멸종위기의 새 - 61종 한국 생물 목록 4
김성현 외 지음 / 자연과생태 / 201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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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경책 읽기 44

 


사라지는 새와 나무와 어린이
― 멸종위기의 새
 김성현·김진한·허위행·오현경·환경부 국립생물자원관 글·사진
 자연과생태 펴냄,2012.11.26./22000원

 


  큰도시에 둥지를 마련하는 제비는 거의 모두 사라졌습니다. 아직 몇 마리 있을는지 모르나, 제비는 큰도시하고는 아주 발을 끊는다고 느낍니다. 작은도시하고도 웬만하면 발을 끊지 싶어요. 참으로 먼길 날아다니는 제비인 만큼, 하늘을 날며 마셔야 할 바람이 지저분한 도시 언저리에서는 그야말로 숨이 막히겠지요.


  그런데 큰도시에는 참새와 비둘기가 퍽 많고 까치도 곧잘 깃듭니다. 직박구리나 박새도 더러 깃들고, 딱따구리 가운데에도 도시 한쪽에 깃드는 아이들이 있어요.


  어느 모로 보면 배짱 좋네 싶고, 달리 보면 이 새들로서는 먼먼 옛날부터 ‘이녁(새) 어버이’가 살아가던 터예요. 오늘날에는 도시가 되었지만 지난날에는 숲과 들이었을 테니, 옛터와 옛 어버이를 헤아리면서 도시에서 안 떠난다고 할는지 모를 일입니다.


.. 작년 이맘때 만났던 새들이 올해도 또 올까? 궁금증에, 그리움에, 보고 싶은 설렘까지 겹쳐 야외로 마중을 갑니다. 약속이나 한 것처럼 다시 나를 만나러 온 녀석들이 기특하고 고맙기도 합니다 ..  (머리말)

 


  거의 모든 새들은 도시를 떠납니다. 아니, 거의 모든 새들은 도시에서 쫓겨납니다. 거의 모든 들짐승도 도시를 떠납니, 아니, 거의 모든 들짐승도 도시에서 쫓겨났어요. 수많은 딱정벌레와 풀벌레도 도시에서 쫓겨났어요. 도시에서 풀과 꽃과 나무가 밀리고 쫓기고 밟히면서, 딱정벌레와 풀벌레가 도시에서 밀리고 쫓기고 밟혀요. 이러면서 들짐승과 새도 나란히 도시에서 밀리고 쫓기고 밟혀요.


  잘 생각해 봐요. 풀·꽃·나무가 밀리고 쫓기고 밟히는 곳에서 사람들은 어떻게 지내는가를. 곰곰이 헤아려 봐요. 딱정벌레·풀벌레가 밀리고 쫓기고 밟히는 데에서 사람들은 어떤 대접을 받고 서로 어떻게 지내는가를. 찬찬히 따져 봐요. 들짐승·멧새 밀리고 쫓기고 밟히는 도시에서 사람들은 저마다 어떤 삶 일구면서 어떤 사랑이 자라는가를.


  풀이 돋지 못하는 시멘트땅과 아스팔트길에서 사람 또한 여름에는 너무 덥고 겨울에는 끔찍하게 춥습니다. 꽃이 흐드러지지 못하는 도시에서 사람 또한 철을 잊고 날씨를 모릅니다. 나무가 우람하게 뻗지 못하는 도시에서 사람들 누구나 아름다움과 착함과 즐거움하고 동떨어져요.


  어떤 곳에서 사람이 가장 사람답게 살 수 있을까 생각해야지 싶습니다. 어떤 자리에서 사람이 서로를 가장 아끼고 돌보며 사랑할 만할까 헤아려야지 싶습니다. 어떤 보금자리에서 착한 사람 되어 참다운 삶 일굴는지 돌아보고 따지고 살펴야지 싶습니다.


  아름답게 살아갈 때에 아름답게 생각하고 아름답게 말합니다. 착하게 살아갈 적에 착하게 생각하며 착하게 말합니다. 즐겁게 살아가야 즐겁게 생각하면서 즐겁게 말해요.


  오늘날 사람들 마음과 생각과 말과 매무새는 어떠한가요. 오늘날 사람들 마음은 아름다운가요. 오늘날 사람들 생각은 환하거나 밝은가요. 오늘날 사람들 말과 글은 사랑스럽거나 따스한가요. 오늘날 사람들 매무새는 기쁨과 웃음이 넘치는가요.


.. 아름다운 자연 속에서 새들을 만나고 그 이름을 하나하나 알아가는 것은 매력적인 일입니다. 그다지 땅덩이가 넓은 나라는 아니지만, 계절마다 텃새, 여름철새, 겨울철새, 나그네새 등 약 520종의 다양한 새들이 함께 살아가니 참으로 살기 좋은 우리 나라입니다 ..  (머리말)

 

 


  《멸종위기의 새》(자연과생태,2012)를 아이들과 함께 읽습니다. 책에 깃든 새 예순한 가지를 가만히 들여다봅니다. 이 가운데 전남 고흥 시골마을에서 마주칠 만한 새로 누가 있을까 궁금합니다. 우리 집 둘레에 어떤 새들이 깃들까 궁금합니다.


  《멸종위기의 새》에는 안 나오지만, 꾀꼬리 구경하기도 아주 어렵습니다. 꾀꼬리 노랫소리 듣기도 힘들고, 꾀꼬리 노란 깃털 마주치기도 힘들어요. 따오기뿐 아니라 뜸부기도 어디에서 볼 수 있을까 모르겠어요. 아이들한테 매나 수리를 어떻게 이야기해야 할까 모르겠어요.


  그림책이나 사진책에서만 보는 새로는 아무런 이야기가 나올 수 없어요. 지난가을부터 고흥 들판에서 더러 매처럼 보이는 새를 보는데, 매라기보다는 누렁조롱이 아닌가 싶어요. 매는 내가 국민학생이던 1980년대 첫머리에 인천에서도 가끔 보곤 했지만, 이제는 깊은 시골이나 멧골에서조차 쉬 만나기 어렵습니다.


.. 제비, 참새처럼 주변에서 쉽게 볼 수 있던 새들이 눈에 띄게 줄었습니다. 동요에 나오는 따오기를 이미 야생에서 볼 수 없게 된 지 오래되었습니다 … “새들이 살 수 없는 곳은 사람들도 살 수 없다”는 말처럼 우리와 후손을 위해 새들을 지키고 보호하는 이들이 많아지길 바랍니다 ..  (머리말)

 


  새가 사라지고 나무가 사라집니다. 여기에, 어린이가 함께 사라집니다. 고샅과 골목과 들과 숲과 바다와 냇가에서 뛰노는 어린이가 나날이 사라집니다. 새들이 살 보금자리도 사라지지만, 어린이가 뛰놀 쉼터와 빈터와 놀이터 몽땅 사라집니다. 어린이가 사라지면서 놀이가 사라집니다. 딱지를 접을 줄 모르는 아이들이 늘고, 연을 만들 줄 모르는 아이들이 늡니다. 흙바닥에 금을 긋고 수백 가지 놀이를 새로 만들던 생각빛이 사라집니다. 게임기와 만화영화는 늘지만, 아이들 스스로 지어서 부르던 놀이노래 사라집니다.


  어린이는 이제 새를 그리지 않습니다. 어린이는 이제 풀도 꽃도 나무도 그리지 않습니다. 도시 학교에서는 새와 풀과 꽃과 나무를 만나기 어렵습니다. 그림학원이나 미술학원에서는 도시에서 흔히 쓰는 물건을 그릴 뿐이고, 화가나 만화가 되어도 새와 풀과 꽃과 나무 그릴 일이 없습니다. 자동차와 건물과 고속도로와 탱크와 총칼을 멋들어지게 그리는 아이들이 많지만, 새와 풀과 꽃과 나무를 싱그럽고 해맑게 그리는 아이들은 만나기 어렵습니다.


  아니, 아이들에 앞서 어른들도 새를 말하지 않고 풀과 꽃을 말하지 않아요. 어른들부터 나무를 말하지 않고, 시골과 숲과 들을 말하지 않아요. 아이들이 물장구를 칠 냇가가 없듯, 어른들이 도란도란 모여서 어울릴 냇가도 없어요. 아이들이 뒹굴 나무그늘이나 흙땅 같은 빈터와 쉼터가 없듯, 어른들이 하루일 마치며 느긋하게 이야기꽃 나누는 마당이나 쉼터 또한 없어요.


  새가 사라지는 한국에 사랑이 사라집니다. 새가 깃들지 못하는 죽음터로 바뀌는 한국에서 꿈과 믿음과 이야기가 나란히 죽음터로 내몰립니다. 4346.6.25.불.ㅎㄲㅅㄱ

 

(최종규 . 2013 - 환경책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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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ppletreeje 2013-06-25 09: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그러고 보니 정말 제비를 본 일이 이제는 없네요. 그나마 자주 볼 수 있었던 참새나 비둘기도 그러구요.. 그래도 가까운 숲에 가면 이름은 모르지만 나무들 위에서 청아하게 지저귀는 새들의 노래는 들을 수 있구요..
작년인가 도연스님의 <나는 산새처럼 살고 싶다>를 읽으며, 거의 잘 모르던 새들의 이야기에 즐거웠는데 오늘 말씀해주신 <멸종위기의 새>도 구해 읽어야겠어요.~^^
감사합니다~~

숲노래 2013-06-25 12:33   좋아요 0 | URL
이 책은 사진만 있는 책이라 아마 사진만 보실 텐데,
'멸종위기' 새들이기에
그야말로 사진 아니고서는 보기 어려운 새들뿐이랍니다 @.@

사람들이 '우리 삶터 곁 새들' 얼마나 사라지면서
나날이 '재미없는 삶' 되는가를 느낀다면 좋을 텐데요...
 
달인, 자전거를 말하다
김병만.최제남 지음 / 바이클로지 / 201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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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읽기 삶읽기 135

 


즐겁게 자전거 탑니다
― 달인, 자전거를 말하다
 김병만·최제남 지음
 바이클로지 펴냄,2011.6.5./15900원

 


  자전거로 달리는 즐거움을 누린 사람은 자전거를 즐겁게 탑니다. 자전거로 달리는 즐거움을 누리지 못한 사람은 자전거를 좀처럼 타지 못합니다.


  두 다리로 걷는 기쁨을 맛보지 못한 사람은 두 다리로 기쁘게 걷습니다. 두 다리로 걷는 기쁨을 누리지 못한 사람은 좀처럼 두 다리로 나들이를 다니지 못합니다.


