두 51군데 헌책방이 있었으나 한 분이 돌아가시고 한 곳이 문을 닫아 49군데가 되었습니다. 올해 두어 곳쯤 더 문을 닫을지 모릅니다. 한 분은 나이가 너무 많이 들어서, 두 곳쯤은 장사가 어려워 문을 닫겠구나 싶습니다. 부산에 출장이나 취재 갈 일이 있다면, 부디 자갈치시장 옆, 국제시장 옆에 있는 보수동 헌책방거리에도 가 보시기 바랍니다. 이곳 부산 보수동사람들이 나라나 정부 힘을 빌지 않고 오로지 자기들 힘으로만 여기 이 골목에 ‘헌책방 박물관’을 열려고 여기저기 뛰어다니고 돈을 모으고 힘을 모으고 있는 움직임을 터럭만큼이나마 알아보시기 바랍니다.

 자, 이제 당신이 쓴 다음 글을 읽어 보겠습니다. “새 학기가 되면 중고생들로 북적이고, 인문학 책을 사려고 대학생들의 발길이 이어지던 풍경은 ‘추억’이 된 지 오래다.” 하고 말씀하시는군요. 헌책방은 참고서나 사는 곳이로군요. 그리고 대학생들 발길이 뜸해진 풍경은 그저 추억이라 하시는데, 대학생들이 헌책방을 안 찾아간다면 왜 안 찾아갈까요. 이런 흐름이 헌책방 탓일까요. 헌책방에 볼 만한 책이 없어서 대학생들이 안 찾아가나요? 지난날과 오늘날 헌책방이 갖춘 책이 어떠했기에 대학생들이 안 찾는지요? 학생들은 왜 헌책방에서 참고서붙이를 찾을까요. 그리고 왜 참고서붙이를 이토록 사게 만드는가요? 참고서붙이는 값이 어떻게 매겨지고, 이런 참고서붙이를 사는 학생들은 ‘어느 출판사 어느 참고서’를 사서 쓰게 되어 있을까요.

 이런저런 물음에 제가 손수 대답을 달고 싶지 않습니다. 달 힘도 없고, 달 마음도 없습니다. 그저 궁금할 뿐입니다. 당신이 쓴 다음 대목을 읽지요. “우선 ‘헌책방’과는 어울리지 않게 자동문이 스르르 열린다. 60평 규모의 매장은 꽤 규모가 있는 서점처럼 분야별로 책을 갖추고 있다. 손때 묻은 책들이지만 보기 좋게 분류가 돼 있고, 군데군데 편히 앉아서 책을 읽을 수 있는 책상도 마련돼 있다.” 하고 말씀하네요. 글쎄, ‘헌책방다운’ 것이란 무엇인가요. 헌책방에는 자동문이 있으면 안 되나요? 헌책방에는 정수기가 있으면 안 될까요? 헌책방 일꾼은 컴퓨터를 쓰거나 인터넷을 하면 안 될까요?

 문득, 헌책방은 “분야별 책을 갖추고 있지 않거나 보기 좋게 분류가 안 되어 있거나, 편히 앉아서 책을 읽을 수 있는 자리도 없”는 곳이 아니냐 싶은 생각이 듭니다. 당신이 쓴 글을 보니 그래요. 참말 그렇습니까?

 그리고 “은은하게 흐르는 클래식 음악소리를 따라가보면 한 쪽 벽면을 채우고 있는 빛바랜 엘피 음반들이 눈에 들어온다. 수만권 되는 책에다, 엘피판도 줄잡아 2천장은 된다고 한다.” 하는 말을 붙이셨군요. 헌책방마다 책을 몇 권쯤 갖추고 있는지 아시는가요? 조그마한 헌책방 한 곳에 책이 몇 권쯤 꽂혀 있을 듯합니까? 책 1000권이면 책꽂이 몇 곳에 꽂히는지 아시는지요? 헌책방 한 곳에 책꽂이가 몇 개쯤 있을 것 같습니까? 레코드판 2천 장은 얼마만한 부피가 되는지 아시는지요?

 이런 말 뒤에 당신이 붙인 말씀, “김씨는 이 헌책방을 차리느라 억대의 넘는 돈을 들였다. 누가 봐도 큰 돈벌이가 될 것 같지 않은 헌책방에 그가 목돈을 투자한 이유는 뚜렷하다. 김씨는 “헌책 사업이 돈이 된다”고 믿는다.”를 보니, 헌책방 일꾼은 돈을 벌 수 없구나 싶은 생각이 가슴속 깊은 곳까지 스며듭니다. 글쎄, 그렇다면 ‘큰 돈벌이’란 무엇일까요? ‘큰 돈벌이’가 중요한가요? ‘큰 돈벌이’를 하지 못할 듯해 보이는 헌책방은 우리들이 할 만한 일이 아닌가요?

