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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를 엮다 ㅣ 오늘의 일본문학 11
미우라 시온 지음, 권남희 옮김 / 은행나무 / 2013년 4월
평점 :
미우라 시온의 책은 나오키상 수상에 빛나는 '마호로 역 다다 심부름집'을 통해
평범한 사람들의 삶의 애환과 그들이 행복을 찾아가는 과정을 만나볼 수 있었는데 이 책은 무려
15년 동안 사전 한 권을 편찬하기 위해 분투하는 출판사 사전편집부원들의 얘기를 담고 있다.
2012년 서점대상 1위라는 훈장을 달고 있어 오래 전부터 관심이 갔던 책인데
제목이 뭔가 확 와닿지 않아서 선뜻 손이 가지 않았는데
대략의 소개 내용을 읽다 보니 왠지 낯익은 스토리라는 느낌이 들었다.
전에 '행복한 사전'이란 영화를 괜찮게 봤었는데 그 영화의 원작이 바로 이 책이었다.
보통은 소설이 영화보다 더 나은 경우가 대부분이어서 소설로 먼저 읽고 영화로 보는 경우는 많아도 영화로 먼저 보고 나면 거의 원작소설을 잘 찾아보지 않는 편인데
이 책은 영화로도 진한 여운이 남는 작품이라 책으로도 보고 싶었는데 역시나 책도 만족스러웠다.
'큰 바다를 건너다'란 의미의 '대도해'라는 사전을 편찬하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사람들의 모습과
아기자기한 사연을 담고 있는 이 책을 보면서 정말 한 권의 사전을 만들기 위해
얼마나 많은 시간과 노력, 열정이 필요한지를 알고 놀라우면서도 존경스러울 지경이었다.
요즘같이 하루가 다르게 변하는 세상에서 15년이라는 엄청난 시간을 들여
한 권의 책을 만든다는 것 자체가 과연 가능한 것인가 싶은 생각도 들었는데
그 오랜시간 동안 지치지 않고 최고의 사전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들의 모습이 정말 아름다웠다.
보통의 사명감과 참을성을 가지고는 결코 가능하지 않을 것 같은 일인데 사전 편찬을 위해
태어난 듯한 마지메, 마쓰모토 선생, 아라키 삼인방은 장인정신의 화신이라 할 수 있었다.
사전을 '말의 바다를 건너는 배'라 표현하며, 사람은 사전이라는 배를 타고 어두운 바다 위에
떠오르는 작은 빛을 모으는데, 그런 바다를 건너는 데 어울리는 배를 엮는다는 생각에서
사전 이름을 '대도해'라고 지었다는 마쓰모토 선생과 아라키의 말은 사전을 만드는 이들의 자세가
어떤지를 여실히 보여주었는데 이 정도의 마음가짐이라면 어떤 일이든 못 할까 싶었다.
늘 새로 접하는 단어나 용법을 만나게 되면 언제 어디에서도 용례채집카드를 작성하는 모습이나 미끈거리는 손맛이 나는 종이 등 최고의 사전을 만들기 위해 일심동체가 되어 노력하는 모습들이 정말 보기 좋았다. 나도 연감 등 책을 만드는 작업에 참여한 적이 있는데 나름 잘못된 내용이나 오타 등을 확인한다고 했음에도 나중에 발견되어 당혹스러운 경우가 있었다.
이 책에서도 표제어 하나를 빠뜨려서 더 누락된 것이 없나 아르바이트생들까지 지옥의 합숙을 하면서 처음부터 끝까지 다시 확인하는 과정을 거치는데 예전에 책 만들 때의 기억이 떠올랐다.
사전을 만드는 과정에서 벌어지는 아기자기한 에피소드들도 재미있었지만
주인공격인 마지메를 비롯한 독특한 캐릭터들도 작품의 재미를 배가시켰다.
사전 만드는 일 외에는 모든 게 어수룩한 마지메가 미인 가구야(마침 본 '가구야 공주 이야기'란
애니메이션의 주인공과 동일한 이름이었다)와 사랑에 빠지고 진심을 담아 예스러운 스타일의
러브레터로 그녀의 마음을 얻는 장면 등 달달한 로맨스와 진지한 사전 편찬, 군데군데 포진한 코믹한
장면들까지 잘 버무려져서 소설 읽는 재미와 감동의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을 수 있는 작품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