  그리고, 자동차를 몰아 돌아다니는 재미를 누린 사람은 자동차를 싱싱 몰아 어디로든 다녀요. 이와 마찬가지인데, 자동차를 몰며 재미를 누리지 못하는 사람은 굳이 자동차를 몰지 않습니다.


.. 매니저를 두고 사서 고생이라는 주변 말들은, 자전거로 자동차를 앞서는 희열을 떠올리며 가볍게 무시한다. 녹화를 위해 여의도까지 나는 자전거, 매니저는 자동차로 경주를 하면 내가 먼저 도착하기가 일쑤다. 꽉 막힌 도로에 갇힌 매니저는 내가 중간에서 다른 교통수단을 이용하리라 의심하지만, 자전거로 25분이면 충분하다 ..  (19쪽)


  나는 2009년에 《자전거와 함께 살기》(달팽이 펴냄)라는 책을 하나 내놓았습니다. 2009년에 내놓은 이 책에 담은 글은 2006∼2007년 사이에 자전거마실 다니며 썼습니다. 묵은 글을 엮었다 할 수 있는데, 예전에는 자전거마실 다니면서도 막상 ‘자전거로 마실 다니는 이야기’를 쓰지 않았어요. 2006년에 접어들어 비로소 ‘자전거로 다니는 이야기’를 썼어요. 왜냐하면, 자전거를 좋아하는 사람 퍽 많고, 자전거모임 꽤 많은데, 정작 ‘자전거로 누리는 즐거움’이라든지 ‘자전거로 달리는 삶’을 이야기하는 사람이 거의 안 보였어요. 아니, 아예 안 보였다 할 수 있어요. 자전거꾼도 자전거모임도 온통 ‘자전거 업그레이드’하고 ‘자전거 여행’하고 ‘자전거 정비’ 이야기만 맴돌았어요.


  내 자전거 이야기책 펴낸 출판사에서는 2004년에 《즐거운 불편》이라는 책을 앞서 내놓았어요. 일본 어느 신문기자가 자전거로 출퇴근을 하기로 마음먹으면서 스스로 삶을 새롭게 바꾼 이야기를 담은 책이 《즐거운 불편》이에요. 이 책을 쓴 일본 신문기자는 모든 삶을 ‘즐겁게’ 맞아들여 누리는데, 둘레에서는 모두 이녁을 ‘굳이 불편하게 살려 한다’고 바라본대서, 책이름을 이렇게 붙였다고 해요.


  《즐거운 불편》을 쓴 일본 신문기자는, 맨 처음에는 ‘자전거 출퇴근’이었지만, 하나씩 이녁 삶을 바꾸면서 ‘아름다운 길’로 접어들어요. 나중에는 식구들 먹을거리를 텃밭농사로 길러 보자고 생각하고, 아예 논농사까지 생각하며 참말, 모내기도 하고 가을걷이도 스스로 합니다. 신문기자로 바쁜 틈바구니에서 어떻게 텃밭을 일구느냐 궁금해 할 수 있지만, 스스로 뜻을 세우고 꿈을 키우면 어떤 일이든 다 할 수 있어요. ‘자전거 출퇴근’만 뜻을 세워서 할 만한 일이 아니라, 밥과 옷과 집을 스스로 마련해서 가장 정갈하고 좋은 삶 일구겠다는 뜻을 스스로 세워서 할 만한 일이에요.


  곧, 자전거를 타는 즐거움 누리는 사람이라면, 자전거에서 그치지는 않으리라 느꼈어요. 자전거를 타면서 교통과 환경과 도시를 다시 생각합니다. 교통과 환경과 도시를 다시 생각하면서, 내 삶과 일과 이웃을 다시 생각합니다.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아름다운가를 다시 생각하고, 내가 참으로 사랑하며 누릴 일이란 무엇인가를 다시 생각해요.


  ‘자전거 출퇴근’을 하더라도, 생각과 삶은 자전거에서 그치지 않아요. 생각은 곳곳으로 갈래를 뻗어요. 그런데, 자전거로 출퇴근을 하는 분들이 쓰는 자전거 이야기책은 너무 틀에 박혀요. 새로운 생각이나 넓어진 마음이나 깊어진 사랑을 좀처럼 담지 못해요.


.. 대부분의 자출족은 자전거는 타지만 정작 자전거에 대해서는 잘 알지 못한다 … 쉽사리 버려지는 자전거 때문에 커다란 환경 문제가 된다는 기사를 본 적이 있다. 관리 소홀로 버려지는 자전거가 상상 이상으로 많다는 얘기다 ..  (127, 248쪽)


  김병만·최제남 님이 쓴 《달인, 자전거를 말하다》(바이클로지,2011)를 읽으며 생각합니다. 책 겉에 ‘개그장인 김병만이 직접 말하는 자전거, 그리고 나’라는 글월 적힙니다. 연예인이면서 자전거로 일터를 오간다는 김병만 님이라고 합니다. 그렇지만, 이 책에는 ‘김병만이 말하는 자전거 정비와 수칙’ 이야기는 있지만, ‘나(김병만)와 자전거’라 할 만한 이야기는 없다고 느낍니다. 248쪽에 걸친 책인데, 김병만 님이 생각하는 자전거라든지, 김병만 님이 바라는 자전거 문화라든지, 김병만 님이 바라는 자전거 정책이라든지, 김병남 님이 스스로 자전거를 즐기거나 누리는 이야기는 8쪽쯤 될까 싶고, 240쪽에 걸친 이야기는 ‘자전거 정비와 수칙’과 얽힌 자료와 정보입니다.


.. 유럽을 갔을 때였다. 가장 부러웠던 것은 세계적인 역사 유적지나 박물관이 아니라 거리에서 자유롭고 당당한 자전거였다 … (지하철역) 자전거 거치대와 빈약한 햇빛 가림막 정도로만 설치되어 있어서 아쉽다. 지금처럼 사방이 뻥 뚫린 형태는 비가 많은 우리 나라 실정에 맞지 않다. 비가 내리면 거의 무방비 상태로 노출되기 때문에 형식적인 전시물 같은 인상이다 ..  (20, 33쪽)


  사진을 좋아하는 사람 많은데, 막상 사진을 즐기는 이야기를 쓰는 분이 매우 드뭅니다. 사진을 더 예쁘게 찍거나 잘 찍도록 꾀하는 길 다루는 책만 많습니다. 사진기 다루는 수칙에서 벗어나는 사진책이 아주 적습니다.


  자전거를 좋아하는 사람 많지만, 정작 자전거를 즐기는 이야기를 쓰는 분은 왜 이리 드물까요. 자전거를 더 멋스럽게 타는 이야기도 나쁘지 않지만, ‘자전거책’이라는 이름으로 나오는 책이 몽땅 자전거를 정비하는 길이나 더 잘 타는 길만 다룬다면, 굳이 새로운 자전거책 쓰거나 내놓아야 할까 궁금합니다.


  저마다 다 다른 사람들이 저마다 다 다른 자전거를 즐깁니다. 저마다 다 다른 사람들이 저마다 다 다른 곳에서 저마다 다 다른 자전거로 하루하루 기쁘게 웃고 달립니다. 기쁜 웃음과 즐거운 땀방울 그득 서린 ‘자전거를 사랑하는 이야기’와 ‘자전거로 살아가는 이야기’를 한 올 두 올 적바림할 수 있기를 빕니다. 4346.6.8.흙.ㅎㄲㅅㄱ

 

(최종규 .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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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ppletreeje 2013-06-08 10: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함께살기님의 <자전거와 함께 살기>, 마무리 글에 이런 말을 하셨지요`?
망가지지 않은 딱 하나, 삼천리 R-7을 처남에게 중학교 입학 선물로 주신 이야기.
'자전거를 어떻게 사랑하며 함께 살까?'하는 꿈을 조금씩 이루게 해 준 자전거였기에,
비록 좀 헐기는 했어도 기꺼이 이 녀석을 어린 처남에게 선물하신.

그때는 벼리가 기저귀를 차고 있던 때였는데
이제는 날마다, 동생과 숲과 나무와 꽃과 그림과 글씨를 쓰고 그림책을 보며
나비처럼 새처럼 춤추며 즐겁게 놀고 있네요.~*^^*

숲노래 2013-06-08 14:39   좋아요 0 | URL
늘 좋은 빛을 보며
서로 좋은 생각
누린다면...

참 아름답겠지요...
 
지구는 푸른빛이었다 - 인류 최초의 우주비행사 유리 가가린의 우주로 가는 길
유리 알렉세예비치 가가린 지음, 김장호.릴리아 바키로바 옮김 / 갈라파고스 / 200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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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아름다운 지구별 느끼기
 [환경책 읽기 43] 유리 가가린, 《지구는 푸른빛이었다》(갈라파고스,2008)

 


- 책이름 : 지구는 푸른빛이었다
- 글 : 유리 알렉세예비치 가가린
- 옮긴이 : 김장호,릴리아 바키로바
- 펴낸곳 : 갈라파고스 (2008.4.5.)
- 책값 : 9000원

 


  개구리가 있기에 메뚜기를 잡아먹습니다. 제비가 있어 나비를 잡아먹습니다. 메뚜기가 있어 풀을 뜯어먹습니다. 나비가 있어 꽃가루받이를 시켜 줍니다. 풀이 있으니 흙을 붙잡으며 한 해를 살다가 천천히 시들어 흙을 북돋우는 거름이 됩니다. 나비가 있으니 애벌레가 풀잎과 나뭇잎 알맞게 갉아먹으며 자라서 허물을 벗고, 허물은 땅으로 떨어져 흙을 살리며, 나비 또한 즐겁게 한삶 누리다가 땅을 살리는 거름으로 다시 태어납니다.


  지구별 이루는 목숨을 돌아보면, 어느 하나 쓸모없지 않습니다. 사람들은 풀이나 나무나 벌레나 짐승을 ‘사람한테 도움이 되는’ 쪽과 ‘사람한테 도움이 안 되는’ 쪽으로 섣불리 가르지만, 어느 목숨이든 도움이 안 될 수 없습니다. 아니, 어느 목숨이든 도움이 되려고 태어나지 않습니다. 어느 목숨이든 지구별을 살찌우는 숨결이 되고, 어느 목숨이든 지구별 이웃 숨결을 한껏 누리면서 삶을 잇습니다.


