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위스 방명록 - 니체, 헤세, 바그너, 그리고...
노시내 지음 / 마티 / 201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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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읽기 삶읽기 194



스위스에서 꿈을 꽃피우는 사람들

― 스위스 방명록

 노시내 글·사진

 마티 펴냄, 2015.7.1. 16500원



  유자나무에는 유자꽃이 하얗게 핍니다. 작고 하얀 유자꽃이 지면 굵고 누르스름한 유자알이 천천히 맺힙니다. 모과나무에는 모과꽃이 발그스름하게 핍니다. 작고 발그스름한 모과꽃이 지면 굵고 단단하며 푸르스름한 모과알이 천천히 맺습니다.


 먼저 꽃이 피어야 열매를 맺습니다. 꽃이 먼저 곱게 피어 맑은 내음을 두루 나누어 주고 나서야 열매를 맺습니다. 꽃이 없는 열매는 없습니다.


  포도나무에는 포도꽃이 피고, 귤나무에는 귤꽃이 핍니다. 감나무에는 감꽃이 피고, 배나무에는 배꽃이 핍니다. 앵두알처럼 작은 열매는 꽃이 진 뒤 한 달쯤 뒤면 무르익고, 모과나 감처럼 굵은 열매는 꽃이 진 뒤 서너 달이 흘러야 비로소 무르익습니다.


  집집마다 나무를 손수 심어서 기르고 돌보던 지난날에는 꽃하고 열매를 누구나 알았을 텐데, 나무를 심을 만한 마당을 누리지 못하는 사람이 많은 오늘날에는 꽃하고 열매를 함께 헤아리지 못하기 마련입니다.




이 험한 자연을 뚫고 철도를 놓겠다는 비전은 얼마나 대담한가. 그리고 위정자들의 계획을 실행에 옮긴 노동자들, 특히 19세기 말 스위스의 부족한 건설 노동력을 메우며 각 터널과 철도 공사장에서 맹활약한 이탈리아 이주노동자들의 고생이란 얼마나 극심했으며, 얼마나 많은 희생이 뒤따랐을까. (23쪽)


최악의 경우 나치독일이 스위스를 강점하고 미그로의 재산을 몰수하게 되면, 자기 한 사람이 소유한 재산보다는 수십만 조합원이 조금씩 나눠 가진 재산을 빼앗기가 훨씬 더 어려우리라는 것이 그의 계산이었다. 바꿔 말해 미그로의 조합 전환은 나치독일의 스위스 위협이라는 역사적 상황 속에서 창립자가 고안해낸 업체 생존전략이었다. (64쪽)



  노시내 님이 쓴 《스위스 방명록》(마티,2015)을 읽습니다. ‘방명록’은 어느 곳을 찾아가거나 어떤 일을 한 사람이 누구인가를 알려고 이름을 남기는 꾸러미를 가리킵니다. 그러니 “스위스 방명록”이라고 한다면, 스위스라고 하는 나라에서 눈부시게 꽃을 피웠다고 할 만한 사람들을 다루는 책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스위스라는 나라에서 삶을 눈부시게 꽃피운 사람들이 남긴 열매를 오늘날에 이르러 두루 누리는 이야기를 함께 헤아리는 책이라고 할 만합니다.



베른 주민들이 내는 지방세가 파울 클레 센터를 지탱하고 있었던 거다. 관광객 유치도 중요하지만, 지역민들이 정기적으로 찾아오고 시설을 애용하는 것이 재정 문제 해결의 열쇠인데 많은 이들이 파울 클레 센터를 ‘클레’라는 한 가지 테마만 취급하는 곳, 따라서 한 번 가 봤으면 그만인 곳으로 인식하고 있다는 점이 문제였다. (97쪽)


긴 세월 내내 헤세는 문제의 1914년 호소문에서 스스로 역설한 것처럼 어느 한 이념이나 사상에 지나치게 경도되어 판단을 흐리는 일을 경계했으며, 그래서 때때로 양편의 비판을 한꺼번에 받는 일을 초래하면서도 지식인의 중립을 지키고자 노력했다. (126쪽)




  노시내 님이 《스위스 방명록》이라는 책에서 다루면서 이야기를 들려주려고 하는 사람은 ‘스위스에서 나고 자란’ 사람도 있고, ‘다른 나라에서 나고 자란’ 사람도 있습니다. 스위스를 삶터나 일터나 사랑터나 꿈터로 삼은 사람들 이야기를 담습니다.


  ‘고향’은 대수로울 수 있으나 안 대수로울 수 있습니다. 서울에서 태어났기에 서울을 잘 알거나 사랑하지 않고, 서울에서 안 태어났기에 서울을 잘 모르거나 안 사랑하지 않습니다. 스위스에서 나고 자랐어도 다른 나라로 가서 삶을 꽃피울 수 있고, 러시아나 이탈리아에서 나고 자랐어도 스위스로 가서 삶을 꽃피울 수 있습니다.


  어느 곳에서 삶을 꽃피우든 다 아름답습니다. 삶을 꽃피우려고 온힘을 쏟아서 하루하루 기쁘게 땀흘리는 사람은 누구나 아름답습니다. 니체, 두트바일러, 슈타이너, 클레, 헤세, 뷔히너, 레닌, 에밀리, 슈피리, 바그너 같은 사람들은 저마다 다른 눈길과 눈빛으로 스위스를 사랑하거나 아끼면서 이녁 꿈을 펼칩니다. 눈부신 멧자락과 들을 보면서 꿈을 펼치기도 하고, 갑갑하거나 답답한 굴레를 깨려고 용쓰면서 꿈을 짓기도 합니다.



피곤함은커녕 머리가 맑고 기운이 났다. 목에 걸고 다닐 증명서 따위는 필요없었다. 산을 걷는 동안 망막에 박혀 그날 밤 꿈에서 또렷이 재현된 웅장한 경치, 그리고 옅은 대기가 자극하던 강렬한 오감의 기억은 “내가 더는 존재하지 않을 때 나와 함께 땅에 묻힐” 터다. (184쪽)


뷔히너가 이장될 당시 무렵 바로 뒤에 보리수가 한 그루 있었다. 150살을 훌쩍 넘긴 탐스러운 이 나무는 안타깝게도 2012년 폭풍에 꺾여 넘어졌다. 취리히 시는 2013년 뷔히너 탄생 200주년을 맞아 그의 생일 아침 같은 자리에 어린 보리수를 심었다. (223∼224쪽)




  감 한 알을 얻기까지 숱한 풋감이 떨어집니다. 풋감으로 굵기 앞서 숱한 감꽃이 떨어집니다. 매화나무도 매화알(매실)을 맺기까지 숱한 매화꽃을 떨구고, 조그마한 풋알을 수없이 떨굽니다. 때로는 가지가 꺾이거나 부러집니다. 바람이 세게 불어 가지가 꺾이고, 거위벌레가 잎을 갉아먹다가 가지가 잘려서 툭 떨어집니다. 나비나 나방 애벌레가 잎을 갉아먹다가 가지가 끊어지기도 합니다. 하늘소가 나무 속을 파고들면서 나무가 힘을 잃기도 하고, 외려 더 힘을 내기도 합니다.


