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친구가 마녀래요 - 2단계 문지아이들 6
E.L. 코닉스버그 지음, 윤미숙 그림, 장미란 옮김 / 문학과지성사 / 200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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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책시렁 149


《내 친구가 마녀래요》

 E.L.코닉스버그

 윤미숙 그림

 햇살과나무꾼 옮김

 문학과지성사

 2000.3.22.



“내가 우스꽝스러운 검정 옷을 입지 않고 우스꽝스러운 빗자루를 들지 않고 우스꽝스러운 검정 모자를 쓰지 않았다고 해서, 내가 마녀가 아니라는 건 말도 안 돼. 난 핼러윈 날뿐 아니라 언제나 마녀야.” (10쪽)


“정말로 마녀가 되고 싶다면, 별로 힘들 게 없어. 정말로 마녀가 되고 싶은 게 아니면, 하는 일마다 무지 힘들 거고. 좋아, 싫어?” (37쪽)


이제는 학교를 오가는 일이 하나의 모험이 되었다. 그런 모험을 생각하면 옷을 입는 것마저도 설레었다. 엄마는 깜짝 놀라며 내가 꼭 딴사람 같다고 말했다. 물론, 나는 다른 아이였다. (49쪽)


“사람들이 많은 곳에서는 마법을 쓰지 말았어야지. 자랑하고 싶은 유혹에 빠지면 안 돼.” (130쪽)



  1982년에 국민학교에 들어갔습니다. 학교라는 곳에 들기 앞서까지는, 마을에서 날마다 신나게 뛰놀면서 누구한테 놀림이나 따돌림을 받은 적이 없습니다. 학교에 들어가고부터 교사하고 또래한테 놀림을 실컷 받았습니다. 교과서 읽기를 시킬 적에 버벅거렸거든요. 이때에 교사는 버벅거리는 여덟 살 아이를 출석부로 머리를 내리친다든지 비웃거나 놀리는 말을 일삼았습니다. 저뿐 아니라 다른 동무도 매한가지였습니다.


  처음 학교에 든 아이들은 누가 교과서 읽기를 잘하든 못하든 멀거니 바라보았어요. 뭐가 뭔지 하나도 모르니 그저 구경만 하는데, 교사란 자리에 있는 이는 ‘잘하느냐 못하느냐’라는 금을 그어서 점수를 매깁니다. 이때에 교사 눈에 들지 못하는, 이른바 ‘못하는’ 아이는 가볍게 손찌검을 받고 놀림말에 막말을 들었어요.


  처음에 얼핏 버벅거렸지만, 이내 더듬더듬이 되고, 내내 말더듬이 됩니다. 놀림말이나 막말이나 손찌검 앞에서 저 스스로 ‘나는 말더듬이로구나’ 하고 여길밖에 없었고, 학교라는 데가 매우 무섭고 싫었습니다. 그때 교사 자리에 있던 어른이란 이들은 왜 끝까지 차분히 조용히 기다리지 않았을까요? 말을 더듬든 버벅이든 왜 놀리거나 손찌검을 하거나 점수매김질을 해야 했을까요? 왜 “천천히 읽어 보렴.”이라든지 “그래그래, 더 천천히 한 마디씩 끊어서 읽어 보렴.”처럼 말하고 달랠 틈을 스스로 내지 않았을까요? 아무리 콩나물시루처럼 바글바글 아이들이 많았다 하더라도 어린이를 구석으로 내몰며 마음에 멍울이 지도록 다그쳐야 했을까요?


  《내 친구가 마녀래요》(E.L.코닉스버그/햇살과나무꾼 옮김, 문학과지성사, 2000)에는 책이름처럼 스스로 ‘나는 마녀야’ 하고 말하는 아이가 나옵니다. ‘나는 마녀야’ 하고 말하는 아이는 살빛이 검다고 합니다. 이 어린이문학에 나오는 ‘어린이가 다니는 학교’에서 홀로 살빛이 검다지요.


  살빛이 검은 아이는 학교에서 놀림질이나 따돌림질을 받을까요? 이 어린이문학을 읽어 보면 ‘놀림질이나 따돌림질을 받는가 안 받는가’는 잘 드러나지 않는 듯합니다만, 가만가만 읽으니 ‘어떻게 놀리거나 따돌리는가’까지 그리지 않았을 뿐, 교사나 또래가 살빛이 검은 아이를 ‘우리 학교에 없는 아이’처럼 여긴다는 대목을 소름이 살짝 돋도록 느낄 수 있더군요.


