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단골가게 - 서울의 열여섯 동네, 그곳에서 찾은 보물 같은 가게 이야기
박진주 글 사진 / 라이카미(부즈펌) / 2011년 7월
평점 :
절판


 


 참 좋고 매우 기뻐 찍는 사진인가요
 [찾아 읽는 사진책 83] 박진주, 《서울, 단골 가게》(부즈펌,2011)

 


  서울 곳곳에 깃든 예쁘며 사랑스레 여길 만하다는 가게를 찾아다닌 이야기를 간추려 그러모은 《서울, 단골 가게》(부즈펌,2011)를 읽습니다. 《서울, 단골 가게》를 내놓은 박진주 님은 여행작가라 합니다. 서울이 좋고 서울 가운데 홍대가 좋아 홍대 언저리에 살림집을 얻어 지낸다고 합니다. “나는 이 모든 것을 일상처럼 누릴 수 있는 홍대 주민이 되고픈 마음에 이사까지 감행했으며, 모든 만남의 장소를 무조건 홍대로 정했다(10쪽).” 하는 말을 읽으며 고개를 끄덕입니다. 참말, 누구나, 스스로 가장 좋아할 수 있는 곳에 보금자리를 마련하며 살아가야 즐겁습니다. 스스로 가장 좋아할 수 있는 곳이 아니라면 살기 힘들어요. 살아가는 재미를 맛보지 못해요.


  나는 1995년 봄부터 2003년 가을까지 서울에서 살았습니다. 서울에서 살림집 마련해서 살아갈 때에 내가 생각한 대목은 ‘서울 곳곳에 아름다이 뿌리내린 헌책방을 두 다리로 걸어서 가뿐히 오갈 만한 한복판이 어디인가’였습니다. 날마다 슬슬 걸어서 찾아갈 만한 헌책방이 몇 군데쯤 있는데다가 헌책방이 많이 몰린 신촌이나 청계천까지 걸어갈 만한 데라면, 때때로 홍제동이나 불광동이나 연신내까지, 용산이나 노량진이나 숙대앞이나 성북구청이나 길음동까지 걸어서 오갈 만한 데는 어디인가 하고 헤아릴 때에 ‘헌책방 마실 좋아하는 사람이 살기에 좋은 데’는 종로구 평동이나 서대문구 냉천동 또는 현저동’이었습니다. 이리하여, 이 세 군데를 두 발바닥 닳도록 걸어서 돌아다니며 빈집이나 빈방을 알아보았고, 이 가운데 종로구 평동에 살림집을 얻었어요. 내 마음으로는 멧비탈에 자리해 서울 시내 두루 돌아볼 수 있던 서대문구 냉천동 달동네 집이 더 좋았지만, 내 살림 모두를 차지하는 꽤나 많은 책을 실은 짐차가 달동네 집으로 올라갈 수 없더군요. 비알이 대단해 걸어서 올라가기에도 숨이 찼습니다. 그런데 종로구 평동 적산가옥 집으로도 짐차는 들어가지 못해 골목 바깥에 짐차를 부리고는 등짐으로 골목을 지나 2층까지 지고 날랐어요. 무거운 책꽂이도 혼자서 낑낑거리며 나무계단을 밟고 올라가며 올렸습니다.

 


  박진주 님은 “실제로 여행작가가 된 후 그 로망을 비로소 실현했지만, 막상 현실 속의 그것은 생각했던 것처럼 멋있는 일이 아니었고, 오히려 마감에 쫓기고 적절한 글이 떠오르지 않아 오만상을 찌푸리게 하는 일이었다(80쪽).” 하고 말합니다. 글쎄, 꿈이 얼마나 멋스러웠는지 모를 노릇이나, 꿈을 이루는 일이란 ‘한 번 하고 그치’지 않아요. 꿈을 이루었다 할 때에는 이제부터 날마다 누립니다. 곧, 날마다 누리며 날마다 스스로 멋진 삶이 돼요. 박진주 님은 틀림없이 멋진 꿈을 이루었다 할 테지만, 꿈과 달리 삶은 ‘하루하루 쫓기는 모양새’였기에 멋진 이야기를 스스로 빚으면서도 얼마나 멋진가를 더 살 속 깊이 받아들이지 못했구나 싶습니다.


  이 아쉬운 대목은 박진주 님 사진 곳곳에 시나브로 드러납니다. 박진주 님은 스스로 좋아하며 즐겨 찾아다녔다 하는 서울 시내 온갖 예쁘장하다는 가게를 골고루 보여주지만, 이 가게들마다 어떠한 모습과 어떠한 느낌이 더없이 사랑스럽다고 느꼈는가 하는 대목을 사진으로 알뜰히 보여주지 못합니다. 가게 간판을 보여주거나 실내장식을 보여주는 사진이 너무 많습니다.


  간판만 예쁘게 보인대서 이 가게에 들어가지는 않잖아요. 이름만 예쁘장하다거나 실내장식만 예쁘장하대서 이 가게를 사랑스레 여기지는 않아요. 가게마다 다 다른 빛깔이란 무엇일까요. 가게마다 다 달리 즐길 아름다운 꿈과 사랑과 이야기란 무엇인가요. 사진으로 보여주고 글로 풀어낼 때에는 바로 이 대목을 짚을 수 있어야 한다고 느껴요.

 

 


  “파이들이 줄을 서서 기다리고 있는 진열장 앞에 서면 오늘은 어떤 걸 먹어야 할지 행복한 망설임에 한참을 서성이게 된다(165쪽).”는 말처럼, 박진주 님이 찾아다닌 가게들마다 ‘다 달리 겪고 다 달리 느꼈으며 다 달리 받아들인 이야기’를 풀어내야 《서울, 단골 가게》를 즐거이 읽을 만합니다. 이런 이야기를 풀어내지 못한다면 ‘이 가게는 나도 알아’라 말한다든지 ‘이 가게는 모르던 곳이네’ 하고 지나치면 끝입니다. 이 책에 실린 가게가 앞으로 사라진다면, 또는 어디로 옮긴다면, 그때에 이 책 값어치는 어떻게 될까요. 이 책에 실린 가게가 사라지든 오래오래 이어지든, 가게마다 느낀 내 좋은 이야기를 풀어놓을 때에 비로소 ‘여느 가게’ 아닌 ‘단골 가게’라는 이름을 붙일 만하리라 생각합니다. 《서울, 단골 가게》 꾸밈새로 볼 때에는, 아무래도 ‘단골’이라는 이름은 걸맞지 않고 ‘들른 적 있는’밖에 안 되는구나 싶어요.