  가게에서 열매만 사다가 먹을 적에는 열매 맛만 알 수 있습니다. 열매 한 알을 얻기까지 나무 한 그루가 얼마나 알뜰히 열매 한 알을 나뭇가지에 붙잡고서 돌보았는가 하는 대목을 알기 어렵습니다. 비가 오고 바람이 불 적에도 열매를 떨구지 않으려고 애쓰는 나무입니다. 햇볕이 내리쬘 적에 햇볕을 듬뿍 먹고, 멧새가 찾아와서 노래할 적에 멧새 노랫소리를 고요히 듣는 나무입니다. 아이들이 뛰노는 소리를 듣고, 어른들이 농약을 치는 냄새를 맡는 나무입니다. 새파란 하늘을 올려다보고, 짙푸른 들을 아우르는 나무입니다.


  열매 한 알에는 나무 한 그루가 살아온 숨결이 깃듭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스위스라는 나라에서 저마다 꽃피우면서 아름답게 열매를 맺은 사람들 발자국마다 넓고 깊은 숨결이 깃듭니다. 이런 책이 있고 저런 노래가 있기 앞서, 이런 웃음과 저런 눈물이 있습니다. 이런 기념관과 저런 추모사업으로 기리기 앞서, 이런 땀방울과 저런 주름살이 있습니다.



레닌은 스위스의 꼼꼼하고 정확한 문화를 좋아했다. 특히 어딜 가나 글을 읽고 쓰는 일에 많은 시간을 할애했던 레닌에게 스위스의 도서관이 제공하는 공간과 도서대여 시스템은 편리한 자원이었다. (291쪽)


1971년 2월 7일, 스위스는 유럽에서 가장 늦게 여성참정권을 인정했다 … 더욱 흥미롭고 역설적인 사실은 스위스가 유럽 다른 곳에 비해 여성에게 일찌감치 대학 교육의 문을 연 진취적인 곳이기도 했다는 점이다. (305, 307쪽)




  스위스는 어떤 나라일까요? 스위스는 스위스입니다. 페터 빅셀 님이 “스위스인의 스위스”라는 글을 쓰기도 했듯이, 스위스는 스위스입니다. 스위스는 러시아가 아니고, 스위스는 이탈리아가 아니며, 스위스는 프랑스가 아닙니다. 러시아도 스위스가 아닌 러시아이며, 이탈리아도 스위스가 아닌 이탈리아요, 프랑스도 스위스가 아닌 프랑스입니다.


  그러나 모든 스위스사람이 똑같지 않습니다. 모든 스위스사람이 똑같은 일을 하지 않습니다. 다만, 한 가지는 똑같지요. 모두 밥을 먹고, 누구나 똥을 눕니다. 모두 숨을 쉬고, 누구나 잠을 잡니다. 그러니 시골에서 흙을 부치는 사람이 어느 나라에나 똑같이 있어야 합니다. 시골 일꾼이 많다고 해서 ‘전원국가’나 ‘농업국가’이지 않습니다. 문화나 예술이나 과학이나 이런저런 것이 발돋움했다고 해서 시골일을 안 해도 될 수 없을 뿐 아니라, 시골이 없이는 삶을 버틸 수 없습니다.


  《스위스 방명록》이라는 책에서 첫머리부터 다루는 ‘철도 노동자’ 이야기를 헤아려 봅니다. 깎아지를 듯이 가파른 멧자락 사이에 다리를 놓고 기나긴 구멍을 뚫어서 철길을 놓은 노동자가 없었다면, 오늘날 같은 스위스는 없었다고도 할 수 있습니다. 1971년에 이르러서야 여성참정권을 받아들인 스위스라는데, 스위스에서도 집일이나 밥짓기는 여성이 으레 도맡았을 테지요. 역사책이나 문학책에 이름 한 줄 안 실릴 터이나, 집에서 빵을 굽고 옷을 빨며 아이를 돌보던 수많은 어머니(여성)가 없이는 어떤 문화도 정치도 경제도 예술도 꽃피울 수 없습니다.



19세기 후반의 스위스는 유럽에서도 상대적으로 아직 가난한 편에 속했고 산업화와 근대화에 집중하던 스위스 엘리트들은 전근대적이고 촌스러운 ‘전원국가’ 이미지에서 벗어나고자 애쓰던 중이었으니 기존의 인상을 강화하는 작품이 그다지 반갑지 않았을 것이다. (390쪽)



  ‘방명록’에 이름을 남기는 사람이 있습니다. ‘방명록’이 있는 줄조차 모르는 사람이 있습니다. ‘방명록’에 이름을 남기면서 우쭐거리는 사람이 있습니다. ‘방명록’은 거들떠보지 않고 제 한길을 걷는 사람이 있습니다. 온갖 사람이 모여서 마을을 이루고, 고장을 이루며, 나라를 이룹니다. 수많은 사람이 어깨동무를 하면서 살림을 북돋우고, 사랑을 살찌우며, 꿈을 펼칩니다.


  적잖은 사람들이 스위스에서 꿈을 꽃피웠습니다. 어제에 이어 오늘도 모레도 스위스에서 꿈을 꽃피우는 사람이 많습니다. 그러면 우리가 사는 이 작은 나라에서는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꿈을 꽃피울 만할까요. 이 작은 나라는 꿈을 꽃피울 만큼 아름다운 나라일까요, 아니면 이 작은 나라는 꿈을 꽃피우기에 너무 작거나 갑갑한 터전일까요. 아름다운 나라이든 갑갑한 터전이든, 가슴속에 꿈씨를 한 톨 심을 수 있기를 빕니다. 4348.7.13.달.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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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사의 맛 - 교정의 숙수가 알뜰살뜰 차려 낸 우리말 움직씨 밥상 한국어 품사 교양서 시리즈 1
김정선 지음 / 유유 / 201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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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뜻한 삶읽기, 인문책 116



말맛, 삶맛, 사랑맛, 이야기맛

― 동사의 맛

 김정선 글

 유유 펴냄, 2015.4.4.



  지구별에 있는 모든 다른 나라와 겨레는 다른 말맛을 누립니다. 한국말에는 한국말다운 맛이 있고, 영어에는 영어다운 맛이 있으며, 중국말에는 중국말다운 맛이 있습니다. 더 나은 말맛이 없고, 덜떨어지는 말맛이 없습니다. 다 다르면서 저마다 새로운 말맛입니다.


  한국사람이 쓰는 한국말을 놓고 볼 적에도, 전라말이 경상말보다 낫지 않고, 강원말이 평안말보다 덜떨어지지 않습니다. 서울말이든 경기말이든 저마다 다르면서 사랑스러운 말맛을 풍깁니다.


  그런데 한국이라는 나라에서는 1900년대로 접어들 무렵부터 말맛이 크게 뒤흔들렸습니다. 아스라한 옛날부터 이 땅에서 살던 사람이 스스로 숲에서 길어올린 말이 잊혀지면서, 이웃 여러 나라에서 총칼을 거머쥐고 밀려드는 말에 짓눌리거나 짓밟혔어요. 다른 문명하고 문화를 만난 지난 백 해 사이에 한국말은 쉴새없이 흔들리고 부딪히고 깨지고 넘어지고 다치면서 달라집니다.



