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카의 도자기 2
니시자키 타이세이 지음 / 대원씨아이(만화) / 2012년 9월
평점 :
절판


숲노래 푸른책/숲노래 만화책 2021.3.15.

흙을 빚는 손빛



《하루카의 도자기 2》

 플라이 디스크 글

 니시자키 타이세이 그림

 윤지은 옮김

 대원씨아이

 2012.10.15.



  《하루카의 도자기 2》(플라이 디스크 글·니시자키 타이세이 그림/윤지은 옮김, 대원씨아이, 2012)은 질그릇을 빚는 여러 사람이 어떻게 마음을 흙이랑 하나로 가다듬는가 하는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흙이랑 마음이 하나이기에 밭을 짓고 논을 가꿉니다. 흙하고 마음이 하나이기에 ‘밥을 낳는 숨결’인 흙으로 ‘밥을 담는 숨그릇’을 빚을 수 있습니다.


  아이들은 흙하고 한마음이 되어 뒹굴거나 뛰놉니다. 아이들이 흙이며 모래를 만지면서 척척 짓는 놀이에는 언제나 새롭게 피어나고픈 꿈이 깃듭니다. 흙을 만지면서 놀던 아이가 어른이 되기에, 흙으로 숨결을 짓거나 빚거나 가꾸거나 노래하는 자리에 서요. 흙을 만지지도 밟지도 구경하지도 못하는 터에서 책만 펴야 하는 아이가 어른이 되면, 흙하고 동떨어질 뿐 아니라 흙을 괴롭히거나 짓밟거나 죽이는 자리에 섭니다.


  흙놀이는 흙살림을 거쳐 흙사랑으로 갑니다. 흙을 등진 터전은 흙살림도 흙사랑도 없이 돈벌이나 이름얻기나 힘자랑으로 갑니다. 어느 쪽이 좋거나 낫지는 않습니다. 이쪽은 사랑이요, 저쪽은 사랑이 아닐 뿐입니다.


  사람마다 손길이 다르기에, 질그릇을 빚는 사람마다 다 다른 무늬와 빛깔과 크기와 쓰임새를 담아낼 길을 열어요. 다 다른 사람들이 다 다르게 흙을 일구어 살림을 이루듯, 다 다른 사람들이 다 다르게 들이는 손길로 다 다르지만 바탕은 사랑인 하루를 짓습니다.


  누가 알아주기를 바라면서 흙을 짓지 않습니다. 더 알아주어야 하기에 흙을 그릇으로 빚지 않습니다. 살리는 손길로 흙을 만집니다. 사랑하는 손빛을 흙에 담습니다. 살아가는 두 손에는 살아가는 두 다리가 맞물려 이 땅을 든든히 딛고서 어깨동무하는 마음이 흐릅니다. 《하루카의 도자기》는 석걸음으로 단출히 매듭을 짓는데, 우리나라에서는 흙을 다루는 손을 서로 얼마나 지켜보거나 바라보거나 들여다보려나 궁금합니다. 벼슬자리도 글자리도 배움자리도 살림자리도 흙 한 줌 없이 온통 잿빛으로만 가득하지 싶은데, 흙이 없으면 풀꽃나무도 벌나비도 새도 사람도 모두 살아남지 못합니다.


ㅅㄴㄹ


“흙은, 그 인간의 기량을 비추는 거울이야. 실력 이상의 것을 해내려고 해봤자 어차피 기량은 마찬가지. 정진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시간이 그렇게 만들어 주겠지.” (79쪽)


“시대의 선인(先人)이 남긴 물건이라면 돌이킬 수 없지만 마침 나는 아직 현역이야. 그리고 나라가 문화재로 지정한 건 그 술병이 아니다. 이 두 손이지.” (87쪽)


‘손 안에서 흙이 날뛰지 않아. 이것이 중심이라는 건가?’ (106쪽)


“욕심을 내면 안 돼. 흙에게 솔직해져라” (108쪽)


“크기 같은 건 상관없어. 그래, 너처럼 보는 사람을 자연스럽게 끌어당기는 작품을 만들면 돼.” (112쪽)