 이즈음 해서 여쭙고 싶네요. 〈한겨레〉 기자로 몸담는 일은 ‘큰 돈벌이’가 됩니까? ‘큰 돈벌이’를 하고 싶어 〈한겨레〉 기자로 몸담으셨는지요?


 - 2 -

 뒤에 이어지는 당신 글에는 더 토를 달고 싶지 않습니다. 아니, 궁금한 여러 가지를 더 묻고 싶지는 않습니다. 그렇다고 한숨을 쉴 생각은 없고, 욕을 내뱉고 싶지 않습니다. 당신이라는 기자는 참 안타깝고 불쌍하다는 생각이 자꾸자꾸 들지만, 안타깝거나 불쌍히 여기지 않으렵니다. 당신은 당신대로 자기 삶을 알뜰히 꾸려 왔을 테며, 당신이라는 기자 나름대로 세상을 보며 글을 쓰셨을 테니까요.

 그러나 한 가지는 꼭 말씀드려야겠습니다. 당신이 저지른 폭력을, 당신이 저지른 글 폭력을, 당신이 저지른 글 난도질을.

 당신은 헌책방을 굳이 사랑해야 할 까닭이 없습니다. 당신은 헌책방을 굳이 찾아다니며 책을 구경해야 하지 않습니다. 당신은 헌책방 장사를 굳이 할 의무 또한 없습니다. 헌책방에서 알바생으로 일해 보아야 하지도 않아요. 하지만, 당신이 사랑하지 않거나, 당신이 찾아가지 않거나, 당신이 헌책방 장사가 되는 현장인이 되지 않더라도, ‘당신이 태어나기 앞서부터 있어 온 헌책방’이며, ‘당신이 몰랐어도 언제나 꾸준하게 흘러흘러 움직이고 돌아가던 헌책방’이며, ‘당신이 알아주지 않아도 꿋꿋하게 제 길을 걸어가는 헌책방’입니다. 당신이 농사꾼들 땀방울을 몰라도 밥 한 그릇 맛있게 먹을 수 있습니다. 농사꾼들이 풀베느라 손이 베고 몸이 다치는 줄 몰라도, 푸성귀 한 접시 맛나게 먹을 수 있습니다. 밥 한 그릇과 푸성귀 한 접시를 먹으면서 반드시 농사꾼을 걱정하고 사랑하고 아껴야 하지 않아요. 당신이 버스공장 노동자를 모르더라도, 버스회사 정비사를 모르더라도 시내버스를 못 탈 까닭이 없습니다. 차바퀴 만드는 공장 노동자를 몰라도, 차유리 만드는 공장 노동자를 몰라도, 버스 타고 볼일 보는 데에 아무런 말썽이 없습니다. 당신이 교통표지판 만드는 공장 사람을 몰라도, 신호등을 만들던 노동자 손길을 몰라도, 당신이 쓰는 컴퓨터 부품 하나를 만든 노동자가 하루에 몇 시간을 일하는지 몰라도, 당신이 입고 있는 옷을 재봉틀로 만든 청계천 피복노동자 이름이 무엇인지 몰라도, 당신 가방을 채운 온갖 물건이 어느 나라 산과 들과 강과 바다를 깎고 파헤치고 더럽히며 캐낸 지하자원을 바탕으로 어느 제3세계 나라 노동자가 낮은품삯으로 죽을 동 살 동 일해서 만들어서 그 가방까지 들어오게 되었는지 몰라도, 이 나라에서 진보를 걱정하고 사회를 생각하고 평화를 아끼며 이웃과 사랑을 나누는 한편 좋은 님 하나 만나 알콩달콩 살림을 꾸릴 수 있습니다.