  풀열매나 나무열매를 먹는 새들은 멀리멀리 날아다니면서 풀씨와 나무씨를 퍼뜨립니다. 풀과 나무는 맛나고 좋은 열매를 맺으려고 애쓰고, 새들은 맛나고 좋은 열매를 얻어먹으면서 풀과 나무가 어디에서나 씩씩하게 뿌리내리면서 퍼지도록 해 줍니다.


  구름이 모여 비가 내립니다. 비가 내리며 냇물을 이룹니다. 시냇물이 되고 골짝물이 됩니다. 도랑물이 되고 못물이 됩니다. 들과 멧골을 흐르는 물은 흙을 실어 날라 냇가와 못가와 바닷가를 빚습니다. 비가 내리고 내리면서 들과 멧골에 있던 흙이 바다로 쓸리며 사라질 듯 생각할 수 있지만, 들과 멧골에서는 풀과 나무와 짐승과 벌레가 끝없이 나고 스러지면서 새로운 흙이 생깁니다.


.. 그전처럼 대자보를 편집하고, 딸과 놀아 주고, 셰익스피어의 비극이나 체호프의 단편을 읽었고, 빅토르 위고의 《바다의 노동자》를 독파했다 … 나는 자주 공원의 벤치에 앉아서 이러한 것들을 생각해 보았다. 벤치 위로 가지를 늘어뜨린 큰 나무는 어린 싹들을 이미 사방으로 퍼뜨렸을 것이다. 혼자가 되어서 하루의 지난 일과 자신에 대한 생각을 반성해 보는 것이 정신적으로 좋다. 해질 무렵은 대자연뿐만 아니라 공기까지 빨갛게 물드는 시간이자, 은하계의 별이 연기처럼 밤하늘에 등장하기 시작하는 순간이기 때문이다 ..  (24, 40쪽)


  한겨레가 쓰는 말 사이에는 처음부터 한자말이 없었습니다. 한겨레가 사이좋게 어울려 지내는 삶 아닌, 권력을 휘두르거나 거머쥐려는 이들이 정치를 세우고 행정을 닦는다 하면서 이웃나라 중국에서 ‘중국 권력자와 지식인’이 쓰던 글을 끌어들여 처음으로 한자말을 썼습니다. 한겨레에서 권력자와 지식인 노릇을 하던 이들은 중국글을 쓰면서 중국말을 나누었고, 이런 말마디 가운데 한 가지 두 가지씩 ‘한자말’이라는 모습으로 여느 사람들 사이에 스며듭니다. 오늘날 영어가 여느 사람들 사이에 자꾸 스며드는 모습하고 똑같습니다. 일제강점기에 일본말이 수없이 스며든 모습하고 똑같습니다.


  한겨레는 한겨레 말을 하지요. 요샛말로 하자면 한국말입니다. 1400년대에 어느 임금이 훈민정음(한글)을 빚지 않았어도, 여느 사람들은 누구나 한국말을 나누었습니다. 글이 없대서 걸리적거리지 않았고, 글이 없기에 말을 못하지 않았습니다. 여느 사람들로서는 글은 그닥 쓸모없었어요. 흙을 보듬고 숲을 살리며 물을 섬기는 여느 사람들은 이녁 말(한국말)로 풀이름 짓고 나무이름 지으며 벌레이름 짓습니다. 벼, 볍씨, 쌀, 밥, 겨, 쭉정이 같은 낱말은 임금님이 짓지 않았습니다. 호미, 괭이, 쟁기, 쇠스랑, 코뚜레, 새끼줄, 짚신, 키, 절구, 방아, 솥, 아궁이, 부엌 같은 낱말은 지식인이 짓지 않았습니다.


  생각해 보셔요. 옷, 밥, 집 같은 낱말을 누가 지었을까요. 사람, 마음, 사랑 같은 낱말을 누가 지었을까요. 생각, 꿈, 믿음 같은 낱말을 누가 지었을까요. 이웃, 두레, 다리, 섬, 하늘, 땅, 흙, 나무, 풀 같은 낱말을, 또 바다, 배, 바람, 해, 달, 별 같은 낱말을 누가 지었을까요.


  흙을 보듬고 숲을 살리며 물을 섬기는 여느 사람들은 글 한 줄 안 쓰더라도 말빛으로 삶빛 일구었어요. 여느 사람들은 말숨으로 삶자락에 푸른 숨결 북돋았어요. 여느 사람들은 말마디로 삶무늬 보살폈어요.


.. 짧은 기간 동안 우리는 무려 40회나 낙하했다. 한 회 한 회가 결코 같지 않았고 매번 다른 체험을 했다. 그래서 언제나 불안과 희열이 교차되는 감정을 맛보았다. 뛰어내리기 직전 온몸에 밀려오는 피로감, 내려오면서 느끼는 스릴과 쇼크, 그리고 바람을 찢는 소리가 가장 마음에 들었다. 낙하훈련은 인격을 단련시키며 의지를 굳게 한다 … 우주공간을 날다 보면 연락이 두절되어 갑작스레 혼자 고립되는 사태가 발생하지 않으리란 보장이 없다. 우주비행사의 모든 정신과 신경계통은 우연한 사고, 예상치 못한 사건에 반드시 대비해야 한다. 완전한 고독에 접어들면 인간이란 자신의 과거를 생각하고, 지난 인생을 다시 돌이켜보게 된다. 그러나 나는 미래에 대해서 생각하려 했고, 주변의 신뢰를 한몸에 받으며 우주로 날아가는 날만을 생각했다 ..  (45, 74쪽)


  우리가 오늘날 쓰는 말과 지난날 사람들이 예전에 쓰던 말을 헤아려 봅니다. 여느 사람들도 ‘다투다’라든지 ‘싸우다’ 같은 낱말을 썼으나 ‘전쟁’ 같은 낱말은 권력자와 지식인이 한자말로 지어 끌어들였습니다. ‘독재’라든지 ‘부정부패’ 같은 한자말도 그렇지요. ‘범죄’라든지 ‘차별’ 같은 한자말도 그래요.


  한국말에 ‘거짓’이나 ‘잘못’이나 ‘해코지’ 같은 낱말이 있습니다. 곰곰이 생각합니다. 이런 한국말은 왜 생겼을까요. 이런 한국말은 어느 자리에 썼을까요. 이 나라뿐 아니라 이웃한 나라에서도 여느 사람들은 이웃나라로 쳐들어 간다거나 이웃나라를 짓밟겠다는 생각을 품지 않습니다. 권력자와 지식인이 ‘전쟁’을 생각합니다. 예나 이제나 권력자와 지식인이 ‘부정부패’를 저지릅니다. 예나 이제나 권력자와 지식인이 ‘범죄’라든지 ‘차별’을 만들고, 여느 사람들을 꽁꽁 묶으려고 ‘법’을 만듭니다. 누구나 생각을 기울이면 쉬 알 텐데, 먼먼 옛날부터 시골에서 흙 만지고 살던 사람들은 ‘법’을 몰랐어요. 법을 몰랐어도 법을 어긴 적 없고, 법을 모르지만 ‘흙’을 알고 ‘숲’을 알기에, 흙과 숲을 사랑하고 아끼는 길을 걸어가며 이웃과 어깨동무를 하고 두레를 하며 품앗이를 했어요.


  지구별이 아름답다면, 지구별 이루는 흙과 숲을 제대로 헤아리면서 제대로 보듬고 제대로 누릴 줄 아는 사람이 함께 있기 때문이라고 느낍니다. 지구별이 아름답지 못하다면, 사람들이 차츰차츰 흙과 숲을 멀리하거나, 흙과 숲을 잊거나, 흙과 숲을 망가뜨리기 때문이라고 느낍니다.


  참 그렇습니다. 예나 이제나 전쟁을 일으키거나 일삼은 권력자와 지식인은 흙을 안 만지고 숲에 깃들지 않았습니다. 예나 이제나 돈·힘·이름을 거머쥐려 용쓰고 다툼질 벌이는 권력자와 지식인은 흙이랑 숲하고 동떨어진 데에서 살았습니다.


.. “이름은?” 아무것도 없었다. 아직 이름도 없고 단지 실험용 번호만 붙여졌을 뿐이란 대답을 들었다. 이름도 없고 여권도 없는 여행객을 우주로 보내다니! 그럴 수는 없다. 우리들은 개의 이름을 짓기로 했다. 흔한 개 이름이 열 개 정도 거른됐지만 이런 귀여운 털북숭이에게는 어느 것도 어울리지 않았다. 그때 나는 누군가 날 부르는 바람에 개를 땅에다 내려놓고 아무 생각 없이 이렇게 말했다. “자, 잘 있어, 즈뵤즈도치카(작은 별).” ..  (93쪽)


  작은 벌레도 흙과 숲을 압니다. 작은 풀 한 포기도 흙과 숲을 압니다. 아직 어린 조그마한 나무 한 그루도 흙과 숲을 압니다. 그런데, 대학교를 마치거나 나라밖으로 배우러 다녀온 사람들은 흙도 숲도 모릅니다.


  국토해양부 장관이나 공무원은 흙과 숲을 얼마나 아나요. 대통령은, 국회의원은, 시장은, 군수는, 도지사는, 구청장은, 면장은, 시의원은, 군의원은, 흙과 숲을 얼마나 아나요. 아파트 끝없이 올려세우는 건설회사 일꾼은 흙과 숲을 얼마나 아나요. 판사나 검사나 의사나 간호사는 흙과 숲을 얼마나 알까요. 교사나 교수는, 학자나 기자는, 운전수나 공장 일꾼은, 저마다 흙과 숲을 얼마나 아는가요.


  흙을 모르고 숲을 모르니 지구별을 모릅니다. 지구별을 모르니 지구별 빛깔과 무늬와 냄새를 모릅니다. 지구별이 어떤 빛깔이고 무늬이며 냄새인가를 모르기에 지구별을 사랑하거나 아끼지 못합니다.


  풀을 모르는 사람이 풀을 아끼지 못해요. 나무를 모르는 사람이 나무를 사랑하지 못해요. 풀과 나무와 흙과 숲을 아는 사람이 땅에 섣불리 농약이나 비료를 치지 못해요. 풀과 나무와 흙과 숲을 알아 지구별 사랑하는 사람이 함부로 자가용 장만해서 굴리지 못해요.