  “서울에서 가장 쉬운 방법으로 가장 예쁜 가을을 볼 수 있는 곳이라 믿을 만큼 단풍이 든 삼청동은 정말 아름답다. 빨갛고 노란 단풍, 그리고 구름 한 점 없는 새파란 하늘과 돌담이 어우러져 어느 곳에 카메라를 들이대도 엽서처럼 아름다운 풍경이 담긴다(180쪽).”는 대목에 밑줄을 긋고 생각합니다. 참말 아름답다고 말할 만한 모습이란, 사진기를 들이대며 어떤 모습을 담더라도 아름답다고 느낄 만한 모습이란, 사람들이 가게를 꾸미거나 짓거나 다듬는 모습이 아닙니다. 봄 여름 가을 겨울 찬찬히 흐르는 자연 모습이 참으로 아름답다 할 만한 모습입니다. 새싹이 돋고 푸른 빛깔 잎사귀가 빛나며 사르르 물들다가는 앙상하게 잎이 진 모습이 오래오래 바라보며 두고두고 사귈 모습입니다.

 


  숱하디숱한 가게들 또한 바로 이 자연을 한껏 받아들일 때에 더욱 빛납니다. 은행잎이 가게 앞에 점점이 박힐 때에, 단풍잎이 바람에 나부끼는 가게 앞을 거닐 때에, 흰눈 소복소복 내린 깊은 밤 가게에서 창밖을 내다볼 때에, 사뭇 다른 이야기 사뭇 다른 사랑을 깨닫습니다.


  “무엇보다 효자동이 마음에 드는 이유는 만약 이 동네에 산다면 내가 원하는 일상 속 소소한 즐거움을 동네 안에서 모두 해결할 수 있다는 것이다(232쪽).” 하는 말을 읽으며 생각합니다. 그래요. 우리한테 좋은 삶이란 “일상 속 소소한 즐거움”을 누리는 삶일 테지요. “언제나 누리는 가장 작은 일”이 즐겁겠지요. 늘 하는 작디작은 일이 아름답고, 날마다 부대끼는 밥하기·설거지·청소·빨래야말로 내 삶을 북돋우는 가장 좋은 일이 될 테지요. 단골로 삼으려는 가게마다 느끼거나 받아들이는 즐거움이란 대단하거나 커다란 데에 있지 않아요. 작은 한 가지 때문에 즐거워요. 작은 한 가지가 있어 즐거워요. 작은 한 가지를 찾아 밥집이든 찻집이든 옷집이든 술집이든 책집이든 찾아갑니다. 작은 한 가지를 함께 누리는 좋은 짝꿍이거나 동무이거나 옆지기입니다. 작은 한 가지를 놓고 오래도록 이야기꽃 피우는 내 동무들이요 이웃들입니다. 작은 한 가지를 선물하고, 작은 한 가지를 선물받습니다. 글이란, 작은 한 가지를 적바림하는 글입니다. 사진이란, 작은 한 가지를 아로새기는 사진입니다.


  박진주 님은 “집에서 독립하게 되었을 때 가장 기뻤던 것 중 하나가 이제 나만의 찬장에 예쁜 그릇을 모아 놓고 원없이 쓸 수 있으리라는 것이었다(339쪽).” 하고 말합니다. 가장 기쁜 일, 가장 즐기는 일, 가장 사랑스러운 일, 가장 좋아하는 일, 가장 무엇무엇하는구나 하고 깨닫는 일이란, 참말 작고 또 작다고 느낍니다. 가장 바라며 가장 기다리고 가장 손꼽는 일이란, 더없이 작고 그지없이 작구나 싶습니다.

 

 


  그러면, 어떤 글을 쓰고 어떤 사진을 찍을 때에 기쁠까요. 우리들이 저마다 참 좋아할 만하고 매우 기뻐할 만한 글이나 사진이란 무엇일까요. 참 좋고 매우 기쁠 때에는 어떤 글을 쓰고 어떤 사진을 찍나요. 오늘 찍은 사진은 참 좋고 매우 기뻐 찍은 사진인가요. 오늘 쓴 글은 참 좋고 매우 기뻐 쓴 글인가요.


  부디, 마감이나 돈이나 무엇무엇에 쫓기며 글을 쓰거나 사진을 찍지 않기를 바랍니다. 부디, 참 좋아할 때에 글을 쓰고 매우 기쁠 때에 사진을 찍기를 바랍니다. 누구한테 보여주려고 쓰는 글이란 슬픕니다. 누구한테 자랑하려고 여행을 다니는 사람이란 없다고 느낍니다. 스스로 좋고 스스로 즐거웁자고 여행을 다닙니다. 스스로 좋고 스스로 즐거웁자며 밥을 하고 빨래를 하며 살림을 합니다. 스스로 좋고 스스로 즐거웁자며 사진을 찍고 글을 쓰며 사랑을 꽃피웁니다. (4345.3.15.나무.ㅎㄲㅅㄱ)


― 서울, 단골 가게 (박진주 글·사진,부즈펌 펴냄,2011.7.11./18800원)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京都迎賓館 (大型本)
平凡社 / 2010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내가 말하려는 사진책은 안 뜨리라 생각한다. 그러나 이 사진책이 있으니 반갑다. 이 사진책은 나중에 장만해서 찬찬히 소개할 생각이지만, 그때에는 그때 또 쓰기로 하고, '무라이 오사무'라고 하는 사람이 빚는 '건축사진' 삶이 어떠한가 하는 이야기를 적바림해 본다.

 

 

 


 서로가 서로를 찍는 사진
 [잘 읽히기 기다리는 사진책 53] 무라이 오사무(村井修), 《李朝の建築》(求龍堂,1981)


  한국에서 태어나 살아가는 사람이 이웃 일본으로 찾아가 사진을 찍는다면, 어떠한 곳을 돌아다니면서 어떠한 사람들을 만나고 어떠한 이야기를 사진으로 보여줄까 하고 헤아려 봅니다. 일본을 찾아가기 앞서 일본 발자취를 얼마나 더듬고, 일본사람을 사진으로 담기 앞서 일본 문학과 문화를 어느 만큼 짚으며, 오늘날 일본이 누리는 삶을 어떻게 살피며 사진으로 드러낼까 생각해 봅니다.