‘그건 그대로 지금의 내 모습을 나타내는 것 같아.’ (118쪽)


“그렇지만 이 밭에서 자란 채소가 좋다고 말해 주는 사람이 있지. 하루카랑 이웃사람들, 도시에 사는 아들과 손자들. 나는 그 사람들이 먹는 얼굴을 떠올리면서 채소를 키우는 거야. 그런 것일지도 몰라. 하루카의 기량으로 나오는 하루카만의 맛이 말야.” (124쪽)


‘작품은 정직하게 그 사람을 비추니까, 마음이 향하는 대로.’ (155쪽)


“훌륭해. 이사카가 말한 ‘자신의 기량’을 알고, 내가 말한 오사무가 가마에 넣고 싶어질 물건을 넘어, 넣을 수밖에 없는 것을 만들었어. 그리고 큰 접시를 만들고 싶었던 자기 마음을 그 12개가 낳을 경단 무늬에 맡겼지.” (18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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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ハルカの陶 #TaiseiNishizaki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쓰고 “말꽃 짓는 책숲(사전 짓는 서재도서관)”을 꾸린다. 1992년부터 이 길을 걸었고, 쓴 책으로 《쉬운 말이 평화》,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읽는 우리말 사전 1·2·3》, 《우리말 동시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시골에서 책 읽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숲에서 살려낸 우리말》, 《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 《10대와 통하는 우리말 바로쓰기》 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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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녀와의 디너 - 다카하시 루미코 걸작단편집
다카하시 루미코 지음, 서현아 옮김 / 학산문화사(만화) / 202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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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푸른책/숲노래 만화책 2021.3.12.

모두 꿈인지도


《마녀와의 디너》

 타카하시 루미코

 서현아 옮김

 학산문화사

 2020.12.25.



  《마녀와의 디너》(타카하시 루미코/서현아 옮김, 학산문화사, 2020)를 읽으면 바람아씨나 빛아씨나 숲아씨 이야기가 흐릅니다. 둘레에서 ‘마녀’라는 한자말을 으레 쓰기는 하지만, 정작 ‘마녀’가 무엇인가 하고 제대로 살피는 일은 드물지 싶습니다. 괘씸하거나 모질거나 사나운 아씨가 마녀일까요? 새롭게 살리거나 북돋우거나 거들거나 달래는 아씨가 마녀이지 않을까요?


  바람을 다룰 줄 알고, 빛나는 길을 알며, 숲을 돌보는 길이기에 마녀라고 느낍니다. ‘마(魔)’라는 한자는 섣불리 쓸 노릇이 아닙니다. 더구나 바람아씨·빛아씨·숲아씨를 나쁘게 몰아붙이면서 괴롭히거나 죽이던 사내들 몹쓸짓을 헤아린다면 ‘마 + 녀’라는 이름짓기는 속살림하고 동떨어지기 마련입니다.


  바람을 다룰 줄 알고, 빛나는 길을 알며, 숲을 돌보는 사내한테는 어떤 이름이 어울릴까요? 아마 한자말로 ‘신선·신령’이라 하지 않나요? 이름부터 곰곰이 볼 노릇이면서, 어떠한 삶이고 살림이며 사랑인가를 눈여겨보아야지 싶습니다. 오늘 숱한 사내가 걷는 길을 되새기고, 앞으로 가시버시나 사내·가시내가 나아갈 슬기로운 길을 돌아보아야지 싶어요.


  집안을 돌볼 줄 모르면서 나라나 일터를 제대로 다스리지는 못하기 마련입니다. 아이를 보살필 줄 모르면서 일꾼을 부리거나 바깥일만 잘 해내지는 못하기 마련입니다. 밥을 지어서 따뜻하게 차릴 줄 알 적에 살림꾼이요, 살림꾼이란 살림지기이니, 이 살림지기가 나라지기나 마을지기를 맡아야 나라와 마을이 아늑합니다.


  오늘 우리 삶터를 보셔요. 밥 한 그릇 지을 줄 모르는 이들이 벼슬자리를 꿰차면서 갖가지 잘못을 일삼지 않나요? 아기를 사랑으로 낳아 보듬는 손길을 모르는 채 벼슬질만 하면서 온갖 잘못을 일으키지 않나요?