.. 우주선 선실로 통하는 엘리베이터를 타기 직전에 나는 신문과 라디오를 위한 메시지를 발표했다. 정신이 고양되며 일찍이 없었던 힘이 느껴졌다. 내 육체와 영혼에 자연의 음악이 들렸다. 처음에는 풀이 바스락거리는 소리에서 바람이 윙윙거리는 소리로 바뀌었고, 잠시 후 그 소리는 절벽 해안을 찢어 놓는 격렬한 파도소리에 흡수되어 버렸다 … 나는 구름을 보았다. 멀리 그리운 지구에 떨어뜨린 옅은 그림자를 보았다. 잠시 내 마음속에 콜호스의 한 어린 소년의 모습이 떠올랐다. 검게 덮인 하늘이 마치 갈아엎은 밭처럼 보였던 것이다. 거기에는 별이라는 씨앗이 심어져 있다..  (124∼125, 139∼140쪽)


  유리 가가린 님이 쓴 《지구는 푸른빛이었다》(갈라파고스,2008)라는 책을 읽으며 생각합니다. 우주선을 타고 지구 바깥으로 나간 첫 사람인 유리 가가린 님은 지구별 바깥으로 나가서 지구별을 바라보면서 “아! 아름답다!” 하고 말했다 합니다. 그러나 이내 이 아름다움 느끼던 마음을 내려놓습니다. 이녁한테 주어진 몫(정보수집)을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우주선을 만들고, 우주개발을 꾀하며, 우주탐사를 하려는 소련과 미국이었으니, “아름다운 지구별” 느끼기보다는 서로 툭탁툭탁 다투면서 “정보수집”에 핏대를 올릴밖에 없었으리라 싶습니다. 그래서 《지구는 푸른빛이었다》라는 책에서도 유리 가가린 님은 “아름다운 지구별”을 더 즐겁게 이야기할 수 있었으나, 자꾸자꾸 ‘소련 중앙당 섬기는’ 말을 섞습니다. 우주선을 타고 지구를 한 시간 반 동안 한 바퀴 돌며 느낀 아름다운 생각을 들려주기보다는 ‘우주개발에서 첫 업적 이룬 소련 중앙당 섬기는’ 말로 자꾸 기울어집니다.


.. “아! 아름답다!” 무의식중에 감탄사가 터졌다. 그러나 즉시 입을 다물었다. 나의 임무는 구체적인 정보를 전달하는 일이지, 자연의 아름다움을 보여주는 일이 아니다 … 지구는 선명한 색조로 아름다움이 넘쳐났으며 옅은 푸른빛이었다. 그 옅은 푸른빛은 서서히 어두워졌고 터키석 같은 하늘색에서 파란색, 연보라색으로 바뀌었다가 다시 석탄 같은 칠흑이 되어 갔다. 이 변화는 정말로 아름다웠고 눈을 즐겁게 했다 … 나는 지루함을 느끼지 않았고, 고독도 느끼지 못했다 ..  (133, 140∼141쪽)


  우주선 타고 달에 내려간 미국사람은 맨 먼저 미국 깃발을 달에 꽂고 사진을 찍었어요. 생각이 참 얕아요. 아니, 스스로 얕은 생각에 머물고 말아요. 달에 미국 깃발 꽂으면 달이 미국 것 될까요. 지구별에서 우주선 타고 우주로 나왔으면 우주가 미국 것이나 소련 것 될까요.


  비행기에 폭탄과 미사일 잔뜩 싣고 어느 나라로 쳐들어 가서 폭탄과 미사일 마구 퍼부으면 ‘어느 한 나라’가 전쟁무기 많은 나라 것이 될까요. 주먹질과 발길질로 어느 한 사람 두들겨패면, ‘어느 한 사람’은 주먹힘 센 사람 밑에 꿇어앉아 노예가 되어야 할까요.


.. 미국의 우주비행사들은 우리들처럼 평화적인 일에 종사하게 될까, 아니면 전쟁준비를 위한 노예가 될까 … 복잡한 일을 계속하면서도 나는 생각을 멈출 수 없었다. 여러 생각이 머릿속에 떠올랐다. 모두 유쾌하고 떠들썩한 것들이었다 … 밀려오는 행복함을 주체할 수 없어서 나는 가장 좋아하는 노래를 큰 소리로 부리기 시작했다 ..  (143, 148, 151쪽)


  개구리 우는 철이 돌아옵니다. 매미와 풀벌레 나란히 우는 철이 다가옵니다. 이윽고 가을걷이에 바쁜 철이 돌아올 테고, 조용한 들판에 멧새 노래하는 철이 다가오며, 호젓한 들과 멧자락에 소복소복 흰눈 내리는 철이 다가옵니다. 흰눈 맞으며 동백꽃 붉은 철 지나면, 맑고 푸른 바람이 온누리 보듬는 철이 다가오고, 풀꽃과 나무꽃 흐드러지면서 들딸기 익고 살구랑 복숭아 익는 철 다가오겠지요.


  제비가 돌아와 집을 짓지 못하는 곳에 농약과 비료를 자꾸 씁니다. 개구리가 노래할 수 없는 곳에 기계와 시멘트가 자꾸 들어섭니다. 사람이 살아가는 곳에서 흙이 사라지고 숲이 없어집니다. 아름다운 지구별에서 아름다운 사람으로 살아가는 꿈과 빛이 어느덧 옅어지고 흐려집니다. 흙이 없이 아스팔트 있는 터전은 얼마나 살 만할까 궁금합니다. 숲이 없이 시멘트 층집 우람한 터전은 얼마나 아름다울까 궁금합니다.


  어깨에 짊어진 짐을 내려놓아요. 두 손에 품을 사랑과 꿈을 생각해요. 귀를 찢는 시끄러운 소리에서 벗어나요. 귀를 살며시 보듬는 따사로운 노랫소리 감도는 마을 되도록 생각을 모아요. 아름답게 태어나 아름답게 살아갈 숨결입니다. 아름답게 서로 아끼면서 함께 웃을 우리들입니다. 4346.5.13.달.ㅎㄲㅅㄱ

 

(최종규 .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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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까이 - 효리와 순심이가 시작하는 이야기
이효리 지음 / 북하우스 / 201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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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재미있는 삶과 고운 꿈
 [환경책 읽기 42] 이효리, 《가까이》(북하우스,2012)

 


- 책이름 : 가까이
- 글 : 이효리
- 펴낸곳 : 북하우스 (2012.5.24.)
- 책값 : 12800원

 


  소리가 흐릅니다. 귀를 기울이면 귀를 기울이는 대로 나한테 흘러드는 소리를 듣습니다. 귀를 기울이지 않으면 귀를 기울이지 않는 대로 내 둘레에서 퍼지는 소리를 듣습니다.


  시골마을 보금자리에서는 하루 내내 들새와 멧새 노래하는 소리를 듣습니다. 시골마을 감도는 바람이 나뭇가지와 풀잎 사그락사그락 사부작사부작 건드리는 소리를 듣습니다.


  밥상을 차리면서 풀을 복복 뜯습니다. 풀마다 뜯는 소리 다릅니다. 부추잎 뜯는 소리와 쑥잎 뜯는 소리 다릅니다. 소리가 다르면서 냄새가 다릅니다. 돗나물 뜯을 적하고 별꽃나물이나 꽃마리나물 뜯을 적에도 소리와 냄새가 달라요. 손가락에 푸른 물이 살곰살곰 돌면서 푸른 내음 짙게 뱁니다.


  풀을 뜯다가 제비 노랫소리 들려 고개를 듭니다. 제비는 사람을 아랑곳하지 않고 저희 둥지에 내려앉기도 하지만, 곧잘 사람을 살피며 지붕 위를 휙휙 잰 날갯짓으로 춤추듯 날아다니기도 합니다. 제비가 날갯짓 하며 휙휙 내는 소리를 듣습니다. 참새는 째째 째째 하면서 봉실봉실 통통한 몸뚱이 바람 가르는 소리를 냅니다. 까마귀랑 까치는 또 까마귀와 까치대로 사뭇 다른 날갯짓 소리를 들려줍니다.


.. 나는 지금 새로운 길을 달려가고 있다 … 누구보다 나 스스로에게서 사랑받지 못한 내가 안쓰러웠다 … 돌이켜보면 돈을 아무리 벌어도, 내가 쓸 깨끗한 수건 한 장 신선한 우유 한 병 사 본 적이 없었다. 늘 남들한테 보여야 하는 옷, 신발, 가방, 액세서리, 그런 걸 사는 데 신경을 썼지, 진짜 나 자신을 위해 보약 한 재 지어 먹은 적이 없었다. 보약은커녕 집에 변변한 먹을거리 하나 없었다. 비염이 있고 장이 안 좋아 다음날이면 고생을 하면서도 매일 술을 마시며 나를 돌볼 생각을 전혀 하지 않았던 시간들. 그 시간들은 저 뒤로 밀어버리고 이제는 나에게 관심을 두기로 했다 ..  (9, 107, 110쪽)


  고흥과 가까운 도시 순천으로 나오면, 시골집에서 듣던 소리 모두 사라집니다. 풀소리도 나무소리도 새소리도 바람소리도 못 듣습니다. 흙땅 밟을 적에 볼락볼락 흐르는 소리도 들을 수 없습니다. 도시에서는 시멘트나 아스팔트 딱딱한 길바닥 밟으며 아무런 소리 내지 못합니다. 그리고, 자동차와 오토바이 소리 그득 넘칩니다. 널따란 찻길에 커다란 자동차 끝없이 오갑니다. 건물에 깃들어도 자동차 소리 울립니다.


  순천으로든 서울로든 인천으로든 부산으로든, 도시로 가끔 볼일 보러 나들이를 할 적에 가만히 귀를 기울입니다. 이곳에서 내 귀를 따사롭게 간질이는 소리로 무엇이 있을까 헤아리면서 귀를 기울입니다.


  도시에는 사람 많고 아이들 많습니다. 시골에는 사람 적고 아이들 뜸합니다. 까르르 웃고 떠드는 도시 아이들을 물끄러미 바라봅니다. 아이들은 웃고 떠들지만, 정작 이 웃는 얼굴에서 흘러나오는 말소리는 되게 거칩니다. 어쩜 저렇게 까르르 웃어대면서 입으로는 거친 말마디 쏟아질 수 있는지.


  아이들 탓할 수 없는 노릇이지요. 왜냐하면, 아이들은 저런 거친 말을 바로 어른들한테서 배우거든요. 어른들이 둘레에서 거친 말을 쓰니까 아이들은 거친 말에 익숙합니다. 어른들이 늘 곱거나 바르거나 상냥하거나 따사롭거나 보드랍거나 포근한 말마디로 꿈과 사랑을 노래한다면, 아이들은 도시에서건 시골에서건 따사롭고 아름다운 말마디 노래해요.


