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ni Reifenstahl: Africa (Hardcover)
Angelika Taschen 지음 / TASCHEN / 201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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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2010년에 써서 <포토넷>이라는 잡지에 실었는데, 알라딘서재에는 안 걸쳤더군요. -_-;;;; 왜 그랬을까 모르겠으나, 아무튼, 안 걸친 탓에, 레니 리펜슈탈을 그야말로 잘 모르는 사람들한테 자료 한 가지를 제대로 보여주지 못한 꼴이 되고 말았습니다. 레니 리펜슈탈 다른 사진책 하나 느낌글을 올리기 앞서, 이 글부터 올립니다.

 

<아프리카> 사진책은 이 글 다음에 새로운 글로 붙입니다. <아프리카>만 검색에 뜨고 <카우 사람들> 사진책은 안 뜨거든요.

 

 

 

 


 살아가는 마음과 사진찍는 마음
 [잘 읽히기 기다리는 사진책 2] 레니 리펜슈탈(Leni Riefenstahl), 《The People of Kau》(Collins St James's Place,1976)

 

 

 밤 열두 시 가까이에 겨우 잠든 아이가 새벽 네 시 오십 분에 깹니다. 오줌을 누었군요. 기저귀를 갈아 준 다음 재우려는데, 여러 날 일이 밀린 아빠가 셈틀을 켜니 아이가 잠들지 못하고 자꾸 칭얼대더니 그예 아빠 무릎으로 달려와 폭 앉습니다. 아마, 아이도 아빠와 함께 새벽을 보내고 아침을 맞이할 때까지 놀고 싶은 듯합니다. 아이는 아빠 품에 안긴 채 아주 조용하고 다소곳하게, 아빠가 자판을 두들기며 글을 쓰는 모습을 말똥말똥 바라봅니다. 아이를 품에 안고 글을 쓰는 일이란 ‘누가 옆에서 글쓰기를 지켜보는 셈’이라 멋쩍고 쑥스럽습니다. 아이가 아직 글이며 말이며 모르는 열아홉 달짜리라 하더라도, 옆에서 지켜보는 사람이 있는 채로 글을 쓰기는 힘듭니다. 그렇지만, 옆에서 누군가 지켜보는 눈길이 있음을 느끼면, 허튼 글을 어수룩하게 쓸 수 없습니다. 아니, 누군가 지켜보지 않더라도 글이란 허투루 어수룩하게 쓸 수 없는 노릇입니다. 내 모든 알맹이를 담아내고, 내 모든 고갱이를 깃들이며, 내 모든 빛나는 삶줄기를 쏟아내는 글이어야 한다고 느낍니다. 그림을 그리든 사진을 찍든 매한가지입니다. 언제나 모든 땀을 들이고, 노상 갖은 힘을 바치며, 늘 마지막 손길이 될 수 있다는 생각으로 엮어내야 한다고 봅니다.

 

 레니 리펜슈탈이라는 독일사람은 백둘이라는 숫자를 찍을 때까지 삶을 꾸렸습니다. 이이를 놓고 갖가지 말밥이 있음은 《레니 리펜슈탈, 금지된 열정》(마티,2006)이라는 책에 잘 나와 있습니다. 온누리에는 레니 리펜슈탈이라는 한 사람을 갉아먹거나 깎아내리는 이야기만 넘치고, 레니 리펜슈탈이라는 ‘예술쟁이’가 어떤 사랑과 믿음으로 영화와 사진과 환경운동에 몸과 마음을 내놓았는가를 읽는 이야기는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때때로 시인 서정주와 예술쟁이 레니 리펜슈탈을 견주는 목소리가 들립니다만, 두 사람은 맞댈 만하지 않다고 봅니다. 그릇이 다르고, 걸은 길이 다르며, 받은 대접이 다른데다가, 아픔과 생채기를 씻어내며 새삶을 여는 매무새가 다릅니다. 나치 기록영화를 찍은 탓에 죽는 날까지 멍에를 지고 살았던 레니 리펜슈탈은 숱한 손가락질을 받고 영화필름과 재산과 피붙이까지 빼앗겼으나, 이 모든 아픔을 겪으면서도 세상과 등지지 않습니다. 외려 더 다부지게 세상과 맞서면서 다시금 영화를 찍으려는 꿈을 품습니다. 그렇지만 영화마을 사람들은 레니 리펜슈탈이 영화마을에 다시 못 돌아오도록 문을 닫습니다. 아주 굳세게 닫아 겁니다. 꿈이자 빛을 잃은 레니 리펜슈탈이지만, 이녁은 예순이 넘은 나이에 촬영기가 아닌 사진기를 집어듭니다. 촬영기에 넋을 들일 수 없는 슬픔과 눈물을 사진기를 쥐어들면서 기쁨과 웃음으로 삭여냅니다. 일흔이라는 나이를 훌쩍 넘긴 때에 내놓은 《The People of Kau》를 보면, 이녁이 사진이라는 눈길로 이루어낸 애틋함과 뜨거움에는 고운 꿈이 맑은 빛으로 서리며 담기지 않았느냐 싶습니다.

 

 

 

 그런데, 영화마을로 돌아가지 못한 레니 리펜슈탈은 사진마을에서도 비아냥을 듣고 해코지를 받습니다. 다른 사람이 누바족을 사진으로 찍었을 때에는 높이 기리고 손뼉을 쳤으나, 레니 리펜슈탈이 누바족을 사진으로 찍었을 때에는 파시즘 냄새가 난다고 깎아내립니다. 사진을 사진 그대로 바라보지 않고 외눈박이 정치빛으로 재고 맙니다. 껍데기를 벗고 알맹이를 볼 노릇인데. 껍데기를 벗고 알맹이를 감쌀 노릇인데. 껍데기를 걷어차고 알맹이를 사랑할 노릇인데. 그리고, 참사랑을 할 노릇인데. 거짓사랑 아닌 참사랑과 참삶을 아껴야 할 텐데.