바늘과 실이 있다. 실을 바늘귀에 꿰고 옷감을 꿰맨다. 굵고 큰 바늘에 굵은 실을 꿰고 두꺼운 헝겊을 맞댄 뒤 이불 홑청을 호듯 듬성듬성 꿰매기도 하고, 가늘고 작은 바늘에 가는 실을 꿰고 바짓단을 접은 뒤 바늘땀이 밖으로 드러나지 않게 꿰매기도 한다. (감치다/깁다, 36쪽)


남자는 거미줄을 걷고 여자는 치마를 걷어지른 채 낡고 삭은 발을 걷어들겠지. (거두다/걷다, 42쪽)



  김정선 님이 쓴 《동사의 맛》(유유,2015)을 읽습니다. 한국말로 이야기를 하자면 ‘동사 맛’일 텐데, 이 책을 쓴 분은 ‘-의’를 사이에 넣습니다. 일본 영화를 ‘녹차의 맛’으로 옮기듯, ‘-의’를 넣어야 말맛이 있다고 느끼기 때문이로구나 싶습니다.


  왜 그러한가 하면, ‘바나나 맛 우유’나 ‘딸기 맛 우유’처럼, 한국사람은 어떤 맛을 가리킬 적에 ‘-의’ 없이 말합니다. ‘말맛’도 그냥 말맛입니다. ‘밥맛’도 그저 밥맛입니다. 술맛은 술맛이요 차맛은 차맛입니다. 바람맛은 바람맛이며 물맛은 물맛입니다.


  다만, “동사 맛”으로만 적어야 한국말 맛을 살린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사람마다 모두 다르기 때문에, 어떤 사람은 한국말에 영어를 섞습니다. 어떤 사람은 한국말에 중국 한자말을 섞고, 어떤 사람은 한국말에 일본 한자말을 섞습니다. 어떤 사람은 한자를 드러내어 글을 쓰고 싶고, 어떤 사람은 알파벳을 훤히 드러내며 글을 쓰려 합니다. 저마다 스스로 “내 말맛”을 누리고 싶은 마음입니다.



하루 종일 사전을 뒤적이다 집에 돌아오면 머릿속에 이런저런 낱말들이 제멋대로 널브러지기 일쑤다. 눈도 아프고 몸도 무거울 때면 정말이지 이게 무슨 짓인가 싶기도 하다. 잠을 청하기 위해 소주를 홀짝이다가 소주병이며 안주 나부랭이가 널브러진 방 안에 너부러진 채로 잠이 들 때도 있으니까. (너부러지다/널브러지다, 85쪽)


사전을 보면 모든 낱말이 분명한 제 뜻을 갖고 있는 것 같지만 사실은 모두 다른 낱말에 기대고 있을 뿐 그 자체로는 이도 저도 아니다. 낱말들이 서로를 눌러보고 눌러들어 주지 않는다면 어떤 낱말도 제 뜻을 가질 수 없을 테니까. (눌러듣다/눌러보다, 97쪽)



  옛날 사람이라면 “과학을 가리키다”처럼 말하면 못 알아듣습니다. 오늘날 사람이라면 “과학을 가리키다”처럼 말해도 “과학을 ‘가르치다’”인 줄 압니다. 학교에서 국어를 가르치는 교사 가운데 ‘가르치다’하고 ‘가리키다’를 옳게 가누지 못하는 분이 제법 있습니다. 그래도 아이들을 ‘잘 가르치’고, 아이들은 ‘잘 배웁’니다.


  어느 모로 보면 ‘틀린’ 말이라 할 테지만, 사람들이 다 알아듣는다면 ‘틀린’ 말이라고 할 수 없다고도 할 만합니다. 나이 먹은 어른이 이녁 어머니를 ‘엄마’라 하든, 어른들이 서로 “‘까까’ 먹자.”라 말하든, 저마다 제 삶에 걸맞게 제 말맛을 찾으려고 낱말을 고른다고 할 만합니다. “‘너무’ 예뻐”가 말이 안 된다는 얘기는 말법으로만 하는 얘기가 되는 오늘날입니다. 1970년대나 1980년대까지 “너무 예뻐” 같은 말을 거의 안 쓰거나 아예 안 썼다고 하더라도, 2010년대인 오늘날 “너무 예뻐”라는 말이 두루 퍼졌으면, 이러한 말투가 오늘날 말투가 되면서, 새로운 말맛이 될 만합니다.


  달라지는 사회에서는 달라지는 말이고, 흐르는 사회에서는 흐르는 말입니다. 옳거나 그른 얘기가 아니고, 맞거나 틀린 얘기가 아닙니다. 달라지는 말맛이요, 흐르는 말맛입니다.



낱말의 뜻을 살피면 그다지 헷갈릴 일도 없다. ‘뒤쳐지다’는 ‘뒤치다’에서 왔고, ‘뒤처지다’는 ‘처지다’에서 왔다. 그러니 물건이 뒤집혀서 젖혀질 때는 ‘뒤쳐지다’라고 쓰고, 자꾸 뒤로 처질 때는 ‘뒤처지다’라고 써야 한다. (107쪽)


‘불리다’가 당하는 말이니 ‘불려지다’라거나 ‘불리우다’라고 쓰는 건 어법에 맞지 않다. 심지어 ‘불리워지다’라고 쓰기도 하는데, 기본형인 ‘부르다’ 어디에도 ㅂ받침이나 ‘ㅜ’가 없으니 ‘워’를 집어넣을 이유가 없다. (131쪽)



  《동사의 맛》이라는 책은 한국말에서 ‘동사’ 한 가지를 놓고 이야기를 풀어냅니다. 이 책에서 다루는 동사 이야기는 한국말사전을 뒤적이면 모두 스스로 깨달을 만한 이야기입니다. 다만, 이 책에서 다루는 동사 이야기를 스스로 한국말사전을 뒤지면서 스스로 배우려고 하는 한국사람이 몹시 적어요. 수많은 책을 읽고, 날마다 신문을 읽으며, 온갖 이야기를 인터넷에서 살피더라도, 막상 ‘내가 여느 자리에서 흔히 쓰는 낱말’을 한국말사전에서 낱낱이 살피거나 가리거나 헤아리는 사람은 대단히 드뭅니다.


  이를테면 ‘먹다·하다·있다·쓰다·보다’ 같은 낱말을 한국말사전에서 찾아보는 사람이 있을까요? ‘즐겁다·기쁘다·흐뭇하다·좋다·넉넉하다’ 같은 낱말을 한국말사전에서 찾아보는 사람이 있을까요? ‘달리다·뛰다’를 한국말사전에서 찾아보는 사람은 얼마나 될까요? ‘예쁘다·곱다·아름답다·아리땁다’를 한국말사전에서 찾아보면서, 저마다 어떻게 달리 쓰는 낱말인가를 스스로 배우려는 사람은 얼마나 있을까요?


  그런데 말이에요, 한국말사전을 뒤적인다고 해서 한국말을 잘 배울 수 있는지는 좀 아리송합니다. ‘불쌍하다·가엾다·애처롭다’ 같은 낱말을 한국말사전에서 살피면, 돌림풀이로 오락가락할 뿐입니다. 오늘날 한국에서 한국말사전은 거의 ‘한자말 풀이 사전’ 구실을 한다고 할 만합니다. 한국말을 한국사람이 즐겁고 아름답게 잘 살려서 쓰도록 북돋우는 구실보다는, 한국사람이 안 쓰는 낯선 온갖 한자말을 집어넣어서 한자백과사전처럼 보이는 구실을 한달 수 있습니다.