  골목에서 조용히 달리는 자동차나 오토바이 아주 드뭅니다. 큰 찻길에서도 알맞춤한 빠르기로 달리면서 소리 적게 내는 자동차나 오토바이 매우 적습니다. 모두들 더 빨리 가려 하고, 모두들 더 큰 소리 내려 하며, 모두들 우격다짐으로 달겨듭니다.


.. 중앙시장에 있던 아빠의 작은 이발소에 무작정 찾아 들어온 똥개 한 마리. 처음부터 그러기로 한 것처럼 불쑥 우리 집에 나타난 녀석을 아빠는 그냥 보낼 수가 없어 빵을 조금 주었다고 한다 … 나는 새끼를 뺏긴 메리의 심정을 헤아리기에는 너무 어렸다. 그저 친구들이 지나다니는 시장통에 나가 앉아 강아지를 파는 게 정말 창피했을 뿐 … 사람이든 동물이든 마음을 준다는 건 그런 것 같다. 떠나 보낼 때는 마음도 떼어 보내는 것이고, 그 빈자리가 먹먹해서 자꾸 돌아보게 되는 것. 게다가 일 년이면 사계절을 같이 보냈을 것이니 크고 작은 추억들이 얼마나 많을까 ..  (19, 25, 58쪽)


  시골마을 고양이를 바라봅니다. 우리 집으로 먹이 찾으러 들어오는 고양이들은 밭자락에든 돌울타리에든 느긋하게 앉습니다. 뭐 좀 먹을 것 없느냐며 우리 식구를 빤히 바라봅니다.


  배부른 시골고양이는 논 한복판이나 밭 한복판에 앉은 채 꾸벅꾸벅 졸기 일쑤입니다. 때로는 아예 엎드려 자는 시골고양이 있습니다. 논이나 밭 한복판에 앉거나 엎드리면, 게까지 좇아 들어와 나무작대기 흔드는 사람 아무도 없어요. 시골고양이는 그야말로 한갓지게 낮잠 누립니다.


  도시로 마실 나오면 도시에서 지내는 골목고양이 만납니다. 사람을 꺼리지 않는 골목고양이 때때로 있지만, 고개 홱 돌리면서 잰 발놀림으로 시멘트 담벼락 사뿐 올라타고는 저 멀리 사라지는 골목고양이 더 많습니다. 해코지할 생각 없는 사람을 마주하더라도, 골목고양이로서는 몸을 사리는 쪽이 훨씬 나은 줄 아는구나 싶어요. 사람들은 얼굴에 탈을 쓰고 저희(골목고양이)한테 다가와 갑작스레 그물로 나꿔채기도 하잖아요.


.. 처음에 얼마나 불안했을까. 그걸 왜 헤아리지 못했을까. 나는 뭐가 그리 급해서 기다리지 못했을까? 분명히 적응기였을 텐데 … 누군가가 귀한 대접을 해 주면 내가 얼마나 귀한 사람인지 알게 된다. 언니는 언니가 가지고 있는 맑고 긍정적인 에너지를 내게 고스란히 부어 주었다 … 세상에 알려진 ‘이효리’라는 이름을 이용해 보기로 한다. 여론을 모으고, 캠페인에 힘을 쏟기로 한다. 가식이야, 거짓이야, 속임수야 식의 비뚤어진 손가락질은 못 들은 척하면 그만이다. 진실이 아니니까. 지치지 않는 의심의 눈초리, 그것도 상관 없었다. 나는 내가 해야 하는 일들과 하고 싶은 일들에 시간을 쏟는 것만으로도 바쁘다 ..  (75, 114, 159쪽)


  해는 어디이든 골고루 비춥니다. 햇살은 어디에나 포근히 내려앉습니다. 햇볕은 아파트 높다란 벽이든 너른 들판이나 멧자락이든 찬찬히 보듬습니다. 시골에서는 봄날과 가을날에 너덧 시 사이에 동 트는 하야말그스름한 기운 느낍니다. 시골 여름날에는 네 시를 넘어갈 무렵부터 희뿌옇게 밝는 기운 느끼지요.


  도시에도 새벽은 똑같이 찾아와요. 도시에서도 너덧 시에 새벽 기운 느낄 만합니다. 그러나, 도시에서는 하늘이 밝는 기운보다 시계로 새벽을 살핍니다. 시계를 살펴 사람들이 움직입니다. 달력을 살펴 사람들이 일합니다. 도시사람은 날씨나 철이나 바람이나 햇볕이나 비나 눈에 따라 일하지 않아요. 도시사람으로서는 한겨울이건 한여름이건 늘 똑같은 일을 합니다. 도시사람은 늘 똑같은 옷을 입고, 늘 똑같은 시계를 바라보면서 똑같은 탈거리에 몸을 실어 똑같은 일터를 드나듭니다.


  시골사람은 달력이나 시계를 보며 씨앗을 심지 않습니다. 시골사람은 달력이나 시계에 따라 곡식을 거두지 않습니다. 시골사람은 달력이나 시계를 아랑곳하지 않습니다. 날씨에 따라 곡식을 돌보고, 철과 날과 때에 맞추어 논과 밭을 일굽니다.


  그런데, 시골에서 나무열매 하나를 따더라도 ‘나무 한 그루에서 맺는 열매’가 저마다 달라요. 먼저 익는 열매가 있고 천천히 익는 열매가 있어요. 같은 나무 한 그루에서 맺는 열매라 하지만, 따서 먹는 때가 모두 달라요. 게다가, 같은 나무 한 그루에서 얻는 열매조차 모두 맛이 조금씩 다르지요.


  다 다른 사람들이 다 다른 보금자리에서 다 다른 땅을 다 다른 사랑으로 일굽니다. 다 다른 사람들이 다 다른 몸빛과 마음빛 살피면서 들일을 합니다. 다 다른 사람들이 다 다른 꿈과 사랑을 씨앗 한 톨에 담아 다 다른 밭자락이나 논뙈기에 심습니다. 다 다른 꿈과 사랑을 먹으며 크는 씨앗은 저마다 다른 따스함을 품으면서 알알이 익습니다.


.. 고민 없이 (자가용을) 팔고, 그후 이동할 일이 있으면 대중교통이나 택시를 이용했다. ‘알아보면 어쩌나’ 하던 생각은 ‘알아보면 뭐 어때’로 바뀌었고, 마음은 편안해졌다. 신기하기도 하지. 차를 팔고 걷다 보니 오히려 일상이 풍요로워졌다. 차가 있으면 편하긴 하지만 그게 삶을 풍요롭게 해 주진 않는다는 사실을 알았다. 걸으면서 불쑥불쑥 나타나는 길고양이들, 추운 겨울 연탄불 위에서 타닥타닥 소리 내며 익던 노란 밤 … 세상 참 각박하다 여겼는데 아니었다. 보이지 않는 곳에 꽃들이 피어 있었다. 그걸 보지 않은 건 나였다 ..  (120, 169쪽)


  이효리 님 살아온 이야기와 곁짐승 이야기 들려주는 《가까이》(북하우스,2012)라는 책을 읽으며 생각합니다. 흔히 ‘애완동물’이나 ‘반려동물’이라는 말을 많이 쓰지만, 이 두 가지 이름 모두 그닥 어울리지 않는다고 느껴요. 가만히 보면, 사람들과 함께 살아가는 짐승들은 모두 사랑스럽고(애완), 늘 함께(반려) 있어요.


  내 고운 짝꿍(아이 어머니)은 나한테 옆지기라고 느낍니다. 내 짝꿍은 나를 이녁 옆지기라고 느낍니다. 나는 이녁을, 이녁은 나를, 서로 옆지기라 부릅니다.


  사람들과 함께 살아가는 짐승들도 옆지기라 할 만합니다. 따로 이름 하나 붙인다면, ‘옆짐승’ 또는 ‘곁짐승’ 되겠구나 싶어요. 곁에서 함께 살아가는 따사로운 벗님이라는 뜻에서 곁짐승이에요.


.. 생명에 대한 존중 없이 소유한 아이가 죄책감이나 미안함을 느끼기는 쉽지 않겠지 … 유기견은 더럽고 병들고 떠돌던 개가 아니에요. 언제 어디에선가 사랑받았던 개죠. 사람들의 변덕으로 버려졌을 뿐이에요 … 이제 와 알게 된 사실이지만, 그때까지도 나는 우리가 먹는 소나 돼지는 광고의 한 장면처럼 푸른 목초지에서 풀을 뜯으며 자라고, 쓰임이 다하고 난 후 식용으로 처리되는 줄 알았다. 그런데 사실은 그리 아름다운 풍경이 아니었다 … 채식 선언을 하고 모피 반대 선언을 한 후, 들어오던 광고도 많이 끊겼다(라면, 피자, 치킨 등 음식 광고가 거의 불가능해졌다) ..  (180, 191, 198, 249쪽)


  이효리 님은 어떤 뜻을 품고서 떠돌이짐승을 따사롭게 건사한다 할 수 있습니다. 이효리 님은 당신이 겪은 슬프거나 힘들거나 아픈 지난날 돌아보면서 떠돌이짐승을 곁짐승으로 두며 사랑을 길어올리고 싶다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것도 저것도 아닌, 그저 좋아서, 그저 이효리 님 당신 삶을 좋아하고 싶어서, 떠돌이짐승한테 사랑스레 눈길을 보내다가는, 이들 떠돌이짐승을 곁짐승으로 두면서 스스로 사랑스레 씩씩하게 살아가자 다짐하는지 몰라요.


  좋으니까요. 이효리 님 스스로 이효리 님 삶이 좋으니까요. 노래하는 삶이 좋고, 춤추는 삶이 좋으니까요. 텅 비다시피 하던 집구석을 ‘집구석’ 아닌 ‘보금자리’ 되도록 차근차근 가꾸고, 술고래처럼 노닥거리던 삶을 고이 접고는 들풀과 들나물 즐기면서 이효리 님 스스로 몸을 살찌우다 보니, 이런 나날이 참 아름답다고 느껴서 좋으니까요.