  한국사람이 ‘일본 옛 문화’를 이야기하는 사진을 찍는 일은 좀처럼 찾아보지 못합니다. 굿 사진을 즐겨찍던 김수남 님이 일본 류우큐우 옛 문화를 더러 사진으로 담기는 했다지만, 일본땅 곳곳을 돌며 온갖 문화와 문학을 골고루 보여주는 사진은 아직 만날 수 없습니다. 한국사람이 찍는 일본 모습이란 으레 도쿄 한복판 눈부신 가게들 늘어선 모습이기 일쑤입니다. 예쁘장하다는 가게들이나 골목에 머물곤 합니다. 맛집을 찾거나 멋집을 보여주곤 합니다. 꼭 이뿐입니다. 여우가 한갓지게 굴을 파는 자연을 살피거나, 미군기지를 몰아내자고 하던 류우큐우 마을사람 움직임을 짚거나, 일본땅 한겨레 웃음과 눈물을 고루 선보이거나, 하는 모습은 참 드뭅니다(아예 없다는 소리는 아닙니다).

 

 

 


  일본사람은 이웃 한국으로 찾아와 수없이 사진을 찍고 수없이 사진책을 내놓습니다. 어느 한쪽에서는 한국땅 맛집과 멋집을 이야기합니다. 어느 한쪽에서는 한국 옛 문화를 이야기합니다. 어느 한쪽에서는 비단길 발자취가 한국을 거친 흐름을 이야기합니다. 어느 한쪽에서는 조선 무렵 양반 물결이라든지, 한국땅 아름다운 자연이라든지, 백두산과 한라산이라든지, 서울 북촌이나 서울 골목길이라든지, 때로는 한국사람 스스로 느끼지 않거나 살피지 않던 데까지 골골샅샅 누비며 사진으로 할 수 있는 온갖 이야기를 따사롭고 넉넉하게 들려줍니다.


  가만히 생각하면, 한국사람은 제 나라 한국땅조차 제대로 밟지 않았구나 싶어요. 곰곰이 돌이키면, 한국사람은 제 겨레 발자국마저 찬찬히 읽지 않았구나 싶어요. 이래저래 살피면, 한국사람은 제 보금자리를 곱게 여미면서 아끼는 길조차 너무 멀구나 싶어요.


  무라이 오사무(村井修) 님 사진을 내건 두툼한 책 《李朝の建築》(求龍堂,1981)을 읽으며 생각합니다. 《李朝の建築》에는 무라이 오사무 님 사진 말고도 여러 사람 사진을 싣지만, 거의 모두 무라이 오사무 님 사진이요, 무라이 오사무 님은 《李朝の建築》에 실린 옛 조선 한옥을 샅샅이 누비듯 찾아다니며 사진으로 담았습니다.

 

 

 


  아주 틀림없는 일일 텐데, 무라이 오사무 님은 한국땅 조선 무렵 한옥을 찾아다니며 사진으로 담기 앞서, 일본땅 옛 일본 옛날 집을 두루 찾아다니며 사진으로 담았겠지요. 제 삶자락을 사랑스레 돌아보던 눈길로 이웃나라 삶자락을 사랑스레 돌아볼 수 있겠지요. 제 삶이웃을 사랑스레 어깨동무하던 손길로 이웃나라 삶이웃이랑 사랑스레 손을 맞잡을 수 있겠지요.


  한국에서 살아가며 눈부시게 파란 빛깔 하늘을 올려다보거나 느끼지 못하던 가슴으로는, 몽골이나 티벳이나 네팔이나 칠레나 수단이나 가나나 모잠비크로 찾아간다 한들 이곳에서 올려다볼 눈부시게 파란 빛깔 하늘이 얼마나 아름다우며 사랑스러운가를 느낄 수 없습니다. 내 작은 마을 내 작은 집에서 내 옆지기가 얼마나 좋은 사람인가를 느끼지 못하는 마음으로는, 미국이나 프랑스나 독일이나 베트남이나 수리남이나 뉴질랜드로 찾아간다 하더라도 그곳에서 마주할 이웃들이 얼마나 좋은 사람인가 하고 맞아들일 수 없습니다.


  삶은 이곳부터 삶입니다. 삶은 그곳까지 삶입니다. 사진은 여기에서 비롯합니다. 사진은 저기까지 사진입니다.

 

 

 


  두툼한 사진책 《李朝の建築》에는 무지개빛 사진을 꽤 많이 싣습니다. 까망하양 사진도 곧잘 싣습니다. 아직까지 한국땅 한국사진으로는 한국 옛집 사진을 담으며 무지개빛 사진으로 눈부시게 담는 손길이 꽤 모자랍니다. 봄 여름 가을 겨울 다 다른 빛살과 빛무늬를 무지개빛으로 담는 손길뿐 아니라, 까망하양으로 봄과 여름과 가을과 겨울이 서로 얼마나 다른가 하고 담아내는 손길을 스스로 깨닫지 않습니다. 무지개빛으로 담을 줄 모르면 까망하양으로 담을 줄 모르고, 까망하양으로 담을 줄 모르면 무지개빛으로 담을 줄 모릅니다. 삶을 담을 줄 모르면 사진으로 담을 줄 모르며, 사진으로 담을 줄 모르면 삶으로 담을 줄 모릅니다.


  일본사람이 어딘가 더 잘났기에 이웃나라로 찾아와 “이웃나라 옛 발자취와 모습과 이야기”를 사진으로 선보이지 않습니다. 한국사람이 어딘가 더 어수룩하기에 이 나라 골골샅샅 안 누비고 이 나라 골골샅샅 이야기를 안 적바림한다고 여길 수 없습니다.


  사진이란, 서로가 서로를 찍으며 이루어집니다. 서로가 서로를 바라보며 이루어집니다. 서로가 서로를 믿으며 이루어집니다. 서로가 서로를 생각하며 이루어집니다. 서로가 서로를 사랑하며 이루어집니다.

 

 


  나 혼자 바라보며 찍을 때에는 사진이 아닙니다. 이때에는 치우친 눈길이 되거나 용두질이 되기 일쑤입니다. 나 혼자 생각하며 찍든, 나 혼자 사랑한다 외치며 찍든, 언제나 사진하고는 동떨어집니다. 서로서로 아끼고 믿으며 사랑하는 동안 시나브로 이루어지는 사진이에요.


