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 자와 죽은 자 스토리콜렉터 32
넬레 노이하우스 지음, 김진아 옮김 / 북로드 / 201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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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토프와 둘만의 결혼식을 치른 피아는 크리스토프를 따라 남미로 한 달 넘는 휴가를 떠날

예정이었지만 총격을 받고 살해된 시체가 발견되자 휴가를 가는 걸 머뭇거린다.

설상가상으로 보덴슈타인 반장의 수사팀은 병가 2명에 휴가 2명인 상태라

일손이 턱없이 부족한 상황인데 또다시 동일범인 스나이퍼의 소행으로 보이는 

저격당한 시체가 발견되어 도시는 공포에 휩싸인다.

결국 휴가를 포기하고 사건 수사에 매진하는 피아와 보덴슈타인의 수사팀은

피해자들이 모종의 사건에 연루된 관계임을 알게 되는데...

 

전작인 '사악한 늑대'를 읽은 탄력을 받아 타우누스의 시리즈의 가장 최신작인 이 책을 바로 읽었다.

그동안 시리즈가 계속되면서 정말 다양한 소재들을 다뤘다.

독일의 치부라 할 수 있는 홀로코스트를 다룬 '깊은 상처'나 풍력발전소 건설을 둘러싼 기업과

시민단체의 갈등을 다룬 '바람을 뿌리는 자' 등 여러 사회문제들을 책에서 담아내서

과연 이 책에선 어떤 소재를 다룰까 궁금했는데 이번에는 장기이식이란 화두를 제시했다.

사실 장기이식은 뇌사상태 등에 빠졌을 때 장기가 필요한 다른 사람들을 살리는 선한 행동으로

사회적 운동이 벌어질 만큼 장려되는 행동임에도 이 책에선 오히려 그 적나라한 민낯을 까발린다.

생전에 장기이식에 동의한 경우에도 정작 그런 상황이 닥치면

가족들이 선뜻 본인의 뜻을 존중해서 장기이식에 동의하기가 힘든데

그런 상황을 악용하는 자들이 있을 거라고는 정말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

장기이식이 무슨 의무인 것도 아니고 그야말로 선의로 하는 고귀한 행동임에도

장기이식을 해줄 수 있는 상황에 처한 환자와 가족들을 협박하고 강요해서 

아직 살아있는 사람의 몸을 난도질해서 장기들을 꺼내고는 쓰레기 버리듯 처리하는

의료진이나 관련 종사자들의 모습을 보면 정말 경악할 수밖에 없었다.

나도 이 책을 읽기 전에는 장기이식이 죽기 전에 할 수 있는 마지막 선행이라는 생각을 갖고 있었는데

이 책을 읽고 나니 쉽사리 장기이식에 동의할 수 없을 것 같았다.

물론 소설 속 극단적인 얘기라고 치부할 수도 있지만 얼마든지 일어날 수 있는 개연성 있는 얘기였는데,

장기이식의 전제가 되는 뇌사판정이나 이식을 받을 사람을 선정하는 절차 등이 정말 엄격하고

공정하게 진행되어야 하고 다른 사람들을 살리는 것보다 우선해서 장기를 이식해주는 사람과

가족들의 마음을 존중하고 위로해줄 수 있어야 장기이식이란 대의명분을

제대로 달성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보통 연쇄살인범이라면 정말 끔찍한 괴물들을 떠올리겠지만

이 책 속의 범인은 나름 이해가 가는 부분이 없지 않았다.

멀쩡한 사람이 조깅을 하던 중 갑자기 쓰러졌는데 그걸 보고도 구급차를 부르지도 않는 이웃이나

술에 취해 구급차를 몰다가 사고를 내서 환자를 살릴 수 있는 골든 타임을 놓치게 한 운전자나

아직 뇌사상태에 빠지지도 않은 살아 있는 환자를 자신의 허영심과 욕망을 충족시키기 위해

회생불능의 상태라고 진단하고 가족들에게 장기기증을 하라고 압박한 의사나 병원 관계자들. 

저런 인간들 때문에 소중한 가족을 잃게 되는 어처구니 없는 일을 당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면

내가 희생자의 가족이라고 해도 복수를 계획하는 게 당연할 것 같다. 

그래서 범인은 처벌을 받아야 할 자들이 아닌 그들의 가족들을 저격함으로써 

자신의 잘못을 전혀 깨닫지 못하고 멀쩡하게 살아왔던 자들에게 자신이 겪은 고통을 고스란히 안겨준다.

피이와 보덴슈타인 콤비는 이 책에서 나름 분투를 하지만 범인보다 늘 뒷북만 치다가

결국 범인의 계획대로 잘못된 장기이식과 관련된 모든 자들이 처벌받는 걸 막지 못한다.

어떻게 보면 그들의 완벽한 패배라고 할 수도 있었지만 오히려 복수가 완성되어서 더 만족스러웠다.

마지막에 피아와 크리스토프의 결혼식으로 분위기 반전을 시도하는데

전작의 범인의 소식이 난데없이 전해져 그가 등장하는 또 다른 작품에 대한 기대를 접게 만들었다.

이 책을 읽고 나니 정말 남에게 피해가 주는 행동을 하면 안 되겠다는 당연한 진리를 새삼 실감했다.

나는 별거 아니라고 무심하게 하는 말과 행동들이 남에게는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줘서

이 책의 범인처럼 자신의 고통을 고스란히 돌려주려고 할지도 모르니

늘 공자가 '논어'에서 한 '자기가 하기 싫은 일을 남에게도 하게 해서는 안 된다'는 말을 명심해야겠다.

보통 시리즈물이 계속되다 보면 작가가 소재의 빈곤에 직면하고 지친 듯한 느낌이 들 때가 있는데

넬레 노이하우스의 타우누스 시리즈는 점점 소재도 다양해지고 인물들의 사연들이 쌓이면서

내용이 풍성해지는 느낌이 든다. 과연 다음에는 어떤 신선한 얘기로 우리를 찾아올지 기대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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