.. 무엇부터 끊어야 할까? 제일 쉬운 것부터. 텔레비전을 끈다. 브라운관에 고정되어 있던 눈이, 시끌벅적한 소리에 집중하던 귀가, 마당 쓰는 빗자루 소리, 눈이 창밖에 쌓이는 모습, 내가 내어놓은 밥을 먹는 동네 길고양이들을 향한다. 지루할 틈이 없다. 집안에서 소소한 즐거움을 알아 간다. 흥청망청하지 않아도 재미있게 보낼 수 있는 방법을 알아 가고 있다 … 소속사로 하루가 멀다 하고 ‘그 입 다물라’라는 전화가 끊이지 않고, 온갖 악플들도 난무하지만 어쩌겠는가? 그렇다고 해서 그만둘 수는 없는 노릇인지라, 나는 그저, 정말 자연이 보존됐으면 좋겠고, 동물들과 더불어 행복했으면 좋겠고, 약한 사람들이 더불어 잘 살았으면 좋겠다. 음, 그런데 내가 바라는 게 그렇게 엄청나고 심각한 일인가 ..  (244, 274쪽)


  누구나 재미있는 삶입니다. 돈이 더 있대서 재미있는 삶이 아니라, 스스로 웃고 노래하며 어깨동무하는 삶으로 나아가기에 재미있는 삶입니다. 누구나 고운 꿈 꿉니다. 이름값을 얻거나 권력을 거머쥐어야 고운 꿈 아니에요. 활짝 웃고 맑게 노래하며 서로 어깨춤 둥실둥실 왁자지껄 즐길 때에 고운 꿈이에요.


  마음에 사랑 있어 사랑을 그려요. 마음에 꿈 자라니 꿈을 그려요. 마음에 이야기 담아 이야기를 노래해요. 마음에 웃음을 담으면서 살그마니 웃음꽃 지어요.


  삶은 예쁜 아이들과 날마다 누리는 꽃입니다. ‘예쁜 아이들’은 고운 옆지기랑 살아가며 낳은 딸아들일 수 있고, 떠돌이짐승일 수 있어요. ‘예쁜 아이들’은 숲속 들꽃 한 송이일 수 있고, 들판에서 자라는 푸른 나무 한 그루일 수 있어요.


  우리 다 같이 재미나게 살아요. 우리 서로서로 아끼고 사랑하는 고운 꿈 꾸어요. 즐겁게 손을 내밀고, 기쁘게 활짝 웃어요. 사랑은 누구나 마음속에서 흘러요. 꿈은 누구나 마음밭에서 자라요. 가는 사랑 고우면서 오는 사랑 곱고, 건네는 꿈 맑으면서 찾아오는 꿈 밝아요. 4346.4.24.물.ㅎㄲㅅㄱ

 

(최종규 .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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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문의 책 아나스타시아 6
블라지미르 메그레 지음, 한병석 옮김 / 한글샘 / 201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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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음으로 아로새겨 즐기는 책
 [환경책 읽기 40] 블라지미르 메그레, 《아나스타시아 (6) 가문의 책》

 


- 책이름 : 아나스타시아 (6) 가문의 책
- 글 : 블라지미르 메그레
- 옮긴이 : 한병석
- 펴낸곳 : 한글샘 (2011.2.9.)
- 책값 : 12000원

 


  (1) 마을살이


  비오는 가을 새벽입니다. 때때로 멀디먼 곳에서 천둥 치는 소리가 아스라히 들립니다. 가을 내내 듣던 풀벌레 노랫소리와 멧새 노랫소리는 빗물에 감겨 안 들립니다. 그예 들이붓는 빗줄기 아니라 사이사이 가만히 쉬는 가을비입니다. 빗소리 똑 끊길 즈음 멧새 한 마리 우리 집 뒤뜰로 찾아들어 삑삑삑삑 하며 노래하고 지나가는 소리를 듣습니다.


  비가 그친 가을밤을 맞이합니다. 아이들과 천천히 논둑길을 걷습니다. 저기 가까운 숲에서 밤새 노래하는 소리를 듣습니다. 쇳쇳쇠 쇳쇳쇠 노래하는 새는 깊은 밤에 무슨 이야기 실어 나긋나긋 소리를 밝힐까 궁금합니다. 조용한 마을에 가느다란 새소리 울려퍼집니다. 가느다란 새소리는 집집을 돌며 달빛 어린 꿈을 나누어 줍니다.


  가을이 흐릅니다. 밤에는 제법 선선하거나 쌀쌀하다 싶지만, 낮에는 따사로운 가을이 흐릅니다. 가을걷이 마친 논은 목아지 잘린 볏포기만 남습니다. 볏짚 동그랗게 마는 기계가 지나간 논은 커다란 짚더미가 군데군데 놓입니다. 가장 늦게 심어 가장 늦게 가을걷이를 기다리는 논은 아직 누런 알맹이가 바람에 살살 날립니다. 이제 시골에는 할머니 할아버지만 남아, 예전처럼 바쁘게 벼베기를 하지는 않습니다. 처음부터 차근차근 벼를 심습니다. 벼를 베어 논을 얼마쯤 묵히고 나서는 집집마다 두레를 하며 논에 마늘을 심습니다. 일손이 모두 할머니나 할아버지이기 때문에 서로 쉬엄쉬엄 두레를 하며 마늘을 심느라, 벼베기도 찬찬히, 마늘심기도 찬찬히, 날을 달리하며 일손을 놀립니다. 이렇게 해야 나중에 마늘을 뽑고 엮고 나를 적에도 두레를 할 수 있습니다.


.. 아이는 자라서 학교에 간다. 그런데 삶의 의미나 사람의 소명 혹은 그냥 그가 어떤 삶을 살 것인가에 대해서 대화를 나누는 것을 많은 사람들은 시간이 없거나 그런 대화는 중요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때가 되지 않았거나 앞으로 그럴 시간이 있을 거라 생각하는지도 모르겠으나, 결국은 그럴 시간을 놓치고 만다. 아이는 어른이 되니까. 그런데 우리 자신이 자기 아이들과 심각히 얘기를 나누려 하지 않는다면, 누가 아이들을 교육한단 말인가 … 사람은 모두 자신에 대한 진리를 깨달아야 해. 진리가 없다면, 거짓 전제 속에서 삶은 최면과 비슷한 거야 … 아이는 거짓으로 왜곡되지 않은 인류의 온 역사를 알아야 해 … 아버지가 말씀하신 물건들이 아이들에게 무슨 유익이 있나요? 아이들이 크는 동안 트랙터는 망가져요. 자동차는 녹슬고 집은 낡지요 … 부모라면 모두 반드시 깊이 생각해야 한다. 스스로! 오직 스스로 ..  (9∼10, 150, 152, 208∼209, 276쪽)


  이웃마을 이장님이 새벽방송을 합니다. 군청에서 ‘경관 사업’을 한다며 유채씨앗을 나누어 주는데, 그냥 되는대로 뿌리지 말고 제대로 트랙터로 갈아엎어 고랑을 만들어 살뜰히 심는 한편 비료도 주라고 이야기합니다. 이웃마을을 비롯해 우리 마을과 옆마을까지 다 함께 ‘유채씨 심는 경관 사업’을 제대로 하지 않으면 다음해에는 다른 마을로 이 사업이 넘어가니까, 허술하게 하지 말라는 얘기를 아주 길게 늘어놓습니다.


  군에서는 유채씨 심어 봄날 노란 꽃물결 넘실거리도록 하는 일을 맡기며 시골집마다 돈을 얼마씩 줄까요. 들판에 노란 유채꽃 물결지는 모습은 누구 보라고 만드는 일일까요.


  시골 분들 누구나 알 텐데, 굳이 유채씨를 뿌리지 않더라도 빈 들판에서는 온갖 풀꽃이 마음대로 피고 집니다. 꼭 노란 꽃물결이 넘실거려야 하지 않아요. 노란 꽃물결을 이루어야 예쁜 마을이 되지 않아요.


  들판에 자운영 바알간 꽃물결이 넘실거려도 어여쁩니다. 봄까지꽃이라든지 돗나물꽃이 넘실거려도 어여쁩니다. 이 꽃 저 꽃 뒤섞여 봄꽃이 넘실거려도 어여쁩니다.


  아니, 굳이 어떤 씨앗을 따로 심으면서 비료까지 주어야 할까 궁금해요. 겨우내 봄내 얼마쯤이라도 논흙도 쉬면서 새 기운을 북돋우도록 놓아 주어야지 싶어요.


.. 병들고 불행한 사회에서는 오직 병들고 불행한 아이들이 태어날 수밖에 없다 … 남자는 아이를 낳을 목적으로 여자를 가까이해야 하고, 태어날 아이를 상상하고, 아이의 탄생을 소망하는 순간이어야 합니다 … 종이 쪽지로 조건 지어진 혼인이란 부부관계가 아닙니다. 그건 단지 사회가 고안해낸 조건일 뿐입니다 … 참사람은 함께 지음에 있어 오직 사람한테만 내재하는 사랑, 앞일을 예견하는 능력, 지음에 대한 인식 등등의 에너지와 감정이 참여할 때에만 태어날 수 있습니다 … 사람의 출생의 시점을 정자와 난자가 수정되는 순간이라 해야 더 정확할까요? 생리적 입장에서 볼 때, 이때가 좀더 정확한 출생의 순간입니다. 그렇지만, 정자와 난자의 만남은 원인이 아닌 결과인 것입니다. 그보다 앞서, 두 사람의 생각이 있었지요. 출생일을 결정짓는 것은 바로 이것이 아닐까요 ..  (11, 20, 25, 29, 34∼35쪽)


  가을바람을 누립니다. 갑작스레 찬바람이 분다고 호들갑 떠는 사람도 있으나, 늦가을이니 찬바람이 불기 마련이에요. 이제 곧 겨울이 찾아오니 찬바람이 찾아들 만해요. 그러나, 새벽이나 밤에는 찬바람이라 하더라도 아침해가 활짝 웃음 띄며 찾아올 적부터 뉘엿뉘엿 해가 기울며 노을 지는 저녁까지는 따순바람인걸요.


  가을바람은 가을날 가을들을 살살 쓰다듬습니다. 겨울에 부는 겨울바람은 겨울녘 겨울멧골을 휘휘 저으며 춤춥니다. 봄에 부는 봄바람은 우리 아이들 머리카락을 슬슬 간질이며 노래노래와 함께 찾아듭니다. 여름에 부는 여름바람은 내 마음 곁에서 시원하게 감돌면서 하늘을 누리고 바다를 즐기며 흙을 사랑하는 손길을 속삭입니다.


  별을 바라봅니다. 시골집에서는 쏟아지는 밤별을 누립니다. 도시로 볼일을 보러 나올 적에는 아주 흐릿흐릿 가물거리는 별 몇 겨우 찾습니다. 도시사람은 밤에 별도 못 보면 무슨 즐거움을 누리나 싶지만, 정작 도시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은 별을 헤아리지 않아요. 별을 헤아리지 않으니 별을 누리는 즐거움을 몰라요. 다른 데에서 즐거움을 찾거든요. 나는 밤마다 별을 헤아리는 즐거움을 누리니까, 시골집에 있든 도시로 볼일 보러 나오든 언제나 고개를 치켜들어요. 하늘로 두 팔을 번쩍 올려요. 아, 별아, 별아, 내 목소리 들리니?