  우리 집 좋은 살붙이를 사진으로 담든, 내 오래된 동무를 사진으로 담든, 아리따운 아가씨를 모델로 삼아 예쁜 옷을 입혀 사진으로 담든, 출사라는 이름으로 사람들과 만나 시끌벅적 떠들며 술 한잔 걸치며 놀다가 사진으로 담든, 언제나 사진이란 서로가 서로를 바라보며 이룹니다. 외길이 아닌 사진입니다. 외곬이 아닌 사진이며, 외통수 아닌 사진이에요.


  서로 손을 잡는 사진입니다. 서로 만나려는 사진입니다. 서로 아끼고 돌보며 믿으려는 사진입니다.

 


 

  사진으로 찍기에 못 본 척하지 못해요. 사진으로 찍기에 그냥 지나치지 못해요.


  사진으로 찍기에 오래도록 바라봅니다. 사진으로 찍기에 나중에도 두고두고 떠올립니다. 사진으로 찍기에 한 자리에 멈춥니다. 사진으로 찍기에 오래도록 머물기도 하면서 서로 웃음과 눈물을 살뜰히 빚습니다.


  일본사람 무라이 오사무 님은 아주 좋은 선물을 아주 스스럼없이 아주 수수하게 내밀었습니다. 아끼는 마음으로 사진을 빚고 사랑하는 손길로 사진을 일구어 좋아하는 눈짓을 하며 《李朝の建築》을 우리한테 나누어 주었습니다. (4345.3.13.물.ㅎㄲㅅㄱ)

 

 

 

 

 

 

(사진책 읽는 즐거움 . 최종규 / 2012)


댓글(4)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책읽는나무 2012-03-14 12: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고건축 사진들을 참 좋아하는데,다른나라 사람이 어찌 이리 우리 동네 사진들을 고요하게 잘 찍었더래요? 찍는 구조나 방식이 꼭 우리손으로 찍은 것같으네요.^^
여튼..일본작가들은 어느방면에서나 고수들이 꼭 있어요.샘나게스리~

부디 더 분발하여 주세요.^^;;

숲노래 2012-03-14 16:06   좋아요 0 | URL
한국사람은 가끔 찍을 뿐,
또는 주어진 일감으로 찍을 뿐,
온넋을 들여 사랑스레 마주하지 못하기 때문에
이렇게 담아내지 못하는구나 싶어요.

고수라서 잘 찍는 사진이 아니라,
마음을 담기에 즐거이 찍는 사진이 돼요.

2012-03-14 12:1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2-03-14 16:10   URL
비밀 댓글입니다.
 
사진 - 빛과 그림자의 예술 시공 디스커버리 총서 118
캉탱 바작 지음, 송기형 옮김 / 시공사 / 2004년 2월
평점 :
품절



 서양에서 사진을 만들어 걸어온 길
 [찾아 읽는 사진책 82] 캉탱 바작, 《사진》(시공사,2004)

 


  사진이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지 스스로 갈피를 잡지 못하면 사진을 찍지 못합니다. 야구를 하며 살아가는 이라 한다면, 스스로 야구가 무엇인가 하고 갈피를 잡지 않을 때에 흔들리거나 샛길로 빠집니다. 과학을 하든 문학을 하든, 예술을 하든 여느 공무원으로 일하든 늘 매한가지입니다. 시골 면사무소 일꾼으로 일할 때에는 시골사람다운 넋에 면사무소 일꾼다운 땀방울을 흘릴 줄 알아야 합니다. 늘 제 삶자리를 옳게 바라보며 사랑스레 보듬을 수 있어야 합니다.


  아이를 낳아 돌보는 어버이라 할 때에는, 어버이다운 꿈과 사랑을 짓는 나날이어야 합니다. 이래저래 아이가 태어났으니 어버이가 되지 않습니다. 아이들과 살가이 꾸리는 좋은 살림을 빚을 때에 비로소 어버이라 할 만합니다. 나이를 먹기에 어른이 아니에요. 어른다이 살아갈 때에 바야흐로 어른입니다. 아이들 가운데 너무 이른 나이에 생채기를 많이 받거나 아픔이 잦은 나머지 ‘애늙은이’가 되는 슬픈 목숨이 있어요. 이 아이들은 스스로 얼마나 사랑스러운 나날이요 어린이다운 꿈인가를 생각하지 못해요. 그래서 겉으로는 아이들로 보이지만, 속으로는 까맣게 타들어 간 외로운 넋이에요.


  사진은 한국사람이 빚지 않았습니다. 사진은 한국사람이 누리지 않았습니다. 사진기는 한국사람이 만들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오늘날 한국사람처럼 거의 누구나 아무렇지 않게 마음껏 사진을 찍는 지구별 사람도 없으리라 느낍니다. 참말, 한국사람은 사진 없이는 죽을 사람 같습니다.


  필름이나 메모리카드를 쓰는 사진기 말고, 손전화로 찍는 사진만 하더라도 어마어마합니다. 어린이부터 할멈 할아범까지 사진을 찍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누구나 사진을 찍는다지만, 막상 ‘사진을 누가 만들었을까’라든지 ‘사진을 왜 만들었을까’라든지 ‘사진이 어떻게 이 나라로까지 흘러들어 널리 퍼졌을까’ 같은 대목을 헤아리는 사람은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서양사람 캉탱 바작 님이 엮은 《사진》(시공사,2004)이라 하는 책을 읽습니다. 책이름은 더도 덜도 아닌 ‘사진’입니다. 오직 사진이 무엇인가 하는 대목을 따지고, 오로지 사진이 어떻게 흘러왔는가 하는 대목을 보여줍니다.


 “이 기념할 만한 회의가 있고 며칠이 지나자 벌써 “광학 기계 상점들은 다게레오타입 애호가들로 붐비게 되었다. 역사적 기념물과 각종 건물 및 조각품 들에 사진기를 들이대는 사람들을 어디서나 볼 수 있었다. 누구나 자기 집 창가에서 보이는 전망을 사진으로 남기고 싶어했다. 가장 형편없는 사진조차 이루 말로 다할 수 없는 기쁨을 낳을 정도로 이 기법은 당시로서는 새로운 것이었고 당연히 경이롭게 받아들여졌다(24∼25쪽).” 하는 글을 읽습니다. 프랑스이든 영국이든 독일이든 어디이든, 유럽에서 처음 사진기계를 만들어 특허를 내놓을 무렵, 이들은 너나없이 온갖 모습을 사진으로 찍어 건사하고 싶었다 합니다. 그러면 이무렵, 이른바 1800년대 끝무렵 즈음 한국땅은 어떤 모습이었을까요. 한겨레 사람들은 어떤 삶을 누리고, 어떤 넋을 빛내며, 어떤 나날을 보냈을까요.