 

 사진찍기에는 바른길이 없습니다. 그저, 어느 길로 접어들든 내 넋과 얼을 고이 실으면서 사랑을 나눌 좋은 길을 찾을 수 있습니다. 사진찍기에는 바른길이 있습니다. 다만, 어느 길로 접어들든 내 뜻과 빛을 굳은살 박힌 손끝으로 곱게 다스리면서 즐거운 길을 찾을 수 있습니다.

 

 우리는 사진기를 들고 걷는 우리 한길을 얼마나 곱거나 맑거나 즐거운 길로 가꾸면서 우리 삶을 알차고 튼튼하게 돌보는가를 돌아봅니다. 우리는 사진기를 들고 일구는 우리 살림살이를 얼마나 싱그럽거나 따뜻하거나 고마운 길로 여미면서 우리 터전을 힘차고 넉넉하게 북돋우고 있을까 헤아려 봅니다.

 

 

 

 레니 리펜슈탈은 아흔이 넘은 나이에도 바닷속 탐사를 즐기고, 바닷속 사진을 찍습니다. 영화를 찍을 때에는 다른 사람한테 돈을 빌리고 숱한 사람한테 일을 시켜야 하나, 사진을 찍을 때에는 홀로 사진기 하나만 쥔 채로 당신 꿈과 넋과 삶을 고스란히 담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러면서 이녁은 푸른평화(그린피스) 회원이 되고, ‘사람들 손에 망가지는 자연 터전’을 지키는 일에 마지막 불꽃을 태웁니다.

 

 《The People of Kau》를 덮은 뒤 한숨을 돌리고 싶지만 집일은 가득 쌓입니다. 어제 하루 몸이 고단하여 미뤄 둔 빨래를 합니다. 아이는 손빨래하는 아빠 곁에서 내도록 물놀이를 합니다. 빨래 한 대야를 하고 나서 쌀을 씻어 밥을 안쳐 놓습니다. 빨래를 다 마치고 나서 아이를 씻깁니다. 아이한테 새 옷을 입힌 다음 새로 지은 밥을 먹입니다. 국수를 삶아 세 식구 함께 먹을 낮밥을 마련합니다. 낮잠 잘 낌새가 보이지 않는 아이는 이 방 저 방 뛰어다니고, 무언가를 어디에선가 끄집어서 들고 다닙니다. 예술은 길고 삶 또한 기나깁니다. 하루는 길지만, 이 긴 하루는 쏜살같이 지나가며, 칭얼쟁이 아이는 어느새 어여쁜 어른으로 자라겠지요. (4343.2.9.불.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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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 만나러 갑니다 - 행복한 고양이를 찾아가는 일본여행
고경원 지음 / 아트북스 / 201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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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에 살짝 나오는 손발가락은 다섯 살 어린이 사름벼리~)


 좋아하는 꿈을 담는 사진
 [찾아 읽는 사진책 79] 고경원, 《고양이, 만나러 갑니다》(아트북스,2010)

 


 인천에서 살던 지난날, 4층 옥탑집 둘레로 골목고양이가 드나들었습니다. 골목고양이가 어떻게 4층 옥탑집까지 드나들랴 싶어도, 이 녀석들은 지붕을 타고 3층이건 4층이건 들락거릴 수 있습니다. 길눈이 트면 못 가는 데란 없어요. 이웃 골목을 마실하면서 다른 골목고양이를 숱하게 만났습니다. 어느 분은 골목고양이가 지겹다 말하고, 어느 분은 골목고양이 밥을 다달이 몇 십만 원어치씩 사다가 곳곳에 놓고는 굶을까 걱정합니다. 싫다 하는 분이 제법 있으나, 고양이밥 챙겨 주는 분이 무척 많았어요. 우리 식구도 가끔 고양이밥을 아래층(3층) 지붕 한쪽에 놓곤 했습니다.

 

 충청북도 충주 멧골집으로 옮겨 살던 지난날, 이 멧골집에 들고양이 한 마리가 찾아온 적 있습니다. 아주 기운이 빠진 들고양이는 가까이 다가서서 바라보아도 꼼짝을 하지 않았습니다. 조금 멍한 눈이 아닌가 싶었는데, 옆지기는 이 들고양이를 바라보다가는 어디 아픈 데 있지 않나 하고 얘기했습니다. 이틀쯤 들고양이를 보았고, 며칠 뒤 자취를 감추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비가 모질게 쏟아지는데, 길가 도랑 수풀 우거진 한쪽 이슥한 데에서 그 들고양이를 만납니다. 들고양이는 숨을 거두고는 도랑 한쪽 이슥한 데에 조용히 누웠어요. 퍼붓는 비에 들고양이 주검은 어디론가 떠내려 갔습니다.

