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을을 상상하는 20가지 방법 - 우리가 꿈꾸던 마을이 펼쳐지고 있다, 2015년 세종도서 교양 부문 선정
박재동 글.그림 김이준수 글, 서울시 마을공동체 담당관 기획 / 샨티 / 201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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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뜻한 삶읽기, 인문책 109



한마을에서 이웃이 되는 길

― 마을을 상상하는 20가지 방법

 박재동·김이준수 지음

 샨티 펴냄, 2015.4.6.



  ‘마을 살리기’ 바람이 찬찬히 온 나라에 붑니다. ‘마을’이라는 낱말은 시골에서 쓰는 말이고, 도시에서는 ‘동네’라는 낱말을 쓰지만, 요새는 도시에서도 ‘마을’이라는 낱말을 곧잘 씁니다.


  한국말사전을 살펴보면 쉽게 알 수 있는데, ‘마을’이라는 낱말은 “살림집이 여럿 모여 이루어진 삶터”를 가리킵니다. ‘동네’는 ‘洞 + 네’입니다. ‘동네’는 ‘洞內’에서 말꼴이 바뀌었다고도 하지만, ‘형네’나 ‘할머니네’처럼 ‘-네’를 붙였다고 여기기도 합니다. 아무튼, 한겨레는 먼 옛날부터 ‘마을’이라는 낱말만 썼으나, 시골살이가 사라지는 곳, 이른바 ‘도시’가 생기면서 한자를 빌어 ‘동네’라는 낱말을 새로 지어서 썼다고 여깁니다. 오늘날에는 ‘뉴타운’ 같은 영어를 쉽게 쓰지만, 일제강점기 언저리와 해방 뒤에는 으레 한자로 새 낱말을 지어서 썼습니다.


  그러니까, 오래된 삶터에서는 수수하게 ‘마을’이라는 낱말을 쓰는 셈이요, 새로운 문명과 사회를 보여주려고 하는 도시에서는 ‘동네’라는 낱말을 써서 둘을 가르려고 하는 셈입니다.



.. 임유화 씨는 아파트가 한 칸 한 칸의 사적 재산물들이 모여 있는 단순한 집합체라기보다는 그것들이 모여 하나의 마을을 이루는 공동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 ‘함께하는 것’의 즐거움을 맛본 사람들이 속속 판을 넓히기 시작하면서 성미산마을은 점점 더 흥미로운 곳이 되어 갔다 … ‘어울려서 요리하고 먹는’ 즐거움이 주방에서 시작해 마을로 이어진다 ..  (15, 29, 47쪽)



  ‘두레’를 엮으려는 움직임이 나라에서까지 일어납니다. 한자말로는 ‘협동조합’이라고 하는데, ‘협동조합’은 일본에서 지은 낱말입니다. 협동조합 운동도 일본에서 불거졌습니다. 나라에서 정책으로 협동조합 바람을 일으키기 앞서, 도시에서는 사람들 스스로 ‘생협(생활협동조합)’ 운동을 벌였습니다. ‘두레 생협’ 같은 이름을 쓰는 곳도 있었는데, 생협이든 협동조합이든 한국말로 가리키면 ‘두레’입니다.


  뜻을 모으고 힘을 모아서 여럿이 함께 큰일을 할 적에 ‘두레’를 합니다. 두레를 모임으로 엮지요. 그런데, ‘마을’이라는 이름도 시골살이에서 태어났고, ‘두레’라는 이름도 시골살이에서 나타났습니다. 도시에서는 흙일을 하지 않는데, 외려 도시에서 ‘마을 살리기’나 ‘마을 만들기’를 벌이고, ‘두레’라는 모임을 엮으려는 움직임이 크게 일어납니다.



.. 누군가는 이웃랄랄라가 어떻게 마을공동체냐고 물을 수도 있겠다. 그러나 이웃랄랄라는 분명 마을공동체다. 스스로 하나의 마을이 되었다 … 이런 과정에서 은실이네만의 철학도 생겼다. 조금 벌더라도 일을 많이 하지는 말자 … 마을에서는 곧잘 ‘우연한 만남’이 이루어진다. 그러나 현대의 많은 대도시들은 이런 기회를 차단하고 있다 … 곽수경 씨는 자신이 오랜 시간을 통해 깨달은 것을 마을의 청소년들도 언젠가 알게 되기를 바란다고 했다 ..  (59, 68, 78, 204쪽)



  박재동·김이준수 님이 빚은 이야기책 《마을을 상상하는 20가지 방법》(샨티,2015)을 읽습니다. 서울에서 ‘마을 살리기’를 알차면서 예쁘게 잘 하는 스무 군데 마을을 찾아다닌 이야기를 담은 책입니다. 서울에서 무럭무럭 자라는 예쁜 마을이 스무 군데뿐이겠습니까만, 이 스무 군데 이야기를 바탕으로 새로운 마을이 자라기를 비는 마음일 테고, 다른 모든 예쁜 마을이 튼튼하게 뿌리내리기를 꿈꾸는 마음이리라 생각합니다.


  그나저나, 책을 찬찬히 읽다가 문득 이런 생각도 듭니다. 왜 마을 살리기를 할까요? 마을 살리기를 굳이 해야 할까요?


  아무래도 마을 살리기를 한다고 한다면, 마을이 죽었기 때문입니다. 마을 살리기를 굳이 해야 하는 까닭이라면, 마을이 죄다 사라졌기 때문입니다.


  앞뒤가 어긋난다고 해야 할까요, 씁쓸하다고 해야 할까요, 1970년대로 접어든 뒤부터 나라에서 ‘새마을 운동’을 일으켰고, 이 운동은 아직도 깃발이 나부낍니다. 아직도 시골에서는 마을마다 새마을 운동 깃발을 내걸어야 합니다. 시골 군청에서도 이 깃발을 내걸고, 도시에서도 이 깃발을 내걸어요. 그런데 말이지요, 새마을 운동 바람이 일고 난 뒤부터 ‘마을이 죽었’습니다. 새마을 운동은 시골에 있던 수많은 마을을 깡그리 짓밟았습니다. 게다가 도시에 있던 달동네도 하나둘 짓이겼습니다. 아주 오랜 옛날부터 살갑고 고요하게 숨쉬던 마을살이를 몽땅 내쫓으려고 하던 새마을 운동입니다. 새마을 운동을 벌이면서, 풀집과 흙집을 허물었습니다. 제비집도 까치집도 허물었습니다. 마을 고샅길을 시멘트로 덮었고, 논둑도 시멘트로 덮으며, 논도랑도 시멘트로 덮었지요. 비료와 농약과 비닐을 쓰도록 부추긴 새마을 운동입니다. 새마을 주택을 짓게 시키고, 새마을 모자를 쓰게 시키며, 새마을 수련원을 세워서 ‘나라에 충성하는 애국 시민’을 키우려고 닦달했습니다.



.. 마을에서 꼭 해야 하는 일이라는 생각에 절대 포기하지 않는다. 시간이 걸릴망정 되지 않은 일은 없다 … 〈도봉 N〉은 마을에서 벌어진 사소한 일도 놓치지 않고 신문에 담아냈다. 아이들이 쓴 시가 실리기도 했는데, 그럴 때면 아이들은 신문이 언제 나오느냐고 보채곤 했다. 내 이야기, 우리 이야기가 실리는 신문, 마을사람들이 관심을 가질 만한 이유가 있었다 … 미디어는 즐겁고 흥미로운 이야기를 담아낼 때 빛이 난다. 내 주변에 귀를 기울이면 얼마든지 즐겁고 흥미로운 이야기를 담아낼 수 있다는 것을 와보숑은 보여준다 ..  (114, 129, 151쪽)



  마을은 나라에서 세우지 못합니다. 마을은 사람들 스스로 세웁니다. 사람들이 손수 흙을 가꾸고 나무를 심으며 들을 돌볼 적에 비로소 살림집 한 곳이 태어나고, 이웃집이 생기고 늘면서 바야흐로 마을을 이룹니다. 커다란 장비를 써서 아파트를 수백 채씩 때려박아서 수천이나 수만에 이르는 사람이 좁은 곳에 다닥다닥 붙어서 살도록 해야 ‘마을’이 되지 않습니다. 예부터 ‘마을’이라고 하는 곳은 ‘아이들한테 물려줄 수 있는 삶터’입니다. ‘아이들이 물려받아서 즐겁게 살다가, 새롭게 아이를 낳아서 오래오래 물려줄 만한 삶터’가 바로 마을입니다.