  사진이 처음으로 한국땅에 들어올 무렵, 사진기를 쓰는 한국사람도 나타날 무렵, 여러모로 서양사람이 한국사람을 사진으로 찍을 무렵, 일본사람조차 사진기를 어깨에 걸치고 한국땅 골골샅샅 사진으로 담을 무렵, 한국사람은 이 사진을 어떻게 느끼거나 바라보았을까요.


  오늘날 한국사람은 1800년대 끝무렵과 1900년대 첫무렵에 서양과 일본에서 한국땅 골골샅샅 누비며 한겨레 삶자락을 사진으로 담듯, 아프리카나 중남미나 인도나 네팔이나 티벳이나 몽골이나 베트남이나 동남아시아나 여기저기로 찾아다니면서 온갖 모습을 사진으로 담습니다. 나라밖 가난한 사람들 모습을 사진으로 담으며 가난을 얘기하고, 나라밖 해맑은 자연을 사진으로 찍으며 자연을 노래하며, 나라밖 여느 사람을 사진으로 옮기며 삶과 꿈과 사랑을 보여줍니다.


  “미국에서는 대개 이름없는 떠돌이 사진사들이 사진 제작의 많은 부분을 담당했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37쪽).” 하는 글을 읽습니다. 해마다 모든 초·중·고등학교에다가 어린이집이나 유치원까지 졸업사진책을 내놓습니다. 혼인사진이나 돌사진은 으레 사진첩 한 권으로 두툼하게 묶입니다. 졸업사진책이든 혼안사진책이든, 이러한 사진책에 사진쟁이 이름이 박히는 일은 없습니다. 갓 태어난 사랑스러운 아이를 찍는 어버이는 제 아이들 사진에 제 이름을 새기지 않습니다.


  “초기의 영국 칼로타입 사진가들은 사회학적으로 상당히 동질적인 부류를 형성하고 있었다. 어느 정도의 교양을 갖춘 그들은 과학만이 아니라 예술에도 관심이 있었고, 돈과 시간이 충분하여 오락과 취미에 탐닉할 수 있었다(40쪽).” 하는 글을 읽습니다. 사진은 틀림없이 어떤 모습을 꾸밈없이 담는다 합니다. 사진은 참말 어떤 모습을 내가 바라보는 대로 옮긴다 합니다.


  그러면, 내가 바라보는 어떤 모습을 고스란히 옮기는 일은 어떤 값을 하나요. 사진기가 1/100초이든 1/1000초이든 시간을 잘라내어 어떤 모습을 간직할 수 있다 하는 일이란 어떤 뜻을 담나요.


  사진을 찍는 일이란 내 삶을 얼마나 사랑하는 일이 될까요. 사진으로 찍어 어느 모습 하나를 되새기는 일이란 내 삶을 얼마나 좋아하는 일이 되나요. 사진으로 찍힌 삶과 사진으로 안 찍힌 삶은 서로 얼마나 다를까요.


  “부유한 부르주아지를 겨냥한 초호화판 사진관들은 대도시의 중심가에 자리를 잡았다 … 로열층에 위치한 사진관은 대리석과 수정으로 치장되었다. 사진관에 들어서면 치과병원의 대기실보다는 응접실에 더 가까운 방이 손님을 맞이했다(59쪽).” 하는 글을 읽습니다. 사진책 《사진》을 읽는 내내, 돈이 없고 이름이 없으며 힘이 없는 사람들이 누렸음직한 사진 이야기는 한 줄로도 찾아내지 못합니다. 가난한 사람들한테는 사진이 없고, 고단한 사람들한테는 사진이 멀며, 아프거나 슬프거나 힘든 사람들 둘레에는 사진이 보이지 않습니다.


  예술을 하거나 신문기자 일을 하는 사람 가운데 몇몇이 뒷골목을 드나들며 사진 몇 장 찍곤 한다지만, 막상 뒷골목에서 태어나 자라고 살아가는 사람 스스로 제 삶자리를 사진으로 옮기는 일은 아주 드뭅니다. 글을 쓰는 사람 가운데에는 뒷골목에서 태어나 자라고 살아가는 모습을 고스란히 옮기는 이가 더러 나타납니다. 그림을 그리는 사람 가운데에도 제 어둡거나 슬프거나 힘겹던 지난 삶자락을 낱낱이 옮기는 이가 드문드문 나타납니다. 그런데, 삶이든 무엇이든 꾸밈없이 담아 고스란히 보여준다 하는 사진 갈래에서만큼은, 좀처럼 여느 자리 여느 삶 여느 이야기 여느 꿈 여느 사랑을 들려주는 사진쟁이를 만나기 어려워요.


  “남북전쟁이 끝난 후 대부분의 철도 회사들은 사진가들을 고용하여 그들에게 한창 진행중인 철로 건설 사업을 부각시키는 동시에 기차가 통과하게 되면서 펼쳐지는 주변의 아름다운 풍광을 담도록 했다(79쪽).” 하는 글을 읽습니다. 참 옳구나 싶으면서 참 슬프네 하고 느낍니다. 무언가 먹고살 길을 찾자면, 돈이 있는 사람이 시키는 일거리를 얻어야 한답니다. 어찌저찌 살림을 꾸릴 길을 걷자면, 돈이 될 사진을 찍고, 돈을 거머쥔 사람한테 가까이 다가서야 한답니다. 그래, 그러면, 그렇다면, 참으로 이와 같다면, 내 좋은 보금자리에서 밥과 옷과 집을 스스로 빚으면서 내 좋은 꿈과 사랑을 살가운 이야기로 빚는 사진길을 걸으면 될 노릇 아니랴 생각합니다. 사진으로 돈을 버는 삶이 아닌, 내 삶을 사랑하며 누리는 나날 그대로 사진을 찍을 수 있으면 그지없이 아름다운 모습 아니랴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사진이란 고스란히 드러내는 빛살이요, 삶이란 고스란히 누리며 어깨동무하는 빛줄기일 테니까요.


  오늘날 한국땅에서 사진을 배우고 싶다 말하는 푸름이와 젊은이는 으레 서양 학문을 배우고 서양 문화흐름을 좇으며 서양으로 몸소 찾아가 사진학교를 다닙니다. 아무래도 사진이 태어나고 널리 퍼진 데는 서양이기 때문입니다. 미국이기 때문이고 일본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나는 좀 달리 느낍니다. 글을 쓰는 사람이 꼭 에스파냐라든지 덴마크로 글배움을 하러 가야 할까 궁금합니다. 시를 쓰거나 동화를 쓰거나 희곡을 쓰는 사람이 애써 칠레나 스웨덴이나 독일로 글배움을 하러 떠나야 하는지 궁금합니다. 그림을 그리고픈 이가 네덜란드나 벨기에나 영국으로 그림배움을 하러 찾아가야 하는지 궁금합니다.