 

 전라남도 고흥에 보금자리를 마련해 살아가는 오늘날, 마을고양이 한 마리가 우리 살림집 마루 밑에서 제 또아리를 틉니다. 어느 날에는 뒷간에서 자고, 어느 날에는 헛간에서 자더니, 마루 밑으로 난 구멍으로 들락거리며 밤잠을 잡니다. 추운 겨울날 마루 밑은 고양이한테 더없이 좋은 쉼터가 되겠지요. 쥐를 얼마나 잘 잡는지 모르겠는데, 아무래도 들고양이라 할 테니 들쥐를 먹이로 삼지 않겠느냐 싶은데, 들고양이라 할 마을고양이가 돌아다녀도 들쥐 또한 곳곳에서 찍찍거리며 잰걸음으로 내빼는 모습을 보곤 합니다. 지난가을 마을 어르신들 쌀섬을 나를 때 일을 거들며 살펴보니, 쥐가 쏜 쌀섬이 꽤 있기도 했어요.

 

 

 고경원 님이 내놓은 《고양이, 만나러 갑니다》(아트북스,2010)를 읽다가 생각합니다. 시골에서 살아가며 시골고양이를 곳곳에서 만나는데, 시골고양이는 도시고양이와 견주어 사뭇 다릅니다. 고양이라면 다 같은 고양이로 여길 사람이 있을 테지만, 시골고양이는 언제나 흙을 밟으며 살아요. 시골사람이라 하더라도 논일과 밭일을 할 때를 빼고는 흙 밟을 땅이 없지만, 시골고양이는 언제라도 논밭을 가로지릅니다. 햇볕이 따스한 낮에는 논이나 밭 한가운데에서 낮잠을 자거나 해바라기를 하곤 합니다. 흙내음이랑 풀내음을 맡으며 낮잠을 자는 고양이랑, 양철지붕이나 시멘트지붕에서 낮잠을 자는 고양이는 같을 수 없어요. 흙을 밟는 사람이랑 아스팔트를 밟는 사람 또한 같을 수 없어요.

 

 그래도, 사람이라면 누구나 같은 대목이 있어요. “고양이를 좋아하게 되면서 늘 마음에 두었던 꿈이 있다(5쪽).”는 말마따나, 도시에서 살아가건 시골에서 살아가건 누구나 꿈을 꿀 수 있어요. 아름답게 꾸는 꿈으로 아름답게 일구는 삶을 즐길 수 있어요. 아름답게 살아갈 꿈을 펼치면서 아름답게 즐길 사진을 나눌 수 있어요.

 


 “버려진 고양이도 사랑받으면 꽃처럼 고운 고양이가 된다. 집고양이나 길고양이나, 건강한 고양이나 다친 고양이나, 모두 소중한 생명이라고, 그림 속의 신이치가 가만히 말을 건네는 것 같다(29쪽).”는 이야기처럼, 도시고양이가 되든 시골고양이가 되든 모두 사랑스럽습니다. 들고양이도 사랑스럽고 집고양이도 사랑스럽습니다. 고양이도 사랑스럽고 사람도 사랑스럽습니다. 곧, 이 사랑스러움이 사진을 찍는 바탕입니다. 이 사랑스러움이 글을 쓰는 바탕입니다. 이 사랑스러움이 그림을 그리는 바탕입니다.

 

 사랑이 있을 때에 살아갑니다. 사랑으로 일을 합니다. 사랑을 주고받으며 놀이를 즐깁니다. 삶은 사랑으로 북돋우고, 사랑은 삶으로 살찌웁니다. 사랑으로 북돋우는 삶이기에 사진에는 사랑을 고이 담습니다. 사랑은 삶으로 살찌우기에 사진에는 삶을 누린 이야기를 살포시 싣습니다.

 

 고경원 님 사진책 《고양이, 만나러 갑니다》는 일본으로 ‘고양이를 만나러 나들이’를 떠난 이야기를 담습니다. 아하, 고양이를 좋아하니까 일본으로 나들이를 가서 일본고양이를 만났구나, 그러면 한국에서도 한국땅 골골샅샅 누비며 한국고양이를 만나는 이야기를 적을 수 있겠지. 일본사람 이와고 미츠아키 님은 ‘일본땅 곳곳을 두루 돌아다니며 일본 골골샅샅에서 저마다 다른 꿈과 삶을 먹는 고양이’를 사진으로 보여주었으니, 이와 마찬가지로 한국에서는 한국땅 골골샅샅 고양이 삶과 사람 삶을 이야기 한 자락으로 살가이 담는 손길을 머잖아 만날 수 있겠지.

 

 

 “이 오래된 카페에서 할아버지도 료스케도 함께 나이를 먹어 가겠구나 하는 생각에 가슴이 뭉클하다(45쪽).”는 마음밭으로 담는 사진은 따스합니다. 따스하게 바라보며 따스하게 껴안으니, 사진이 따스할밖에 없습니다. 남한테 따스한 느낌을 보여주려는 사진이 아니라 스스로 따스하게 어루만지는 삶이기에 따스함이 묻어나는 사진이에요.

 

 “대도시 도쿄의 모습이 날로 변하는 건 피할 수 없는 일이다. 앞으로 야나카에서도 길고양이의 쉼터는 점점 줄어들 것이다. 오래된 동네와 길고양이의 운명은 그렇게 닮았다. 길고양이가 숨어들 빈틈이 사라진 동네는, 사람에게도 어지간해선 틈을 내주지 않는다(74쪽).”는 생각으로 담는 사진은 슬픕니다. 슬프게 살아가는 사람들 터전에서 슬플밖에 없는 고양이를 바라보기에, 이러한 느낌을 받아들이며 찍는 사진은 슬픕니다. 애써 슬프게 찍으려 하니까 슬픈 사진이 되지 않아요. 슬플밖에 없다고 느끼는 동안 찍는 사진에는 슬픔이 묻어납니다.