새벽녘에 혼자 깨 보니 밖에서 무슨 소리가 들리더란다. 친구가 깨지 않게 조심조심 나가 보니 장대비가 세차게 내리고 있었다고. 도시에서 비를 만날 때하고는 달라 여자는 잠깐 멍했단다. 뭐랄까, 좀 무섭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편안하기도 했달까. (166∼167쪽)


이런 예는 ‘깨치다’와 ‘깨우치다’에서도 볼 수 있다. ‘깨치다’는 스스로 깨닫는 것이고, ‘깨우치다’는 누군가를 깨치게 만드는 것이다. 그러니 ‘스스로 깨우칠 때까지’라는 표현은 어색하다. (223쪽)



  《동사의 맛》은 이야기책입니다. 한국말 몇 가지를 바탕으로 삼아서 아기자기하게 지은 이야기가 흐르는 책입니다. 한국말 가운데 동사 몇 가지를 알맞게 엮어서, 이 낱말로 새로운 이야기를 지어서 들려주는 책입니다.


  ‘동사’는 ‘움직씨’입니다. 움직씨는 움직임을 나타내는 낱말입니다. 움직임이란 흐름이요 몸짓입니다. 몸으로 짓는 삶을 움직씨라는 낱말을 빌어서 나타냅니다. 사람이 스스로 몸으로 짓는 삶이 움직씨에 담기고, 사람을 둘러싼 숲에서 흐르는 온갖 움직임과 흐름이 움직씨에 깃듭니다.


  바람이 붑니다. 햇볕이 내리쪼입니다. 물이 흐릅니다. 아이가 웃습니다. 어버이가 노래합니다. 네가 찾아옵니다. 내가 찾아갑니다. 서로 만납니다. 기쁘게 어깨를 겯습니다. 팔짱을 끼고 걷다가, 땀이 나도록 달립니다. 고갯마루에 오르면서 땀을 훔칩니다. 느긋하게 쉬면서 구름을 바라봅니다. 어느덧 해가 떨어지면 숲에서 별빛을 헤아리며 고요히 잠듭니다.


  움직임하고 흐름을 담는 ‘움직씨(동사)’라고 하는 말마디는, 우리가 몸을 써서 짓는 삶이 얼마나 아름다운가 하는 대목을 건드립니다. 그리고, 우리를 둘러싼 꽃이랑 풀이랑 나무랑 벌레랑 새랑 물고기랑 다 같이 어우러지는 숲에서, 이 지구별에서, 서로 어떻게 어깨동무를 하면서 어떤 사랑을 빚는가 하는 대목을 보여줍니다.


  말맛을 알기에 삶맛을 느끼고, 삶맛을 느끼면서 사랑맛을 깨달으며, 사랑맛을 깨닫는 사이 시나브로 이야기맛을 누리는 어여쁜 사람으로 거듭납니다. 4348.7.4.흙.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5 - 시골에서 인문책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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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기 - 신비롭고 위험한 Nature & Culture 5
피터 애디 지음, 임지원 옮김 / 반니 / 201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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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맛 싱그러운 숲이 있어야 할 도시

― 공기, 신비롭고 위험한

 피터 에디 글

 임지원 옮김

 반니 펴냄, 2015.5.26.



  아침에 풀을 뜯습니다. 우리 집 마당하고 뒤꼍 사이에 풀이 제법 우거졌기에, 처음에는 낫을 써서 베다가, 이내 손을 써서 뽑습니다. 호미로 땅을 톡톡 쪼면서 풀을 뽑을 수도 있는데, 손만 써서 풀을 뽑으면 손가락이랑 손바닥에 닿는 느낌이 새삼스럽습니다. 풀내음이 두 손 가득 깃들고, 흙내음도 온몸으로 스밉니다.


  실장갑을 끼고 흙일을 해도 두 손은 흙투성이가 됩니다. 맨손으로 흙일을 해도 흙투성이가 되기는 똑같습니다. 실장갑을 끼고 낫질을 하면, 손에 힘이 빠질 무렵 그만 낫을 잘못 놀려 손가락을 쿡 찍을 적에 덜 다칩니다. 그러나 맨손에 닿는 풀하고 흙이 반갑기에 으레 맨손으로 풀베기를 합니다.


  한참 풀을 베고 나서 아침을 짓습니다. 손이랑 발을 씻고 나서 밥을 짓는데, 손바닥에서 풀물이 안 빠집니다. 밥을 짓다가 손바닥을 물끄러미 바라봅니다. 풀을 베거나 뽑은 날이면 며칠 동안 손바닥이 까무잡잡합니다. 손등은 햇볕에 타서 까무잡잡하고, 손바닥은 풀물이랑 흙물이 들어서 까무잡잡합니다. 국이 끓을 때까지 손바닥을 한동안 바라보면서 혼자 빙그레 웃습니다.



모든 생명체들이 공기에 의존하고 있다고 생각하면 실로 공기에 대한 수요는 엄청나다 … 대부분의 고대 사상에서 공기는 인체에 대한 질문을 우주의 작용, 그리고 신의 존재로 확장시킨다. (11, 21쪽)

마레는 이러한 근육의 움직임에 또 다른 힘이 작용하는 것을 발견했다. 바로 공기의 저항이었다. (72쪽)

두바이의 기적이 가능할 수 있었던 것은 이곳 환경 속에 거주하는 사람들을 시원하게 해 주도록 공기를 관리하는 기술 덕분이었다. 그러나 두바이 경제에서 석유가 다 떨어지고 나면 이곳은 다시 모래사막으로 되돌아갈 것이다. 착취당하던 이주노동자들은 고향으로 돌아가고 방문객 수도 점점 줄어들 것이다. (223쪽)



  피터 에디 님이 쓴 《공기, 신비롭고 위험한》(반니,2015)이라는 책을 읽습니다. 우리가 다 함께 사는 이 지구별에 있는 바람을 이야기합니다. 서양에서 예부터 내려오는 문학과 철학과 지식에서 바람을 어떻게 바라보거나 다루었는가 하는 대목을 짚습니다. 이러면서 오늘날 문명사회에서 ‘더러워진 바람’이 무엇을 뜻하고, ‘에어컨으로 다스리는 바람’은 무엇을 보여주는가를 이야기해요.


  이 책에서는 ‘공기(空氣)’라는 낱말을 씁니다. ‘공기’는 “지구를 둘러싼 대기의 하층부를 구성하는 무색, 무취의 투명한 기체”를 뜻한다고 합니다. ‘대기(大氣)’는 ‘공기’를 가리키는 다른 한자말입니다. 과학이나 철학에서는 으레 ‘공기’나 ‘대기’를 쓰지요.


  그러면, 이러한 한자말을 쓰기 앞서 한겨레는 어떤 말을 썼을까요? 이런 말이 이 나라에 들어오기 앞서도 한겨레는 ‘공기’랑 ‘대기’를 늘 느끼거나 마주하며 살았을 테니까요.