  《마을을 상상하는 20가지 방법》에 나오는 ‘마을 살리기’를 찬찬히 보면, ‘골목집’으로 이루어진 마을은 드뭅니다. 으레 아파트로 이루어진 마을입니다. 아파트라고 해서 마을이 안 될 까닭은 없습니다. 그러나, 아파트는 언제나 재개발을 합니다. 아파트 재개발을 하면, 이곳에 ‘예전 아파트 주민’이 다시 돌아와서 살기 어렵습니다. 더군다나, 아파트 재개발을 하면 예전 아파트를 허물면서 나오는 온갖 시멘트 쓰레기와 플라스틱 쓰레기가 갈 곳이 없어요. 이런 쓰레기를 어디에 버릴까요? 갯벌에 파묻고 매립을 할까요? 바다에 던질까요? 가난한 이웃나라에 아파트 쓰레기를 내다팔까요?


  마을 한 곳은 한두 해나 열스물 해 사이에 태어나지 않습니다. 마을 한 곳은 아무리 짧아도 이백 해는 흘러야 태어납니다. 아이가 태어나고 자라서 어른이 된 뒤 새로운 아이가 태어나고 자라기를 꾸준히 되풀이한 뒤에라야 비로소 마을이 뿌리를 내립니다.



.. 아이들을 대하는 아빠들의 태도에 가장 큰 변화가 일어났다. 아내의 몫으로만 여기던 육아를 자신의 삶 속으로 받아들인 것이다. 이와 함께 바깥으로만 돌던 아빠들이 자연스레 마을의 일원으로 들어오게 되었다 … 마을무지개의 미덕은 이주 여성을 한 마을에 사는 이웃으로 바라본다는 것, 경제 활동을 함께하면서 마을공동체도 일구어 간다는 점일 것이다 ..  (184, 234쪽)



  서울은 사람이 대단히 많습니다. 땅은 무척 좁은데 사람이 무척 많습니다. 그래서, 서울에서는 텃밭을 누리기 몹시 어렵습니다. 마당 있는 집에서 지내는 서울사람은 손으로 꼽을 만큼 드뭅니다. 고급아파트나 호화빌라에 살더라도 마당을 누리는 사람은 드물지요. 마음껏 악기를 켜거나 노래를 부를 만한 살림집에 깃든 서울사람은 그야말로 드뭅니다.


  서울에서 꾀하는 ‘마을 만들기’는 이렇게 나무 한 그루 못 심고 텃밭 한 조각조차 얻지 못하는 사람들이 ‘이제 더는 이 갑갑한 곳에서 숨이 막혀 못살겠다!’고 하면서 외치는 목소리라고 느낍니다. 층간소음 때문에 골머리를 앓지 말고, 신나게 춤추고 노래하고 웃고 떠들고 수다를 떨면서 밥잔치도 열고 술잔치도 벌이면서, 온갖 잔치를 함께 누리자고 하는 신나는 놀이마당을 꿈꾸면서 ‘마을 만들기’를 꾀하지 싶습니다.


  마을은 언제나 놀이마당입니다. 왜냐하면, 아이들은 언제나 노니까요. 마을은 언제나 일터입니다. 왜냐하면, 어른들은 언제나 일하니까요. 다만, 놀이와 일은 서로 동떨어지지 않습니다. 아이들은 언제나 어른들 일거리를 거들면서 기쁘게 놉니다. 어른들은 언제나 아이들이 홀가분하게 놀도록 온갖 놀잇감을 손수 만들어서 건네며 함께 놉니다. 놀이노래를 가르치고, 놀이를 물려줍니다. 너른 마당과 들과 숲에서 아이들이 걱정없이 뛰놀도록 삶터를 가꿉니다.


  서울에서 꾀한다는 ‘마을 만들기’는 아이들이 신나게 뛰놀기를 바라는 꿈이어야지 싶습니다. 서울사람이 짓는다는 ‘마을’은 바로 어른과 아이가 함께 웃고 노래하는 잔치마당을 바라는 꿈으로 나아가야지 싶습니다.


  청와대와 국회의사당에서도 앙증맞은 마을이 태어나기를 빕니다. 강아랫마을과 강웃마을 모두 사랑스러운 마을이 새로 자랄 수 있기를 빕니다. 이리하여, 나중에는 서울과 시골이라는 울타리가 없이, 모두 한동아리로 어깨동무할 수 있는 멋진 ‘한마을 이웃’이 될 수 있기를 빌어요. 4348.4.28.불.ㅎㄲㅅㄱ


(최종규/함께살기 . 2015 - 시골에서 책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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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간층이 승부를 가른다 - 2017 대선, 박원순 vs 반기문 철수와 영희를 위한 대자보 시리즈 8
고성국.지승호 지음 / 철수와영희 / 201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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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뜻한 삶읽기, 인문책 108



어떤 삶을 꿈꾸며 ‘정치’를 바라보는가

― 중간층이 승부를 가른다

 고성국·지승호 글

 철수와영희 펴냄, 2015.4.24.



  사람은 서울로 보내고 말은 제주로 보내라는 얘기가 있습니다. 이 얘기는 조선 무렵부터 불거졌다고 하며, 오늘날에도 이 얼거리는 크게 달라지지 않습니다. 공장이나 위해시설은 서울에서 벗어나고, 서울 바깥에 있는 사람들은 서울로 몰립니다. 무슨 일이든 하려면 서울로 가야 한다고 여겨 버릇합니다.


  시골에서도 서울바라기이고, 커다란 도시에서도 서울바라기입니다. 아무튼 서울에 한발을 걸치고 살아야 뭐가 되든 된다고 여깁니다. 서울에 있는 ‘서울’대학교가 서울 아닌 곳으로 옮기고, 청와대와 국회가 서울 아닌 곳으로 가며, 공공기관이며 크고작은 회사가 서울 아닌 데로 떠난다면 서울바라기는 줄어들 수 있을까요?


  대학교와 행정기관과 회사가 서울을 떠난다면 서울바라기는 여러모로 줄어들리라 느낍니다. 다만, 줄어들더라도 크게 달라지지는 못하리라 느낍니다. 왜 그러한가 하면, 대학교와 시설과 기관이 서울에서 떠나더라도, 사람들은 서울에 많이 남을 테니까, 서울에 있어야 ‘돈’이 모이거나 된다는 생각은 바뀌지 않으리라 느껴요.



.. 인적 자원만 놓고 보면 새누리당보다 새정치연합 쪽이 훌륭해요. 그런데 왜 이 모양이냐? 저는 그게 마음을 제대로 비우지 못해서라고 보는 거예요. 내가 지금 당장 금배지를 달아야 하고, 당권도 잡아야 하고, 대선주자도 되어야 하고, 이런 식으로 하다 보면 길이 없는 거예요 … 이벤트 몇 번으로는 어렵고요. 그건 새누리당이 더 잘하죠. 당 색깔까지 확 바꾸잖아요 … 진보 진영이 결코 새누리당을 얕봐선 안 된다는 겁니다. 야권 지지자들에게는 그런 경향이 있어요. 표현 하나 하나가 상대에 대해서 시니컬해요. 잠깐 화풀이는 할 수 있겠지만 그런 자세로는 못 이깁니다. 상대를 경쟁상대로 인정하고 분석하지 않고서 어떻게 이길 수가 있겠어요 ..  (14, 17, 33쪽)



  시골에는 사람이 매우 적습니다. 시골에서 면이나 읍 한 곳에서 사는 사람 숫자는 서울이나 큰도시에 있는 아파트 단지 한 곳보다 적기 일쑤입니다. 시골 군 한 곳은 서울에 있는 동 한 곳보다 사람 숫자가 훨씬 적습니다.