  바람아씨·빛아씨·숲아씨는 바탕이 사랑입니다. 벼슬을 거머쥔 사내는 바탕이 무엇인가요? 글을 쓰거나 책을 엮는 사람들은, 또 글을 읽거나 책을 읽는 사람들은 스스로 바탕에 무엇을 두는지요? 이 삶은 모두 꿈인지도 모릅니다.


ㅅㄴㄹ


“타베이 씨, 혹시 마녀를 물리치는 엑소시스트 같은 겁니까?” “뭐, 가사 도우미는 부업이고. 죄송합니다. 제가 마녀입니다.” (32쪽)


‘그래, 아야카는 처음부터 존재하지 않은, 환상의 여자였던 거야.’ (59쪽)


‘하긴, 전에도 집은 잠자러 가는 곳일 뿐. 아내가 만들어 준 식사를 렌지에 데워서 혼자 먹었으니 금방 만든 밥과 반찬을 먹을 수 있는 지금이 훨씬 나을지도 모른다. 생각해 보면 일에만 파묻혀 보냈지. 일이 좋았으니까. 나는 실수 한 번 없이 정직하고 당당하게 살았어. 가족을 먹여살리기 위해.’ (103쪽)


“할아버지, 기저귀 좀 갈아 줘! 거기 있으니까! 그건 할 줄 알지?” “아니, 해본 적이…….” “쯧.” ‘혀를 차?’ (116쪽)


“엄마 님은 용감하게 싸워서 그 남자를 영역 밖으로 쫓아냈답니다.” “진짜? 엄마, 그 자식 이젠 안 와?” “어?. 응.” (194쪽)


#たかはしるみこ #高橋留美子 #高橋留美子傑作集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쓰고 “말꽃 짓는 책숲(사전 짓는 서재도서관)”을 꾸린다. 1992년부터 이 길을 걸었고, 쓴 책으로 《쉬운 말이 평화》,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읽는 우리말 사전 1·2·3》, 《우리말 동시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시골에서 책 읽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숲에서 살려낸 우리말》, 《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 《10대와 통하는 우리말 바로쓰기》 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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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토리의 집 7 - 개정증보판
야마모토 오사무 지음, 김은진 옮김 / 한울림스페셜 / 2005년 1월
평점 :
절판


숲노래 푸른책/숲노래 만화책 2021.3.9.

- 사랑씨앗 한 톨을 심고서



《도토리의 집 7》

 야마모토 오사무

 김은진 옮김

 한울림스페셜

 2005.1.25.



  《도토리의 집 7》(야마모토 오사무/김은진 옮김, 한울림스페셜, 2005)으로 ‘도토리집’을 여는 이야기를 매듭짓습니다. 오늘도 이 도토리집은 잘 있을까요? 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도토리 한 톨이 어느새 자라고 퍼져 숲을 이루듯, 도토리집이라는 보금자리 하나가 씨앗이 되어 일본이며 우리나라이며 아름자리가 하나둘 늘어나겠지요.


  숲은 처음부터 나무밭을 이루지 않습니다. 하늘에서 뚝 떨어져서 생기는 숲이 아닌, 그야말로 조그마한 씨앗 한 톨이 넌지시 깃들면서 피어나는 숲입니다.


  그저 피어납니다. 꽃봉오리가 벌어지는 모습을 푸나무 곁에서 지켜본 적이 있나요? 아기가 뒤집고 목을 가누고 일어서고 걷기까지 곁에서 바라본 적이 있나요? 나비가 고치에서 나와서 날개를 말리고 펼쳐서 날아오르는 모습을 곁에서 살펴본 적이 있나요?