 헌책방 문화 하나를 모른다고 해도 환경운동을 할 수 있습니다. 헌책방 노동자를 모른다고 해도 노동운동을 할 수 있습니다. 헌책방 헌책 한 권을 모르더라도 책 유통구조 이야기를 할 수 있습니다. 헌책방 즐김이를 모르더라도 사람들 살림살이와 사람들 생각을 철학과 사상으로 풀어낼 수 있습니다. 헌책방 현실을 모르더라도 우리 세상 현실을 알 수 있어요. 그뿐입니다. 이제, 이런 글은 맺겠습니다. 저도 힘들어 죽겠습니다. 다만 한 가지, 애써 헌책방 이야기를 기사로 써 주셨는데 선물 하나 드려야겠네요. 저를 비롯해 ‘세상에 이름이 알려지지 않은 수많은 사람들’ 땀방울과 다리품과 손품을 들여서 만들어 낸 ‘전국 헌책방 목록’을 선물로 드리겠습니다. 이 ‘전국 헌책방 목록’은 제가 펴낸 《헌책방에서 보낸 1년》이라고 하는 891쪽짜리 책에 권말부록으로 붙였습니다. 891쪽짜리 책은 값이 29000원인데, 헌책방 이야기를 펼치는 이 책을 사는 데에 29000원은 너무 비싸다고 생각한다면, 인터넷에서 ‘전국 헌책방 목록’을 받아 볼 수 있습니다. http://club.cyworld.nate.com/50154471111/68509456 이 주소로 들어가면 아래한글97 파일로 만든 목록을 내려받기 할 수 있습니다. 덤으로 ‘서울 헌책방 전화번호부’를 드립지요. http://club.cyworld.nate.com/50154471166/51292666 이 주소로 들어가셔요. 다만, ‘서울 헌책방 전화번호부’에는 청계천 헌책방은 따로 넣지 않았습니다. 청계천은 거리를 이루어 죽 모여 있으니, 굳이 전화번호가 없어도 찾아가는 데에 어려움이 없거든요. ‘헌책방 전화번호부’는, 찾아가는 길을 모르는 분들한테 도움이 되고자, 또 문을 여닫는 시간을 알아보려는 이들한테 보탬이 되고자 만들었습니다. ‘무슨무슨 책 있어요?’ 하는 이야기를 물어 보라고 만든 목록이 아닙니다. ‘무슨무슨 책 있어요?’ 하는 이야기로 헌책방에 전화를 걸면, 세 곳 가운데 두 곳은 귀찮아 하거나 퉁명스레 받을 겁니다. 그렇게 전화로 묻는 사람치고 자기가 묻는 책을 사러 오는 사람 없고, 헌책방에 가득가득 쌓여 있는 ‘자기가 찾는 책 말고 다른 수많은 책’을 구경할 줄 모르는 사람이거든요. (4340.3.17.흙.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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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3-17 13:47   URL
비밀 댓글입니다.

숲노래 2007-03-18 01:33   좋아요 0 | URL
저는 제가 쓴 글만 올립니다 ^^;;;;;;;;
제가 쓴 글은 싸이월드 <함께살기 http://hbooks.cyworld.com>에 올리는데, 이 가운데 몇 가지만 추려서 이곳에 걸쳐 두고 있습니다 ^^;;; 에구구구../..

2007-03-18 18:28   URL
비밀 댓글입니다.

숲노래 2007-03-19 12:34   좋아요 0 | URL
좋은 헌책방은, 굳이 신문에서 소개해 주지 않아도, 입소문으로 다 알려지고 알게 되곤 합니다. 아무개가 소개했다고 해서 널리 알려지지는 않아요. 그리고 신문 보고 오는 사람이 처음에는 있지만, 그 사람들이 그 뒤로 그곳 단골이 되지는 않고요. 스스로 찾아가는 분들이야말로 오랜 단골이 되지요. 잠깐 반짝 하듯 도움이 되는 듯 생각할 수 있어도, 실질로는 `헌책방 참모습'이 엉뚱하게 뿌리내리는 큰 단점이 되고 맙니다. 흠....... 무엇보다도, 기자들이 기자윤리를 지켜 주면 좋겠어요. 말씀 고맙습니다~

2007-03-19 15:58   URL
비밀 댓글입니다.

숲노래 2007-03-19 23:29   좋아요 0 | URL
글이 괜찮다 싶으시면 옮겨 가셔도 돼요.
음, 제가 헌책방 기사가 제대로 안 되어 있으면, 차라리 없는 게 낫다고 이야기를 했는데, 왜냐하면, 잘못 적은 헌책방 기사는 `역사처럼 자료로 남아', 실제로 그 헌책방이 그 모습이 아닌데, 몇 해 지난 뒤에는 그 헌책방을 그 신문기사로 잘못 생각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저는, 잘못된 기사들 쓰는 신문들을 무척 달갑지 않게 생각합니다. 적어도 사실과 다른 이야기가 퍼지지 않도록 마음을 쓰고 있으며, 헌책방 주인들이 들려주는 이야기를 꼬박꼬박 적어 놓고, 다른 책손과 다른 헌책방 주인과 샛장수 이야기를 고루 들어서, 되도록 정확성 있는 자료를 적어 놓으려고 합니다... 흐흠...

2007-03-20 10:20   URL
비밀 댓글입니다.
 