  사람이 적은 시골은 조용합니다. 사람이 적은 시골은 자동차도 적어 바람이 훨씬 맑습니다. 사람이 적은 시골은 서울과 달리 일거리나 돈벌이가 매우 드물지만, 시끄러운 소리도 매우 드뭅니다. 모내기와 가을걷이로 바쁜 봄가을 한철을 빼면 농기계 소리를 들을 일조차 드뭅니다.


  사람이 적은 시골이니, 시골에서는 층집을 올리는 일이 드물고, 땅밑을 파서 살림집을 꾸미는 모습을 찾아볼 수 없습니다. 시골에서는 누구나 마당을 누리고 텃밭이 있습니다. 시골에서는 어느 집에서나 마당 한쪽에 꽃나무나 열매나무를 심어서 가꿀 수 있습니다. 시골에서는 마당에서 쿵쿵 뛰든, 집에서 콩콩 구르든 아랑곳할 일이 없습니다. 시골에서는 피아노나 기타를 마음껏 칠 수 있고, 노래를 목청껏 부를 수 있습니다.


  사람이 적은 시골인 만큼, 일자리를 얻기 어렵다고 할 만합니다. 그렇다고 일자리가 아예 없지 않습니다. 씨앗을 심거나 열매를 따는 일을 하는 일거리는 많습니다. 무엇보다 내 밥을 손수 일구어서 얻을 수 있습니다. 과자나 라면이라면 가게에 가서 사다 먹어야 할 테지만, 내 밥을 내 손으로 땅에서 얻는 곳이 시골입니다. 밥 굶을 일은 없는 시골입니다.



.. 현실을 제대로 읽지 못하고, 믿고 싶은 걸 믿었던 겁니다. 당시 누가 이길 것이냐를 두고 평론가들 사이에 논쟁이 좀 있었죠. 저는 박근혜가 유리하다고 봤고요 … 대통령이 되겠다고 하는 분명한 목표에 모든 초점이 맞춰져 있었던 겁니다. 그런 치열함이랄까 처절함을 ‘수첩 공주’라며 비아냥거린다거나 권위적이라는 식으로 가볍게 놀리듯 넘어갈 문제가 아니라고 저는 본 거예요. 오히려 당시 야권의 후보들이 그런 치열함이 있었느냐고 반문해야죠. 상대가 저렇게 열심히 하는데 그걸 보고 아무런 경각심도 가지지 못한다면 이길 수가 없죠 ..  (19, 20쪽)



  시골사람이 시골일을 모두 손으로 하던 때에는 학교에서 ‘농번기 방학’을 두었습니다. 시골에서 아이들이 도시로 떠나고, 시골마을마다 온갖 농기계가 들어오면서 이제 ‘농번기 방학’을 더 두지 않습니다. 요즈음은 아이들한테 시골일을 가르치는 어버이는 매우 드뭅니다. 요즈음 시골에서 여느 어버이는 하루라도 빨리 아이들이 시골을 벗어나서 ‘몸 안 쓰고 돈 잘 버는 도시사람’이 되기를 바랍니다. 요즈음 시골 초·중·고등학교도 시골아이가 하루 빨리 ‘도시내기’가 되도록 가르칩니다. 시골에서 쓰는 교과서는 서울에서 만든 표준 교과서일 뿐이고, 서울 같은 큰도시에서 회사원이나 공무원이나 공장 노동자가 되는 길을 알려줄 뿐입니다. 시골에서 나고 자랐어도 모내기를 언제 하는 지 모르기 일쑤이고, 시골에서 학교를 다녔어도 꽃이 피거나 열매가 맺는 철을 모르기 일쑤입니다. 시골학교조차 시골일을 시골아이한테 안 가르치니, 도시학교에서도 아이들은 시골일을 배우기 어렵습니다.


  한마디로 간추리자면, 도시에서 나고 자란 아이는 도시에서 밀려나지 않는 길을 학교에서 배우고, 시골에서 나고 자란 아이는 도시로 들어가는 길을 학교에서 배운다고 할 만합니다.



.. 지난날 민주화 운동, 재야 운동의 도덕적 정당성이 어디에서 왔습니까. 한 사람, 한 사람 이름 모를 이들의 희생과 실천이 쌓여서 생긴 거잖아요. 지금의 진보 진영이 그 기반 위에서 정치를 하고 있는 겁니다 … 원칙과 가치를 관철할 전략적 유연성, 박근혜 정부는 이게 없어요 … 야당에서 자꾸 과거 권력을 심판하자고 나서는데 그건 잘못된 전략이에요 … 국회의원이건 대통령이건 앞으로 일할 사람을 뽑는 것이기 때문에 선거는 미래에 대한 선택입니다 … 문제는 옳은 줄 알면서도 그렇게 행하지 못하는 데 있습니다. 왜 졌는지도 알고 어떻게 하면 이기는지 뻔히 알면서 안 하잖아요. 이런저런 이유를 대면서 특정 정파의 이익을 대변합니다 ..  (31, 37, 39, 43쪽)



  고성국 님과 지승호 님이 주고받은 이야기를 갈무리한 《중간층이 승부를 가른다》(철수와영희,2015)를 읽습니다. 이 책은 정치평론을 하는 고성국 님이 바라보는 ‘한국 정치 이야기’를 다룹니다. 지난 대통령선거에서 한 사람이 붙고 한 사람이 떨어진 까닭을 찬찬히 짚습니다. 다음 대통령선거에 나올 만한 사람들이 앞으로 어떤 마음결과 몸짓으로 거듭나야 표를 더 받을 만한가 하는 대목을 곰곰이 짚습니다. 정치와 대통령선거와 사회 이야기를 다루는 《중간층이 승부를 가른다》인데, 선거에서 이기고 지는 대목보다도 ‘정치란 무엇인가’라고 하는 대목을 깊게 다루면서 살펴보는 책입니다.



.. 여론조사 전문가들보다 훨씬 더 민심에 밝은 것이 지금의 정치인입니다. 그런데 막상 뭔가를 결정할 때 보면 국민여론과 동떨어져 있거든요. 왜 그럴까요? 우선 대통령과 청와대가 민심과 떨어져 있죠. 그리고 정부부처 장관, 차관들이 민심과 떨어져 있습니다 … 어디나 극단은 존재합니다. 다만 진보건 보수건 국민과 소통하려면 극단의 목소리를 걸러낼 이성이 작동해야 한다는 거예요 … 통진당 해산으로 진보 정당 운동의 전면적인 개편이 불가피한 상황이 된다면, 이를 국민적 대중 진보 정당으로 거듭나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고 봅니다 ..  (50, 67, 77쪽)



  고성국 님은 한국 정치가 부디 ‘바른 길’로 접어들 수 있기를 바랍니다. ‘바른 길’이면서 ‘제 길’을 걷고 ‘참다운 길’로 거듭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인기투표를 하듯이 벌이는 대통령선거가 아니라, 어느 정당 어느 후보가 대통령으로 뽑히더라도 ‘삶을 살리는 정치’가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이쪽 정당이 이겨야 하거나 저쪽 정당이 져야 하는 대통령선거가 아니라, 어느 정당 후보가 대통령이 되더라도 한국 사회를 아름답고 알차게 가꿀 수 있는 길로 나아가도록 ‘우리(시민)가 스스로 슬기롭게 깨우쳐서 정치 일꾼을 지켜보고 옳은 길로 이끌어 내야 한다’고 여깁니다.


  그러니까, 어느 한 사람이 대통령이 되기 앞서 ‘여느 정치 일꾼’으로 있을 적부터 제대로 ‘일꾼’이어야 한다고 이야기합니다. 제대로 일하는 사람이어야 사회를 살리고, 올바로 일하는 사람이어야 문화를 가꾸며, 참답게 일하는 사람이어야 교육을 바로세워서 이 나라에 평화와 평등이 널리 퍼지도록 힘쓰겠지요.