  확 벌어지지 않고, 확 걷지 않고, 확 날아오르지 않습니다. 매우 천천히 움직여요. 오롯이 꿈을 품은 몸짓으로 가만히 웃듯 움직여요. 오늘 여기에서 우리가 심은 사랑씨앗 한 톨이 얼른 숲이 되지 않는다고 투덜거리거나 조바심을 낸다면, 투덜거림이랑 조바심만 낳거나 얻어요. 씨앗을 흙한테 안겨 주었다면 지긋이 바라보면서 기다리기로 해요. 곧 숲이 됩니다. 이곳은 어느새 숲으로 나아갑니다. 우리가 심은 사랑씨앗만 마음에 담기로 해요.


  아기한테 벼슬자리를 맡기는 사람은 없습니다. 나비한테 짐차를 몰라고 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바람한테 밥을 차리라고 잡아당기는 사람은 없습니다. 저마다 다른 숨결이요 숨빛입니다. 다 다른 사랑으로 이 별에서 함께 살아가는 줄 느낀다면, ‘장애인’ 아닌 ‘별빛아이’ 마음에 흐르는 숨소리를 들을 수 있겠지요.


  이웃나라 일본은 ‘도토리집’이 태어난 발자국이며 땀방울도 놀랍지만, 이 발자국하고 땀방울을 그림꽃으로 담아낸 《도토리의 집》도 놀랍습니다. 차분하게, 한 걸음씩, 즐겁게, 씩씩하게, 서로 손을 잡고 나아가기에 우리 꿈을 담은 씨앗 한 톨을 사랑으로 심어요.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란 바로 ‘사랑으로 씨앗심기’입니다.


ㅅㄴㄹ


“바람을 그릴 때는 바람이 된 기분으로, 나무를 그릴 때는 나무가 된 기분으로 그리라구. 사람을 그릴 때는 사람이 된 기분으로 …….” (17쪽)


‘이것이 바로 이 아이들이라는 것을. 중증장애로 고통받는 이 아이들 역시 제각기 내면의 세계를 갖고 있었다. 그리고 나름대로의 방법으로 바깥 세계와 교류하고 있었다. 그것을 깨닫지 못하고 있는 것은 오히려 오카모토 씨 자신이었던 것이다.’ (37쪽)


“그때까지 수화모임에서 ‘함께 걷는다’는 말을 자주 들었습니다. 장애인과 일반인이 함께 걸어간다는 말이죠. 하지만 저나 모임회원들이나 사실 그 말뜻을 모르고 있었습니다. 머리로는 이해가 갔지만 가슴에 와닿지를 않았던 거죠.“ (60쪽)


“나와 똑같은 감정을 갖고 있다. 나이든 사람이나 어린아이나 모두 그런 생각을 품고 있다. 그런 따뜻한 마음을 느끼는 게 기뻐요.” (110∼111쪽)


“장애인이라서 장애인 운동을 하는 게 아니라, 인간이니까 하는 거라고.” (159쪽)


“여러분이 있잖아요. 자모회는 두 명만 있으면 만들 수 있어요.” “우, 우리가요?” “천리길도 한 걸음부터예요. 첫발을 내딛지 않으면 더 이상 전진할 수 없다고요. 이미 첫발을 내딛었다고 생각해요.” (22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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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山本おさむ #どんぐりの家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쓰고 “말꽃 짓는 책숲(사전 짓는 서재도서관)”을 꾸린다. 1992년부터 이 길을 걸었고, 쓴 책으로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읽는 우리말 사전 1·2·3》, 《우리말 동시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시골에서 책 읽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숲에서 살려낸 우리말》, 《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 《10대와 통하는 우리말 바로쓰기》 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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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라에몽 0
후지코 F. 후지오 지음, 장지연 옮김 / 대원씨아이(만화) / 2020년 10월
평점 :
절판


숲노래 푸른책/숲노래 만화책 2021.3.9.

- 앞으로 살아갈 길을 그리다



《도라에몽 0》

 후지코 F.후지오

 장지연 옮김

 대원씨아이

 2020.10.31.



  무척 오래 나온 노래꽃책 《도라에몽》인데 《도라에몽 0》(후지코 F.후지오/장지연 옮김, 대원씨아이, 2020)이 새삼스레 나왔습니다. 《도라에몽 0》은 일본에서 여러 달책에 다 다른 판으로 나온 첫걸음을 한자리에 모았다는군요. 나이에 따라 다 다른 어린이가 보는 달책에 조금씩 줄거리를 바꾸면서 들려준 첫걸음인데, 다 다르면서도 비슷한 결이 있어요.


