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움의 왕과 여왕들
대니얼 월리스 지음, 박아람 옮김 / 책읽는수요일 / 2015년 8월
평점 :
절판


눈이 보이지 않지만 그 누구보다 아름다운 소녀 레이철과 세상에서 장 못 생긴 그녀의 언니 헬렌.

소녀들의 증조부 엘리야 메컬리스터가 세운 도시 로움에서 부유한 삶을 살았지만

부모님들이 불의의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나면서 헬렌과 레이철 자매만 남게 된다.

하지만 세상에 단둘뿐인 자매 사이에 엄청난 비밀이 있었으니, 헬렌은 레이철에게 동생이

자신의 얼굴을 갖고 있으며 로움의 바깥에는 온갖 위험이 도사리고 있다고 거짓말을 하는데...


영화 '빅 피쉬'의 원작소설의 작가 다니엘 월러스의 작품인 이 책은

'내가 가장 사랑하는 사람이 날마다 나의 삶을 조금씩 훔쳐가고 있다면'

이라는 띠지의 문구만으로도 마음을 사로잡기에 충분했다.

내 삶을 누군가가 훔쳐가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열 받는데 그것도 가장 사랑하는 사람이 그러고 있다면

그 충격이 얼마나 클 것인지 생각만 해도 소름이 끼치는데 도대체 왜 그런 짓을 하는지 정말 궁금했다.

이 책에서 바로 헬렌이 레이철에게 한 거짓말이 바로 그런 역할을 했는데, 

자신의 못 생긴 얼굴을 맹인인 동생에게 줌으로써 안 그래도 암흑 속에 살아가야 하는 레이철에게

자신이 현실에서 겪는 끔찍한 고통을 고스란히 선사한다.

레이철이 헬렌에게 뭘 잘못했기에 이런 무서운 거짓말을 했는지는 납득하기 쉽진 않지만

자신과는 정반대의 외모를 가진 동생을 보면서 느낀 질투심의 발로라고 생각한다면

조금은 이해할 여지도 없진 않다.

게다가 부모님이 죽은 이후 동생을 책임지게 된 헬렌의 상황을 보면 측은한 부분도 있다.

그럼에도 너무 심한 거짓말을 했기에 과연 진실이 어떻게 밝혀질지 궁금했는데

레이철이 언니에게서 홀로서기를 시도해 로움을 떠나면서 두 사람의 운명은 새로운 국면을 맞이한다.


이 책을 보면서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의 '백년 동안의 고독'이 딱 연상되었는데,

배경이 된 로움과 마콘도가 거의 유사한 역사를 가졌다.

로움은 엘리야 메컬리스터가 중국인 밍카이를 납치해와서 뽕나무의 누에를 이용해 비단을 만드는

기술을 배워 만든 도시였는데, 엘리야 메컬리스터는 기술을 배워 더 이상 밍카이가 필요 없자

그를 내치고 자신만의 왕국을 건립한다.

부엔디아 집안이 마콘도를 개척하는 것과 비슷한 느낌이 들었는데

무엇보다 유사한 점은 유령이라 할 수 있는 죽은 자들이 등장해 산 사람에게 영향을 준다는 점이다.

술집을 운영하는 난장이 딕비와 헬렌이 바로 죽은 사람들의 혼령을 볼 수도 있고

그들과 대화도 나누는 능력을 갖고 있어서 안 그래도 기묘한 얘기가 점점 판타지처럼 느껴졌다.

어떤 병이든 낫게 해주는 강물을 비롯해 이 책에는 동화같은 얘기들이 여기저기 포진되어 있어

풍성한 이야기의 재미를 제대로 맛볼 수 있게 해주는데, 이야기꾼은 남을 위해 이야기를 지어내지만

거짓말쟁이는 자신을 위해 이야기를 지어낸다는 문장이 딱 이 책의 핵심을 드러낸다고 할 수 있었다.

동생에게 엄청난 거짓말을 한 헬렌은 물론 레이철이 진실을 알게 될까봐 거짓말을 하는 마커스 등

자기 딴엔 레이철을 생각해서 선의의 거짓말을 한다고 했지만

결국은 레이철에게 크나 큰 상처만 남긴 사실을 보면 진실은 언젠가는 밝혀지기 때문에

당장은 아파도 솔직한 게 정도가 아닌가 하는 교훈을 주었다.

전체적으로 다채로운 얘기거리를 담아낸 어른들을 위한 동화라고 할 수 있는 작품이었는데 

다니엘 월러스라는 또 한 명의 이야기꾼을 발견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는 책이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7)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