뉴욕 시의 대기 변화는 순탄하지만은 않았다. 왜냐하면 난방의 혜택을 누리는 사람들에게는 증기난방이 축복이었지만, 한편으로 시민의 인내심을 시험하는 골칫거리였기 때문이다. 맨해튼의 지하세계는 종종 보수공사로 파헤쳐져 그 모습을 드러냈다. (93쪽)

18세기 파리에서는 숨 쉴 수 없을 지경으로 완전히 오염된 공기가 시민의 생물학적 미래를 위협했고 나라의 존립 자체도 위태롭게 만들었다 … 위험할 정도로 해로운 공기가 도시의 거리, 공장, 집들로 모여들었다. 시골이라면 쉽게 환기를 시킬 수 있다. 하지만 도시에서는 나쁜 공기가 도시 전체에 갇혀 있어서 사람들 역시 그 공기 안에 갇혀 있는 셈이었다. (104, 111쪽)



  한국말사전에서 ‘바람’이라는 낱말을 찾아보면 “기압의 변화 또는 사람이나 기계에 의하여 일어나는 공기의 움직임”이라고 풀이합니다. ‘하늘’이라는 낱말을 찾아보면 “지평선이나 수평선 위로 보이는 무한대의 넓은 공간”이라고 풀이해요.


  흔히 “바람이 분다”고 말하지만, 바람은 가만히 있는 일이 없습니다. ‘공기’도 가만히 있지 않습니다. 물처럼 바람도 언제나 흐릅니다. 빠르게 흐르기도 하고 천천히 흐르기도 하며, 마치 죽은듯이 고요하게 흐르기도 합니다.


  늘 지내던 마을을 떠나 다른 마을로 가거나 먼 고장으로 가면, 사람은 누구나 ‘바람맛’이 달라지는 줄 느낍니다. 물맛이랑 바람맛을 맨 먼저 느껴요. 바람맛이란 무엇일까요? 마을이나 고장이나 나라마다 다 다르게 흐르는 바람이 나누어 주는 맛이요, 이 맛은 ‘공기맛’입니다.


  ‘대기’라고 일컫는 자리는 ‘하늘’입니다. 땅바닥 위쪽은 모두 하늘입니다. 저 먼 곳만 하늘이 아닙니다. 아이 머리 위쪽도 하늘입니다. 왜 그러할까요? 개미한테는 ‘아이 머리 위쪽’도 높다란 하늘이에요. 제비꽃이나 민들레한테는 ‘지붕 위쪽’도 높디높은 하늘입니다.


  그러니까, 바람은 곧 하늘이고, 하늘은 곧 바람입니다. 사람이 마시는 숨이란 바람이면서 하늘입니다. 늘 숨을 쉬는 사람은, 늘 바람을 마시고 하늘을 마시는 셈입니다. 그래서 ‘하늘숨’을 쉰다고도 말합니다. 지구별을 넓게 느끼지 못할 때에는 ‘숨만 쉰다’고 할 테지만, 지구별을 넓게 느끼는 자리에서는 온 하늘을 헤아리면서 온 바람을 가득 껴안아요.




요한나 슈피리가 쓴 이 유명한 동화 《하이디》는 1880년 처음 출간될 때부터 남부 유럽의 산악지대 풍경과 기후에 대한 동경을 불러일으켰다. 이 동화에 나오는 공기는 논란의 여지없이 ‘좋은’ 것이고 건강과 영혼을 회복시켜 준다 … 회복 치료는 공기와 빛과 고도를 하나로 결합시켰다. 이 세 요소는 빛의 스펙트럼 끝에서 한데 만났다. 여기에서 빛의 스펙트럼이란 다름아닌 파장을 말한다. (132, 135쪽)

2008년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으로 운반된 연료의 대략 85퍼센트가 에어컨을 가동시키는 데에 사용되었다고 한다. (224쪽)

에어컨은 땀을 흘려 열기를 식히는 우리 몸의 자연적인 온도 조절 기능이나 에너지를 덜 소비하는 전통적인 방법을 사라지게 하고, 그 자리를 빼앗아버렸다. (240쪽)



  《공기》라는 책에서 《하이디》라는 동화책을 도드라지게 다룹니다. 《하이디》는 ‘알프스 소녀 하이디’입니다. 높고 깊은 멧골에서 할아버지하고 둘이 사는 하이디입니다. 도시로 끌려가서 지내야 할 적에 늘 숲을 그리면서 울었고, 숲을 그리면서 울다가 몸져누웠으며, 숲으로 돌아갈 수 있을 때에 씻은듯이 털고 일어납니다. 하이디하고 동무가 되었던 클라라도 도시를 떠나 하이디가 있는 높고 깊은 멧골로 찾아가니, 이곳에서 아픈 다리가 낫고 튼튼하며 씩씩한 몸이 됩니다.


  《공기》라는 책에서도 말하지만, 숲이 우거진 멧골집은 사람 몸에 대단히 좋습니다. 그러니까, 숲이 없는 도시는 사람 몸에 대단히 나쁩니다. 도시는 ‘돈이 넘치거나 많을’는지 모르나, ‘삶이나 즐거움이나 보람’이 없기 마련이에요. 왜 그러한가 하면, 숲이 없는 도시에서는 누구나 골골거리거나 아프기 마련이기 때문입니다. 아파서 병원을 들락거리거나 약에 기대야 한다면 ‘아픈 몸 생각’에 옭매이면서 삶이나 즐거움이나 보람을 헤아리기 힘듭니다.


  도시를 짓더라도 건물만 있는 도시가 아니라 숲이 있는 도시로 지을 노릇입니다. 도시 곳곳이 나무가 우거진 거님길로 이루어지고, 너른 숲이 펼쳐지면서, 건물이나 학교나 아파트 둘레를 아름드리 숲으로 가꾸면, 도시에서 아프거나 힘든 일도 차츰 사라지리라 봅니다. 전기로 수돗물을 끌어들여서 깨끗해 보이는 척하는 냇물이 흐르는 도시가 아니라, 풀과 흙이 어우러진 들과 숲을 가로지르는 냇물이 흐르는 도시여야 합니다.


  이제 한국에서도 이 대목은 잘 알 만하리라 생각해요. 중앙정부에서 밀어붙인 4대강사업을 보면 쉽게 알 수 있어요. 온 나라 냇물마다 흙바닥을 들어내고 시멘트를 들이부으니 냇물이 어떻게 되었을까요? 들과 숲을 가로지르는 냇물이 아니라, 시멘트 둑에 갇혀서 고이는 냇물은 어떤 모습이 되었을까요?





프리츠 하버는 사람을 둘러싼 환경을 사람의 몸에 개입하는 수단으로 사용함으로써, 공기를 치명적인 무기로 바꾸어 놓았다. 공기는 녹색 구름으로 변해 적군을 죽음이나 불구로 몰아넣었다. 이 새로운 무기의 원리는 숨 쉴 수 있는 공기를 없애는 것이었다. (175쪽)

전쟁의 역사에서 에어컨으로 냉각된 공기는 고문기술의 일부로 사용되어 전쟁 포로나 반란군, 억류된 죄수에게 자백을 받거나 중요한 정보를 얻어내는 데 큰 역할을 해 왔다. ‘냉방감옥’은 널리 알려진 CIA의 고문기술 중 하나로. (236쪽)



  바람은 한 사람한테만 싱그럽지 않습니다. 전쟁을 일으켜서 화학무기를 쓸 적에는 적군만 화학무기로 죽지 않습니다. 아군도 화학무기를 쐬다가 죽습니다. 하늘에 화학무기를 풀어놓으면, 이 화학무기는 지구별을 두루 돌면서 모든 사람한테 스며들어요.