  아이들을 자전거수레에 태우고 이곳저곳 천천히 마실을 다니다가도 한 팔을 쫙 벌리며 바람이랑 속닥속닥 이야기꽃 피웁니다. 아, 바람아, 바람아, 내 노래가 들리니? 그러면 수레에 탄 아이들도 팔을 쫙 벌리며 아버지를 따라합니다. 야, 바람아, 바람아, 내 노래 듣니?


  새들 노랫소리를 봄부터 겨울까지 듣습니다. 봄과 여름과 가을과 겨울 따라, 새들 노랫소리는 다릅니다. 마땅하지요. 철과 날이 다른걸요. 참새는 짹짹 비둘기는 구구 노래한다고들 하지만, 참새 곁에 가만히 서서 참새 노랫소리를 들어 봐요. 멧비둘기 들판에 내려앉아 나락을 훑으려 할 적에 둘레에 조용히 서서 멧비둘기 노랫소리를 들어 봐요. 어느 참새도 ‘짹짹’거리지 않고, 어느 멧비둘기도 ‘구구’거리지 않아요.


.. 고급 슈퍼마켓에서도 품질이 좋은 식품을 구할 수 없습니다 … 산모에게는 자신이 익숙한 장소와 환경에서 출산하는 게 좋을 것입니다. 갓난아기한테는 더욱 그러하겠죠 … 이 사람들은 자기 하고 싶은 대로 하지 못하고, 누가 시키는 대로 해야 해요. 그러면 종이쪽지, 돈을 준대요. 나중에 이 돈을 음식과 바꾸는 거예요. 이 사람들은 달리 사는 방법을 모르고, 삶에 기뻐하는 걸 잊어버렸대요 … 공동묘지는 누구에게도 필요가 없어진, 고인의 생명이 없는 몸을 갖다 버리는 쓰레기 하치장 같은 것이란다. 자연스럽지 못한 행위가 벌어지는 곳이라서 사람들이 공동묘지를 무서워한다고 생각한다 … 봄 여름 그리고 가을 계절을 따라 일정 순서에 의해 다양한 식물들의 열매가 성장하고 열매를 맺는 것은 그냥 우연이 아니야 … 신성한 자연에서는 아무것도 어디로도 그냥 사라지지 않아. 다만 그 상태와 육을 바꾸는 것일 뿐이야 ..  (32, 36, 50, 96, 157, 165쪽)


  물을 마실 때마다 물을 가만히 바라봅니다. 물을 가만히 바라보며 살짝 한 마디 합니다. 고마워, 좋아, 내 몸으로 들어와 내가 되어 주렴.


  나는 물이 됩니다. 내 몸으로 들어온 물은 내가 됩니다. 나는 물을 마시면서 이 물방울이 어느 골짜기를 흐르다가 나한테 찾아왔는가 읽습니다. 골짜기를 흐르며 부딪힌 돌멩이를 떠올리고, 시냇물 되어 흐를 적에 어느 물고기 아가미를 거치다가 어느 가재를 만나고 어느 낚싯바늘을 건드리다가 천천히 하늘로 올라가 구름을 이루고, 빗방울 되어 하늘을 싱싱 날아 어느 밭뙈기 푸성귀 잎사귀를 톡 건드리고는 흙으로 스며들어 잎 하나 더 푸르게 북돋았을까 하고 그림을 그립니다. 물방울은 푸성귀 잎사귀를 한껏 푸르게 북돋우고는 다시 하늘로 나와 살살 피어나는 아지랑이 되어 또 구름이 됩니다. 또 빗방울이 되고 또 땅으로 내려오는데, 숲속 잣나무 뿌리로 스며들고, 또 구름 되어 또 빗방울 되어 땅으로 내려오다가는 내 물잔에 담기는 물방울이 되어요.


  물방울은 내 몸으로 스며들어 내가 되었다가는 땀이나 오줌으로 흘러나옵니다. 때로는 내 살결 구멍을 거쳐 살살 빠져나와 아지랑이처럼 훨훨 하늘로 올라가 새롭게 구름이 되어요. 참말 끝없이 나들이와 마실을 누리는 물방울이에요.

  내가 마시던 물은 내 아이들이 마시는 물이 됩니다. 내 아이들이 마시는 물은 할머니가 마시는 물이 됩니다. 할머니가 마시는 물은 저기 청와대에서 일하는 사람들 마시는 물이 되고, 이분들 마시던 물은 저기 광양제철소 일꾼이 마시는 물이 됩니다.


  물방울은 지구별을 끝없이 돌아다닙니다. 바람 또한 지구별 구석구석 끝없이 돌아다닙니다. 서로 하늘에서 만나 속삭입니다. 넌 어디 다녀왔니? 넌 어디에서 무엇을 보았니? 너는 누구 몸에 들어가 보았니?


  물방울이 내 몸으로 스며들듯, 바람은 내 콧구멍과 입을 거쳐 내 허파로 들어옵니다. 허파에서는 핏줄을 타고 몸 구석구석 빙빙 돕니다. 그러고는 새삼스레 내 콧구멍이나 입으로 빠져나와요. 때로는 내 살결 구멍을 타고 살그마니 빠져나오겠지요.


.. 우리는 이 공간에 사랑을 간직할 거예요 … 내겐 엄마 아나스타시아가 최고로 가깝고 좋아요. 꽃보다 구름보다 아름다워요. 엄마는 아주 재미있어요. 명랑해요. 항상 계셨으면 좋겠어요 … 하느님이 우리의 아버지이고, 우리 주위의 세상이 그가 지은 것이라면, 당연히 부모의 가장 큰 소원은 자기 자식이 사려 깊은 삶을 사는 것, 자식들이 세상의 이치를 깨닫는 것, 자신의 자식들과 함께 짓는 것이다 … 사람이 오늘 높은 곳에서 현대의 도시를 조망한다면, 무엇이 보일까? 엄청난 인공의 돌더미가 땅을 덮고 있어. 높이로, 그리고 넓이로 집들이 자라나. 여기저기 점점 더 넓은 공간을 돌 풍경이 가로막아. 그곳에 깨끗한 물은 없고 공기는 오염되었어. 그 엄청난 돌 무더기 속에서 행복한 가정은 얼마나 되지 ..  (75, 85, 103, 167쪽)


  사람들은 으레 비행기를 타고 먼먼 나라로 찾아가야 ‘여행’이라고 여깁니다. 참말, 비행기 나들이도 여행이 되겠지요. 배를 타도 여행이 될 테고, 자가용 몰아 고속도로 달려도 여행이 돼요.


  그런데, 돈을 들여 어디를 가고 무엇을 먹고 어느 집에 묵으며 하룻밤 보내야 여행일까 모르겠어요. 참말 마실이나 나들이란, 이렇게 지도에서 어디를 콕콕 찍어야 마실이나 나들이가 될까 궁금해요.


  고요히 눈을 감아 봅니다. 물방울이 돌아다니며 흐르는 길을 생각합니다. 바람이 어느 곳에서 어떻게 불다가 내 숨결이 되었다가 다시 밖으로 나와 온누리를 불고 돌아다니는가 그립니다. 햇살은 어느 곳을 얼마나 따사로이 비추는가를 헤아립니다.


  나는 몸을 움직이는 마실과 나들이도 하지만, 마음으로 온 데 온 곳 온 자리 돌아다니는 마실과 나들이도 합니다. 내 몸속 핏줄을 타고 돌아다니면서도 마실입니다. 내 머릿속 세포 하나하나 열면서 별빛과 달빛을 떠올리면서도 나들이입니다.


  가을잎이 집니다. 가을잎은 시골에서는 흙땅에 떨어져 천천히 삭으며 흙으로 돌아갑니다. 흙으로 돌아간 가을잎은 나무뿌리가 받아들여 새롭게 푸른잎으로 태어납니다. 또는 다른 풀씨와 섞이며 풀줄기가 됩니다. 도시에서는 가을잎이 돌아갈 흙이 없어 그만 비닐봉투에 담겨 쓰레기처럼 버려집니다. 뭉텅이 뭉텅이 잎사귀봉지를 담은 쓰레기차는 어디론가 갑니다. 어디로 갈까요?


  종이 한 장을 꺼냅니다. 아니, 종이 한 장을 굳이 꺼내지 않아도 됩니다. 시골에서는 따로 수첩이나 공책을 펼쳐야 하지만, 도시에서는 길을 조금만 걸어도 온갖 종이가 바람에 날려 뒹굴어요.


  아무 종이라도 좋기에 아무 종이라도 줍습니다. 이 종이 한 장은 어디에서 태어나 어디를 돌아다니다가 나한테 왔을까 생각합니다. 너는 어디에서 어떤 나무로 자라며 살다가 이런 광고종이가 되었니? 너는 어디에서 어떤 바람과 햇살을 누리는 나무로 살다가 이런 쪽종이가 되었니?


  나는 어느 종이라 하더라도 허투루 다루지 못합니다. 모든 종이는 나무에서 태어나거든요. 어떠한 종이라 하든 숲을 이루던 아름드리 나무였어요. 종이는 모두 숲바람을 일으키고 숲내음을 날리며 숲사랑을 펼쳐 주었어요. 이 나무들은 종이로 바뀌어 우리한테 찾아와요. 시골에는 숲이 있고 흙이 있으며 나무가 있기에, 굳이 종이가 없어도 되는데, 도시에는 숲도 흙도 나무도 없으니 종이라도 곳곳에 흩날리면서 사람들한테 ‘숲 이야기’를 들려주려 해요.

 


  (2) 살림살이


  밥을 짓습니다. 우리 집 식구들 먹을 밥을 짓습니다. 밥을 짓는 데에 퍽 긴 겨를을 들입니다. 밥을 짓는 동안 조용히 생각에 잠기며 몸을 움직입니다. 쌀을 불리고 버섯을 불리며 다시마를 불립니다. 흐르는 물을 받아 밥을 안치고 국을 끓입니다. 소금으로 간을 본 다음 된장을 살짝 풉니다. 아이들이 맛나게 밥과 국을 먹습니다. 옆지기가 맛있께 밥과 국을 먹습니다. 따로 입을 열어 말하지 않더라도 내 마음속에서 사랑이 샘솟습니다. 맛나게 먹는 모습을 지켜보기만 해도 배가 부릅니다. 맛있게 먹는 매무새를 바라보기만 해도 마음이 부릅니다.