  그런데 살빛이 검은 아이만 놀림질이나 따돌림질에 갇히지 않아요. 살빛이 하얀 아이도 놀림질이나 따돌림질에 갇힙니다. 다시 말하자면, 교사라는 자리에 선 어른이 먼저 나서서 ‘귀엽게 봐주는 몇몇 아이’가 있다 보니, 귀염둥이가 된 몇몇 아이를 뺀 숱한 아이들은 주눅이 들고 뒤로 밀리고 스스로 풀이 죽어 날개를 꺾고 말더군요.


  《내 친구가 마녀래요》를 읽는 내내 제 어린 나날이 떠올라 몹시 힘들었습니다. 아픈 자리를 송곳으로 쑤시는 듯한 줄거리라, 끝까지 읽기란 만만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이 이야기를 끝까지 차근차근 읽어낼 수 있었으니, ‘놀림질이나 따돌림질이란 손가락질’을 받는 아이가 스스로 친 ‘나는 마녀야’라는 말 한 마디가 새로워 보이더군요. 누가 나를 놀리건 따돌리건 손가락질하건 아랑곳하지 않을 수 있는 말 한 마디가 새삼스러웠어요. 그렇군요. 남이 나를 뭐라 하든 대꾸할 까닭이 없어요. 교사란 어른이 말더듬이를 놀리던 때리든 그런 짓을 안 쳐다보면 되지요. ‘나는 나야. 나는 언제나 나야.’ 하는 마음을 스스로 새기고, 이 말을 늘 스스로 들려주면 되어요.


  어쩌면 글쓴님부터 어릴 적에 놀림질이나 따돌림질을 흠씬 받았겠구나 싶습니다. 유럽 여러 나라도 학교라고 하는 곳에서 놀림질이나 따돌림질이나 윽박질이나 손찌검이 무척 많았다고 합니다. 요즈음 한국은 무척 나아졌으나 고작 스무 해쯤 앞서까지도 이런 슬픈 짓이 흔했어요.


  아이들을 구석으로 몰아세우지 않으면 좋겠어요. 아이들이 ‘나는 마녀야’ 하는 말로 스스로를 지키려고 용을 쓰다가 그만 스스로 제 이름을 잊는 일이 일어나도록 내몰지 않으면 좋겠어요. 아이도 어른도 다같이 ‘나는 나야. 나는 언제나 사랑스러운 나야. 나는 늘 아름답고 노래하고 활짝 웃는 나야.’ 하고 외칠 수 있는 배움터하고 마을하고 보금자리가 되면 좋겠어요.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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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은 왜 그림을 그릴까 - 그림으로 읽는 아이들 세계
메릴린 JS 굿맨 지음, 정세운 옮김 / 책과함께어린이 / 201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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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책시렁 93


《아이들은 왜 그림을 그릴까》

 메릴린 JS 굿맨

 정세운 옮김

 책과함께어린이

 2019.4.30.



아이들에게 이러한 창작 활동이 중요한 이유는 무엇일까? 아이들은 그림을 그리며 정말 많은 것을 배우기 때문이다. (10쪽)


아이가 폭력적인 장면을 그리는 이유는 그런 장면을 보고 듣고 읽었기 때문이다. 아이는 살아가며 텔레비전이나 온라인상에서 너무나 많은 이야기를 접한다. (63쪽)


걷기, 말하기와 마찬가지로, 그리을 그리는 법 또한 가르칠 필요가 없다. 아이가 자신만의 그리기 방법을 개발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부모가 명심해야 할 것은 있다. 아이가 다음 단계로 나아가기를 재촉해선 안 된다. (85쪽)


아이들은 부모가 아주 조금이라도 신경이 곤두서 있으면 바로 눈치채버린다. 옷, 바닥, 가구에 물감이나 얼룩을 묻힐까 걱정하거나 부드러운 나무 표면에 펜이나 뾰족한 연필로 자국을 남기는 건 아닐지 염려한다면, 아이는 그 즉시 알아차린다. (179쪽)


유치원생에게는 미술관 벽에 걸린 그림을 비롯해 다른 사람의 그림은 ‘예술’이 아니다. 그 시기 아이들이 생각하는 ‘예술’은 오직 자신이 만들어낸 작품뿐이기 때문이다. (223쪽)



  아이들은 하루 내내 그림을 그릴 수 있습니다. 다만, 아이들은 그림놀이도 좋아하지만 뜀놀이도 달림놀이도 좋아하기에 그림만 그리지 않아요. 그림놀이도 무척 신나지만, 붓이랑 종이를 내려놓고 후다닥 달려나가서 폴짝폴짝 뛰고 껑충껑충 솟구치며 바람처럼 달리고 제비처럼 내달립니다.