  핵발전소가 터졌을 적에 핵발전소가 있는 나라만 방사능에 드러나지 않습니다. 소련에서 터진 핵발전소는 온 유럽을 뒤덮었습니다. 일본에서 터진 핵발전소는 태평양하고 한국 하늘까지 덮었습니다.


  한국에 잔뜩 있는 공장은 매연을 한국 하늘뿐 아니라 일본 하늘하고 태평양 하늘에 퍼뜨립니다. 중국에 어마어마하게 있는 공장은 매연을 중국 하늘뿐 아니라 한국 하늘하고 일본 하늘에까지 퍼뜨려요.


  바람이 흘러서 지구별을 돕니다. 한국에서 마시는 바람은 ‘한국 것’이 아닙니다. ‘지구별 모든 사람 것’입니다. 브라질 깊은 숲에서 태어난 바람이 한국으로 오고, 서울 한복판에 가득한 배기가스가 흘러서 아르헨티나로 갑니다. 슬픈 바람이 이 나라와 저 나라를 스칩니다. 기쁜 바람이 이 고을과 저 고을을 어루만집니다.


  《공기》라고 하는 책은 ‘지구별 한집살이’에서 밑바탕이 되는 ‘바람’이 무엇인가를 우리가 스스로 돌아보면서 깨닫자고 하는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바람을 마셔야 살고, 바람을 마시지 못하면 죽습니다. 하늘이 맑은 곳에서 삶을 짓고, 하늘이 흐리거나 매캐한 곳에서는 삶을 지을 기운을 잃습니다. 4348.6.30.불.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5 - 시골에서 인문책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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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부하는 혁명가 - 체 게바라가 쓴 맑스와 엥겔스 불온한 책 1
체 게바라 지음, 한형식 옮김 / 오월의봄 / 201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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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읽기 삶읽기 191



누구나 늘 새롭게 배운다

― 공부하는 혁명가, 체 게바라가 쓴 맑스와 엥겔스

 체 게바라 글

 한형식 옮김

 오월의봄 펴냄, 2013.5.30.



  비가 오는 날에 빗소리를 듣고, 안개가 낀 아침에 안개를 바라보며, 구름 한 조각 없이 맑은 하루일 적에는 밝고 뜨거운 햇볕을 맞이합니다. 똑같은 하루가 없이 흐르는 삶입니다. 달력에 적힌 날짜만 다르지 않습니다. 누구한테나 날마다 새롭기 마련입니다.


  누구나 늘 배웁니다. 아침저녁으로 밥을 지어도 배우고, 아침저녁으로 도시락을 먹어도 배웁니다. 길을 걷거나 버스를 타고 움직이는 동안에도 배우며, 줄넘기를 하거나 숨바꼭질을 할 적에도 배웁니다. 살면서 겪는 모든 일은 배움이 됩니다.



맑스와 엥겔스가 택한 첫 번째 무기는 시를 쓰는 문학적인 작업이었지만 평론가들은 그 시들을 그다지 의미 있게 평가하지는 않았다. 젊은 시절의 이런 호기는 곧 끝을 맺었고, 이후 두 청년은 헤겔 철학에 이끌렸으며 청년헤겔학파에 참여하게 되었다 … 정치 저술가로서 맑스의 경력은 검열에 대한 글을 쓰면서 시작되었지만, 그 글도 검열로 출판이 금지되었다. (26, 32쪽)



  《공부하는 혁명가, 체 게바라가 쓴 맑스와 엥겔스》(오월의봄,2013)를 읽습니다. 《공부하는 혁명가》는 책이름에 적힌 대로 체 게바라 님이 ‘맑스’하고 ‘엥겔스’를 놓고 쓴 책입니다. 다만, 이 책은 마무리를 짓지 못했다고 합니다. 이 책을 한창 쓰던 어느 날 숨을 거두었기 때문입니다. 이리하여, 맑스나 엥겔스를 잘 알고 싶은 사람이라면 《공부하는 혁명가》를 읽고서는 궁금한 대목을 모두 채우기는 어려우리라 느낍니다. 그러나, 《공부하는 혁명가》를 읽는 사람이라면, ‘우리는 누구나 늘 새로 배우는 사람’이요, 언제 어디에서 무엇을 하든 배우는 사람인 줄 새삼스레 돌아볼 만합니다.



맑스의 유일한 수입원은 그가 《뉴욕 트리뷴》에 썼던 기사들이었다. 하지만 이 기사들도 항상 신문에 실린 것은 아니었고, 실리지 않으면 원고료도 받지 못했다. 따라서 맑스 가족은 원고료만으로는 생활할 수 없었지만 맑스나 그의 아내는 절약으로 생계를 꾸려 나가는 데 능숙하지 않았다 … 맑스와 엥겔스는 실패로부터 배웠다. 맑스는 이 사건에 대한 심오한 분석을 했고 인터내셔널의 감수 아래 《프랑스내전》을 출판했다. 파리코뮌의 가장 중요한 결과들 중 하나는 민중의 권력을 튼튼히 하기 위해서는 낡은 정부기가룰 파괴할 필요가 있다는 점을 조명했다는 것이다. (62, 78쪽)



  맑스하고 엥겔스를 잘 알아야 하지 않습니다. 체 게바라도 잘 알아야 하지 않습니다. 다른 사람을 잘 알려고 애쓰지 말고, 내가 누구인가를 잘 알아야 합니다. 내가 선 이곳, 내 보금자리와 마을을 잘 알아야 합니다. 내가 두 발을 디디고 삶을 가꾸는 자리를 잘 알아야 합니다.


  내가 나 스스로 잘 알지 못한다면, 다른 사람을 알 길도 없습니다. 내 삶부터 제대로 알지 못하는 넋으로는 다른 사람이 어떤 마음이거나 생각인가를 헤아리기 어렵습니다. 아니, 내가 누구인가를 제대로 바라보면서 배우려고 하는 몸짓이 없다면, 나를 둘러싼 이웃하고 동무를 제대로 마주하면서 사랑하려고 하는 몸짓이 못 되기 마련이라고 느낍니다.


  사람으로 태어나서 날마다 새로운 하루를 맞이하고 언제나 새롭게 배운다고 한다면, 무엇보다 나 스스로 제대로 바라보면서 삶을 사랑하는 길을 배울 때에 즐거움을 찾기 때문이지 싶습니다.


  밥 한 그릇을 맛있게 짓는 길을 찾습니다. 밥 한 그릇을 기쁘게 나누는 길을 생각합니다. 밥 한 그릇을 아름답게 일구는 길을 돌아봅니다. 밥 한 그릇을 오롯이 내 손으로 얻는 길을 걷습니다. 작은 발걸음이라 하더라도 한 걸음씩 내딛습니다. 이제껏 스스로 돌아보지 못한 길을 짚으면서, 앞으로 씩씩하게 걸어갈 길을 내다봅니다.