  인기투표가 아닌 정책투표가 되어야 하고, 인기몰이를 하려는 정책이 아닌 참답게 삶을 가꾸려는 정책을 내놓을 수 있어야 한다는 얘기입니다. 인기 정치인이 나오기보다는, 슬기로우면서 믿음직한 정치 일꾼이 서야 한다는 얘기입니다.



.. 이명박은 한 번 장사꾼은 영원한 장사꾼이라고 하는 사실을 재임기간인 5년 내내 보여줬지요 … 정치인 박근혜는 선택과 집중을 굉장히 잘했습니다. 그러나 대통령 박근혜는 선택과 집중에서 실패하고 있다, 저는 이것이 가장 큰 문제라고 봅니다 … 제가 보기에 정치는 이류이고, 행정은 삼류이고, 기업은 사류입니다 … 저는 기업보다 정치가 낫다고 생각합니다. 공적 관점, 인간 존중이라는 보편적 가치를 기준으로 볼 때 그렇다는 겁니다. 이윤을 얼마나 내느냐 하는 효율성을 놓고 보면 기업이 이유라고 폼 잡을 수 있을지 모르지만, 인간 존중이라는 측면에서 보면 정치가 훨씬 나아요. 역사 발전의 측면에서 볼 때도 인간 존중은 이윤추구보다 한 단계 위입니다 ..  (92, 93, 106쪽)



  어떤 삶을 꿈꾸며 정치를 바라볼 때에 아름다울까요? 어떤 삶을 바라며 정치를 마주할 때에 사랑스러울까요? 어떤 삶으로 나아가려고 정치를 살필 때에 즐거울까요?


  《중간층이 승부를 가른다》를 찬찬히 읽습니다. 선거에서 이기려면 중간층을 잘 살펴야 한다는 말에 고개를 끄덕입니다. 옳은 말씀입니다. 그러면, 중간층은 무엇을 바랄까요?


  중간층 입맛에 맞추어야 하는 선거가 아니라, 중간층을 비롯해서 이쪽과 저쪽이 모두 아름답고 사랑스러우면서 즐거운 삶이 되도록 힘쓸 수 있어야 하는 선거가 되어야 한다고 느낍니다. 어느 정당 후보가 대통령이 되든, 한국 사회와 문화와 교육이 아름답게 서도록 가꾸어야 한다고 느낍니다.


  나는 시골에서 살며 이 대목을 늘 느낍니다. 누가 심든 씨앗은 씨앗입니다. 이쪽 정당 사람이 심기에 더 잘 자라지 않습니다. 저쪽 정당 사람이 심은 탓에 말라죽지 않습니다. 씨앗은 오직 사랑으로 심어야 잘 자랍니다. 씨앗은 사랑으로 심은 뒤 오직 아름다운 손길로 돌봐야 잘 큽니다. 씨앗은 사랑으로 논밭에 깃들어 아름다운 손길로 보살핌을 받은 뒤, 오직 기쁜 손길을 타야 소담스러운 열매가 됩니다. 그리고, 밥은 우리가 모두 먹습니다. 이쪽 정당 사람은 굶어야 하지 않고, 저쪽 정당 사람만 배불러야 하지 않습니다. 모두 함께 나누어 먹을 밥입니다. 가난한 이웃이 있으면 정당을 가리지 말고 어깨동무를 할 노릇입니다. 배부른 동무가 있으면 배고픈 동무하고 밥술을 나눌 노릇입니다.


  온누리를 골고루 어루만지는 햇볕처럼, 온누리에 골고루 깃드는 빗물처럼, 온누리에 골고루 부는 바람처럼, 온누리에 골고루 푸른 숨결을 베푸는 숲처럼, 한국 정치가 슬기로우면서 아름답고 사랑스러운 길로 나아갈 수 있기를 빕니다. 한국 정치가 슬기롭고 아름다우며 사랑스럽자면, 정치 일꾼에 앞서 바로 우리부터 스스로 슬기롭고 아름다우며 사랑스럽게 거듭나야 할 테지요. 우리가 스스로 바라는 대로 정치가 이루어질 테니까요. 4348.4.26.해.ㅎㄲㅅㄱ


(최종규/함께살기 . 2015 - 인문책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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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하기란 얼마나 쉬운가
앤소니 드 멜로 지음, 이현주 옮김 / 샨티 / 201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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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뜻한 삶읽기, 인문책 106



삶이 무엇인지 바라볼 수 있으면

― 행복하기란 얼마나 쉬운가

 앤소니 드 멜로

 이현주 옮김

 샨티 펴냄, 2012.5.7.



  삶이 무엇인지 바라볼 수 있으면, 내 삶에서 어려운 일은 한 가지조차 없습니다. 삶이 무엇인지 바라보지 않거나 바라볼 마음이 없으니, 내 삶에서 모든 일이 다 어렵고 맙니다.


  삶은 기쁨이 아닌 적이 없습니다. 그래서 누구나 삶은 즐거운 노래이면서 웃음입니다. 그러나, 삶이 기쁨이라고 가르치는 학교는 없습니다. 삶이 기쁨이라고 알려주는 신문이나 방송은 없습니다. 왜 그러할까요? 학교는 아이들을 교과서로 길들이고 입시지옥에 묶어 놓으려고 합니다. 그러니, 학교는 아이들한테서 기쁨을 빼앗거나 없애야 합니다. 아이들이 스스로 생각하지 못하도록 꽁꽁 묶어야, 입시지옥으로 빠져듭니다. 아이들이 스스로 생각하지 못하도록 들들 볶아야, 아이들은 졸업장 아닌 내 삶을 짓는 길로 못 나아갑니다.


  신문이나 방송은 어떤 구실을 할까요? 신문이나 방송은 사건·사고와 정치·경제와 스포츠·오락만 다룹니다. 신문이나 방송에서 ‘삶을 차분하게 가꾸는 슬기로운 꿈’을 다루는 일은 거의 없거나 아예 없습니다. 신문과 방송은 사람들이 서로 ‘이쪽 저쪽(이를테면 진보와 보수)’으로 갈려서 다툼질을 하도록 부추깁니다.



.. 하느님은 그 어떤 등기부도, 목록도 보관해 두지 않으신다! 그분은 지금 여기에 있는 우리를 있는 그대로 보시고, 한없는 사랑으로 감싸 안으신다 … 그냥 보라! 응시하라. 관념을 보려 하지 말고 보이는 세계를 그냥 보라 … 종소리를 듣고 싶으면 바다가 내는 소리에 귀를 기울여라. 춤꾼을 보고 싶으면 춤을 보아라. 노래하는 이를 만나고 싶으면 노래를 들어라 ..  (13, 26, 33쪽)



  기쁨을 찾고 싶다면 학교를 버려야 합니다. 즐겁게 웃거나 노래하고 싶다면 신문과 방송을 버려야 합니다. 기쁨을 누리려 한다면, 내 삶을 제대로 바라보아야 합니다. 즐거움을 나누려 한다면, 내 사랑을 내가 스스로 지어야 합니다.


  학교에 길든 몸으로는 기쁨이 없습니다. 사회의식이나 신문·방송이나 정치·경제 같은 얼거리에 갇힌 마음으로는 즐거움이 없습니다.


  잘 생각해 보셔요. 똑같은 옷을 맞춰 입고, 똑같은 머리카락과 매무새로 똑같은 아침에 똑같은 시멘트집으로 들어가서 똑같은 교과서를 들여다보면서 똑같은 시험문제를 푸는 아이들은 아무도 안 웃습니다. 아니, 못 웃습니다. 학교에서 수업을 받다가 웃으면 어떻게 될까요?