 

 

 그러나 한 가지 대목에서 아쉽습니다. 처음부터 즐겁게 느끼며 누리면 좋았을 텐데, 처음 사진을 찍던 때에는 나 스스로 살아가는 어여쁜 빛을 제대로 붙잡지는 못했어요. 이를테면, “처음 길고양이를 찍을 무렵, 내 사진에 가장 많이 등장한 건 뒷모습이었다 … 그땐 뒷모습 사진이 ‘실패한 사진’인 것만 같았다. 하지만 길고양이 사진이 쌓여 갈수록 뒷모습 사진에 매료된다. 뒷모습을 찍는다는 건, 결국 고양이가 눈길 주는 곳을 함께 바라보는 일이니까(294쪽).” 하고 밝히거든요. 나중에는 비로소 깨달았다고 하지만 처음부터 깨달았으면 얼마나 좋았을까요. 뒷모습을 찍건 앞모습을 찍건 고양이를 찍을 뿐이잖아요. 뒷모습이건 옆모습이건 앞모습이건, 내가 좋아하는 고양이를 찍잖아요. 뒷모습은 서로 같은 곳을 바라보니 좋고, 앞모습은 서로 마주보니 좋으며, 옆모습은 서로 나란히 앉으니 좋아요.

 

 내가 좋아하는 고양이를 찍으니, 흔들리건 초점이 어긋나건 다 좋습니다. 빛이 좀 안 맞든 빛느낌이 영 어설프든 대수롭지 않습니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넋으로 만난 이야기를 살릴 수 있으면 흐뭇해요. 어디, 자랑하려고 찍는 사진이 아니기에, 내 온 웃음꽃과 눈물꽃을 고스란히 보여주면 기뻐요.

 

 

 덜 예쁜 모습이어도 좋습니다. 좀 어두운 모습이어도 반갑습니다. 이냥저냥 심심해 보이거나 수수해 보이는 모습이어도 고맙습니다. 스스로 사랑하는 손길로 담고, 스스로 좋아하는 마음길로 마주하며, 스스로 아끼는 꿈길로 보듬으면 가장 빛나며 해맑은 사진 하나 태어납니다.

 

 마땅한 얘기인데, 고양이 사진이라서 더 돋보이지 않습니다. 고양이 사진이기 때문에 ‘고양이를 좋아하는’ 사람한테 더 도드라져 보이지 않습니다. 고양이를 찍은 사진이라 하더라도 마음 깊이 아끼는 사랑이 없다면 하나도 반가울 수 없어요. 고양이를 담지 않은 사진이라 하더라도 마음 깊이 아끼는 사랑이 있다면 ‘고양이를 찾으러 떠나는 길’에 담은 어떠한 사진이든 더없이 애틋합니다. 이리하여, 뒷모습을 찍은 사진일 때에도 ‘고양이가 바라보는 무언가’를 나도 똑같이 바라보지 못하기도 해요. 고양이와 마주하며 사진을 찍어도 고양이 속마음을 못 읽고 예쁘장해 보이는 낯빛만 찍기도 해요. 고양이와 나란히 앉아 사진을 찍어도 막상 고양이 삶을 어깨동무하지 않을 수도 있어요.

 

 좋아할 때에 꿈을 꾸면서 한 장 두 장 신나게 찍는 사진입니다. 좋은 사진감이란 따로 없고, 내 사진감을 굳이 멀리서 찾을 까닭이 없습니다. 사랑을 천천히 이루며 삶을 빛내는 길동무인 사진입니다. 내 둘레 수수하며 투박한 벗님이 좋은 사진벗이면서 삶벗이에요. 나는 내 꿈을 맑게 보살피면서 내 삶을 가꾸는 사진을 즐깁니다. (4345.2.25.흙.ㅎㄲㅅㄱ)


― 고양이, 만나러 갑니다 (고경원 글·사진,아트북스 펴냄,2010.1.8./138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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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세기 화호리의 경관과 기억
장성수 외 지음 / 눈빛 / 200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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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생활사박물관 사진찍기
 [찾아 읽는 사진책 54] 20세기 민중생활사 연구단, 《20세기 화호리의 경관과 기억》(눈빛,2008)

 


 ‘20세기 민중생활사 연구단’ 사람들이 모여 《20세기 화호리의 경관과 기억》(눈빛,2008)이라는 책을 내놓았습니다. 이 책 머리말에는 “화호리(전라북도 정읍시 신태인읍 소재)는 마을 전체가 생활사박물관을 방불케 한다(5쪽).” 하고 적습니다. 참으로 마을 어디를 보나 ‘생활사박물관’과 같다고 느껴 이렇게 ‘읍 면 리’ 가운데 고작 리라 할 자그마한 마을 이야기를 책 하나로 묶으려 했으리라 생각합니다.

 

 도시로 치면 ‘시 구 동’에서 동이라 할 만할 테지요. 그러면, 도시에서 조그마한 동 하나 이야기는 책 하나로 묶을 만할까요.

 

 바라보는 눈길에 따라 무엇이든 달라집니다. 누군가한테는 전북 정읍시 신태인읍 화호리는 아주 작은 곳이지만, 이곳에서 태어나 살아간 사람한테는 너른 마당이거나 우주라 할 수 있습니다.

 

 나로서는 내가 태어난 인천 남구 도화1동이 무척 조그맣다고 여길 수 있으나, 어린 내가 뛰놀기에는 동 하나 크기만 하더라도 몹시 큽니다. 어른이 된 내가 도화1동을 걸어서 돌아다니자면 몇 시간을 들이거나 며칠을 들여도 골목골목 누비지 못합니다. 신나게 달리기를 하거나 자전거를 몰거나 오토바이를 몰아야 몇 시간쯤 들여 골목골목 모두 누빌 만해요.

