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책빛

책하루, 책과 사귀다 14 두 50원



  새뜸나름이(신문배달부)로 일할 적에 32만 원을 벌었어요. 한 달에 220자락을 돌려서 이만큼 받는데, 더 돌리면 일삯이 늘 테지만, 굳이 더 안 돌렸어요. ㅈㅈㄷ 같은 새뜸이라면 보는이(구독자)가 많아서 더 많이 돌리고 더 많이 벌 수 있겠지만, 저는 ㅎ을 돌리느라 ‘이 집에서 저 집까지 가려면 참 멀’었지요. ㅈㅈㄷ 나름이하고 대면 너덧 곱을 더 달리고 섬돌을 오르내립니다. ㅎ을 보시는 분은 어쩐지 가난집이 많아 섬돌도 더 많이 오르내리는데, 새뜸값을 밀리거나 떼먹는 분이 많아 새뜸값을 걷으러 다니는 일조차 몇 곱으로 고단했습니다. 새벽에는 새뜸을 읽고 아침에는 글을 쓰고 낮에는 책숲(도서관)하고 책집을 다니며 혼자 책으로 배운 뒤 저녁에 글을 더 쓰느라 새뜸을 꼭 220자락만 돌렸어요. 모처럼 길에서 새뜸을 300원에 파는 날이면 마을가게에서 350원짜리 라면을 50원 외상을 걸고 사서 이틀에 나누어 끓여먹었어요. 살림돈은 다 책값으로 나가느라 사흘이나 이레쯤 아무렇지 않게 굶었어요. 출판사 일꾼으로 옮겨 일삯이 늘었어도 밥값 아닌 책값을 더 썼지요. 서울 창천동에 있던 〈원천서점〉에서 책을 장만하는데 할아버지가 끝자리를 50원으로 셈하셔요. 반가웠어요. 고맙고요. 50원은 큰돈이에요. 눈물값이에요. ㅅ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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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책빛

책하루, 책과 사귀다 13 푸른책



  열네 살로 접어들고서 열여덟에 이르도록 둘레 어른이 ‘청소년’이라는 이름을 쓸 적마다 꽤 거북했습니다. 웬만한 어른은 ‘우리’를 ‘사람’으로 안 보았습니다. 가르치거나 길들이거나 다그칠 ‘작은것’으로 여겼습니다. 때로는 작은것조차 아니었어요. ‘청소년 보호’란 말을 으레 읊는 어른이지만 정작 ‘아름나라·사랑나라·꿈나라’보다는 ‘종이나라(졸업장나라)·돈나라(자본주의)·힘나라(권력)’에 치우치면서 그들 자리를 지킬 뿐입니다. 허울로는 나이가 많되 참사람도 참어른도 아닌 그들을 지켜보면서 늘 스스로 “오늘을 사랑하렴. 나를 돌보렴.” 하고 속삭입니다. 이 말을 또래한테 들려주고 뒷내기한테 들려주다가 이제는 오늘날 둘레 어린이·푸름이한테 들려줍니다. 푸름이 이웃이 “우리말을 바르게 쓰는 길이 뭐예요?” 하고 물으면 으레 “푸름이 여러분을 사랑하고 오늘을 즐겁게 열고서 지으면 돼요. 이뿐이랍니다. 맞춤길이나 띄어쓰기가 아닌, 여러분 마음에 씨앗으로 심을 생각을 즐겁게 사랑으로 가꾸면, 어느새 여러분 입이랑 손에서 흘러넘치는 말은 꽃으로 피어요.” 하고 이야기합니다. 저는 ‘청소년책’을 안 읽습니다. 저는 ‘푸른책’만 읽습니다. 삶을 푸르게 숲으로 사랑하는 줄거리이기에 푸른책입니다.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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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책빛