  신나게 놀고서 신나게 그립니다. 마음에서 떠오르는 그대로 척척 그립니다. 다른 이 그림을 흉내내는 아이도 있겠지요. 그림책이나 만화책에 나오는 결을 따라서 그려 보겠지요. 글씨를 익힐 적에도 그렇거든요. 한글이든 알파벳이든 아이는 제 입에서 나오는 소리를 담아내는 글씨를 ‘남이 그린 결’대로 똑같이 옮기려 하면서 어느새 제 손길에 맞게 조금씩 바꾸어요. 그림에서도 이와 같으니, 제 눈에 보이는 대로 똑같이 옮기려 하지만, 제 손힘이나 손길에 맞게 조금씩 바꾸어 어느덧 ‘이 아이만 그릴 수 있는 하나뿐인 결’로 이야기를 엮습니다.


  《아이들은 왜 그림을 그릴까》(메릴린 JS 굿맨/정세운 옮김, 책과함께어린이, 2019)는 무척 오랫동안 숱한 아이들 그림을 지켜본 분이 이 아이들 그림마다 어떤 마음이 깃들고 어떤 삶을 담았나 하고 헤아리면서 이야기를 풀어냅니다. 모든 아이는 다르기에 어느 나이에 어떠한 그림을 그려낸다고 할 수는 없다고 합니다. 마땅하지요. 말을 떼는 나이가 다르고, 글을 떼는 나이도 달라요. 더욱이 말을 떼었대서 좔좔좔 읊지 않고, 글을 떼었기에 온갖 글을 주루룩 써내지 않습니다.


  다 다른 아이는 다 다른 눈길로 바라보는 대로 그림을 빚어요. 다 다른 아이는 다 다른 삶자리에서 마주하는 대로 글을 지어요.


  아이는 예술이나 문학이란 말을 모릅니다. 굳이 알아야 할 까닭도 없습니다. 아이는 언제나 스스로 겪고 느끼고 보고 생각하고 꿈꾸고 사랑한 이야기를, 기쁠 적에는 기쁘게 그리고 슬플 적에는 슬프게 그려요. 웃은 이야기라서 웃음바다가 되도록 그리고, 눈물 흘린 이야기라서 눈물바다가 되도록 그립니다.


  날마다 즐거이 사랑하는 바람을 마시는 아이라면, 이 아이 그림에는 언제나 사랑이 바람처럼 흐르겠지요. 날마다 주먹다짐이나 막말잔치가 춤추는 터전에서 자라는 아이라면, 이 아이 그림에는 이런 모습이 잇달아 흐를 테고요. 자동차하고 아파트 사이에서 지내는 아이가 풀꽃을 그리지 못해요. 자동차하고 아파트 없는 곳에서 풀꽃하고 동무로 지내는 아이가 구태여 자동차나 아파트를 그리지 않아요.


  새삼스럽지만 《아이들은 왜 그림을 그릴까》는 ‘아이는 이런 마음을 이런 손길로 그려서 이런 사랑을 나누려 합니다’ 하고 이야기를 들려주는데요, 이 이야기를 뒤집는다면 ‘어른은 어떤 마음을 어떤 손길로 그려서 어떤 사랑을 나누려 하나요?’ 하고 묻는구나 싶어요. 아이들이 아이 티를 벗기 무섭게 그림놀이를 멀리한다더군요. 어른 가운데 예술이나 상업이나 직업이 아닐 적에도 그림놀이를 즐기는 분은 적습니다. 하루를 그리거나 꿈을 그리거나 사랑을 그리면서 수수하게 웃고 노래하는 어른이 적어요. 어쩌면 글도 비슷할는지 몰라요.


  아이가 아름답게 자라는 길에 그림놀이가 반드시 있어야 한다면, 어른도 사랑스레 살림을 짓고 어우러지는 길에 그림놀이가 꼭 있어야지 싶어요. 그림놀이도 글놀이도, 웃음놀이도 노래놀이도, 또 살림놀이도 일놀이도 다같이 누릴 적에 아이들은 느긋하며 아늑하게 그림꽃을 피우리라 느낍니다.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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꿀벌과 시작한 열일곱 - 후지미 고등학교 양봉부 이야기
모리야마 아미 지음, 정영희 옮김 / 상추쌈 / 201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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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책시렁 152


《꿀벌과 시작한 열일곱》

 모리야마 아미 

 정영희 옮김

 상추쌈

 2018.8.18.