  내 곁 좋은 삶을 깨닫고 내 둘레 좋은 사람을 느끼며 내 자리 내 모습과 내 꿈과 내 사랑을 헤아리면서 사진길을 씩씩하게 걸어가면 어떤 이야기를 길어올릴 수 있는지 궁금합니다. 나 스스로 내 자그마한 사진기 하나로 ‘내 새로운 사진길’을 열면서 ‘내 고운 꿈 실은 사진역사’를 이루면 어떠한 그림이 될까 궁금합니다.


  처음부터 특허가 될 수 없던 사진입니다. 처음부터 누구한테서 배우지 못하는 사진입니다. 고스란히 담는 사진이라는 빛깔이기 앞서, 내 눈길은 내 삶을 얼마나 고스란히 바라보며 고스란히 맞아들이고 고스란히 즐길 줄 아는가를 스스로 찾을 때에 사진이든 그림이든 글이든 노래이든 영화이든 춤이든 만화이든 시나브로 예쁘게 태어난다고 느낍니다. 서양사람은 서양나라에서 서양물결대로 사진을 이룹니다. 한국사람은 한국땅에서 한국결대로 사진을 일굽니다. 도시사람은 도시사람대로, 시골사람은 시골사람대로, 어린이는 어린이대로, 젊은이는 젊은이대로, 누구나 제 삶을 사랑하는 결대로 사진을 보듬습니다. (4345.3.14.물.ㅎㄲㅅㄱ)


― 사진 (캉탱 바작 글,시공사 펴냄,2004.2.28./7000원)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홀가와 놀기 - 환상을 담는 토이 카메라
현정민 지음, 한인규 사진 / 시공아트 / 2009년 9월
평점 :
품절


 


 사진놀이 즐기는 삶이란
 [찾아 읽는 사진책 81] 현정민·한인규, 《홀가와 놀기》(시공아트,2009)

 


  ‘홀가’라 하는 사진기가 있습니다. 영어로 ‘토이카메라’ 갈래에 든다는 사진기입니다. 꼭 ‘장난감’이라 여길 수 있을 테지만, 이 사진기는 가벼운 장난감이 아닙니다. 놀이하듯 가벼이 즐길 수 있는 사진기입니다. 그래서 ‘토이카메라’를 한국말로 옮긴다면 ‘놀이하는 사진기’, 곧 ‘놀이사진기’로 적으면 알맞으리라 생각합니다. 이른바 ‘사진놀이’에 꽤 잘 어울리는 사진기라 할 만합니다.


  나는 ‘놀이사진기’를 따로 쓰지 않습니다. 나는 일부러 빛샘을 즐기지 않거든요. 나는 일부러 사진 테두리가 까맣거나 뿌옇게 나오도록 하지 않아요. 나도 ‘사진놀이’를 즐기는 사람이요, 집에서 아이들을 사진으로 담을 때에 즐겁게 담습니다만, 애써 ‘꿈 같아 보이는 모습’을 만들 마음은 없습니다. 내 아이들을 바라보면 언제나 꿈과 같고, 늘 사랑스럽기 때문에, 여느 사진기로 이 꿈 같으며 사랑스러운 모습을 꾸밈없이 담습니다.


  현정민, 한인규 두 분이 함께 글을 쓰고 사진을 담은 《홀가와 놀기》(시공아트,2009)를 읽다가 생각합니다. 두 분은 “아주 기본적인 장치로만 이루어진 저렴한 카메라 홀가 덕분에 일반인들도 중형사진에 좀더 쉽게 다가설 수 있었다(11쪽).” 하고 이야기합니다. 값이 얼마나 싸기에 이렇게 말하는가 궁금하지만, 이래저래 값이 싸기에 이렇게 말하리라 생각합니다. 다만, 사진놀이는 값싼 사진기로만 즐기지는 않아요. 대형사진기로도 사진놀이를 즐기면 됩니다. 디지털사진기로도, 1회용사진기로도, 똑딱이디지털사진기로도, 값싼 필름사진기로도 얼마든지 사진놀이를 즐기면 돼요. 값싼 사진기를 쓴대서 더 사진놀이를 마음껏 누리지 않습니다. 사진을 하는 마음이 홀가분할 때에 비로소 사진놀이를 신나게 누립니다. 사진기를 쥔 손이 홀가분하고, 사진기로 들여다보는 온누리를 맑게 헤아릴 때에 바야흐로 사진놀이가 빛납니다.

 

 


  그나저나, 《홀가와 놀기》라 한다면, 이 사진책에 담은 ‘사진기 홀가 모습’부터 ‘홀가 사진기로 찍어서 보여주’면 한결 그럴듯하리라 생각합니다. 곰곰이 보건대, ‘사진기 홀가’는 ‘다른 사진기’로 찍어서 보여주는구나 싶어요. 아무래도 ‘사진기나 필름이나 부품을 또렷하게 보여주’는 데에서는 홀가로는 제대로 보여주기 힘들기 때문이라 할 텐데, 참말 “홀가와 놀기”를 이야기하는 책이 된다면, 이런 대목부터 “홀가와 놀기”를 마음껏 선보일 때에 더 재미나리라 생각합니다. 이를테면, 파노라마사진기를 이야기하는 사진책은 아예 모든 사진을 파노라마사진기로 찍는 셈입니다.


  “일반 카메라에서 빛샘 흔적이 보인다면 카메라를 수리해야겠지만 홀가는 이러한 단점조차 개성으로 인정하기 때문에 더욱 다양한 사진을 연출할 수 있다(14쪽).”고 합니다. 너무 마땅해서 달리 할 말이 없습니다만, 홀가뿐 아니라 어떠한 사진기라도 ‘좋고 아쉬운’ 대목이 있습니다. 모든 대목이 그저 좋기만 한 사진기는 한 가지도 없습니다. 질감이나 빛느낌이 대단히 좋다지만, 장비가 너무 무겁다든지, 사진 한 장 찍기까지 품이나 손이 많이 간다든지 하잖아요. 가볍게 들고 다니며 잽싸게 찍을 수 있다지만 질감은 좀 떨어진다든지 하고요.


