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노는 세상을 어떻게 지배했는가
페터 슬로터다이크 지음, 이덕임 옮김 / 이야기가있는집 / 2017년 5월
평점 :
품절


누구나 살아가면서 분노를 느낀 적이 가끔 있을 것이다. 직접 사람들과의 갈등 속에서 분노를 느낄

수도 있고 각종 뉴스를 통해 접하는 화나는 사연들에 분노를 느낄 수도 있는데 이처럼 분노는 인간의

자연스런 감정 중의 하나로 전에 읽었던 '강신주의 감정수업'에서도 도스토예프스키의 명작 '죄와 벌'을

통해 다뤄진 적이 있다. 이렇게 분노라는 감정이 인간과 친숙한 감정이지만 분노가 세상을 지배하는

감정이라고 부르기엔 좀 어색한 부분이 없지 않은데 분노가 발단이 된 전쟁이 인류의 역사를 수놓았던

점을 감안한다면 완전히 틀린 말도 아닐 것 같다. 이 책은 분노라는 인간의 감정에 초점을 맞추면서

인간의 역사에서 분노가 세상의 변화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를 흥미롭게 보여준다.

 

먼저 '일리아드'의 첫머리가 '분노'로 시작한다는 점을 언급한다. 영웅들의 행동의 근원에 분노가

자리잡고 있음을 말하는데 현재의 관점에서 보면 정신적으로 문제가 있는 모습이지만 그리스 시대의

관점에선 분노는 정신세계에 필요한 에너지의 보충제로서 긍정적인 역할을 하는 것이었다.

이 책에선 '티모스'란 용어가 거의 핵심단어처럼 사용되고 있는데 그리스어로 플라톤이 말한

자아 분출의 에너지, 자존심, 패기, 명예욕의 바탕이 되는 힘과 인정받고 싶은 욕구를 의미했다.

중요한 용어임에도 자세한 설명이 없이 계속 사용하다 보니 그 문장에서 솔직히 무슨 의미로 사용된

것인지가 잘 이해되지 않을 때가 종종 있었는데 이 단어만 확실히 이해해도 이 책을 이해하기도 훨씬

수월해질 것 같았다. 이 책에선 분노의 다양한 형태를 분석하고 있는데, 분노의 기획된 형태의 표출인

복수나 분노가 저장고인 은행의 형태로 축적되어 역사적 형태로 변모한 혁명 등 분노가 바탕이 된

다양한 형태의 인간의 행위들을 해석한다. 특히 종교적인 형태로 표출된 분노와 공산주의 체제

하에서의 분노에 대해 많은 부분을 할애하여 설명하고 있는데, 자연재해를 비롯한 인간이 겪는

각종 불행을 신의 분노로 이해하는 데서 출발해 정치권력이 신의 대리자를 자칭하며 자신의 권력을

공공히 하기 위해 반대세력을 탄압하는 수단으로 변질하고 만다. 신에 반항하는 악마나 마녀 등으로

몰아 권력자의 마음에 안드는 자들을 제거하는 수법은 전형적인 것이라 할 수 있었는데, 신의

전지전능함, 정의로움, 그리고 사랑이라는 분노의 세 가지 진부한 연역적 결론에 안식처를 제공하는

것은 오직 맹목적인 신앙심뿐으로 조금만 이성적으로 생각해도 얼마나 허약한 기반에 근거한 것인지

깨달을 수 있다. 이러한 종교적 분노가 더 이상 힘을 못 쓰는 시기가 되자 분노는 새로운 분출구를

요구하게 되었는데 그 적절한 대안이 바로 공산주의였다. 자본가들에게 착취당하는 다수의

노동자들의 분노를 동력으로 한 프롤레타리아 혁명은 러시아를 필두로 여러 나라에 공산주의 정부를

수립하게 되지만 역시나 분노를 저축해준 대다수의 예금주들에게 그 혜택을 돌려주지 않고

소수 권력자들의 체제유지를 위한 수단으로 전락시키고 만다. 가톨릭과 공산주의라는 양대 분노은행이

몰락한 이후 새로운 분노은행으로 각종 테러의 배후로 지목되는 극단적 이슬람세력을 언급하고 있는데 

이들이 세계화된 자본주의 국가 안에서 새로운 보편적 반체제 집단으로 조직될 수 있을 가능성은

거의 불가능하다고 보고 있다. 이렇게 분노라는 관점에서 접근하여 인류의 역사를 지배했던 

분노의 집단표출 사례들을 흥미롭게 분석한 책이었는데 가톨릭과 공산주의라는 양대 세력에 너무

치중하다 보니 좀 더 다양하고 입체적인 분석은 좀 아쉬운 점이 없진 않았다. 그럼에도 분노라는

생소한 시선에서 인류 역사의 흐름을 고찰한 점에선 분명 의미가 있는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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