눈을 감기고 하고, 하늘을 올려다보기도 하고, 두 팔을 크게 펼쳐 보기도 합니다. 꽃냄새, 뺨을 간질이는 바람, 물이 흐르는 소리. “아! 여기라면 살아 보고 싶어.” 부원들은 저마다 그런 생각이 드는 장소를 찾아 자기가 만든 벌통을 놓았습니다. (55쪽)


30분 정도 지나자 그릇에 꿀이 잔뜩 모입니다. 손가락으로 먹어 봅니다. “달콤하다.”는 말과 더불어 “따뜻해!”라는 탄성이 터져나옵니다. (92쪽)


일본에는 372개에 이르는 농업계 고등학교가 있습니다. 그 학교들에서 9만 명의 학생이 농업에 얽힌 것들을 배우고 있지요. (151쪽)


우리가 사는 동네에 어떤 꽃이 피고 지는지 알고 있을까요? 양봉부원들은 길거리에 피어 있는 꽃을 관찰하고 꿀벌이 어떤 꽃을 찾는지 살피며 천천히 거니는 것을 ‘벌꿀 산책’이라고 불렀습니다. (225쪽)



  한국에는 농업 고등학교가 몇 곳이 있을까요? 농업 중학교나 농업 초등학교는 있을까요? 오늘날 한국은 농업을 다루는 고등학교가 몇 곳쯤 남았을까요? 홍성, 청주, 충주, 홍천, 여주, 이렇게 다섯 곳쯤은 ‘농고’란 이름을 씁니다. ‘생명과학고’란 이름으로 고친 곳이 여럿 있습니다. 그러나 다 더해도 열 곳이나마 될는지 모르겠습니다. 시골이란 이름인 고장에서 마을 어린이가 마을 푸름이로 자랄 즈음 ‘농업을 익히며 펴는 길’보다는 ‘도시 노동자나 회사원’이 되도록 하는 길을 가르치려 합니다.


  《꿀벌과 시작한 열일곱》(모리야마 아미/정영희 옮김, 상추쌈, 2018)이란 책을 읽으며 놀란 대목은 ‘372곳에 이르는 농업 고등학교’ 이야기를 적은 한 줄입니다. 9만이란 숫자는 일본에 사는 사람을 대면 매우 작다고 할 테지만, 이 작은 숫자를 줄이지 않으면서 땅이며 들이며 숲을 건사하는 길을 익히거나 나눌 수 있구나 싶어요. 비록 일본 우두머리는 핵발전소에서 쌓인 방사능 쓰레기를 바다에 함부로 버리는 짓을 하려 들지만 말이지요.


  열일곱 푸름이는 고등학생으로서 일본 꿀벌을 돌보면서 손수 꿀을 얻는 길을 익히려 합니다. 열일곱 푸름이를 지켜는 열넷이나 열다섯 푸름이는 ‘나도 저 고등학교에 들어가면 꿀벌 동아리에 들어가서 언니들하고 꿀벌을 아끼는 길을 배워야지’ 하고 다짐한답니다.


  줄거리만 살핀다면 《꿀벌과 시작한 열일곱》은 대수롭지 않습니다. 꿀벌 동아리를 연 아이들이 고등학교를 마치기 앞서 동생들한테 동아리를 물려주고, 동생들은 어느덧 언니가 되어 새로운 동생을 맞이하는데, 저마다 다른 고비를 맞닥뜨리고 보람을 누리면서 ‘벌 한 마리가 마을이며 숲을 지키는 살림’을 온몸하고 온마음으로 느낀다고 해요. 이 단출한 줄거리를 책 한 자락으로 담을 뿐입니다.


  한국에서 푸름이는 무엇을 바라볼까요? 시골이란 고장에서 학교를 다니는 푸름이는 제 고장하고 얽힌 어떤 흙살림이나 들살림이나 바다살림이나 숲살림을 배우고 익혀서 제 고장을 새롭게 사랑하는 길을 닦을 만할까요?