 

 

 

 신태인읍 화호리라는 시골마을도 이와 같으리라 생각합니다. 자그마한 시골마을이라 하지만, 고샅과 들판과 멧자락을 두루 돌아다니며 느끼자면 퍽 오래 걸립니다. 아니, 하루에 걸쳐 다 돌아다닌다 하더라도, 날씨에 따라, 철에 따라, 달에 따라, 아침 낮 저녁에 따라 언제나 다른 빛깔과 모습과 내음을 보여줍니다. 언제나 다른 빛깔과 모습과 내음이니, 언제나 다른 이야기가 태어나요.

 

 새삼스럽지 않습니다만, 온 나라 곳곳에 동사무소가 있고 면사무소가 있어요. 동사무소와 면사무소 일꾼이 있어요. 이들 동사무소랑 면사무소 일꾼이라면 동 한 곳이 흐르는 한해살이 이야기를 꾸준히 적바림하거나 갈무리해야지 싶습니다. 면 한 곳이 누리는 한해살이 꿈과 사랑을 찬찬히 적바림하거나 갈무리해서 해마다 책 한 권씩 내놓아야지 싶습니다.

 

 아마 여느 어른이라면 아이들을 바라볼 때에 ‘다 같은 아이’라고 느끼리라 생각합니다. 그러나, 다 같은 아이로 보이더라도, 다 다른 어버이가 낳아 다 다른 집에서 살아가요. 곧, 다 다른 아이는 다 다른 집에서 다 다른 삶을 누립니다. 이렇게 다 다른 아이들 이야기를 어버이 스스로 꾸준히 담는다면 다 다른 삶이야기가 샘솟습니다. 참말 재미나며 눈부신 다 다른 이야기꽃이 피어납니다.

 

 사진이야기 《20세기 화호리의 경관과 기억》을 읽으며 “1934년 화호농장 소작인 4백여 명이 정부와 농장주에게 소작료 인하를 요구하는 진정서를 제출하였다. 그러나 정부나 농장측 모두 이렇다 할 해결책을 내놓지 않자, 소작인들은 그 이듬해인 1935년 5월에 다시 한 번 소작료 인하를 요구하였다(51쪽).” 하는 대목에 밑줄을 긋습니다. 이 이야기는 1930년대 삶자락을 공무원이 적바림해 놓았기에 오늘날 학자들이 자료를 뒤적이며 찾아낼 수 있습니다.

 

 

 

 “그놈들이 나쁜 짓을 어떻게 했냐고 하니 비가 오면 하수구를 그쪽으로 대 가지고 못살게 만들었어. 그래서 어쩔 수 없이 팔게 만들고, 또 다른 집은 안 팔면 말을 그냥 마당에다 쨈며 놓고 그랬어. 말이 마당에 있는데 어떻게 살겄어? 그래서 나쁜 짓을 해 가지고 한국사람들을 다 쫓아낸 거야(주민 구술 1922년생,103쪽).” 하는 목소리에 밑줄을 긋습니다. 이 이야기는 마을 한 곳에서 오래오래 뿌리를 박으며 살아온 사람한테서 귀담아 들었으니 적바림할 수 있습니다. 따로 누군가 종이나 책이나 신문에 적바림하지 않았을 이야기라지만, 한 사람 삶에는 또렷하게 아로새겨진 이야기입니다.

 

 “일제시대에 만들어진 주세법은 최근까지도 유효한 채로 남아 있었다. 일본 식민정부가 한국인들의 생활 습관을 무시하고 술에 대한 국가통제를 했다는 것을 잊은 채 식민정책을 그대로 답습해 왔다(143쪽).” 하는 대목에 밑줄을 긋습니다. 이 이야기는 여러 가지 자료에 나오기도 하고, 마을 붙박이한테서 들을 수도 있겠지요. 이곳에도 저곳에도 깊디깊게 돋을새김한 삶자락입니다.

 

 마땅한 노릇이라 하겠습니다만, 신태인읍 화호리는 틀림없이 ‘생활사박물관’입니다. 전남 고흥군 도화면 동백마을도 생활사박물관입니다. 인천 남구 도화1동과 도화2동과 도화3동 또한 생활사박물관입니다. 서울 종로구 평동도 생활사박물관입니다. 부산 중구 보수동도 생활사박물관입니다.

 

 이 나라 어느 곳이나 생활사박물관입니다.

 

 

 

 일제강점기 발자국이 짙게 남았기에 생활사박물관이 되지 않습니다. 1950년대 발자국이 남았어도 생활사박물관입니다. 1970년대 발자국이 옅게 드리워도 생활사박물관입니다. 1990년대 발자국이 넓게 남아도 생활사박물관입니다. 2010년대 발자국이 갓 찍혔어도 생활사박물관입니다.

 

 바라보기에 따라 달라지는 삶이거든요. 바라보기에 따라 달라지는 사진이거든요.

 

 어떤 이야기를 건져올리느냐에 따라 달라집니다. 어떤 사랑을 느끼며 어깨동무하느냐에 따라 달라집니다. 어떤 사람을 만나고 어떤 삶을 깨닫느냐에 따라 달라집니다.

