꿀벌과 천둥
온다 리쿠 지음, 김선영 옮김 / 현대문학 / 201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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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다 리쿠와는 한때 뜨거운(?) 사이였는데 어느 순간부터인가 좀 소원해진 것 같다.

이 책 이전에 제2회 서점대상을 수상했던 '밤의 피크닉'으로 첫 만남을 가진 이후로

'삼월은 붉은 구렁을'로 시작하는 연작 시리즈에 열광했던 시절이 거의 10년 정도 전이었으니

상당한 시간 동안 그녀의 작품을 만나보지 못했다. 마지막으로 읽었던 그녀의 작품이

'우리 집에서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로 6년이 지났으니 오랜만이라 할 수 있었는데

최초로 서점대상을 두 번째 수상하고 나오키상까지 거머쥐게 만든 작품이라 그냥 넘어갈 수가 없었다. 

 

요시카와 국제 피아노 콩쿠르라는 실제 3년마다 개최되는 대회를 배경으로 그려지는 이 작품에서

온다 리쿠는 음악을 글로 표현하는 엄청난 모험을 시도한다. 음악, 미술, 문학 등 다양한 예술 장르가

있지만 청각적인 음악과 글이라는 시각적인 표현 도구를 매개로 하는 문학은 쉽게 하나가 되기 어려울

것 같은데 이 책에서 온다 리쿠는 음악이 귀로 통해 들려줄 있는 선율을 글자로 변환시키는 놀라운

능력을 선보인다. 콩쿠르는 1차, 2차, 3차 예선과 본선의 네 단계를 거치면서 최종 6명의 본선 진출자를

선발하는 치열한 과정을 보여주는데 1차 예선에 참가할 사람을 뽑기 위해 서류 심사 낙선자를

대상으로 하는 프랑스 오디션 마지막에 무명의 소년 가자마 진이 등장하면서 파란이 일어난다.

전통적인 클래식 스타일을 넘어서는 심사위원들을 압도하는 자유분방한 연주실력을 보여준

소년의 등장에 심사위원들 사이에 내분이 일어나는데 게다가 그 소년이 거장 유지 폰 호프만에게

사사받았다는 추천서를 가지고 있자 심사위원인 미에코는 멘붕에 빠지지만 다른 심사위원들의 설득으로 가자마 진을 1차 예선에 포함시킨다. 1차 예선에 총 100명이 참가하는데 그 중에서

24명만이 2차 예선에 진출하고, 그 중에서 다시 살아남은 12명이 3차 예선에, 마지막 최후의

생존자 6명이 본선에서 최후의 승자를 겨루는 토너먼트 방식이라 치열한 경쟁과 뜨거운 열기, 

숨 막히는 긴장감의 연속이었다. 참가자 중에 등장부터 충격을 안겨주었던 꿀벌 왕자 가자마 진과

천재 소녀라 불렸지만 어머니의 죽음으로 인한 상실감을 견디지 못하게 공연 중에 사라졌던

에이덴 아야, 혼혈이지만 정통 클래식 교육을 받은 마사루 카를로스 레비 아나톨, 음악에 대한

꿈을 포기하지 않고 용기를 내어 참가한 다카시마 아카시를 중심으로 얘기가 전개되는데 각자의

특별한 사연들이 어우러지면서 열기를 더욱 뜨겁게 만들었다. 연주를 평가한다는 게 전문가들의

시각과 일반 대중의 시각이 서로 다를 수 있는데 천재는 천재를 알아본다고 가자마 진과 에이덴 아야,

마사루는 서로의 연주에서 자신이 표현하지 못하는 뭔가를 발견하면서 전율하곤 한다.

특히 형식에 얽매이지 않으면서 음악을 통해 사람들을 자연 속으로 데리고 가게 만드는 탁월한

능력을 가진 가자마 진에게선 마치 모짜르트의 느낌도 물씬 풍겼는데, 이렇게 음악의 신에게

특별한 사랑을 받는 존재들만이 가진 능력을 부러워하는 대부분의 살리에리들에게 부러움을 

넘어선 질투의 대상이 되기에 충분했다. 그리고 가자마 진에게 자극을 받아 자신의 숨겨진 잠재력을

마음껏 뿜어내는 에이덴 아야나 콩쿠르 최고의 인기스타이면서 자신의 실력을 유감 없이 발휘하는

마사루까지 이들의 경쟁은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게 만들었다. 초반에는 가자마 진의 파격에

부정적이었던 심사위원들 때문에 실격의 고비가 있어 초조한 순간들도 있었지만 마지막 본선까지

마치 공연장에서 이들의 연주를 직접 듣는 듯한 짜릿한 전율의 연속이었다. 클래식의 향연이

펼쳐지는데 솔직히 작곡가는 대충 알겠지만 곡명만 들어선 내가 아는 작품인지 알 수 없어서

연주하는 곡들을 직접 연상할 수 없다는 아쉬움이 남았다. 해당 곡들을 찾아 들어보고 다시 이 책을

읽는다면 정말 소름이 돋는 황홀한 순간들을 맛볼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온다 리쿠는 전에 읽었던 

'초콜릿 코스모스'에서도 연극의 배우를 선발하는 오디션을 그려냈었는데 이번 작품으로 정말

음악이 들려줄 수 있는 감동을 글로 최대한 승화시켜 표현해낸 것 같다. 700 페이지에 육박하는 엄청난 분량의 작품이었지만 한 편의 장대한 연주를 감상하는 듯한 특별한 시간이었다. 한동안 소원했던

온다 리쿠와의 재회는 반가움을 넘어서 음악과 문학의 환상적인 앙상블에 참여한 소중한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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