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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의 영휴
사토 쇼고 지음, 서혜영 옮김 / 해냄 / 2017년 11월
평점 :
품절
일본 대중문학상인 나오키상 수상작은 대중소설 중에서 문학성까지 인정받은 믿고 볼 수 있는 책이다.
가장 최근에 본 나오키상 수상작인 온다 리쿠의 '꿀벌과 천둥'을 비롯해 여러 수상작들을 읽어 봤지만
대부분 만족스러운 작품들이었기에 제157회 나오키상 수상작인 이 책도 충분히 기대가 되었는데
제목에 쓰인 '영휴'란 단어는 차고 기울다는 뜻으로 달이 차고 기우는 것이 이야기의 중요한 단서가
되는 것 같았다.
오사나이라는 남자가 루리라는 딸을 데리고 나온 여자와 만나는 장면으로 이야기가 시작되는데
오사나이가 들려주는 기이한 얘기는 바로 자신의 딸 루리에 얽힌 미스터리한 에피소드들이었다.
오사나이는 고등학교 후배인 후지미야 고즈에와 결혼해 아내의 강력한 주장을 반영해 딸에게
루리라는 이름을 붙였다. 딸 루리가 7살이 되기 전까지는 무난한 생활을 해왔다가 루리가 7살에
발열이 있은 이후로 7살짜리가 하기 어려운 이상한 말과 행동을 하기 시작한다.
오사나이는 별 일 아니라고 생각하지만 아내는 딸의 변화를 심각하게 생각하는데
결국 루리가 가출하는 사건이 발생하고 딸을 찾아 데리고 온 오사나이는 루리와 고등학교 졸업할
때까지는 어디 가고 싶어도 참자고 약속한다. 그 약속은 무사히 지켜지지만 루리가 졸업하던 해에
아내와 딸은 교통사고로 즉사하고 마는데...
오사나이가 자기 딸과 이름이 같은 루리라는 여자아이와 만나는 장면과 오사나이를 시작으로 한
루리라는 이름을 가진 여자들에 얽힌 이야기가 번갈아 진행되는데 처음에는 조금 혼란스러웠다.
15년 전 교통사고로 사망한 오사나이의 아내와 딸이 미스미라는 남자를 만나러 가다가 사고가 났고
오사나이로부터 이야기의 바통을 이어받은 미스미의 사연이 나오는데 미스미가 사귀게 된 연상의
유부녀의 이름도 루리였다. 마사키 루리도 전혀 예상할 수 없던 뜻밖의 사고로 사망하고 그녀의
남편 마사키 류노스케의 얘기가 이어지면서 꼬리에 꼬리를 무는 루리란 이름의 여자와의 사연이
결국 달이 차고 기우는 것처럼 삶과 죽음을 반복하는 환생과 관련되어 있음을 알 수 있었다.
하느님이 최초의 남녀가 죽을 때 나무처럼 죽어서 씨앗을 남기는 방법과 달처럼 죽었다가 다시
태어나는 방법 중 선택하라고 해서 인간의 조상은 나무 같은 죽음을 선택했다고 하는데 이 책의
핵심인물인 루리는 달처럼 사는 방법을 택한 것이었다. 보통 환생을 해도 전생을 기억하지 못한다고
하는데 루리는 7살 때 발열을 하고 나면 전생을 기억하면서 전생에 사랑했던 남자를 찾아나서는
과감한 행보를 보인다. 루리와 얽힌 여러 사람들의 사연을 잘 꿰맞추어 가는 과정이 아기자기한
재미를 주는데 아무래도 현실감은 떨어지는 판타지 로맨스의 느낌이 물씬 풍겼다.
왠지 영화 '번지점프를 하다'도 연상되고 불교에서 말하는 윤회가 실제에도 있을 수 있는 일일까
하는 답이 없는 질문도 해봤는데 어쩌면 식상할 수도 있는 환생을 달의 변화에 비유하면서
촘촘하게 잘 짜여진 얘기로 조금은 가벼워진 요즘의 사랑 얘기를 환상적으로 포장한 작품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