 

 우리는 누구나 ‘박물관사람’입니다. 김치를 담글 줄 알아도 박물관사람입니다. 손빨래를 할 줄 알아도 박물관사람입니다. 아기한테 젖을 물릴 줄 알아도 박물관사람입니다. 호미로 땅을 쫄 줄 알아도 박물관사람입니다. 우리 스스로 ‘어떤 박물관’을 생각하면서 꿈꾸고 돌보느냐에 따라 달라질 뿐입니다. 우리 스스로 어떤 박물관에 어떤 이야기를 담아 우리 아이들한테 어떤 꿈이랑 사랑을 물려주려고 하느냐에 따라, 우리 스스로 길어올릴 글·그림·사진·춤·노래·연극·영화는 사뭇 달라집니다. (4345.2.22.물.ㅎㄲㅅㄱ)


― 20세기 화호리의 경관과 기억 (20세기 민중생활사 연구단 글·사진,눈빛 펴냄,2008.12.25./15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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自然紀行
강운구 글.사진 / 까치 / 200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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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름다운 이야기 찾아나서는 사진마실
 [찾아 읽는 사진책 78] 강운구, 《자연기행》(까치글방,2008)

 


 밤하늘을 올려다봅니다. 반짝이는 별빛을 바라보면서 저절로 별자리를 그릴 수 있습니다. 별자리 이름이나 크기나 모양이나 잘 모르지만, 이모저모 모인 별을 뭉뚱그릴 만하다고 느낍니다. 따로 무슨무슨 자리라고 알지 못하더라도 서로서로 어떻게 엮으면 되겠구나 하고 느낍니다.

 

 그러나 밤하늘 뭇별을 이 나라 어디에서나 올려다볼 수 있지는 않습니다. 깊은 시골자락에 깃든 집에서 올려다봅니다. 읍내나 시내에서는 뭇별을 올려다보기 어렵습니다. 커다란 도시로 나가면 달빛을 느끼기조차 어렵습니다.

 

 어릴 때 인천에서 살아가며 별자리가 어떻고 저떻고 하는 책을 읽은 적 있지만, 막상 밤하늘 뭇별을 마음껏 올려다볼 수 없었어요. 밤하늘 별은 올려다보지 못하며 별자리 책만 뒤적인들, 별이고 별자리이고 밤하늘이고 알거나 느끼거나 생각하기 힘들었습니다.

 

 강운구 님이 내놓은 사진책 《자연기행》(까치글방,2008)을 읽으며 생각합니다. 강운구 님은 “우리 나라의 식물사전에는 수선화가 화훼식물로 분류되어 있다. 그것은 야생의 수선화는 없다는 뜻이다. 그러나 제주 남녘 대정 땅의 수선화는 엄연히 야생으로 여러 대를 이어오고 있다(14쪽).” 하고 말합니다. 식물사전이든 식물도감이든 적잖이 다리품을 팔지 않으면 엮을 수 없습니다. 여러 사람이 이 땅 골골샅샅 누비며 이 같은 사전과 도감을 내놓으리라 봅니다. 그러나, 미처 못 디딘 땅이 있을 테고, 아직 살피지 못한 꽃과 풀과 나무가 있겠지요. 어느 꽃은 아주 드물게 아주 좁은 데에서만 피고 질 수 있으니까요. 어느 꽃이 피고 지는 아주 조그마한 터에 때맞추어 나들이를 하지 않는다면 어느 꽃이 있는 줄조차 모를 수 있으니까요.

 

 

 

 망원경이 있으면 도시 한복판에서라도 밤하늘 별을 살필는지 모릅니다. 그렇지만 막상 도시 한복판에 깃들면서 밤하늘 별을 느끼려 하는 사람은 찾아보지 못합니다. 도시 한복판이란 밤별이랑 동떨어진 곳이니까요. 경제성장과 경제개발에 온넋 쏟는 도시 한복판이지 않겠어요. 더구나, 도시 한복판에서는 밤별뿐 아니라 낮꽃 또한 동떨어진 곳이로구나 싶어요. 낮에 마주할 나무하고도 풀하고도 새하고도 동떨어진 곳이겠지요.

 

 “저 자연의 품속은, 자연의 것은 더 아름답다. ‘자연을 보호하자’라고 말하지만 우리에게는 자연을 보호할 만한 능력이 물론 없다. 그것을 있는 자리에 그대로 두고 보기만 하면 된다. 그것을 자기 집, 자기 방으로 못 옮겨서 안달하는 사람은 불행하다. 한 해에 두어 번, 들이나 산의 숲에 가서 조용히 시간을 보낼 수 있는 사람이라면, 그곳의 모든 꽃은 그 사람의 것이다(33쪽).” 하고 읊는 말마따나 자연 터전은 나날이 파먹힙니다. 곰곰이 살피면, 사람들은 자연을 지키려 하지 않습니다. 자연을 파먹으면서 경제를 살찌웁니다. 자연을 파헤치면서 돈벌이를 합니다. 자연을 망가뜨리면서 국립공원을 세웁니다. 국립공원 아닌 데는 마음껏 무너뜨리고, 국립공원조차 신나게 어지럽혀요. 강운구 님이 “헉헉대며 꼬박 4시간은 올라야 이르렀던 노고단이 지금은 시암재의 주차장에서 쉬엄쉬엄 30분쯤 걸으면 된다. 망가진 덕택이다(198쪽).” 하고 외치지 않더라도, 이 나라 사람 누구나 한껏 망가진 한국 자연을 찾아볼 수 있어요.