 

인천시와 개발업자는 `보통 길을 놓는다'는 말로 주민들을 속인 채 `50미터 산업도로' 계획을 밀어붙여 왔습니다. 이 산업도로로 동네가 두 동강이 날 뿐 아니라, 엄청난 재개발이 잇따르며 그동안 고유하게 지켜 온 삶터가 무너질 수 있음을 깨닫고, 퍽 늦기는 했지만 주민들이 힘을 뭉쳐서 막개발에 반대하고 나섰습니다.
 
인천시와 개발업자는 `보통 길을 놓는다'는 말로 주민들을 속인 채 `50미터 산업도로' 계획을 밀어붙여 왔습니다. 이 산업도로로 동네가 두 동강이 날 뿐 아니라, 엄청난 재개발이 잇따르며 그동안 고유하게 지켜 온 삶터가 무너질 수 있음을 깨닫고, 퍽 늦기는 했지만 주민들이 힘을 뭉쳐서 막개발에 반대하고 나섰습니다.

 

 돈과 힘과 이름 없는 사람들 삶터를 지키고자
 - 인천 금곡동과 송림동을 가로지를 산업도로를 반대하며

 


 그제와 글피, 비 그친 뒤 바람이 거세게 불었습니다. 매섭지 않은 겨울을 아쉬워하는 추위였는지 모릅니다. 퍽 센 바람이 조금 잦아드니, 뿌옇던 하늘이 대단히 파란 하늘로 바뀌었습니다. 아침햇살이 눈부셨습니다. 자전거를 타고 달리는데, 눈물 날 만큼 싱그러운 빛살이었습니다. 이 빛살은 서울에도 충주에도 광주에도 원주에도 인천에도 내리쬐었겠지요. 누구한테나 고른 빛살이며 따뜻한 햇살입니다. 하지만 어제 만난 사람 가운데 어느 누구도 햇볕과 하늘 이야기를 꺼내지 않았어요. 참 고운 햇볕인 줄 몰라서일까요. 하늘 올려다볼 틈이 없어서일까요. 그깟 햇볕이야 돈이 안 되어서일까요. 하늘 올려다볼 열린 마당이 없어서일까요.

 인천 금곡동에 자리한 ‘배다리 헌책방거리’에는 아침부터 곱고 부드러운 햇볕이 내려앉았습니다. 참고서를 찾는 부모와 학교옷 입은 아이들부터, 마음을 살찌울 만한 낱권책 하나 찾는 책나그네까지, 이곳을 찾는 누구나 좋은 햇볕과 싱그러운 바람과 살뜰한 책 하나 즐겼습니다. 가까운 동네에서 이곳을 찾은 이들이 있고, 저으기 먼 곳에서 다리품 판 이들이 있습니다. 이 모든 사람들은 차소리 적어 조용하고, 수런수런 사람들 목소리가 들려오는 골목길을 거쳐서 옵니다. 동인천역에서 오는 길에는 한복ㆍ누비집 골목을 지나고 전통문화거리로 탈바꿈한 지하상가를 지나게 되며, 구석구석까지 깃든 옛 저잣거리를 만나게 됩니다. 가게 간판을 보면 좀 낡아 보이는 것이 많은데, 이 간판은 가게 빛깔을 알려주는 데에 아무 걱정이 없고, 한편으로는 가게 역사를 헤아리게 합니다. 돈 몇 푼 들이면 번들번들 큼직한 간판으로 고쳐올릴 수 있으나, 지금 이대로도 좋습니다. 아니, 지금 이 모습이 한결 좋습니다. 수십 해를 묵은 빛바랜 간판은 이 한 자리를 오래오래 지키며 고이 살림을 꾸린 분들 숨결을 느끼게 하며, 우리가 하루하루 잊고 있는 푸근함을 돌아보게 하거든요. 빛바랜 간판은 이 골목과 저잣거리에 뿌리내려 동네사람이 오순도순 지내 온 발자취를 가만히 보여주는 나이테구나 싶어요.


 

손수 텃밭을 일구며 살아온 이곳 송림동, 금곡동 사람들은, 요즈음 우리들이 `쿠바 아바나 생태도시'를 배우려고 법석을 떠는 바로 그 `생태 지킴이' 삶을 진작부터 수수하게 꾸려오지 않았을까요.
손수 텃밭을 일구며 살아온 이곳 송림동, 금곡동 사람들은, 요즈음 우리들이 `쿠바 아바나 생태도시'를 배우려고 법석을 떠는 바로 그 `생태 지킴이' 삶을 진작부터 수수하게 꾸려오지 않았을까요. 다만, 이분들은 책을 읽은 적이 없고 쿠바사람들 이야기는 까맣게 모르지만, 그저 당신들이 살던 그대로 살 뿐입니다.