그의 동지 엥겔스 덕분에 경제적 걱정에서는 자유로워졌지만 훨씬 더 쇠약해진 맑스는 남은 마지막 몇 년 동안 두 명의 예니를 잃고 고통 받았다. 일을 할 수도 없었고 아내와 딸을 잃어 그의 에너지의 비밀스러운 원천도 말라버렸기 때문에 맑스에게는 1883년 3월 14일 세상에서 물러나는 것 말고는 할 일이 남아 있지 않았다 … 엥겔스는 《자본》을 완성해야 한다는 엄청난 과제를 안고 있었고, 그것이 그의 가장 큰 관심이었다. 《자본》 2권은 상대적으로 이른, 맑스가 죽은 지 2년 만인 1885년에 출판되었는데 … 엥겔스는 맑스가 남긴 엄청난 원고 더미를 편찬하는 데 10년이 걸렸고 《자본》 3권은 엥겔스 자신이 죽기 몇 달 전이 되어서야 출판될 수 있었다. (86, 95쪽)



  체 게바라 님은 왜 맑스하고 엥겔스를 배우려고 했을까요? 이녁이 몸담은 쿠바에서 ‘새로운 경제 틀’을 세우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책에만 적힌 이념을 따르려는 삶이 아니라, 스스로 두 발을 디딘 이 땅에서 아름답게 나아갈 길을 찾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돈에 따라 움직이는 사회가 아니라 사람을 아끼는 돈이 흐르는 사회가 되기를 바랐고, 돈이 많으면 되는 사회가 아니라 사람으로서 삶을 사랑하는 사회가 되기를 바랐기 때문이지 싶습니다.


  곰곰이 돌아보면 지구별 어느 나라에서든 돈이나 자원이 모자라는 일은 없습니다. 돈이나 자원을 제대로 제자리에 쓰지 못하거나 않을 뿐입니다. 이를테면, 평화를 지키려고 한다면서 평화로는 나아가지 않고 전쟁무기에만 끝없이 돈을 퍼붓습니다. 젊은이한테 평화를 가르치거나 보여주려고는 하지 않고 군부대를 크게 건사하면서 어마어마한 돈을 들이붓습니다. 바닷물을 더럽히고 나서 부랴부랴 바다를 되살리려고 애쓰고, 냇물을 망가뜨리고 나서 냇물을 어떻게 되살리는가를 놓고 골머리를 앓습니다.



그(체 게바라)는 독서와 관념적 급진화를 통해서가 아니라 라틴아메리카 현실과 생생하게 만나면서 자연스럽게 맑스주의로 나아갔다 … 체에게 진정한 맑스주의는 인간주의를 배제하지 않는 것이었다. 그가 쿠바혁명을 퉁해 실현하려고 했던 맑스주의도 인간주의적인 것이었다 … 체는 소련의 노선이 “‘성공’이냐 ‘실패’냐를 재단하기 위해 성장률이나 생산성에만 초점을 둘 뿐 철학적 또는 정치적 측면들에는 무관심하다”고 보았다 … 체는 새로운 사회주의적 윤리에 충실한 인간이 정치적 민주주의에 기반하고 계획을 통해 자본주의 시장의 한계를 넘어서는 사회주의를 꿈꾸었다. (138, 142, 149, 151쪽)



  공부하는 혁명가는 《공부하는 혁명가》라는 책을 남깁니다. 배우는 사람은 기쁘게 배운 발자취를 남깁니다. 삶을 배우면 삶을 남기고, 사랑을 배우면 사랑을 남깁니다. 미움이나 시샘을 배웠으면 미움이나 시샘을 남길 테니, 우리는 누구나 스스로 배우는 대로 스스로 이곳에 무엇인가를 남깁니다.


  어른으로서 이 땅에 무엇을 남길 적에 아름다울까 하고 생각해 봅니다. 어른으로서 아이들한테 무엇을 남기거나 물려줄 적에 아름다울까 하고 거듭 생각해 봅니다. 우리는 평화를 이 땅에 남겨야 할까요, 아니면 군대와 전쟁무기를 남겨야 할까요? 우리는 미움과 시샘을 이 땅에 남겨야 할까요, 아니면 사랑과 꿈을 남겨야 할까요? 집과 마을과 학교에서는 무엇을 가르치고 배우면서 삶을 지어야 할까요?


  이념이나 주의주장은 대수롭지 않습니다. 사랑이 되는 씨앗이 대수롭습니다. 정치권력이나 종교는 대단하지 않습니다. 꿈으로 나아가는 숨결이 대단합니다. 배울 수 있는 사람일 때에 사랑을 하고, 꿈꿀 수 있는 사람일 때에 어깨동무를 합니다. 4348.6.22.달.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5 - 시골에서 인문책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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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를 읽다, 이탈리아 세계를 읽다
레이먼드 플라워, 알레산드로 팔라시 지음, 임영신 옮김 / 도서출판 가지 / 201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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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뜻한 삶읽기, 인문책 113



삶은 늘 여행이 된다

― 세계를 읽다, 이탈리아

 레이먼드 플라워·알레산드로 팔라시 글·사진

 임영신 옮김

 가지 펴냄, 2015.6.10.



  비행기를 타고 한국에서 멀디먼 나라로 찾아갈 적에도 여행이고, 두 다리로 천천히 걸어서 십 분이나 한 시간쯤 걸리는 곳을 다녀올 적에도 여행입니다. 가까운 곳에 가니까 여행이 안 되지 않습니다. 먼 곳에 다녀와야만 여행이 되지 않습니다.


  도시에서는 골목마실을 할 만합니다. 골목마실은 골목여행입니다. 도시에서는 시골마실을 할 만합니다. 시골마실은 시골여행이에요. 이와 거꾸로, 시골사람은 도시마실, 곧 도시여행을 할 수 있습니다.


  가만히 보면, 이곳에서 저곳으로 움직이는 모든 일은 여행입니다. 논일을 하려고 논둑을 걸어가는 일도 여행입니다. 면사무소나 면소재지 우체국에 다녀오려고 자전거를 달리는 일도 여행입니다. 시골에서 군내버스를 타고 도시에서 시내버스를 타는 일도 여행입니다. 수많은 회사원이 전철을 타고 일터를 오가는 일도 여행이에요.




이탈리아는 분명 하나의 국가다. 하지만 남부와 북부로 나누고 중부를 따로 구분하면 세 지역이 된다. 시칠리아섬과 사르데냐섬을 따로 떼면 다섯으로 나뉜다. 여기에 각 지역의 특유한 정서까지 고려한다면 이탈리아는 20개 이상의 지역으로 나누어 볼 수 있다 … 사실 진부하게 들릴지 모르지만 모든 나라는 모순으로 가득하며, 이는 동시에 주목해야 할 사실이다 … 모래사장을 따라 관광 리조트들이 늘어서 있고, 그 뒤로 수백 개의 소규모 공장들이 이어지지만 내륙은 훼손 없이 잘 보존되었다. (8, 9, 44쪽)



  《세계를 읽다, 이탈리아》(가지,2015)를 읽으면서 생각합니다. 이 책은 여러모로 재미난 여행 길잡이책입니다. 이 책을 쓴 분은 “버스는 기차보다 접근성이 더 좋아서 이동하는 도중에 그림 같은 마을이나 전원 풍경을 잘 볼 수 있다. 아주 편하게 앉아서 가지는 못해도, 적어도 BMW나 메르세데스벤츠를 내려다보며 갈 수는 있다(243쪽).”처럼 이야기하면서 글멋을 풍깁니다. 수수한 여행길이 재미난 여행길이 되도록 북돋우고, 큰돈을 들이지 않더라도 얼마든지 여행하는 기쁨을 누릴 수 있다고 밝혀요.


