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카 고타로의 책은 일본 서점대상에 빛나는 '골든 슬럼버'를 비롯해서
일본 추리작가협회상을 수상한 '사신 치바'까지 단 두 권밖에 읽지 않았지만
두 권 모두 강렬한 인상을 남겨서 늘 주목하는 작가 중의 한 명이라 할 수 있다.
이 책은 제목부터 왠지 마음에 들어 읽게 되었는데
악당 같지 않은 악당이 보여주는 훈훈한 얘기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듯 이어졌다.
남편의 불륜으로 이혼과 이사를 하게 된 부부와 아들,
그리고 난데없이 남편에게 랜덤으로 온 드라이브도 하고 밥도 먹는 친구하자는 메일.
그런 스팸 메일에 답장을 하자 메일 보낸 젊은 남자가
실제로 가족을 드라이브 시켜주면서 얘기는 시작된다.
사실 젊은 남자는 교통사고를 유발해 상대를 협박하는 자해공갈단원이었는데
랜덤으로 메일을 보내 답장이 오면 그만두게 해준다는 조건을 달성하기 위해 한 행동이
해체위기에 있던 가족에게 색다른 추억을 선사하게 된 것이었다.
이런 의도하지 않았던 일들이 다른 사람의 인생에 영향을 주는 얘기가 계속 이어진다.
아버지에게 학대받는 아이를 구해주기 위해 모종의 계략을 꾸미기도 하고,
스토커에게 지속적인 괴롭힘을 당하던 여교사를 아들을 몰래 지켜보던 아빠가 구해주는 등
분명 교통사고 사기단인 남자들이 저지르기엔 너무 훈훈한 얘기들이 나와서
조금은 어색하지만 마음이 따뜻해지는 느낌이 들었다.
세상을 살아가다 보면 이런저런 예상하지 못한 일들과 인연들에 놀라기도 하고 당황스러울 때도 많지만
이 책에서 그려지는 사연들만 보면 세상이 충분히 살만한 게 아닌가 하는 위안을 주기도 한다.
물론 소설과 현실 세계는 엄연히 다르지만 우리가 소설을 읽는 것 자체가
현실에서 찾기 힘든 희망적인 면모를 발견하기 위함도 있지 않나 싶다.
현실의 관점에서 보면 보이스 피싱 등 온갖 사기꾼들이 난무해서 타인을 믿지 못하는 불신사회가
되었지만 이 소설 속 사기꾼들을 보면 결코 미워할래야 미워할 수 없는 귀여운 악당 같은 느낌을 준다.
아니 악당이라기보단 오히려 보이지 않는 선한 사마리아인 같은 역할을 하는 것 같았는데
엉뚱하면서도 유쾌발랄한 인물들과 얘기들이 아기자기하면서도 흐뭇한 미소를 짓게 만드는 작품이었다.
세상과 인생을 바라보는 시선은 다양할 수 있는데 이런 책을 읽고 나면 왠지 책 제목처럼
남은 날이 전부 휴가인양 무한긍정의 모드로 잠시나마 전환되는 느낌을 받게 된다.
날아가면 8분, 걸어가면 10분이라면 날아가나 걸어가나 큰 차이가 없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날아가는 경험을 해본다는 삶의 태도가 누구나 죽지만
뭔가 다른 삶을 살아갈 수 있는 선택을 할 수 있음을 잘 보여준 책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