 


 도원역쯤에서 쇠뿔거리(우각로) 옛길을 걸어 헌책방으로 오는 동안에는, 손바닥 만한 텃밭에 파며 양파며 콩이며 고추며 배추며 상추며 알뜰히 심어 가꾸는, 집크기도 손바닥 만하고 지붕 낮은 작은 살림집, 곧 골목집을 스쳐 지나갑니다. 일제강점기 때 억지로 항구 문을 연 세 곳 가운데 하나인 인천입니다. 이곳 쇠뿔거리는 옛 조선이 처음 개화라는 물결을 타야 할 때 서울로 온갖 문물이 들어가던 첫 길이었습니다. 서울로 가는 큰길 둘레 좋은 목에는 선교사며 장사꾼이며 권력자며 일본사람이며 집을 우뚝우뚝 세웠고(지금도 이런 건물이 꽤 많이 남아 있습니다), 큰길 건너편 산비탈에는 뱃사람으로 일하고 짐꾼으로 일하던 가난한 보통사람들 지붕 낮은 집이 다닥다닥 붙었습니다. 이제는 아파트에 밀려 거의 모두 사라진 지붕 낮은 집이지만, 이곳 쇠뿔거리와 함께 여태껏 잘 살아남은 골목집이 적잖이 있습니다. 이 쇠뿔거리를 걷다가 눈길을 잠깐 안쪽으로 돌리면, 근대 교육 첫 터전이 된 학교인 영화학교, 창영학교 오래된 건물이 눈에 들어옵니다. 한편, 세무서 붉은벽돌 담벽에는 “자수간첩 도와주자”라는 페인트 글씨가 그대로 남아 있어, 지난날 ‘반공’을 앞세워 독재정권을 휘두르던 가슴아픈 역사를 고이 보여줍니다. 서울에는 현저동에 서대문형무소가 그 무시무시한 뼈대를 고스란히 남긴 채 일제강점기 아픔을 온몸으로 드러내 보입니다. 인천 금곡동에는 나라밖 제국주의 물결에 휩쓸려 눈물로 항구를 열어야 하면서 세운 학교, 관공서, 철길, 적산가옥 들이 곳곳에 조용히 남아서 우리들 보통사람이 어떤 슬픔과 눈물을 부대껴야 했는지 넌지시 말을 건넵니다.

"자수간첩 도와주자"는 글귀. 이 글씨를 안 지운 까닭이 궁금하지만, 이렇게 안 지우고 두었기 때문에, 외려 지난날 반공독재 문화 발자취가 고스란히 남았습니다.
"자수간첩 도와주자"는 글귀. 이 글씨를 안 지운 까닭이 궁금하지만, 이렇게 안 지우고 두었기 때문에, 외려 지난날 반공독재 문화 발자취가 고스란히 남았습니다. 이 벽돌담과 글씨는, 앞으로도 고이 간직해 `지난날 우리 삶이 어떠했는가를 돌아보도록 하는 문화재'로 삼으면 더 좋으리라 믿습니다.

 


 1961년에 신호등이 처음 들어온 인천입니다. 도시화나 지역개발이 더뎠다고 하겠지만, 신호등 없이도 사고나 큰탈이 없어서 사람과 차가 평화롭게 오가던 고즈넉한 곳이었습니다. 하지만 요즘 인천은, 동인천과 용산을 오가는 직통열차가 뚫리고, 제2경인고속도로며, 연수동 새도시며, 영종도 국제공항이며, 송도 새도시며, 청도 재개발구역이며, …… 무언가 포크레인 삽날로 파헤쳐 새 콘크리트 집을 짓거나 확 뜯어고치거나 갈아엎으며 모든 것을 다 바꿔야 할 곳처럼 되고 있습니다. 몇 조 또는 수십 조에 이르는 돈을 들여 철거를 하고, 재개발을 하고, 수십 층 아파트와 쇼핑몰을 들이고(또는 들이려 하고), 길을 널찍하게 새로 또 냅니다. 더 많은 돈을 벌 수 있다는 논리에 보통사람들 삶터는 밀려나고, 돈으로만 굴러가는 시멘트 소굴이 들어섭니다.