  회사나 공장에서 똑같은 일을 되풀이하는 이들도 일하면서 못 웃습니다. 연봉이 아무리 높아도 은행계좌를 들여다보며 웃지 않아요. 내 주머니에 가득 찬 돈을 이웃과 기쁘게 나누면서 웃는 사람이 참으로 드물어요. 게다가, 신문에서 사건과 사고를 읽으며 웃는 사람이 있나요? 정치나 경제나 스포츠나 오락 기사를 읽으면서 웃는 사람이 있나요? 삶에서 피어나는 웃음이 아니라, 몇몇 연예인이 바보짓을 일삼으면서 억지로 웃기려 하지 않나요?



.. 가슴으로 돌아가라는 것은 무슨 신비스러운 판타지 속으로 들어가라는 게 아니다. 그대 고향집으로, 그대 자신에게 돌아가라는 것이다. 달리 말하면, 지금 여기로 돌아오라는 말이다 … 우리 인간들은 하느님 품에 안겨 있으면서 쉬지를 못한다. 창조된 세계를 보라. 나무, 새, 풀, 짐승들 …… 모두가 기쁨으로 충만해 있다 … 행복에 대하여 그들이 가진 첫 번째 틀린 생각은 그것이 감각의 쾌락, 재미, 도취를 의미한다고 보는 것이다 ..  (44, 53, 54쪽)



  앤소니 드 멜로 님이 쓴 《행복하기란 얼마나 쉬운가》(샨티,2012)는 아주 쉬운 책입니다. 즐겁게 살기가 아주 쉽다고 하는 이야기를 들려주는 대단히 쉬운 책입니다. 다만, 《행복하기란 얼마나 쉬운가》는 길잡이책입니다. 즐거움으로 들어서는 첫걸음을 알려주는 길잡이책이에요.



.. 당신은 얼마든지 당신이 아닐 수 있고, 누군가의 꼭둑각시 인형일 수 있다 … 기계가 사라지고 그 자리에 생명이 들어오면서, 당신은 뭔가 달라진 것을 느끼게 되리라 … 하느님은 내일이 아니다. 하느님은 지금이다. 삶은 내일이 아니다. 그것은 지금이다 … 살아 있음은 너 자신이 되는 것이다. 살아 있음은 지금 있는 것이다. 살아 있음은 여기 있는 것이다 … 사람은 자기가 생각하는 대로 되는 성향이 있다. 당신은 이보다 더 영적이고 신성한 무엇을 생각할 수 있겠는가 ..  (72, 75, 80, 84, 110쪽)



  즐거움은 남이 나한테 찾아서 주지 않습니다. 즐거움은 늘 내가 스스로 찾아서 누립니다. 그러니, 앤소니 드 멜로 님이 들려주는 이야기는 ‘첫걸음’입니다. 이 책은 성경이나 경전이 아닙니다. 그저 첫걸음입니다. 내 삶에서 내 즐거움을 누리려 한다면, 내 새걸음을 내딛을 수 있어야 해요. 그러면, 새걸음은 어떻게 내딛을까요? 첫걸음을 디뎌야 새걸음으로 나아가요. 첫걸음을 떼지 않으면 새걸음으로 나아가지 못합니다.


  부디 신문은 끊고 《행복하기란 얼마나 쉬운가》 같은 책을 읽는 이웃이 늘기를 바랍니다. 부디 텔레비전은 고물상에 맡긴 뒤 《행복하기란 얼마나 쉬운가》 같은 책을 곁에 두고 읽는 동무가 늘기를 바랍니다. 신문이나 방송은 쓰레기가 아닙니다만, 우리가 스스로 쓰레기로 되는 길로 이끄는 신문이나 방송이라고 할 만합니다.


  우리는 우리 삶을 보아야 합니다. 우리는 신문이나 방송을 보아야 하지 않습니다. 그러면, 책은? 책도 우리를 쓰레기가 되는 길로 이끈다고 할 수 있을까요? 네, 오늘날 문명 사회에서 거의 모든 책은 우리가 스스로 쓰레기가 되는 길로 이끕니다. 심심풀이 땅콩으로 읽는 책은 모두, 내가 스스로 바보가 되는 길로 이끕니다. 우리가 책을 읽으려 한다면, 심심풀이 땅콩이 아니라 ‘기쁨’과 ‘즐거움’을 나 스스로 찾도록 북돋우는 책을 읽을 노릇입니다. 처세나 자기계발이 아니라, 삶노래와 기쁨웃음으로 내가 스스로 이끌도록 돕는 책을 길동무로 삼을 노릇입니다.



.. 사물을 습관처럼 보지 않겠다는 선한 의지, 무엇이든지 새롭게 보겠다는 선한 의지만 있으면 된다 … 우리는 남한테 조종당하지 않을 용기가 있어야 한다 … 우리가 찾는 것은 우리 안에 있다 … 마음에서 좋고 싫음을 씻어버릴 때 우리는 하느님을 보게 될 것이다 … 협박당하지만 않으면 아이들은 언제나 훌륭하다. 그들은 무엇이든지 듣고 보고 배울 수 있다 ..  (128, 135, 162, 187, 197쪽)



  사랑은 아주 쉽습니다. 내가 스스로 사랑이니까요. 삶은 아주 아름답습니다. 내가 스스로 삶이니까요. 예배당이 아닌 내 가슴속에서 하느님을 찾으면 됩니다. 학교가 아닌 내 마음속에서 가르침을 찾으면 됩니다. 남이 시키는 일이 아니라, 내가 바라는 꿈으로 나아가면 됩니다.


  좋은 삶이나 나쁜 삶은 따로 없습니다. 그저 삶입니다. 이 삶을 찬찬히 바라보면서 내 꿈을 지을 때에 아름다우면서 사랑스럽습니다.


  다시 말하자면, 아름다움이나 사랑스러움도 ‘좋고 나쁨’으로 따지지 않아요. 아름다우면 그저 아름답고, 사랑스러우면 그예 사랑스럽습니다. 좋거나 나쁘다는 틀로 바라볼 때에는 ‘참 아름다움’이나 ‘참된 사랑’이 아닙니다. 참답게 기쁘거나 즐거운 삶은 ‘좋고 나쁨’이 아니라, 오로지 티없고 가없으며 끝없는 기쁨이나 즐거움입니다. 4348.3.9.달.ㅎㄲㅅㄱ


(최종규/함께살기 . 2015 - 시골에서 인문책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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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것도 하기 싫은 날 - 나를 사랑하기 좋은 날
신현림 글.그림 / 현자의숲 / 201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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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읽기 삶읽기 181



모든 것을 할 수 있는 날

― 아무것도 하기 싫은 날

 신현림 글

 현자의숲 펴냄, 2012.8.12.



  해가 기웃기웃 지려고 할 즈음에 뒤꼍으로 그릇을 하나 들고 나갑니다. 곁님과 아이들이 곧 배고프다고 할 듯하다고 느껴서, 뒤꼍에서 쑥을 뜯습니다. 이월이 막 저물고 삼월로 접어들었으나 쑥은 많이 올라오지 않았습니다. 그래도, 부침개 넉 장을 부칠 만큼 뜯을 수 있습니다. 아직 조그마한 쑥잎을 하나둘 뜯어서 그릇에 채웁니다. 쑥잎은 아무리 작아도 곁에 쪼그리고 앉으면 향긋한 기운이 퍼집니다. 쑥부침개를 하든 쑥국을 끓이든 쑥버무리를 하든 온통 쑥내음이요, 마당이나 뒤꼍에서 쑥을 뜯을 적에도 쑥내음입니다.



