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차대전 당시 독일군의 암호 해독과 얽힌 일련의 사건을 다룬 역사팩션

제10회 리뷰대회

에니그마 ㅣ 세계 2차 대전 3부작
로버트 해리스 지음, 조영학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4년 12월

로버트 해리스의 작품으로는 영화로도 만들어져 더욱 친숙한 '폼페이'와 '고스트 라이터'를

읽어봤는데 두 작품 모두 과거의 역사적 사건과 현실의 정치 상황을 배경으로 해서

흥미진진한 얘기를 잘 풀어냈다.

이 책은 그의 전공이라 할 수 있는 역사팩션 중 세계 2차 대전 3부작의 첫 권인데

독일군 잠수함 유보트로 인해 연합군이 위기에 처하자 독일군의 암호를 해독해내기 위해

연합군 비밀조직 내에서 벌어지는 일련의 숨가뿐 사건들을 그려내고 있다.

암호 해독과 관련해선 실존 인물이었던 앨런 튜링이 이 책에서도 언급되는데, '위대한 패배자' 와

'지식 e 시즌4' , '과학의 순교자'를 통해 최초의 컴퓨터 개발자였지만 동성애로 화학적 거세를

당해 자살을 한 비운의 천재였던 앨런 튜링이 주인공이지 않을까 잠시 생각했지만

이 책에서는 그가 아닌 토머스 제리코란 가공인물이 암호를 해독하는 천재 수학자로 등장한다.

제리코가 독일군의 암호 샤크를 파해하는데 큰 공을 세웠지만 독일군이 새로운 암호체계를

만들어내자 연합군은 이를 해독하기 위해 혈안이 되지만 코앞에 둔 위험에서 벗어나기는 쉽지 않았다.

이런 급박한 상황에서 제리코는 자신에게 일방적으로 이별통보를 하고 떠나버린

애인 클레어 때문에 혼란스러운 상황에서 암호도 해독해야 하는 중요한 임무도 맡게 되지만

두 가지 일 다 좀처럼 해결의 기미를 보이지 않는데... 

2차대전을 배경으로 한 치열한 첩보전을 다룬 영화들을 많이 봐서

대략 어떤 내용이 전개될까 예상을 해봤었는데 사실 예상과는 좀 다르게 전개되었다.

암호 해독과 관련해 연합군 내부에서 벌어지는 갈등과 여러 인물들 사이의 얽히고 설킨 관계가

독일군의 암호를 해독하는 만큼이나 쉽지가 않았다.

나름 퍼즐이나 암호 같은 걸 풀이하는 걸 즐기는 편이지만

이상하게 이 책에 나오는 내용들에는 잘 집중이 되지 않았는데

아무래도 전쟁물이나 스파이물에서 흔히 볼 수 있던 역동적인 전투씬이나 액션장면과 손에

땀을 쥐게 만드는 아슬아슬한 사건 전개가 별로 없어서 그랬던 게 아닌가 하는 핑계를 대어본다.

그래도 나름 암호해독에 관련된 치열한 대립과 갈등, 사라졌던 연인의 행방에 얽힌 충격적인

비밀과 마지막에 드러난 반전까지 역사팩션으로서의 재미와 구색은 제대로 갖춘 작품이었다.

사실 실제로는 에니그마를 해독함으로써 2차대전의 승패가 완전히 기울게 되었고,

무고한 수많은 생명을 구하게 되었다는 점에서 상징적인 의미가 있는 사건이라 할 수 있었는데

영화로도 만들어졌다니 영화로는 과연 어떤 느낌일지 꼭 확인해봐야겠다.