 

 이리하여, “어릴 적에 시골에서 자란 이들은 꿀풀이나 다른 꽃을 따서 향기로운 꿀을 빨아먹곤 했었다(38쪽).” 하는 이야기는 그야말로 옛날 옛적 어른들 이야기처럼 됩니다. 오늘날 아이들로서는 꿀풀이든 다른 꽃이든 따며 놀 겨를이 없습니다. 오늘날 아이들이 들판과 멧자락과 냇가와 바닷가에서 마음껏 하루 내내 뒹굴거나 뛰놀도록 풀어놓는 어른부터 없어요. 아이들이 두어 살만 되어도, 아니 한두 살만 되어도 보육원이나 어린이집에 넣잖아요. 아이들은 보육원과 어린이집과 유치원에서 ‘학습’이라는 이름으로 길들여지잖아요. 아이들은 초등학교에 들어가는 때부터 ‘대학입시 수험생’처럼 되어 영어도 배우고 한자도 배우며 갖은 지식을 머리에 꾹꾹 눌러담아야 하잖아요.

 

 

 

 똑똑해지는 오늘날 아이들이 아닙니다. 지식만 많이 갖추는 오늘날 아이들입니다. 스스로 할 수 있는 일이란 없고, 이웃을 아끼는 넋이란 없으며, 나와 동무를 사랑하는 꿈이란 없어요. 곧, “좋아하거나 사랑하지도 않으면서, 이름을 불러 준다고 다 나의 꽃이 되는 것은 아니다(51쪽).” 하는 말처럼, 아이들 스스로 누구를 어떻게 왜 좋아하거나 사랑하면서 기쁜 나날인가를 느끼지 못하고 맙니다. 아이들 스스로 삶을 좋아하거나 사랑하는 길하고는 너무 동떨어지고 맙니다.

 

 아름다이 살아갈 나날인데 아름다이 품을 꿈을 생각하지 못합니다. 사랑스레 어깨동무할 이웃인데 사랑스레 북돋울 얼을 가누지 못합니다. 착하게 꾸릴 살림인데 착하게 보듬을 손길을 느끼지 못합니다.

 

 강운구 님이 내놓은 사진책 《자연기행》은 한국땅 골골샅샅 두 다리로 밟으며 안쓰러이 느낀 이야기를 다룹니다. “식물사전에 올라 있는 이 풀(개불알풀)의 호적명 대신에 시골에서는 ‘봄까치꽃’이라고 부른다(65쪽).” 하는 이야기를 다룹니다. “꽃 한 송이를 꼼꼼하게 들여다보면 정교하게 아름답고, 멀리 물러서서 무리를 보면 화려한 빛깔이 눈부시게 아름답다(80쪽).” 하는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누구보다 강운구 님한테 아름다울 이야기를 찾아나섭니다. 다른 사람들이 알아주지 않는다면 강운구 님 스스로 알아주겠다 생각하는 아름다운 이야기를 듣고 만나며 얼싸안습니다.

 

 나한테 아름답게 스며들 수 있으면 넉넉합니다. 내 눈으로 밤하늘 올려다보며 뭇별을 곱게 사랑할 수 있으면 넉넉합니다. 내 손으로 들판 억새를 쓰다듬으며 싱긋 웃을 수 있으면 넉넉합니다. 호미를 쥐어 흙을 쫄 수 있으면 넉넉합니다. 씨앗 한 알 건사하며 내 사랑을 듬뿍 쏟을 수 있으면 넉넉합니다. 글 한 줄 쓰면서 내 꿈을 살포시 실을 수 있으면 넉넉합니다. 사진 한 장 찍으면서 내 하루를 고맙게 여길 수 있으면 넉넉합니다.

 

 

 그런데, 사진책 《자연기행》은 여러 매체에 실은 글을 그러모은 탓인지, 똑같은 이야기를 자꾸 되풀이합니다. 똑같이 되풀이하더라도 곰곰이 되새길 만하다 볼 테지만, 이 작은 책에 미처 싣지 못한 더 너른 이 나라 자연마실 이야기가 있으리라 생각해요. ⅜쯤 차지하는 되풀이하는 이야기는 덜고 새 글과 새 사진을 담으면 얼마나 살뜰하고 푸진 이야기책이 되었을까 하고 헤아려 봅니다. (4345.2.19.해.ㅎㄲㅅㄱ)


― 자연기행 (강운구 글·사진,까치글방 펴냄,2008.7.10./15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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キツネ (北國からの動物記) (大型本)
다케타쓰 미노루 / アリス館 / 200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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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이들한테 보여주며 함께 살아갈 이웃
 [잘 읽히기 기다리는 사진책 49] 다케타쓰 미노루(竹田津 實), 《北國からの動物記 ② キツネ》(アリス館,2008)

 


 들짐승 돌보기로 온삶을 바친 일본사람 다케타쓰 미노루(竹田津 實) 님은 당신 스스로 좋아서 일본 훗카이도에 동물병원을 열었겠지요. 이름은 ‘동물’병원이지만, 정작 다케타쓰 미노루 님이 돌본 짐승은 집짐승보다는 들짐승이었어요. 그래서 다케타쓰 미노루 님 병원은 여느 동물병원이라는 이름보다는 ‘들짐승’병원이라고 할 때에 걸맞다고 느낍니다.

 

 늘 들짐승을 돌보며 살아갔기에 들짐승한테 병원삯을 받지 못합니다. 들짐승은 돈을 갖고 다니지 않아요. 들짐승은 은행계좌가 없어요. 들짐승은 곡식이나 푸성귀로 병원삯을 갚지 않아요. 몸이 다 나으면 병원을 훌쩍 떠나 들판으로 돌아가요.

 

 다케타쓰 미노루 님은 이를 모르지 않았겠지요. 뻔히 밥벌이 안 되는 일인 줄 알면서 이렇게 일하며 살아가지 않았겠지요.