 문득 궁금해집니다. 우리는 얼마만한 돈이 있어야 할까요. 돈을 얼마나 벌어서 어디에 쓰려 하나요. 우리가 발딛고 사는 이곳 대한민국, 그리고 조용하고 평화로운 동네 한켠에는 얼마나 많은 돈이 들어와야 즐겁거나 재미난 삶이 될까요. 흐르는 냇물이나 땅속 우물을 길어 먹는 일보다 정수기 물을 마셔야 즐거움일까요. 유기농 곡식을 많은 돈 들여서 사서 먹는 편이, 집앞 텃밭이나 스티로폼 농사보다 몸에 더 좋을까요. 돈버는 일을 하느라 운동할 틈이 없어 뱃살 늘고 비계가 느니, 헬스클럽에 자가용 타고 찾아가 런닝머신을 타야 할까요. 이런 운동이 두 다리로 걸어서 저잣거리에서 물건을 사거나, 자전거를 타고 일터를 오가는 일보다 몸을 더 튼튼히 하거나 앞선나라 일등시민으로 사는 길인가요. 인터넷으로 채팅하는 일이, 담 없는 이웃사람과 수다를 떨 때보다 웃음이 묻어나는가요. 인터넷으로 주문해서 택배로 받아 보는 물건이, 버스를 타거나 걸어서 장보고 에누리하며 사서 쓰는 물건보다 쓸모 많거나 더 좋은가요.

50미터짜리 산업도로는 송림동 언덕길을 싹 밀어붙이고 뚫은 이 굴과 이어집니다.
 
50미터짜리 산업도로는 송림동 언덕길을 싹 밀어붙이고 뚫은 이 굴과 이어지게 됩니다. 이 굴로 들어서자면, 또 이 굴을 지나 새로운 길을 놓자면, 어쩔 수 없이 `고가도로'를 놓아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어마어마한 새 길이 들어설 자리가 없습니다.

 


 송림동 야산에 ‘달동네 박물관’이 들어섰습니다. 그곳 ‘달동네’ 집을 싸그리 밀어붙여 없앤 뒤 수십 층 아파트를 무더기로 세웠고, ‘덤’으로 근린공원 하나 지어 주면서 퍽 많은 돈으로 지은 박물관입니다. ‘가난한 시절 이야기’를 잊지 않도록 마음을 썼는지 모릅니다만, 왜 “달동네 집 = 가난+슬픔+지저분함 = 나쁜 것 = 없어져야 하는 것”으로 여길까요. 가난하게 사는 일은 불쌍하거나 슬프기만 할까요. 한 달 30만 원으로도 알콩달콩 지내는 삶은 ‘가난하기 때문에 행복과는 동떨어진’ 삶인가요. 달동네 박물관 둘레를 보면, 송림동 ‘달동네 집’은 아직도 여러 열 채 남아 있습니다. 가까운 금곡동이나 화수동이나 만석동, 또 서울 중림동이나 평동이나 누하동이나 사직동이나 숭인동 들에도 ‘달동네 집’, 그러니까 ‘지붕 낮은 집’은 참 많이 있습니다. 이곳 사람들은 가난하게 사니까, ‘가난을 없애 주고’자 재개발을 해서 높직높직한 아파트를 스무 해마다 새로 올려서 돈을 벌어 주어야 하는가요. 아니면 이곳 사람들은 사람들 눈에 안 뜨이는 곳으로 몰아내어 ‘도시 미관 정화’를 해야 하나요.

 관공서나 정부 공무원이 보기에는 구질구질한 가난인지 모르겠습니다. 이곳 사람들로서는 여태껏 즐겁고 조촐하게 꾸려 온 삶입니다. ‘즐거운 우리 집’입니다. 다 함께 모여서 어울려 살아가는 기쁨을 맛본 터전입니다. 굴이나 조개를 까고 마늘을 벗기거나 감자를 깎으며 살아도, 버는 만큼 쓰고 버리는 물건 없습니다. 차곡차곡 모으는 재미에 들뜨고, 손으로 북북 비벼 빤 빨래를 탁탁 털어 싱그럽고 따순 햇볕에 말리는 시원함을 맛보며 지냅니다. 배다리 헌책방거리에서는 값싼 책 하나 구경하는 재미, 교과서와 참고서를 찾는 수험생들, 인문사회과학 책과 교양책 들을 만나려는 책나그네까지, 누구나 껍데기 아닌 조촐한 알맹이를 부대끼며 지냈습니다.

가난하지만, 돈이 적다뿐, 돈 빼고 다른 나머지는 모두 넉넉한 골목집, 산비탈집이었다고 생각합니다.
 
가난하지만, 돈이 적다뿐, 돈 빼고 다른 나머지는 모두 넉넉한 골목집, 산비탈집이었다고 생각합니다. 더구나 이 골목집은 30년, 40년, 50년, 앞으로도 언제까지나 고이 이어갈 수 있지만, 뒤쪽에 새로 들어선 아파트는 20년도 채 못 되어 허물고 재개발을 한다고 법석을 떨겠지요.