책하루, 책과 사귀다 12 믿음길



  예전에는 철(학기)이 바뀌면 길잡이(교사)가 아이들더러 손을 들라 하면서 물었어요. “집에 텔레비전 있는 사람?”이나 “고기를 한 달에 몇 날 먹나?”나 “어머니만 있는 사람? 아버지만 있는 사람? 둘 다 없는 사람?”도 묻는데 “아버지하고 얼마나 얘기하나? 하루 한 시간? 한 주 한 시간? 한 달 한 시간? 한 해 한 시간?”도 묻고, 그야말로 아이들 마음에 멍울이 질 만한 얘기를 서슴지 않고 물으며 손을 들어서 셌으니 더없이 무시무시하고 끔찍한 막짓(학교폭력) 가운데 하나라고 할 만합니다. “무슨 종교를 믿나?” 하고도 묻는데, 우리 집은 아무런 절(예배당)을 안 다니기에 ‘무교’라 했다가 ‘유교’라고도 장난을 하고, 어느 때부터인가는 “나는 나를 믿습니다”라고 하면서 꿀밤을 먹었어요. 이제 와 돌아보면 ‘책을 얼마나 읽느냐?’라든지 ‘어떤 나무나 꽃을 좋아하느냐?’라든지 ‘어떤 새랑 노느냐?’라든지 ‘어떤 바람이나 구름을 아느냐?’ 하고 물은 적이 없습니다. 어른들은 무엇을 묻고 가르치며 길들일 셈속일까요? 모든 거룩책(경전)은 어른이 씁니다만, 어린이더러 ‘믿음책’을 쓰라고 한다면 덧없는 틀이나 굴레란 하나도 없이 오직 한 마디 ‘사랑’만 적지 않을까요? 스스로 믿고 가꾸려고 읽는 책입니다.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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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책빛

책하루, 책과 사귀다 11 내 등판은



  멧골에 가는 차림새가 아닌 책집에 가는 차림새입니다. 겉옷도 가볍습니다. 한겨울이라면 반소매 한 벌에 긴소매 한 벌을 두르는데, 찬바람이 매섭다면 비로소 얇은 겉옷을 더 입습니다. “왜 이렇게 옷이 얇아요? 안 추워요?” “하하, 이 등짐을 짊어져 보시겠어요? 조금 걷다 보면 온몸이 따듯하답니다. 책을 가득 담은 등짐 차림으로 걸으면 한겨울에도 포근포근하지요.” 혼자 살며 늘 책에 빛꽃틀(사진기)을 짊어진 터라, 아이가 찾아온 뒤부터 책을 덜어내고서 기저귀에 포대기에 물병에 배냇옷을 챙겼습니다. 오랫동안 책짐이 익숙하던 몸은 ‘아기를 돌보는 옷살림’을 한가득 짊어지고서도 아기를 품에 안고서 걸을 만했어요. 작은아이가 찾아온 다음에는 이런 등짐 차림에 두 아이를 안고 걷기도 했습니다. “자가용이 있으면 수월할 텐데.” 하고 혀를 차는 이웃님한테 “아이를 품에 안고 걸으면 아이한테서 저한테 따스한 기운이 스미고, 저한테서 아이한테 포근한 숨결이 퍼져요. 얼마나 사랑스러운걸요.” 하고 들려줍니다. 기꺼이 집니다. 즐거이 멥니다. 신나게 안고 업어요. 아이가 없던 무렵에는 종이책이 제 사랑이었다면, 아이가 곁에 있는 오늘은 아이들이 제 사랑이요, 이 사이에 책을 살그마니 놓습니다.


ㅅㄴㄹ


2009년 3월 9일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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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책빛

책하루, 책과 사귀다 10 갈무리



  우리말꽃(국어사전)이란 책을 쓰기에 늘 갈무리를 합니다만, 처음에는 그저 쓰면서 밑감을 모아요. 어느 만큼 모일 적에 비로소 갈래를 지어 차곡차곡 담습니다. 이렇게 ‘먼저 써서 모아 놓고 나중에 갈래짓기를 하다’ 보니, 이제는 처음부터 갈래를 어떻게 지으면 좋을까를 알아챕니다. 참말로 처음에는 그냥 죽 할 뿐이에요. 잔뜩 장만한 책을 갈무리할 적에도 똑같더군요. 처음에는 그저 사서 읽고 죽죽 쌓아요. 책값은 있되 책칸(책장)을 들일 돈은 없으니까요. 이러다가 누가 골목에 내놓은 책칸을 보면 낑낑대면서 들고 오지요. 골목에서 얻은 책칸이 생기니 이때부터 비로소 ‘슬슬 갈래짓기를 해볼까?’ 하고 소매를 걷습니다. 모이기에 갈무리를 합니다. 모이지 않으면 가를 알맹이가 없어요. 차근차근 지어서 모으기에 갈무리할 부피가 생겨요. 글을 빨리 써내어 갈래도 빨리 짓고 꾸러미로도 빨리 묶어야 하지 않습니다. 책을 빨리 읽거나 느낌글을 얼른 써내야 하지 않습니다. 삶을 누리는 오늘에 맞추어 느긋이 바라보고 즐겁게 헤아리면서 한 올 두 올 실타래를 여밉니다. 잘 보이도록 가누어야 하지 않아요. 오늘을 되새기고픈 마음이기에 가누어요. 보기좋게 묶어야 하지 않아요. 손길마다 사랑을 담아서 하나하나 어루만져요.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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