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집배움자리 8. 물 한 모금



  물병이 하나만 있으면 목이 마른 두 사람 가운데 하나는 기다려야 한다. 서로 먼저 마시겠다고 다툴 만하다. 이때에 나는 두 아이한테 말한다. 먼저 큰아이한테는 “자, 누나는 늘 동생한테 먼저 마시라고 하렴.” 하고 말한 뒤, 작은아이한테는 “자, 동생은 늘 누나더러 먼저 마시라고 하렴.” 하고 말한다. 이 말을 들은 두 아이는 물을 마시거나 주전부리를 먹을 적에 으레 서로서로 내민다. “자, 네가 먼저 마셔.” “자, 네가 먼저 먹어.” 이렇게 여러 날이 흐르고 여러 달이 흐른다. 어느덧 이런 삶이 여러 해째 된다. 마실을 하다가 큰아이가 아주 목이 말라서 “물 주셔요.” 하고 말한다. 가방에서 물병을 꺼내어 큰아이한테 건넨다. 큰아이는 발갛게 달아오른 볼로 물병을 열고는 동생한테 내민다. “자, 보라야 너 먼저 마셔.” 동생도 몹시 목이 말랐기에 누나가 건네는 물병을 받아 벌컥벌컥 마신다. 이러고서 누나한테 돌려준다. 누나는 동생이 다 마시기를 기다렸다가 마신다. 이런 뒤 동생은 다시 물병을 받아 한 모금 더 마신다. 두 아이를 가만히 지켜보다가 머리를 쓰다듬는다. ㅎㄲㅅㄱ


(최종규/함께살기 .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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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집배움자리 7. 우리 모두 인사해



  시골에서 읍이나 면에 볼일을 보러 가다가 ‘인사하는 아이’를 곧잘 만난다. 도시에서는 이런 인사를 거의 받은 적이 없는데, 시골에서는 아이들이 곧잘 인사를 한다. 그러면 나도 고개를 숙이거나 허리를 숙여서 인사를 받는다. 곰곰이 생각하니, 우리 집 아이들도 누구를 만나건 길에서 흔히 인사를 한다. 우리 옆을 지나가던 할머니나 할아버지나 아줌마나 아저씨는 아이들 인사를 받고는 깜짝 놀라며 웃음을 환하게 지으며 고마워 하기도 하고, 못 들은 척하거나 못 듣는 어른도 있다. 그런데, 아이들 인사를 받는 어른을 보면, 하나같이 ‘밝은 낯’이 된다. 처음 보는 뉘 집 아이가 인사를 하는지 모를 노릇이지만, 인사말 한 마디가 서로 마음을 여는 따사로운 숨결이 된다. 말 한 마디로 사랑이 흐르는 셈이고, 말 두 마디로 무지개가 놓인 셈이다. 겉모습이 아닌 마음을 읽으면서 기쁘게 인사를 한다. ㅎㄲㅅㄱ


(최종규/함께살기 .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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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집배움자리 6. 함께 배우고 가르치기



  아이를 학교에 넣는 일이 ‘잘못’이라고 생각한 적이 없다. 그러고 싶으면 그럴 뿐이다. 그런데, 지구별 어느 곳에서도 아이를 어버이가 맡아서 가르치지 않고 학교라는 데에 따로 보낸 일이 없다. 아이를 따로 학교라는 데에 넣을 무렵부터 지구별에 문화나 문명이 생겼을는지 모르나, 바로 이때부터 전쟁과 신분과 계급이 함께 생겼다. 아이와 함께 삶을 짓는 사람은 언제나 사랑과 평화였고, 아이를 어버이가 손수 가르칠 적에는 어버이도 아이한테서 삶과 사랑을 배웠다. 이러한 얼거리를 느낄 수 있다면, 아이를 낳으려는 어버이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 깨달을 만하다. 아이를 낳기 앞서 어버이는 ‘보금자리’부터 마련해야 한다. 부동산이 아닌 ‘보금자리’이다. 아이와 함께 삶을 누릴 터를 마련해야 한다. 아이가 태어나면, 이 삶터에서 생각을 지어야 한다. 아이가 물려받기 바라는 사랑을 생각해야 하고, 이 생각을 밭에 씨앗을 심듯이 어버이와 아이 마음에 ‘생각씨앗’으로 심어야 한다. 우리는 늘 서로 가르치고 배우는 따사롭고 넉넉한 숨결이다. ㅎㄲㅅㄱ


(최종규/함께살기 .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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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집배움자리 5. 버스표를 처음으로 끊다



  읍내마실을 가는 길에 군내버스 일꾼한테 ‘어린이 버스표’는 얼마인지 여쭌다. 여덟 살이라고 하니 그냥 타라고 한다. 버스 일꾼은 우리 아이가 ‘삼월 입학식 마친 뒤’부터 버스삯을 내면 된다고 말씀한다. 그러라고 하니 그러려니 하고 지나간다. 읍내에서는 큰아이를 불러서 손수 버스표를 끊도록 시킨다. 왜냐하면, 우리 집 아이들은 학교에 안 다닐 테니, 입학식 날짜는 대수롭지 않다. 오늘부터 큰아이가 스스로 버스표를 끊으면 된다. “벼리야, 저쪽 아주머니를 바라보고 큰소리로 ‘도화 신호 어린이 하나요!’ 하고 말해.” 처음으로 하는 일이라 우물쭈물 모깃소리처럼 작다. “벼리야, 그렇게 말하면 못 알아듣지. 똑똑하고 크게 말해야지.” 읍내 버스터 아주머니는 빙그레 웃으면서 기다리다가 ‘도화 신호 어린이 하나!’를 크게 외쳐 주면서 거스름돈과 표를 큰아이한테 내민다. 낯설면서 새롭지? 큰아이가 손수 버스표를 끊으니 작은아이도 저한테 표를 달라고 한다. 그래, 너는 아버지 표를 받으렴. ㅎㄲㅅㄱ


(최종규/함께살기 .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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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집배움자리 4. 아침을 여는 노래



  아침을 여는 노래를 부르기로 한다. 어떤 노래로 아침을 열까? 신중현 님이 쓰고 이선희 님이 부른 〈아름다운 강산〉을 〈아름다운 숲〉으로 고친 노래를 부르기로 한다. 왜 ‘강산’을 ‘숲’으로 고쳤는가 하면, ‘강산’은 한국사람이 한국이라는 땅에서 살면서 쓰던 말이 아니기 때문이다. 내(강)와 메(산)가 있어서 ‘강산’이라는 한자말을 썼다지만, 이는 한자로 권력을 이루던 몇몇 사람만 쓰던 낱말일 뿐, 시골지기한테는 이런 말이 쓸모가 없다. 먼 옛날부터 그저 ‘숲’이라 했으니까. 숲에는 이 모두가 다 있다. 숲에는 마을도 있다. 숲이 끝나면 뭍이 끝나서 바다로 이어지는데, 바다도 숲 가운데 하나이다. 바닷속도 숲이다. 그래서, 지구별은 모두 숲이다. 이러한 얼거리와 이야기를 아이들과 나눌 뿐 아니라, 나 스스로도 늘 되새기고자 아침이 밝으면 마당으로 나와서 이 노래를 함께 부르기로 한다. 노랫말을 종이에 옮겨적고, 가락을 가만히 되새긴다. ㅎㄲㅅㄱ


(최종규 .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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