 

 한국말로 옮겨진 다케타쓰 미노루 님 책으로는 뒷이야기를 더 살피기 어렵습니다만, 몇 가지 이야기책으로 읽고 몇 가지 사진책으로 곰곰이 돌아보노라면, 다케타쓰 미노루 님은 누구보다 당신 옆지기와 아이들한테 가장 좋다 싶은 터전에서 가장 좋다 싶은 보금자리를 일구고 싶었기 때문에 이와 같이 일하며 살지 않았느냐 싶어요.

 

 

 

 다케타쓰 미노루 님은 다친 들짐승을 보살핍니다. 일부러 제비 다리를 부러뜨려 고치는 짓을 하지 않아요. 다쳐서 병원을 찾아오는 들짐승이 더러 있으나, 이웃사람들이 다친 들짐승을 보고는 가엾게 여겨 병원으로 데려온답니다.

 

 여러 해에 걸쳐 다케타쓰 미노루 님 사진책을 바라보면서 가만히 생각합니다. 우리 옛이야기처럼 ‘다친 들짐승이 다케타쓰 미노루 님한테 선물 한 가지 베풀며’ 서로 이웃으로 사귀지 않느냐 싶습니다. 다리 다친 제비처럼 돈더미를 베풀지는 않으나, 다친 들짐승은 다케타쓰 미노루 님한테 사진으로 찍히면서 참새이든 여우이든 족제비이든 들쥐이든 토끼이든 사슴이든 …… 한집에서 한식구로 지내며 살가이 사귄 이들 짐승을 들판에서 다시 만나 가까이 사진으로 담는 모습을 글과 사진으로 엮인 책으로 읽으며 ‘새로운 사랑과 삶’을 느낄 수 있어요. 이동안 다케타쓰 미노루 님은 책을 내놓고 사진을 판 돈으로 병원을 꾸립니다. 병원 한 칸을 더 늘릴 수 있고, 당신 아이들을 먹여살리며 가르칠 수 있기까지 해요. 깊은 들판에 조용히 자리한 들짐승병원이 오래오래 이을 만한 돈을 이야기책이랑 사진책이 벌어 줍니다.

 

 다케타쓰 미노루 님은 별나라 짐승을 사진으로 담지 않습니다. 다케타쓰 미노루 님은 머나먼 나라 새롭거나 낯선 짐승을 사진으로 찍지 않습니다. 늘 가까이에서 살아가는 들짐승을 사진으로 담습니다. 언제나 곁에서 이웃으로 지내는 들짐승을 사진으로 찍습니다.

 

 

 

 들짐승을 보살피는 나날이 길어질수록 들짐승을 차분히 바라보며 살가이 담아내는 손길은 한결 따스해집니다. 들짐승하고 이웃으로 지내는 햇수가 늘어날수록 들짐승을 꾸밈없이 마주하며 수수히 담아내는 눈길은 더욱 넉넉해집니다. 들짐승병원에서 태어나 함께 살아간 아이들은 어떤 삶을 누리고 어떤 이야기를 빚으며 어떤 사랑을 꽃피웠을까요. 아이들이 품을 꿈과 사랑에 앞서, 이 아이들을 낳은 두 어버이는 어떤 꿈과 사랑으로 하루하루를 누리며 즐겼을까요.

 

 호시노 미치오 님은 북극곰을 만나러 먼길을 떠나면서 아름다운 벗님을 사귀고 찾았습니다. 다케타쓰 미노루 님은 훗카이도 들짐승병원 둘레에서 들짐승을 늘 마주하면서 살가운 이웃을 사귀고 보살폈습니다. 모두 사랑어린 눈길로 벗님과 이웃을 사귑니다. 모두 믿음어린 손길로 벗님과 이웃하고 어깨동무했습니다.

 

 들짐승이 살아가는 모습을 사진으로 담자면 꽤 오래도록 지켜보고 무척 오랜 나날 살펴보아야 합니다. 다케타쓰 미노루 님은 혼자 들짐승을 지켜보기도 했겠지만, 아이들과 들판에서 뒹굴고 놀면서 들짐승을 살펴보기도 했을 테지요.

 

 흙을 밟으며 들짐승을 만나는 어버이 곁에서 흙을 밟으며 뒹굴고 노는 아이들입니다. 흙을 밟는 들짐승하고 나란히 흙을 밟는 이웃으로 지내는 어버이와 함께 흙을 밟는 들짐승을 좋은 이웃으로 여기는 아이들입니다.

 

 

 

 사진을 찍는 어버이라면, 우리 아이들하고 누구랑 서로 이웃으로 사귀며 함께 살아갈 때에 즐거울까 하고 생각하리라 봅니다. 글을 쓰는 어버이라면, 우리 아이들하고 누구랑 서로 이웃으로 지내며 같이 살아갈 때에 아름다울까 하고 헤아리리라 봅니다. 더 멋진 모습을 사진으로 찍어야 하지 않습니다. 더 빼어난 이야기를 글로 써야 하지 않습니다. 더 돋보이는 모습을 사진으로 보여주어야 하지 않습니다. 더 놀라운 이야기를 글로 써서 읽혀야 하지 않습니다. 사랑 가득한 삶을 사진으로 나눌 때에 즐겁습니다. 사랑 감도는 삶을 글로 함께할 때에 웃음꽃이 핍니다.

 

 좋은 넋으로 좋은 삶이요, 좋은 꿈으로 좋은 사진입니다. 기쁜 생각으로 기쁜 나날이요, 기쁜 사랑으로 기쁜 글입니다. (4345.2.17.쇠.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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