.. 세수도 안 하고 속살이 훤히 보이는 속옷을 입고 뒤척일 때 지친 하마같이도 보여요. 그래도 귀여우세요. 애써 꾸미지 않아도 당신은 아름다워요 … 사람들은 책을 봐야겠다고 늘 결심만 하죠. 정말로 실천하려면 20년은 걸릴 거예요 ..  (8, 27쪽)



  쑥을 헹군 뒤 밀가루 반죽을 합니다. 불판을 달굽니다. 기름은 아주 조금 붓습니다. 밀가루 반죽에 쑥을 넣고 더 섞은 뒤, 불판이 뜨끈뜨끈하면 이제부터 쑥부침개를 합니다. 기름이 자글자글 익는 부침개는 부엌을 지나 마루를 거쳐, 아이들과 곁님이 있는 방으로 퍼집니다. 아이들은 어느새 알아챕니다. “우와, 맛있는 냄새 난다! 아버지가 뭐 하나 봐!” 두 아이는 마루를 쿵쾅쿵쾅 뛰면서 부엌으로 달려옵니다. “아버지, 오늘 저녁은 무슨 밥?” 두 아이는 부침개 익는 냄새만으로도 배가 살살 고픕니다.


  한 장을 부쳐서 동그란 꽃접시로 옮깁니다. 두 장째 부치려고 반죽을 불판에 붓고 나서 아이들을 부릅니다. 자, 이제 먹자! 따끈하게 덥힌 국을 그릇에 담아 밥상에 올립니다. 아이들은 밥과 국과 부침개를 바지런히 먹습니다. 부침개 담은 접시가 빌 무렵 다음 부침개를 따끈하게 올립니다.


  이제 석 장째 부치고, 부침개를 먹는 젓가락은 조금 느슨합니다. 마무리로 넉 장째를 부친 뒤 설거지를 합니다. 두 아이는 조잘조잘 떠들면서 천천히 밥술을 뜹니다.



.. 딸아이를 부려먹거나 일 시켜먹으려 낳은 건 아닙니다. 일하는 법을 가르치긴 합니다. 엄마가 없을 때 혼자 있게 되면 뭐라도 해야 할 테니까요 … 고난마저 사랑하면 인생길이 더 잘 보이듯, 온전히 다 사랑하면 후회가 없습니다 … 자신의 가치가 다른 사람들의 험담으로 낮아져서는 안 돼요. 자신을 어여삐 보는 사람의 눈에 비친 자신의 어여쁨을 보세요 ..  (50, 61, 76쪽)



  신현림 님이 쓴 《아무것도 하기 싫은 날》(현자의숲,2012)을 읽습니다. 새빨간 옷을 입은 가볍고 앙증맞은 책에 조그마한 그림이 깃듭니다. 무슨 그림일까 하고 가만히 쳐다봅니다. 아하, 신현림 님이 그린 그림이지 싶습니다. 하늘로 쪽 뻗은 파르스름한 머리카락이 돋보이는 그림이 예쁩니다. 신현림 님은 파랑을 사랑하는군요. 그러고 보면 ‘사과 여행’ 사진에서도 ‘파랑 능금’이 곧잘 나옵니다.



.. 서른 살을 보냈죠.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최소한의 생계비만 벌고 고시공부하듯 탐구하고 창작열을 불태우는 것뿐이었어요 … 마음속을 가난이 아니라 풍요로움, 행복, 자유의 이미지로 채워 보세요. 내가 꿈꾸는 이미지와 말로 내 속을 채워 나가면 삶은 바뀌더군요 ..  (112, 127쪽)



  파랑은 모든 목숨을 살리는 빛깔입니다. 우리는 흔히 ‘푸른 빛깔’이 모든 목숨을 살린다고 여길 테지만, 푸름과 파랑은 목숨을 살리는 구실이 다릅니다. 푸름은 ‘밥’으로 목숨을 살리고, 파랑은 ‘바람’으로 목숨을 살립니다. 아니, 푸름은 목숨을 살린다기보다 몸을 살찌우는 밥입니다. 파랑은 그야말로 목숨을 살리는 ‘숨결’입니다. 왜냐하면, ‘파란 하늘’을 가로지르는 바람은 ‘파란 기운’을 가득 담아서 우리한테 새로운 숨결로 깃들거든요. 밥은 며칠을 굶거나 보름을 굶더라도 목숨이 안 끊어지지만, 바람(숨)은 몇 초만 끊어도 곧바로 목숨을 잃어요. 그만큼 파랑이라는 빛깔은 우리 목숨하고 크게 잇닿습니다.



.. 한옥의 즐거움은 마당을 거닐거나 마루에 앉아 마당을 바라볼 수 있다는 거예요 … 통지표를 보다 보니 엄마 생각이 밀물처럼 밀려옵니다. 고등학교 입학 후 성적이 뚝 떨어져 의기소침한 나를 편안히 대해 주던 엄마 ..  (138, 142쪽)



  이야기책 《아무것도 하기 싫은 날》은 책이름처럼 ‘아무것도 하기 싫은 날’이 어떤 날일까 하고 수수께끼를 내고는 스스로 수수께끼를 풉니다. 아무것도 하기 싫은 날이란 무엇일까요? 모든 것을 하고 싶은 날입니다. 아무것도 하기 싫은 날이란 무엇일까요? 남이 나를 종(노예)처럼 부리면서 시키는 일은 아무것도 하기 싫은 날입니다. 아무것도 하기 싫은 날이란 무엇일까요? 사랑이 없으면 아무것도 하기 싫은 날입니다.


  그러니까, 내가 나로 우뚝 서서 홀가분하게 사랑을 꽃피울 수 있는 날이라면, 우리는 모든 것을 할 수 있습니다. 내가 나답게 노래하고 춤추면서 빙그레 웃음을 터뜨릴 수 있는 날이라면, 우리는 그야말로 모든 것을 아름답게 할 수 있습니다.


  삶을 지으면 모든 날이 기쁨입니다. 사랑을 지으면 어느 날이나 노래입니다. 꿈을 지으면 온 날이 웃음입니다. 아무것도 하기 싫은 날이란, 내 삶을 잃거나, 내 사랑을 잊거나, 내 꿈을 놓친 날입니다.


  하늘을 보면서 바람을 마셔요. 별을 보면서 바람을 느껴요. 해님과 마주보면서 바람을 누려요. 구름하고 동무하면서 바람을 불러요. 내 가슴 가득 파랗게 눈부신 바람을 담으면서 오늘 하루를 새롭게 맞이해요. 그러면, 오늘 나는 모든 것을 할 수 있는 가장 아름다운 아침을 열 수 있어요. 4348.3.6.쇠.ㅎㄲㅅㄱ


(최종규/함께살기 . 2015 - 시골에서 문학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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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현대사의 민낯 - 패망한 일본은 한반도의 권력 구도를 어떻게 바꿨나 철수와 영희를 위한 대자보 시리즈 7
김삼웅.장동석 지음 / 철수와영희 / 201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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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뜻한 삶읽기, 인문책 105



정치·사회·경제가 걸어온 발자국

― 한국 현대사의 민낯

 김상웅·장동석 글

 철수와영희 펴냄, 2015.3.1.



  ‘역사’라는 이름을 써서 우리가 걸어온 발자국을 살핀 지 얼마 안 됩니다. 이 땅에서 오래도록 살아온 사람은 ‘역사’라는 낱말을 쓴 적이 없고, 쓸 일이 없으며, 쓸 까닭이 없습니다. 그러나, 정치나 사회나 경제에서 권력을 거머쥐면서 이를 놓치지 않으려고 애쓰는 이들은 ‘역사’를 만들어서 퍼뜨려야 한다고 여깁니다.


  권력을 쥔 임금은 이녁 발자국을 돌에 새깁니다. 이 빗돌은 오늘날 문화재나 유적이나 유물이 됩니다. 권력을 쥔 임금 옆에서 고물을 받아서 챙기는 신하나 양반은 이녁 발자국을 족보에 남깁니다. 이러면서 이녁 무덤에 빗돌을 세웁니다. 이 빗돌은 문화재나 유적이나 유물이 되지 않으나, 두고두고 제삿상을 차려서 쳐다보도록 합니다.


  권력을 쥐지 않을 뿐 아니라, 권력을 아예 생각조차 하지 않는 여느 사람들은 날마다 삶을 새로 짓습니다. ‘어제(지나간 일)’를 구태여 붙잡을 까닭이 없기 때문입니다. 날마다 새롭게 흙을 갈고 보듬으면서 밥을 지으면 즐겁기 때문입니다.