  꿀벌하고 여는 열일곱처럼, 갑오징어하고 여는 열일곱을, 고사리랑 여는 열일곱을, 염소하고 여는 열일곱을, 돼지이며 닭하고 여는 열일곱을, 보리이며 밀하고 여는 열일곱을, 들꽃이며 무화과하고 여는 열일곱을, 갖가지 다른 열일곱을 온나라 작은 고장 작은 배움터에서 이제라도 처음부터 다시 펼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서울하고 똑같은 교과서만 쓰는 시골 초·중·고등학교가 아니라, 시골에 남다르게 짙푸른 숲이며 바다이며 들을 고이 품는 ‘싱그러운 길잡이’를 푸름이가 즐겁게 맞아들이도록 이끌기를 바라요.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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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왕성으로 도망간 돼지 The Unbelievable Top Secret Diary
에머 스탬프 글.그림, 양진성 옮김 / 푸른날개 / 201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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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어린이책

맑은책시렁 213


《명왕성으로 도망간 돼지》

 에머 스탬프

 양진성 옮김

 푸른날개

 2014.4.18.



오리 말을 들어 보니 농장 아저씨에게는 나 같은 돼지들이 많이 있었던 것 같다. 그런데 모두 이곳으로 끌려와서 다시는 살아 나오지 못했다고 한다. (40쪽)


나는 농장 아저씨가 날 사랑한다고 생각했다. 나는 아저씨에게 사랑받는 멋진 돼지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농장 아저씨는 내게 밥을 주고, 내 등을 긁어 주고, 날 쓰다듬어 주면서 줄곧 날 잡아먹을 생각만 하고 있었다니! (41쪽)


오리는 농장 아저씨들이 돼지 잡아먹는 걸 엄청 좋아한다고 말했다. 그리고 심지어 오리도 먹는다고 했다. 농장 아저씨들은 정말로 이상한 사람들인가 보다. 도대체 오리를 왜 먹고 싶어 할까? (104쪽)



  돼지가 어떤 짐승인지 찬찬히 짚을 수 있는 사람은 얼마나 있을까 하고 헤아려 봅니다. 돼지도 닭도 소도 오리도 저마다 집에서 돌보면서 지내던 살림이 아닌, 어느덧 가게에 살덩이로만 놓인 모습으로 으레 마주하는 오늘날인데, 살아서 움직일 뿐 아니라, 마음이 있고, 생각이 춤추며, 홀가분하게 하늘을 그리는 숨결인 돼지를 떠올릴 사람은 얼마나 되랴 싶기도 합니다.


  돼지고기라든지 소고기라든지 닭고기라든지 오리고기처럼, 우리는 매우 쉽게 ‘-고기’라는 이름을 붙입니다. 바다에 사는 숱한 이웃을 놓고도 아무렇지 않게 ‘물 + 고기’ 같은 이름을 붙여요. 물에 사는 모든 목숨을 그저 먹을거리인 ‘고기’로만 바라보는 셈입니다.


  《명왕성으로 도망간 돼지》(에머 스탬프/양진성 옮김, 푸른날개, 2014)는 ‘고기돼지’가 될 삶인 줄 까맣게 모르는 채 살던 ‘돼지’가 어느 날 비로소 제 앞길을 깨닫고는 어떻게 해야 안 죽을 수 있는지 헤매는 이야기를 다룹니다. 이 지구라는 별을 떠나 다른 별로 날아가면 걱정없이 지낼 만하려나 하고 생각하는 이야기를 익살스럽게 그립니다.


  그러나 이 이야기에 나오는 돼지는 들돼지 아닌 집돼지인 터라, 스스로 들판을 달리고 숲을 누비면서 삶길을 찾는 데까지 나아가지 못합니다. 아니, 그런 생각조차 못합니다. 누가 먹이를 챙겨 주어야 하고, 집도 내주어야 한다고만 여겨요. 스스로 일어설 줄 모르고, 길든 채 ‘살아남기’만 생각합니다.


  아무래도 오랫동안 길든 집돼지이니 들돼지나 숲돼지로 거듭나는 길을 아예 생각조차 못할 만해요. 그러나 스스로 타고난 삶길을 다시 돌아본다면, 새로 생각하면서 찾는다면 다를 수 있을까요? 우리는 학교에 가야만 하거나, 졸업장을 따야만 하거나, 회사원이나 공무원이 되어야만 하지 않습니다. 삶길을 찾으면서 기쁘게 누릴 노릇입니다. 동화책 하나가 모든 대목을 짚기 어려울 수 있으나, 익살에만 너무 눈길을 맞추느라 정작 삶길은 거의 슬그머니 눙치니 아쉽습니다.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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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 옆에 별 꿈꾸는돌 19
시나 윌킨슨 지음, 곽명단 옮김 / 돌베개 / 201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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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책시렁 148


《별 옆에 별》

 시나 윌킨슨

 곽명단 옮김

 돌베개

 2018.12.17.