  잘 해내는 사람이 있다면, 잘 해내지 못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잘못 해내는 사람이 있다면, 잘못 해내지 않는 사람이 있어요. 잘 해내기에 대단하지 않고, 잘못 해내기에 엉성하지 않습니다. 그저 그렇게 해내는 길에 저마다 다른 삶을 맞아들이면서 배웁니다.


  으레 넘어지는 사람이 있다면, 좀처럼 안 넘어지는 사람이 있습니다. 자꾸 넘어지는 사람이 있다면, 아예 안 넘어지는 사람이 있어요. 툭하면 넘어지기에 바보스럽지 않고, 넘어지는 일이 없기에 훌륭하지 않습니다. 그저 넘어지는 길에 새로 배우고, 다시 일어서면서 한결 의젓하기 마련입니다.


  아기는 넘어지면서 큽니다. 아이는 다치면서 자랍니다. 어린이는 앓으면서 튼튼합니다. 푸름이는 갈팡질팡하면서 생각을 키웁니다. 처음부터 끝까지 굽이길도 에움길도 가시밭길도 없이 살아간다면, 어떤 하루나 보람일까요?


  미리놓기(예방접종)를 해서 안 아픈 일이 좋을까요? 아예 나쁘지는 않겠습니다만, 구태여 미리놓기를 하기보다는 즐겁게 놀고 일하고 배우고 살림하고 사랑하면 넉넉하리라 생각해요.


  참으로 곰곰이 돌아볼 노릇입니다. 마음앓이 없이 사랑으로 갈 수 있는지요? 가슴앓이 없이 사랑꽃이 피어나는지요? 앓는 일은 안 나쁩니다. 앓아서 나쁠 일이 없습니다. 앓으면서 새로 깨어나는 길을 스스로 찾아나섭니다.


  ‘진구(노비타)’라는 아이는 걸핏하면 넘어지고 울고 떼쓰고 미루면서 스스로 삶길을 엉성하게 한다지요. 무엇보다도 앞꿈이 없이 눈앞일이 허덕인다지요. 이런 아이를 보다 못한 먼먼 앞날에서 책상서랍으로 찾아와서 ‘네(할아버지)가 그러니까 우리(뒷사람)가 애먹잖아? 앞날을 바꿔 보지 않겠어?’ 하고 말을 걸고 ‘도라에몽’이라는 로봇을 빌려주는 이야기입니다.


  게으름을 부리고 떼를 쓰고 스스로 하나도 안 애쓰고 언제나 미루기만 하는, 이 아이는 앞길이 어떻게 될까요? 스스로 해내려는 생각은 안 하고, 넘어지면 아프거나 다칠까 걱정만 하는 이 아이 앞날은 어떤 모습일까요?


  노래꽃책에 나오는 아이는 바로 우리 모습이기도 하고, 우리가 숨기는 모습이기도 하며, 우리가 잊은 지난날 모습이기도 합니다. 어쩌면 이 아이처럼 엉성하거나 바보스러운 짓은 하루도 한 적이 없는 분이 있을는지 모르겠어요. 아마 그런 분이 있다면 《도라에몽》은 매우 심심할 수 있습니다.


  앞길은 얼마든지 바꿉니다. 오늘 우리가 어떻게 살아가느냐에 따라 앞길은 다릅니다. 오늘 여기에 있는 모습만 바라보면서 꿈을 그리지 않으면 앞날은 오늘하고 똑같을 만하고, 때로는 오늘보다 더 굴러떨어질 만해요.


  꿈을 바라보고 걷는 사람은 꿈으로 가요. 꿈으로 가는 동안 가시밭이나 고비나 벼랑을 지나야 할는지 몰라도, 오롯이 꿈을 바라보기에 안 흔들리고 안 망설이며 안 헤맵니다.