  단체여행을 하지 않고 혼자 따로 모든 것을 알아보면서 여행을 한다면, 이름난 관광지가 아닌 ‘이름 안 난’ 마을이나 도시를 둘러보기 마련일 테니, 이때에는 “상대적으로 변방에 있는 예술도 마찬가지로 위대한 예술임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235쪽).” 하고 이야기하기도 합니다.


  유적지나 박물관을 찾아서 여행하는 일도 뜻있습니다. 유적지나 박물관은 안 찾아가면서 ‘그 나라 여느 사람’이 사는 마을을 찬찬히 돌아보면서 ‘여느 사람 삶내음하고 이야기’를 온몸으로 받아들이는 일도 뜻있습니다. 꼭 이렇게 해야만 여행이 되지 않습니다. 이탈리아에 가서 꼭 뭔가를 봐야만 여행이 되지 않습니다. 여행길을 떠났으니 사진을 많이 찍어 와야 하지 않습니다.



트라토리아와 레스토랑은 안락함과 외관, 요리, 가격 등에 있어서 차이가 난다. 돈을 물 쓰듯 쓰고 싶다면 우아한 레스토랑에 가면 그만이지만, 그게 아니라면 트라토리아를 선택하는 편이 좋다. ‘엄마가 만드는 가정식’이라는 뜻의 카살린가 요리를 파는 트라토리아는 더 소박하고 현실적이다 … 로마를 구경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한 번에 한 지역씩 걸어 다니는 것이다 … 역사적인 외부와의 접촉으로는 스페인 카탈루냐와의 만남이 유일할 것이다. 오늘날까지 샤르데냐의 언어와 문화는 이탈리아의 그 어떤 곳보다 외부 영향을 거의 받지 않았다. (22, 24, 53쪽)




  아침저녁으로 일터를 오가는 길이 여행길이 되지 못할 적에는 몹시 고단합니다. 그래서 무척 많은 사람들이 아침저녁으로 일터를 오가면서 고단해 합니다. 수많은 사람이 한꺼번에 움직이는 때에는 사람물결에 휩쓸리면서 지치거나 힘들기 마련입니다. 그런데, 이를 여행이라고 느낄 수 있다면, 우리 삶은 언제나 재미난 여행이라고 여길 수 있다면, 온 하루를 새롭게 바라볼 수 있어요.


  몸이 아파서 병원이나 집에서 드러누워 지내야만 하는 사람으로서는 ‘지옥철’이라고 하는 고단한 아침을 겪지 못합니다. ‘살 날’이 얼마 남지 않은, 그러니까 ‘목숨이 곧 끊어질’ 사람한테는 하루 한 시간이 모두 애틋해서, 어떤 일을 겪더라도 가슴에 또렷하게 남습니다.


  높다란 봉우리에 꼭 올라야 하지 않고, 드넓은 바다를 꼭 보아야 하지 않으며, 깊은 숲에 꼭 깃들어야 하지 않습니다. 스스로 기쁜 마음이 되어 둘레를 살필 줄 알아야 합니다. 스스로 홀가분한 넋이 되어 둘레를 헤아릴 줄 알아야 합니다. 스스로 아름다운 사랑을 가꾸어서 둘레를 얼싸안을 줄 알아야 합니다.



이런 행사에 관광객이 참여하는 것은 환영을 받을 뿐 아니라 오히려 기대되는 바이다. 하지만 이들 축제는 지역의 달력에 붉은 글자로 표시된 중요한 행사로, 관광객이 없어도 열정적으로 개최된다 … 당신이 만나게 될 가족에거 선물할 수 있도록 미리 고국에서 몇 가지 전통적인 물건을 가져가는 것도 좋은 생각이다. 특히 아이들을 위한 선물을 준비한다면 부모의 마음까지 사로잡을 수 있다. 너무 큰 선물을 준비할 필요는 없다. 중요한 건 마음이다 … 상대는 선물의 실제 가격보다는 당신이 적당한 선물을 고르기 위해 마음과 시간을 썼다는 사실에 더 큰 감동을 받을 것이다. (77, 92, 101쪽)



  나는 시골마을에서 살며 아이들하고 날마다 여행을 합니다. 마당이랑 뒤꼍을 오가는 여행을 하고, 집이랑 서재도서관을 들락거리는 여행을 하며, 자전거로 논둑길을 달리다가 숲길을 가로지르다가 바닷길을 헤매는 여행을 합니다. 그리고, 《세계를 읽다, 이탈리아》 같은 책을 마룻바닥에 드러누워서 천천히 읽으며 ‘마음으로 떠나는 여행’을 합니다. 책읽기도 수많은 여행 가운데 재미난 이야기꽃을 들려줍니다.




이탈리아에 대해 이야기할 때, 이탈리아인들은 나라보다 자신의 출신 지역에 대해 더 큰 자부심이 있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 이탈리아에서만큼은 시간이 돈은 아니다. 대부분 사람들이 즐거운 대화를 나누며 시간을 보내는 것을 즐거워한다 … 이탈리아인은 식료품을 조금씩 자주 구입하는 것을 좋아하는데 그래야 재료가 신선하기 때문이다 … 이탈리아의 음악적 유산은 아주 오래전부터 이어져 왔다. 특히 에트루리아 문화의 일부였던 음악은 거의 모든 종교적·사회적 활동에 배경처럼 등장했다. 능숙한 플루트 연주자는 사냥꾼의 사냥을 돕기도 했다. (104, 105, 129, 210쪽)



  이탈리아뿐 아니라 한국에서도 ‘나라’나 ‘중앙정부’보다 ‘내 고장’이나 ‘우리 마을’을 한결 자랑하거나 사랑하고픈 마음을 찾아볼 만하지 싶습니다. 내가 사는 마을을 좋아하고, 내가 사는 마을을 아끼며, 내가 사는 마을을 이웃하고 함께 가꿉니다.


  이탈리아사람뿐 아니라 한국사람도 ‘식료품을 조금씩 자주 살’ 적에 한결 싱싱하고 맛나게 누릴 만합니다. 텃밭을 둘 수 있다면, 그때그때 텃밭에서 뜯어서 먹는 남새가 대단히 맛납니다.


  한겨레도 예부터 언제나 노래를 불렀습니다. 일하면서 일노래를 부르고, 놀이하면서 놀이노래를 부릅니다. 들에서 들노래를 부르고, 숲에서 숲노래를 불러요. 모내기를 하든 김매기를 하든 길쌈을 하든 베틀을 밟든, 참말 언제나 노래를 불렀지요.


  우리가 여느 때에 늘 즐기는 삶이 바로 문화이면서 예술입니다. 우리가 여느 때에 늘 즐기는 삶을 제대로 바라보면서 사랑할 수 있을 때에 아름다운 하루가 됩니다. 삶이 여행인 까닭은 삶을 재미나게 누리기 때문입니다. 삶이 여행인 사람이 될 수 있다면, 한국에서 어느 고장을 찾아가더라도 기쁘게 마실노래를 부릅니다. 삶이 여행인 넋이 될 수 있으면, 이탈리아뿐 아니라 지구별 어느 나라를 찾아가더라도 기쁜 웃음을 함께 나누면서 지구별 이웃하고 어깨동무를 나누는 노래를 부르리라 생각합니다. 4348.6.20.흙.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5 - 시골에서 인문책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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