이윽고 별 하나가 새까만 어둠을 뚫고 나왔다. 뒤이어 하나씩 차례차례 돋은 별들이 나란히 함께 있으니 하늘이 훨씬 정겨워 보였다. 도시에서는 이토록 정겨운 별들을 본 적이 없었다. (43쪽)


“그래, 네 꿈이 뭔데?” 세상을 바꾸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렇게 말하면 유치하게 들릴 터였다. (51쪽)


서니뷰에서 휠체어를 타고 베란다에 앉아 있는 사람들이 생각났다. 전쟁이 그야말로 곧 끝날지라도, 정작 전쟁 후유증은 없어지지 않을 터였다. (69쪽)


“저는 현실적으로 생각했을 뿐이에요. 미니가 가엾잖아요. 꼼짝없이 젖먹이를 돌보게 생겼으니.” 엄마도 없이. 그런 삶이 어떤지 나는 알았다. 이제 미니는 무급 잡역꾼이 되겠지. (111쪽)


군인들이 마침내 모두 다 귀향하면 어떻게 될까. 무수히 많은 남자가 끔찍한 기억들을 품고 이 거리 저 거리 돌아다닌다면? 무수히 많은 여자가 무엇이든 다 봐준다면? (162쪽)



  오늘 우리는 아무렇지 않게 누리는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이를테면 뭇 가시내가 홀가분하게 길을 걸어다니지요. 퍽 오랫동안 가시내는 바깥에 함부로 걸어다닐 수도 없었습니다. 전화를 걸거나 손전화 단추를 톡톡 눌러서 밥을 시켜다가 먹을 수 있고, 바지라는 옷을 사내뿐 아니라 가시내도 마음껏 꿸 수 있습니다. 국회의원이나 시장이나 군수나 교장이란 자리를 사내뿐 아니라 가시내도 맡을 수 있어요.


  아직 단단히 틀어막힌 것도 많습니다. 숱한 일터에서는 대학교 졸업장이 없으면 깔보거나 얕보거나 따돌리거나 일삯을 적게 주기까지 합니다. 고등학교 졸업장조차 없으면 손가락질하는 이가 아직 있습니다. 옷차림이나 겉모습이나 돈이나 자가용 따위로 사람값을 헤아리는 흐름이 아직 있기도 합니다. 그리고 전쟁무기하고 군대가 있어야 평화를 지킨다는 생각이 아직 있어요.


  《별 옆에 별》(시나 윌킨슨/곽명단 옮김, 돌베개, 2018)은 1900년대로 갓 접어든 때에 아일랜드라는 터전에서 푸릇푸릇한 가시내 한 사람이 어머니를 잃고서 맞닥뜨리는 삶을 찬찬히 그립니다. 오늘 뭇 가시내는 누리지 못하지만, 앞으로 뭇 가시내뿐 아니라 누구나 즐거이 누릴 수 있는 새로운 꿈을 하나하나 그립니다. 너랑 나 사이에 금을 긋고서 ‘너는 여기까지만’이나 ‘나는 여기를 넘어도 되는’ 같은 울타리가 얼마나 부질없으며 서로서로 훨씬 나쁜가를 부드러이 그립니다.


  책이름으로 환히 밝히기도 합니다만, 별 옆에 별이 있습니다. 사내는 사내대로 별이요, 가시내는 가시내대로 별입니다. 둘은 어느 한 쪽이 높아야 하지도 않고 낮아야 하지도 않아요. 서로 어깨동무하면서 함께 빛나는 별입니다. 네 곁에 내가 별로 빛나요. 내 곁에 네가 별로 빛나지요. 이 나라하고 저 나라가 툭탁거릴 까닭이 없습니다. 이쪽하고 저쪽이 누가 더 좋거나 훌륭하다고 내세우면서 싸울 까닭이 없습니다.


  우리는 저마다 별입니다. 저마다 꽃입니다. 저마다 사람이고 사랑입니다. 이 흐름을 느끼며 이 반짝반짝 별빛을 깨달을 적에 비로소 평등하고 평화가 무럭무럭 자라리라 봅니다.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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