  꿈을 안 바라본다면 투정이며 핑계에 시샘이 가득해서 자꾸 이웃이나 동무를 미워하거나 싫어합니다. 꿈을 안 바라보기에 골을 내요. 꿈을 안 바라보기에 막말을 쏟아붓고 막짓을 일삼아요. 스스로 심어서 가꿀 꿈인데, 남이 해주지 않는다고 앙탈을 부리거나 악을 써대기도 해요.


  앞으로 살아갈 날은 스스로 그립니다. 어제까지 살아낸 날은 스스로 돌아봅니다. 아침을 열며 맞이할 하루는 스스로 걸어갑니다. 누가 그려 주지 않고, 누가 돌아봐 주지 않고, 누가 걸어가 주지 않아요.


  배가 고프면 스스로 밥을 차려서 스스로 수저를 들고 스스로 떠먹어야 합니다. 쉬가 마려우면 스스로 뒷간으로 가서 쉬를 누어야 합니다.


  누가 쉬어 주는 숨이 아니지요. 누가 자 주면 될 밤이 아니지요. 언제나 우리가 스스로 합니다. 모두 우리가 손수 합니다. 잘도 잘못도 없이 하나하나 맞닥뜨리고 맞아들이면서 새롭게 빛나는 하루를 짓습니다.


ㅅㄴㄹ


“미래가 뭐야?” “미래는 과거의 반대말이야. 우리는 거기에서 왔어.” “엄마∼. 이상한 애가 있어.” “아무도 없는데? 그 애는 어디서 왔는데?” “책상 서랍에서.” “얘도 참, 농담은.” (18쪽)


“무슨 일이니, 진구야. 신음 소리를 내고.” “엄마도 참. 노래 연습을 하고 있었는데. 오늘 밤 다같이 장기자랑을 할 거거든.” “역시 진구 노래가 최고라니까.” “신음 소리라고 했으면서. 노래는 그만둘래.” (24쪽)


“뭐, 뭐, 뭘 해도 안 된다니, 너, 너, 너무 맞는 말만 하지 말라고.” (42쪽)


“가만히 있으면 이렇게 된다는 얘기야. 미래를 바꿀 수도 있어.” “저, 정말이야?” (47쪽)


“우리가 사는 22세기가 되면 과학이 엄청나게 발전해서 여러 가지 편리한 것들이 발명되지만, 바보에게 듣는 약만은 아직 만들지 못했어. 이건 정말 유감이야.” (69쪽)


“네 20년 후 모습이야.” “시, 싫어. 이런 거 싫어.” “우리도 괴로워. 그러니까 그렇게 되지 않도록 해야지.” (73쪽)


“바보네. 모처럼 잘돼가고 있었는데.” “이제 싫어! 바보 취급을 당할 정도라면 죽는 게 나아!” “나는 너를 위해서…….” “그냥 놔둬. 내 운명은 내 손으로 개척할 거야.” “의외로 고집이 세네.” (81쪽)


#藤子F不二雄 #ドラえもん #ドラえもん0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쓰고 “말꽃 짓는 책숲(사전 짓는 서재도서관)”을 꾸린다. 1992년부터 이 길을 걸었고, 쓴 책으로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읽는 우리말 사전 1·2·3》, 《우리말 동시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시골에서 책 읽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숲에서 살려낸 우리말》, 《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 《10대와 통하는 우리말 바로쓰기》 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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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멸의 그대에게 12
오이마 요시토키 지음, 김동욱 옮김 / 대원씨아이(만화) / 202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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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푸른책/숲노래 만화책

- 싸워서 물리친 다음에는



《불멸의 그대에게 12》

 오이마 요시토키

 김동욱 옮김

 대원씨아이

 2020.4.30.



  《불멸의 그대에게 12》(오이마 요시토키/김동욱 옮김, 대원씨아이, 2020)에서는 막판에 이른 싸움길을 다루면서, 이 싸움길 다음을 어떻게 누리려 하는가를 짚습니다. 잡아먹으려는 빛이 한쪽에 있고, 잡아먹히지 않으려는 빛이 한쪽에 있습니다. 둘은 서로 살아남으려고 발버둥입니다.