  오늘 새밥을 먹을 텐데 어제 먹은 밥을 떠올려야 할 까닭이 없습니다. 저녁이 되어 새밥을 먹는데 아침에 먹는 밥을 되새겨야 할 까닭이 없습니다. 흙과 함께 사는 사람은 역사도 족보도 빗돌도 없습니다. 이것이 모두 부질없는 줄 잘 압니다.



.. 모든 사람이 진실이 아니라고 인정한 식민지사관까지도 그런 식으로 정당화하는 게 이 땅의 보수 세력입니다. 엄격히 따지면 보수도 아니죠. 극우 세력입니다 … 역사에서 배워야 하는데, 자세한 상황과 내용을 알려고 하지 않아요. 역사적 진실이 오롯이 전해지지도 못하는 실정입니다. 이를테면 미국이 우리를 해방시켜 주었다는 인식 같은 것 말입니다 … 우리 헌정사가 불안한 이유는 시작부터 첫 단추를 제대로 꿰지 못한 데 있습니다. 한 사람의 야욕에 의해서 국가의 기본인 헌법이 애초부터 망가졌으니까요 ..  (11, 27, 51쪽)



  ‘학문’을 하는 이들은 옛날에 남겨진 빗돌이나 책을 살피려고 눈에 불을 켭니다. 그런데, 옛날 빗돌이나 책은 오로지 ‘정치·사회·경제 권력자 발자국’입니다. 권력자 눈에는 권력자만 보이기 때문에 다른 발자국은 못 남깁니다. 이를테면, 임금 자리에 앉아서 흙 한 줌 만진 적이 없는 사람은 ‘씨앗’이 무엇인지 모릅니다. 낫도 모를 테고, 괭이도 모를 테며, 솥도 모를 테지요. 신하나 양반이 아궁이를 알까요? 부지깽이를 알까요? 솔가지를 알까요? 짚신을 알까요? 메주를 알까요? 콩꽃을 알까요? 아무것도 모릅니다. 그래서, 삼국사기이든 조선왕조실록이든, 이런 책에는 ‘삶을 지은 사람들이 날마다 기쁨으로 누린 이야기’가 한 줄도 없습니다.


  ‘정치·사회·경제 권력자 발자국’인 옛 역사책에는 그저 권력자 발자국만 적혔으니, 이를 학문으로 삼아서 살피는 사람은 언제나 권력자 이야기만 늘어놓습니다. 한겨레에서 99.99%를 이루었다고 할 만한 시골사람 이야기를 밝히거나 다룰 수 있는 역사학자나 인문학자나 문화인류학자는 한 사람도 없습니다. 왜냐하면, 여느 시골사람 이야기는 글 한 줄로도 안 남았기 때문입니다. 여느 시골사람을 옆에서 구경한 뒤 적은 글은 몇 줄 있어요. 그나마 귀양살이를 하던 몇몇 지식인이나 학자가 이런 글을 남깁니다. 서울 한복판 궁궐 언저리에서 임금바라기를 하던 지식인이나 학자는 여느 사람들 이야기를 글로 안 씁니다. 알지 못하고 보지 못했으니 글로 쓸 수 없습니다.


  이는 오늘날에도 엇비슷해요. 벼꽃이 언제 피는지 아는 지식인이나 학자는 없습니다. 벼꽃이 어떻게 생겼는지 아는 지식인이나 학자는 없습니다. 날마다 밥을 먹으면서, 밥이 되는 쌀은 어떻게 나오고, 쌀이 되는 벼는 어떻게 얻으며, 벼가 되는 나락은 언제 누가 어떻게 심어서 어느 만큼 돌보아서 자라는가를 제대로 아는 지식인이나 학자는 없습니다.



.. 해방공간에서 역량이 있던 〈동아일보〉에서 이렇게 보도가 되다 보니 김구·이승만·박헌영 등 좌우익 인사들이 모두 반탁운동을 전개했습니다. 신문 기사 하나가 한민족 역사의 물꼬를 돌려놓고 민족의 운명을 바꾼 것입니다. 〈동아일보〉에서 왜 이런 보도를 했는지, 혹시 미국의 힘이 작용한 건지, 아니면 열악한 통신 사정에 의한 오보인지 아직까지 밝혀지지 않고 있습니다 … 해방정국에서 가장 중요한 쟁점은 통일정부 수립과 친일파 청산이었습니다. 그런데 엉뚱하게 찬탁이냐 반탁이냐로 흘러가 버렸습니다 … 경찰, 정치깡패, 반공청년단, 군대, 그리고 주한미군까지 있었는데, 거기에 민주적으로 맞서 싸워 승리한 것이 바로 4·19혁명입니다..  (41, 78쪽)



  김상웅·장동석 두 분이 주고받은 이야기를 묶은 《한국 현대사의 민낯》(철수와영희,2015)을 읽습니다. 김삼웅 님은 수많은 자료와 책을 살피면서 ‘한국 현대사’ 발자국을 좇습니다. 정치와 사회와 경제를 거머쥔 권력자가 거짓스레 뒤바꾸거나 감추려는 역사가 아닌, 사람들이 이 땅에서 살아온 발자국을 드러내려는 역사를 밝히려고 합니다.


  오늘날은 지난날과 달리, 시골사람도 글을 읽을 수 있고, 시골사람 이야기를 책으로 쓰기도 하며, 지식인이나 학자가 된 사람 가운데에는 시골살이를 오래 누리고 나서 도시로 온 사람이 있습니다. 이제는 지난날과 조금 다릅니다. 다만, 이렇다고 하더라도 오늘날에도 지식이나 학문을 다루려면 죄다 시골을 떠나 도시에서만 사는데, ‘한국 현대사’를 읽으려는 이들은 틈틈이 시골을 찾아다니면서 ‘시골사람 목소리’를 곧바로 귀여겨들으려 합니다. 이를테면 ‘증언’을 듣지요.



.. 백범 선생 암살 관련 자료를 찾다 보니까 안두희는 테러 집단인 서북청년단 핵심 요원이었어요 … 그때 88구락부라는 것이 있었습니다. 대부분 친일파 출신으로 이승만의 핵심 측근들이었죠. 이 사람들이 비밀회의를 거듭해서 암살 적임자를 선발했는데, 그게 바로 안두희입니다. 안두희는 우리 육군에 입대하기 전에 미국방첩대(CIC)의 정보원이자 요원으로 활동했어요. 이런 복잡한 인맥을 가진 안두희를 택한 데에는 이유가 있습니다. 안두희의 아버지가 북한 출신인데, 아주 악질적인 친일파로 못된 짓을 많이 해서 재산을 크게 불렸어요 ..  (46∼47쪽)



  김구와 여운형이라는 분이 죽은 앞뒤를 살던 할매와 할배는 아직 이 땅에 있습니다. 이승만이라는 사람이 독재정권을 움켜쥐다가 사월혁명을 맞아서 부랴부랴 대통령 자리를 내려놓은 언저리에 살던 할매와 할배는 꽤 많이 이 땅에 있습니다. 군사쿠테타로 정치권력을 가로채서 그악스러운 독재를 일삼던 박정희라는 사람이 춤추던 무렵을 살던 아재와 아지매는 이 땅에 대단히 많습니다. 시골에는 새마을운동 부스러기가 짙게 남았으며, 오늘날 도시에도 새마을운동 찌끄러기가 곳곳에 그대로 있습니다.


  정치와 사회와 경제에서 권력을 주름잡는 이들이 거짓말로 역사책을 꾸미려 하면, 이제 이런 거짓말은 아주 쉽게 들통납니다. 이제는 ‘책’과 ‘자료’로도 참과 거짓이 환하게 있습니다. 지난날에는 ‘사람(시골지기)’과 ‘학자(지식인·신하·관료)’와 ‘임금(권력자)’이 따로 놀았다면, 오늘날에는 사람 사이에 학자가 있고 학자 사이에 사람이 있습니다. 그래서 사람 사이에 있는 학자나, 학자 사이에 있는 사람은, 임금(권력자)이 저지르는 짓을 꼼꼼히 알아채서 낱낱이 밝힐 수 있습니다.