  사진을 찍는 사람한테는 사진기가 대수롭지 않습니다. 글을 쓰는 사람한테는 연필이 대수롭지 않습니다. 그림을 그리는 사람한테는 붓이 대수롭지 않습니다.

 

 


  연필이든 볼펜이든, 하얀 종이가 되든 앞쪽은 광고종이요 뒤쪽은 빈종이가 되든, 책 귀퉁이가 되든 껌종이가 되든, 글을 쓰는 사람은 어디에라도 글을 씁니다. 글을 쓰려는 사람 넋을 온통 불사르며 글을 씁니다.


  크레파스로 그림을 그리든 파스텔로 그림을 그리든 다 좋습니다. 1b이든 2b이든 3b이든 hb이든 대수로울 까닭이 없어요. 아무 연필이든 손에 쥘 수 있으면 돼요. 《플란다스의 개》에 나오는 네로라는 아이는 물감이 없어 숯이나 목탄으로만 그림을 그렸다 하지만 누구보다 빛나는 이야기를 담았다고 해요.


  홀가이든 펜탁스이든 미놀타이든 캐논이든 롤라이이든 하나도 대수롭지 않습니다. 로모면 어떻고 후지6×17이면 어떻습니까. 내가 살아가는 이야기를 담고, 내가 사랑하는 이야기를 실으며, 내가 생각하는 이야기를 펼칠 수 있는 사진기라면 어떠한 사진기라도 좋습니다. 내 꿈을 담는 사진이고, 내 빛을 선보이는 사진입니다. 내 길을 걷는 사진이고, 내 뜻을 나누는 사진이에요.

 


  《홀가와 놀기》를 내놓은 두 분은 “언제부터인가 내 사진 촬영에서 노력의 흔적들이 보이지 않았다. 그저 마음에 드는 컷은 취하고 아니다 싶으면 바로 지워 버리는 일들이 잦아지기 시작했다 …… 쉽게 찍힌 사진이 아무 거리낌없이 버려지는 것을 자주 보는 나에게는 잘 나온 사진이든 그렇지 못한 사진이든 내 기억을 대신해 줄 훌륭한 저장소가 필요했다(79쪽).” 하고 말합니다. 적잖은 이들이 이러한 갈림길에 빠진다고 하는데, 참 딱하며 안타깝습니다. 그러나 어쩌는 수 없어요. 삶이 재미없을 때에는 사진 또한 재미없습니다. 삶이 사랑스럽지 않을 때에는 사진이라고 사랑스럽게 받아들이지 못해요.


  “내 사진을 더 땀흘려 잘 빚지 못한다”고 느낀다면, “내 삶부터 얼마나 땀흘려 슬기로이 빚는가” 하고 돌아보아야 합니다. 삶을 추슬러야 합니다. 삶을 다스리는 꿈이 얼마나 아름다운가 헤아려야 합니다.


  사진기를 내려놓아야 합니다. 사진기 아닌 두 손과 두 다리를 바라보아야 합니다. 맨눈으로 온누리를 살피고, 맨몸으로 이웃과 동무를 사귀어야 합니다. 맨마음으로 집일과 바깥일을 알뜰히 보살펴야 합니다. 삶을 먼저 사랑할 수 있는 몸가짐을 되찾고서 다시 사진기를 손에 쥐어야 합니다.


  “홀가처럼 정사각형 필름 안을 채우는 경우는 기존과는 다른 시선으로 사물을 바라봐야 한다(99쪽).”는 말마디로는 모자랍니다. 어떤 사진기이든 사진기마다 ‘사람과 사물을 바라보는 틀’이 다릅니다. 같은 회사에서 나온 사진기라 하더라도 제품에 따라 ‘사람과 사물을 바라보는 틀’이 바뀝니다.

 

 


  무딘 칼로 도마질을 할 때랑 날카로운 칼로 도마질을 할 때에는 손놀림이 바뀝니다. 뜨거운 물과 차가운 물을 만질 때에는 손길이 달라집니다. 여느 옷가지를 빨래할 때하고 똥기저귀를 빨래할 때에는 사뭇 다릅니다.


  먼저 내 마음을 가다듬은 뒤 사진기를 손에 쥘 우리들입니다. 홀가를 쥐어 놀든, 다른 사진기를 쥐어 놀든, 나 스스로 어떤 꿈을 꾸면서 어떤 길을 걷는 어떤 삶을 사랑하려 하느냐 하는 대목을 환하게 깨달은 다음 사진기를 쥐어야지 싶습니다. 꿈과 길과 삶을 제대로 느끼지 못하는 나날이면서 사진기만 먼저 달랑 손에 쥔다면, 어떠한 사진기를 손에 쥐더라도 아무 사랑이 깃들지 못하는 맨숭맨숭한 복제품만 잔뜩 쏟아질 뿐이에요.


  슬픔을 담는 사진인지 기쁨을 담는 사진인지 생각해야 합니다. 삶을 사랑하는 사진인지 삶이 고단한 사진인지 살펴야 합니다. 좋아하는 이야기를 싣는 사진인지 가슴 저린 이야기를 싣는 사진인지 돌아보아야 합니다. 남한테 보여주려 하는 사진인지, 나 스스로 가슴이 벅차오르는 사진인지 생각해야 합니다.


  그나저나, 사진책 《홀가와 놀기》는 똑같은 사진을 되풀이해서 쓰는군요. 작은 사진책에 같은 사진을 되풀이해서 쓰는 일은 썩 보기 좋지 않습니다. 다 다른 이야기를 선보이는 더 많은 사진을 실을 때에 한결 나으리라 생각합니다. 또한, 《홀가와 놀기》라는 이름을 붙이지만, 정작 ‘얼마나 신나게 노느냐’ 하는 이야기는 책 끝자락에 몇 쪽 없습니다. 이 책은 ‘중형필름 쓰는 사진기 다루기’하고 ‘찍은 사진을 스캐너로 긁어 파일로 다루기’를 이야기하느라 너무 긴 자리를 써 버립니다. ‘홀가 입문서’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서 이렇게 책을 엮었는지 모르나, ‘기계 다루기’는 ¼쯤으로 간추리고, 나머지는 온통 ‘홀가랑 아기자기하고 멋스러이 논 이야기’를 담았어야 한다고 느낍니다. (4345.3.9.쇠.ㅎㄲㅅㄱ)


― 홀가와 놀기 (현정민·한인규 글·사진,시공아트 펴냄,2009.9.21./12000원)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私が見た戰爭 (單行本)
石川 文洋 / 新日本出版社 / 2009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이 글에서 말하는 책은 안 뜬다. 그러나 다른 책은 꽤 뜨니 반갑다. 이런 책들이 한국말로도 옮겨지면 얼마나 반가울까.)