 


 그러나 이와 같이 조용하고 조촐하던 보통사람 삶터가, 50미터에 이르는 산업도로를 동네 한복판을 가로질러 뚫으려는 시와 개발업자 손길에 깡그리 무너지려 합니다. 사람 사는 이곳에서 사람이 아닌 돈만 보고 있기에, 나무와 꽃을 돈으로 사서 심는 돈길이 아니라 씨앗이 땅에 떨어져 뿌리내리고 자라가는 살림길을 생각하지 않는 돈바라기 마음만이 떠돌기에.

 묻고 싶습니다. 지금 있는 길로도 공단으로 물류를 실어나르는 데에 걱정이 없고, 집과 일터를 오가는 데에 막힘이 많지 않습니다. 길을 새로 뚫는다면 누구한테 얼마나 도움이 될 수 있는지요. 사람이 다니는 데에 좋자고 뚫는 길이 ‘사람 삶터를 죄 밀어내고 지을 만큼 중요’한지 알고 싶습니다. 또한, 새로 내는 길은 왜 ‘즐거운 우리 집을 이루며 살아온 가난한 사람들 삶터’만을 가로질러야 하는지요. 돈 많은 사람들 동네는 보상금이 많이 드니까, 그런 데에는 높으신 분들이 사니까 에돌아가야 하는지요. 가난한 사람들 집터는 ‘돈 많고 이름 있고 힘 있는 사람들이 차막힘 덜하게 다닐 수 있는 길’을 닦도록 무너뜨리고 몰아내야 하는지요.

조그마한 빈터에도 씨앗을 심는 이곳 골목집 사람들 마음이 사랑스럽고 좋습니다.
 
조그마한 빈터에도 씨앗을 심는 이곳 골목집 사람들 마음이 사랑스럽고 좋습니다.

 


 태어나서 여태껏 이웃사람을 해꼬지한 적 없고, 남을 등처먹은 일 없고, 늘 조용하게 제 몫을 다하면서 낮은 자리에서 허리 숙여 일해 온 이곳, 인천 금곡동과 송림동 사람들은 앞으로도 자기 보금자리를, 고향을, 조그마한 텃밭을, 골목집을 살가이 간직하면서 햇볕과 바람과 물과 사람을 부대끼고 싶습니다. 이웃과 어깨동무하며 지내 온 지금 같은 이음고리가 끊어지지 않기를 바랍니다. 초중고등학교 아이들이 시끄러운 차소리나 무시무시하게 골목을 내달리는 자동차에 벌벌 떨지 않으며 안전하게 다닐 수 있기를 바랍니다. 수십 수백 억을 들여서 짓는 박물관이나 문화시설보다는, 수십 수백 해를 고이 간직하며 살아온 보통사람 보금자리야말로 참다운 문화요 생활사라고 느낍니다. 청계천에는 고가도로를 뜯어내어 자동차 흐름을 줄이고 맑은 물과 바람이 소중함을 일깨우고 있는데, 인천 금곡동과 송림동에는 마을을 두 동강 내고 맑은 물과 바람마저 싸그리 밀어 버리는 산업도로를 놓아야 하는지요. 돈과 이름과 힘이 없어도 사랑과 믿음과 나눔으로 살아온 골목집 사람들 삶터를 앞으로도 꿋꿋하고 즐겁게 가꾸며 살고 싶습니다.

아이들이 조용한 헌책방 한켠에서 마음을 살찌울 수 있다면, 이것 하나만으로도, 헌책방거리가 깃든 이곳 금곡동과 송림동을 고이 간직할 만한 값어치가 있지 않을까요.
 
아이들이 조용한 헌책방 한켠에서 마음을 살찌울 수 있다면, 이것 하나만으로도, 헌책방거리가 깃든 이곳 금곡동과 송림동을 고이 간직할 만한 값어치가 있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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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란여우 2007-03-16 09:56   좋아요 0 | URL
안녕하세요. 된장님. 글을 읽으면서 퍼가고 싶은 욕심이 생겨 이리 말씀드립니다.
제 고향, 인천이야기와 헌책방의 추억을 간직하고 있는지라 제 서재에 모셔놓고
천천히 읽고 싶습니다. 글도 자료도 진솔함에 짠합니다. 좋은 글 고맙습니다.

2007-03-16 11:21   URL
비밀 댓글입니다.

숲노래 2007-03-17 12:26   좋아요 0 | URL
얼마든지 옮겨 가셔도 됩니다. 다만, 한 가지 조건이 있습니다. 제가 쓴 글이 파란여우 님한테 즐겁게 읽을 만한 글이라면 옮겨 가셔요. ^^;;;;

개발업자들이 현장에서 물러날 나이가 되지 않고서야 깨닫지 못하리라 생각합니다. 그들은 죽음 앞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자기가 누울 땅조차 없음을 느끼고, 그동안 한 짓을 조금이나마 생각할 수 있을는지도...
 