  옛사람이 왜 스스로 논을 돌보아 나락을 거두고는, 끼니마다 절구질을 해서 겨를 벗기고 돌을 인 다음, 가마솥에 물을 담아 장작으로 불을 때어 밥을 지었나 하는 몸짓을 깨닫습니다. 물도 그냥 물이 아니에요. 새벽 일찍 별바라기 하면서 우물가나 냇가에서 길은 물이에요. 참말 옛사람 밥하기를 헤아리면, 밥 한 그릇 먹자고 한두 시간 서너 시간 가벼이 써요. 밥 한 그릇 먹을 때에 한 시간 즈음 넉넉히 들여요.


  밥을 지으며 사랑을 지으니까요. 밥을 먹으며 사랑을 먹으니까요.


.. 그녀(아나스타시아)는 자신의 목숨으로 당신의 책을 지은 거예요. 사람들에게 값으로 매길 수 없는, 소중한 지식을 나눠 주면서요 … 스스로 판단해 보세요. 선생이 이런저런 책을, 신문이나 잡지를 읽는다고 칩시다. 그것이 정말 선생한테 영향을 미치지 않나요 … 나는 매일매일 다른 책을 읽어요. 그 책은 글자가 훨씬 즐겁고 다양해요 … 나는 가지각색의 즐거운 글자들이 좋아요. 이건 평생 읽을 수 있어요. 거기에는 모든 것에 대해 적혀 있어요 … 아이는 온갖 식물들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마디마디 읽기를 계속했다 … 사람들이 깊이 생각하고, 다른 누가 아닌 자기의 아이들을 위해 쓰기 시작하면 사원의 지식 모두가 그들 안에서 환해질 거야 ..  (16, 41, 60, 63, 65, 270쪽)


  옷을 짓습니다. 나한테는 풀줄기를 갈무리해서 실을 얻는 재주가 없다지만, 이웃한테서 옷 한 벌 얻는다지만, 나는 날마다 손으로 빨래를 하면서 옷을 짓습니다.


  내 손길이 닿으며 때와 먼지가 빠지는 옷을 해바라기하는 마당에 차곡차곡 넙니다. 옷가지는 햇살을 머금으며 보송보송 마릅니다.


  식구들 입던 옷가지를 두 손으로 조몰딱조몰딱 주무르면서 빙그레 웃습니다. 내 손가락 사이사이 사랑이 새어나와 옷가지마다 새롭게 스며듭니다. 햇살은 따순 사랑으로 빨래를 말려 줍니다. 잘 마른 옷을 다시 내 손가락 조물조물 움직여 갭니다. 옷을 빨고 말리고 개고 하면서 내 사랑이 옷에 스며들어요. 이 옷을 입는 살붙이는 ‘옷만 입’지 않아요. 사랑을 입어요.


  옷을 지으며 사랑을 짓거든요. 옷을 입으며 사랑을 입거든요.


.. 지구에, 인류사회에 생각과 느낌의 문화, 그리고 사고가 충분히 순수하지 못한 사람들이 남아 있는 경우, 실수가 발생한 거야 … 사람의 소명은, 주위의 모두를 깨닫고 우주에 훌륭함을 짓는 것이야. 지구를 닮은 것을 다른 은하계에 짓는 거야. 그리고 새 세상 모두에게 지은 훌륭한 창작을, 지구에 더하는 거야 … 산 사람한테 훌륭함을 지으려는 열정이 있을 때, 사람에겐 영원한 생명이 주어지고, 훌륭한 삶이 계속된다는 것을 … 단 한 가지 생각만으로 달에 꽃을 키울 수 있고, 사람한테 필요한 대기를 짓고, 동산을 조성하고, 사랑하는 여인과 그 동산에 있을 수도 있어. 하지만 그 전에 생각은 온 지구를 꽃피는 낙원 동산으로 바꾸어 놓아야 해. 그건 집단 생각으로 할 수 있어 ..  (111, 119, 137, 170∼171쪽)


  집을 짓습니다. 내 살림돈은 아직 많이 모자라 땅 살 돈 나무기둥 올릴 돈 흙벽 쌓을 돈 구들 놓을 돈은 없어요. 그러나 나는 날마다 집을 짓습니다. 빗자루 들고 비질을 하면서 집을 지어요. 걸레를 들어 방바닥을 훔치면서 집을 지어요. 저녁나절 작은아이 오줌바지 똥바지 새롭게 빨래해서 방 곳곳에 옷걸이를 꿰어 널면서 집을 지어요. 밥상을 차리며 집을 짓고, 식구들 나란히 둘러앉으며 집을 지어요.


  곰곰이 돌아보면, 온 식구가 서로 집을 짓습니다. 아이들은 아이들 나름대로 마음을 기울여 집을 짓습니다. 옆지기는 옆지기대로 마음을 쏟아 집을 짓습니다.


  우지끈 뚝딱 시멘트를 들이부어야 집짓기이지 않아요. 살붙이 다 함께 환하게 웃고 떠들며 놀다가 새근새근 잠드는 보금자리를 누리는 하루가 고스란히 집짓기예요. 사랑을 담아 집을 지어요. 사랑을 담아 보금자리를 즐겨요. 사랑을 담아 하루를 누리는 동안 시나브로 삶이 태어나요.


.. 통일이라면 무슨 통일을 역사가들은 말하는 것일까? 사실은 모든 게 간단해. 한 제후가 다른 제후들을 죽이거나 정복한 것이지. 사람들을 하나로 통일할 수 있는 건 문화, 삶의 양식뿐이야 … 돈이면 무엇이든 살 수 있다 생가하지? 환상이야. 진실된 사랑을, 엄마의 감정을, 태어난 곳, 스스로 길러낸 사람만이 취할 수 있는 열매의 맛을 돈으로 산 사람은 아무도 없어 … 부산함 속의 사람들은 자기들에게 주어지는 정보가 점점 줄어들어도 이를 눈치채지 못해. 지금 모든 인류가 애써 가고 있는 길이 옳은 것인가? 이 하나의 질문, 주제에 대해서는 점점 더 금기가 준엄해지고 있어 … 악을 악으로 싸워서는 안 된다는 사실을 사람들은 깨우치지 못한 거야 … 세뇌! 텔레비전에서는 폭력영화를 내내 보여준다. 대중의 오락을 위한 것 같지만, 정작 보여주는 것은 폭력을 쓰면 아주 잘살 수 있다는 것다 ..  (212, 219, 226, 246, 274쪽)


  블라지미르 메그레 님이 아나스타시아한테서 들은 이야기를 바탕으로 쓴 《아나스타시아 (6) 가문의 책》(한글샘,2011)을 읽습니다. 메그레와 아나스타시아 둘은 《가문의 책》이라는 종이책 하나를 함께 쓰면서 ‘두 집안 이야기’를 적바림해서 둘이 사랑으로 낳은 아이한테 물려줍니다.


  그래요. 누구나 책을 써요. 어버이로 살아가는 사람은 누구나 책을 써서 아이한테 물려주어요.


  누군가는 붓을 들어 글을 쓴 다음 종이책을 남깁니다. 누군가는 낫과 쟁기를 들어 흙을 일구면서 ‘흙책’을 남깁니다. 누군가는 칼과 도마를 들어 부엌살림을 하면서 ‘살림책’을 남깁니다.

  누군가는 ‘바다책’을 남기겠지요. 누군가는 ‘하늘책’을 남기고, ‘숲책’을 남기며, ‘들책’을 남겨요.


  나는 두 아이 아버지로서 어떤 책을 써서 남길 수 있을까 헤아려 봅니다. 나는 내 삶을 어떻게 짓고 내 사랑을 얼마나 지으면서 아이들과 즐거이 나눌 ‘삶책’ 하나 빚을 만한가 그려 봅니다.


.. 자동차를 타고 다니는 사람이 자기 차가 공기를 어떤 유독가스로 오염시키는지 정말 모를까 … 대도시의 생활양식은 사람을 멸살하고, 사람이 자연스런 공간에서 방향감각을 상실하도록 맞추어져 있어. 그런 식으로 사는 사람들 대부분도 테러리즘의 방조자야 … 어느 누구도, 그 무엇도, 자기 주위에 사랑의 공간을 지은 사람 위에 군림할 수 없어 … 당신은 그걸 믿어야 해. 그리고 마음속으로 좋은 상황을 모델링해야 해. 그러면 그것은 현실이 돼 … 스스로 밝히지 못한 건, 스스로 생각하지 않고, 주입되는 걸 진리인 양 받아들이기 때문이다 … 하늘에 별들이 반짝이기 시작해. 나 가야겠어, 블라지미르, 당신 많은 부분에서 옳아. 하지만 현실을 보는 새로운 시각으로 사람들을 통솔하고픈 욕망에 빠지질 않길 바랄게. 유혹을 이기고 어떤 조직에도 가담하지 마 ..  (244, 261, 266, 277, 289쪽)


  내 어머니한테서 ‘어머니책’을 물려받습니다. 내 아버지한테서 ‘아버지책’을 물려받습니다. 옆지기를 만나 함께 살면서 ‘옆지기책’을 나란히 읽습니다. 두 아이를 만나 두 아이가 나날이 새롭게 짓는 ‘아이책’을 가만가만 읽습니다.


  마음으로 아로새기며 즐기는 책입니다. 마음으로 빚고 마음으로 쓰며 마음으로 나누는 책입니다.


  책은 책이지 베스트셀러가 아니며 스테디셀러가 아닙니다. 책은 삶이지 종이꾸러미가 아닙니다. 책은 사랑이기에, 어떤 줄거리가 아니에요. 책은 꿈이에요. 책은 비평이나 비판이나 서평 따위로 다룰 수 없어요. 꿈을 꾸듯 책을 읽고 삶을 읽으며 사랑을 읽어요. 내 삶을 책 하나로 담아 내 아이한테 남기고, 내 아이는 내 아이 삶을 사랑하면서 내 아이대로 책을 남겨요.


  살그머니 책을 덮습니다. 긴긴 마실을 다녔구나 생각하면서 책을 덮습니다. 책을 덮었으니, 이제 새롭게 마실을 다니자고 생각합니다. 두 팔 벌려 별을 안고 해를 안으면서 훨훨 날자고 생각합니다. 내 푸른 꿈을 하늘로 날리고, 내 바알간 사랑을 흙에 심습니다. (4345.11.2.쇠.ㅎㄲㅅㄱ)

 

(최종규 .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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