 

 

 


 사진이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잘 읽히기 기다리는 사진책 52] 이시카와 분요(石川文洋), 《報道カメラマン》(朝日新聞社,1991)

 


 사진이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스스로 생각하는 대로 사진을 찍는 만큼, 사진기를 쥐기 앞서, 나 스스로 사진이 무엇인가를 헤아리고 살펴 깨달아야 합니다.

 

 삶이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스스로 살아가는 대로 사진을 찍는 만큼, 사진기를 장만하기 앞서, 나 스스로 내 삶은 어떠한 길을 걷는가를 똑똑히 돌아보며 제대로 알아채야 합니다.

 

 사랑이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스스로 사랑하는 대로 사진을 찍는 만큼, 사진기를 휘두르기 앞서, 나 스스로 사랑이 어떠하고 사랑하는 눈길과 마음길은 어떠한 결인가를 느껴야 합니다.

 

 단추를 누르는 기계질은 사진찍기가 아닙니다. 예술을 하거나 그림을 그리는 이들이 사진기라는 기계를 장만해서 단추를 누른다 해서 사진이 태어나지 않습니다. 예술을 하는 사람은 예술을 하고 싶으니 사진기를 빌립니다. 예술을 하는 사람은 사진기도 빌리고 붓도 빌리며 연필도 빌립니다. 때로는 텔레비전을 빌리고 때로는 컴퓨터를 빌리며 때로는 자전거를 빌립니다. 온몸으로 예술을 하기도 합니다.

 

 

 

 

 그림을 그리는 이들은 이녁이 그리는 그림을 더 꼼꼼히 그린다든지 나중에 느긋하게 그리려고 사진기를 빌려 사진으로 ‘그림쟁이가 바라본 모습’을 옮깁니다. 사진기를 써서 ‘어떤 모습을 옮긴다’ 할 뿐, 이렇게 옮기는 일은 사진찍기가 아닙니다. 초·중·고등학교 아이들이 수학여행이나 체험학습을 나온 박물관에서 ‘알림판에 적힌 글’을 수첩에 옮겨적는대서 ‘글쓰기’라 하지 않습니다. 이 아이들이 손전화나 디지털사진기 따위로 ‘알림판에 적힌 글’을 쉽게 옮긴대서 ‘사진찍기’라 하지 않아요.

 

 사진을 찍는다고 할 때에는, 삶을 찍는다는 뜻입니다. 사진을 담는다고 할 때에는, 사랑을 담는다는 뜻입니다.

 

 정부를 이끄는 이들이 나쁜 짓을 일삼아 시위를 하거나 집회를 하는 모습을 찍는다 하는 보도사진은 ‘사진기 단추만 누를 때에는 사진도 보도사진도 되지 않’습니다. 이때에는 신문이나 잡지에 싣는 ‘기사’나 ‘보도자료’나 ‘구경거리’만 됩니다. 시위나 집회, 사건이나 사고, 사람들 터전에서 생기는 온갖 일을 ‘사진찍기’로 보여준다 할 때에는, 시위나 집회를 비롯한 온갖 일들에 어떤 이야기가 깃드는가를 보여줍니다. 이러한 이야기로 우리 삶을 어떻게 헤아리며 사랑하려 하는가 하는 넋을 두루 보여줍니다.

 

 

 

 

 패션모델을 사진으로 옮긴대서 패션사진 찍기가 되지 않습니다. 이때에는 돈벌이와 구경거리는 될 뿐입니다. 패션모델을 앞에 놓고 사진찍기를 하자면, 모델이 입은 옷으로 어떠한 꿈과 이야기를 사람들하고 나누려 하는가 하는 넋을 보여주어야 합니다. 곧, ‘알몸사진’을 찍는다고 하는 수많은 대회나 잔치라든지, 이러한 자리에서 사진을 찍는다고 나서는 이들 어느 누구도 막상 ‘사진찍기’는 안 하거나 못 하는 셈입니다. 한 마디로 가벼이 노닥거리면서 여자 알몸을 ‘훔쳐보기’ 하거나 ‘대놓고 구경하기’를 할 뿐입니다.

 

 보드라운 살결이기에 아름답지 않습니다. 갈라지고 터진 굳은살 박힌 손이기에 아름답지 않습니다. 아름다이 사랑하며 살아가는 사람이기에 아름답습니다. 아름답다고 느낄 사진이란, 아름다이 사랑하며 살아가는 사람을 아름다이 사랑하며 살아가는 눈길로 바라보며 어깨동무할 때에 태어납니다.

 

 이시카와 분요(石川文洋) 님이 내놓은 사진책 《報道カメラマン》(朝日新聞社,1991)이 있습니다. 1052쪽에 이르는 손바닥책입니다. 이시카와 분요 님은 《報道カメラマン》에 앞서 《戰場カメラマン》(1986)을 내놓았습니다. 사진을 찍으며 일하는 사람 땀방울과 발자국이란 무엇인가 하고 스스로 밝히는 책입니다. 사람이 빚는 아름다운 사랑을 느끼고, 사람이 빚는 슬프며 모진 전쟁을 부대끼며, 사람이 빚는 메마른 손길에 아파하고, 사람이 빚는 따사로운 마음길에 봄햇살을 맞아들이는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사진이란 무엇일까요. 사진길을 걷는 사람이라면 언제나 생각하며 느껴야 합니다. 삶이란 무엇일까요. 사진과 함께 살아가는 사람이라면 노상 헤아리며 깨달아야 합니다. 사랑이란 무엇일까요. 사진을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어김없이 느끼며 껴안아야 합니다.

 

 사람을 살리는 사진을 생각합니다. 사람이 살아가는 마을을 헤아립니다. 사람이 사랑하는 꿈을 살핍니다. 보도사진은 신문사진이 아니요, 보도사진은 사건사진이나 전쟁사진이 아닙니다. 보도사진이란 내 둘레 사람들 이야기를 내 삶 이야기로 맞아들여 보여주는 사진입니다. 보도사진을 찍는 사람이란 구경꾼이 아니라 내 삶을 온마음으로 아끼면서 온몸으로 부대끼는 꿈을 찍는 사람입니다. (4345.3.6.불.ㅎㄲㅅㄱ)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