  잡아먹으려는 쪽도 잡아먹히지 않으려는 쪽도 숱한 목숨이 죽어 나갑니다. 이들은 굳이 싸울 까닭이 없이 이 별에서 삶터를 알맞게 갈라서 지내어도 될 텐데, 서로 ‘마지막 하나까지 쓸어내야 한다’고 여깁니다.


  참말로 나빠서 모조리 없애야 할까요. 서로 어떤 빛인지 모르는 채 ‘나쁘다’고 여기지는 않을까요. 잡아먹히지 않으려는 쪽에는 ‘사람’이 있는데, 사람은 사람끼리 싸우거나 억누르거나 빼앗거나 괴롭히면서 이 별을 어지럽히는 목숨이지는 않을까요.


  바탕을 사랑으로 다스리는 숨결이라면 어울림으로 갑니다. 어깨동무예요. 바탕에 사랑을 놓지 않는 숨결이라면 다툼이며 겨룸이며 싸움으로 갑니다. 등돌리기예요. 숲은 숱한 풀꽃나무가 어울리기에 짙푸르면서 싱그럽고 아름답습니다. 숲을 밀어낸 큰고장이나 서울에서는 다투고 겨루고 싸우면서 사람끼리 서로 고단합니다.


  한 판 벌이는 싸움은 늘 다음 싸움으로 이어갑니다. 따사로이 샘솟는 사랑은 언제나 새롭게 사랑으로 피어납니다. 곰곰이 보면 두 갈래인 길이에요. 싸움으로 꽃이 되고 열매가 되며 씨앗이 되는 길이 있고, 사랑으로 꽃이 되고 열매가 되며 씨앗이 되는 길이 있습니다.


  문득 보자면 《불멸의 그대에게》가 열두걸음을 지나는 동안 내내 싸움판이었는데, 싸움판 이야기는 매우 길어요. 어쩌면 우리 사람들은 사랑하고 등지면서 오래도록 싸우고 다시 싸우고 또 싸우는 사이에 삶을 잊었는지 모릅니다. 싸움 다음은 생각조차 못하지 싶어요. 싸우느라 바빠서, 싸우느라 벅차서, 싸우면서 동무를 잔뜩 잃은 나머지, 그저 머리에 싸움만 가득하구나 싶습니다.


  그렇지만 서로 사랑일 적에 어떤 삶을 그리면서 기쁘게 웃고 노래할 하루를 지으며 홀가분할까를 이제부터 생각할 노릇이겠지요.


ㅅㄴㄹ


“살아가는 걸 빼앗기면 안 돼! 무슨 일이 있어도 안 돼!” “그럼 탈환하면 된다.” (41쪽)


“설사 네가 신의 힘을 가진 존재라고 해도, 사람의 마음만은 자유롭고 대등한 법이야.” (133쪽)


“있잖아, 다들 이다음에 뭐가 하고 싶어?” (153쪽)


“다들 지금까지 다른 누군가를 위해 자기 목숨을 써 왔어. 하지만 이제부턴 자기를 위해 써 줬으면 좋겠어. 만약 에코나 모두가 다시 살아줄 거면 그게 가능한 세계를 내가 마련해 주고 싶어.” (159쪽)


“불사는 목적을 향해 매진했다. 세계를 뒤덮어 노커가 발붙일 여지를 없애는 것이다. 모습은 마치 잠들어 있는 것 같으면서도 그렇지 않았다. 자신의 말단부 하나하나에 의식을 집중시킨 나머지, 육체 쪽은 그저 숨만 쉬고 있을 뿐이었다.” (167쪽)


“슬퍼할 것 없어. 다들. 나는 이제 해피한 곳으로 가니까. 거기 가면 모두가 이어준 세계가 있고, 모두가 이어준 사람들이 기다리고 있어.” (179쪽)


#大今良時 #不滅のあなたへ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쓰고 “말꽃 짓는 책숲(사전 짓는 서재도서관)”을 꾸린다. 1992년부터 이 길을 걸었고, 쓴 책으로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읽는 우리말 사전 1·2·3》, 《우리말 동시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시골에서 책 읽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숲에서 살려낸 우리말》, 《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 《10대와 통하는 우리말 바로쓰기》 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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