 

.. 세상이 어찌나 야박하게 되었는지, 요즈음은 거리의 책가게에 들어가서 책을 좀 서서 읽을 수도 없읍니다. 좌판 위에 놓인 새로 나온 월간잡지를 이것저것 뒤적거려 보는 것이 조그마한 생활의 낙이라면 낙이라고 할 수 있겠는데, 요만한 자유마저 용납되지 않습니다. 광화문이나 종로거리의 책가게에 들어가서 5분 동안만 책을 들고 서 있어 보십시오. 점원 아이들이 얼굴 표정이 달라지지 않는 책가게가 없을 것입니다. 책을 펴 보기가 무섭게 벌써 점원 아이가 득돌같이 팔뒤꿈치 옆에 바싹 다가와서 위압을 주는 것쯤은 예사입니다. 노골적으로 책을 빼앗고 나가라고 호령을 치는 책가게도 있읍니다. 얼마 전엔가 동대문 쪽 길가에 있는 고본옥에를 들른 일이 있읍니다. 릴케의 시집이 있길래 그 안의 시를 몇 편 뒤적거리면서 읽기 시작했읍니다. 때마침 빗방울이 부슬부슬 떨어지기 시작하여서 나는 그 책사가 인심이 너그럽지 못한 책사인 줄 알면서도 미적미적 서 있었읍니다. 그랬더니 아니나 다를까, 함경도 사투리를 쓰는 임꺽정이같이 생긴 주인이 달려와서 왈칵 책을 빼앗고는 “아니, 고만 읽고 나가시오, 가게를 닫아야겠소!” 하고 모욕적인 어조로 소리를 질렀읍니다. 나는 졸지에 가게를 닫아야겠다는 말이 납득이 안 가서, “아니, 대낮에 가게를 닫아야겠다니 무슨 말이요?” 하고 반문했읍니다. 그랬더니 주인은 “오늘은 날씨도 비가 오고 해서 가게를 닫고 낮잠이나 자야겠으니 어서 나가 달란 말요.” 하면서 바로 나를 점포 밖으로 팽개치기라도 할 것 같은 험한 기세를 보였읍니다. 나하고 얼마 동안 옥신각신을 하는 중에 여학생들이 우르르 몰려들어와서, 금방 가게를 닫겠다던 주인은 그쪽으로 가 버리고, 나는 그래도 울화가 가라앉지 않아 얼마 동안 미적미적거리다가 밖으로 나와 버렸지만, 나는 가게를 닫아야겠다는 주인의 핑계가 화가 나면서도 한쪽으로는 우스운 생각이 들었던 것입니다 .. (1963.2.) / 《김수영-퓨리턴의 초상》(민음사,1978) 214쪽


 ‘고본옥(古本屋)’은 ‘헌책방’ 또는 ‘옛책방’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동대문에 있는 곳이고, 여학생들이 우르르 몰려왔다는 소리로 헤아려 볼 때, 이곳은 지금 ‘청계천 헌책방거리’를 가리키는구나 하고 헤아려 볼 수 있습니다. 시를 쓰는 김수영 님은 광화문과 종로에 있는 책방에 들른 뒤, 그길에 청계천 헌책방거리, 또는 청계천 둘레 동대문 골목골목에 있던 헌책방에 들러 책을 뒤적여 보다가 입술이 파르르 떨릴 만한 일을 겪고 글을 하나 남겼네요. 조금이나마 마음이 따순 헌책방 임자를 만났다면, 한결 살갑고 따순 마음이 묻어나는 글을 남겼지 싶습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동대문에서 김수영 님을 차갑게 내쫓은 분은 ‘헌책방에서 느낄 수 있는 아쉬운 대목’을 적바림하게 만들고야 맙니다. 하긴, 이때는 헌책방뿐 아니라 새책방에서도 ‘서서 읽는 사람 내쫓기’를 똑같이 했다니, 말 다했지요.

 그러고 보면, 서울 광화문에 있는 큰 새책방이든 나라에서든 학교에서든 ‘책을 읽자!’고 소리높여 외칩니다만, ‘서서 읽기’ 하는 사람은 ‘책읽는 사람’으로 안 치지 싶습니다. 책을 사서 읽을 수 있으면 더없이 좋겠지요. 하지만 형편이 안 되는 사람도 많잖아요. 이런 사람들은 도서관에서 빌릴 수 있고, 책방에서 서서 읽을 수 있어요. 그래, 광화문 교보문고나 영풍문고에서는 푯말을 달리 붙여야지 싶습니다. “책을 읽자!”가 아니라 “책을 사서 읽으쇼!”로. (4340.3.9.쇠.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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