.. 이승만으로서는 기반이 없으니 그들을 등에 업을 수밖에 없었죠. 친일파들은 일제가 항복하자 하늘이 무너진 것 같은 불안과 공포를 느꼈을 겁니다. 젊은 층은 대부분이 군대나 경찰에 입대해서 자기 전과를 숨겼어요. 이승만에게 줄을 선 사람들을 한번 보세요. 정권을 잡기 전부터 돈과 정보를 갖다주고, 라이벌을 죽여 주기까지 했죠. 이승만 주변에는 일제 치하에서 관리나 법관, 경찰을 했던 사람들이 대부분이었어요. 이승만은 세력을 확장할 수 있었고, 친일파들은 자기 구명을 할 수 있으니 절묘하게 궁합이 맞은 거죠 … 국회 프락치 사건이 터진 것이 1949년 5월 초였고, 6월에는 반민특위가 해체됩니다. 6월 26일에는 김구 선생이 암살당하죠. 이승만 정권 핵심부는 절묘한 공안 시스템을 가동해서 국회를 무력화한 것입니다 ..  (55, 59쪽)



  《한국 현대사의 민낯》이라는 조그마한 책에서 모든 이야기를 샅샅이 드러낼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큰 실마리를 짚어 줍니다. 바로 오늘 이곳에서 사는 우리를 둘러싼 숨겨진 그림자를 우리가 스스로 캐내어 밝힐 수 있는 실마리를 건드립니다. 우리가 스스로 눈을 뜨지 않기에 그동안 못 보거나 안 보던 그늘이 무엇인가 하는 실마리를 가만히 보여줍니다.


  참을 보려고 하는 사람은 참을 봅니다. 거짓을 보면서 거짓인 줄 알아채려 하지 않는 사람은 거짓이 마치 참인 줄 잘못 받아들입니다. 이를테면, 교과서에 나온 지식이라고 해서 이 ‘교과서 지식’이 다 옳을까요? 교과서 지식은 그저 ‘교과서에 적힌 지식’일 뿐입니다. 교과서를 엮는 사람이 어떤 정치권력 입맛에 맞게 춤추느냐에 따라서 교과서 지식이 달라집니다.


  이웃 일본에서는 ‘엉터리 역사 교과서’가 나오지 않습니다. 바로 한국에서도 얼마 앞서까지 ‘엉터리 역사 교과서’로 아이들을 가르쳤고, 이런 지식으로 대입시험을 치르게 했고, 대입시험을 누구나 치러야 하는 지옥으로 굴레를 만들어서. ‘교과서 지식이 옳든 그르든 맞든 틀리든 따지지 말고 외우도’록 길들였어요.


  요즈음은 한국에서 엉터리 교과서가 나오기는 어렵습니다. 그러나, 엉터리 교과서는 아니어도 ‘참으로 담을 이야기’는 담지 못합니다. 아니, 안 담는다고 해야 맞겠지요. 엉터리는 아니어도 참다운 이야기는 아닙니다. 앞으로는 교과서도 참다운 이야기를 담을 수 있도록 거듭나야 해요.



.. 미국 국무성 등이 파악한 박정희는 대단히 권력지향적인 인물입니다. 교사 생활을 하다가 일본 군인들이 칼 차고 다니는 게 매력적으로 보여서 일본군에 지원했을 정도니까요. 그때 나이가 스물네 살이었고 기혼인 상태였습니다. 두 가지 모두 만주군관학교 결격사유인데 혈서까지 써 가며 일본에 충성하기로 맹세합니다. 하지만 일본 패망 후 재빨리 변신해서 광복군에 이어 국군에 입대하고, 군부 내 남로당 세력의 핵심 책임자가 됩니다. 북에서 온 형의 친구 황태성을 처형하는 매정함도 보입니다 … 박정희는 미국에 자신의 반공정신을 보여주기 위해서 그를 처형해 버리지요 … 세계적인 개발 붐과 저유가 정책이 이어지면서 경제가 발전한 건데, 이것을 모두 박정희 정권의 공으로 돌릴 수는 없는 거죠. 박정희가 한일 굴욕 회담 결과 일본으로부터 받은 건 고작 5억 달러입니다 … 독도 문제나 일본군 위안부 문제, 강탈해 간 문화재 환수 문제, 사할린 동포 문제, 재일교포 법적 지위 문제 등은 거론조차 안 했어요. 오히려 굴욕 회담을 반대하는 국민들의 정항을 계엄령을 내려 진압했습니다 ..  (80∼81, 83∼84쪽)



  권력바라기 정치꾼이 나쁘다고는 느끼지 않습니다. 권력을 바라면 그저 권력을 바랄 뿐입니다. 그런데, 권력바라기 정치꾼은 권력을 손에 쥐면 으레 바보짓을 일삼습니다. 아니, 바보짓이라기보다 멍청한 짓을 일삼아요. 한 줌조차 안 될 그런 권력으로 마치 ‘모든 것을 다 거머쥐었다’는듯이 여기면서 독재를 일삼으려 합니다.


  가만히 보면, 권력바라기는 어쩔 수 없는지 모릅니다. 내가 거머쥔 권력을 다른 사람도 바라기 마련일 테니, 권력을 쥔 정치꾼은 다른 사람을 모두 맞수(적)로 삼아서 무찔러야 한다고 느낄 만해요. 독재가 될밖에 없습니다.


  정치권력이나 사회권력이나 경제권력이나 문화권력이나 교육권력이나 종교권력 모두, 혼자 무시무시한 힘을 휘둘러서 모든 사람이 이녁 앞에서 무릎을 꿇도록 짓누르려 합니다.


  다시금 이야기하지만, 씨앗 한 톨을 손수 흙에 심는 사람은 권력을 아랑곳하지 않습니다. 권력자가 총칼을 들이밀면서 시골지기더러 ‘너 말야, 내가 시키는 일만 해. 왜 씨앗을 심으려고 해? 씨앗 심지 말고 군복 입고 총 들어!’ 하고 윽박지른들, 시골지기는 이런 권력자 말을 안 듣습니다. 그저 한 마디 해 줄 테지요. ‘얌마, 네가 대통령놈이고 임금년이고 뭐고 말이야, 내가 이 씨앗을 심어서 열매를 거두지 않으면 굶어죽을 텐데, 나더러 총을 들라고? 총 들고 싶으면 너 혼자 들어!’ 하고요.


  권력이나 독재나 군대나 전쟁무기가 생기는 까닭은 ‘손수 씨앗을 심으려 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권력자나 독재자나 군인은 씨앗을 안 심습니다. 씨앗을 안 심기도 하고, 씨앗을 돌보지 않기도 합니다. 이들은 아이를 낳지도 않고, 아이를 돌보지도 않으며, 아이를 가르치지도 않습니다. 권력자가 아이를 낳은들 무엇을 보여주거나 가르칠까요? 권력자는 독재 짓거리를 아이한테 보여주거나 가르칠 뿐일 테지요.


  역사를 읽은 사람이라면 스스로 깨달아야 합니다. 역사를 더 깊이 파헤쳐서 더 많은 역사 지식을 알아도 나쁘지 않습니다만, 역사를 읽어서 스스로 깨달았다면, 이제 책은 그만 내려놓고, 씨앗을 심으러 가야 합니다. 어디로 가느냐 하면, 흙이 있고 풀과 나무가 우거진 숲으로 가야 합니다. 이렇게 할 때에 내 보금자리가 달라지고, 내 마을과 고장이 달라지며, 내 나라가 달라집니다. 참민주를 이루려면, 뛰어나거나 훌륭한 ‘정치 지도자’가 나오기보다는, 우리가 다 함께 흙을 가꾸면서 씨앗을 심을 노릇입니다. 4348.3.2.달.ㅎㄲㅅㄱ


(최종규/함께살기 . 2015 - 시골에서 인문책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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