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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프 보이스 - 법정의 수화 통역사
마루야마 마사키 지음, 최은지 옮김 / 황금가지 / 2017년 3월
평점 :
장애인이 등장하는 작품들은 보통 전형적인 얘기들을 연상시킨다. 장애를 극복한 감동스토리나
장애로 인해 고통받는 본인이나 주변 사람들의 애환, 장애에 대한 편견과 사회적인 차별을 고발하는
얘기 등 대략의 스토리가 충분히 예상 가능한 데 이 책은 제목부터 장애를 다뤘음을 표방하고 있지만
추리소설이라 피해자나 범인, 증인 중 장애인이 어떤 결정적 역할을 할까 하는 호기심을 불러 일으켰다.
하지만 추리소설의 형식을 빌어 장애인이 무엇을 원하는지, 그들과 진정 어떻게 소통할 것인지에 대한
중요하면서도 쉽지 않은 화두를 던지고 있다.
주인공인 아라이는 농인인 부모를 둔 아이인 코다였다. 코다는 이 책을 통해 처음 들어본 용어인 것
같은데 부모와 형이 모두 농인인 가운데 혼자만 청인이었던 아라이는 경찰 사무직으로 취업해
오랫동안 근무하다가 본의 아니게 퇴직하고 나서 자신의 특기인 수화로 수화통역사가 되어 재취업한다.
그러다 절도미수죄로 기소된 63세 농인 남성에 대한 법정 통역을 맡게 되는데
구화법도 일본수화나 일본어대응수화도 못하는 사람이어서 피고인과의 의사소통에 어려움을 겪는다.
일본에는 음성일본어에 손의 움직임을 하나하나 끼워맞춘 일본어대응수화와 음성일본어 문법과는
독자적인 일본수화의 두 가지가 있다고 하는데 안 그래도 의사소통이 쉽지 않은 농인의 고충이 얼마나
심할지 짐작이 갔다. 그나마 우리는 일본수화와 비슷한 형태의 한국수화만 있다고 하니 다행이었다.
농인 통역으로 실력을 발휘하던 아라이에게 10년 전 근무했던 사야마 서에서 만났던 이즈모리 형사가
찾아와 17년 전 아라이가 취조 통역을 했던 몬나가 죽였던 농아시설 이사장의 아들이 얼마 전에
살해된 사건과 관련해 몬나의 행방을 아는지 묻는다. 17년 전 농아시설 이사장 살해사건과
현재 발생한 그의 아들이 살해된 사건의 진실이 무엇인지 밝혀내는 것이 이 책의 중심사건이라 할 수
있었는데 농인들에 대한 세상의 편견과 폭력이 고스란히 드러나는 사건이었다.
우리 형법상으로는 여전히 농아자에 대해 형을 감경하도록 규정하고 있지만 일본 형법에서는
1995년에 법이 개정되어 감경하는 조항이 삭제되었다고 한다. 농인들의 책임능력을 필요적으로
감경하는 것은 그들을 비정상으로 간주하는 역차별에 해당한다는 취지였는데 우리는 이런 부분에
대한 논의가 있는지 잘 모르겠다. 장애인 가족 사이에 혼자 비장애인으로 성장한 아라이같은
코다들의 애환과 일본수화를 둘러싸고 선천적농인과 중도실청자와 난청자를 동일하게 취급할 것인지에
대한 갈등 등 장애를 겪지 않는 사람들은 생각조차 못했을 고통을 이 책을 통해 알게 되었다.
17년 전 사건과 현재의 사건의 연결고리인 몬나와 그의 가족에게 있었던 일들을 통해 미스터리로서의
묘미도 솔솔했는데 우리가 장애인들이 어떤 삶을 살아가고 있는지에 대해 얼마나 무관심했는지를
절실히 깨닫게 되었다. 우리 사회가 다름에 대한 차별이 얼마나 심한 곳인지를 새삼 떠올리게
해주었는데 장애인에 대해 좀 더 이해와 공감하려는 노력이 필요함을 잘 알려준 책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